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봉기군의 첫 싸움은 윤산이 거느리는 패에서부터 시작되였다.
그 싸움에서 봉기군이 어찌도 량반부자들을 여지없이 짓부셔놓았는지 그 말을 전해들은 관료들은 속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날 정도였다.
…장수산성에서 닻을 올리고 떠나간 윤산이네는 그날밤으로 신계 마방집에 들려 박중금의 누이인 박옥금을 떨구어놓고 수안 쇠부리터마을로 떠났다.
그들이 쇠부리터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에 이르렀을 때는 동녘하늘이 훤히 밝아올무렵이였다.
대오가 둔덕에 올라 막 한숨을 돌리고있을 때였다.
그들보다 한발 먼저 마을에 내려갔던 익선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달려올라왔다.
익선은 윤산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윤산두령,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윤산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부두령, 무슨 일이 생겼소?》
익선은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글쎄, 저 악귀같은 놈들이 마을의 아녀자들을 모두… 에익…》
윤산은 더욱 놀랐다.
《부두령, 아녀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됐다는거요?》
익선은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그놈들이 마을에 달려들어 폭도들의 족속이라고 하면서 아녀자들을 모두 끌어갔다네. 병자인 초동이의 엄마는 그놈들의 매를 맞고 피를 토하다가 그자리에서 죽었다누만.》
《뭐라구요?! 초동이 엄마가?!》 하고 윤산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부두령 수안이 다급히 물었다.
《의겸총부두령과 익선부두령네 가족은 어떻게 되였소?》
《모두 놈들이 끌고갔네. 마을에 늙은이 몇이 남았어.》
《어디로 끌고갔다우?》
《수안관가로 끌고갔어. 그리구 이 마을 아전네 집에 군교와 군졸 몇놈이 남아서 우리가 오면 잡으려구 지키고있다누만.》
윤산이 다시 물었다.
《그 아전네 집이 어디요?》
익선이 마을쪽을 가리켰다.
《저기 둔덕밑에 있는 첫집일세.》
그들은 익선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새벽안개에 싸여있는 마을은 희미하게 보였다.
그속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그들의 시야에 안겨왔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윤산은 속으로 가슴을 쳤다.
떠나올 때 이런 일이 있을가봐 쇠부리마을부터 들려서 피신처를 마련해주라던 총두령 김막동의 당부가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발 늦었던것이다.
윤산은 함께 온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 쇠부리마을의 철간들이였다.
그러다나니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자기들의 가정과 마을사람들이 당한 불행으로 하여 분노가 소용돌이치고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번쩍이는 눈빛에서 알수 있었다.
윤산은 누구에게라없이 말했다.
《우선 이 마을아전네 집부터 쳐서 구체적인 내막을 알아보아야 하겠다.》
수안이가 그 말을 제꺽 받아들였다.
《그게 좋겠수다. 그 집에 관가에서 나온 군교와 군졸들이 있다니 그놈들을 잡아 족치면 마을사람들의 행처를 알수 있을것 같애요.》
윤산은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짰다.
자기와 익선부두령은 아전네 집대문을 통해 들어가고 수안은 봉기군들과 함께 집을 포위하고있다가 신호에 따라 돌입하기로 하였다.
드디여 새벽안개를 타고 그들은 은밀히 둔덕을 내려 아전네 집으로 다가갔다.
집대문앞에 이른 윤산과 익선은 칼을 빼들고 대문을 두드렸다.
아직도 새벽잠을 자는지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다시 대문을 쾅쾅 두드려서야 안에서 부스럭소리가 나더니 잠에 취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거 뉘시우-》
아전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아방쇠였다. 올해에 쉰살인 그는 배꼽 떨어져 지금까지 상전들을 바꾸어가면서 일생동안 이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있었다.
윤산이 맞받아 소리쳤다.
《관가에서 나왔다. 어서 문 열어라.》
《그렇소이까. 잠간만 기다리시우.》
이윽고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나고 대문이 찌끄덩 열리더니 반백이 다 된 아방쇠가 머리를 내밀었다.
이미부터 그의 얼굴을 잘 알고있던 익선은 조용하라는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아방쇠가 《아니, 익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익선은 아방쇠에게 물었다.
