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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15

 

오이와 부분노는 오녀산성에서 연노부에 있는 궁성으로 가고있었다. 소부왕이 오이에게 부여에서 사람이 찾아왔으니 왔다가라는 짤막한 통지가 왔던것이다.

오이를 떠나보내기에 앞서 주몽은 한동안 오이의 앞에서 서성거렸다.

《오이, 인차 돌아오도록 하게. 여기 말갈의 형세가 이제냐 저제냐 하는것도 그렇지만 난 자네가 이번 길에 무슨 일을 칠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드는구만. 그래서 부분노를 함께 보내는것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주몽형, 걱정마시오이다. 소부왕이 부르는데 어련하겠소이까? 저의 예측에는 틀림없이 고도가 온것이 아닌가 생각하오이다. 어제 밤 꿈에 고도가 보였소이다.》

오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였다.

《하여튼 자네를 기다리고있겠으니 그리 알게.》

길을 가는 오이의 기분은 사뭇 흥겨웠다. 계절도 가을이다. 하늘은 부쩍 높아져 푸르고 말들도 살이 찌는 계절이다. 메마르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안일하게 만드는듯 하다.

오이는 맑은 공기를 페부에 한껏 들이키며 말이 걷는대로 몸을 흔들었다.

그의 옆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지켜보던 부분노가 물었다.

《오이, 고도라는게 누군가?》

그러자 오이는 벌씬 웃으며 부분노쪽으로 돌아섰다.

《내 처남될 사람이지…》

《그래? 그 사람도 자네처럼 장수인가?》

《아니, 아직 솜털도 벗지 못했어. 게다가 벙어리일세.》

《흠, 그래?》

《참, 부분노에게도 처남이 있소?》

《허허, 나 같은것한테 처남이 다 뭔가? 내 안해는 외토리였는걸…》

《아참, 그렇지, 미안하오.》

《미안하긴. 오이는 참 좋겠어, 처남이 다 있구. 나의 안해도 외토리요, 나도 외독자이다나니 형제가 많은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네.》

《부분노에게도 숱한 아우들이 있지 않소?》

《그게 무슨 말인가?》

《부분노가 우리 주몽형을 받드니 결국 우리 6형제들도 부분노의 아우벌이 되지 않소?》

《하, 참 그렇지 그래. 오이! 자네 내 아우가 될수 있겠나?》

《주몽형을 따른다면야 이 오이도 부분노의 아우노릇 기꺼이 하겠소!》

《좋아! 내 이번 길 갔다와서 병마사에게 승낙을 받을테야. 그러면 나에게 단꺼번에 여섯아우가 생긴단 말인가? 하하. 어머님에게 알려서 내가 잔치를 차릴테야!》

《부분노만 차리겠소? 우리 여섯형제도 가만있지 않을거요!》

《하, 하, 하.》

메마른 풀들이 누렇게 누워있는 벌판으로 두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퍼져갔다.

두사람을 맞이한 소부왕의 낯빛은 질려있었다. 소부왕은 도리에게 그들을 안내하도록 했다.

오이와 부분노가 불안스럽게 자주 뒤를 돌아보는 도리를 따라간 곳은 고도가 있는 집이였다.

그들이 당도했을 때 벙어리소년은 침상에 고요히 누워있었다.

오이가 우뚝 선채로 잠든듯 한 고도의 모습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무엇에 맞았는지 소년의 뺨은 험하게 상처가 나고 푸르스름하게 멍이 졌는데 입술은 조갈이 들어 고목의 껍질처럼 터갈라졌었다. 고도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이의 눈치를 살피던 도리가 참다못해 소년의 곁에 다가가 그를 흔들었다.

《얘야! 정신차려라! 네가 찾던 사람들이 왔다!》

그러자 소년이 눈을 떴다. 그의 눈길이 도리를 거쳐 그뒤에 선 오이와 부분노에게 가더니 스르륵 감겨졌다. 그러나 인차 다시 떴다.

