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재령군수 리지가 장수산성에서 도망친 문지기를 끌고 해주감영에 도착한것은 해가 소꼬리만큼 솟아올랐을무렵이였다.
여느때 같으면 한개 고을군수가 출동할 때는 좌우에 군사를 늘여세우고 앞에서는 벽제소리를 울리며 요란하게 행렬을 지어갔지만 이날은 언제 그만한 행렬을 지을 겨를도 없었다.
다만 군수와 그를 따라선 군교 두명 그리고 문지기를 호송하는 라졸 세명까지 모두 말을 탄 일곱명뿐이였다.
선화당앞에 이른 그들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관찰사 김극검이 있는 방쪽으로 향하였다.
마침 거기에는 관찰사 김극검과 체찰사 리철견, 종사관 홍자하가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자기들한테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리지를 먼저 발견한 김극검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목을 빼들었다.
《그게 재령군수가 아닌가?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재령군수 리지는 김극검이 있는 방앞 마루밑에 다가서서 두손을 맞잡고 허리를 약간 굽히고 읍을 하였다.
《관찰사어른, 폭도들의 거처지를 찾아냈소이다.》
《뭐라구? 어디서?》
김극검은 마루우로 벌떡 달려나왔다.
그 소리에 리철견도 홍자하도 눈이 휘둥그래져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리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면서 말했다.
《그 폭도들이 지금 재령 장수산성에 틀고앉아있다 하오이다.》
관찰사 김극검은 더욱 놀라서 되물었다.
《장수산성이라면 나라창고가 있는데가 아니냐?》
《그렇소이다.》
《그게 적실하냐?》
《예, 사실이오이다. 거기서 도망쳐나온 놈을 끌고 왔소이다.》
체찰사 리철견이 다급히 물었다.
《그놈이 어디 있소? 빨리 데려오라.》
《알겠소이다.》
리지는 황황히 중문앞에 다가가 소리쳤다.
《얘들아, 그 문지기놈을 들여보내라.》
그 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군교 두명이 키가 꺽두룩한 문지기를 데리고 중문안에 들어섰다.
그들이 마루앞에 다가서자 리철견이 다급히 물었다.
《너 이놈, 폭도들이 장수산성안에 있다는게 사실이냐?》
문지기가 허리를 굽석이며 말했다.
《예, 사실이오이다. 그놈들이 거기서 지금 나라 창고의 쌀을 털어먹으면서 교련을 하고있소이다.》
《뭐라구? 교련까지 한다구?》 하고 리철견이 펄쩍 놀랐다.
그 말을 들은 김극검과 홍자하도 불에 덴 소새끼처럼 펄쩍 놀라 입을 하 벌리고 눈알만 뒤룩거렸다.
리철견이 다시 물었다.
《그 폭도들의 우두머리가 누군줄 모르냐?》
《그놈들이 지껄이는 말을 들으니 무슨 막동이라고 하는것 같소이다.》
《뭘?! 그럼 김막동이가?!》
《예, 옳소이다. 김막동이라 했소이다.》
폭도들의 두목이 김막동이라는 소리에 리철견은 속이 끓어오르다 못해 막 뒤번져졌다.
그는 독기어린 눈으로 관찰사 김극검을 쏘아보았다.
《관찰사령감, 들었소? 막똥인지 쇠똥인지 한 그놈이 두목이란 말이요. 언제부터 잡아들이라는데두 못잡아들이더니 이게 무슨 꼴이요. 이게!》
관찰사 김극검의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체찰사 리철견은 성난 사자같이 마루우를 오락가락하다가 선 자리에서 무릎을 떨고있는 김극검에게 꽥 소리쳤다.
《아니, 그러고 섰으면 어쩔테요. 빨리 온 도안의 군사들을 총 출동시켜 그놈들을 없애치워야지.》
그제야 관찰사 김극검은 방문옆에 매놓은 설렁줄을 힘있게 잡아흔들었다.
중문밖쪽에서 요란한 방울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사령 하나가 달려들어왔다.
김극검은 그에게 소리쳤다.
《빨리 륙방관속들을 모두 불러라!》
《알겠소이다.》
사령이 문밖으로 달려나가면서 소리쳤다.
《륙방관속들은 모두 모이랍신다.》
온 선화당이 떠나가게 사령들의 급창소리가 울리더니 여기저기서 사령들과 하인들이 소란스레 뛰여다니였다.
