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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월에 접어들었다.
산과 들에는 온갖 잎새들이 돋아나 오통 푸른빛천지였다.
앞산에서는 어서 밭갈이를 하라고 재촉하는듯 뻐꾸기울음소리가 유정하게 들려왔다. 이맘때면 모두가 밭갈이를 하고 씨앗을 뿌리느라 눈코뜰새가 없이 돌아가도 손이 모자라 헉헉 하였다.
그러나 이해에 들어와 황해도의 백성들은 밭갈이를 할 꿈조차 꾸지 못하고있었다.
모두가 전탄수물길을 째는 공사장에 끌려나와 고역을 치르고있었던것이다.
립하를 방금 넘기자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속에서는 올해농사를 망치게 되였다고 원성이 높았다.
공사를 맡은 고을 호방들과 아전들속에서도 공사를 해도 파종이나 하고 다시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들이 분분했다.
이런 소리가 벌써 귀구멍이 뚫어질 정도로 공사를 책임진 호방 홍대남의 귀에 쓸어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응대도 없이 어서 공사를 빨리 끝내라는 독촉뿐이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속에서 더 큰 원성을 자아냈다.
백성들은 모여앉으면 《말똥패놈들은 정말 말똥만 먹고사는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다.》고 귀먹은 욕을 퍼부었다.
호방 홍대남과 방아전에 대한 원성은 수안쇠부리터 철간들속에서 더 높았다.
공사를 시작할 때 벌써 김의겸을 비롯한 철간들이 집으로 돌려보내줄것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도감영에서 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오늘까지 질질 끌고있기때문이다.
그 사이 도관찰사 김극검과 체찰사 리철견이 공사장을 몇번씩이나 돌아보았다.
홍대남이 정말로 철간들을 생각해준다면 그때 열번이나 더 여쭈었을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돌아가라는 령이 떨어지지 않는걸 봐서는 호방 홍대남이 철간들의 사정을 여쭈지조차 않고 중간에서 잘라먹은것이 분명하였다.
이것을 알고있는 각 고을에서 끌려온 철간들은 너나없이 윽윽거렸다.
그러던 5월 초이레날이였다.
공사장에 림시로 지은 관청에서 철간들에게 쌀을 내준다는 소식이 수안쇠부리터 철간들에게 날아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관청앞에서는 쌀을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였다.
해가 하늘중천에 떠오를무렵에야 대문이 찌그덩 열렸다.
땅딸보 방아전이 나와서 볼록한 배를 내밀고 소리쳤다.
《에- 이제부터 감영에서 부역에 동원된 철간들을 어여삐 여기여 특별히 보내준 쌀을 내줄터이니 차례차례 들어와 타가도록 하라.》
철간들은 한줄로 주런이 서서 마당에 들어가 관가에서 보내는 쌀을 탔다.
김의겸도 그들속에 끼워서서 들어가고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몇사람 앞서서 먼저 쌀을 탄 익선이 의겸에게 다가와 자기가 탄 쌀을 내보이면서 풀떡거렸다.
《좌상어른, 이것도 먹으라고 주는거요.》
《?…》
의겸은 익선의 쌀자루에 손을 넣어 한줌을 쥐고 펴보았다.
쌀알은 몇알 없고 온통 모래알같은 돌멩이와 뉘뿐이였다.
김의겸은 익선이더러 옆에서 기다리라고 눈짓하고 자기 차례로 들어가 쌀을 타가지고 나왔다.
쌀주머니를 펴보니 그것 역시 익선의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철간들이 탄 쌀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의겸은 쌀주머니를 들고 관청마루우에 호피를 깔고앉아 관리들과 말을 주고받고있는 홍대남의 앞으로 다가섰다.
《호방어른, 한가지 여쭐 말이 있소이다.》
홍대남은 마루아래에 서있는 김의겸을 보고 속으로 흠칫했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스럽게 느껴지던 그의 눈길이였다.
《그래 무슨 일이냐?》
김의겸은 마루앞에 다가가 자기가 탄 쌀을 홍대남의 앞에 쫘르르- 쏟아놓았다.
