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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내외의 호젓한 배웅을 받으면서 길을 떠난 막동과 봉옥은 어서 빨리 마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부지런히 숲속길을 헤쳐갔다.
막동은 뒤따르는 봉옥의 손을 꼭 잡은채 머리를 수그리고 앞서 숲을 헤쳤다. 새벽이슬을 함뿍 머금은 숲은 그들에게 사정없이 물을 뿌려주었다.
새벽내껏 숲을 헤치면서 산봉우리를 서너개 넘었을무렵에야 해가 솟았다.
그러다나니 그들은 모두 땀과 이슬에 젖어 물참봉이 되고말았다.
숲속을 빠져나와 해빛이 흘러드는 양지바른 둔덕이 나지자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막동은 등에 진 고리짝을 땅우에 벗어놓고 한숨을 돌리였다.
《봉옥이, 여기서 좀 쉬고가자구.》
《그러시와요.》 하며 봉옥은 막동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숲속길을 급히 걸어온 그들의 얼굴에서는 김이 물물 피여올랐다.
막동은 옆에 앉은 봉옥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 얼굴을 닦고있던 봉옥은 막동의 눈길이 자기에게 미치는것을 깨닫자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고운 눈을 할기였다.
《아니, 처음 보는 사람처럼 왜 그렇게 보시나요?》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봉옥이가 너무도 고와서 그래.》
《아이참, 아니, 저 땀…》 하면서 봉옥은 수건으로 막동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막동은 그러는 봉옥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다가 그를 불쑥 가슴에 껴안고 볼을 비볐다.
보면볼수록 사랑스럽고 껴안아주고싶은 봉옥이였다.
막동의 품에 안긴 봉옥도 가쁜숨을 몰아쉬면서 막동의 머리칼에 붙어있는 검불들을 하나하나 뜯어주었다.
얼마있다가 봉옥은 몸을 불쑥 일으키면서 물었다.
《몹시 시장하시지요?》
그때에야 비로소 시장기를 느낀 막동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봉옥은 자기의 허리춤에서 외삼촌어머니가 넣어준 밥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풀었다.
몸에 품고와서인지 보리밥에서는 아직도 김이 몰몰 새여나왔다.
어느새 싸리나무꼬챙이를 꺾어온 막동은 봉옥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들은 아직도 온기가 나는 보리밥을 그속에 넣은 고추장에 발라 서로 권하면서 다정하게 먹었다.
밥을 거의다 먹었을무렵 막동은 꺽 하고 딸꾹질을 하였다.
봉옥은 《이를 어쩌나, 덤벼치면서 오다나니 물을 못 가져와서…》 하며 송구스러워 하였다.
길을 떠날 때 물같은건 응당 녀자가 꾸려야 하는건데 그렇게 하지 못한 자책감에서 하는 말이였다.
막동은 일없다는듯 머리를 흔들면서 주위를 살피다가 불쑥 일어나 앞에 서있는 나무가지에 엉켜있는 다래덩굴을 보더니 그곳으로 다갔다.
허리춤에서 칼을 꺼낸 막동은 굵은 다래덩굴을 뚝 잘랐다.
그러자 덩굴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봉옥이, 어서 와서 물을 마셔!》
봉옥이 다가서자 막동은 물방울이 슴새여나오는 다래덩굴 한쪽을 그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기 입에 물고 물을 빨아먹었다.
아침밥을 다 먹은 그들은 양지쪽에 나란히 앉았다.
따스한 해볕은 그들의 옷자락을 다정히 어루만지면서 김을 몰몰 피여올렸다.
막동은 옷자락에 피여오르는 김을 바라보면서 봉옥에게 물었다.
《봉옥이, 나때문에 힘들지?》
봉옥은 막동을 쳐다보면서 눈을 흘겼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난 일없어요.》
막동은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나같은걸 만나서 평생 이렇게…》
봉옥은 어느새 막동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언제나 당신의 그림자가 될테야요. 어디 가두 졸졸 따라다니는 그림자, 좋지요?》
막동은 봉옥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봉옥이 고마와.》
봉옥은 생긋이 웃으면서 막동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봉옥을 품에 안은 막동은 오래도록 그의 잔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간밤에 별로 깊은 잠에 들지 못했던 그들은 아침밥을 먹고나니 식곤증까지 몰려와 서로 부둥켜안은채 솔곳이 잠에 들었다.