한동안 들볶아서야 륙방관속들이 관찰사앞에 주런이 늘어섰다.
관찰사 김극검이 그들을 향해 뜨직뜨직 말했다.
《전탄수공사장에서 도망친 폭도들이 지금 재령 장수산성에 숨어있다는 통보가 들어왔다. 그래서 에, 본관은 이놈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에…》
체찰사 리철견은 뜨직거리는 김극검을 밀어놓고 앞에 나서서 소리쳤다.
《이제부터 그놈들을 진압하기 위한데 도안의 군사들을 총 출동해야 하겠다. 병방 왔느냐?》
관복을 입은 병방이 앞에 나섰다.
《왔소이다.》
《너는 이제 곧 감영안의 군사들을 출동시켜 장수산성에 먼저 가서 폭도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경계진을 펴라.》
《알겠소이다.》
《형방 왔느냐?》
최형방이 앞에 나섰다.
《왔소이다.》
《넌 이제 곧 형리들과 라장들을 도안의 고을들에 파견하여 고을군사들을 모두 출동시켜 래일 오전까지 재령관가에 도착시키게 하라.》
《알겠소이다. 그런데 저…》
《무슨 일이냐?》
《수안이나 신계, 곡산 그리구 안악쪽의 군사들이 오자면 시간이…》
《이놈아, 무슨 잔말이냐? 래일까지 도착 못하면 네놈의 모가지를 자를테다.》
체찰사 리철견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임금으로부터 전탄수공사를 빨리 끝내며 김막동을 잡아들이라는 령을 받았는데 어느 하나도 수행하지 못했으니 이제 당장 목이 달아나게 된 판이라 언제 체면이구 사정이구 가릴새가 없었던것이다.
체찰사 리철견의 약이 더 오르게 된것은 그날 저녁이였다.
그는 이제는 도감영의 군사들이 장수산성에 가닿았으리라 생각하며 종사관 홍자하에게 물었다.
《아직 군사들이 장수산성에 도착했다는 기별이 안왔느냐?》
홍자하는 슬쩍 리철견을 보고나서 입안의 소리로 웅얼거렸다.
《장수산이 다 뭐이오이까. 아직 떠나지도 못했는데.》
《뭐라구? 아직 떠나지두 않았다구?》
리철견의 두볼은 경련이 일어 푸들푸들 떨렸다.
리철견은 《이놈들이?》 하면서 군사들이 모여선 선화당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병방이 뒤짐을 지고나서 군교들에게 무슨 지시를 주고있는것을 본 리철견은 다짜고짜로 그속을 뚫고들어가 소리쳤다.
《이놈들아, 왜 아직 여기서 꾸물거리는거냐?》
체찰사의 불의의 돌입에 모두 멍청히 서있었다.
앞에서 우물거리는 병방을 본 리철견은 와락 그에게 달려들어 귀뺨을 때렸다.
《이놈아, 너두 병방이냐? 머저리같은 놈…》
갑자기 따귀를 얻어맞은 병방은 한손으로 볼을 싸쥐고 리철견을 쏘아보았다.
《체찰사어른, 이거야 너무하지 않소이까.》
《이놈아, 뭐가 너무해! 어서 빨리 가지 못할테냐. 당장 군사들을 출동시켜라!》
병방은 마뜩지 않은 눈길로 리철견을 흘겨보다가 체찰사가 지닌 관직때문인지 아니면 더럽다는듯 한 태도인지 돌아서서 출동명령을 내렸다.
출동명령을 받은 군사들은 꾸역꾸역 장수산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군사들이 마당에서 다 빠져나갈 때까지 리철견은 그자리에 서서 솟구치는 분김을 누르지 못하고 한동안 씩씩거렸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체찰사 리철견은 장수산성에 관군이 도착하여 포위진을 쳤다는 관찰사 김극검의 통보를 받고 종사관 홍자하와 함께 재령관청으로 떠났다.
가만히 앉아서 김막동을 붙들어오는것을 보아도 되겠지만 어쩐지 직접 현장에 나가서 폭도들을 짓뭉개놓는것을 보고싶었던것이다.
이제 그놈을 붙들기만 하면 목을 매달아놓구 나라의 법이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줄테다. 네놈이 제아무리 날구 뛴다 해두 이번엔 독안에 든 쥐신세를 면치 못할게다.
