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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팔을 묶이운 리악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문앞으로 형리가 다가와 꽥 소리쳤다.
《리악이, 이리 나와!》
그 말을 들은 리악은 눈앞이 아찔했다.
분명 오늘로써 자기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며칠전에 김막동을 놓치고 고을 관리인 형방마저 목없는 귀신이 되는통에 그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옥에 갇힌 리악이였다.
그런데 지금껏 찾지 않다가 갑자기 형리가 나타나서 찾는걸 봐서는 자기 목을 자르려고 그러는것이 분명하였다.
리악은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푹 떨구었다.
(아, 지금까지 막동이 그놈을 잡느라고 게바라다닌게 모두 허사로 되였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리악의 눈앞에는 형방을 죽게 했다고 함께 갔던 군사들을 동헌마당에 설치한 형틀에 매여놓고 그들의 볼기를 사정없이 두들겨패면서 으르렁거리던 사또의 험상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 내 목숨이 여기에서 끊어진단 말인가?)
이때 형리의 목소리가 또 울려왔다.
《뭘 꾸물거려, 빨리 나오라!》
그제야 리악은 죽으러 가는 황소마냥 뜨직뜨직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옥문을 나서자 형리가 다가와 손에 묶은 오라줄을 풀어주면서 퉁명스레 소리쳤다.
《오늘부터 넌 석방이다. 지금 사또께서 찾으니 어서 동헌으로 가라!》
리악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이자 형리가 무엇이라고 했던가, 석방한다고 말했던가? 아니야, 그럴수 없어. )
리악은 굳어진듯 서있었다.
《이놈이 정신나간게 아니야? 왜 뒤간말뚝처럼 뻗치구 서있어!》
형리가 꽥 소리쳤다.
리악은 제정신을 차리고 군수가 있는 동헌으로 달려갔다.
동헌의 대문앞에서 리악은 뜻밖에도 군
리악은 제 애비를 보자 어쩐지 눈물이 불쑥 나왔다.
그는 땅바닥에 넙적 엎드리면서 목메인 소리로 애비를 찾았다.
《아버지-》
리현손은 말없이 리악의 두손을 잡아일으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코와 볼따귀에는 아직 피더덕이 붙어있고 입술은 터진채 아직 아물지도 못한 아들의 얼굴을 보는 리현손의 속에서는 밸이 꿈틀거렸다.
리악은 그러는 애비앞에서 쿨쩍거리면서 울었다.
《다 큰 녀석이 애새끼들처럼 울긴… 그쳐라!》
애비의 훈시에 리악은 주먹으로 눈을 뻑 씻었다.
리현손은 아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훈시했다.
《이녀석아, 어떻게 하든 앙갚음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쿨쩍거리구 다녀? 어서 군
그 말에 리악은 언제 울었는가싶게 입이 쩍 벌어졌다.
《야, 이제부터 그 령감이 하라는 대로만 해라. 그 령감 입이 얼마나 큰지 널 빼내느라 집재산이 다 털렸다.》
《고맙사와요, 아버지.》
《그 령감을 만나구 갈 때 집에 한번 들려라. 네 에민 네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구 기절초풍했다.》
《알겠사와요.》 하고 리악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애비와 헤여진 리악이 대문을 열고 동헌뜨락에 들어서니 마침 군
그앞으로 다가간 리악은 대돌밑에 엎드렸다.
《군졸 리악이 군수님의 령을 받고 대령하였소이다.》
그소리에 군수는 머리를 들어 리악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엄하게 꾸짖었다.
《너 이놈, 네 죄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리악은 땅바닥에 코를 박은채 벌벌 떨었다.
《그래 네 죄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말이다!》 하고 군수가 또 호통쳤다.
《소인이 죽을 죄를 졌는줄 아옵니다.》
《그래 네가 말한 죽을 죄란게 무엇이냐, 말해봐라.》
《살인을 친 김막동을 붙들었다가 놓친거구 또 형방어르신을 모가지없는 귀신으로 만든것이옵니다.》
《그놈 말버릇이 고약하군, 형방을 모가지없는 귀신이라구? 안되겠다. 거 형리없느냐?-》
군수의 호령에 형리가 달려와 그앞에 섰다.
군수가 형리에게 호령했다.
《저놈이 아직 정신이 덜 들었다. 형방을 모가지없는 귀신이라고 모욕한 저놈에게 매 열대를 쳐라!》
《예잇-저놈에게 매 열대를 쳐라!》 하고 형리가 소리쳤다.
그러자 사령들이 매채를 들고나와 땅바닥에 엎드린 리악을 끌어다가 형틀우에 엎어놓고 볼기를 깠다.
