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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16

 

주몽은 장대에 올라 미친듯이 성을 향해 공격해오는 말갈진을 살피고있었다. 서북문부근의 절벽우는 평탄한 대지를 이루고있는데 이 대지의 남쪽에 있는 장대에서는 서북문으로 밀려드는 적진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말갈이 공격해오는쪽은 서북문만이 아니였다. 동문과 남문으로도 개미떼같이 밀려들었다. 거기서는 지금 말갈군사들과 구려군이 공방전을 벌리고있었다.

적진의 동태를 살피던 주몽은 부분노에게 물었다.

《적들의 력량은 얼마요?》

《서북문에 1만, 남문에 오천, 동문에 오천인줄 아오!》

《아주 적은걸?》

《적다니? 적들의 기세가 얼마나 야단스럽다고…》

《하지만 적어. 저건 놈들의 허세요. 무언가 감추는것이 있단 말이요!》

부분노는 놀란 눈으로 주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적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보니…》

《부분노, 말갈의 5만 군사중에서 2만이 오녀산성에 밀려들었소. 그것도 대인 구도가 아니고 선봉장 분구가 왔소! 그렇다면 구도는 어디 있고 나머지 3만은 어디로 갔소? 구도가 자기들의 읍락에 있고 읍락을 방비하기 위해 3만을 깔아놓거나 혹은 파행식으로 공격하기 위해 복병시켰을수도 있소!

하지만 저 분구가 어쩐지 서두르는것 같지 않소? 저건 완전히 무모한 사마귀가 팔을 벌리고 수레바퀴를 막는거나 같단 말이요. 그런데 왜 저렇게 승세를 보이는거요?》

《병마사, 세작을 파해 급히 알아보겠소이다.》

《그렇게 하오! 구도와 나머지 3만의 행처에 대해서 꼭 알아야겠소.》

부분노가 물러간지 얼마 안되여 제2대를 거느리고 동문에서 지키고있는 마리에게서 전령이 왔다.

동문으로 밀려들던 말갈진이 갑자기 동요하고있다는것이였다. 동문은 오녀산성에서 주로 성벽을 쌓은 곳이였다.

주몽은 동문쪽으로 갔다. 마리가 주몽을 맞이했다.

《병마사, 말갈이 어제 하루 승세해서 밀려들더니 오늘은 뜸해졌소이다! 혹시 진세를 바꾸는것이 아니오이까?》

주몽은 말갈진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말갈군사의 수도 적어졌고 어제처럼 맹렬하지도 않았다.

《병마사, 성문을 열고 쳐나가지 않겠소이까?》

주몽은 인차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흔히 의병(疑兵)을 쓴다. 즉 공격자의 허실을 보여 오만해진 적이 성문을 열고 따라나오길 기다려 복병을 깔아놓았다가 적을 주살하거나 혹은 추병이 곧장 성문을 돌파하기도 하는것이다. 말갈의 동문을 맡은 장수가 그런 계략을 쓰는것이 아닐가?

《동문쪽으로 공격하는 말갈장수는 누구요?》 하고 주몽이 물었다.

《분구의 수하 무명장수라고 하오이다.》

주몽은 다시한번 말갈의 공격진을 살피고나서 마리에게 돌아섰다.

《마리, 성문에 추병들을 준비시키게. 말갈군사들이 뒤를 꺼리는것 같구만. 저것 보게. 또 한대의 군사가 뒤로 물러섰는걸…》

주몽의 령을 받은 마리가 급히 동문을 맡은 군사들을 점고했다.

쇠북소리를 군호로 하여 성문이 열리고 검군(劍軍)을 기본으로 하는 마리의 계루부 제2대가 노도처럼 밀려나갔다. 성문으로 달려들던 말갈군사들이 흙담무너지듯 흩어졌다. 말갈군사들은 골짜기를 따라 미친듯이 달아났다. 굽이를 돌아서자 달아나던 군사들이 웬일인지 맴돌이쳤다. 적들은 제풀에 서로 부딪치고 밟으며 아우성쳤다. 말갈의 기발이 땅에 떨어졌다. 나머지 산자들은 병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렸다.

