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28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14

 

야밤, 삼경이 지났다. 별들마저 잠에 빠졌다.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하다. 무덤속처럼 고요하다. 연노부의 허물어진 성채, 쌓다가 만 그곳은 마치 괴물이 입을 항하니 벌린것 같았다. 어디선가 바람소리가 가늘게 휘익- 들리더니 허물어진 성채구멍앞에 검은 모습이 여럿 나타났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잠시 굳어진듯 서있더니 그 검은 그림자들은 바람같이 성채구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무렵, 알지 못할 괴물이 머리를 꽉 그러쥐고 마치 공기돌놀리듯 휘휘 돌리는 바람에 도리는 으악-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입을 벌릴수 없었다. 머리를 그러쥔 악마의 발톱에서 빠져나오려고 해보았댔자 독수리발톱에 채운 병아리처럼 꼼짝할수 없었다. 마침내 괴물이 자기의 심장에 시퍼렇게 날 선 비수를 가져다댔다.

《네놈의 피를 좀 맛보자는거야. 알겠어?》 하며 괴물은 히히 웃어댔다. 그 괴물의 희고 삐죽한 이발이 몸서리치게 한다.

비수는 점점 가까이 온다. 이제 쿡 찌르면 선지피가 물줄기처럼 뿜어나올것이다. 아- 악-

도리는 안깐힘을 썼다.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마가 무엇에 딱 짓쪼인다. 도리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말았다.

잠시후 무엇이 자기의 뺨을 두드리는 바람에 도리는 눈을 떴다.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러고보니 악몽에서 깨여난 때 침상에서 떨어진 모양이였다. 눈두덩이가 껍진거렸다. 도리는 바른 손을 들어 만져보았다.

피!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방은 아직 캄캄하다. 가만, 누군가 뺨을 쳤는데?

도리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앞으로 다가온다.

《누구냐? 너는?》

《허, 깨여나셨소? 괴물은 아니니 맘을 놓소. 무슨 꿈을 그리 되게 꾸시오?》

귀익은 소리다. 어디서 이런 목소리를 들었던가? 도대체 여기는 어딘가. 분명 늦게나마 나는 침전에 들었는데… 그런데 여기는? 무덤속인가?

《누구요?》

도리는 떨리는 소리로 재차 물었다.

《나요.》

《나라니?》

《흠, 구도요! 말갈대인 구도.》

도리는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무엇이 어깨를 밀치는 바람에 한쪽으로 몸을 기울며 침상에 주저앉았다.

《이거 왜 이래? 소동을 피우면 피차 좋지 못해. 꿈꾸다 죽게 된걸 살려주었으면 고맙다고 해야 할게 아니야?》

《네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느냐?》

차츰 정신이 들어 도리는 기력을 되찾았다.

《다 당신을 위해서요.》

《날 위해서라구?》

《그래.》

그러고보니 방안에는 다른 두놈이 더 보인다. 문가에 지켜선 두놈은 희미하게나마 칼날이 번쩍이는것을 보아 알겠다. 도대체 이놈들이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어? 시위군사놈들은 어디 가서 썩어빠졌어, 젠장.

《여보 도리, 아마 당신은 이 구도가 어떻게 여길 들어왔나 하고 골을 썩이는 모양인데, 집어치워! 이런 썩은 울바자를 둘러친것 같은 곳에는 돼지새끼들이나 들어오기 십상이겠어. 자, 이제는 정신이 좀 들어?》

자식, 그 지독한 반말질은 무덤에 들어가야 고칠가부야.

도리는 고개를 휘둘렀다.

《그래, 왜 왔소, 구도?》

《어, 이제야 정신을 차리셨군.》

구도는 나직이 킬킬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꿈속의 그 괴물웃음과 흡사했다.

《여보, 도리대감, 거듭 말하지만 난 당신을 구원해주자고 이렇게 모험을 했소. 세상 어디에 대군의 우두머리가 이렇게 협객처럼 적수의 진중에 나드는 법이 있소. 이게 다 우리 말갈사람들만이 가질수 있는 협기야, 협기! 알겠나?》

《수다는 그만 떨고 진속이나 말하오. 간단히.》

《그러지. 아닌게아니라 이제 날도 밝겠으니까…》

구도는 어둠속에서 흰 이를 이따금 드러내며 이야기했다.