《아방쇠, 관가에서 나온 놈들이 지금 어디 있어?》
《저 웃방에서…》
《몇놈이나 되나?》
아방쇠는 말없이 다섯손가락을 폈다.
윤산은 돌아서서 밖을 포위하고있는 수안에게 손짓했다.
수안은 봉기군들을 데리고 대문앞으로 달려와서 마당으로 들어가 집을 에워쌌다.
봉기군들이 마당안으로 다 들어가자 윤산은 아방쇠에게 어서 문을 걸라고 손짓했다.
아방쇠는 어리둥절하여 눈만 껌뻑거렸다.
익선은 대문을 닫아걸었다.
마루우에 닁큼 올라선 윤산은 웃방으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서는 다섯명의 사내들이 웃옷을 벗어던지고 아래도리만 가리운채 쿨쿨 자고있었다.
밤새 술을 퍼먹었는지 술냄새가 역하게 풍겨왔다.
윤산은 칼끝으로 문앞에서 자고있는 놈의 턱을 툭툭 쳤다.
그런데도 그놈은 손으로 턱을 슬슬 긁고나서는 모로 돌아누워 다시 잠을 잤다.
그 꼴을 들여다보던 윤산과 익선은 방안으로 들어가 자는 놈들의 꽁무니를 걷어찼다.
그제야 잠에서 깨여난 놈들은 눈이 퀭해서 앉아있었다.
코수염이 부시시한 놈이 꽥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냐?》
윤산은 그놈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네가 군교냐?》
그놈은 발딱 일어서서 대꾸했다.
《그래, 내가 군교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윤산은 대답대신 군교의 얼굴에 주먹세례를 안겼다.
《난 이런 사람이다.》
갑자기 된타격을 받은 군교는 방바닥에 벌렁 나가자빠졌다.
윤산은 칼을 쳐들고 소리쳤다.
《당장 밖으로 나가지 못해, 이놈들!》
윤산의 호령소리에 놈들은 옷도 입지 못한채 비실비실 마루우로 쫓겨나갔다.
마루우에 있던 수안과 봉기군들이 그놈들을 허궁들어 마당으로 내리던졌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놈들은 《아이쿠.》 하며 아우성을 쳤다.
이때 집뒤쪽에서는 《이놈아, 서라!》 하는 소리가 나더니 봉기군들이 살이 유들유들한 놈을 끌고 마당으로 나왔다.
쇠부리마을 아전이였다.
그놈은 웃방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듣고 몰래 뒤문으로 해서 도망을 치다가 봉기군들에게 붙잡힌것이였다.
윤산은 마루우에 틀고앉아 땅바닥에서 벌벌 기는 군교에게 대고 소리쳤다.
《군교 이놈, 우리가 누군지 알겠어? 우린 네놈들이 잡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
《이놈아, 너 이 마을아녀자들을 다 어떻게 했어? 어서 말해라!》
군교는 한갖 천한 놈들과는 상대도 안하겠다는 심보인지 얻어맞은 볼만 문대면서 먼산만 쳐다보고있었다.
윤산이 다시 물었다.
《이놈아, 대답 안하겠어? 어서 말해.》
그래도 그는 여전히 본체만체 하고 서있었다.
윤산은 주머니에서 돌을 한개 꺼내들었다.
《흥, 그래두 관리랍시구 대답을 안하겠단 말이지. 이거나 먹어라!》
윤산이 한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어느새 날아간 돌멩이가 군교의 입을 세차게 때려놓았다.
《아이쿠.》 하고 군교는 입을 싸쥔채 마당에서 대굴대굴 굴었다.
윤산은 또 한놈을 가리켰다. 몸이 오동통하고 눈이 류달리 큰 놈이였다.
《네가 말해봐라. 마을사람들을 어떻게 했어?》
그는 부엉이같은 눈을 뒤룩거리면서 떠듬거렸다.
《저, 고을관가에…》
《관가에 가져다가 어쨌다는거냐?》
《모두 옥에 가두어놓구…》
《옥에 가두어놓구 때린단 말이냐?》
《…》
윤산은 그들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이놈들을 모조리 묶어 창고에 처넣어라.》
봉기군들이 달려들어 그놈들을 오라줄로 꽁꽁 묶어 마당 한쪽에 있는 창고에 걷어넣었다.