추격하던 마리는 뜻밖의 광경에 멈추어섰다. 맹랑하기 짝이 없었다. 마리가 검을 칼집에 꽂는데 저쪽 앞에서 말을 탄 비추장군이 나타났다.

《마리!》

《비추장군! 이게 어찌된 일이오이까?》

《하하, 자네는 어떻게 알고 의각지세로 밀고나왔나? 복병이 무섭지도 않던가?》

《주몽형이 적들이 뒤를 꺼린다고 하기에 곧장 쳐나왔소이다!》

《그래? 지내외병마사는 어디 계신가?》

《성안에 있소이다.》

비추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온것을 본 주몽은 깜짝 놀랐다.

《비추장군, 어떻게 이렇게 왔소?》

《병마사, 묵거와 협부를 통해 이곳 정황을 알게 된 연타발대가가 우리를 출병시켰소이다.》

《계루부는?》

《그쪽은 조용하오이다. 일구의 무력도 모조리 대인 구도의 수하로 집결되였소이다. 그러니 계루부는 무적공간이 된셈이오이다. 하, 하, 이런 판에 이 비추가 거기서 무엇을 하겠소이까? 연타발대가께서도 지내외병마사일을 걱정하시면서 기어이 출병케 하였소이다.》

비추의 보고를 들은 주몽은 이마살을 찡그렸다.

《아니 왜 그러시오이까? 병마사!》

《일이 잘 안됐소. 비추장군!》

《무슨 말씀이오이까?》

《비추장군, 계루부쪽의 일구까지 구도에게 집결되여 무적공간이라고 생각하게 한것이 만일 구도의 계책이라면 어찌겠소?》

《아, 그건 념려마시오이다. 거듭 말갈쪽이 비였다는것을 탐마를 보내 확인했소이다!》

《구도는 계략이 많은 장수요. 아무래도 계루부쪽이 조용하다는게 마음이 놓이지 않소. 이제 비추장군까지 군사를 거느리고 여기 왔으니 말갈쪽에서 보면 계루부가 무적공간인셈 아니요?》

비추는 그제야 깨도가 되는지 얼굴빛이 굳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설마하는 눈치였다.

《병마사, 적들이 날개가 돋치지 않은 이상 어떻게 거기에 나타나겠소이까?》

《비추장군, 바로 그것이 문제요. 꾀많은 군사는 적이 예측하지 못한 곳을 치는 법이요. 이 길로 돌아서오. 물론 여기 일을 생각해주는 연타발대가와 비추장군의 성의는 고맙소. 하지만 일각이라도 늦으면 계루부가 위험하오! 비추장군은 계루부쪽만을 든든히 지키고있으시오. 이것이 나를 도와주는 길이요.》

《알겠소이다. 내가 큰 실수를 한것 같소이다.》

비추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말에 올라 군사들을 재촉해 계루부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야음을 타고 남문으로 연노부의 군사가 들어왔다.

동문의 적을 진멸시킨 뒤 서북문과 남문의 적을 물리칠 의논을 하던 주몽은 연노부군사가 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데려오게 하였다. 그 군사는 옷에 피칠갑을 하고 주몽의 앞에 간신히 서있었다.

주몽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어찌된 일이요?》 하고 주몽이 물었다.

군사는 무릎을 꿇었다.

《병마사어른, 말갈대인 구도가 2만 병력으로 연노부를 함락시켰소이다.》

《뭐라구? 연노부를?》

《그렇소이다. 우리 연노부의 장졸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나 워낙 중과부적이라… 게다가 적들은 우리 연노부의 허실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소이다.》

《교활한 놈.》

주몽은 눈을 쪼프렸다.

그러니 말갈 구도의 주공격은 연노부였단 말인가? 구려의 왕궁을 점거하여 머리를 잘라버리자는것이였군. 그래서 오녀산성쪽으로는 분구의 선봉군을 보내서 싸움을 돋구게 하고 우회하여 연노부를 쳤군, 피살격허라. 구도가 과연 맹적이로구나.

《그래, 임금은 어찌되였느냐?》

《성채를 빠져나오다가 말갈의 복병에 걸려 도리대감과 구도가 필마단창으로 싸웠소이다. 하지만 도리대감이 구도의 타도계에 걸려 그만 잘못되고 임금께서는 간신히 빠져나오기는 하였으나 심하게 다치시였소이다. 임금께서는 지금 관노부쪽으로 몽진하시였소이다.》

주몽은 급히 수하장수들을 군막으로 불렀다.