우리 말갈은 오래동안 당신들과 이웃하여 살아왔다. 물론 약간씩의 다툼은 있었지만 어쨌든 서로 사이좋게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평화는 깨여졌다. 그건 전적으로 구려의 잘못이다.

구려와 말갈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것은 저 주몽때문이다. 주몽은 평화롭던 구려와 말갈사이에 끼여들어 수많은 우리 말갈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이제 더 큰 싸움을 벌리려고 산성을 쌓고있다. 우리는 몇번이나 그걸 저지시키려고 해보았지만 워낙 주몽이 지모있고 용력무쌍해서 실패만을 거듭하였다. 주몽은 그 수하에 저만 못지 않은 군사들을 거느리고있다. 이것은, 말갈은 물론 구려에도 리롭지 못하다.

생각해보라. 주몽이 지금 강세하여 구려를 도와 말갈을 치는것 같지만 그는 부여에서 온 장수다.

그만큼 문무 뛰여난 잠룡이 어째서 부여에서 이 남쪽으로 왔겠는가. 이것은 부여의 계책이다.

이제 보라.

주몽이 말갈을 점령하고는 인차 구려도 손아귀에 넣어 부여에 복속시키자고 할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구려도 어차피 부여의 읍락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을 장차 구려의 임금자리를 노리는 도리, 당신이 참을수 있겠는가? 구도의 장황설은 여기서 끝났다.

도리는 코를 내불었다.

《당치않은 소리!》

《여보 도리, 꿈에서 깨여나오.》

《구도, 당신은 주몽에 대해서 악담을 늘어놓아 구려를 리간시키려는것 같은데 그렇게는 안될거요. 그는 우리 상감의 총애를 받는 지내외병마사란 말이요. 나도 그를 신망하고있소.》

《그럴듯해! 도리대감, 눈감고 아웅하는것 그만하지. 이제 날도 밝아오는데…

주몽이 없어지면 우리 말갈은 다시 당신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거요, 난 말갈의 대인으로서 그걸 담보하오!》

도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손바닥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이놈이 귀신은 귀신이다. 어떻게 우리의 내속을 뻔드름히 알고있는걸가. 혹시 말갈놈들이 우리 내부에 자기의 세작들을 촘촘히 늘이고있는것이 아닐가? 그건 그렇고 이자가 하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과연 주몽에 대한 판단은 나와 상통하는데가 있지 않는가?

《뭘 그리 생각하오? 도리대감, 주몽만 없어지면 우리는 당신이 왕이 된 구려와 화친할수 있소. 내가 오죽했으면 이렇게 찾아왔겠소?》

《그런데 말이요, 구도대인, 주몽이 구려를 부여에 복속시키려 한다는건 새빨간 거짓말이요. 그럴수 없소! 그는 부여태자와 엇나서 여기로 온거요. 누군 머저리인줄 아오? 나도 알만큼 알아보았단 말이요!》

《구마를 부여에 보내서 말이요?》

구도의 역습에 도리는 깜짝 놀랐다.

이놈이 그걸 어떻게? 그러고보니 이놈이 내 속을 말짱하니 들여다보고있구나. 죽일 놈!

《여보 도리대감, 내 말 듣소. 그 구마라는 반편이 부여에 갔다온 다음 이 구려에 부여사람이 또 나타났소. 그게 누구요? 벙어리! 벙어리란 말이요. 그 병신인체 하는 애녀석이 주몽을 만나려고 하는줄 모르지 않을텐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소?》

도리는 더 할말이 없었다. 완전한 패배다. 이 말갈놈이 횡설수설하는 소리가 흑백을 뒤집어놓는 랑설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지만 도리는 구도가 너무나 자기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바람에 굴복하고만것이다.