윤산은 아침밥을 짓게 하라고 말하고는 부두령들인 익선과 수안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에 모여앉은 그들은 차후의 행동방향을 토론했다.
쇠부리터 철간들인 봉기군 몇명을 익선이 데리고 남아서 뒤처리를 한 다음 무원골로 들어가는 입구인 병풍골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리고 윤산과 수안은 봉기군들을 데리고 수안관가에 가서 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원해가지고 병풍골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아침밥을 먹은 그들은 창고에 가두어두었던 놈들을 끌고 수안고을로 향하였다.
봉기군을 이끌고 마을뒤산에 오른 윤산은 군교와 아전을 가차없이 처단해버렸다.
그 광경을 본 군졸들은 사지를 벌벌 떨었다.
윤산은 나머지 군졸 네명도 자기들의 대오에 넣어 고을관가로 걸음을 다그쳤다.
만약 경우에 그놈들을 리용하자는것이였다.
그들은 나절가웃이 되여서야 수안고을 뒤산에 이르렀다.
윤산은 합각지붕을 번듯하게 씌운 관가를 내려다보면서 끌고온 군졸들에게 그 내막을 물었다.
말이 군졸이지 처지로 봐서는 봉기군이나 다름없는 그들이라 관가의 내막을 상세히 대주었다.
그들은 관청의 내부구조와 관리들의 집 그리고 사흘전에 고을군사들이 총 출동하여 재령쪽으로 가서 지금 관가에는 문을 지키는 군졸 몇명밖에 없다는것까지 고스란히 대주었다.
그 말을 들은 윤산은 수안고을 관가를 대낮에 들이칠 결심을 하였다.
윤산이 수안에게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
《수안부두령, 난 관가를 대낮에 들이치자는거네.》
《대낮에요?》
《그래, 대낮에 들이쳐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자는거야. 그래야 사람들이 속시원해 할게 아닌가.》
수안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옳아요. 그런데 일이 그르치지 않으려면 미리 렴탐을 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렴탐을?》
《그래요. 우리가 배우지 않았나요. 적을 잘 알고 싸울 때는 백번 싸워도 승산이 있지만 적을 모르고 싸우면 닭알낟가리우에 서있는것과 같이 위태롭다.》
윤산은 빙긋 웃으며 수안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언제 봐야 침착하고 영민한 그였다.
언제나 말보다 행동을 잘해서 형제들을 깜짝 놀래우는 수안이였다.
문득 윤산의 머리속에는 무원골에서 살 때 이순이를 위해서 산자라가 담긴 옹배기를 안고 신계에서부터 이틀이나 걸어왔던 수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윤산은 이마를 툭 쳤다.
《부두령말이 옳아. 난 그저 복수할 생각만 앞서다나니… 좋아. 렴탐군을 들여보내자구.》
수안은 미소를 지었다.
《그 렴탐을 내가 하겠어요.》
《부두령이?》
《왜 미덥지 않아 그래요? 이렇게 형님을 도우라고 막동형님이 날 보내지 않았나요. 걱정마시라요.》
윤산은 수안의 잔등을 철썩 때렸다.
《좋아. 그럼 갔다오게.》
《알겠어요.》
수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시를 바로하였다.
윤산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봉기군 두명을 그에게 붙여주었다.
수안이네 일행은 재빨리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을 바래우고난 윤산은 봉기군들에게 아침에 싸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요기를 하라고 말하고는 숲속을 거닐었다.
수안관가습격을 앞둔 윤산의 마음은 마냥 설레였다.
윤산은 조용히 입속으로 불러보았다.
《수안, 수안이라…》
하많은 추억을 불러오는 고장이름이였다.
어린시절 부모의 슬하에서 눈을 뜨자마자 눈에 익힌 땅이다. 철모르는 그 시절엔 이 고장이 정다와 수수대말을 타고 뛰여다녔다.
그러나 부모를 잃고 고아의 신세가 된 다음부터는 지겹고 보기 싫은 낯선 땅으로 되였었다.