리악은 눈앞이 아찔했다. 입덮개를 잘못 열어 매를 맞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하였던것이다.
형틀에 엎드린 리악은 발버둥질쳤다.
《사또님, 제가 잘못했소이다. 한번만 살려주소이다, 사또님!》
마루우에서 그 모양을 내려다보던 군수가 또 소리쳤다.
《너 이놈, 다시 그런 악다구니질을 하겠느냐?》
리악은 엎드린채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소이다. 한번만 용서해주시나이다.》
리악의 애비인 리현손에게서 약차하게 뢰물을 받아삼키고 리악을 빼주겠다고 약조를 한 군수인지라 형틀우에서 발버둥질하는 리악을 보면서 흉물스럽게 웃으며 소리쳤다.
《여봐라, 저놈이 제발 잘못했다고 하니 용서해줘라!》
그 호령소리에 사령들이 형틀에 매인 리악을 풀어주고 일으켜세웠다. 리악은 풀어진 바지춤을 붙잡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군수는 리악을 노려보면서 또다시 엄하게 소리쳤다.
《너 이놈, 다시 량반을 야료했다간 이번엔 목을 치겠다. 알겠느냐?》
《예, 예… 알겠소이다.》
《이놈아, 네놈의 잘못으로 고을 관리가 도적들한테 목을 잘리웠으니 그것만으로도 네놈의 목을 베야 하는거다. 네놈을 살려놓는건 네가 막동이놈두 알구 그와 작당질한 놈들두 알고있기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네가 그놈들을 꼭 붙들어 내앞에 갖다놓아라. 알겠느냐?》
《알겠소이다.》
《내 그놈들을 잡으라구 네놈을 방아역 역리로 보내니 당장 거기에 가서 틀구앉아 길목을 지키고있어라. 이번까지 그놈을 놓쳤다간 네 목이 무사치 못한줄 알아라.》
그 말에 리악은 깜짝 놀랐다. 방아역이라면 수안과 봉산쪽을 련결하는 길목이요, 고을의 역들중에서 노란자위였다.
그런데 그 역의 우두머리로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아 입이 쩍 벌어졌다.
《고맙소이다. 내 모가지를… 아니, 목숨을 걸구 그놈들을 잡아내겠소이다.》
군수는 한자리를 받고 너무 좋아 벌쭉거리는 리악을 꾸짖었다.
《이놈아! 아가리를 다물어라. 그 누런 이발 보기도 싫다.》
리악은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군수는 손을 획 저으면서 말했다.
《너 이놈, 네 주제에 한자리 한다구 좋아할 겨를이 있냐? 네놈때문에 형방의 색시는 후실로 들어와서 열흘도 못 채우고 생과부가 됐는데… 임지로 가는 길에 문안이라도 해라! 이젠 가봐라.》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리악은 연신 허리를 굽석거리면서 인사를 하고 동헌문을 빠져나왔다.
대문밖에 나선 리악은 한숨을 크게 내쉬였다.
입방아를 한번 잘못 찧었다가 곤장 열대를 맞을번 했던것을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했다.
리악은 매라도 맞은것처럼 제 볼기짝을 손으로 문대면서 어디로 갈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문득 그의 귀전에는 방금 욕을 퍼부으면서 형방의 집에 들려 문안이라도 하고 가라고 하던 군수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잔치집이면 몰라라 상사를 치른 집에 찾아가는것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혹시 들리지 않고 갔다가 후날 군수한테 꾸중을 받고 곤장이라도 맞을걸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리악은 골살을 찌프리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죽은 형방의 집앞에 이른 리악은 대문 짬으로 집안의 동정을 살폈다.
마당에서 녀종 하나가 키질을 하고있을뿐 별다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죽은 형방 오대구는 석달전에 본처가 병으로 죽었다. 그래서 후실로 봉산관청에서 기생을 하던 젊은 녀자를 데려왔는데 데려온지 열흘만에 오대구는 목없는 귀신이 되였던것이다.
대문에서 얼굴을 뗀 리악은 또다시 한숨을 후-하고 내쉬였다.
죽은 사람을 놓고서 문안을 한다는노릇이 딱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그렇다고 문안을 하지 않고 그냥 갔다가는 군수가 안 갔다는 말 한마디를 가지고 트집을 잡을건 뻔하였다.
이것저것 생각하자니 리악의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 하고 생각하며 리악은 소리쳤다.
《게 누구 없느냐?》
형방네 집 대문이 빠금히 열리더니 마당에서 키질을 하던 녀종이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누구를 찾으시오이까?》
《마님이 계시냐?》
《있사와요.》
리악은 짐짓 헛기침을 하고나서 틀을 차리면서 말했다.