구도의 첫 타격에 구려는 심대한 손실을 입었다. 연노부가 함락되고 구려의 대감이 죽고 임금은 관노부로 몽진하였다. 어떻게 되여 구도가 이때껏 용단을 못 내리던 출병을 감히 하게 되였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이제는 구도의 계책을 알만 하다. 금후 말갈대인 구도는 어디로 향할것인가? 자기의 읍락으로 돌아갈것인가? 아니면 오녀산쪽으로 올것인가? 열에 아홉은 오녀산성으로 올것이다. 왜냐하면 구도는 이미 일구에게 1만을 주어 자기의 성책을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말갈은 머물러있는 성미가 아니다. 그들은 반드시 연노부를 함락시킨 승세를 타고 오녀산성으로 밀려들것이다. 그렇다면 장계취계(將計就計)하여 구도를 치자.

주몽은 부분노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오이는 한 대를 거느리고 동문을 빠져 일구의 성책을 겁략하게 하였다. 그리고 주몽은 군사를 거느리고 역시 동문으로 빠져 남문을 우회하여 중도에서 구도를 엄살하려고 하였다. 구도를 치는데는 주몽이 주장이 되고 마리를 선봉으로 삼았다. 주몽은 부분노에게 서북문과 남문의 적을 붙들어매고 만일 물러서는 기미만 보이면 즉시 반격할수 있도록 추병을 대기시키도록 하였다. 서북문과 남문의 적을 잘 견지하는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여기서 적을 놓치면 장계취계하려는 주몽의 군사들과 오이의 군사들이 오히려 협격당할수 있는것이다.

주몽은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다음 밤도와 각각 출발시켰다.

주몽은 연노부에서 오녀산성으로 오는 길 중간에 놓여있는 미리산골짜기에서 말갈군을 전멸시킬 계책을 세웠다. 미리산골짜기는 그 밑바닥으로 한줄기 강이 흐르고있는데 바구니모양으로 생겼다. 산비탈이 급하고 대개 바위와 절벽으로 이루어져 한번 길이 끊기면 돌아서기도 어려웠다. 이런 지세와 산세를 아는 군사라면 서뿔리 이런 곳으로 들어서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주몽은 바로 그런 점을 고려하여 적의 예기를 혼란시켜 이 골짜기로 끌어들일 결심이였다. 주몽은 마리에게 가장 날래고 용맹한 군사 백명을 주어 구도의 진두를 건드림으로써 구도가 미처 산세를 모르고 이 골짜기에 끌려들어오게 하라고 하였다. 마리는 장졸들의 갑옷우에 장사군의 덧옷을 걸치게 하여 도중에 구도의 탐마들의 눈을 속이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될수록이면 불의에, 가까이 접근하여 적을 쳐야 목적을 이룰수 있다. 적이 정신을 수습할 사이도 없도록 하자는것이다.

마리가 떠난 다음 주몽은 골짜기의 좌우에 군사들을 벌려 진치게 하고 섶단과 마른 풀단, 기름, 솜뭉치 등 불붙기 쉬운것들을 많이 마련하게 하여 화공(火攻)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마리가 끌고오던 적들에게 돌아서 접전하게 될 곳에는 궁노수들을 다섯개의 대로 나뉘여 매복시켜 제1대가 나와 살을 날리고 뒤로 물러서면 제2대가, 다음은 제3대, 제4대, 이런 식으로 적들에게 비오듯 련이어 화살을 날리게 준비시켰다. 적의 꼬리가 들어서는 곳에는 도검수, 부월수, 창극수 등 가장 용감하고 힘있는 부대들을 매복시켜 진문을 굳게 닫도록 하였다. 진문의 강약에 따라 승패가 많이 결정될 판이였다. 그런 다음 주몽은 미리산 중턱에 주장의 진을 잡고 마리를 기다렸다.

