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무원골을 떠난 윤산이네가 막동의 어머니가 있는 수안 매골에 도착한것은 정오가 다될무렵이였다.
매골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동구길에 이른 그들은 머리에 썼던 갓을 벗어들었다.
무원골에서 여기까지 이백리남짓한 길이라 밤새껏 쉬지 않고 냅다 달리다나니 사람도 말도 모두 땀으로 미역감은듯 했다.
말우에 앉은 윤산은 매골마을을 굽어보았다.
쌀함박같이 움푹한 골안에 밭을 가운데 두고 량쪽산기슭으로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게딱지같이 마주붙어있다.
마을 한가운데 추녀가 높이 들린 기와집 한채가 눈에 띄웠다.
《음, 저 집이 매골 최부자네 집이로구나. 그러니 막동형님의 외삼촌네 집은 부자집에서 세번째 집이라니 저 집이로구나.》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던 윤산은 다시 갓을 쓰고 곁에 있는 수안과 봉산에게 말했다.
《동생들, 우리 이미 약속한대루 최부자네 집부터 들이치자구.》
《알겠수다.》
윤산이 먼저 말을 몰아 앞서달리고 그뒤로 수안이와 봉산이가 따라달렸다.
마가을에 가물든 행길에는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한적한 골안에서 때아니게 울리는 말발굽소리에 밭에서 곡식단을 나르던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윤산이네를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말을 탄채로 곧장 최부자네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때아닌 말발굽소리에 놀라서 최부자가 방문을 열고 마루우에 나섰다.
최부자는 작달막한 키에 배가 불쑥 나와 얼핏 보면 오또기같았다.
윤산이 최부자를 노려보았다.
《네가 이 마을 최부자냐?》
최부자는 쥐눈같이 작은 눈을 올롱하게 뜨고 대답했다.
《예, 그런데 어디서들…》
《난 도감영에서 내려온 형리이다. 이 마을에 살인을 친 놈과 내통한 놈이 있다기에 잡으러 왔다.》
《예-에?!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를…》
윤산은 그 말을 듣지도 않고 허리에 찼던 단검을 획 던져 마당가에서 돌아가는 닭을 맞혔다.
단검이 닭의 목을 꿰찔러나가자 그놈은 그자리에서 자빠져 푸득거렸다.
《우린 먼길을 달려왔으니 점심을 먹어야겠다. 주인장, 어서!》
윤산의 호령에 최부자는 굽석거리였다.
《예, 알겠소이다.》
그제야 윤산이 말에서 내려섰다.
윤산은 뒤따라내리는 봉산과 수안에게 호령했다.
《여봐라, 이 말들도 뭘 좀 먹여라.》
《알겠소이다!》 하고 봉산이 대답했다.
봉산이 부엌쪽으로 들어간 최부자를 찾았다.
《주인장, 주인장 어디 있어?》
그 소리에 최부자가 달려나왔다.
봉산이 그에게 호령했다.
《어서 이 말들에게두 먹이를 주라구.》
최부자는 연신 굽석거리면서 윤산이네가 하라는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마루우에 걸터앉은 윤산은 조소어린 눈길로 최부자가 돌아치는 꼴을 통쾌하게 바라보았다.
어느덧 최부자네가 마련한 푸짐한 점심상이 나왔다.
상우에는 삶은 통닭과 고사리채를 비롯한 갖가지 음식들이 올랐다.
땅딸보인 최부자는 불에 데운 술주전자를 들고나와 윤산이네를 성의껏 대접했다.
최부자가 부어주는 술을 단숨에 쭉 마신 윤산은 상우에 놓은 통닭을 잡아뜯었다.
봉산과 수안이도 한옆에 앉아 《형리》인 윤산을 조심하는체 하면서 배를 듬뿍 채웠다.
이렇게 최부자네 집에서 점심을 푸짐히 먹은 윤산은 마루우에 깔아놓은 돗자리에서 살가치를 하나 뜯어내여 이짬을 쑤시면서 최부자에게 훈시했다.
《이 마을에 한갑손이라구 있지?》
최부자가 공손히 두손을 맞잡고 대답했다.
《예, 있소이다.》
《그놈의 집에 가면 노루골에서 와서 사는 로친이 있을게다.》
《예, 있지요. 한갑손의 누이라든지…》
《애들아, 당장 가서 그 로친과 한갑손을 내앞에 끌어오라.》
《알겠소이다.》
봉산과 수안이 최부자를 앞세우고 한갑손의 집으로 갔다.