가을하늘의 해빛은 그들에게 따뜻한 빛을 뿌려주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행복의 웃음을 짓고 자고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을 해치려드는 놈들까지도 그앞에서는 감히 손이 떨려 어쩔수 없게 하는 평온하고 다정스러운 모습이였다.
지금 그들은 자기들앞에 어떤 불행이 닥쳐오는줄 전혀 모르고있었다.
이들이 행복의 꿈나라에서 한창 헤매고있을 때였다.
그앞으로 털벙거지를 쓴 두억시니같은 놈이 발볌발볌 다가와 살펴보더니 숲속으로 얼굴을 돌리고 손짓했다.
그는 다름아닌 리악이였다.
그의 신호를 받은 군졸들이 숲속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살며시 빠져나와 한창 자고있는 그들을 에워쌌다.
뒤따라 나온 형방 오대구는 리악에게 막동이가 맞는가고 눈짓했다.
리악은 틀림없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오대구는 장검을 빼여들고 봉옥이를 품에 안고 자는 막동의 앞에 버티여섰다.
곁에 섰던 리악이 히죽이 웃으면서 막동을 덮치려고 다가들자 오대구는 그의 덜미를 쥐고 비키라는듯 눈짓을 했다.
오대구는 히물히물 웃으면서 칼끝으로 막동의 턱을 툭툭 쳤다.
그제야 잠에서 깨여난 막동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다가 자기앞에 웬 사람들이 서있는것을 보고 눈을 번쩍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바람에 봉옥이도 깨여났다.
오대구는 히죽이 웃으면서 빈정거렸다.
《이놈이 팔자가 좋은데, 아릿다운 계집을 척 끼구 낮잠을 자는걸 보니, 히… 히.》
놈들에게 포위되였다는것을 감촉한 막동은 황급히 봉옥의 손을 잡고 일어서려고 하였다.
이때 그들의 머리우로 군졸들이 창을 가로세로 질러놓았다.
오대구는 꽥 소리쳤다.
《야, 이놈들을 묶어라!》
두명의 군졸들이 제각기 막동과 봉옥에게 달려들어 오라줄로 팔목과 온몸을 빙빙 돌려가며 묶었다.
순간 막동의 눈앞은 아찔했다.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
막동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주먹을 꽉 움켜쥐였다.
막동은 자기의 머리우에 드리운 창을 치받아넘기면서 일어섰다. 허나 두팔이 꽁꽁 묶인 몸인지라 어쩔수 없었다.
막동은 자기앞에 칼을 빼들고 선 오대구를 쏘아보며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오대구는 꽁꽁 묶이운 막동을 깨고소하게 바라보면서 빈정거렸다.
《아하, 이거 인사가 늦었군. 나로 말하면 고을의 치안을 맡은 형방 오대구일세. 그래 무슨 의견이 있나?》
《형방이라면 고을에서 손꼽히는 어른인데 내 한가지 청을 올릴게 있소.》
《어서 말하라구.》
《죄없는 내 안해는 풀어주시오.》
오대구는 온몸이 묶이운 봉옥이를 넌지시 바라보다가 제까짓 녀자가 도망이야 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자기의 위세를 돋구려고 그랬는지 막동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얘들아, 계집을 풀어주라!》
옆에 섰던 리악이 거적눈을 번쩍 뜨면서 항의하듯 말하였다.
《아니 형방어른, 이년을 풀어주면…》
《무슨 잔말이 많으냐, 어서 풀어주라!》
군졸 한명이 봉옥의 몸에 묶었던 오라줄을 벗겨주었다.
그 모양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오대구는 막동에게 돌아섰다.
《너의 요구대로 풀어주기는 했으나 네 색시도 우리와 함께 가야 하겠다. 심문을 해보고 죄가 없으면 놓아줄테다.》
《…》
막동은 말없이 봉옥을 지켜보았다. 자기에게 달려와 매여달리며 울며불며 할줄로 생각했던 봉옥은 막동이보다 더 태연하게 서서 둘러싼 군졸들을 쏘아보면서 흩어진 옷매무시를 바로잡고있었다.