마리는 미리산을 벗어나 십리쯤 이르러 구도의 말갈군사들을 발견하였다. 마리는 적들이 미처 자기들을 알아보지 못한 때에 불의의 공격을 하였다. 장사군들의 차림새로 다가오는 마리의 부대를 멀뚱하니 바라보며 지나치려던 적들은 별안간 칼을 빼들고 무섭게 달려드는 백여명의 도검수들에게 찍히워 대오가 문란되였다. 닥치는대로 좌우의 적을 쳐눕힌 마리의 별동대는 적들이 혼란되자 인차 물러섰다. 그제야 적들은 대오를 수습하여 마리네를 쫓았다. 그러나 마리네는 산등성이너머 사라졌다.

말갈대인 구도는 장사군차림의 백여명 부대가 불의에 전대를 습격하였다는 급보에 노발대발하였다.

《대체 어떤 놈들이냐?》

《종적을 알수 없소이다.》

《바보같은것들, 빨리 전대를 후대로 돌리고 중군을 전대에 세워라.》

구도의 엄명이 끝나기가 바쁘게 마리의 별동대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오십명씩 대를 지어 좌우에서 덮쳐들더니 또다시 전대를 문란시키고 사라졌다.

구도는 약이 바싹 올랐다.

《혹시 오녀산성에 있던 구려군이 아니냐?》

《아니오이다. 남문을 지켜선 분구의 제2군에서 아직도 거기서는 공격을 맹렬히 하고있다고 전령자가 왔소이다.》 하고 구도의 장수가 대답하였다.

《그럼 어떤 놈들이란 말이냐?》

《아마 함락된 연노부의 패잔병들인가 하오이다. 그들의 방향이 바로 오녀산성쪽인것 같사온데 우리가 그쪽으로 붙지 못하게 하려는듯 하오이다.》

《그렇겠다! 워낙 구려놈들이란 마지막까지 반항하는 족속들이니까…》

구도의 군사들은 마리의 별동대가 벌써 여러번 달려드는 바람에 몹시 불안해하였다. 구도는 성이 나서 자기의 정예기마병을 전군에 내세워 만약 다시 그들이 나타나면 끝까지 추병하라고 령을 내렸다. 말갈의 전대는 언제 어디서 또다시 그 《괴상한 무리》가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데 정신을 쫓다나니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미리산입구에 들어설무렵 구도는 자기의 군사들을 멈추어세웠다. 그는 불안스러운 눈길로 미리산을 바라보았다.

구도가 무엇인가 부하들에게 말하려는데 말갈의 전대에 다시 마리가 나타났다. 마리는 혼자 우뚝 서있었다. 그런데 그는 갑옷도 없이 맨몸으로 칼을 잡고있었다.

그 모습을 본 구도는 성이 꼭뒤까지 올랐다.

《지독한 놈이로구나! 활을 쏘라!》

화살이 무수히 마리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마리는 화살 한바탕거리만큼 유지하며 말갈을 엿보고있었다.

《저놈이 괴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럴수 있는거냐? 도대체 저놈이 뭘 노리는거야?》

구도는 칼을 빼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마리가 물러서고 다시 그의 부하들이 장사진을 쳤다.

《저놈들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잡아라. 기어코!》

말갈의 전군이 마리네를 뒤따라 정신없이 쫓아왔다. 그들은 미리산의 골짜기가 어떤지 미처 알 사이가 없었다. 다만 시끄러운 마리네를 붙잡고야말겠다는 욕심밖에 없는듯 하였다. 말갈의 긴 대오가 미리산의 좁은 골짜기로 다투어 들어섰다.

주몽은 미리산중턱 자기의 진에서 말갈군사들이 몰려드는것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주몽은 말갈의 후군까지 골짜기 깊숙이 들어서자 한손을 버쩍 들었다. 그러자 고수가 쇠북을 울렸다.

북소리가 떵-떵- 울렸다.

미리산줄기에서 구려의 기발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며 이미 준비했던 불감들에 불을 붙여 골짜기아래로 내리던졌다. 산골짜기는 삽시에 불바다로 화하였다. 말갈군이 앞뒤로 밀리느라고 저희들끼리 치고받고 야단이였다. 하지만 이미 닫긴 진문을 열수가 없었다. 진문에 다가가면 범같은 도검수, 부월군, 창군이 기다린듯 무섭게 달려나와 말갈군사를 풀대베듯 하였다. 워낙 화공에 넋을 앗기고 절망에 빠진 말갈군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잃고말았다. 마리를 따르던 전대도 번개처럼 나타나군 하는 궁노수들의 쇠활촉에 맞아 덤을 이루며 쓰러졌다. 그통에 말갈대인 구도도 활에 어깨를 맞았다.

