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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막동이 강부자네 집을 도륙냈다는 소문은 삽시에 온 황해도땅에 퍼졌다.
평시에 강부자에게서 피를 빨리우던 사람들모두는 물론 온 황해도 백성들이 제일처럼 기뻐했다.
반대로 백성들에게 못되게 굴던 량반부자놈들은 기가 눌리워 이전처럼 함부로 날뛰지 못했다.
도관찰사 김극검이 직접 주관하여 화공들을 불러모아 김막동의 화상을 수십장 그려서 각 고을 관청과 역참들은 물론 주요길목들에 용모파기를 내다붙였다.
그러나 내다붙였을 때뿐이지 하루밤이 지나면 모두 없어지거나 찢어버리군 하였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백성들모두가 김막동을 지지했던것이다.
김막동패의 출현은 그야말로 잔잔하던 호수가에 큰 바위돌을 던져놓은것과 같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게다가 황해도땅 곳곳에 화적패들이 나타나서 봉물짐은 물론이요, 량반부자집들과 심지어 나라에 바치는 세미운반서렬까지 들이치고는 저저마다 김막동이라고 떠들어댔다. 하여 온 황해도땅이 죽가마 끓듯 하였다.
도관찰사 김극검이 틀고앉은 해주감영의 객관에는 밤늦도록 불이 꺼질줄 몰랐다.
빈 절에 구렝이모이듯 방안에 모여앉은 관찰사 김극검, 체찰사 리철견, 종사관 홍자하가 이마를 맞대고 론의하였으나 귀가 번쩍 트일만 한 묘책이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했다.
당장이라도 온 도안의 군사들을 풀어서 김막동이네를 붙잡아 목매달았으면 좋으련만 지금형편에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가 미칠것 같았다.
더우기 난처한것은 당장 재령전탄수관개공사를 벌려야 하겠는데 제아무리 백성들을 몰아낸다고 해도 제대로 나올것 같지 않았다.
간혹 공사에 나온다 하더라도 그들이 김막동이네 패거리의 부추김을 받고 들고일어난다면 그보다 더 큰 화단이 없을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김막동이네가 제 마음대로 활개치라고 내버려둘수도 없었다.
만일 그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백성들이 관가를 우습게 알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의 존재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될것이다.
일이 그쯤 되면 관찰사나 체찰사, 종사관의 모가지가 백개라도 견디여내지 못한다는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범의 꼬리를 잡고 놓지도 못하는 격이 되고말았다.
체찰사 리철견은 이따금 불찌를 탁탁 튕기는 초불을 바라보며 돌미륵같이 앉아있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하고 생각을 굴리던 리철견은 앞에 앉은 김극검에게 물었다.
《관찰사령감은 그래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김극검은 우물쭈물하였다.
《글쎄올시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런지…》
그의 어정쩡한 대답을 들은 리철견은 화가 불쑥 치밀었다.
(에익, 바지저고리같은 령감, 임금이 저 령감의 뭘 보구 도관찰사자리를 주었단 말인가. )
순간 리철견의 머리속에는 문득 전 황해도관찰사 리계동의 모습이 떠올랐다.
좀 우직스럽기는 해도 결단성이 있는 리계동이 맹물단지같은 김극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하여 당장 바꿔치우지는 못할 형편이였다.
리철견이 이렇게 생각을 굴리고있는데 옆에 앉았던 홍자하가 침묵을 깨뜨렸다.
《저 체찰사님, 제 생각을 여쭈어보랍니까?》
리철견은 말없이 홍자하를 지켜보았다.
홍자하는 리철견과 김극검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말했다.
《이제 당장 가마소에 내려가 백성놈들이 훔쳐간 강부자네 쌀을 모두 빼앗아내구 주모자들을 처벌하여 나라의 법이 엄함을 알려주는게 우선 첫째라고 보나이다.》
리철견은 묵묵히 듣고있었다.
홍자하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둘째로는 각 고을의 군영마다 령을 내려 김막동패거리가 살판치지 못하게 경비를 강화하게 하고 영민하고 간사하고 능갈친자들을 남녀구별없이 선발하여 잠복시켜 그들의 내막을 렴탐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나이다.》
리철견은 그 말에 흥미가 있는듯 또 물었다.
《그다음은?》
《셋째로는 지금 현재 백성들의 민심을 봐서는 추위가 닥쳐오는 이때에 전탄수공사에 내몰지 말구 지금부터 공사에 쓸 쟁기들을 장만해놓았다가 명년에 들어가 해토가 될무렵에 모두 끌어내서 공사를 끝내도록 하는것이 상책인줄 아오이다.》
리철견은 홍자하가 내놓은 의견이 어떤가 해서 김극검을 쳐다보았다.