봉옥의 태연한 모습을 바라보는 막동의 가슴은 뭉클했다.
봉옥은 막동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호수같이 맑고 그윽한 그의 눈길은 자기 걱정은 말라고 타이르는듯싶었다.
이윽고 그들은 군졸들에게 포위된채 관가로 가는 행길에 들어섰다.
말을 타고 일행의 앞에서 걸어가는 오대구는 범을 잡은 포수마냥 기고만장하였다.
오대구의 눈앞에는 자기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큰상을 내리는 군
(흐흐, 이제 저놈을 잡아다바치면 내 벼슬자리도 무난할게구 또 상도 듬뿍 줄테지, 어떤 상을 줄가? 혹시 전번에 호방이 탄것과 같은것을?…)
오대구의 눈앞에는 며칠전 일이 떠올랐다.
…황해도관찰사가 왕에게 바치는 별진상품을 마련하라는 령이 고을에 떨어졌다.
별진상품이란 특별히 따로 마련하는 진상품인데 주로 호랑이가죽, 사슴가죽들이였다.
이 소임을 맡은 수안고을 호방은 백성들로부터 짐승가죽을 받아내느라고 눈이 새빨개서 돌아쳤다.
원래 약삭바르고 타산에 밝은 놈이라 백성들을 어찌도 들볶으며 뒤져냈는지 단 며칠사이에 도감영에서 내려보낸 수량보다 곱절이나 되는 가죽들을 그러모았다.
이것을 안 수안군수는 호방의 글겡이질솜씨를 칭찬하면서 그에게 특별히 일등품인 호랑이가죽을 상으로 주고 그달 관리들의 성적평가에서 상점을 주었다.
성적평가에서 상점을 맞으면 군수가 차린 특별잔치참석은 물론이요 그에 따르는 상을 또 타게 되였으니 그것만 해도 한밑천 든든히 잡는판이라 그야말로 호방은 떡함지에 통채로 엎어진셈이 되였었다.
옆에서 백성들을 긁어내여 요란한 상을 탄 호방을 지켜보는 오대구는 은근히 시샘이 나서 속앓이를 할 정도였던것이다.
이렇게 상을 탈 생각에 잠겨있던 오대구는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비로소 생각에서 깨여났다.
뒤따르는 행렬속에서 리악이 고아대는 소리였다.
막동과 봉옥을 발견한 다음부터 그들에게 앙갚음을 하지 못해 앙앙 불락하던 리악은 온몸이 묶이운 막동을 다정히 껴안고 태연하게 걸어가는 봉옥을 보자 드디여 속에서 끓던 분노가 터져나왔다.
다짜고짜로 봉옥에게 달려든 리악은 그의 머리끄뎅이를 움켜잡고 옆으로 내동댕이치면서 고아댔다.
《이 쌍년아, 옆에서 떨어져 걸어라!》
그바람에 봉옥은 길바닥에 쓰러졌다.
또다시 봉옥에게 달려든 리악은 그의 어깨를 마구 짓밟으면서 고아댔다.
《내 너같은 쌍놈들한테 코가 깨진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죽겠다. 이 쌍년아!》
미친듯이 날뛰는 리악을 보는 순간 막동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온몸이 묶이운채 두주먹을 부르르 떨던 막동은 몸을 뒤틀면서 소리쳤다.
《이놈아! 그만 두지 못할가!》
《뭐야? 이 쌍놈아!》 하며 리악은 막동에게 달려들어 그의 면상으로 주먹을 날렸다.
막동이 날래게 몸을 피하자 리악은 허공에 손을 날리면서 비칠거렸다.
그찰나에 막동은 몸을 들어 모두발뜀을 하면서 두발로 리악의 등허리를 걷어찼다.
리악은 썩은 나무 넘어가듯 길바닥에 모가지를 틀어박으면서 나딩굴었다.
땅바닥에 뻑 쓸린 리악의 얼굴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흙과 피로 범벅이 된 리악은 그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또다시 악악거리면서 막동에게 달려들었다.