소년의 눈은 차츰 생기가 떠돌기 시작하였다. 그는 분명히 오이를 알아본것이였다. 소년의 멎은듯 하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소년의 눈길이 오래도록 오이에게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오이는 그냥 묵묵히 지켜보고있었다. 하지만 지금 오이의 가슴속에서는 무서운 폭풍이 일어나고있었다. 까딱 다치기라도 하면 금시 터질것 같았다. 목에 퍼런 피줄이 튀여일어나고 입술이 가늘게 떨고있었다. 말 못하는 이 순박한 소년을 누가, 어째서 이렇게 만들었느냐? 누가, 누가, 누가…

오이의 심중에서는 반문의 뢰성이 끝없이 울리고있었다.

오이를 이윽히 바라보던 소년은 입술에 가냘픈 웃음을 짓고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부분노가 오이의 옆모습을 훔쳐보고나서 마침내 소년에게 다가가서 부축하였다.

소년은 자기의 허리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거기에는 유지에 싼 한통의 서신이 나왔다. 누군가 꺼내 펼쳤던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추연에게서 온것이였다.

그것을 훑어보던 오이가 다시금 소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것때문에 집을 떠났더냐?

그래요. 누이가 얼마나 안타까와하는지… 곁에서 보기가 막 속상하더군요. 그런데 이 꼴이 되였어요.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도리에게 눈길을 주던 소년의 얼굴이 이그러졌다. 이마에서 땀이 솟았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오이를 찾았다. 소년은 누가 오이를 어쩌기라도 하려는듯 불안스러운 눈길로 오이를 살피고있었다. 한참 지나 소년은 안심하듯 입술에 엷은 미소를 피웠다. 그 미소를 내려다보는 오이의 볼편이 푸들푸들 떨렸다. 소년의 몸은 이미 식어가고있었던것이다. 정기가 사라지는, 하지만 여전히 맑고 큰 눈이 무엇인가를 끝없이 절규하며 혹은 무엇인가를 끝없이 속삭이는듯 하며 오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소년의 최후를 지켜보는 도리는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풍맞은 사람 같았다. 그는 오이와 벙어리소년을 연신 살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서신을 손에 쥔채 굳어진 오이의 모습은 너무나 침통했다.

부분노는 오이와 소년을 번갈아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말 못하는 소년이 이렇듯 처참하게 죽어간것은 무엇때문인가. 이것이 한낱 운명의 조화일가?

아니다. 길! 주몽이 가고저 하는 길! 그의 아우들이 따라나서고 자기 또한 동행하려고 하는 그 길앞에는 잔인하고 가혹한 독사며 독거미 같은것들이 수없이 우글거리며 이런 처참한 죽음을 기다리고있는게 아닐가? 그늘속에 침침하게 숨어있는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 뛰여나올지 과연 누가 안단 말인가.

부분노는 오이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나서 벙어리소년의 눈을 감겨주었다.

오이는 여전히 돌미륵처럼 굳어져 부분노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오이!》 부분노가 불러도 대답이 없다. 순직하기만 한 오이가 이런 모습을 하고있을적에야 그의 마음속이 과연 어떻겠는가. 오이의 가슴속에서 설설 끓고있는 용암을 무슨 말로 달랠수 있단 말인가? 부분노는 어쨌으면 좋을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달밝은 밤. 구슬픈 밤새소리가 숲속에서 울었다.

우렷이 솟아오른 오녀산성을 배경으로 주몽이 서있었다. 그는 달빛을 받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행을 주시하고있었다.

마리, 협부, 재사 그들도 말없이 다가오는 일행을 바라보고있었다. 앞에서 오는 일행은 작은 관을 실은 수레를 앞뒤로 지켜오는 오이와 부분노였다. 오이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 수레의 뒤를 따르고있었다. 부분노에게서 벙어리소년이 바로 오이를 찾아온 사람이며 그가 처참하게 죽었다는것을 들었을 때 주몽은 몹시 놀랐다. 주몽은 오이가 걱정되였다. 그가 격동되면 하늘을 뒤집어엎을지도 모른다. 오이는 그런 사람이였다. 더구나 말은 하지 않지만 류달리 벙어리소년을 귀여워하던 오이였음에야… 하지만 오이에 대한 소식은 주몽을 다시한번 놀래웠다. 우락부락한것 같으면서도 웅심깊은 정을 안고있는 오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건만 뜻밖에도 오이는 제 손으로 관을 만들고 고도를 안치한 다음 오녀산성으로 조용히 떠났다는것이다.

소부왕도 도리도 감히 말 한마디 할수 없었다.