김극검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듯 머리를 끄떡거렸다.
《종사관의 말에 일리가 있소. 리치로 봐서도 그게 합당하오. 그런데 그 말대루 하자면 어려울것 같소.》
리철견과 홍자하는 이 령감이 도대체 뭘 말하자는건가 하는 눈길로 김극검을 쳐다보았다.
김극검은 그들을 일별하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가마소백성들을 들이치자는건 혹을 떼려다가 오히려 혹붙이는 격이 될수 있고 능갈친자들을 선발하여 매복을 시키자는건 오뉴월에 사과나무아래에서 익은 사과가 떨어지기를 바라는것이요. 그리고 농쟁기를 미리 장만한다는것은 처녀가 애기포대기를 마련한다는 소리나 같은 격이요.》
리철견과 홍자하는 펄쩍 놀랐다.
그러니 모든것이 다 신통치 않다는 소리다.
리철견의 볼에서는 푸들푸들 경련이 일어났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시오.》
김극검은 구태의연한 태도로 말했다.
《옛성인들이 말하기를 유인애민은 만사가성이라고 하였거늘 백성들을 잘 어루만지고 사랑하면 모든 일을 성사시킬수 있는거요. 내 생각엔 가마소백성들을 들이치는것은 상책이 아닌것 같소.》
리철견이 삐뚤어진 소리를 하였다.
《그럼 백성놈들더러 〈너희들이 잘했다. 〉 하고 칭찬해야 옳겠소?》
김극검은 거기에는 아랑곳없이 제 주견을 세웠다.
《백성놈들 앞에서 강부자가 탐관오리라는것을 까밝혀야 할것 같소.》
리철견은 눈알이 뒤집혔다.
《아니 관찰사령감, 그건 무슨 아닌밤중에 홍두깨같은 소리요?》
그래도 김극검은 태연하게 계속하였다.
《강부자가 탐관오리이기때문에 나라에서는 그에게 식읍으로 내준 토지를 몰수하여 국유지로 만들었다는것을 선포하고 그에 따라 백성들은 조세를 강부자에게 바칠것이 아니라 나라에 바쳐야 한다구 해야 백성놈들이 찍소리 못하구 훔쳐간 쌀을 내놓을것이다 이 말이요.》
그의 말을 들은 리철견은 어리둥절하였다.
아니, 알속에도 뼈가 있다더니 이 물알같은 령감한테도 이렇게 맺힌데가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쑥 들었기때문이였다.
그제야 리철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관찰사령감, 그거 신통한 생각이시오.》
김극검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이걸 실현하자면 한가지 애로가 있소.》
《애로라니? 그건 무슨 소리시우?》
김극검은 약간 주저하는 기색을 내비치였다.
《그건 저…》
《아니 령감, 왜 그렇게 주저하시우? 그 애로란게 무언지 어서 말하시우.》
김극검은 말을 갑잘랐다.
《그 애로를 아무래두 한양에서 내려온 체찰사어른이 풀어주어야 하겠소.》
《…》
《그게 뭔고 하니 강부자문제인데 강부자로 말하면 왕실외켠 계렬의 족속이요. 내가 한양에서 벼슬할 때 귀동냥으로 듣자니 원래 왕실가문에서는 강씨집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들 했는데 그게 사실인것 같소. 지금 왕조초기에 잠저에 있던 태종이 후실강씨의 소생들을 모두 처리한것만 봐도 강씨집안에 대한 왕실의 태도는 가히 짐작할만 한 일이기는 하오만 그렇다고 우리가 제멋대로 강씨집안의 족보에 박혀있는 강부자를 탐관오리라고 욕되게 하였다가 경이나 치지 않겠는지 해서 그러오.》
리철견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강부자가 그런 계렬이였소?》
《내 그래서 체찰사에게 부탁하는것이오니 이 문제를 상감마마께 상주하여 어지를 받게 해주시오. 만일 우리의 의도대로 어지가 내려오면 그걸 가마소백성놈들한테 알려주는것도 맡아주어야 하겠소.》
그제야 리철견은 능구렝이같은 김극검의 수에 옴짝달싹 못하고 빠져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금의 특명을 받고 한개 도의 안녕을 도모하러 내려온 체찰사의 체면에 김극검의 제의를 모른다고 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체면때문에 상감마마에게 함부로 상주했다가 노엽히기나 하면 그때는 끝장이 나는 판이다.
리철견의 잔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의 이런 속내를 알아차리기나 한듯 김극검은 곁눈질로 슬쩍 리철견을 쳐다보았다.
《상감마마께서도 아마 여기 사정을 잘 알게 되면 우리가 바라는대로 어지를 내려보내시리라고 보오.》
리철견은 속으로 생각했다.
