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이구-나죽는다.》 하고 리악은 터진 볼기짝을 드러낸채로 이불우에 엎디여 아우성쳤다.
그옆에서 리악의 녀편네가 곤장을 맞아서 터진 그의 볼기짝에 된장을 바른 천쪼각을 붙여주고있었다.
《아이구, 쓰리다 좀 살살 붙이지 못해!》
리악이 엎드린채 녀편네에게 고아댔다.
녀편네는 입을 삐죽이 내밀고 리악을 흘겨보면서 양양거렸다.
《다 큰게 애새끼처럼 무슨 엄살이 그리 많아? 흥 덩지가 아깝지.》
《뭐야, 이년이-》
《누구 보구 년이래.》
《아가리 다물지 못하겠어?》
《벌리라는게 아가린데 그건 왜 다물어.》
《정말 가만 있지 못하겠어?》
《고함을 치는걸 보니 별로 아프지 않은 모양이지?》
이렇게 리악의 내외는 서로 맞붙어 닭싸움을 하였다.
막동이네를 붙잡으라는 수안군수의 령을 받고 최형리에게 꽁무니를 채워 열흘나마 주변골짜기란 골짜기를 다 뒤지고 마을과 마을들을 샅샅이 뒤졌으나 헛물만 켜고 돌아온 리악은 동헌으로 불리워갔다.
최형리가 고해바친 이야기를 들은 군수가 성이 독같이 나서 리악에게 잡으라는 도적은 잡지 않고 밤낮 계집만 끼고 논다고 쌍욕을 퍼붓더니 매 열대를 치라고 호통쳤다.
하여 리악은 동헌의 뜨락에서 매를 맞아 볼기가 터졌던것이다.
며칠동안 찜질을 해서 이젠 거의다 낫게 되였는데도 리악은 계속 이불우에서 딩굴면서 나죽는다고 고아댔다.
그동안 밤새워가면서 리악에게 찜질을 해준다 주물러준다 하면서 시중을 들어준 녀편네도 이제는 시살이 났다.
터진 상처를 처치받고난 리악은 엎드린채 솔곳이 잠들었다.
잠결에 그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무사차림을 한 김막동이 봉옥이와 함께 자기의 목을 바줄로 매여가지고 가파로운 벼랑길로 끌고올라갔다.
목을 맨채로 질질 끌려가는 리악이 숨이 너무 가빠서 그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들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사정없이 끌고가서 벼랑턱 한끝에 있는 나무에 리악을 매달아놓았다.
나무에 데룽데룽 매여달린 리악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길 낭떠러지였다.
리악은 눈을 꼭 감고 한번만 살려달라고 손을 싹싹 비볐다.
김막동이 무섭게 쏘아보면서 칼을 빼들었다.
옆에 섰던 봉옥이가 막동의 칼을 빼앗아쥐더니 무엇이라고 웨치면서 리악의 목에 맨 바줄을 끊어버렸다.
순간 리악의 몸은 천길나락으로 떨어졌다. …
리악은 《으악!》소리를 치면서 잠에서 깨여났다.
꿈이였다.
어찌도 혼쭐이 났던지 리악의 잔등에는 땀이 후줄근하게 배여있었다.
그 소리에 곁에서 졸고있던 녀편네도 깨여났다.
《아니, 왜 또 발광이요?》
자리에서 일어나앉은 리악은 이발을 부드득 갈았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서서 벽에 걸어놓은 장검을 잡아쥐고 칼집에서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막동이 이놈, 봉옥이 이년, 내 네년놈들을 가만두지 않을테다. 이놈들!》
실성한 사람처럼 발광하는 리악을 보고 녀편네는 코방귀를 뀌였다.
《흥, 한길에서 뺨맞구 골목에서 주먹질이라더니 막똥인지 쇠똥인지 잡기두 하겠수다.》
《뭐야!》
리악이 칼을 빼든채 녀편네에게 돌아섰다.
번쩍 뜬 리악의 거적눈에서 푸른 섬광이 번뜩이였다.
그 모양을 처음 보는 녀편네는 찍소리도 못내고 사지를 바들바들 떨었다.