마침내 오이가 다가왔다. 푹 수그린 오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몽의 마음은 저미는듯 하였다. 일행이 가까이 왔다.

《오이.》 하고 주몽은 나직이 불렀다.

오이는 우뚝 멈추어섰다. 그의 물기어린 눈이 달빛에 번쩍이였다.

《오이.》

주몽이 다시 불렀다.

주몽을 바라보는 오이의 입술이 떨렸다.

《오이, 슬픔을 거두게! 고도의 죽음은 결코 헛된것이 아니야. 이애는 단군을 받들어 겨레의 통일과 복락을 이룩하려는 우리 성업의 순국자일세! 난 이애를 장차 우리의 터전으로, 보루로 될 오녀산성의 고로봉에 안장하려네. …》

오이는 입을 꽉 다물고 주몽을 바라보았다. 달빛어린 오이의 눈에서 맑은 샘이 솟구쳐 흘렀다.

제 눈앞에서, 눈도 못 감고 죽은 말 못하는 어린 고도를 제손으로 관에 눕혀 싣고 오면서 터치면 뚝도 허물어버릴 격정을 참고참아오던 오이가 그제야 주몽을 끌어안고 오열을 터치였다.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그렇게 되면 불쌍한 고도도 눈을 감을것이오이다!》

《오이, 이런 자네를 보니 마음이 놓이네. 고맙네. 우리 명심하자구. 우리가 가야 할 그 길에 이런 가슴아픈 불행이 한둘이 아닐걸세. 그걸 각오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길을 갈수 있겠나?》 하고 주몽은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감겨진 눈굽밑으로 눈물이 흘렀다.

《주몽형, 알겠소이다.》

 

쑥불을 마주하고 여럿의 사나이들이 둘러앉아있었다. 이따금 타오르는 불빛에 사나이들의 얼굴이 불기우리하게 비쳤다.

주몽, 오이, 부분노, 마리, 협부, 무골의 얼굴이 보였다. 주몽은 벌써 이틀째 말갈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전군에 비상을 걸었었다. 그러나 말갈은 마치 그러는것을 아는듯 잠잠한체 하였다. 주몽은 지나치게 군사들을 긴장시키는것이 좋지 않아 우선 띠를 풀어놓게 할 심산으로 부분노에게 우스개소리라도 하라고 귀띔하였다. 지나치게 긴장해있는것은 군사들에게 좋지 않은 법이다. 부분노는 주몽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이야기를 시작한것이다. 협부가 허리를 굽혀 쑥불을 후-후- 불자 펑끗 불길이 일어나다가 다시 연기가 뭉클뭉클 피여나 사방으로 쑥타는 냄새를 진하게 풍겨갔다.

《그래서 어찌 됐소이까?》 하고 얼굴에 밀려드는 쑥연기를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무골이 물었다.

그러자 부분노는 주몽의 얼굴을 피끗 보며 푸수하니 웃었다.

《어서 계속하오, 부분노, 그래 총각녀석이 어떻게 했소?》 하고 주몽이 부추기자 부분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 총각녀석이 홀딱 벗었소이다.》

《뭐, 홀딱 벗었다? 저런…》

《아니, 고투리까지 다 내놓았단 말이오이까? 하하…》

사나이들은 키들키들 웃어댔다.

《그렇다니까. 녀석이 귀가 보배라고 밤에 맨몸뚱이바람이면 들통나지 않는다는 소리를 어디서 귀동냥한 모양이지?》

《하, 하. 그래서?…》

《그래서 과부네 집으로 살금살금 도적고양이처럼 다가가는거야. 때는 어렴풋한 달밤이라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한데 익은 살구냄새가 몰몰 풍겨와 총각녀석의 비위를 긁어대는 판일세. 총각애는 울타리를 넘어 살구나무밑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네. 과부의 방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바스락소리 하나 없겠다, 과부의 동창문을 살피고난 녀석은 마침내 손을 뻗쳐 살구를 따기 시작하였네. 극성스러운 과부가 익혀둔 살구라 녀석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어대는데 밑에서부터 올리올리 냠냠, 차, 이런 목젖 넘어가겠네. 이렇게 얼마나 먹었는지, 녀석의 배가 크긴 커, 글쎄 살구나무꼭대기까지 깨끗이 털어버렸다는거야. 실컷 정신없이 먹어 배가 불룩해지자 이제는 가야겠다 하고 두부자루처럼 부른 살구배를 쓸며 나무에서 내려서려는데…》

문득 부분노가 입을 다물었다. 크윽- 크윽, 웃어대던 좌중이 부분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하던 말을 잊어버린듯 모기쑥 타는것을 보고있었다. 그러자 듣던 사람들이 조바심쳤다. 협부는 참지 못하고 부분노의 어깨를 툭 쳤다.