《이것도 사람이 먹으라고 주는것이오이까?》
홍대남은 마루우에 쏟아놓은 쌀을 들여다보았다.
절반이상 돌과 뉘가 섞여있는 쌀이였다.
방아전이 쌀을 떼먹으려고 롱간질을 한게 분명했다.
하지만 홍대남은 시치미를 떼고 한창 쌀을 퍼주고있는 방아전을 불렀다.
《방아전- 이리 오너라.》
방아전이 굴러가다싶이 하며 마루앞에 다가섰다.
《호방님, 부르셨나이까.》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고. 이 쌀에 무슨 돌이 이렇게 많이 섞였나말이다.》
방아전은 두손을 싹싹 비볐다.
《예. 그건 관청에서 타올 때부터 그런것이오이다. 난 그저 내여줄뿐이오이다.》
곁에 섰던 김의겸이 들이댔다.
《아전어른, 그래 어른이면 이 쌀을 먹겠소이까?》
그 말에 방아전이 발끈하였다.
《이놈아, 어디라고 말질이냐, 이놈.》
김의겸의 뒤에 서있던 익선이가 다짜고짜로 방아전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이놈아, 우리가 놈이면 넌 뭐냐, 삽살개냐.》
《이놈아, 이걸 놓아라.》
홍대남이 꽥 소리쳤다.
《이게 무슨 무례한짓이냐. 당장 그만두지 못할가.》
김의겸이 익선에게 말했다.
《익선아, 그만 해라.》
익선은 씩씩거리면서 방아전을 쏘아보다가 잡고있던 멱살을 풀어주었다.
김의겸은 홍대남을 향해 오금을 박았다.
《호방어른, 우린 이 쌀을 받지 않겠소이다. 래일 아침까지 다른 쌀을 내주지 않으면 우린 이미 약조한대로 모두 집으로 돌아갈터이니 그리 아시오이다.》
김의겸은 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돌아서서 대문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철간들모두가 자기들이 탄 쌀들을 모조리 관청마당에 쏟아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한갖 철간들한테 야료를 당한 홍대남은 성이 독같이 났다.
그는 방아전을 죽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너 이놈 롱간질을 해두 푼수가 있지. 이놈아! 네가 쌀에 돌을 섞었지?》
방아전은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아니올시다. 그건 관청에서 타온 그대로이나이다. 난 전혀 손을 대지 않았소이다.》
《이놈아, 내 앞에서두 그런 말을 하느냐. 그래 얼마나 삼켰느냐?》
방아전은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고나서 죽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사실은 호방어른네 집에 몇섬 넣다나니…》
홍대남은 눈이 커졌다.
《이놈아, 누가 너더러 그따위짓을 하라고 하더냐. 그걸 당장 여기로 가져와라.》
방아전은 머리를 싹싹 긁었다.
《야, 창고에 넣은걸 어떻게 꺼내오겠소이까. 그리구 그걸 꺼내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홍대남은 속으로 코방귀를 뀌였다.
(흥, 네놈이 내 집에 몇섬을 넣었다면 그 턱으로 네놈은 더 처먹었겠구나. )
방아전이 홍대남을 부추겼다.
《아니 호방어른, 저놈들을 가만히 둬두려고 그러시우. 한갖 철간들이 관청에서 주는걸 고스란히 받을 대신 엇드레질을 하고 돌아가는데… 그래 저놈들의 말을 들어준단 말이오이까?》
그 말을 들은 홍대남도 철간들이 자기를 얕잡아보고 달려드는것 같아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방아전이 옆에서 또 부채질을 하였다.
《어서 도감영에 알리구 재령관가에 알려서 군졸들을 풀어가지구 저놈들을 족치도록 하시우다. 그렇지 않다간 저놈들이 어른의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아 똥을 싸자고 할것이우다.》
홍대남은 발을 굴렀다.
