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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없이 넓은 도량으로
천도교 교령의 운명전환
《산같이 머리들어 떳떳해지고 하늘처럼 가슴열어 마음 든든해지는 저의 이 심정을 무슨 말로 아뢰였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화국이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원을 사는 불멸의 나라임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공화국의 품에 안겨 운명전환을 한 남조선천도교 중앙본부 전 교령인 오익제선생이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고 그이께 삼가 올린 편지의 한 대목이다.
민족적량심을 지니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바다와 같은 도량으로 포옹해주시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6(1997)년 8월 16일 관계부문 일군에게 오익제선생과 관련된 은정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조선천도교 중앙본부 전 교령인 오익제선생이 8월 15일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익제의 나이가 68살이면 정계에 나선 사람치고 그리 나이가 많다고 볼수 없는것만큼 그가 나라의 통일을 위한 사업을 오래동안 할수 있을것입니다.》
크나큰 믿음이 담겨진 말씀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오익제선생이 조국통일위업에 헌신할수 있도록 그에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의 중임을 맡겨주시고 건강상태까지 헤아려 현대적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수 있게 해주시였을뿐아니라 훌륭한 주택과 승용차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공화국북반부의 현실을 직접 보고 느낄수 있도록 참관조직도 해주시였고 선친들의 묘소를 찾고싶어할 때는 직승기도 띄워주시였다.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된 나날이 흐를수록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하나의 고민거리가 더욱 마음을 괴롭혔다.
그것은 아버지가 일제때 순사노릇을 하였다는 사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인생전환을 한 그는 그 사실을 더이상 속에 품고만 있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해당 부문 일군에게 그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하였다.
그에 대하여 알게 되신 장군님께서는 지체없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과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런데 결과는 실로 뜻밖이였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끄신 조선국민회의 군자금모집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는것이였다.
오익제선생은 뜨거운 격정을 삼켰다.
뿌리를 모르고 떠돈 인생이 장군님의 은덕으로 자기의 뿌리를 찾았으니 그 영광을 무슨 말로 다 이야기하랴.
하기에 그는 자신의 생활체험을 통해 절감한 력사적사실들을 가지고 《현세의 한울님》이라는 책을 써내여 장군님의 위인상을 격조높이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