얼마후에 그들이 막동의 어머니인 한씨와 외삼촌인 한갑손을 데리고 대문앞에 나타났다.
마루우에 앉아있던 윤산은 마음속으로는 당장 달려나가 한씨의 두손을 잡고 반겨맞고싶었지만 짐짓 엄한 기상으로 마당으로 들어서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윤산이 토방아래 서있는 한씨와 한갑손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주인장!》
최부자가 굽석거리면서 앞으로 나왔다.
《예!》
《너희 집에 매채가 있겠지?》
《예, 있다마다요.》
《그럼 그걸 한아름 안고나와.》
《알겠소이다.》
최부자가 달랑거리면서 창고에 들어가서 매채를 한아름 안고나왔다.
마을의 부자이고 촌장노릇까지 하는 최부자라 그것으로 아마 무고한 백성들을 적지 않게 때렸겠구나 하고 생각한 윤산은 저도모르게 주먹이 쥐여졌다.
윤산이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친의 아들이 김막동이가 맞는가?》
한씨는 눈을 내리깐채 말했다.
《내 아들은 김막동이가 아니라 김일동이웨다.》
《그 막동인지 일동인지 한 놈이 고을관리들을 죽인걸 아는가?》
《글쎄요… 우리 아들은 죽었소이다.》
《막동이는 죽지 않았다. 지금 관가에 잡혀있단 말이다.》
《예-에? 살아있다구요?》
헤여진지 몇달이 되도록 소식이 없어 죽은줄로만 알았던 자기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에 한씨는 혹시나 막동이가 지금 마당 어딘가에 있는가 하여 얼굴을 들어 사방을 살폈다.
윤산은 얼른 머리를 최부자에게 돌리면서 소리쳤다.
《넌 이 로친의 아들이 살인을 친 놈이라는걸 알았느냐?》
최부자는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몰…몰랐소이다.》
《마을의 촌장이라는게 그런것두 모르는가?》
《예, 글쎄올시다.》
윤산이 최부자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여봐라, 당장 이놈의 볼기를 까구 되우쳐라!》
옆에 섰던 봉산이와 수안이가 《예잇-》 하고 달려나가 무작정 최부자를 껴안아 엎어뜨리고 벌건 볼기짝을 내놓았다.
최부자는 벌벌 떨면서 애원하였다.
《형리나리… 나리님, 제발 한번만 용서해주소이다.》
윤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나라의 신임을 받으면서 도적의 에미 하나 단속하지 못한 주제에 용서를 빌어? 저놈을 되우쳐라!》
《예-잇!》
봉산이가 먼저 내리쳤다.
《하나요-》
수안이가 연거퍼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둘이요-》
봉산과 수안이가 매채로 때릴 때마다 최부자는 연송 아우성을 쳤다.
최부자의 볼기짝이 갈라터져 피가 줄줄 나왔다.
이렇게 한 20대쯤 때려 최부자가 녹초가 되였을 때에야 윤산이 소리쳤다.
《그만! 너 이놈, 건달을 부린 네 죄를 알겠느냐?》
최부자는 늘어져서 대답조차 못하였다.
윤산이 꽥 소리쳤다.
《이놈이 아직 매를 덜맞은 모양이구나. 여봐라-이놈을 더 때려라!》
그제야 최부자는 땅바닥에서 벌벌 기면서 손을 싹싹 빌고 또 빌었다.
《형리님, 제… 제발 잘못했습니다.》
윤산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그렇겠지, 너 이놈 다시한번 그랬다간 다음엔 네 목부터 자르겠다. 알았느냐?》
《예… 알겠소이다.》
《그리구 이 도적놈의 에미는 우리가 잡아가겠다. 잡아가서 심문해보구 죄가 크거든 저놈두 마저 잡아가겠으니 단단히 정신차려라!》
윤산이 말하면서 한손으로 그곁에 있는 한갑손을 가리켰다.
《예… 알겠소이다.》
《여봐라, 저 도적의 에미를 오라줄에 묶어서 말에 태워라!》
《예-잇》 하더니 봉산과 수안이가 한씨에게 달려들어 두손을 묶고 검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그리고는 최부자네 마구간에서 끌어낸 말우에 훌쩍 들어올려 앉혔다.