《이놈아, 자꾸 붙는 불에 키질을 하겠냐? 나두 다 생각이 있다.》
홍대남은 그길로 방에 들어와 도관찰사 김극검과 재령군수에게 보내는 글을 써서 두명의 아전들의 손에 들리워 떠나보냈다.
홍대남이 보낸 편지는 점심도 채 되기 전에 재령관가에 와닿았다.
재령군수 리지는 홍대남의 편지를 받아보고 즉시로 병방과 별장들을 동헌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영문도 모르고 헐레벌떡 달려온 병방과 별장들에게 령을 내렸다.
《듣거라. 전탄수부역에 동원된 철간들이 오늘 아침에 쌀을 내주지 않는다고 관청에 몰려와 야료질을 하였다. 이놈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미 도관찰사령감이 전탄수공사장의 치안을 우리가 맡아하라는 령도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수수방관할수 없는 일이다. 병방은 이제 곧 고을군사들을 이끌고 전탄수공사장에 나가서 도감영에서 나온 호방어른의 지시를 받도록 해라.》
병방이 대답했다.
《알겠소이다. 그런데 저 …》
《무슨 일이냐?》
《우리가 왜 호방의 지시를 받아야 하오이까. 엄연히 계렬이 다른데.》
《그 호방이 전탄수부역공사를 총 관할하기때문이야. 수안쇠부리터 철간놈들이 못되게 군다는 기별이 왔으니 빨리 가봐라.》
그 말을 듣고 서있는 막봉은 속이 덜컥 했다.
그도 막동의 말을 통해서 그와 수안쇠부리터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알고있었다.
동헌에서 나온 막봉은 점심을 먹고 인차 군사들을 모아들이라는 병방의 령을 받았다.
자기가 맡은 군사들에게 출동령을 내린 막봉은 급히 동헌옆에 있는 객주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거기에는 장수산성배치도를 받아가려고 온 수안이가 있었던것이다.
막봉은 수안에게 품속에 놓고온 장수산배치도를 넘겨주면서 방금전에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는 빨리 막동형님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수안은 선자리에서 막동이네가 있는 자비령바위골로 달려갔다.
한편 호방 홍대남의 앞에서 쌀을 집어던지고 나온 김의겸은 자기들이 사는 반토굴안에 철간들을 불러모았다.
짐승도 먹으라면 집어던질 쌀같지 않은 쌀을 내준다고 윽윽거리던 익선이와 철간들모두가 김의겸의 앞에 모여왔다.
김의겸은 의미심장한 눈길로 그들을 들러보았다.
《여보게들, 내가 자네들을 이렇게 모이라고 한건 다름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자고 해서이네. 오늘 우리가 량반들한테 엇드레질을 하였으니 저놈들이 가만있지는 않을거네. 그러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익선이 두덜거렸다.
《어떨거나 있어요? 당장 들고일어나서 그놈들을 짓뭉개버려야지요.》
익선의 말에 철간들이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조놈들이 우릴 건드리기만 하면 냅다 칩시다요.》
《밤낮 이렇게야 어떻게 살겠소. 칩시다!》
《옳수다!》
《옳아요. 칩시다!》
량반들의 처사에 분노한 철간들은 저저마다 고아댔다.
김의겸은 의분에 차서 윽윽대는 철간들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의 심정은 알만해. 그렇다구 해서 무턱대구 들구일어나기만 해선 안되네. 보다 깊이 생각을 하구 일어나두 일어나야 하네. 우리가 일단 이 길에 나서면 목숨을 걸구 해야 하는 일이네.》
앞에 앉아있던 철간 하나가 입을 열었다.
《좌상어른의 말하는 뜻을 알만하우다. 그렇다구 우리가 늘 이렇게 짓눌려 살수야 없지 않소. 까짓거 죽으면 한번 죽지 두번 죽겠소. 차라리 원풀이라도 콱하고 죽어두 죽어야지요.》
익선은 주먹을 휘둘렀다.
