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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없이 넓은 도량으로

몸소 숙소에까지 찾아오시여

 

주체87(1998)년 10월말 지방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갑자기 일군들에게 평양으로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은 의아해졌다.

하지만 장군님께서 돌아가시겠다고 한 사연을 알고는 그이의 한없는 덕망에 머리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무렵 평양에는 남조선의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일행이 와있었는데 하루이틀내로 환송연회를 한 다음 떠나기로 일정계획이 맞물려져있었다.

그런데 정주영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잠간만이라도 만나뵙고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였다.

그가 평양에 오기까지는 여러가지 곡절이 있었다.

정주영을 비롯한 남조선 현대그룹일행이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경제실무적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하여 평양으로 오게 해달라고 제기하여왔을 때 해당 부문 일군들은 주저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로 말하면 남조선의 1등재벌로 불리우는 현대그룹의 창업주, 명예회장이며 한때 《대통령》후보로까지 나섰던 사람으로 한생을 자본의 축적과 기업의 확대, 개인의 치부를 위한데 바쳤다고 말할수 있었다.

그러한 대기업가를 받아들인다는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던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과거보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이나마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바지하려는 정주영의 결심을 더 소중히 여기시고 대담하게 판문점륙로를 열어주시는 하해같은 은총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렇게 되여 그는 해방후 김구가 수령님의 품을 찾아왔던것처럼 분렬의 장벽을 넘어 장군님의 품을 찾아 북행길에 올랐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몸소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정주영일행을 만나시기 위해 10월 30일 그들이 들어있는 숙소를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 꿈같이 자기들의 숙소에 몸소 찾아오신데 감격한 정주영과 일행은 황황히 밖으로 달려나왔다.

장군님께서는 불편한 다리로 정문까지 마중 나온 그에게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 나는 고령에 있는분이 나를 찾아오게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가서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현지지도도중에 평양에 오다나니 이렇게 밤이 늦어서 정주영선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이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국방위원장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깊은 밤 숙소를 찾아주신것만도 과분하기 그지없는데 사례의 말씀까지 해주시니 그는 황송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마음속격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장군님을 만나뵈웠으니 이젠 100살을 더 살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주 오겠습니다.》

이날 정주영일행은 위대한 장군님의 인품에 끌리여 자기들의 사업에 대하여 또 생각하고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두서없이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금강산관광문제, 경제문화분야에서 협력교류문제 등 이야기범위는 끝이 없을상싶었다.

장군님께서는 무랍없이 올리는 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시며 긍정도 하시고 때로는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주기도 하시며 일일이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기념사진을 찍고싶어하는 그의 소망을 헤아리시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만난것을 기념하여 기념사진이나 찍읍시다. … 나이많은 정주영선생이 가운데 서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가족 전체 성원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밤늦게야 그들이 든 숙소를 떠나시였다.

그후 판문점을 거쳐 남쪽으로 나간 정주영은 평양방문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장군님께서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하시였으니 언제든지 또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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