(흥, 능구렝이같은 령감, 그러니 나더러 상주문을 잘 엮으란 말이지. 좋다, 어디 해보자. )
이렇게 생각한 리철견은 배포유한체 하면서 또 물었다.
《관찰사령감, 그다음문제는 어떻게 하실려우.》
김극검은 바닥에 깔아놓은 돗자리가녁에 새겨진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견물생심이라구 물건을 보고 가지고싶지 않은 놈이 어디에 있겠소. 그런즉 김막동패거리를 붙잡자면 그놈들의 목에 일정한 액수의 물건을 걸어놓으면 비록 하찮은 필부라도 나설것이니 이것이 그 패당을 붙잡는데서는 첫째가는 상책이라고 생각하오.》
리철견은 아무말도 못하였다.
오히려 제 낯이 뜨거워지는것을 감출수가 없었다.
김극검의 입에서는 터진 물동에서 물이 흘러나오듯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만사구비는 만성지원이라 만가지준비를 하는것은 만가지성공의 근원으로 되는것이요. 전탄수공사준비를 미리 하자는것에는 다른 의견이 없소. 그런데 이것도 묘책이 있어야 잘될것이거늘 내 생각에는 도안에 있는 쇠부리터들에 부역동원을 면제시키는 대신에 공사에 쓸 쟁기들을 마련하라고 한다면 됨즉 하오. 체찰사생각엔 어떨런지…》
김극검의 말에 리철견은 더 할말을 찾지 못했다.
너무도 리치가 분명하고 사리가 정연하여 삐여들어갈 틈도 없었던것이다.
리철견은 말을 얼버무렸다.
《관찰사어른의 말대루 하는것이 합당한듯 하오이다.》
김극검은 종사관 홍자하를 바라보았다.
홍자하는 눈을 내리깐채 아무말도 없었다.
김극검은 무릎을 펴면서 일어섰다.
《둘째안과 셋째안은 내가 알아서 조처하려고 하오. 그러니 체찰사는 상감마마께 상주하는것을 잊지 말아주시오. 그럼 난 물러가겠소.》
김극검은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싸늘한 공기가 방안으로 쓸어들자 초대우의 불길이 가물거렸다.
리철견은 김극검이 나간 문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리철견은 저도모르게 머리를 움켜잡았다.
지금껏 김극검을 우유부단한 맹물단지로만 보아왔던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하는 생각이 온통 머리를 휘저어놓았던것이다.
김극검이 또아리를 틀고앉아 혀를 날름거리는 황구렝이라면 리철견은 그앞에서 죽을줄도 모르고 팔딱거리면서 뛰여다니는 개구리한가지였다.
곁에 있던 종사관 홍자하가 침묵을 깨뜨렸다.
《체찰사어른, 이젠 좀 쉬시오이다. 밤도 퍽 깊었소이다.》
리철견은 책상앞으로 돌아앉으면서 말했다.
《종사관은 래일 한양에 다녀올 준비를 갖추어라.》
《알겠소이다.》
《그만 가보아라.》
홍자하가 나간 다음에도 리철견은 한동안 책상앞에 못박은듯 앉아있었다.
한참후에야 그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붓을 들어 임금에게 올리는 상주문을 쓰기 시작하였다. …
홍자하를 한양으로 떠나보낸지 닷새째 되는 날 아침이였다.
임금한테서 어떤 어지가 내려올가 하여 며칠째 뜬눈으로 새우다싶이 한 리철견은 객관앞에 있는 련못가로 나갔다. 누렇게 황이 든 련꽃잎들이 물우에 늘어져있는 사이로 크기가 손바닥만 한 붕어들이 한가로이 헤염치고있었다.
그것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리철견은 자기도 저 물고기와 같은 신세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넓은 강가에서 자유로이 노닐지도 못하고 못속에 갇혀 오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미끼나 받아먹으면서 희롱당하다가 언젠가는 길손들의 밥상우에 올라앉아야 하는것이 저 물고기의 신세이다.
지금 자기도 객관의 《못》속에 갇혀 김극검이 던져주는 미끼를 받아먹다가 한양에서 혹시 벼락이라도 내려치면 영낙없이 도마우에 올라야 할 판이였다.
이렇게 생각하던 리철견은 어정쩡해있는 자기
(에익, 이 모든것은 구렝이같은 관찰사령감때문이다. )
그럴수록 리철견은 관찰사 김극검에 대한 아니꼬운 감정이 분수처럼 뿜어올랐다.
이렇게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련못가에 나갔던 리철견은 다시 방안으로 들어오고말았다.
호피방석을 깔고 사방침에 몸을 기댄채 정신나간 놈처럼 천정만 쳐다보고있던 리철견은 저도모르게 슬며시 개잠에 들었다.