그러던 땅이 무원골에서 새살림을 펴고 살 때에는 또다시 정답고 살기 좋은 요람으로 느껴졌다.
정말로 무원골에서 살던 시절은 이 땅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바위돌 하나가 모두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것처럼 느껴져 한없이 소중하고 귀중했다.
그때에는 이 땅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것 같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다시 이 땅이 역스러워졌다.
그것은 결코 산천이 나빠서가 아니였다. 이 산천을 타고앉아 주인행세를 하는 량반부자놈들때문이였다.
윤산은 저도모르게 주먹을 틀어쥐였다.
지금도 저 언진산밑 인적없는 등성이에 홀로 누워있는 이순이가 막 소리쳐부르는듯싶었다.
그처럼 어지고 순박하고 마음고운 이순을 빼앗아간 이 세상이 저주롭기만 하였다.
여기로 떠나올 때 박중금두령은 자기더러 제누이 박옥금이를 맡아달라고 은근히 암시도 하고 옥금이 또한 은근히 자기에게 가을 호수같은 그윽한 눈길을 보내군 하였다.
이미 이성의 감정을 체험한 윤산은 그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하지만 윤산은 그 눈길을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아직도 이순이 그 어데선가 지켜보는것 같고 얼마 안있어 꼭 자기 품으로 돌아올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따라 어쩐지 윤산은 이순이 생각이 더 났다.
그처럼 잊지 못할 수안땅에 발을 붙여서인가. …
그럴수록 윤산의 가슴속에서는 자기들의 행복을 빼앗아간 저주로운 이 세상이 증오스럽기만 하였고 어디 가서 무엇이든 잡아서 막 휘둘러놓고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돋아났다.
그가 이렇게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거닐고있는데 등뒤에서 불쑥 수안의 말소리가 울려왔다.
《윤산두령님, 갔다왔소이다. 》
그제야 윤산은 자기 생각에서 깨여나 뒤를 돌아다보았다.
어찌도 급히 달려왔는지 수안은 온통 땀에 젖어있었다.
윤산이 수안의 손을 덥석 잡았다.
《부두령, 수고했소. 갔던 일은?》
수안은 빙긋 웃으면서 땀을 씻었다.
《두령님 말대루 이제라도 냅다 치자요.》
《그건 무슨 소린가?》
《군졸들의 말대루 관가엔 군졸이 네댓명밖에 없소이다. 모두 우리를 잡겠다구 재령쪽으로 몰려간게 분명하오이다.》
《그래?! 관리놈들은?》
《흥, 그놈들은 오늘 고을옆에 있는 룡담에 〈기우제〉를 지내러 나갔다나요.》
윤산은 무릎을 툭 쳤다.
《그러니 지금 관가는 텅 비였겠구만.》
《그렇소이다.》
《좋다. 지금 당장 떠나자.》
윤산의 뒤를 따라 봉기군은 숲속을 헤치고 산을 내렸다.
앞에도 뒤에도 온통 푸른 숲으로 뒤덮여 누구도 수십명이 쏟아져내려오는 봉기군을 알아볼수 없었다.
동헌 앞대문으로 쏜살같이 달려간 윤산은 무작정 문을 열고 달려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 봉기군이 칼을 빼들고 달려들어갔다.
너무도 급작스레 부닥친 일이라 문을 지키던 군졸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있었다.
봉기군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어 잡고있던 창과 칼을 빼앗았다.
이때 동헌마루우에서 관복차림을 한 놈이 나와서 소리쳤다.
《웬놈들이냐?》
윤산은 뚜벅뚜벅 그에게 마주 갔다.
《넌 어떤 놈이냐?》
그제야 칼을 든 봉기군들을 알아본 관리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도…도대체 무슨 일이요?》
윤산이 달려들어 그놈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이놈아, 넌 뭘하는 놈이냐?》
관리는 허우적거리며 말했다.
《난, 여기 형… 형리올시다.》
《뭘? 형리? 이놈아, 당장 옥사쟁이를 불러라!》
어느 사이에 옥에 달려간 수안은 옥사쟁이를 끌고 윤산의 앞으로 왔다.