윤산이 마루에서 내려서자 수안이 윤산의 말을 끌어다주었다.
말우에 올라앉은 윤산이 겨우 바지를 입고 서있는 최부자를 노려보면서 또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너 이놈, 내 말을 명심해서 듣거라. 알겠느냐?》
최부자는 억울하게 매를 맞고도 찍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굽신거렸다.
《예, 명심하겠소이다.》
윤산은 말머리를 대문쪽으로 돌려 천천히 걸어가면서 소리쳤다.
《자, 가자!》
봉산과 수안은 한씨를 태운 말을 가운데에 놓고 천천히 윤산의 뒤를 따랐다.
이때 한갑손이 한씨에게 다가서며 목메여 불렀다.
《누이-》
《갑손아-》
그바람에 봉산과 수안은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을 싸맨 한씨의 손을 잡은 한갑손이 울먹거렸다.
《누이, 부디 몸조심하시우. 이렇게 가면…》
한씨의 목소리는 오히려 태연하였다.
《갑손아, 울지 말아. 죽지 않으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잘있어라.》
《누이-》
오누이는 서로 손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
봉산과 수안은 어쩔줄 몰라하였다. 앞서가던 윤산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뭘 꾸물거리는거야, 빨리 가자. -》
봉산은 한씨가 탄 말고삐를 당기면서 말하였다.
《어서 헤여지시우.》
한씨가 탄 말이 움직이자 갑손은 그의 손을 놓으면서 눈굽을 찍었다.
《누이, 잘 가시라요.》
《오냐, 내 걱정을 너무 말아라.》
이윽고 그들이 탄 말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매골마을을 완전히 벗어나서 인적없는 산골길에 들어선 다음에야 그들은 말을 멈추고 한씨를 정히 말우에서 안아내렸다.
마흔줄에 들어선 한씨는 아직도 정정하였다.
윤산이 한씨에게 다가가 얼굴에 싼 보자기서껀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갓을 벗고 그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몹시 놀라셨겠어요. 윤산이 인사올려요.》
《?!…》
윤산은 일어서서 한씨에게 다가섰다.
《막동 어머니, 절 모르겠어요? 노루골 윤산이예요.》
그제야 한씨는 윤산을 알아보았다.
《아니, 이게 누군가? 송부자집 윤산이가 아닌가?》
《예, 그래요.》
《윤산아-》
《어머니-》
윤산은 한씨의 넓은 품에 와락 안기였다.
부모없이 송부자집 종살이를 하는 윤산이가 불쌍하다고 무엇이 하나 생겨도 윤산의 몫을 남겼다가 손에 쥐여주군 하던 한씨이다. 윤산은 한씨한테서 어머니의 사랑이란 어떤것인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였던것이다.
언젠가 윤산이 고열에 허덕이며 몹시 앓을 때였다.
그 누구도 돌보지 않고 행랑방에서 홀로 앓을 때 한씨가 며칠밤을 새워가면서 정성껏 간호해주었다.
그때 윤산은 한씨의 손을 잡고 엄마라고 부르면서 엉엉 울었다.
그러던 그들이 이렇게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곁에 선 봉산과 수안이도 그들의 상봉을 보느라니 불쑥 자기들의 어머니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젖어났다.
윤산은 한씨의 두손을 잡아흔들면서 기쁨에 넘쳐 말했다.
《어머니, 기뻐하세요. 막동형님이 살아있어요. 그것두 색시까지 척 데리구 커다란 집에서 살고있어요.》
한씨는 기가 막혀 말을 못했다.
다만 그의 눈만은 그게 정말인가 하고 물을뿐이다.
《어머니, 아까 우리가 말한건 다 거짓말이예요.》
그제야 한씨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지금 나랑 무원골에서 함께 살아요. 그래서 내가 어머니를 모시려 이렇게 왔어요. 어서 가시자요.》
윤산은 《형리》의 엄한 기상은 어디에다 줴버렸는지 어머니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어린애가 되여 마구 헤덤볐다.
봉산이가 옆구리를 찔러서 귀띔을 해서야 윤산은 손으로 이마를 쳤다.
《아차! 내 너무 좋은김에… 어머니, 알고계세요. 이 애들은 모두 막동형님의 동생들이예요. 우린 함께 살고있어요.》
《그래?!》
한씨는 봉산과 수안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한씨에게 허리굽혀 절을 하였다.