《옳수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차례지는건 천대와 멸시뿐이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저놈들이 우릴 아예 죽이자고 달라붙을것이요. 난 이미 좌상어른이 억울하게 매를 맞았을 때부터 결심했소. 저놈들과는 맞받아싸우는 길만이 우리가 살길이요.》
다른 철간들도 윽윽했다.
《이래두 죽구 저래두 죽을바엔 싸우다 죽어야지요.》
《뭐 깊이 생각할것두 없수다. 좌상어른이 결심을 내리시우. 우린 그걸 따르겠소.》
김의겸은 철간들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얼마나 의롭고 미더운 사람들인가. 지금 저들의 가슴속에는 억울한 사연을 품지 않은 사람들이 한명도 없다.
저들의 말이 옳다. 이제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량반부자들이 달라붙어 우리의 등껍질을 모조리 벗기고 말려죽이자고 할것이다.
우리가 살길은 맞받아싸우는것이다. 일단 들고일어난 다음 막동이네와 힘을 합치자, 그러면 무서울것도 두려울것도 없다.
결심을 굳힌 김의겸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두 자네들과 다를바 없네. 우리가 내내 이렇게 억눌리고 또 갖은 수모를 받으면서 살수는 더는 없네. 우리가 이제 살길은 저 량반부자들을 모조리 쳐부시는 길일세. 그렇다구 해서 난 자네들에게 싸우라고 강요는 하지 않겠네. 이제부터 나와 함께 싸울 사람은 손을 쳐들어주게.》
모여온 철간들은 너나없이 손을 버쩍 들었다.
지어 나어린 초동이까지도 손을 들었다.
김의겸은 초동이와 몇몇 병자들에게 권고했다.
《초동이와 앓고있는 자네들은 그만두라구. 그렇다구 우리가 자네들을 무시하는것은 아닐세.》
초동이는 초롱같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좌상어른, 나도 어른을 따르겠어요. 나두 사내대장부인데 왜 못 싸운다고 그러시나요.》
그 말에 김의겸은 말문이 막혔다.
앓고있는 병자들도 의겸에게 항의했다.
《좌상어른, 우린 비록 병든 몸인것만은 사실이요. 그래 우리가 병이 왜 생겼소. 저놈들때문에 생긴것이 아니요. 차라리 저놈들 한놈이라도 때려죽이든지 해야 우리 병도 나을것 같소. 그러니 우리를 빼놓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오.》
김의겸은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았다.
《알겠네. 우리모두 손잡구 함께 싸워보자구.》
토굴안은 열기띤 철간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불깃불깃 열이 오른 그들의 얼굴과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타올랐다.
해가 서산에 기울어질무렵이였다.
김의겸은 익선이와 몇몇 철간들과 함께 토굴안에 앉아 래일 아침에 단행할 행동계획을 짜고있었다.
그때 밖에 나갔던 초동이가 방안으로 달려들어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좌상어른, 저기 관청으로 군사들이 몰려와요.》
《뭐라구?》
김의겸과 방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문을 열고 초동이 가리키는 길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기치창검을 들고 군사들이 행렬을 지어 홍대남이 틀고앉아있는 관청으로 쓸어들어갔다.
얼핏 보기에도 칠팔십명은 실히 될것 같았다.
그가운데는 말을 탄 군사들이 절반을 넘었다.
홍대남의 련락을 받고오는것이 분명하였다.
김의겸의 얼굴에서는 비장한 빛이 떠올랐다.
《저놈들이 우리를 짓뭉개려고 오는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하자. 모두들 우리가 몰래 벼려두었던 병쟁기들을 품에 간수하게 하라구. 그리구 밤에라두 우리한테 달려들수 있으니 오늘밤엔 토굴마다 기찰을 든든히 세우라구. 난 다른 고을철간들을 만나 그들도 우리와 합세하도록 하겠네.》
《알겠수다.》
철간들은 각기 자기가 들어있는 토굴로 흩어져갔다.
밤은 깊어갔다.
허지만 당장 싸움을 눈앞에 둔 철간들은 모두 품속에 칼을 품은채 잠들지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 관청안에 쓸어들어간 군사들도 아무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탄수공사장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정적에 잠겨있었다.
