4. 숭고한 의리와 뜨거운 동포애를 지니시고

통일의 날 보게 될 영화

 

주체60(1971)년 여름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으로부터 풍랑으로 조난당하여 북으로 들어온 남조선어민들이 들끓는 대건설현장에 나가 흙 한삽이라도 떴으면 한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무렵 수도 평양에서는 천리마거리건설공사가 한창 벌어지고있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천리마거리건설공사에 참가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북의 벅찬 현실에 발을 잠그었으면 하는 그들의 요구를 헤아려주시고 그들의 작업모습을 기록영화로 찍어두도록 하시였다.

사실 그때 관계부문 일군들은 기록영화촬영문제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따라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일군에게 남조선어민들의 작업모습을 찍어두면 지금 당장은 남조선인민들이 볼수 없다 하더라도 통일이 된 후 본인들은 물론 모든 남녘인민들이 뜻깊게 볼수 있을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고 몸소 기록영화촬영가들을 천리마거리건설장에 보내주시였다.

남조선어민들은 깜짝 놀랐다.

자기들의 소망이 성취된것만도 뜻밖의 일인데 영화촬영까지 한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한복판에나 나선것처럼 자랑스러웠다.

우리를 보라! 평양에서 거리를 일떠세우는 우리 모습이 얼마나 장한가를 온 세계가 보라!

이렇게 큰소리로 웨치고싶은 심정이였다.

장군님께서 몸소 보내주신 기록영화촬영가들이 촬영을 시작하자 온 건설장이 설레였다.

수많은 건설자들의 관심이 어민들에게 집중된 속에서 유선방송은 북남형제들의 힘찬 건설작업모습을 흥분된 목소리로 보도하였다.

휴식시간이 되면 남조선어민들과 건설자들이 한데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그리고 억제할수 없는 감격에 목이 메여 울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난생처음 사람다운 대우를 받고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환영을 받는것만 해도 감개무량한데 기록영화까지 찍게 해주시는 장군님의 사랑에 그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린것이다.

한 어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 사람값에 가지도 못하는 저희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육친의 사랑을 베풀어주실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머리채를 베여 신을 삼은들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며 이 몸이 죽어 백골이 된들 이 은덕을 어찌 잊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기록영화필림을 없애지 말아주십시오. 통일되면 가족들과 친척들을 데리고 평양에 와서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이 영화를 꼭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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