윤산은 관리와 옥사쟁이를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앉게 하였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앉아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윤산은 옥사쟁이의 허리에 달려있는 열쇠줄을 칼로 끊어서 옥열쇠를 수안에게 던져주었다.
열쇠를 받아든 수안은 봉기군들을 데리고 쇠부리마을아녀자들이 갇혀있는 옥으로 달려갔다.
얼마 안있어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든 녀인들과 아이들이 봉기군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그들쪽으로 왔다.
윤산은 그들에게 달려가 물었다.
《여기 김의겸형님의 아주머니가 누구시오?》
의겸의 안해가 앞으로 나왔다.
《예, 내가… 그런데?》
윤산은 녀인의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형수님, 내 인사를 받으시오. 내가 의겸형님과 사지동거를 맺은 동생 윤산이오이다.》
수안이도 인사를 하였다.
《저두 동생이요. 인사를 받으시오.》
의겸의 안해는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엄마품에 안겨있던 일곱살정도 나보이는 사내녀석이 윤산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우리 아버지를 모르시나요?》
《응? 너희 아버지는 누군데?》
《익선이와요. 홍익선 …》
윤산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다.
《네가 익선형님의 아들이구나. 알구말구. 우린 아버지가 보내서 이렇게 왔다. 어서 아버지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러자 애녀석은 뽀르르 엄마한테로 달려갔다.
《야 엄마, 아버지가 우릴 기다린대요. 어서 가자요.》
윤산은 익선의 안해와 녀인들을 둘러보았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소. 자, 어서들 가십시다.》
그때 녀인들속에서 흐느낌소리와 함께 소요가 일어났다.
《아니, 저놈들이, 저놈들을 죽여라!》
《저놈들을 그저…》
그들은 윤산이네가 붙들어놓은 형리와 옥사쟁이를 보고 울부짖는것이였다.
녀인들은 미처 말릴사이도 없이 왁 달려들어 형리와 옥사쟁이의 머리를 쥐여뜯고 발로 짓밟았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녀인들은 그놈들에게 침을 뱉았다.
《에익, 더러운 놈들. 콱 뒈져라!》
김의겸의 안해가 윤산의 손을 잡고 말했다.
《글쎄, 저 형리놈과 옥사쟁이놈이 우리 녀인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짓밟은 못된 놈들이와요.》
윤산은 형리와 옥사쟁이앞에 다가섰다.
《이놈들아! 머리를 들고 어떤 사람들이 서있는가를 똑바로 봐라. 그래, 우리라구 네놈들한테 노상 짓눌려 살줄만 알았냐, 이 더러운 놈들…》
형리와 옥사쟁이는 윤산의 발밑에 기여와 제발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윤산은 발목에 매여달리는 그놈들을 걷어찼다.
그러자 놈들은 사내의 체면도 다 잃고 꿇어앉아 징징 울었다.
윤산은 옆에 서있는 봉기군들에게 령을 내렸다.
《저 원쑤놈들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당장 처단하라!》
그러자 오히려 녀인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나섰다.
봉기군들에게서 칼을 넘겨받은 녀인들은 형리와 옥사쟁이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내리쳤다.
동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있을 때 군수를 비롯한 고을안의 한다하는 량반관리들은 모두 고을에서 얼마 떨어진 룡담에서 《기우제》를 벌려놓았다.
우리 나라 민족고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수안고을의 룡담에 대하여 이렇게 전하고있다.
…고을에서 1리쯤가면 바위짬에서 물을 내뿜는 곳이 있는데 그 물이 용용하게 솟아서 흘러내려 못을 이룬다. 그 물은 겨울에는 얼지 않고 가물어도 마를줄 모르며 홍수가 나도 넘어날줄 모른다.
깎아지른듯 한 절벽우에 5~6명이 앉을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다.
그 너럭바위우에 앉아있노라면 물이 솟구치는 구멍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솟구치는 물보라가 날려 너럭바위에 앉은 사람들의 수염을 참대같이 꼿꼿하게 세워놓는다.
