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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결한 통일의지를 지니시고

《조국통일은 나의 사명입니다》

 

주체70(1981)년 9월 22일 날이 어두워질무렵이였다.

한 일군을 부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오늘 자신과 함께 지방으로 떠나자고, 해외인사를 만나 이야기나 나눠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오늘말입니까? 오늘은…》

일군은 불의의 충격을 달래며 애원하듯 말씀드렸다.

《정말 오늘이 9월 22일이지.》

사랑하는 어머님을 너무도 뜻밖에 잃은 그 비통한 날을 그이께서 천년이 간들 만년이 간들 어찌 잊으실수가 있으랴.

하지만 누구보다 가슴아픈 이날을 깊이 새겨두시고도 전사들이 괴로와할가봐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는 차라리 이런 날에는 동무들과 같이 조국통일문제를 의논하는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였다.

《조국통일문제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자, 떠납시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빨리 갑시다. 언제나 이렇게 밤에 먼길을 떠나군 해서 미안합니다.》

이날 목적지에 이른 일군들은 호수가에 있는 숙소의 수수한 방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뜻깊은 밤을 보내게 되였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못견디게 차오르는 그밤,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로 된다는 격언이 불쑥 떠오른 한 일군이 장군님께 어머님의 령구를 모란봉에 안치하던 일을 추억하여 몇마디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당시 어데서 무슨 일을 했는가고 물으시였다.

《저는 회의에 참가하러 평양에 올라왔다가 그 가슴아픈 비보를 듣고 어머님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란봉에 올라갔었습니다.》

묵묵히 듣고계시던 그이의 안광에는 무거운 그늘이 비껴있었다.

그제서야 일군은 장군님을 위로해드린다는것이 오히려 그이의 가슴속에 서린 마음의 상처를 또다시 아프게 해드렸다는 생각에 자신을 책망하였다.

그이를 순간이나마 위로해드릴수 없는것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창가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숙연한 정적속에 출렁이는 호수와 저 멀리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천천히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우리 어머님처럼 조국통일을 바라신분은 흔치 않을것이다. 항일투사들이 찾아와 이제는 백두산시절과는 달리 령토도 있고 주권도 서고 나라의 재부도 많은데 옷 한벌쯤이야 왜 못해입으시겠느냐고 간절히 말씀드려도 통일이 되여 모든 겨레가 다같이 잘 입고 잘 살 때 우리도 비단옷을 입고 잘 살아보자고 타이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늘 조국통일을 먼저 생각하시며 모든 행복을 뒤로 미루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백두산에서 고생하시던 수령님을 잘 모시자면 빨리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1940년대말에 어머님으로부터 수령님을 받들어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길데 대한 말씀을 받은 나는 오늘도 아직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

자기들이 조국통일위업을 촉진하지 못하여 그이의 심중에 자리잡고있는 아픔을 덜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일군은 자책감과 송구함으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그이의 음성은 계속하여 방안을 울리였다.

《조국통일은 나의 사명입니다. 조국통일은 수령님앞에서 책임진 나의 당면과업입니다.》

밤은 깊어가고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어머님을 추억하시는 그 순간조차도 조국통일문제를 생각하시는 장군님앞에서 일군은 크나큰 격정을 누를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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