녀편네가 범을 본 개새끼처럼 바들바들 떠는 모양을 지켜보던 리악이 갑자기 흉물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이년아! 그래 이 칼밑에서두 계속 쫑알거릴테냐? 으하하…》
리악의 녀편네는 그러는 남편의 모습을 놀라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리악이가 등을 돌려대고 미친듯이 웃는 틈을 타서 방안에서 빠져나왔다.
신도 채 신지 못하고 버선발로 대문쪽으로 달려가던 녀편네는 문앞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털보와 갓을 쓰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웬 사람과 마주쳤다.
털보가 의아해서 그에게 물었다.
《아니, 마님 웬 일이요?》
《우리 주… 주인이 실성했는가봐.》
털보와 뒤따르던 사람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때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방안에서 리악이가 고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 내 네놈들을 모조리 쳐죽일테다! 이놈들아, 어디 있어? 어서 나타나라!》
털보가 황급히 토방에 올라서서 방문을 열다가 깜짝 놀라 목을 움추렸다.
방안에서 리악이가 칼을 빼들고 문쪽을 향해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었기때문이였다.
털보를 본 리악의 눈에서 시퍼런 불길이 내비치더니 벌떡 달려나와 털보의 목덜미를 거머쥐였다.
《막동이 이놈, 잘 만났다. 이놈!》
리악에게 목덜미를 잡힌 털보가 아우성쳤다.
《역리님, 난 막동이가 아니라 털보요, 털보!》
《이놈아, 내가 속을줄 알구!》
《정말이와요. 내 지금 역리님의 부친을 모시고왔수다.》
그래도 리악은 털보의 목덜미를 잡은채 이놈이놈 하면서 계속 조이고있었다.
털보와 함께 온 리현손이 꽥 소리쳤다.
《악이야, 네 이게 무슨 꼴이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익은지 그제야 리악이 털보를 풀어놓고 토방아래에 서있는 리현손을 쳐다보았다.
리현손이 앞으로 다가서면서 리악을 찾았다.
《악이야,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날 알아보겠니?》
그 말에 리악의 풀어진 동공이 점차 모아지더니 또릿또릿해졌다.
리악이 토방에 주저앉아 징징 울었다.
《아버지-》
그제야 리악은 정신이 든 모양이였다.
리악에게 다가간 리현손이 그의 잔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내 얘길 들었다. 네가 오죽 고생을 했으면 이 지경이 됐겠냐? 됐다, 울음을 그쳐라.》
아버지의 이 말에 리악이 더욱 서럽게 울었다.
리현손이 여러번 얼려서야 리악은 눈물을 거두고 일어서면서 물었다.
《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
《그저 지나가던 길에 들렸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리현손은 아들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봉변을 당한 털보는 아직도 목이 아픈지 손으로 목을 문대면서 간다온다 소리도 없이 대문을 빠져나갔다.
마당에 홀로 남은 리악의 녀편네는 어쩔줄 몰라 망설이고있었다.
이때 방문이 열리더니 리악이 녀편네에게 소리쳤다.
《아버지가 오셨는데 거기서 뭘해? 빨리 들어와!》
그 말에 녀편네는 와뜰 놀라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방안에 들어서자 리악이 제 애비에게 소개했다.
《아버지, 내 색시예요.》
리악의 녀편네가 공손히 리현손의 앞에 두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리현손이 머리를 한번 끄덕이고나서 아들에게 물었다.
《얘가 봉산기생이라는 아이냐?》
《그래요.》
리현손이 거적눈을 올리뜨고 며느리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은 그만하면 해말쑥하구나. 그래 인젠 이 애 하나로 고정시켰냐?》
그 말에 리악이도 면구스러운지 목덜미를 슬슬 문댔다.
《그렇사와요.》
리현손은 제 아들에게 훈시했다.
《어서 그래라. 밭두 한밭을 뚜지며 살아야 소출을 더 낼수 있어. 이밭, 저밭 정해진 밭이 없이 뚜쟁이노릇을 해가지군 씨뿌리긴 좋을지 몰라두 열매를 거둬들이긴 힘들어. 너도 리씨집안의 대를 물려야 할게 아니냐?》
《예, 아버지.》
리현손이 며느리에게 물었다.