《뭐가 어찌됐소이까? 부분노!》

그러자 부분노는 《쉿!》 하며 손바닥 내밀며 좌중을 쓰윽 훑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네!》

《뭐?》

듣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났는가 하여 놀란 학처럼 고개들을 뺐다.

《뭐가 나타났소?》 하며 무골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돌아본다. 그러자 부분노는 에흠 헛기침하고 말끝을 이었다.

《무슨 소리가 났네, 바로 과부의 방에서 말이야! 이게 뭐야? 총각녀석은 뚝 굳어졌지.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칼을 푸시시 내린 과부가 하품하며 나오는게 아니겠나? 들켰는가? 에쿠 야단났구나. 과부는 곧장 살구나무로 다가오는거야. 총각녀석이 얼마나 놀랐겠나? 저 과부에게 들키는 날에는 회초리에 얻어맞는 개구리신세를 면치 못하는거야. 게다가 이건 홀딱 발가벗은채로이니 큰일 아닌가? 자, 그런데 과부는 살구나무밑둥까지 왔다? 이거 어쩌자는거야? 총각녀석은 엉겁결에 한발 살구나무에 올라서는데 나무밑둥에 이른 과부는 풀썩 그자리에 앉더니 쏴- 오줌을 누는게 아닌가. 후-하니 둘이 다같이 한숨을 쉬였다네. 과부는 마렵던 오줌을 누니 시원해서고 총각녀석은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에서지. 괜히 속을 조였군. 밤오줌 누러 온줄도 모르고… 그러고보니 저 과부는 이 살구나무밑에 와서 오줌을 누군 하는 모양이지? 별루 살구가 맛나게 익었다 했더니… 총각이 이런 생각을 굴리는데 아래에서는, 흠, 과부가 오줌을 다 누고 부시시 일어났지. 총각은 빨리 가세요 과부여 하는 판인데 어디 가줘야 말이지. 이런 속상한 일이라구야. 과부는 갈 생각은 않고 머리우로 손을 뻗치는것이였네. 아마 살구 한알 맛보고 들어가려는지… 헌데 아무리 손더듬거려야 어디 살구가 걸리나? 총각녀석이 이미 말짱 해치웠는데… 모기쫓듯이 허우적거리며 살구를 찾던 과부는 기웃거리며 뭐라 중얼거리더니 이젠 살구나무에 올라서겠지. 총각녀석은 기겁해서 한가지 더 올랐지, 참, 가관이야. 밑에서는 살구 한알 따려고 손을 들어 허우적거리고 우에서는 잡힐가보아 기겁을 떨며 오르고… 차, 이런 푸름한 달빛아래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판이야. 끝내 녀석은 오를데까지 올랐지. 이제는 마지막이구나 하고 녀석은 짝지발처럼 뻗은 나무가지에 두다리를 벌려 디디고 눈을 꾹 감았지. 그런데 아래 과부는 여전히 살구를 찾느라고 손더듬하며 오르는거야. 아, 이거 어쩌자는거야? 그런데 이때 과부의 손끝에 드디여 살구 한알 잡혔네. 이크 이제야 한알 잡혔구나. 아이구 요놈의 살구가 꽤나 말랑말랑하구나 하고 과부는 좋아하는데 그게 총각애의 자지인줄 어찌 알았겠나. 과부는 좋아하고 자지 잡힌 총각은 죽을 맛이고…》

와- 하하,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부분노는 얼굴을 찡그렸다.

《자,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자네들은 총각이 아닌가? 같은 총각녀석이 과부에게 자지를 잡히여서 속이 타는데 웃기는 젠장!》 하고 부분노는 제편에서 성을 내는체 한다.

그통에 더욱 킬킬 웃음이 넘쳤다.

