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리악을 비롯한 온 고을의 군사들과 역졸들이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눈알이 새빨개서 고을안의 산과 골짜기를 뒤지며 돌아칠 때 막동이네가 살고있는 무원골에는 경사가 났다.
윤산과 봉산, 수안이가 한날한시에 장가를 들게 되였던것이다.
잔치의 손님으로는 막동과 봉옥, 막동의 어머니 한씨와 쌍둥이 자매들인 갑녀, 을녀의 어머니인 정씨뿐이였다.
실상 그들도 손님은 아니였다.
한씨는 윤산과 봉산, 수안이와 이순이의 어머니요, 정씨는 갑녀와 을녀의 어머니요, 막동과 봉옥이는 윤산이네들의 형님과 형수이니 결국 사돈들이 모여서 합잔치를 하는셈이였다.
손님이 없다고 섭섭할것도 없었다.
그저 량반부자가 없는 마을에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만나 의좋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방안에서 잔치음식을 만들고있는 녀인들의 웃음소리는 그칠새 없었다. 내가에서 새로 사냥한 메돼지를 손질하는 막동과 봉산의 얼굴에도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있는 윤산과 수안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날줄 몰랐다.
그들의 마음을 축복하는듯 절벽우에 곱게 핀 단풍나무들도 마가을바람에 설레이고 붉은 잎들을 흩날리며 꽃보라를 뿌려주었다. 나무숲도 기쁨에 설레이며 노랗게 물든 잎들을 한껏 뿌려주었다.
막동은 하던 일을 멈추고 대자연의 신비경을 취하도록 바라보았다.
곁에서 막동의 일손을 돕던 봉산이가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형님, 뭘 그리 보시나요.》
《봉산아, 저길 좀 보아라.》
막동이 가리키는쪽을 본 봉산은 대자연의 황홀한 경치에 탄성을 질렀다.
《야-굉장하구나!》
그 소리에 윤산과 수안이도 방안에 있던 녀인들도 문을 열고 내다보면서 환성을 질렀다.
단풍잎과 나무잎들이 꽃보라인양 흩날리는것을 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의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다.
이렇게 웃음속에, 자연의 축복속에 잔치준비를 다한 그들은 드디여 해가 둥실 떠오른 정오에 잔치상을 받았다.
정성껏 차려놓은 잔치상앞에는 무명으로 새로 지은 옷을 입은 윤산과 이순이, 봉산이와 갑녀, 수안이와 을녀가 나란히 앉았다.
윤산과 이순이 한씨에게 다가와 술을 부었다.
《어머니, 이 술잔을 받으세요.》
윤산이 내주는 술잔을 받은 한씨는 손을 후두두 떨면서 목메여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렇게 한쌍을 이룬것을 네 부모들이 봤다면 얼마나…》
막동이 한씨를 부축하며 말했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어서 이들을 축복해서 한잔 드세요.》
《오냐, 내 들겠…》 하고 한씨는 말하면서도 끝내는 흐느꼈다.
한씨는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윤산과 이순의 부모들을 잘 알고있었다. 어질고 착한 그네들이 너무도 일찌기 간것이 가슴이 아팠다.
아,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도 모질단 말이냐.
한씨는 어쩐지 이 기쁜 날에 가슴을 콱 터쳐놓고 울고싶었다.
윤산과 이순이도 눈시울을 적시였다.
《어머니, 이제부터 우린 어머니를 친어머니로 모시고 살겠어요.》
《얘들아-》
한씨는 술잔을 떨구면서 와락 윤산과 이순을 그러안았다.
《어머니-》
윤산과 이순이 한씨의 품에 안기였다.
한씨는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오냐,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친에미다. 그러니 아들딸 많이 낳구 부디부디 잘 살아라.》
윤산이 한씨의 품에 파고들면서 목메여 말하였다.
《고마와요 어머니, 난 친어머니의 얼굴도 몰라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내 어머니였어요.》
그 모습을 눈물겹게 바라보는 막동은 윤산이가 어째서 어머니를 모셔다놓고 혼례를 치르겠다고 고집을 썼는지 알수가 있었다.