막동은 몸을 피하면서 리악의 정갱이를 걷어찼다. 그리고는 묶이운 몸으로 앞으로 내달리며 리악에게 달려들어 두발로 련달아 걷어차면서 소리쳤다.
《이 더러운 놈아, 죽어라!》
리악은 땅바닥에서 이리저리 막동이 발길질하는대로 굴러다니며 악악거렸다.
《아이구- 쌍놈이 사람친다!》
여러명의 군사들이 막동에게 달려들어 제지시켜서야 막동은 발길질을 그만 두고 씩씩 황소숨을 내쉬였다.
땅바닥에서 말똥굴러가듯 걷어채운 리악은 또다시 일어나 칼을 들고 막동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사이에 달려왔는지 오대구가 장검으로 리악이가 잡은 칼을 내리쳤다.
《이게 무슨 미친짓이냐! 그만 두지 못할가!》
오대구의 불호령소리에 리악은 피가 흐르는 얼굴을 한손으로 씻으면서 칼을 내리고 씩씩거렸다.
오대구가 리악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리악이! 너 이놈, 대사를 망치려고 그러느냐? 얘들아! 당장 이놈의 두팔을 묶어라!》
군졸들이 달려들어 리악의 두팔을 묶었다.
리악은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고아댔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오대구는 쓴웃음을 지었다.
리악의 어리석은 행동이 가소롭기도 하였고 한편 지금까지 막동에게서 코가 깨지고 얼굴이 쓸리워 상판경치가 볼품없게 된 그의 속마음을 알만 하기도 해서였다.
리악은 두팔이 묶이운채 피가 흐르는 얼굴을 마구 휘두르면서 계속 고아댔다.
《아이구 형방어른, 내가 무슨 죄가 있다구 묶으시우? 난 저놈들과 회계를 해야겠수다. 이 팔을 풀어주시우.》
오대구는 낯을 찌프리고 고아댔다.
《저놈의 아가리에 자갈을 물려라!》
리악은 아가리에 천뭉치를 틀어박았는데도 무엇이라고 끙끙거리면서 몸을 뒤틀었다.
리악이로 하여 한바탕 소요가 일어났던 일행은 또다시 길을 떠났다.
퍼그나 길을 걸어 행렬이 자그마한 역참마을을 지나가게 되였다.
역앞에 있던 역졸들과 주변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일행을 보고있었다.
앞에서 말을 타고 가고있던 오대구는 속으로 으쓱해서 견마잡이군졸에게 모두 물러가게 하라고 훈시했다.
견마잡이는 털벙거지를 흔들거리면서 소리쳤다.
《모두들 물렀거라! 수안고을 형방어른의 행차이시다!》
견마잡이의 호령소리에 모여온 사람들은 모두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오대구는 말우에서 허리를 굽힌 사람들의 등허리를 흐뭇해서 쳐다보며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지나갔다.
모여선 사람들속에서 삿갓을 눌러쓴 웬 젊은이가 묶이워서 걸어가는 막동을 눈여겨 바라보고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약간 놀라운듯 한 인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누가 자기를 알아보지 않았나 해서 주위를 살피더니 삿갓을 푹 눌러쓰고 황급히 그자리를 피하였다.
그로부터 서너개 마을을 지나서야 일행은 잠간 쉬고 또다시 길을 떠났다.
앞서가는 오대구는 어서 빨리 막동을 관가에 끌고갈 생각이 앞서 점심참이 지났는데도 밥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일행을 내처 몰아댔다.
어느덧 일행은 고을관가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고개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고을이 가까와질수록 조급증이 더해난 오대구는 왜 이리 꾸물거리느냐고 고아대면서 빨리 걸으라고 독촉이 불같았다.
이때 고개마루쪽에서 말을 탄 세명의 군사가 장검을 빼여들고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세 일행중에 맨앞에서 오던 군사가 오대구앞에 다가가 말을 멈추었다.