《부분노! 그래 어찌됐다는건가. 그 과부가 밤새껏 총각자지를 만지작거렸다는건가, 응? 아, 하, 하!》 하며 주몽이 허리를 꼬부리며 웃어댔다.

《쳇, 밤새껏이 뭐요?》

《그럼, 어찌됐소?》

《터졌수다!》

《뭐, 터졌다, 하하! 살구가 터졌단 말이요. 으와하!》

《사… 살구가 무슨 서리맞은 다래라고 터진단 말인가. 하, 하!》

《헹, 살구가 터졌다나?》

《그럼, 뭐요? 흐…》

《바빠맞은 총각녀석이 그만 똥줄을 놓쳤소다!》

《으하하! 그… 그래서…》

《그러자 살구알을 만지던 과부가 에구구… 살구가 터졌구나 아까운거, 하면서 곰이 발바닥 핥듯이 녀석의 똥줄이 흘러내리는걸 핥아먹었다지 않소이까. 하긴 그게 말짱 살구를 따먹고 놓친거니까 맛이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부분노는 말을 마치고 버름하니 웃었다. 협부며 무골은 매방울소리 들은 까투리처럼 대굴대굴 굴렀다. 그들이 한참 눈물 흘리며 웃어대는데 말울음소리가 들렸다. 미구하여 웬 사람이 어둠속에서 나타났다. 주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타난 사람은 묵거였다. 그는 다급히 뛰여와 주몽앞에 이르러 한무릎을 꿇고 절하였다.

《주몽형! 그간 편안하셨소이까?》

《아니, 묵거가 아닌가? 이게 웬일인가 응?》

《주몽형, 급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급한 일이라니 부대는 어쩌고?》

《주몽형, 말갈이 불원간 란을 일으키려고 하오이다.》

《그건 이미 우리도 알고있네. 그것때문인가?》

《그리고 그 말갈이 란을 일으키면 <검은 칼잡이>부대 언청이 두령이 합세하게 되였소이다.》

《뭐라구? 그건 정말 큰일이구만. 자,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보게.》

묵거는 건건이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묵거의 말을 듣고난 주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때껏 좋게 나오던 언청이두령이 어째서 별안간 말갈사람들에게 찾아간것일가? 그것도 당장 말갈이 란을 일으키려는 마당에 와서…

만일 언청이두령이 말갈에 합세하는 날에는 일이 심상치 않다. 그들, 《검은 칼잡이》부대도 부대려니와 구려 각 부에 있는 그 숱한 노예들이 언청이두령의 령에 따라 말갈을 돕는다면 대패하게 된다. 바로 그것을 경계하여 이때껏 묵거를 들여보낸것인데 일이 이렇게 번질줄이야… 어쨌든 이러고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묵거, 자네는 이 길로 빨리 돌아서게. 말갈이 어느때 란을 일으키려는가를 정확히 알아보면서 어떻게 하든 언청이두령이 말갈에 합세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네. 알겠나?》

묵거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는 말 있는데로 다가갔다.

《가만, 가던 길에 계루부에 들려 재사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게.》

《알겠소이다.》

《재사가 언청이두령을 만나 일을 처리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이런 일에 재사가 경험이 있어.》

협부가 다가왔다.

《주몽형, 제가 가는것이 어떻소이까?》

《자네가?》

주몽은 협부를 바라보다가 드디여 승낙했다. 《재사에게는 비추장군과 함께 계루부쪽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게. 그리고 자네는 묵거와 함께 <검은 칼잡이>부대에 급히 가게. 그러되 절대로 언청이두령이 놀라지 않도록 하게! 그게 제일 중요한거야. 다른 일들은 림기응변하게. 지금은 그렇게밖에 말할수 없네. 상황을 급히 알리게.》

《알겠소이다!》

협부는 묵거의 뒤를 따라 말을 달렸다.

 

구도는 정렬하여선 자기의 군사들을 점고하고있었다. 넓은 공지에 꽉 들어찬 말갈군사들은 모두 씩씩하였고 그 수는 보이지 않을만큼 많았다. 사방에 울긋불긋한 기치가 날리고 창이 부딪치는 절그렁소리, 말들의 투레질소리가 저 멀리 숲가에까지 울려갔다.