차례로 돌아가면서 술을 붓다나니 이번에는 막동의 앞으로 봉산이와 갑녀, 수안이와 을녀가 다가와 술을 부었다.
술잔을 받아든 막동은 새색시가 된 두 자매를 사랑스레 쳐다보았다.
동그스름한 얼굴이며 머루알같은 맑은 눈, 약간 클사한 입, 신통히도 꼭 같이 생긴 그들이였다.
막동은 그들이 부어준 술을 쭉 마시고나서 웃으면서 말하였다.
《여보게들, 앞으로 색시들을 헛갈리지 말라구. 이건 신통히도 꼭같은게 난 도무지 누가 누군지 알수 없구만.》
봉산이가 실쭉 웃으면서 말한다.
《이 갑녀는 오른쪽 귀밑에 김이 있어요.》
《그래? 하하… 수안이네는 무슨 표적이 없나?》
수안이도 벙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 을녀는 목덜미에 흠집이 있어요.》
《그래? 거 정말…》 하고 막동은 신통해하였다.
곁에 섰던 한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것 보지, 저녀석들이 제 색시를 바뀔가봐 벌써부터 표적을 단단히 달아놓구있구나. -》
그 말에 모여섰던 사람들모두가 한바탕 웃어댔다.
그들은 모두 상앞에 모여앉아 웃고 떠들면서 잔치음식을 들었다.
그들이 한창 흥을 돋구고있을 때 봉옥은 살그머니 빠져나와 집뒤로 돌아갔다.
갑자기 속이 메슥메슥한것이 토하고싶었던것이다.
봉옥은 쭈그리고 앉아 왝왝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한창 토하고있는데 막동이 다가와서 물었다.
《봉옥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예요, 갑자기 메슥메슥해서… 일없어요. 어서 가보세요.》
막동이 계속 토하는 봉옥을 붙들고 쩔쩔매는데 한씨가 다가왔다.
《막동아, 넌 어서 가보아라. 일없다, 이건 녀자들만 앓는 병이야.》
《녀자들만 앓는 병이라니요. 그런 병두 있어요?》
《이런 눈치가 없다구야. 봉옥이가 네 애를 설었단 말이다.》
막동은 눈을 크게 떴다. 어쩐지 다리가 떨리는것 같았다.
봉옥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한씨의 품에 안겼다.
한씨가 봉옥을 품에 안고 기쁨에 넘쳐 말했다.
《나도 인젠 할미가 되여보는가부다. 하…》
막동과 한씨가 봉옥을 데리고 잔치상으로 돌아오자 윤산이 의아해서 물었다.
《어머니, 형수님이 왜 그러시우?》
한씨가 빙그레 웃었다.
《이제 자네도 차차 알게 되네.》
《예? 그건?》
한씨가 큰소리로 자랑삼아 말했다.
《에라, 이왕 알게 될텐데 진작 말하자구, 자네들의 형수가 애기를 설었네.》
그러자 모두들 일어서서 환성을 질렀다.
봉산이 어느새 봉옥에게 달려와 손을 잡아 흔들었다.
《형수님, 첫애기는 꼭 떡돌같은 아들을 낳아야 해요.》
한씨가 봉산의 엉뎅이를 철썩 때렸다.
《이사람아, 그런 념려말구 오늘저녁에 네 색시 옷고름이나 잘 풀어주어라.》
그 말에 또다시 한바탕 웃었다.
잔치는 해가 서산에 기울무렵에야 끝났다.
모두들 헤여져서 제각기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가에 선 막동은 쌍쌍이 손잡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쩐지 이 모든것이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한달전만 하여도 이리저리 숨어다녀야 했던 자기가 아니였던가.
윤산이랑 만나서 이렇게 일생에 잊지 못할 행운이 차례졌던것이다.
우리를 못살게 구는 량반도 부자도 아전도 없는 이곳이 얼마나 좋은가.
막동에게는 문뜩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량반, 부자가 없으면 우리 노루골사람들이나 쇠부리마을사람들 그리고 세상사람들모두가 맘편히 살수 있지 않는가. 그런 세상은 과연 없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막동의 가슴은 어쩐지 울렁거렸고 하늘에 대고 무엇인가 막 웨쳐대고싶은 충동을 어쩔수 없었다.
