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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춘삼월이 왔다.
온 겨울내내 황해도감영에서는 도안의 형리, 군사들을 눈속에 내몰아 김막동패거리를 잡는다고 돌아쳤으나 헛물만 켜고말았다. 하여 한동안 세차게 불어대던 《김막동체포바람》은 점차 잠잠해지기 시작하였다.
도감영에 틀고앉은 관찰사나 체찰사도 봄이 다가오자 전탄수관개공사를 벌려놓는것때문에 언제 김막동패거리한테 관심을 돌릴 형편이 못되였다.
3월에 들어서자 도관찰사 김극검, 체찰사 리철견은 각 고을 원들과 호방에 도안의 백성들을 전탄수관개공사에 동원시키라는 별례조발령을 내려보냈다.
별례조발령에 의하면 하삼도에서 이주해온 백성들은 가정이 아직 안착되지 못했다고 하여 가호당 장정 1명씩, 본토배기들은 가호당 장정 2명을 동원시키게 하였다.
장정들이 없는 가호에서는 대신 부녀자나 로인들까지 동원하도록 하였다. 3월 초순에 이르러서는 황해도 각 고을에서 떠난 사람들의 행렬이 밤낮으로 길을 메우다싶이하였다.
재령 전탄수벌은 각지에서 모여온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죽가마 끓듯 하였다.
넓디넓은 한지에 나앉은 그들에게는 당장 거처할 움막조차 없었다.
벌판 한끝에 있는 야산들에는 토굴집들이 게딱지같이 다닥다닥 붙기 시작하였다.
황해도감영의 호방 홍대남은 고을들에서 공사를 맡아가지고 올라온 고을호방들과 감독으로 동원된 아전들을 거느리고 공사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우에 올라섰다.
계절은 땅속에 얼어붙은 벌레들이 놀라서 깬다는 경칩을 방금 넘겼으나 아직도 싸늘하였다.
《죽은 마누라바람》이라고 하는 봄바람이 터졌다.
봄바람을 《죽은 마누라바람》이라고 하는것은 세찬 눈바람과는 달리 살살 불어와 목덜미와 겨드랑이, 바지가랭이짬으로 파고들어 뼈속까지 녹여내는것이 꼭 남자에게 앙심품고 달라붙는 녀인의 행동거지 같았기때문이다.
구시월 빼빼 마른 수수대같은 도감영의 호방 홍대남은 참새머리에 굴레를 씌울 정도로 역어빠진 알노랭이였다.
그의 부모들은 아들이 사내대장부가 되라고 큰 대자에 사나이 남자를 붙여 대남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체통은 물론이요 속내까지 좁쌀알 한가지다.
대신 상전들에게 달라붙어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돌아치는데서와 기생들을 쫓아다니는데서는 황해도안에서 그를 따를만 한자가 없었다.
원래 사리를 따지면 이 전탄수공사를 공방이 맡아해야 하였다.
그러나 도감영에서는 공사를 벌리자면 사람들의 머리수가 많아야 하므로 호방이 맡아서 하게 하였던것이다.
홍대남은 뼈짬에까지 파고드는 봄바람에 몸을 우두두 떨었다.
《래일부터 물도랑째기 역사를 벌려야 한다. 매 고을별로 역사질을 벌릴 구간을 갈라서 말뚝을 박아놓았으니 너희들이 맡아서 부지런히 해야 하겠다. 먼저 자기 고을 구간들을 편답하고 래일부터 백성들을 동원시키도록 해라.》
모여섰던 고을 호방들과 아전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그들의 뒤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있던 홍대남은 뼈짬까지 파고드는 봄바람을 맞고 재채기를 하였다.
그때 그의 등뒤에서 방아전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호방님, 어서 처소로 들어가시오이다. 그러다가 고뿔이라도…》
홍대남은 불쑥 나타난 방아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작달막한 키에 똥똥한 몸집, 앙바틈한 목과 테를 두른듯 한 고리 눈, 얼핏 보면 절간의 보살같았다.