구도는 솟구치는 전의(戰意)를 흐뭇하게 느끼며 군령을 받기위해 늘어선 자기의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맨 마지막부하의 얼굴까지 살피고난 구도는 손에 들었던 칼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는 군령을 내렸다.

《선봉장 분구, 너에게 정병 2만을 줄테니 오녀산성을 한칼에 쳐 점령하라. 오녀산성을 타고앉지 못하면 군법으로 다스린다.》

분구가 나와 구도에게서 검을 받았다.

《후군장 일구, 너에게 군사 1만을 줄테니 우리의 읍락을 수비하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령이 없이 성채를 버려서는 안된다!》

일구도 대인에게서 검을 받았다.

《중군은 좌, 우로 나누되 내가 맡는다. 선봉장은 이 길로 곧추 오녀산성에 닿아 질전법(疾戰法)으로 성을 타고앉아라!

공격을 늦추어 적의 기각이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하는 날에는 네 목을 내놓아라!

중군은 좌, 우군으로 나뉘여 진력을 다해 오녀산성을 멀리 에돌아 연노부를 점거하라!

제장들, 명심해듣거라. 마두출령(馬頭出令)의 요는 연노부다! 나의 계략으로 구려의 소부왕과 연노부의 도리가 일시 오녀산성과 주몽을 멀리하는 때를 타서 구려의 머리를 잘라버려야 한다. 장졸반목(將卒反目)은 병서 열네가지 가운데 하나다. 이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이번 연노부 겁략은 이미 승패가 결정되였다. 왜 그런가? 첫째 연노부는 대오가 문란해지고 사람과 말이 굶주림에 이르렀으며, 사졸이 피로해져 군령이 문란해지고 전의겁약해졌다. 둘째로 연노부는 지리도 불편하여 우리가 한번 들이치면 단숨에 점령할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적을 알고 적은 우리를 모른다. 나는 연노부의 도리대감을 장계취계하여 우리 말갈이 쉽게 이길수 있게 하였다! 그러니 제장들은 다투어 군공을 세우도록 하라!》

장수들은 군령장에 다짐을 두고 각기 자기의 부대로 흩어져갔다.

구도는 나중에 전령을 불러 《검은 칼잡이》두령에게 우격(羽檄)을 전하도록 하였다.

《두령에게 전해라. 약속대로 계루부를 들이치길 바란다고.》

구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연노부를 들이치고, 계루부를 들이치면 제아무리 강한 주몽도 어쩌지 못할게다. 그렇게 되면 구려는 무너지고마는거야. 이젠 먹어논 떡이다. 흠.

그무렵 구려궁성이 자리잡은 연노부는 뒤숭숭해있었다. 다만 도리대감만이 활기를 되찾았다. 그는 딴 사람이 된듯 하였다.

부여의 사신이 왔다간 다음 소부왕은 근심에 빠졌다. 부여의 사신들은 주몽을 잡아바치든지 지경밖으로 내치든지 량단간의 결심을 내리되 만약 거역한다면 군사를 일으켜 구려를 먹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부왕에게는 호미난방격이였다.

《도리대감, 이 일을 어쩌면 좋겠소?》 하고 소부왕은 다시 이전의 그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왕으로 되돌아갔다.

왕의 이런 변화와는 반대로 도리는 의기양양하였다.

《전하! 분명 부여가 저들이 보낸 전령자가 드러난걸 알아차린 모양이오이다. 구마를 죽인 애 말이오이다. 그러고보면 주몽은 틀림없이 부여의 밀령을 지닌 숨은 장수오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부여가 저렇듯 갑자기 강압해오겠소이까?》

도리의 말에 소부왕은 침통한 낯빛을 지었다. 도리의 말이 그럴듯 해보였다.

잠시후 소부왕은 자리를 불편하게 움직이였다.

《음, 이런 때는 어쩌면 좋겠소?》

이때라는듯 도리의 얼굴은 이전의 그 자신만만한 태도로 돌아갔다. 도리는 소부왕의 나약해진듯 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한발 다가갔다.

《급히 주몽을 부르시여 지내외병마사직을 삭탈해야 할줄 아오이다.》

소부왕은 눈을 감고있었다.

《그건 차차 생각해보겠소! 지금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소! 대감의 생각도 그렇고, 주몽을 그대로 놔두는것도 그렇고…》

소부왕은 어전을 물리고 모든 일을 전페하였다.