《그래, 구도, 어떻게 하자는거요?》

《불원간 우리는 주몽을 치려고 하오. 주몽은 당신이나 우리 말갈에 다같이 리롭지 못하오. 그래서 협공하자는거요. 주몽이 저렇듯 승세하는건 당신네 왕이 그를 밀어주기때문이요. 왕이 그를 버리면 끈떨어진 뒤웅박이 될거요. 어떻소?》

《여보 구도. 주몽이 우리 상감마마의 비호로 승세한단 말은 어느 정도 옳소. 하지만 그는 계루부의 주장이요. 계루부의 연타발대가가 그를 밀어주는 한 주몽은 어쨌든 득세할거요!》

《계루부? 모를 소리요. 연타발이 어째서 주몽을 밀어준단 말이요? 그에게는 재사가 있지 않소? 당신네 소부왕은 아들이 없어 주몽을 밀어준다고 할수 있지만 연타발은 다르지 않소?》

도리는 비웃음을 지었다. 이자가 모르는것이 없는듯 하더니 역시 야만인은 야만인이다. 도리는 어둠이 차츰 엷어지는 속에서 번뜩이는 구도의 낯을 살피며 말했다.

《이것 보오 구도, 재사는 연타발의 친아들이 아니란 말이요. 알겠소?》

《뭐라구? 그게 무슨 소리요. 재사가 연타발의 친아들이 아니면 뭐란 말이요?》

《친아들은 다른 사람이요!》

《그게 누구요?》

《흠, 이렇게 된바에 무얼 숨기겠소? 언청이두령! 그가 바로 연타발의 친아들이요!》

《뭐? 그 <검은 칼잡이>두령이?》

《그렇소!》

《아, 아-》

잠시후 구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리대감, 어쨌든 나는 이쪽 일을 두고보겠소. 우린 신용을 귀중히 하는 사람들이요. 그러니 당신의 태도여하에 따라 우리도 할바를 할거요.》

구도가 물러가자 방안은 갑자기 밝아지는듯 하였다. 도리는 아직도 악몽에서 깨여나지 못한 질쩍한 기분이였다.

도리는 온몸의 진이 눈녹듯 사라지는것을 느끼며 침상에 주저앉았다. 어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외간놈에게는 밀리우고 원쑤에게는 얼리우고, 대체 이 도리가 어찌다 이렇게 됐단 말인가?

차츰 날이 밝았다.

《거 누구 없느냐? 얼른 구마를 불러라!》 하고 도리는 간밤 상전을 팽개쳐둔채 쿨쿨 잠을 잔 노복들에게 소리쳤다.

그런지 얼마뒤에 얼굴에 아직도 잠기가 덕지덕지 밴 구마가 들어섰다.

《형님, 아침부터 어째 이리 설치시는거요?》

구마는 선하품을 하며 투덜거렸다.

그 소리에 가뜩이나 눌려있던 도리의 심중이 터지고말았다.

《뭐가 어째? 네놈은 언제 가야 그 야만…》

입술을 달달 떨며 소리를 지르던 도리는 갑자기 굳어졌다. 야만이라는 소리에 간밤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던것이다.

《음, 음.》

도리는 헛기침을 했다.

구마의 눈길이 도리의 낯빛을 의아한듯 쳐다보더니 바보처럼 웃었다.

《하, 형님이 또 밤샘을 하신 모양이시군요. 미련한 놈이 그런것도 모르고…》 하고 구마는 날 잡아주슈 하듯 허리를 굽신한채 펼줄 모른다.

그제야 도리의 속이 좀 풀린다.

《구마, 이리 오게!》

《무슨 일이오이까?》

《여보게, 그 벙어리가 지금 어디 있나?》

《왜 그러시오이까?》

《글쎄, 어디 있냐 말이야?》

《제 집에 있소이다.》

《그래?》

《그런데 신새벽부터 웬일이시오이까?》

도리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어차피 일은 간두지세(竿頭之勢)라 대끝에 선듯이 궁박한 형세다.

그럴바치고는 당장 편한걸 찾는 고식지계(姑息之計)를 쓸수밖에…

《여보게 구마, 내가 간밤 잠을 설친건 다름아니라 그 벙어리때문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오이까?》

구마의 눈이 껌벅거렸다.