성이 방씨인 아전은 지금껏 홍대남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뒤시중을 들어주고있다.
그래서 선화당은 물론 항간에서는 그를 두고 《홍대남의 입술에 붙은 밥알》이라느니 또는 두사람의 성씨를 따서 《홍방아전》이라느니 하였다.
때로는 하나는 빼빼 마른 말라꽹이요 다른 하나는 키가 작은 땅딸보라 그들을 가리켜 《말땅패》라고 하기도 하고 그 말이 와전되여 《말똥패》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뭇사람들속에서 이렇게 갖가지 별명이 붙게 된것은 그들이 고와서가 물론 아니였다.
해마다 봄, 가을에 환곡과 조세를 받아들일 때마다 글겡이질을 교묘하게 하기때문이였다.
환곡을 받을 때 백성들에게서 말을 수북하게 되여 받아가지고 관가에 바칠 때는 싹싹 쓸어서 평말로 바치는 마당통질, 세곡을 받으면서 곡식이 마르거나 흘려서 량을 채우지 못한다고 하면서 더 받아들이는 색락, 앓거나 도망을 쳐서 바치지 못할 때 그사람의 몫까지 이웃에게 바치게 하는 린징, 공물을 대신 바쳐주고 그 값을 받아내는 방납, 죽은 사람의 몫까지 바치게 하는 백골징포 등 그들이 중간에서 떼여내여 사복을 채우는데서는 별의별 롱간질이 다 있었다.
이렇게 제 배를 채워가지고는 그 일부를 상전들의 아가리에 밀어넣으면서 지금껏 제 모가지를 유지해오고있었다.
그러자니 방아전은 홍대남의 사타구니에 기여들수밖에 없고 홍대남은 홍대남이대로 약삭바른 방아전을 놓고싶지 않았다.
방아전은 또다시 홍대남에게 재촉하였다.
《호방어른, 어서 처소에 들어가시오이다. 거기서 지금 란정이가 기다리고있소이다.》
그 말에 바람을 맞아 새파래진 홍대남의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란정이라니? 그 애가 언제 왔냐?》
《예, 제가 량곡을 가지고 오면서 데리고왔소이다.》
《그래?!》
홍대남은 두손을 싹싹 비비며 서있는 방아전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항간의 소문대로 방아전은 정말 홍대남의 입술에 붙은 밥알 한가지였다.
홍대남은 부역자들의 식량때문에 도감영에서 보내는 쌀을 가지러 방아전을 보냈었다.
그런데 그는 량곡과 함께 홍대남이 재령에 내려와서 녹아붙은 기생인 란정이까지 데리고왔던것이다.
상전의 가려운데를 긁어주는데서는 제 마누라보다 더한 방아전이였다. 홍대남은 저절로 마음이 흥그러워졌다. 싸늘한 들판바람에 언 몸을 어서 빨리 란정이의 품에 안겨 녹이고싶었다.
《어서 가자!》
홍대남은 앞장에 서서 걸었다.
방아전이 그의 뒤를 따라가는데 걷는다기보다 바람결에 말똥이 굴러가는것 같았다.
한편 고을마다 갈라놓은 공사구간을 돌아보려고 벌에 나간 호방들과 아전들의 반응은 각이하였다. 우선 불만이 분분하였다.
그가운데서도 제일 불만이 많은것은 수안과 신계의 호방들이였다.
공사구간이 제일 길었던것이다.
수안호방은 단번에 입이 메돼지주둥이로 변했다.
그런가 하면 재령고을이 맡은 구간은 제일 짧았다.
재령호방은 자기네가 맡은 구간을 보고나서 의미있는 웃음을 살짝 지었다.
공사를 책임진 홍대남이 내려와 재령객관에서 며칠 묵는 동안 애젊고 어여쁜 란정이를 그의 품속에 밀어넣은것이 큰 은을 낸셈이다.