주몽은 말갈군사들의 전의가 완전히 떨어진것을 보고 우뚝 서 소리쳤다.

《말갈대인 구도, 듣거라. 무모한 반항은 죽음뿐이다. 어서 항복하라!》

구도는 주몽의 호령에 성한 손에 쥐였던 검을 바위에 후려쳤다. 검은 단박 부러져나갔다.

전장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푸실푸실 피여오르고있었다.

 

언청이두령은 부하들이 계루부를 점령했다는 보고를 들었으나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비추가 구려군에 정병을 다 이끌고 간 뒤여서 당초의 타산보다는 쉽게 점거했기때문일가? 아니면…

언청이두령은 물론 계루부가 비여있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말갈대인 구도에게서 우격을 받은 다음에 그의 요청도 있어 계루부로 진격하라고 명령한 그였다. 묵거와 협부가 사리를 밝혀 《검은 칼잡이》부대가 계루부를 치는것은 때를 타지 못한 결단이라고 하였지만 언청이두령은 막무가내였다. 그의 심중에 숨겨져있던 막연한 반발이 누를수없이 솟구쳐올랐던것이다. 두령은 불끈 성을 내며 묵거와 협부를 묶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묵거와 협부를 가둔 다음 언청이두령은 수하들을 이끌고 계루부로 진격하였다.

언청이두령은 계루부의 무너진 담장과 집들을 지나가면서 어째서 자기의 심사가 좋지 않은지 알아내려고 궁싯거렸다.

도운스승의 모습이 떠올라 자기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계루부를 치는것은 잘못이였는가? 때를 타지 못한것이라고 묵거와 협부는 말했다. 그래서일가.

속에서 울뚝밸이 모록모록 커져갔다.

언청이두령은 말머리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노랑수염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구?》

《계루부 연타발대가와 그의 아들 재사를 잡았소이다!》

《살려놨다는거야?》

《그렇소이다.》

《이놈들! 잘한다! 네놈들은 우리 부대의 군률을 어떻게 아는거야? 노예주놈들과 그 껍데기들은 모두 죽이라는 내 명령을 뭘로 아는거야?》

《두령님, 그건 저 건건이부두령이 그렇게 했소이다.》

《부두령은 어디 있어?》

《지금 거기서 기다리고있소이다.》

언청이는 부대가 점거한 연타발의 집으로 갔다. 건건이부두령이 찌푸둥한 낯으로 기다리고있다가 두령을 연타발과 재사를 가둔 방으로 안내하였다.

연타발과 재사는 언청이두령이 나타나자 놀란 빛을 띠였다.

그들을 훑어보던 언청이두령은 코웃음을 쳤다.

한동안 그러고있던 언청이는 건건이에게 돌아섰다.

《부두령, 이젠 관상들을 보았으니 참해버려.》

《두령, 이건…》

건건이는 주빗거렸다.

언청이는 매서운 도끼눈으로 부두령을 쏘아보았다. 건건이는 고개를 외로 틀고있었다.

《좋아! 부두령이 그렇게도 손이 떨린다면 내가 하지…》

언청이는 옆구리에서 검을 빼들었다. 시퍼런 칼날에서 얼음장같은 빛이 번쩍하였다. 언청이는 재사의 얼굴을 쏘아보며 천천히 검을 들었다. 재사는 언청이를 지켜보았다. 두사람의 눈빛이 마치 천년이나 되는듯이 부딪쳤다. 언청이의 입술에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의 목이 약간 움직이는듯 하더니 검이 휙- 소리를 내며 번쩍 빛을 뿌렸다.

재사와 언청이를 지켜보던 연타발은 눈을 감았다.

《하, 하.》

웃음이 터졌다. 언청이의 웃음이였다.

연타발은 놀라 눈을 떴다.