도리는 구마의 눈을 똑바로 찍어보며 입을 열었다.

《실은 밤새 신령님에게 접했던거네.》

《신령님에게?》

《그래, 그 신령님이 나에게 이르시기를 부여에서 온 벙어리는 세작이라는거야. 부여에서 주몽을 보내 우리 구려를 먹을 계략을 꾸몄는데 바로 그 벙어리를 전서자(傳書者)로 했다는게 아니겠나? 자네 내 말 믿나?》

《믿지 않을수가 있소이까? 저 부여도 가섭벌로 천도할 때 대신 아란불에게 하늘이 이르기를 <동쪽 가섭벌로 가거라!> 해서 옮겼다질 않소이까. 그래서 부여가 저렇게 큰 나라로 된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니 어디다 대고 감히 신령님의 말씀을 의심하겠소이까?》

《그렇지. 자넨 참, 하늘을 공경하는 착실한 사람이야. 그러니 말이야. 자네가 그 벙어린지 귀머거린지 하는 애녀석을 잘 닥달질해서 부여의 전서를 꼭 알아내란 말이야. 내가 직접 상감을 만나 일이 여차여차하게 되였다고 상주하면 이 기회에 구려를 떼여 부여에 복속시키려는 주몽의 흉계를 꺾어놓을수 있네. 상감마마가 아무리 주몽을 믿는다고 해도 증거가 있는데야 어쩔수 없을게 아닌가?》

《그런데 그 벙어리가 정말 부여의 세작, 아니 저… 전서자가 옳소이까? 그는 벙어린데 설마…》

《자넨 아직도 하늘을 믿지 않나? 신령님을 믿지 않아? 그리고 벙어리가 설마 계략의 전서자인가 하네만 그것도 그렇지, 음흉한 놈일수록 자네처럼 선량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리용하는거야! 설마가 뭔가, 설마가… 그러니 사정보지 말고 패대라고… 알겠나?》

《알겠소이다.》

《그리고 만약시 상감마마께서 그 벙어리를 상견하자고 할수도 있는데 상감앞에서는 절대로 벙어리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말아야 해. 알겠나? 끝끝내 속심을 숨기는 지독한 전서자로 패야 해.》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이렇게도 무디다고야. 상감마마께서 전서자가 벙어린줄 아시면 우리 어진 상감께서도 자네처럼 설마 저게 전서자일고? 하실게 아니겠나? 만약 그렇게 되면 자네는 일껏 임금님에게 잘 보일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거야. 그 애녀석이 끝끝내 비밀을 불지 않는 악질이 되여야 상감께서도 이게 아주 중한 일인줄 아실게 아닌가?》

《예… 에, 알겠소이다.》

《그럼 잘해보게! 난 상감을 뵈와 사정을 아뢰겠네…》

도리는 그길로 임금을 뵈오려고 대궐로 들어갔다. 궁여지책이라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짓인가. 과연 상감께서 트는대로 이리저리 간신히 꾸며대는 동도서말(東塗西抹)을 믿으실가? 만일 이것이 세상을 속여 헛된 명예를 탐하는 일이라는것이 드러나며는 기군망상(欺君罔上)으로 되는게 아닌가? 아니다. 기군망상의 죄는 쓸지언정 어찌 불공대천지 원쑤와 간통했다 하여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소냐. 도리는 마침내 결심하고 왕을 뵈오러 들어갔다.

왕은 도리대감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새는 별로 활기에 넘쳐보이는 상감이였다.

《어찌된 일이요, 도리대감?》

도리는 상감의 물음에 자못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근래에 나라일로 소신이 걱정되는바가 있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오이다.》

《그렇소? 정말 그대의 눈빛이 밤을 새운게 분명하구만. 그래 무슨 일들이요?》

《외람된 말씀이오나 상감마마께옵서 저 지내외병마사에 대해서 은총을 베푸심을 숙고하심이 어떠하실지…》

《또 주몽에 대한 말이요? 그렇지 않아도 말갈놈들이 오늘이냐, 래일이냐 하며 우리 구려를 먹자고 호시탐탐하는데 어찌 나라의 병권을 쥔 병마사를 의심하겠소? 도리대감, 그렇지 않소?》

《하오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있사오니 어찌 무사무려(無思無慮)하실수 있겠소이까? 주몽이란 사람을 잘 알아보심이 좋을듯 하오이다. 방심하셨다가는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울것 같소이다.》

소부왕은 어두운 낯빛이였다.