물이 솟는 구멍은 꼭 사람의 목구멍같이 생겼는데 얼핏 들여다보아도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옛날에 그 구멍에서 룡이 불을 뿜으면서 솟구쳐 올라갔다고 하여 룡담이라고 부른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은 1 530년에 봉건문인 리행이 책임을 지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쓴 지리지이다. 그런데 이 책은 1 481년에 봉건관료이고 문인들이였던 서거정과 로사신 등 여러 사람들이 모여앉아 우리 나라 지리에 대해서 쓴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 50권의 내용을 더 보충하여 55권으로 편찬한것이다.
그러니 수안 룡담에 대해서는 이미 쓴 《동국여지승람》에 자세히 서술되여있었다.
이처럼 신기한 이야기가 깃들어있는 곳이 되여서 그런지 고을군수를 비롯한 관료들은 물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여기를 신성한 고장으로 여겼다.
그래서 해마다 가물이 들던 비가 많이 오던 관계치 않고 여기서 《기우제》를 지내고있었다.
말이 《기우제》이지 실제는 량반관료들이 그것을 핑게삼아 백성들에게 토색질하여 한바탕 먹고 놀자는데 그 속심이 있었다.
그러다나니 자연히 판이 점점 커졌고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겨먹는데 이골이 난 량반관료들은 근래에 와서는 흉년이 자주 들자 룡이 성이 나서 그런다고 하면서 기우제뒤끝에 처녀를 한명씩 섬겨바치는 놀음까지 펼쳐놓았다.
이리하여 《기우제》를 앞두고는 고을의 관리들이 떨쳐나서 룡에게 치성을 드릴 처녀를 물색하느라고 피눈이 되여 돌아쳤다.
이런것으로 하여 《기우제》를 지낼 시기가 오면 고을안의 딸가진 부모들은 안절부절 못하였고 처녀를 물색하러 나다니는 놈들에게 이것저것 찔러주며 자기 딸을 빼돌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관리들의 배는 점점 불러졌고 녹아나는건 아무것도 없는 백성들이였다.
오늘 이곳에 벌려놓은 《기우제》에서는 뒤끝에 올해 열일곱에 나는 처녀를 룡에게 섬겨바치게 되여있었다.
윤산이 옥에서 구출한 쇠부리터 아녀자들을 수안에게 딸려서 무원골로 떠나보내고 룡담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제사가 고조에 이르고있었다.
손에 부적을 든 큰 무당이 절벽우의 너럭바위우에 올라서서 소복단장을 하고 앉아있는 처녀의 머리우로 손을 휘저으며 룡신의 말을 전한다고 하면서 중얼거렸다.
《오호네야, 너희들이 나를 생각하여 처녀를 보낸다니 과히 고마운 일이로다.》
그러자 애기무당들이 쇠장구를 치면서 말을 받았다.
《고마운 일이노라. -》
큰무당이 또다시 소리쳤다.
《그러나 내가 처녀만 안고 살수는 없다. 고기가 없으니 고기를 들여보내라!》
애기무당이 또다시 그 소리를 받았다.
《고기를 들여보내라. -》
그러자 《기우제》를 주관하는 례방이 사령들에게 소리쳤다.
《통돼지를 넣어라. -》
그 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사령들이 제상우에 놓은 통돼지를 번쩍 들어 푸른 물이 용솟음치며 솟아오르는 물구멍으로 던져넣었다.
《기우제》 구경을 하러 나온 백성들이 모두 혀를 찼다.
《에그- 그 룡은 배가 크기도 하지. 통돼지 한마리가 다 들어가는군.》
《그런데 저걸 진짜 먹긴 먹는다우?》
군중들속에 끼여든 윤산은 뒤따라온 봉기군들에게 제상옆에 있는 고을 량반들 뒤에 가라고 손짓했다.
그때 사람들속에서 웬 로인이 윤산을 알아보았다.
《아니, 이게 누군가, 자네 거 송부자네 집에서 머슴살던 윤산이가 아닌가.》
그제야 윤산은 로인을 자세히 보았다.
노루골에 살 때 송부자네 옆집에서 살던 《해주집》 공령감이였다.
《아니, 공아저씨가 아니요?》
공령감은 윤산의 손을 잡았다.
《옳거니, 윤산이가 틀림없어.》
공령감은 말없이 한숨을 푹 쉬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
윤산은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왜 그러시나요?》
공령감은 눈굽을 훔치며 목메여 말했다.