재사는 여전히 언청이를 쏘아보고있었다. 재사의 입가에도 웃음이 피여났다.

《두령, 놀음은 그만하시오.》

두령은 태연하게 서있는 재사를 이윽히 내려다보다가 씨원하게 웃었다.

《음, 죽이기는 아까운 사내다.》

언청이는 칼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내뱉았다.

《두령, 당신은 지금 자기가 무슨짓을 하고있는지 알고나 있소?》

《알고있지. …》

《당신은 모르고있소, 알고있다면 그건 자멸의짓이요. 당신은 지금 말갈의 꾀에 넘어가 자기의 겨레들을 죽이려고 하고있소.》

《입다물어! 난 누구의 꾀에 넘어가 놀아나는 사람이 아니야!》

《두령답지 않구려.》

《네가 뼈없는 혀바닥으로 나를 희롱할 생각인데, 내가 너에게 검의 도를 가르쳐줄테다!》

《걷어치우시오. 죽음을 가지고 누굴 놀래우려고 생각한다면 그건 바보들이나 할짓이요!》

두령은 혀를 깨물었다. 그의 눈이 점점 광포한 빛을 띠우기 시작하였다.

《재사야!》 하고 연타발이 보다못해 불렀다. 그 소리에 재사보다 먼저 언청이가 홱 몸을 돌렸다. 언청이의 볼편이 부르르 떨었다. 언청이는 내리웠던 칼을 꼬나들었다. 그의 칼끝이 연타발의 가슴을 겨누고 점점 다가갔다. 건건이부두령이 언청이의 곁으로 다가오며 《두령, 그만두시오.》 하고 소리쳤으나 언청이는 한팔로 건건이를 밀쳐버렸다. 칼끝을 연타발의 가슴에 댄 언청이는 이를 갈았다.

《내가 기어이 죽이려고 했던것은 너다!》

언청이의 칼끝이 떨렸다.

연타발의 허연 눈섭이 꿈틀거렸다.

순간 재사가 두사람사이에 끼여들며 칼날을 쳤다.

《두령, 당신이 기어코 피를 보자 하면 나를 먼저 베시오. 이분은 안되오. 이분은 바로 당신의 친아버지란 말이요.》

언청이가 한발 물러섰다. 그는 재사의 눈길을 피하며 소리질렀다.

《너는 비켜라. 너하고는 내가 아무런 원한도 없다. 어서 비켜라! 어서!》

《안되오, 안되오.》

재사가 언청이앞으로 다가가는데 연타발이 떨리는 소리로 불렀다.

《재사야!》

재사는 천천히 돌아섰다.

《재사야! 네가 그것을 알고있었느냐? 나는 너를, 너를…》

《아버지! 저는 알고있었소이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라고 부르겠소이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고 하였소이다. 아버지는 저의 몸을 키워주셨을뿐아니라 저에게 겨레의 통일에 대한 큰뜻도 심어주셨소이다. 그것이 저에게는 더욱 감사한것이오이다!》

연타발은 재사를 끌어안았다.

《재사야! 고맙다!》

한동안 재사를 끌어안고있던 연타발이 재사를 뒤로 돌리며 언청이앞으로 나섰다.

《네가… 네가, 내 친아들이란 말이냐? 응?》

언청이는 한팔을 내밀며 흔들었다.

《다가오지 말라!》

연타발은 굳어져 한숨을 지었다.

《나는 재사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는건 알고있었지만 내 친아들이 이런 사람이라는건 몰랐구나!》

《넉두리는 그만하라. 네가 세상에 만들어내놓은 이 언청이는 말이나 소보다 못한 노예로 살아왔고 그렇게 죽을 몸이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아들아, 네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사죄한다. 이건 하늘의 장난이다. 인간에게 들씌우는 하늘의 벌이다. 하지만 네가 겪은 고통으로 해서 오로지 증오만이 남았단 말이냐? 증오밖에 너에게 남은것이 없단 말이냐? 그래 너는 피를 보기 위해서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단 말이냐? 겨레도 조국도 없단 말이냐? 네가 품은 증오가 그렇게도 크단 말이냐? 아-》

연타발은 갑자기 가슴을 부둥켜안으며 주저앉았다. 늙은 몸이 지나친 충격을 견디지 못한것이였다.