《도리대감이 그렇듯 간할 때는 무슨 근거라도 있는거요?》

《근거말이오이까?》

도리는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무척 안타까운 태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부왕은 근엄하게 말했다.

《그것 보오, 증거가 없이 어찌 함부로 그런 말을 하겠소?》

《아니오이다!》

《아니라니?》

《전하, 소신이 어찌 기군망상하겠소이까? 실은 단서를 잡고 아뢰자고 하였으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놓지 않을수 없소이다. 부여에서 주몽에게 전서자로 파한 놈을 잡았소이다.》

《뭐라구 부여에서? 무슨 전서자말이요?》

《저 주몽이 우리 구려를 병탄하여 부여에 복속시키자는것으로 알고있소이다. 명백한 단서를 쥐자고 소신이 구마를 시켜 알아보게 하는중이였소이다.》

《그게 사실이요?》

《사실이오이다.》

《하다면 과인이 직접 확인해볼테요.》

《어찌 루추한 곳에 행차하시겠소이까?》

《아니, 나라의 생사존망에 관한 일인데 이 무슨 소리요?》

이리하여 벙어리소년은 뜻밖에도 소부왕앞에 나서게 되였다. 구마가 나서서 부복하여 배알하고나서 소년이 전서자임을 장황하게 아뢰였다.

왕은 잠자코 구마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소년의 죄상에 대하여 악다구니질하던 구마는 잠시 고개를 들어 말없는 상감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저 소년이 부여에서 주몽에게 왔다는 증거가 있소?》

《그건, 저 주몽의 심복부하로 있는 오이에게 보내는 서신이 있소이다.》

구마가 올리는 서신을 도리가 받아올렸다. 왕은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야 문안서신이 아닌고?》

상감의 존안을 살피던 도리가 구마에게 눈짓하였다.

그러자 구마가 나섰다.

《아니오이다. 이녀석은 분명 주몽에게 오는 밀서를 숨기고 있소이다. 소신이 장담할수 있소이다.》

구마는 소년에게 돌아섰다.

《이놈의 자식, 말하지 못하겠어? 부여에서 주몽에게 무슨 지령을 전하라고 했어? 어서 말해.》

구마는 손을 버쩍 쳐들어 소년의 뺨을 쳤다. 금시 소년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구마는 연거퍼 매를 안겼다.

벙어리소년의 입에서, 코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벙어리소년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구마를 쏘아보기만 하였다.

그러자 구마는 더욱 약이 올라 란타질을 해댔다. 소년은 마침내 쓰러졌다.

《그만하오! 그만!》

왕이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저 소년이 어떻게 여기에 주몽이 있는줄 알고 왔소?》 하고 왕이 의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구마는 얼떠름해졌다.

《저녀석이 소신이 부여에 갔다올제 뒤를 밟은듯 하오이다.》

《네가 부여에 갔다왔단 말이냐?》

《아, 그런게 아니오라…》

구마가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도리는 구마의 실수가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빚어낼듯 하여 상감에게 돌아섰다.

《저 구마가 제정신이 아니오이다. 저 애가 부여에서 온것이 틀림없다면 분명 주몽이 우리 구려에 있다는것을 알고 왔을것이오이다.》

《음…》

소부왕은 그래도 믿음이 안가는 태도다.

왕과 도리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고있던 구마는 전하의 앞이라는것도 잊고 일어섰다.

《상감마마! 저놈의 잔꾀에 속지 마시오이다! 저놈은…》 하고 두손바닥을 펴보이던 구마는 훅- 놀라며 눈을 까집었다.

구마는 천천히 돌아섰다.

순간 도리는 물론 소부왕이하 근신들은 깜짝 놀랐다.

구마의 잔등에는 어른의 한뽐이 넘는 비파형단검이 꽂혀있었다.

