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견결한 통일의지를 지니시고
질문과 대답
주체74(1985)년 5월 2일
이날
그날에 있은 이야기이다.
조국통일의 장애는 무엇인가?
《통일된 하나의 조선을 건설하는데서 장애로 되는것은 어떤것들입니까?》
한것은 그 질문에 몇마디로 해답하기에는 지나간 력사가 너무도 벅찼기때문이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던
《우리 나라의 분렬을 끝장내고 통일된 조선을 건설하는데서 장애로 되는 문제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남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두개 조선>정책을 실시하고있는것입니다.》
사실 조선의 분렬은 우리 인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미국에 의하여 강요된것이였다.
《38°선을 조선의 분렬선으로 하는것은 한번도 국제적인 토의에 제기된바 없었다. 이것은 일본의 전쟁기구가 돌연히 파괴되였을 때 미국측에서 실제적인 해결책으로 제안한것이였다.》
트루맨이 솔직히 토설한바와 같이 주체34(1945)년 5월 9일 파쑈도이췰란드의 항복과 함께 국제파쑈세력의 붕괴는 급속히 추진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이전 쏘련군대의 대일작전개시로 하여 미제는 등이 달았다.
그것은 노도와 같이 진격하는 이 세력이 불피코 단숨에 남하하여 전조선을 차지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당시 미제는 조선에 파견할 선박도 군대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조선을 타고앉아야 한다는 야망밑에 트루맨은 국무, 륙군, 해군 3성조정위원회에 그 해결책을 강구할데 대해 직접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그날 국방성에 모인 륙군장교들(그 대다수가 겨우 준장이하의 대좌급들이였다. )은 론의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어떻든 조선은 두 부분으로 갈라져야 하며 그것도 오늘 오후 4시까지 해내야 한다.》
륙군장교들은 세계지도를 놓고 북위 38°선에 분렬선을 긋고 만주와 조선 38°선 이북 그리고 싸할린에 있는 일본군은 쏘련원동군 총사령관앞에 항복하며 일본본토와 조선 38°선 이남 그리고 필리핀에 있는 일본군은 미극동군 총사령관앞에 항복하게 한다는 최종안을 만들었다.
이 계획은 《일반명령 제1호》로 서문화되였다.
트루맨은 이것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조선의 절반땅을 먹게 되였다고 몹시 흡족해하면서 이 강도적인 요구를 즉시 쏘련정부에 통보하였다.
그리고 일본이 8월 15일 무조건항복을 선포한지 20여일이 지난 9월 8일에야 자기의 륙전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이때로부터 반만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은 분렬의 쓰라린 고통을 겪게 되였다.
조선을 둘로 갈라놓은 그 저주로운 분계선, 38°선은 세계제패의 야망에 환장한 미제가 백주에 날조한 모략의 산물이였다. …
제2차 세계대전후의 국제정치정세의 추이를 돌이켜보며 심통해있는 그에게
《조국통일의 앞길에 비록 커다란 장애와 난관이 가로놓여있지만 우리는 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하여 비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