《너두 그새 군서방을 맞았댔겠는데 그래 이젠 이 집에 못박혀있겠느냐?》
리악의 녀편네는 그 말에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수그렸다.
옆에서 리악이 빈정거렸다.
《내가 있는데 제까짓게 어디다대구 군서방질을 한단 말이요? 걱정마세요.》
리현손이 도리질을 하였다.
《아니다. 녀자란 원래 바람앞에 흔들리는 갈대같아서 변하기 쉬우니라. 네가 우리 악이에게 정붙이고 살겠다면 나두 너희들 살림밑천을 대주구 그러지 않겠다면 아예 이자리에서 그만두어라. 내겐 자식이라군 이 악이 하나밖에 없으니 집안의 대를 잇자면 며느리를 똑똑히 정해주어야 하겠다. 그래 네 생각엔 어떠냐?》
리악의 녀편네는 그 말에 귀가 항아리만 해져서 얼른 대답하였다.
《여기서 살겠어요.》
리현손은 그제야 마음놓이는듯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그렇다면 좋다. 난 네 말을 믿겠다. 그리구 내 너희들한테 한가지 알릴 말이 있다.》
《무슨 말이요? 아버지.》
《내가 오늘부터 군수어른의 추천으로 한양에 올라가서 일을 하게 됐다.》
리악은 너무 기뻐 애비의 손을 잡았다.
《그게 사실이예요? 아버지.》
《그래, 사실이다. 한양성경비를 맡아보는 내금위서리로 임명받았다.》
《내금위서리로요? 야-》
리악은 언제 아팠냐싶게 엉치를 들썩이면서 좋아했다.
리현손이 그러는 아들을 보면서 훈시했다.
《그렇게 좋아하긴 일러. 악이야, 내 말을 명심해 듣거라. 지금 군
리악이 머리를 수그리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년놈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도대체 잡을수 없어요.》
《그렇게 술덤벙, 물덤벙해서야 어떻게 잡아,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요?》
《그 머리는 쓰라는거지 그저 달구다니는게 아니야. 그래 막동이 그놈이 호락호락 잡힐것 같냐? 그놈이 아무리 날구뛰여도 이 고을 지경을 멀리 벗어나진 못했을게다. 그러니 곳곳에 렴탐군을 묻어두어서 잘 감시하게 해라.》
《알겠어요.》
《그놈을 잡는데서는 너만큼 공을 세울 사람이 없다. 그건 네가 그놈의 얼굴을 잘 알기때문이야. 그래서 군
《예.》
리악은 대답은 하였으나 억울하게 곤장을 맞은것이 속에 걸려 내려가지는 않았다.
리현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이길로 한양으로 떠나겠다.》
리악은 펄쩍 놀랐다.
《아니, 그렇게 빨리 가세요? 집에서 하루밤 묵으시지두 않구…》
《고맙다. 허지만 하루라두 빨리 가서 자리를 잡아야지. 넌 막동이 그놈만 꼭 잡아서 군
리악은 너무 좋아 입을 벌쭉거렸다.
《알겠어요. 내 그놈들을 꼭 요정내구말겠어요.》
리현손은 역참까지 리악을 데리고걸으면서 말했다.
《내 말을 명심하구 이제부터 막동이 그놈을 잡는데만 애를 써라. 밤낮 그 계집한테만 빠져있지 말구. 그래야 우리두 번화한 한양에서 모여살수 있을게 아니냐?》
리악은 애비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석거렸다.
《아버지의 그 말을 새겨들었어요. 내 어떻게 하든 그놈들을 잡아내겠어요.》
역참에 이른 리현손은 아들며느리의 바래움과 역졸들의 선망어린 눈길을 받으면서 한양으로 가는 말우에 올라탔다.
애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고난 리악은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역졸들모두가 자기를 새로운 눈길로 보는것이 헨둥했다.
그럴수록 리악의 가슴속에 움터오르는것은 어떻게 하든 김막동을 사로잡을 불같은 욕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