잠속에서 그는 꿈을 꾸었다.
사방이 온통 안개속에 잠겼는데 리철견은 허겁지겁 어디론가 달려가고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해묵은 소나무아지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굵기가 소나무대만 한 구렝이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깜짝 놀란 리철견은 자기 몸을 풀어보려고 안깐힘을 썼다. 그럴수록 구렝이는 더욱더 몸을 조여들었다.
세찬 바람이 쏴 하고 몰아치더니 어느새 리철견은 구렝이에게 묶인채 하늘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다가 천길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으악-》 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잠에서 깨여났다.
깨여보니 꿈이였다.
꿈속에서 어찌도 혼났던지 리철견의 속적삼이 땀에 푹 젖어있었다.
리철견이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있는데 밖에서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체찰사어른 계시오?》
밉다면 깨꼬한다더니 도관찰사 김극검의 목소리였다.
리철견은 골살을 찌프리며 모르쇠하고 소리쳤다.
《거 누구냐?》
문을 열고 김극검이 들어섰다.
《나요. 김극검이요. 한양갔던 종사관이 돌아왔소.》
그 소리에 리철견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그렇소. 그가 어디 있소?》
김극검의 뒤를 따라 종사관 홍자하가 들어섰다.
《소인 문안드리오.》
리철견은 엉겁결에 일어섰다.
《그 …그래 임금님께 상주했느냐?》
홍자하는 두무릎을 꿇고앉아 말했다.
《상주하였소이다.》
《그래 무슨 교지가 내렸냐?》
《전하께서는 어지를 구두로 전달하라 하셨소이다.》
리철견은 황급히 일어나 옷을 정제하고 단정한 자세로 앉았다.
《전하께서는 〈경이 올려보낸 상주문을 보았다. 강부자인지 뭔지 한 놈은 우리 왕실과는 관계가 없는 놈이다. 그놈이 우리 왕실을 걸구 지금껏 살판쳤다니 천하에 무엄한 놈일지로다. 아직까지 이런 놈이 박혀있으면서 왕실을 더럽히고있는데 어째서 이제야 나에게 보고가 되는것이냐. 도대체 고을군수와 도관찰사는 뭘하고있기에 이런 놈들을 그냥 둔단 말이냐. 짐은 실로 유감스럽다. 〉고 하였소이다.》
홍자하의 말이 곧 임금의 말인지라 김극검은 두무릎을 꿇고앉아 두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홍자하의 말은 계속되였다.
《그리구 전하께서는 〈마침 체찰사가 이것을 제때에 바로잡아놓았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로다. 짐은 체찰사의 의견대로 시행하기를 바란다. 〉라고 하였소이다.》
리철견은 저도모르게 안도의 숨을 푸- 내쉬였다.
《전하께서는 〈짐이 듣기엔 도관찰사가 전탄수관개공사를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실로 무엄하다. 당장 공사를 착수하도록 하라. 〉고 하였습니다.》
홍자하의 말은 여기서 끝났다.
김극검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양쪽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황공무지로소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리철견의 얼굴에는 싸늘한 웃음이 얼핏 지나갔다.
리철견은 김극검에게 호령하다싶이 말했다.
《관찰사령감, 빨리 수습책을 세워야 하겠소.》
김극검은 머리를 조아렸다.
《알겠소이다. 내 각 고을군수들에게 령을 내려 쇠부리터들에서 쟁기를 마련하도록 하겠소이다.》
리철견은 그 말에 역증을 내다싶이 하였다.
《또 그 소리시오? 그러지 말구 도안의 철간들을 모두 <전탄수공사장>에 불러모아 거기에서 쟁기를 벼리게 해야 하겠소.》
《그러자면 기일이 걸릴것…》
리철견은 김극검의 말허리를 잘랐다.
《계속 기일이요 뭐요 하지 말구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말말구 오늘중으로 령을 내려 이삼일안으로 모두 재령전탄수에 모이게 하시오. 그리구 재령군수에게 령을 내려 쟁기를 벼릴 집도 꾸려놓으라고 해야 하겠소.》
명령하다싶이 하는 리철견의 말에 김극검은 대꾸 한마디 못하였다.
《알겠소.》
《내 3일후에 직접 재령전탄수에 나가보겠소. 그리구 령감과의 약속대루 서흥가마소마을에는 내가 내려가서 조처할터이니 서흥군수에게 미리 통고를 해주시오.》
《언제 내려가시겠소.》
《래일 아침에…》
《알겠소. 그럼 난…》
김극검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리철견은 김극검의 잔등을 싸늘하게 쏘아보았다.
(흥, 이 구렝이같은 령감, 이제는 내 손에서 못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