리철견은 이렇게 속으로 윽윽 벼르면서 타고가는 말의 배허벅을 걷어찼다.
전날밤에 내린 소낙비로 길은 온통 진탕투성이였다.
말이 달릴 때마다 튀여오르는 진탕으로 온몸을 매닥질하다싶이 하며 그들이 재령관청에 이르렀을 때는 정오를 앞둔 때였다.
재령관청 앞마당에는 각 고을에서 모여온 군사들로 오골오골했다.
그들의 속을 뚫고 관청안에 들어서니 재령군수 리지가 제법 무사차림을 하고 여러 관리들에게 장수산성략도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고있었다.
체찰사가 온것을 알아본 리지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체찰사어른, 원로에 수고로이 오셨소이다.》
리철견은 인사를 받을 생각도 안하고 직방 물었다.
《그래, 각 고을 군사들이 도착했는가?》
《예, 서흥, 봉산, 황주, 평산고을에서는 이미 도착했구. 수안, 신계, 곡산, 안악쪽에서는 군사들이 이미 출발했다는 소식이 역마를 통해 알려왔소이다.》
《군사가 모두 얼마나 되는고?》
《한 오백명가량 되오이다. 게다가 장수산성을 포위한 감영의 군사들까지 합치면 칠백명가량은 될것으로 아뢰오.》
그제야 리철견의 얼굴에서는 약간 화색이 돌았다.
그는 종사관 홍자하를 돌아다보았다.
《종사관, 이제부터 네가 직접 각 고을군사들을 통솔하라. 빨리 공격서렬을 갖추고 폭도들을 진압하도록 하라.》
《알겠소이다.》
종사관 홍자하가 각 고을 병방들을 거느리고 군사들이 모여있는 대문밖으로 나가는것을 보고서야 리철견은 말에서 내렸다.
온통 진흙투성인 리철견의 옷주제를 본 재령군수 리지는 사령들에게 새옷을 준비하라, 씻을 물을 떠오너라 하면서 부산을 피웠다.
그제야 리철견은 뻘겋게 진탕매질을 한 제 옷주제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언제 그것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눈섭에 달린 불부터 꺼야 한다는 생각에 옷차림을 돌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리철견은 자기 앞에 떠다놓은 물에 손과 얼굴을 대충 씻고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재령군수 리지는 그의 앞에 다가와 조심히 여쭈었다.
《체찰사어른, 정오가 다 되였는데 점심을 드시고 출동하시오이다.》
그 말에 리철견은 아침을 대충 설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밥을 씹는것이 꼭 모래알을 씹는것 같아 아침밥을 몇술 뜨다가 말았던것이다.
배에서는 밥을 넣으라고 꼬르륵 소리가 났건만 입에서는 왕청같은 소리가 나갔다.
《언제 그럴새가 없다. 빨리 군사들을 산성으로 출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사람 남겨서 뒤따라오는 고을군사들을 속히 산성으로 오게 하라.》
《알겠소이다.》
다시 말에 오른 리철견은 대문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벌써 홍자하의 지휘하에 군사들이 장수산성쪽으로 한창 출동하고있었다.
리철견을 알아본 홍자하가 달려왔다.
《체찰사어른, 군사들을 출동시켰소이다.》
산성쪽으로 흘러가는 군사들의 대오를 바라보며 리철견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얼핏 보아도 4백~5백명은 실히 됨직하였다.
이만한 인원이면 폭도들을 진압할수 있을것 같았다.
리철견은 타고있는 말의 배허벅을 가볍게 찼다.
말은 뚜걱뚜걱 평보로 걷기 시작하였다.
그가 장수산성정문이 보이는 골안에 들어섰을 때였다.
저쪽 앞에서 말을 탄 최형방이 달려왔다.
리철견은 마주오는 그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놈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있느냐?》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런 기척도 없소이다.》
《빠져나간 놈들은 없어?》
《예, 엊저녁부터 지금까지 도망친 놈은 없소이다.》
리철견은 곁에 선 홍자하에게 말했다.
《빨리 성으로 돌입하라고 령을 내려라.》
《알겠소이다.》
홍자하는 한옆에 진을 치고 서있는 취타수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둥둥 울렸다.