(홍대남이 색광이라더니 역시…) 하고 재령호방이 생각하고있는데 그의 등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니, 대관절 이건 어떻게 된거야. 제일 많이 물길을 째야 할 재령은 제일 작게 주구… 이건 산골이라구 얕보는게 아니야.》
재령호방이 뒤를 돌아보니 수안호방이였다.
그옆에 섰던 신계호방이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그 말이요. 이건 산골놈들이라구 깔보구 더 떼준게 분명해.》
그 말에 곡산호방도 응수했다.
《거 정말 산골인 신계, 수안, 곡산만 제일 많이 주었수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당장 도감영 호방한테 가서 바로잡아달라구 해야겠어.》
재령호방이 슬쩍 한마디 했다.
《아, 그 어른도 생각이 다 있어 그러겠지. 괜히들 그러누만.》
꺽두룩한 수안호방이 울컥했다.
《아니, 여기야 재령땅이지 수안땅이요? 아니면 신계, 곡산땅이요?》
재령호방은 우둘쩍거리는 그를 보며 침을 놓았다.
《여긴 재령땅이 아니라 임금님의 친경전이란 말이야. 친경전…》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옆에서 홍대남을 두둔하는 재령호방이 더 얄미웠다.
수안호방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리며 시치미를 떼고 아닌보살을 하는 재령호방을 쏘아보다가 홱 돌아섰다.
《흥, 더러워서…》
재령호방이 발끈하였다.
《아니, 뭐가 더럽단 말이야.》
《네가 노는 꼴이 더럽단 말이다. 락태한 고양이상을 해가지구 양양거리긴 제기랄…》
《뭘? 락태한 고양이? 너 이놈, 말 다했어?》
《이놈아, 누구 보구 놈이래, 이게 어디서.》 하며 수안호방이 달려들어 재령호방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재령호방도 호락호락 굽어들지 않았다.
《오냐, 네가 이젠 주먹질할셈이냐. 때려라, 내 네놈을 가만 두지 않겠다.》
수안호방이 재령호방의 목을 바싹 조였다.
《이놈아, 네가 날 어쩔테냐.》
《이놈, 이걸 정말 못놓겠어.》
두 고을 호방이 맞붙어 돌아가는데 곁에 선 다른 고을 호방들이나 아전들은 말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잘코사니하면서 구경만 하였다.
《저기 싸움이 터졌다. -》 하고 누군가 웨쳤다.
그 소리에 벌판 여기저기서 초막을 짓고있던 사람들이 그곳으로 왁 몰려들었다.
야장간에서 벼림질을 하던 김의겸을 비롯한 수안 쇠부리터 철간들도 달려나왔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수안호방은 재령호방의 목덜미를 세괃게 거머쥐고 소리쳤다.
《이놈아, 어디 말해봐라. 여기야 재령땅이지 수안땅이냐? 그래, 주인들인 네놈들이 땅을 파도 더 파야지 우리가 더 파란 말이냐? 이놈아!》
그 말에 쇠부리터 철간들을 비롯한 수안사람들이 편역을 들었다.
《그 말이 옳수다. 우리가 왜 더 판단 말이야.》
《개똥같이 우리가 뭐 재령놈들의 뒤구멍이나 씻어주는 밑씻개야.》
《호방어른, 그놈을 아예 논판에 박아넣으시우.》
이렇게 되자 재령쪽에서 온 사람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이 일을 왜 우리만 해야 한단 말이야. 너희들이 한번 와서 논농사를 해봐라. 아무렴 산골농사에 비기겠어.》
《저것들을 해종일 물안에 세워보지. 아마 하루도 못 견딜걸.》
《물에 빠진 메돼지신세가 되고말게다. 하하하.》
두편으로 갈라진 사람들속에서 고함소리, 웃음소리가 뒤범벅이 되여 온 벌을 들었다놓았다.
림시로 꾸린 기와집 방안에서 기생 란정이를 품에 안고 봄바람에 뼈속까지 들이박힌 찬기운을 뽑고있던 홍대남이 이 소식을 들은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황급히 자리를 차고일어나 옷을 입고 벌판으로 나와보니 아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왁왁 고아대고있었다.