《네가 수안고을 형방인가?》
그 물음에 오대구는 말을 멈추고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그… 그렇소. 그런데 당신은?》
《난 도감영에서 온 형리요. 김막동이란 놈을 잡아서 도감영에 이송하라는 관찰사령감의 령을 받고 왔소.》
《그렇소이까? 예, 지금 그놈을 잡아가지고 오던 길이오이다.》
도감영에서 온 《형리》는 꽁꽁 묶이여 서있는 막동이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음, 저놈이 막동이란 놈이냐?》
《예, 그렇소이다.》
《그옆에 있는 계집은 누구냐?》
《저놈의 처올시다.》
《음… 살인을 친 주제에 색시까지 달구다닌단 말이지, 괘씸한 놈…》
《형리》는 막동과 봉옥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오대구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형방 듣거라! 저놈을 우리한테 넘기라. 이제 당장 끌어가겠다.》
막동을 넘기라는 말에 오대구는 눈을 번쩍 떴다.
제아무리 도감영에서 왔다 하더라도 막동을 막 넘겨줄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떻게 잡은 놈이라구 저놈을 막 넘겨주었다가 군
《그렇게는 못하오이다. 저놈은 우리 고을관내 사람인것만큼 먼저 고을 형방에서 심문을 한 다음 넘겨도 넘겨야 하오이다.》
《뭐라구? 내 방금 군
오대구는 가느다란 목대를 약간 기울였다.
(고집이 소힘줄같고 한양량반들을 등대고 뻗대기를 잘하는 군
오대구는 마주선 도감영의 《형리》를 찬찬히 훑어보면서 말했다.
《그래 군
《이송장?…》
《그렇소이다. 그것 없이 말이나 듣구선 절대루 안되오이다.》
《뭐라구? 안된다구?》
《그렇소이다.》
그 말에 《형리》는 눈을 번쩍 뜨고 오대구를 노려보다가 큰소리를 쳤다.
《좋다, 내 네놈에게 이송장을 보여줄테다!》
《…》
《형리》는 칼을 잡은 손을 번쩍 들어 오대구의 모가지를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자, 이게 이송장이다!》
순간 오대구의 목이 뭉청 잘리워 대가리가 땅바닥에 나딩굴고 목이 잘린 오대구의 몸뚱이는 피를 내뿜으며 말에서 툭 떨어졌다.
너무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 뒤따라오던 군졸들도 막동이네도 어안이 벙벙하여 서있었다.
군복차림을 한 《형리》가 칼을 빼여들고 소리쳤다.
《이놈들! 꼼짝 말고 서있거라! 내 령을 어기는자는 즉석에서 목을 칠테다!》
그 호령소리에 군졸들은 사시나무떨듯이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서있었다.
《형리》가 또다시 소리쳤다.
《손에 들고있는 창과 칼을 모두 내던져라!》
그 호령소리에 군졸들은 모두 손에 잡고있던 무기들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모두 길옆에 모여서라!》 하고 또 소리치자 군졸들은 가물든 논판에 미꾸라지가 모여들듯 한곳에 오골오골 모여섰다.
칼을 든 군사 하나가 그들의 앞으로 말을 몰고와서 지켜섰다.
《형리》는 모여선 군졸들을 노려보면서 뒤에 서있는 군사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그는 말을 타고 막동과 리악에게 다가가 칼로 그들을 묶은 오라줄을 툭툭 끊어주었다.
이때 오라줄이 풀려나서 입에 물린 자갈을 뽑아던진 리악은 그들이 막동이까지 풀어주는것을 보고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길옆에 있는 숲속으로 내뛰였다.
그들을 지키던 군사가 꽥 소리쳤다.
《이놈아! 서라!》
그 소리에 달아나던 리악이 흠칫 놀랐다가 또다시 숲속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말을 탄 군사가 뒤쫓으려고 하자 《형리》가 소리쳤다.
《가만!》
《형리》는 잔등에 지고있던 활을 앞으로 끌어당겨 잡고 전통에서 화살 한대를 꺼내여 시위에 먹이더니 숲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리악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숲속에서는 《아이쿠!》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올뿐 더는 달아나는 리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형리》는 군졸들에게 소리쳤다.