뒤로 돌아선 구마는 까딱않고 쏘아보는 벙어리소년을 잡을듯이 허우적거리며 손길을 더듬다가 마침내 욱-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시위군사들이 칼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혼신의 힘을 다하였는지 쓰러진 구마를 내려다보다가 뒤로 넘어졌다.

 

《묵거! 묵거! 어디 있나?》

건건이는 산채의 문고리를 잡아채며 다급히 불렀다. 그러나 방은 비여있었다. 건건이는 사방을 휘둘러보고 다시 소리쳤다.

《묵거!》

건건이의 얼굴에는 불안의 빛이 짙게 어려있었다.

건건이가 뜨락을 벗어나려는데 숲속에서 묵거가 나타났다.

《묵거!》

《아니, 부두령이 웬일이요?》

《묵거, 이거 큰일났네!》

《웬일이요. 좀 차근차근 말씀하시오!》

《두령이 말갈사람들에게 갔네!》

《뭐라구요? 언제?》

《새벽에 떠났네! 떠나면서 인차 돌아서겠으니 부대를 대기시키라고 하는 품이 심상치 않네!》

묵거는 되박이마를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아무래도 모를 일이다. 주몽과 불함산에서 의형제를 맺은 후 묵거는 주몽에게서 이 《검은 칼잡이》부대에 들어가 그들을 장차 구려에서 웅지를 펼치는 일에 한몫 하게 하라는 밀지를 받고 이때껏 그 준비를 해왔었다. 그 과정에 묵거는 적지 않은 일을 이루어놓았다. 우선 두령 언청이의 신임을 받게 된것이 무엇보다 큰것이였다. 물론 건건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나 어쨌든 지금에 와서 두령은 묵거를 자기의 모사격으로 여기게 되였다. 건건이는 두령의 호위대장으로 있다가 인차 부두령으로 승격이 되였다. 두령은 노예주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를 가지고있었는데 그 증오는 도를 넘어 잔인한 살인을 즐기는 끔찍한 성격으로까지 번져졌다.

두령은 걸핏하면 칼을 빼들었고 그 칼에 무고한 사람도 가리지 않고 피를 묻히였다. 그러한 두령을 돌려세운다는것은 성난 호랑이를 길들이는것만큼이나 어리석어보였다. 언청이의 칼이 묵거의 목에 닿았던적도 수십번은 되였다. 하지만 묵거는 그 당돌한 성격과 주몽에게서 깨우친 단군선인의 웅지를 걸어 마침내 언청이두령의 신임을 얻었었다. 언청이두령뿐아니라 이 부대의 많은 칼잡이들도 묵거를 따라나서게 되였다.

묵거는 주몽에게서 불원간 있게 될 구려와 말갈과의 싸움에서 《검은 칼잡이》부대가 구려의 편을 들며 일이 여의치 않으면 하다못해 중립이라도 지키게 하라는 령을 받았었다. 그리하여 언청이두령을 타일러 구려에 가담한다는 호언을 받아낸것이 바로 며칠전인데 말갈사람들에게 갔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것도 묵거, 자기도 모르게…

결국 수십삭에 걸친 묵거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단 말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주몽형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만큼 《검은 칼잡이》부대의 행동여하에 따라 구려와 말갈과의 싸움, 나아가서는 겨레의 통일위업을 실현할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일의 승패가 달려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자신있게 장담한 묵거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이 이렇게 번져질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부두령, 그래 뭔가 짚이는데가 그렇게도 없소?》

《묵거, 내가 아는것은 말갈사람들이 인차 구려를 겁략한다는거네!》

《뭐요? 그걸 어떻게 알았소?》

《두령의 방에 들어가니 두령이 말갈의 사신과 이야기하더군. 앞서서는 뭘 얘기한지 모르지만 뒤말에 분명 말갈이 구려를 덮친다고 했네, …》

《큰일났군! 부두령! 아무래도 내가 주몽형에게 소식을 전해야겠소.》

《그래야지. 헌데 딴 사람을 보내면 안되겠나? 내가 가든지?…》

《그건 안되오. 부두령은 여기서 부대를 지켜야 하오. 만일 두령이 구려군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하든 저지시켜야 하오. 알겠소?》