황황히 사람들이 모여선 곳으로 달려간 홍대남은 목이 터지게 소리쳤다.
《그만두라- 그만두지 못할가. -》
빼빼 마른 몸집에 소리통만 차있는지 목소리는 우람찼다.
여러번 소리쳐서야 악마구리 끓듯 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도감영의 호방이 나온것을 안 백성들은 량켠으로 쭉 갈라져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홍대남은 관복동정이 떨어져 너덜너덜한것을 입고 아직도 열이 올라 씩씩거리는 재령호방을 노려보았다.
《재령호방, 무슨 일이야?》
재령호방은 흐트러진 옷자락을 바로잡으며 넉두리질했다.
《호방어른,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소이까. 이 전탄수벌이야 친경전이 아니오이까?》
《그런데 어쨌다는거냐?》
《글쎄 저 수안호방이랑 산골호방들이 자기네한테는 구간을 많이 주구 우리 고을엔 구간이 작다고 야료질이 아니오이까.》
《뭐라구?》
홍대남의 가슴은 섬찍했다.
그는 모여선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험악한 기상이였다.
이제 말 한마디 잘못 내뱉았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판이다.
홍대남은 이 판에 혀바닥을 잘못 놀렸다가는 무리매를 맞을수 있다는것을 직감하였다.
원래부터 황해도안의 관리이건 백성이건 벌방, 산골패가 갈라져서 원성이 높았다.
산골사람들은 자기네가 벌방보다 부과되는 조세와 공물이 더 많다고 아우성이고 벌방사람들은 그들대로 논농사가 힘들고 부담이 많다고 아우성이였다.
게다가 산골사람들은 수수밥이나 조밥을 겨우 먹는데 그래도 벌방사람들은 쌀밥이라도 먹지 않는가고 야단들이였다.
오죽하면 벌방관리 하나가 산골관리 셋보다 낫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도감영에서도 관리들을 임명하는것을 보아도 벌방관리는 노란자위요, 산골관리는 흰자위라고 하면서 벌방관리자리를 놓고 남모르는 암투가 그칠새없는 판이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홍대남은 속으로 이마를 쳤다.
(아뿔사, 애당초 고을별로 구간을 떼주지 말고 밀몰아 역사를 벌리자던 관찰사령감의 말을 들어야 하는건데. )
후회는 언제나 때늦은 법이다.
이미전에 전탄수물길을 째는 일을 놓고 론의할 때 도관찰사 김극검은 고을별로 구간을 떼주지 말고 물길우에서부터 매 사람당 분량을 주어서 차례차례 밀몰아하자고 하였다.
그때 홍대남은 그렇게 하면 건달군, 게으름뱅이가 많아져 물길을 째는 일이 늦어진다고 하였다.
곁에서 듣고있던 체찰사 리철견도 홍대남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리하여 고을별로 물길째는 구간을 나누어주는 놀음이 벌어졌던것이다.
홍대남은 자기 주장으로 고을별로 구간을 나누어준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것을 통감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놓은 물이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등골에서는 식은땀이 내배였다.
그때까지 철간들속에 파묻혀 두 고을 관리들과 백성들이 하는것을 지켜보고있던 김의겸이 사람들을 헤집고 홍대남의 앞에 나섰다.
《호방어른, 한가지 여쭐 말씀이 있소이다.》
홍대남은 김의겸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구리빛 얼굴에 쭉 벗어진 이마, 수수자루 같은 상투, 어글어글한 두눈, 얼핏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것이 대뜸 알렸다.
《넌 누구냐?》
《예, 수안 쇠부리터 좌상이옵니다.》
홍대남은 관리라는 체면을 유지하느라 틀지게 되물었다.