도리는 날마다 왕을 상견하여 자기의 주장을 되풀이하였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는 사이에 별안간 홍수가 닥치듯이 말갈의 군사들이 연노부를 에워쌌다.

말갈군사들은 마치 땅에서 솟아난듯이 나타나서는 벼락치듯 연노부를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부여사신의 엄포를 놓고 랭가슴을 앓고있던 소부왕은 당황하였다. 왕은 당장 오녀산성으로 피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말갈군사들은 연노부를 겹겹이 에워쌌던것이다.

말갈군사들은 허물어진 성채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연노부의 군사들이 필사적으로 적을 막았으나 워낙 중과부적이였다.

소부왕은 마지막결심을 내렸다. 머리에 투구를 쓰고 찰갑을 입은 왕은 손에 칼을 잡고 어전을 나왔다.

그러자 찰갑을 입은 도리가 왕의 앞을 막아섰다.

《전하, 어찌된 일이오이까?》

《가만히 앉아서 말갈놈들에게 치욕을 당할수 없소.》

소부왕의 얼굴에는 왕년의 그 패기가 살아올랐다. 피로하고 쇠약한 모습은 씻은듯 사라졌다. 오히려 태연자약해졌다.

왕의 모습을 올려다보던 도리는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였다.

《전하, 임금이 욕을 보게 되면 신하는 죽음으로써 그 죄를 씻을뿐이오이다. 소신이 말갈을 제압하겠소이다.》

《때가 늦었소. 이제는 끝까지 싸워 출로를 열어보는 길밖에 없소. 그것도 만에 하나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된것 같소.》

《하다면 소신이 앞장에 서서 길을 열어보겠소이다!》

도리는 말우에 올라 군사들을 독려하여 남쪽으로 나갔다. 그쪽이 말갈군사들의 제일 약한 고리였다. 북쪽으로는 점점 많은 적들이 밀려들고있었다.

왕을 호위한 도리가 연노부성을 빠져나와 골짜기로 한참 말을 달리고있는데 앞에서 한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그뒤에는 무수한 기치가 날리고있었다. 도리는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뒤에서는 앞만 못지 않게 승세한 말갈군사들이 짓쳐나오고있었다.

앞을 막아선 군마가 점점 다가온다. 진퇴유곡(進退維谷)이다.

도리는 좌우를 살펴보았다. 높지 않은 산들이 막혀있었다.

도리가 산우를 바라보고있는데 북소리가 울리더니 산우에 기발들이 무수히 솟아올랐다.

이때였다. 앞쪽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하, 하, 도리! 넌 함정에 빠졌다.》

구도였다.

도리는 격분하여 말머리를 돌렸다.

《구도, 이 후안무치한 놈.》

《하, 하, 도리, 네가 토끼새끼처럼 세갈래 굴을 파느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안돼. 항복하는게 어떠냐?》

도리는 칼을 휘두르며 내달았다. 구도도 맞받아나왔다.

두자루의 검이 무서운 번개불을 일구었다.

말갈과 구려 량쪽의 군사들은 넋을 잃고 두사람의 결전을 지켜보고있었다.

두사람은 벌써 오십여합째나 겨루었다. 도리의 얼굴로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더욱 백배하여 칼을 휘둘렀다.

마침내 구도가 말머리를 돌렸다. 도리는 그뒤를 좇았다.

소부왕은 기세를 타 군사들을 독려했다. 멈추어섰던 연노부군이 함성을 지르며 내달았다.

도리는 뒤에서 울리는 연노부의 함성에 힘을 얻어 구도를 기어코 베려고 바싹 그뒤를 좁혀갔다. 도리가 막 검을 들어 내리치려고 할 때였다. 말잔등에 납작 몸을 붙이고 달아나던 구도가 피뜩 뒤를 보더니 손에 쥐였던 검을 도리에게 날렸다. 검은 도리의 명치에 깊숙이 꽂히였다.

도리는 악-소리를 지르며 말잔등에서 떨어졌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구도가 다시 말을 돌려세웠다. 구도는 성난 매처럼 연노부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연노부군사들이 구도의 사나운 기세에 그만 좌우로 갈라졌다. 구도의 뒤를 따라 말갈군사들이 짓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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