이따금 야산에서 울려오는 소쩍새울음소리만이 간간이 정적을 깰뿐이다.
어느덧 자정이 넘고 삼태성도 기울어 까딱까딱 졸고있는 무렵이였다.
철간들이 살고있는 토굴집과 잇닿은 야산우에서 부스럭소리가 나더니 시꺼먼 그림자 둘이 토굴집쪽으로 다가왔다.
집밖에서 칼을 빼든채 기찰을 서고있던 익선이 그쪽에 대고 소리쳤다.
《누구얏!》
그러자 그림자들은 흠칫 멈춰섰다.
익선이가 재차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야!》
익선의 야무진 소리에 자고있던 철간들모두가 깨여나 밖을 주시했다.
그림자 하나가 앞으로 나오면서 물었다.
《거, 혹시 익선삼촌이 아니시우?》
익선은 깜짝 놀랐다.
《엉? 그런데 도대체 누구야?》
그림자가 다급히 달려왔다.
《익선삼촌이 옳지요? 나 막동이요.》
그 말에 익선은 반기듯 소리쳤다.
《뭐라구? 막동이라구? 나야, 익선이야.》
막동은 달려와 익선의 두손을 움켜잡았다.
《익선삼촌, 이게 얼마만이요.》
《이사람 막동이, 자네가 옳긴 옳은가.》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익선은 갑자기 쉿 하고 둘째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막동의 손을 잡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막동의 뒤를 따르던 그림자도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그는 윤산이였다.
방안에서 그들은 김의겸과 뜻깊은 상봉을 하였다.
김의겸은 막동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막동이 마침 잘 왔네. 내 오늘 자네 생각을 여러번 했는데 어떻게 불쑥 나타났나?》
《삼촌, 여기 일을 우리가 다 알구 왔어요. 모두 무사하군요.》
《아직은 일없네. 저녁에 관청으로 숱한 군사들이 쓸어들어오길래 밤중으로 무슨 일이 터질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잠잠해.》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삼촌, 모두들 마음놓구 쉬시우다. 저놈들이 오늘 밤엔 계획이 없어요.》
김의겸은 의아해서 물었다.
《그래?! 그런데 자네가 그걸 어떻게…》
《다 알아내는 수가 있지요.》하면서 막동은 윤산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삼촌, 인사나 받으시우다. 내 동생 윤산이요.》
윤산은 앞으로 나서서 김의겸에게 넙적 절을 하였다. 김의겸은 황황히 윤산의 손을 잡았다.
《절은 무슨… 이 사람이 자네와 봉옥이를 구원해주었다는 그 사람인가?》
《예, 그래요.》
김의겸은 윤산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사람 고마우이. 정말 고마와.》
윤산은 어줍게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거북하오이다. 이러지 마시우다.》
막동은 정색해서 김의겸에게 말했다.
《삼촌, 우리 사람들을 내가 데리고왔는데 래일 아침 힘을 합쳐 한번 싸워봅시다.》
김의겸은 너무 기뻐 소리치듯 말했다.
《그래?! 그거 정말 반갑구나. 지금 모두 어디에 있니?》
《이 산 꼭대기에 있어요.》
《그럼 어서 데리고와야지. 익선이 자네가 갔다오게.》
익선은 싱글벙글 웃었다.
《알겠수다.》
윤산이 익선에게 말했다.
《나와 함께 가시우다 》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춤추듯 밖으로 달려나갔다.
김막동이네 일행을 맞이한 토굴안은 명절같았다.
막동은 김의겸과 철간들에게 봉산, 수안, 박중금, 박상배 등 자기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하였다.
서른명이나 되는 막동의 일행을 맞이한 철간들은 모두 사기가 올라 그들을 붙들고 돌아갔다.
어느덧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김막동이네가 지고온 흰쌀로 아침밥을 푸짐히 해서 먹고난 철간들은 모두 이제 있을 일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김의겸과 막동은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의논했다.