《나는 방아역 역리 리악이다. 마님을 문안하러 왔다고 여쭈어라!》
《알겠사와요.》 녀종이 대문을 닫고 들어갔다.
잠시후에 녀종이 다시 나와 대문을 활짝 열었다.
《마님께서 들어오시라 하시와요.》
리악은 녀종을 따라 형방의 후실이 거처하는 방문앞에까지 다가갔다.
문앞에서 녀종이 방에 대고 말했다.
《마님, 손님을 모셔왔소이다.》
방안에서 부스럭소리가 나더니 집주인녀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손님을 들여보내거라!》
녀종이 문을 열자 리악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선 리악은 주인녀자를 보자 주춤거렸다.
그는 방금 잠을 자다가 일어났는지 머리를 빗지 않고 속옷차림으로 앉아있었다. 얼핏 보니 얼굴이 해반주그레한 젊은 녀자였다.
리악은 그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하였다.
《마님, 얼마나 상심하시겠소이까?》
주인녀자는 한동안 말없이 방바닥에 엎드린 리악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를 악물고 리악의 두어깨를 와락 거머쥐였다.
《이놈, 네가 리악이라지? 내 령감을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는가 말이야!》
리악은 주인녀자에게 두어깨를 잡히운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는 더욱 승이 나서 악악거렸다.
《이놈아, 갑자기 벙어리가 됐어? 내 령감은 네놈때문에 죽었단 말이야.》
그 말에 리악은 속이 울컥했다. 군수에게서 이놈, 저놈 하면서 상놈취급을 당한것만 해도 분해죽겠는데 이건 새파랗게 젊은 년이 이놈, 저놈 하니 밸이 솟구쳤다.
리악은 밸을 참고 두손으로 주인녀자의 손을 잡으면서 위로하였다.
《마님, 진정하소이다. 사실은…》
주인녀자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리악을 잡아흔들었다.
리악은 펄펄 뛰는 주인녀자를 두팔로 걷어안았다.
그러자 주인녀자의 젖가슴이 그의 얼굴에 와닿았다.
뭉클하는 녀자의 살이 몸에 닿자 리악은 그 경황속에서도 오래간만에 녀자의 살과 맞대여보는지라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리악은 악악거리는 주인녀자를 더욱 억세게 그러안아 꼼짝못하게 하였다.
주인녀자도 오래간만에 남자의 품에 안기고보니 좋아서인지 아니면 한동안 악을 써서 기운이 빠져서인지 리악의 품에 안겨 욕설을 더 퍼붓지 않고 양양거리기만 하였다.
그럴수록 리악은 주인녀자의 몸뚱이를 더욱 힘있게 그러안았다.
《마님, 죽은 사람을 내가 어떻게 살려내겠소. 대신 내가 마님을 돌봐주겠소이다.》
《어떻게 돌본단 말이냐? 어떻게?》
리악은 얼굴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띠웠다.
《내가 자주 마님을 찾아뵈오면 될게 아니오이까. 걱정마시구 어서 진정하시오이다.》
리악의 얼리는 말에 그 녀자도 다소 성이 풀렸는지 더는 양양거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리악은 품에서 그 녀자를 떼여놓았다.
리악의 품에서 벗어난 그 녀자는 풀썩 이불우에 주저앉았다.
리악은 구겨진 옷을 바로잡으면서 말하였다.
《내 앞으로 마님을 잘 돌봐줄테니 마음을 놓으시우.》
《그런 속에 없는 소리는 듣기도 싫어.》
리악은 펄쩍 일어서면서 맹세했다.
《이건 내 진정이오이다. 그럼 난 물러가겠소이다.》
그 녀자는 눈을 올롱하니 뜨고 리악을 쳐다보았다.
《그대론 못가, 남의 몸을 망쳐놓구.》
《몸을 망쳐놓다니요?》
《그래 내몸을 그러안은건 망쳐놓은것과 무엇이 달라?》
《그럼 마님은?…》 하며 리악은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녀자의 눈에서는 정욕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그제야 그 녀자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리악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순간 당장 방아역을 틀고앉으라고 호통치던 사또의 목소리가 귀전에 쟁쟁히 들려오는듯싶었다.
리악은 마음을 다잡고 집주인녀자에게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다.
방아역으로 향하는 리악은 지금껏 온전한 녀편네 하나 정하지 못하고 살아온 제 처지가 가긍하다는 느낌이 불쑥 들었고 이제라도 녀편네를 얻고 온전히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