《아버지!》 하며 재사가 소리쳤다.

언청이는 놀란 눈길로 천천히 주저앉는 연타발과 자기의 손에 쥐여진 검을 엇갈아 보고있었다.

 

주몽이 반나마 무너지고 아직도 연기가 피여오르는 연노부에 닿았을 때 거기에는 이미 다른 대가들도 와있었다.

주몽은 주위를 훑어보고 소부왕을 찾아들어갔다.

《마마, 얼마나 놀라셨소이까?》 하며 주몽이 한무릎을 꿇었다.

《병마사! 왔소? 병마사가 말갈대인 구도를 사로잡고 말갈을 평정했다는 첩보를 받았소! 장하오, 장해!》

《오히려 말갈의 계책을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연노부가 참혹하게 피해입은걸 사죄하오이다.》

그러자 소부왕은 천천히 머리를 젓더니 잦아드는 소리로 말했다.

《흔들리던 돌담이 무너졌을뿐이네… 그건 그렇고, 주몽, 부여가…》

주몽은 말없이 소부왕의 주름잡힌 얼굴을 보고있었다. 어쩐지 늙고 심하게 다친 그가 측은해보였다. 림종을 앞에 두고도 부여의 위협이 걱정되는 모양이였다. 이것이 주몽 자기에게도 적지 않게 책임있다고 생각하니 언짢은 구름이 끼여들었다.

《어떤 대가들은 부여의 위협이 주몽을 받자한것으로 일어난 화라고 하더군… 나도 결국 흔들리다나니 이런 변을 당했소. 아마 이게 하늘의 노염이 아닌지… 주몽, 이젠 어떻게 했으면 좋을는지… 어서 말 좀 해주오!》

소부왕은 겨우 입술을 놀리는데 그마저 끝내는 들리지 않았다.

주몽은 삶의 마지막언덕을 넘어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든 위안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세게 느꼈다. 그것은 이쪽, 자기의 삶의 대를 허물지 않으려는 생각과 어지럽게 싸웠다. 림종에 이른 사람에 대한 동정과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주장이 엉켜돌았다. 걷잡을수 없는 그속에서 주몽은 어느 한쪽이라고 장담하지 못하면서 입을 열었다.

《구려를 구하는 쉬운 방법이 있소이다!》

소부왕이 눈을 스르륵 떴다. 주몽은 그의 시선을 받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부여가 노리는것은 바로 주몽이오이다! 그러니 저를 묶어보내고나면 일이 풀릴것이오이다!》

소부왕은 흐린 눈으로 주몽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마치도 거짓말을 하느냐, 아니면 놀리는 소리냐 하고 묻는듯 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였다.

《망칙한…》 하고 그는 신음소리를 냈다.

《주몽… 노여움을 풀게… 나…는… 다만 어떻게… 하면 구려를…》

주몽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 어떤 안도의 숨도 아니요 절망의 숨도 아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울뿐이다.

소부왕은 다시 눈을 감았다. 침묵이 흘렀다. 괴로운 침묵이였다. 소부왕의 주름잡힌 눈귀로 가는 눈물이 흘렀다. 그는 눈을 감은채 말했다.

《내가 연타발대가의 말을 듣지 않은게 잘못이요. 우리 구려는 안팎으로 늙었소. 주몽, 그대는 우리 단군후손들이 티끌로 흩어지는걸 막아줄 사람이요! 일찌기 그대에게…》

소부왕과 주몽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환노부대가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말을 듣고 보건대 주몽의 생각이 갸륵하고 기개 또한 높소. 하지만 우리 구려에 닿은 근심이 그것으로 덜어질수 없다고 보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부여가 구려를 덮치지 못한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불판우에 올라앉은 개구리신세를 면할수 없소! 자고로 큰것이 작은것을 범하기마련이요, 넘치면 흐르기 마련이라고 했소. 구려가 아무리 부국강병하여도 부여에 비해 작은것이요. 이제 부여의 노여움이 넘치게 되였은즉 군사를 풀어내리라는것은 뻔한듯 한데 주몽은 이걸 어떻게 보는지?…》

주몽은 이것이 비단 환노부대가 한사람이나 어느 부만이 아닌 적지 않은 사람들의 우려라는것을 모르지 않는다. 앞으로의 일은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는가 하는데 달려있었다.