해가 소꼬리만큼 솟아올라 중낮쯤 되였을무렵이였다.
관청쪽 대문이 열리더니 말을 탄 군졸 두명이 철간들이 있는 토굴쪽으로 달려왔다.
토굴앞에 이른 군졸 하나가 말우에 앉은채로 소리쳤다.
《여기 좌상이 누구냐?》
김의겸이 그들앞에 나섰다.
《예, 나올시다.》
말을 탄 군졸은 김의겸의 아래우를 훑어보고나서 말했다.
《어서 가자. 호방어른이 찾으신다.》
김의겸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익선이 막아나섰다.
《왜 좌상어른만 찾는거요. 우리모두 함께 가겠소.》
그러자 철간들모두가 김의겸을 에워싸고 나섰다.
말우에 앉은 군졸이 눈이 뒤집혀서 소리쳤다.
《이것봐라. 폭동인가, 물러서라!》
김의겸이 군졸에게 엄하게 소리쳤다.
《여보시오. 난 가두 우리 사람들과 함께 가겠소. 자, 우리모두 가자구.》
김의겸의 말에 손에 쌀자루를 든 철간들이 모두 따라나섰다.
그들속에는 돌주머니와 품속에 칼을 품은 김막동일행이 함께 끼여있었다.
그들 일행은 관청앞 대문으로 다가들었다.
말을 타고 먼저간 군졸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대문앞에는 관복을 입은 군교 하나가 군졸 여럿을 데리고 서있었다.
《가만, 모두 섰거라. 여기 좌상이 누구냐?》
김의겸이 한발 나섰다.
《나 올시다.》
《좌상 한명만 들어오구 나머지는 헤쳐가라!》
철간들이 김의겸을 에워싸고 앞으로 나갔다.
《좌상만 못 보낸다. 우리모두 함께 들어가겠다.》
철간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것을 느낀 군교는 황급히 대문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더니 다 들어오라는듯 대문이 활짝 열렸다.
마당으로 선참 들어선 김의겸과 철간들은 약간 주춤했다.
관청마루우에 홍대남과 관리 몇명이 앉아있고 그 아래에는 형틀이 놓여있었다.
형틀을 중심으로 대문까지 창과 칼을 든 군졸들이 두겹으로 쭉 늘어져있었다.
김의겸은 주저없이 앞쪽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따라 철간들과 김막동일행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섰다.
일단 신호만 나면 옆에 있는 군졸들을 족칠 차비였다.
홍대남은 마루우에 틀지게 앉아 앞으로 다가서는 김의겸을 노려보았다.
《게 섰거라!》
김의겸은 홍대남을 쏘아보았다.
《호방어른, 그래 우리한테 쌀을 주겠소? 안주겠소?》
홍대남이 꽥 소리쳤다.
《저런, 건방진 놈을 봤나. 이놈아, 여기가 어딘줄 알구 그따위 수작질이냐.》
《어디긴 어디겠소. 관청이지. 그래 쌀을 주겠소? 안주겠소?》
홍대남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방진 놈, 저놈을 당장 형틀에 묶어라!》
홍대남의 곁에 앉아있던 재령고을 병방이 소리쳤다.
《얘들아! 저놈을 당장 형틀에 묶어놓고 볼기를 쳐라!》
《예-잇!》 하더니 마루아래 섰던 군졸 두명이 김의겸에게 다가섰다.
김의겸이 또다시 소리쳤다.
《가만, 나를 건드리는 놈은 사정없이 죽여버릴테다. 다가들지 말아!》
그 소리에 군졸들이 주춤거렸다.
마루우에 버티고 선 홍대남이 고아댔다.
《이놈들아, 왜 그러고 섰느냐, 어서 묶어라!》
김의겸에게 군졸들이 또다시 다가들었다.
그때였다.
김의겸에게 다가들던 군졸들이 갑자기 《으악!》, 《으악!》 소리를 지르면서 땅바닥에 나딩굴었다.