둔중한 북소리는 온 골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진을 치고있던 군사들이 일시에 창과 칼을 빼들고 성을 타고 넘을 사다리를 쳐들고 성문쪽을 향하여 돌입하였다.
성밑에 이른 군사들은 성벽에 사다리를 세워놓고 성우로 게바라오르기 시작하였다.
굳게 닫긴 성문앞에 이른 군사들은 여럿이 함께 모여 문을 밀었다.
그런데 든든히 걸었으리라고 생각한 성문이 쉬이 열렸다.
그바람에 등을 대고 힘주어 밀던 군사들이 대번에 나가 넘어졌다.
성문이 활짝 열린것을 본 취타수들은 더 빨리 공격하라고 북을 쾅쾅 두드렸다.
수백명의 군사들은 일시에 와 함성을 지르면서 성문으로 물밀듯이 달려들어갔다.
리철견도 홍자하와 재령군수 리지와 함께 말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봉기군이 전날밤에 모두 빠져나간 성안에는 사람그림자는커녕 개미 한마리도 없었다.
군사들을 풀어 성안의 구석구석을 다 뒤졌으나 이미 성에서 수자리를 살고있던 군사들마저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리철견은 김막동이네가 살고있던 병영에 가서 방안을 들여다보았으나 텅 빈 방안에서는 먼지 한점 남은것이 없이 반반하였다.
그는 뒤따라나온 병방을 돌아보았다.
《병방은 어제밤부터 지켰다는게 이놈들이 달아나는것도 몰랐어?》
몸이 우람하고 과묵한 병방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성을 포위했을 때부터는 새여나간 놈이 한놈도 없소이다.》
《언제 여기를 포위했어?》
《자정이 좀 지나서오이다.》
《그럼 그전에 빠져나갔단 말인가?》
《글쎄올시다.》
리철견은 병방의 시무룩한 태도에 골이 났다.
그는 올곧지 않은 눈길로 병방을 한참동안 쏘아보았다.
병방은 눈을 내리뜬채 리철견을 마주보지조차 않았다.
그는 그래도 한개 도의 관료인데 나에게 귀뺨을 때려? 그것도 숱한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네 마음대로 할테면 해라, 난 나대로 한다 하는 태도였다.
리철견은 눈길을 들어 최형방을 바라보았다.
《최형방, 여기서 달아났다는 그 문지기놈이 지금 어디 있어?》
《예, 지금 밖에…》
《그놈을 당장 끌어오라. 그놈이 우릴 속인게 분명하다.》
《알겠소이다.》
최형방은 대문밖을 나가자 인차 꺽다리 문지기를 끌고 들어왔다.
문지기는 키가 어찌도 큰지 말을 탄 리철견과 마주볼 정도였다.
《그놈을 꿇어앉혀라!》
문지기를 끌고 온 형리들이 땅바닥에 꿇어앉혔다.
리철견은 문지기를 손가락질하며 따졌다.
《너 이놈, 우릴 속였지?》
문지기는 머리를 조아리며 구구히 변명하였다.
《아니오이다. 아니오이다. 그제 저녁에 내가 여기를 빠져나갈 때만 해두 그놈들이 분명 여기에 있었소이다. 이건 사실이오이다.》
《그런데 이놈들이 다 어디에 갔는가 말이다.》
《글쎄올시다. 그때는 분명히 있었소이다. 이건 죄다 사실이오이다.》
《듣기 싫다! 이건 네놈이 그놈들과 작당해가지구 우릴 야료하자는게 분명하다.》
《아, 아니오이다. 아니오이다. 》
《긴말할것 없다. 형방! 저놈을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당장 목을 쳐라.》
그러자 문지기는 눈알이 뒤집혀 애걸복걸하였다.
《아니오이다. 아니오이다. 이건 억울하오이다.》
형리들이 달라붙어 발버둥질하는 문지기를 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성안의 넓은 공지에서는 각 고을에서 모여온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문지기의 목을 자르는 형이 집행되였다.
최형방은 군사들앞에서 이놈이 폭도들과 작당을 하고 그놈들을 먼저 빼돌리고 우리가 헛물을 켜게 했다고 공포하였다.
하여 문지기는 숱한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모가지가 없는 귀신이 되고말았다. 그야말로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우는 격이였다.
리철견은 뒤에서 울려오는 최형방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재령관가로 돌아갔다.
닭쫓던 개신세가 된 그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