주몽은 천천히 일어났다.

《여러 제가어른들! 큰것이 항상 작은것을 이긴다고 볼수 없소이다. 지금 부여는 비유해 말하면 보름달이요, 구려는 한창 커가는 달이오이다. 겉과 속으로 무엇이 크고작은가를 두고 보건대 결코 부여는 크다고만 볼수 없소이다.

부여는 결코 구려를 어쩌지 못할것이오이다. 지금 부여의 왕은 금와왕이온데 그는 이미 늙었소이다. 구려에 대한 위협은 금와왕이 아니라 태자로 된 대소와 그의 일부 모사들의 속심일것이오이다. 아직 부왕이 살아있고 국권을 쥐지 못한 대소의 무리가 아무리 구려를 먹으려고 하여도 지경밖으로까지 군사를 보낼 발령은 내리지 못하오이다. 설사 대소가 왕권을 희롱한다하여도 왕자들 호상간에 그리고 대가들사이에 알륵과 대립이 심하기때문에 발령까지 내리지 못할것이오이다. 부여가 결코 구려를 삼키지 못할것이라고 보는것은 만일 그렇게 되려면 부여가 다른 나라들, 즉 비류, 행인, 개마, 옥저 등의 나라들과 서쪽의 선비, 동쪽의 읍루 등을 경계해야 하고 적어도 그들을 제압해야 하는데 아직 부여는 그러지 못하고있소이다. 이것을 부여가 고려하지 못하고 구려를 삼키려 한다면 처지가 어슷비슷한 여러 나라들이 날카로운 반응이 일어나게 될것이오이다. 결국 부여는 함부로 움직일수 없소이다. 물론 부여가 지경가까이에 군사를 모으고있는가 하는것은 예민하게 주시해야 하오나 십중팔구 그렇게는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오이다. 부여의 동태를 알아보려고 이미 사람을 띄웠소이다.》

주몽의 말을 듣은 환노부대가는 그제서야 얼굴에서 검은구름을 거두었다. 다른 대가들도 사뭇 놀랍게 주몽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와 같이 주몽에게서 산중 왕인 호랑이의 기풍을 느끼는듯 하였던것이다. 서뿔리 놀라지 않으면서도 스치는 바람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여유작작한 태도! 대가들은 더 할말을 찾지 못하였다.

《주몽, 그대가 우리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주었소!》 하고 환노부대가는 말하였다.

눈을 감고 주몽의 말을 듣고있던 소부왕이 시중군에게 자기를 일으키게 하였다.

《주몽, 내가 근심하던것이 그대의 말을 듣고보니 눈녹듯 풀리오. 나는 이미 늙었거니와 깊은 상처까지 입어 얼마 못갈것 같소. 나에게는 아들도 없으니…》

소부왕은 숨이 가빠 말을 멈추었다가 연타발대가를 눈짓으로 불렀다.

《연타발! 내가 죽으면 구려는 그대가 다스려야 할것 같소. 이미…》

연타발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계루부가 언청이부대의 습격을 받고난 뒤 연타발은 마치 그루터기만 남은 고목처럼 되여버렸다. 연타발이 자기의 친아들인 언청이를 두고 격동된 나머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피여났을 때는 언청이가 이미 자결한 뒤였다. 연타발은 죽은 아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언청이의 눈을 감겨주고 돌아섰다. 그러나 그때부터 연타발의 맥은 이미 깡그리 빠져버렸었다.

《연타발! 내 말에 노여운거요?》

소부왕이 조용히 물었다.

연타발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이 연타발에게 국권을 양보하시겠다는 어지는 삼가 헤아려 받들겠소이다. 하지만 소신은 우리 구려를 주몽이 다스렸으면 하오이다. 주몽은 이미 구려의 지내외병마사로 구려의 안전을 위협하던 말갈을 평정했고 또 소신도 이제는 늙었으니만큼 여러 제가들도 이의가 없을줄 아오이다!》

《재사는 어쩌고?》

《재사는…》

연타발대가는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소부왕은 괴롭게 연타발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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