막동은 흥분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가을의 푸른 하늘은 끝없이 맑고 청청하였다.
《뭘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고 한씨의 부름을 받고야 막동은 제 생각에서 깨여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흥분한 막동은 한씨에게 다가가 무작정 어머니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홍안의 젊은 시절엔 옻칠을 한것처럼 윤기가 돌던 어머니의 검은 머리가 이제는 희여져서 반백이 되였다.
막동은 그것을 처음 보는것 같았다. 하긴 언제 한번 모자가 모여앉아 서로 다정히 이야기도 나눌새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였으니 그것도 사실이였다.
《이제 보니 어머니의 머리가 몹시 희였군요.》
《원 자식두, 나이가 들면 머리가 희여지기마련이야.》
막동은 한씨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니예요, 어머닌 이 몇달사이에 나때문에 머리가 더 희여졌을거예요.》
한씨는 막동을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원, 그런 소릴 말아.》
《아니예요, 어머닌 나때문에…》 하고 막동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거리며 거쿨진 한씨의 손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한씨는 그러는 막동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막동아, 사내가 그렇게 마음이 여리면 큰일을 못한다. 이젠 네가 이 마을의 주인이나 다름없는데 이 에미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말어라.》
《알겠어요, 어머니.》
《그리구 이젠 네 동생들도 많이 생겼는데 그들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 내 윤산이랑 함께 여기로 오면서 보니까 그 애들이 모두 마음씨 착하구 여간 똑똑한 애들이 아니더라. 그러니 네가 맏이구실을 잘해야 할것 같다. 내 생각엔 그 애들한테 네가 아버지한테서 배운 무술이랑, 글읽는 법이랑 다 배워주는것이 좋겠다. 사내들이 녀자의 치마폭에 감겨들어있으면 머저리가 되는 법이니라.》
《명심하겠어요, 어머니.》
막동은 한씨를 우러러보았다.
지금까지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다 겪은 어머니의 말은 막동의 머리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아침 일찌기 일어난 막동은 마구간에 들어가 거름을 쳐내고 말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가 씩씩 코김을 불면서 걸탐스레 먹이를 먹고있는 말들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서있는데 윤산이며 봉산이, 수안이가 찾아왔다.
막동은 새삼스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몇번이나 자기들이 말사양을 하겠다고 나섰던걸 억지로 등을 밀어 집으로 들여보냈던 그들이다.
막동이도 속으로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 집을 짓고 살림살이준비를 하느라고 바삐 돌아간 그들이였다. 마침 색시들도 업어왔겠다 겸사해서 며칠간 푹 쉬게 한 다음부터 무술과 사냥하는 법을 배워주어 주인구실도 하게 하고 겨울나이준비도 하게 하자는것이였다.
《아니, 쉬지들 않구 왜들 나왔어. 여기 일은 걱정말구 어서 들어들 가서 푹 쉬게. 이제부터는 할일도 많은데 …》
윤산은 마구간에 흩어진 새초들을 걸이대로 모아놓으면서 말했다.
《형님, 이러다간 우리 발에 털이 나오겠수다. 오늘은 말을 우리가 볼테니 형님이 쉬시우.》
봉산과 수안이도 막동에게 권고했다.
《어서 그러시우.》
《여기 일은 걱정마세요.》
막동은 정겨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색시들을 하나씩 업어오더니 한결 더 의젓해진 그들이였다.
막동은 껄껄 웃으면서 그들의 어깨를 툭 쳤다.
《동생들이 색시들을 업어오더니 한결 의젓해졌는걸, 좋아 그럼 오늘부터 일을 시작하자구.》
《무엇부터 하자요?》
윤산이 물었다.
《오늘부터 동생들에게 무술을 배워주겠어, 얼른 집에 가서 옷들을 입구 여기로 오게.》
이 말에 그들은 너무 기뻐 껑충껑충 뛰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얼마 안있어 군복차림을 하고 말을 탄 그들이 훈련터인 새초밭으로 나가는데 봉옥이와 이순이, 갑녀와 을녀 등 녀인들이 마당에 나와 바래주었다.