《어휴, 이 일을 어쩌면 좋나. 오늘 우리 막내딸이 어휴…》
《막내딸이라니요. 분이말이요?》
《그렇네. 그 분이가…》 하더니 공로인은 또다시 가슴을 쳤다.
《분이가 어쨌다는거요?》
옆에 섰던 녀인이 공로인을 대신해서 말했다.
《이 집 딸이 오늘 룡에게 바치는 제물로 천거되였사와요.》
윤산은 펄쩍 놀랐다.
《예-에? 그게 사실이요?》
공령감은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땅바닥을 허비면서 울었다.
《아이구, 내 신세야… 딸년을 키웠다가 제물로 바치다니 아이구, 가슴이야.》
공령감의 딸 분이를 윤산이도 잘 알고있었다.
송부자네 집에서 머슴을 살 때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나물캐러 온 분이를 자주 만나군 하였다.
윤산이보다 일곱살이나 아래인 분이는 윤산을 《오빠.》 라고 부르면서 즐겨 따랐다.
그때 윤산이가 따준 다래를 맛나게 먹으면서 생긋 웃던 천진란만한 분이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였다.
그런데 그 분이가 제물로 되다니. …
윤산의 가슴에서는 뜨거운 불뭉치가 불쑥 치밀어올랐다.
드디여 굿을 끝낸 큰무당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인제는 먹을것을 다 먹었으니 처녀를 들여보내라. -》
애기무당들이 쇠장구를 치면서 되받는다.
《처녀를 들여보내랍신다. -》
그러자 두명의 사령들이 달려나와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채 울고있는 분이의 량팔을 끼고 절벽끝으로 다가갔다.
모여선 사람들은 모두 비명비슷한 알지 못할 소리를 지르면서 저저마다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때였다.
《가만, 게 좀 섰거라. -》 하는 소리가 나더니 손에 칼을 든 윤산이가 달려나왔다.
분이를 끌고 절벽끝으로 나가던 사령들이 어정쩡해서 서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간 윤산은 칼을 쳐들었다.
《당장 쳐죽이기 전에 그 처녀를 내놓아라!》
사령들은 벌벌 떨면서 분이를 내놓았다.
그러자 분이는 그자리에 푹 쓰러졌다.
사령들에게 끌려나갈 때 정신을 잃었던것이다.
윤산은 무작정 분이를 두팔로 안아들었다.
순간 장내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분이를 안은 윤산은 뚜벅뚜벅 제상앞으로 다가갔다.
제상앞에 다가선 윤산은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은 상을 발로 걷어 찼다.
그러자 상우에 놓인 음식들이 절벽아래로 와르르 쏟아져버렸다.
모여선 사람들속에서는 탄성과 비명소리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때야 제사를 주관하던 례방이 앞에 나서서 고함을 질렀다.
《너 이놈, 이게 무슨짓이냐?》
윤산은 례방을 쏘아보면서 분이를 안은채로 례방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것두 사람이 할짓이냐?》
례방은 푸들푸들 떨면서 소리쳤다.
《너 이놈, 여기가 어딘줄 알구 야료냐. 여봐라, 게 누가 없느냐. 이 미친놈을 당장 쳐라!》
윤산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내가 미쳤다구? 미친놈은 생사람을 물속에 처넣는 네놈들이다!》
모여섰던 군수와 관리들속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저 미친놈을 당장 잡아들여라!》
《저놈을 묶어라!》
사령 몇명이 몽둥이를 들고 윤산에게 다가들었다.
윤산은 분이를 찾으며 허둥지둥 달려오는 공령감에게 분이를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날래게 장검을 뽑아들고 가까이 다가서는 사령 하나를 내리쳤다.
순간 칼에 맞은 사령은 목이 잘린채 절벽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윤산은 소리를 쳤다.
《저놈들을 모조리 족치라!》
그 소리가 나기 바쁘게 사람들속에 숨어있던 봉기군들이 칼을 빼들고 관리들에게 달려들었다.
너무도 급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군수이하 관리들과 사령들은 한쪽옆에 오구구 모여서서 벌벌 떨었다.