《봉산이라고 불러주세요.》
《수안이라고 불러주세요.》
한씨는 허겁지겁 그들에게 다가서서 손을 잡아 일으켰다.
《여보게들 반갑네, 반가워.》
《어머니-》
한씨는 봉산이와 수안이를 차례로 품에 안아주었다.
옆에서 빙그레 웃고있던 윤산이 한씨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젠 빨리 가시자요. 막동형님이 기다리고있어요.》
《어서 그러자구.》
이때 수안이가 말안장에서 옷보따리를 풀어가지고와서 윤산에게 내밀었다.
《윤산형님, 이걸 어머니한테 입히라요.》
윤산은 또 이마를 쳤다.
《아차, 내가 왜 이러니… 그걸 잊다니.》
수안이 빙그레 웃으면서 핀잔을 주었다.
《윤산형님은 지금 날아다니는 벌처럼 붕붕 떴수다. 그러다간 오늘 대사를 망칠수 있수다.》
윤산은 그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였다.
《네 말이 옳다. 내가 잘못했다.》
윤산은 한씨앞에 옷보따리를 내놓았다.
《어머니, 이 옷을 입으세요. 낮이 돼서 남의 눈에 띄울가봐 그래요.》
한씨가 옷보자기를 풀었다. 그속에는 군졸옷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달라붙어 한씨에게 옷을 입히고나서 머리에 벙거지까지 씌워놓고 한바탕 웃어댔다.
《야, 어머닌 꼭 장수같애요. 하…》
《아니, 꼭 막동형님 비슷해요. 하…》
한씨도 갑옷을 입은 제 모습을 보면서 오래간만에 환하게 웃었다.
윤산이 한씨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 말을 타고 달려야겠는데…나와 함께 타시자요.》
《그런 걱정은 말게. 나도 처녀때는 변방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사람이야. 우리 령감두 내 말타는 솜씨에 반해서 장가를 들었단다.》
윤산이네가 환성을 질렀다.
《야! 그래요? 그럼 됐어요. 어머니!》
한씨가 솜씨있게 말잔등에 올라앉았다.
《내 처녀때 별명이 뭐였던지 아나?》
《무엇이였나요?》
《말을 잘 탄다구 해서 〈고구려처녀〉라구 했지.》
《〈고구려처녀〉요? 거 정말 신통해요.》 하고 윤산이 환성을 질렀다.
한씨는 오래간만에 말을 타서 처녀시절의 기운이 되살아났는지 호기있게 윤산이네한테 말하였다.
《자, 한바탕 달려보질 않겠나?》
《어머니가 먼저 달리세요.》
《그러자구. -》
한씨가 박차를 가하자 그가 탄 말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뒤를 따라 윤산이네가 내달렸다.
평보로 달리던 말이 점차 네발굽을 올리면서 구보로 내달렸다.
말을 타고 몇십리를 실히 달린 한씨가 점차 속도를 늦추었다.
뒤따르던 윤산이네도 속도를 늦추고 한씨곁으로 다가왔다.
윤산이 감탄이 어린 눈길로 한씨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말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예요.》
《이젠 타본지 오래서 몸이…》
《그래두 아직은 웬간한 남정들은 찜쪄먹겠어요.》
《허… 허, 그래 지금 우리 막동인 어떻게 지내냐?》
윤산은 한씨에게 그사이 막동에게서 있었던 일들을 신이 나서 말했다. 윤산의 말을 듣는 한씨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자기를 매골에 데려다놓고 어디 가서 자리를 잡은 다음 다시 오겠다던 막동이가 몇달째 소식이 없어 관가에 잡혀가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다고만 생각해오던 한씨였다.
무슨 일만 생기면 길한 생각보다 불길한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것이 사람의 성정이라 한씨는 지금껏 막동을 놓고 길한 생각은 꼬물만큼도 하지 못했던것이다.
그러던 한씨가 윤산에게서 막동의 소식을 들으니 어찌 꿈을 꾸는것 같지 않으랴. 게다가 고운 색시까지 얻어서 살림까지 폈다니 한씨는 한시라도 빨리 아들, 며느리를 만나보고싶었다.
그들은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을 몰아갔다.
보금자리인 무원골까지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