한옆에서는 한씨와 정씨가 그들의 모습을 대견스레 바라보고있었다.
정다운 색시들의 바래움까지 받으며 말을 타고나가는 막동이네는 마치도 전장으로 나가는 군사들 같아 기분이 둥 떴다.
막동이 박차를 가하자 호함진 그의 말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뒤를 따라 세마리의 말들이 련달아 내달렸다.
막동이 칼을 빼들고 휘두르자 뒤따르는 윤산이네도 그가 하는대로 하였다.
그러기를 몇십번 하면서 동작을 숙련시켰다.
한바탕 땀을 흘리면서 훈련을 하고난 그들은 새초밭이 한눈에 보이는 둔덕에 올라 휴식을 하였다.
윤산과 봉산이, 수안이는 어찌도 눈썰미가 빠른지 막동이가 가르쳐주는 동작들을 능숙하게 습득했다.
바위우에 걸터앉은 막동은 흐뭇하였다.
마가을의 바람은 벌써 찬기운이 확연했으나 그들은 갑옷자락을 풀어헤치고 더운 몸을 식혔다.
모두들 앉아서 몸을 식히고있는데 유독 봉산이만은 새초밭에 벌렁 누워있었다.
그래 윤산이 웃으면서 한마디 하였다.
《봉산이, 장가들더니 영 맥을 못추는걸…》
그 말에 봉산은 팔딱 일어나면서 반박했다.
《체, 형님두… 형님과는 달리 난 기운이 더 솟는걸요.》
《정말?》
《정말아니문, 어디 나하구 씨름을 해보자요.》
《나하구 해보잔 말이야?》
《그래요.》
《좋아, 어디 해보자!》 하며 윤산이 일어섰다.
윤산과 봉산이가 서로 붙어안았는데 수안이 나서서 심판을 섰다.
시작을 알리는 수안의 신호가 떨어지기 바쁘게 봉산은 윤산을 번쩍 들어 배지기를 뜨더니 안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져 구경하던 막동과 수안은 어안이 벙벙해있었다.
윤산을 깔고앉은 봉산이 큰소리쳤다.
《자 어떠시우, 형님이 졌지요?》
《내가 졌어, 졌다니까…》 하고 윤산이 아우성쳐서야 봉산은 깔고앉은 윤산을 잡아일으켰다.
새초우에 앉은 윤산이 막동에게 말했다.
《형님, 저 봉산이가 혹시 그동안 갑녀의 옷고름을 풀어보지 못한게 아니요?》
막동이도 맞장구 쳤다.
《글쎄, 그런것 같기두 해. 하…하…》
봉산이 시틋해서 말했다.
《체, 윤산형님은 알지두 못하면서…》
《그럼 네가 풀어주긴 풀어주었단 말이냐?》 하고 윤산이 되물었다.
《그것도 풀지 못하면 그게 어디 사내요?》
《그래, 갑녀가 순순히 나오던?》
《그럴게 뭐요. 오물쪼물하길래 내가 잡아당겨 풀었지요.》
그 말에 막동은 봉산의 잔등을 철썩 치면서 웃었다.
《하…하… 괜찮아, 역시 봉산인 대장부답단 말이야.》
곁에서 함께 웃던 윤산이가 수안에게 물었다.
《수안이, 너도 풀어주었냐?》
수안은 얼굴이 뻘개지며 말을 못하고 머리만 긁었다.
윤산이 그러는 수안을 보고 놀려댔다.
《이제 보니 수안인 을녀의 옷고름을 풀어주지 못한 모양이구나.》
《난 옷고름을 풀어준다는걸 여직 몰랐어요.》
윤산이 펄쩍 뛰였다.
《저런, 이거 큰일났군. 그걸 모르다니…》
수안은 어줍게 웃으며 말했다.
《허지만 풀긴…풀었…지요.》
《그래?! 어떻게?》
《난…난 잘 몰랐는데 을녀가…》
그 말에 윤산이가 무릎을 쳤다.
《을녀가 풀었단 말이지? 하…》
막동이도 함께 웃으면서 수안을 놀려댔다.