모여섰던 백성들이 한쪽 옆으로 쫙 갈라섰다.
절벽우에는 관리들만이 남아있었다.
윤산은 칼을 빼든채 그놈들 앞으로 다가섰다.
《고을원이 어느 놈이냐?》
《…》
《어느 놈이 고을원이냐?》
관리들속에 한놈이 앞으로 반걸음 나섰다.
《나요. 그런데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누구냐구? 우린 네놈들과 사생결단을 하려고 나선 봉기군이다.》
그 말에 군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봉기군? 그…그럼…》
윤산은 관리들에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우리는 네놈들과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껏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겨서 피를 빨아먹다 못해 생사람까지 잡아먹는 네놈들을 어떻게 가만 둔단 말이냐. 저놈들을 모조리 쳐라!》
윤산은 달려나가면서 앞에 선 군수의 배허벅을 사정없이 칼로 찌르고 걷어찼다.
그뒤를 따라 봉기군들이 달려들어 관리들을 모조리 족쳐서 절벽아래로 떨구어버렸다.
이날 맑은 물이 용솟음치는 룡담의 소안에는 수안군수이하 관리들의 시체로 차고 넘쳤다.
《기우제》 구경을 왔던 백성들은 모두 봉기군과 합세하여 관리놈들을 모조리 요정냈다.
결국 《기우제》 놀음을 벌려놓고 룡의 힘을 빌어 백성들을 희롱하며 즐겨보자던 량반관리들은 이날 모두 물귀신이 되고말았다.
후날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수안고을에 새로 부임되여오는 원이든 륙방관속이든 더는 룡담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나니 백성들의 피를 빨아내여 지내던 《기우제》 놀음도 자연히 없어지고말았다고 한다.
대신 백성들속에서는 이날이 오면 의례히 모여앉아 량반부자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때리기놀이를 하였는데 이것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면서 그 방식도 명칭도 약간 달리되였다고 한다.
그 놀음놀이명칭을 《량반쫓기》라고 하였다.
한사람이 직접 량반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면 여러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다니면서 골려주고 놀려주었다고 한다.
그날은 음력 칠월 초하루날이라고도 하고 초닷새날이라고도 한다고 민간에서 전해지고있다.
이렇게 윤산이 거느리는 패에서부터 시작된 김막동봉기군의 싸움은 몇해째 계속 되였다.
자비령바위골에 웅거한 김막동과 김의겸은 주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서흥, 평산, 봉산일대의 량반부자들을 족쳐버렸다.
또한 구월산쪽으로 빠져나간 박중금과 봉산이가 거느리는 패에서는 그 일대의 량반부자들을 족쳐버렸다.
이리하여 도감영이 있는 해주일대를 제외한 황해도안의 거의 모든 고을들이 봉기군들에 의하여 장악되다싶이하였다.
봉기군들은 백성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밤을 리용하여 량반부자들을 족쳤다.
그들의 기동 또한 어찌도 빠른지 추격하던 관군들은 번마다 헛물만 켜군 하였다.
그러다나니 몇해동안 황해도 일대는 봉기군과 관군들사이의 격전장으로 되여버렸다.
이 과정에 봉기군들속에서는 희생자도 나왔고 아직 철저한 각성이 부족한탓에 대렬안에서 도주자들도 생겼다.
한편 도감영에서는 물론 고을관가에 이르기까지 량반관료들도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는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그들대로 김막동봉기군을 괴멸시키기 위한 모략을 꾸미였다.
그 모략의 주되는 내용이 곳곳에 렴탐군을 박아넣고 봉기군의 내막을 알아내도록 하는것이였다.
공을 세우면 후한 상을 한가득 안겨주는것은 물론이다.
량반관료들의 이러한 매수놀음에 빠져들어 얼간망둥이짓을 하는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백성들이 봉기군들의 편에 서있었고 그들의 눈과 귀가 되여 적극 도와주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서흥가마소마을사람들이였다.
이렇게 봉기군과 백성들을 한편으로 하고 량반관료들과 관군을 다른 편으로 한 싸움은 성공과 실패로 면면히 이어지면서 어느덧 다섯번째 봄을 맞이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