《난 너희들을 해칠 생각이 없으니 무기들을 가지구 군영으로 가라. 그리구 군
이 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모여섰던 군졸들은 꾸벅 절을 하면서 관가쪽을 향하여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까지 오대구의 말고삐를 잡고있던 군졸이 말을 끌고가려는것을 본 《형리》는 그놈에게 소리쳤다.
《이놈아, 그 말은 이리로 끌어오라!》
군졸이 굽신거리면서 말을 끌어다가 넘겨주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놓았다.
지금껏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막동과 봉옥은 너무도 뜻밖의 정황앞에 어쩔줄을 몰라 우두커니 서서 눈만 껌뻑거렸다.
이윽고 《형리》라고 하던 군사가 말에서 내려 막동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투구를 벗었다.
《막동형님, 얼마나 놀라셨수?》
《…》
《나올시다. 송부자집 종 윤산이오이다.》
그제야 막동은 그를 알아보았다.
《아니? 이게… 윤산이-》
《형님-》
두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윤산은 막동이네 마을 송부자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총각이다.
막동이보다 다섯살아래인 윤산은 늘 함께 사냥도 하고 무술도 익히면서 친형제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막동은 갑옷을 입은 윤산의 두어깨를 부여잡고 물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니?》
윤산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됐수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구 대관절 색시라는건 무슨 소리요?》
그제야 막동은 봉옥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됐어. 봉옥이, 인사하라구. 우리 마을에 함께 살던 윤산이라는 총각이네.》
봉옥은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봉옥이라고 불러주사와요.》
윤산은 껑충 뛰다싶이 하면서 넙적 엎드렸다.
《아, 이거 형수님, 제 절을 먼저 받으시우. -》
막동은 땅에 엎드린 윤산의 잔등을 툭 쳤다.
《이사람, 어서 일어나게. 봉옥인 자네보다 한살 아래야.》
《그래두 내 형수님인데 그러면 안되지요. 하… 어쨌든간에 형님한테 색시가 생겼다니 내가 다 기쁘우다.》
두사람은 또다시 손을 마주잡고 껄껄 웃었다.
곁에 섰던 군사 한명이 윤산에게 다가와 무엇이라고 귀띔했다.
그러자 윤산이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면서 막동에게 돌아섰다.
《막동형님, 이사람들은 나와 사지동거를 맺은 동생들이요. 인사 받으시우.》
갑옷차림의 두 젊은이가 막동에게 허리를 굽혔다.
막동이도 그들과 맞절을 하였다.
《고맙네, 동생들!》
주위를 살피던 윤산이 서둘렀다.
《형님, 빨리 형수님과 함께 말에 오르시우. 자리를 피해야 하겠소.》
막동은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봉옥에게 다가가 닁큼 안아서 오대구가 타던 말잔등에 올려놓았다. 이때 숲속에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리악이였다.
아까 숲속으로 내뛰다가 날아온 화살이 자기 귀를 꿰고나가자 우정 죽는 소리를 치면서 뻐드러졌던것이다.
리악은 귀에 박힌 화살을 뽑아버리고 피흐르는 귀를 옷자락을 찢어서 감쌌다. 그런데 길가쪽에서 웃음소리가 울려오자 그는 숲에 몸을 숨기고 살피고있었던것이다.
말에 오르려던 막동은 숲속을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먼저 말을 탄 윤산이가 의아해서 물었다.
《막동형님, 왜 그러시우? 》
《아까 도망친 그놈을 내 손으로 꼭 죽여버려야 하는건데…》
《걱정마시우. 그놈은 내 화살에 뻐드러졌을거우다. 자, 시간이 없으니 어서 말에 오르시우.》
막동은 또다시 숲속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바람에 리악은 기겁하여 땅바닥에 숨을 죽이고 납작 엎드렸다.
잠시후에 말발굽소리가 울려왔다.
땅에 엎드렸던 리악이 내다보니 말을 탄 막동이네가 유유히 사라져가고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악은 너무도 통분하여 땅바닥을 손으로 마구 내려치며 승냥이 울부짖음소리를 냈다.
《이놈들- 어디 보자!》
리악은 그자리에 퍼더버리고앉아 너무도 통분하여 소리내여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