《알겠네, 알겠어. 그런데 자네가 없이 내가 두령을 꽤 설복해낼가?》

《그러게 나도 인차 돌아서겠소. 그래 두령은 언제 오겠다고 했다구?》

《그저 인차 온다고만 했네. 두령이 몹시 사나운 표정이더구만. 그래서 더 꼬치꼬치 캐묻지 못했네.》

《내가 돌아서기 전에 두령이 와서 말갈사람들에게 합세하려고 하면 두령을 깨우쳐보시오. 그래도 안되면 우리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결판을 지을수밖에 없소. 제발 그렇게 되지 말아야겠는데…》

《알겠네. 자, 어서 떠나게. 어서! 그리고 갔다가 빨리 오게!》

묵거는 말채찍을 휘둘렀다.

이무렵, 말갈읍락의 구도의 방에는 언청이두령과 구도가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들사이의 침묵이 꽤 오래동안 흐른 모양, 구도의 뒤에 시립하고있던 일구와 분구는 두사람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조금씩 움지락거렸다.

구도도 비로소 목을 움직이였다. 구도는 침통한 생각에 잠긴 언청이의 얼굴을 잠시 건너보다가 한숨을 들이켰다.

《두령! 너무 속썩이지 말게!》

언청이두령은 턱을 들었다. 그의 눈빛이 방금 가죽에 문댄 칼날처럼 섬광을 뿌렸다.

《난 믿을수 없어.》 하고 두령은 겨우 알아들을수 있는 소리로 말하였다.

《믿을수가 없단 말이야! 아니, 난 노예의 아들이였고 노예의 아들로 죽을거야. 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어머니는, 그 불쌍한 나의 어머니는 얼마전에 돌아갔어. 그 어머니도 도운스승처럼 내 손으로 평토매장했어.

그런데 뭐? 내가 계루부 연타발의 친아들이라구? 으하하-》

《이것 보라구, 두령, 진정하게!》

《아니, 걷어치워! 그따위 속임수로 날 얼려넘길 생각은 말어! 도리따위같은 야심가들, 배속까지 야심이 가득찬 그런 녀석들이나 얼려봐. 나는 속지 않아!》

언청이는 함정에 빠진 곰처럼 울부짖었다. 일구와 분구는 눈에 흰자위를 채우고 구도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차마 언청이를 쳐다볼수 없었던 모양이였다.

미구하여 언청이가 계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킨다. 노예주놈들을 그 껍데기까지 없애버리는 일이라면 아무래도 좋아! 구도, 마음을 놓게. 구려 각 부에 있는 솔거노비든 관노비든 련락이 닿는껏 일을 꾸며놓겠어. 당신네 말갈이 구려를 치는건 반대이지만 노예주놈들을 치는건 도와주겠어. 어차피 한쪽 손바닥은 울리지 못하는 법이니까.》

《좋네, 자네야말로 신의있는 사나이일세.》

구도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래, 출령(出令)은 언제라고?》

《그건 우격(羽檄-군사상 급하게 전하는 격문, 닭의 깃을 꽂아보내던 격문)을 통해서 알리겠네. 방법상 그런것이니까.》

《좋아! 자네의 말갈사람들과 군사를 어울리고싶은 생각은 없으니 우리 <검은 칼잡이>들까지 발령은 내리지 않겠네. 구경하다가 기울어지면 도와주지…》

구도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자 이때껏 해사해보이던 구도의 얼굴은 영 딴 사람이 되였다.

《그럴테지! 두령이 아무리 노예주들을 미워한다고 하더라도 구려사람은 구려사람이니까…》

《그만 빈정거려!》

《하 하, 성났나?》

《구도! 자네가 연노부성채에 들어가 도리를 만났다는게 사실인가?》

《왜 믿어지지 않나?》

《아니, 칼물고 뜀뛰기하는거야 자네들의 곧잘 하는짓이 아닌가?》

《그게 바로 너희네 상전들과 다른 우리 말갈이야.》

언청이는 힝-하니 웃고 돌아섰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