어디서 날아온 돌멩이들이 그들의 이마를 깨놓았던것이다.
너무도 뜻밖에 벌어진 일이라 마루우에 앉은 량반들도 늘어선 군사들도 어리벙벙해졌다.
김의겸은 침착하게 서서 말했다.
《이놈들아, 내 이미 말을 했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래 우리에게 쌀을 주겠냐? 안주겠냐?》
김의겸의 행동에 약이 오른 홍대남은 철간들을 둘러싼 군사들을 보면서 배심이 든든해서 소리쳤다.
《흥, 쌀을 달라구? 못 주겠다! 그래 어쩔테냐. 어디 말해봐!》
《못 주겠다구? 좋다. 그럼 우리의 대답을 들어봐라!》 하고 소리치면서 김의겸이 날쌔게 마루우에 올라가 홍대남의 멱살을 거머쥐고 칼을 빼들었다.
그와 동시에 와 하고 함성이 터지면서 철간들이 자기들을 둘러싸고있는 군졸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군졸들은 철간들의 기세에 눌리워 한쪽 옆으로 밀렸다.
몰려선 군졸들의 머리우로 돌벼락이 들씌워졌다.
익선을 비롯한 몇명의 철간들은 마루우로 달려올라가 거기에 앉아있던 관리들을 닁큼 들어 마루아래로 내동댕이쳤다.
한쪽으로 몰린 군졸들이 철간들에게 다시 달려들려고 몰려나왔다.
이때 또 한차례의 돌벼락이 쏟아져내렸다.
그러자 군졸들속에서는 아우성이 터졌다.
뒤에 섰던 김막동이 군졸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이놈들아! 이제 다시 덤벼들면 네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살고싶으면 병쟁기들을 내던져라!》
군졸들속에서 술렁술렁거리더니 하나둘 창과 칼을 내던지기 시작하였다.
철간들은 병쟁기를 하나씩 집어들고 군졸들을 마당 한구석으로 몰아갔다.
김의겸은 홍대남을 번쩍 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여보게들, 이놈을 끌어다 형틀에 매놓으라구!》
윤산과 박중금이 땅바닥에 딩굴고있는 홍대남을 끌어다 형틀우에 엎어놓고 오라를 지웠다.
홍대남은 너무도 기겁하여 바들바들 떨었다.
《내 쌀을… 쌀을 주도록 할테니 제발…》
김의겸은 마루우에 버티고서서 소리쳤다.
《그놈의 볼기를 까라!》
윤산과 박중금이 홍대남의 바지를 벗겼다.
시뻘건 엉뎅이가 드러났다.
《그놈이 열물을 토할 때까지 매를 쳐라!》
한옆에 매채를 들고있던 익선이와 철간들이 달라붙어 홍대남의 볼기를 내리쳤다.
익선은 홍대남의 볼기를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이놈아! 지금껏 남의 볼기만 때리더니 오늘은 그 맛이 어떤가 보아라. 이놈아-》
형틀우에 매인 홍대남은 얼굴이 꺼멓게 질려서 아우성쳤다.
《아이쿠- 나죽는다!》
《이놈이 아우성치는걸 보니 아직 덜 맞았구나. 죽어봐라. 이놈아!》
익선과 철간들은 엇갈아가면서 홍대남의 볼기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다른 철간들도 땅바닥에서 나딩구는 재령병방과 관리들을 엎어놓고 뭇매를 안기였다.
순식간에 관청마당은 투닥투닥 내려치는 매질소리로 가득찼다.
그 매질소리는 한생을 량반부자들에게 억눌려 살아온 백성들의 항거의 목소리였다.
형틀우에서 아우성을 치던 홍대남은 기운이 진했는지 더는 찍소리 못하고 늘어졌다.
형틀우에 늘어진 그의 몰골은 얻어맞은 개새끼한가지였다.
마루우에 버티고서있던 김의겸이 또다시 분부했다.
《그놈을 일으켜놓아라!》
익선이와 다른 철간이 오라줄을 풀고 홍대남을 일으켜놓았다.