《아하, 그렇다면 수안인 아무래두 을녀한테 무술을 배워야 할가부다.》
《그건 왜 그래요?》
《사내구실을 을녀가 했으니깐.》
《체, 그래두 사내야 사내지. 아무렴…》
《저것 보지. 그래두 속은 살았어…하…》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쉬고난 그들은 또다시 말을 타고 무술을 익혔다.
무술을 시작한지 열흘째되는 날이였다.
막동이 그동안 무술을 익힌것을 한사람씩 시험을 쳤다.
새초밭 여기저기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베여버리는 시험이였다.
랑군들이 무술시험을 친다는 소리를 들은 한씨를 비롯한 녀인들이 모두 새초밭에 나와 그것을 지켜보았다.
제일먼저 윤산이 말을 타고 달리는데 그는 날래고 능숙한 동작으로 나타난 허수아비들을 모조리 베여버렸다.
그 모습을 본 녀인들은 모두 박수를 치면서 윤산이보다 이순이를 더 칭찬했다.
다음으로 봉산이가 말을 타고 내달렸다. 그런데 그는 말을 너무 빨리 몰다나니 허수아비 한개를 놓쳐버렸다. 그렇지만 성적은 그만하면 괜찮았다.
말에서 내린 봉산이를 본 한씨가 그에게 다가갔다.
《봉산인 말을 너무 빨리 몰았어. 목표물에 다가갈 때는 속도를 좀 늦추라구.》
《알겠어요, 어머니.》
마감으로 수안이 말을 타고 내달렸다. 수안은 말의 속도조절도 잘하면서 어찌도 침착하게 칼을 쓰는지 나타난 허수아비를 모조리 베였다. 흠이라면 칼을 쓸 때 속도가 조금 뜬것이였다.
수안에게 다가선 한씨가 그가 잡은 칼을 쥐고 허점을 대주었다.
《수안인 칼을 쓸 때 손에 힘을 너무 주어. 손목에만 힘을 주고 팔에서는 힘을 빼야 칼쓰는 팔이 나근나근해진단다.》
《알겠어요. 어머니.》
막동은 어머니의 혈기에 넘친 모습을 보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봉옥이와 이순이, 정씨와 쌍둥이자매들은 한씨의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윤산이 한씨자랑을 늘어놓았다.
《어머닌 나라를 지키는 변방마을에 살고있던 처녀로서 말타기와 활쏘기, 칼쓰기랑 너무 잘해서 그때 사람들은 어머니를 보구 〈고구려처녀〉라구 불렀댔다우.》
《야, 그래요?》
녀인들이 한씨를 둘러쌌다.
며느리인 봉옥은 너무 기뻐 한씨의 품에 안겨들었다.
봉옥을 품에 안은 한씨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나두 젊어선 령감과 함께 말이랑 타보았는데 이젠 늙어서 마음뿐이지 몸이 잘 말듣지 않아. 허지만 이사람들이 무술을 배우는데는 나두 적극 나서겠다. 자고로 이 나라의 남정으로 태여났으면 무술은 알아야 한다고 했어.》
모두들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박수를 쳤다.
한씨가 녀인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우리 내인들도 사내들을 잘 받들어주기두 하구 짬짬이 칼쓰는 법이랑 익혀두는것두 나쁘지 않네. 나라를 지키자구 해두 그래, 우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두 그래 꼭 필요해. 그래 우리를 무지렁이같이 여기는 량반부자놈들이 우리를 가만 둘것 같나?》
《어머니말씀이 옳아요.》
《정말 그래요.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라구.》
모두들 한씨의 말을 긍정했다.
어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막동은 저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지금껏 행복한 생활에 도취되여 그저 맘편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기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어머니가 동생들에게 무술을 배워주라고 하던 말의 뜻을 뒤미처 안것이 부끄러웠다.
막동은 한씨앞으로 다가섰다.
《어머니, 어머니말씀을 명심하고 이제부터 무술을 더 잘 배우겠어요.》
한씨는 막동을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막동이네는 또다시 말을 타고 달리면서 무술을 익혔다.
물소리, 새소리만 울리던 한적한 골안에 말발굽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도 량반부자가 없는 무원골을 지켜가려는 그들의 웨침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