《본관에게 아뢸 말씀이란건 도대체 무엇이냐?》
《예, 우린 작년 동지달 초닷새부터 지금까지 여기 나와 쟁기들을 벼렸소이다.》
《?…》
《그때 관찰사어른은 우리들더러 명년 2월까지만 동원되라고 하였사온데 이젠 돌아가려고 하오이다.》
《관찰사령감이?》
《그렇소이다. 이젠 지고나온 식량도 다 떨어졌소이다.》
관찰사라는 말에 홍대남은 한가지 좋은 꾀가 머리에 피끗 떠올랐다.
(옳지, 이 모든걸 관찰사령감에게 밀어버리자. )
물에 빠진 놈 짚오래기라도 잡는다고 홍대남은 우선 이 순간을 모면하고 보자는 생각이였다.
원래 처세술에 있어서는 산 사람의 간도 뽑아먹을만 한 홍대남이라 얼굴에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관찰사어른이 그렇게 약조했다면 그대로 해야지. 그런데 난 그런 령을 받지 못했으니 본관이 이제 령감께 보고하여 알아보겠네. 그리고 쌀이 다 떨어졌다지?》
《예, 그렇소이다.》
홍대남은 방아전을 돌아보았다.
《방아전, 어디 있나.》
뒤에서 방아전이 굴러나왔다.
《예, 여기 있소이다.》
《저 좌상의 말이 사실인것 같다. 그러니 네가 직접 이사람들의 형편을 알아보구 필요한 쌀을 보내주거라.》
방아전은 굽신거렸다.
《알겠소이다. 그런데 그 쌀은 사실…》
(이렇게 눈치없는 놈이라구야. )
홍대남은 방아전의 입을 중도에서 막아버렸다.
《어른이 한마디하면 다지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냐? 어서 그렇게 하도록 해라.》
《알겠소이다.》
홍대남은 김의겸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이렇게 해주면 되겠느냐.》
《고맙소이다.》
그러자 모여섰던 철간들이 술렁술렁거렸다.
홍대남은 재령호방과 수안호방을 엇갈아보면서 엄하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도대체 무슨 야료질이냐? 의견이 있으면 관가에 와서 여쭈어야지 백성들앞에서 관리들이라는게 창피하지도 않느냐?》
두 고을 호방들은 머리를 수그린채 말이 없었다.
《이건 다 관찰사어른께서 직접 조처한 일이니 그리 알아라. 공사구간에 많고 작은 차이가 있는것은 내 생각에도 잘된것 같지는 않다. 내 이제 관찰사어른께 여쭈어서 바로잡도록 하겠으니 우선 역사질을 시작하고 보지 않겠느냐.》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피대를 돋구던 기백은 어디에 줴던졌는지 두 고을 호방들은 어깨가 축 처져서 대답했다.
《알겠소이다.》
그제야 홍대남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고 오금을 박아놓았다.
《그럼 그리 알고 돌아들 가거라. 다시한번 소동을 피웠다간 너희들을 파직시키고말테다. 알겠느냐?》
《알았소이다.》
홍대남은 그 소리까지 듣고 돌아섰다.
등뒤에서 웅성거리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기의 처소로 돌아가는 홍대남의 마음은 어쩐지 불안하였다.
천리길도 한걸음에 시작된다고 무슨 일이나 시작을 잘 떼야 하겠는데 공사의 첫 시작부터 싸움질이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였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어쩐지 자기의 거동을 노려보는 그 어떤 눈길이 있는것 같아 더 불안한것이였다.
그게 무얼가 하고 생각하던 홍대남의 눈앞에 방금전에 마주섰던 김의겸의 눈길이 비쳐왔다. 이렇다하고 꼭 집어말할수는 없으나 불안감을 더해주는 눈길이였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그동안 봉옥이를 통하여 김막동과 련계를 지은 김의겸은 이미 그들과 손을 잡고 거사를 일으킬 작정을 하였었다.
그래서 오늘도 홍대남에게 트집을 걸었던것인데 오히려 뒤전으로 물러서는 바람에 일이 틀어지고말았던것이다.
그러니 홍대남을 쳐다보는 김의겸의 눈길이 고울수는 없었다.
홍대남은 줄곧 불안한 마음을 안고 처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