얼굴이 시커멓게 죽은 홍대남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한옆으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었던것이다.
이때 대문안으로 공사장에 끌려나왔던 백성들이 와- 소리치며 밀려들어왔다.
홍대남을 비롯한 관리들을 요정낸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것이였다.
관청마당과 밖에는 공사장에 동원되였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저저마다 관리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어떤 축들은 마당에 늘어진 관리들에게 달려들어 마구 짓밟아주었다.
김막동은 관청의 창고문을 짓부시고 그안에 있는 쌀을 꺼내여 몰려온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였다.
박상배가 제 동료들과 함께 쌀을 퍼주었다.
한편으로는 윤산을 위시로 해서 군졸들이 타고온 말들과 병쟁기, 심지어 입고있는 군복들과 털벙거지까지 모조리 모아들였다.
다음번 싸움을 위해서였다.
김막동과 김의겸이 마루우에 서서 마당에 엉켜돌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때 그들앞으로 웬 로인이 젊은이 여럿을 데리고 나타났다.
《저 두령어른, 날 모르겠소.》
김막동은 로인을 알아보았다.
《거, 가마소마을 좌상어른이 아니시우?》
로인은 수염을 떨었다.
《옳쉐다. 그때 어른네가 강부자네 집을 도륙내주어 온 동네 백성들이 춤을 추었쉐다. 세상에 백성들의 편에 선 군사들도 있다구 말이웨다.》
《좌상님, 우린 량반부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떨쳐나선 백성들이오이다.》
로인은 자기가 데려온 젊은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두령어른, 이 애들도 데려가주시우. 내 십년만 젊어두 이 길에 나서는건데. 이젠 안되겠소. 그래 내 대신 이 애들을 데리고왔으니 받아주시우.》
김막동은 로인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말했다.
《좌상어른, 고맙소이다. 이 사람들을 기꺼이 데리고 가겠소이다.》
김막동은 젊은이들을 윤산이네한테 보내며 그들의 일을 거들어주게 하였다.
김의겸이 모여온 백성들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네들! 난 수안쇠부리터 철간이요. 여러분들이나 우리나 같이 이 공사장에 끌려와 량반부자들의 채찍밑에 갖은 고생을 한 사람들이오이다. 우린 오늘 참다못해 이렇게 반기를 들었소이다. 이제부터 우린 량반부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싸움에 나서려고 하오이다. 그러니 우리를 따라갈 사람들은 모두 나서시오이다!》
김의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여러 고을 철간들과 젊은이들이 앞을 다투어 그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곁에 선 김막동은 그들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삼백명 남짓이 될것 같았다.
김의겸은 또다시 소리쳤다.
《우리와 함께 가지 않는 사람들은 앞으로 우리를 적극 도와주길 바라오이다!》
한옆에 늘어선 로약자들과 녀인들속에서 박수소리가 울려나왔다.
《알겠사와요!》
《잘 싸워주시오!》
드디여 대오를 정비한 그들은 공사장을 떠났다.
김막동은 자기가 데려온 사람들모두에게 군복을 입히고 말을 태웠다.
김의겸은 말을 탈줄 모르는 공사장에서 의거한 사람들을 모두 거느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김막동이네는 말을 탄채 홰를 켜들고 관청에 불을 지르고 기치창검을 날리면서 행길로 나갔다.
공사장에 끌려나왔던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손저어 바래주었다.
김막동은 불길에 싸여 타고있는 관청을 다시한번 돌아보고나서 박차를 가하였다.
그의 뒤를 따라 서른명이 훨씬 넘는 군복차림의 《군사》들이 말을 달렸다.
그 모양은 마치 적진을 향해 달려나가는 군사들 한가지였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을 숲속에서 지켜보면서 이를 부드득 갈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요행 관청에서 빠져나온 방아전이였다.
김막동이네가 시야에서 벗어지자 숲에서 나온 방아전은 그와 반대쪽인 재령관가를 향해 내달렸다.
이날은 을사년(1485년) 5월 초팔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