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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12

 

벌써 여러날째 주몽은 오녀산성 쌓는 일에 몸담고있었다. 주몽이 솔선 나서 돌을 지고 메를 휘두르니 오이, 마리 할것없이 땀을 흘리며 그를 따랐다. 주몽은 성쌓는 일에 구려군의 력량을 돌리는 한편 쇠부리터의 무골에게 련락하여 강도높은 쟁기들을 벼리게 하였다. 그 쟁기들의 덕분으로 공사는 빨리 진척되였다. 축성에 밀려오는 인부들이 날을 따라 늘어갔다. 주몽이 손수 돌을 지고 메를 휘두르는것을 본 사람들은 주몽에 대한 소문을 사방으로 날라갔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왔다. 그들은 말갈을 본때있게 족친 주몽의 밑에서 살고싶어하는 심정들이였다. 며칠 케를 보러 왔던 사람들까지 아예 눌러앉았다.

주몽은 모여온 사람들을 일정한 대에 소속시키고 그 대의 책임자를 임명하여 그의 지시를 받아 일하며 살게 하였다. 이것은 일감의 구별을 위해 짜놓은것이기는 하였으나 실상 일단 유사시 군사조직으로 쉽게 전환시킬수 있는것이였다.

오늘도 한참 땀을 뽑고난 주몽은 수하장수들과 부하들을 거느리고 오녀산성을 축조하는 형편을 돌아보려고 나섰다. 성은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고있었다.

주몽은 오녀산 남쪽끝에 있는 장대에 올랐다. 여기서는 지금 축성중에 있는 오녀산성의 전경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오녀산성은 오녀산의 남쪽등성이 두어개를 포괄하여 쌓고있는데 남북길이가 수천보, 동서너비가 거의 천보쯤 돼보였다. 성은 동남쪽으로는 큰 골짜기를 끼고있고 서남, 동북쪽에 약간한 낮은 곳이 있으나 서북, 북쪽과 동북부의 대부분은 깎아지른 수십길의 낭떠러지를 이루고있는 험요한 지대를 리용하여 쌓고있었다. 성벽은 동남쪽, 동쪽에 주로 쌓았고 동북쪽과 북쪽은 절벽사이의 일부 구간에만 쌓았으며 서쪽은 자연산세를 거의 그대로 성벽으로 삼고있었다.

성문은 남, 동, 서북쪽에 두었는데 거기서는 지금 한창 문루를 올리고있었다.

동문은 성벽을 서로 어기게 하여 옹성을 쌓았다.

서북문부근의 절벽우는 평탄한 대지를 이루었다. 이 대지의 남쪽끝이 바로 주몽이 오른 장대였다. 이 대지에는 높은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못이 있었는데 못은 서남쪽에 물원천이 풍부한 샘에 의하여 보충되고있었다. 지금 거기서는 역군들이 그 샘물을 못에 끌어들였다가 다시 북쪽으로 빠지게 하느라고 큰 물웅뎅이를 만들고있었다.

《그래, 부분노 보기에는 성이 어떻소?》 하고 축성중인 성을 내려다보며 주몽이 물었다. 주몽의 시선을 따라 성을 살피던 부분노는 주몽이 묻는 말에 생각에서 깨여나 대답하였다.

《참으로 주몽을 위하여 하늘이 점지해준 성터라 하겠소이다.》

《하, 하! 그렇다!》 주몽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묵거에게 시선을 주며

《이 오녀산을 점지하게 된데 묵거의 공이 크오.》 하고 말하였다. 사실 이 산성터를 잡은것은 묵거였다. 지리에 밝은 묵거는 주몽의 대업에 비추어 이곳에 성을 쌓는것이 좋겠다고 제기한것이였다. 주몽의 치하에 묵거는 두손을 흔들었다.

《그렇지 않소이다. 단군선인이 굽어살피시여 형에게 내준것이지 어찌 소제의 공이라 하겠소이까?》

묵거의 말을 듣던 무골이 참녜했다.

《참으로 산성은 명당자리라 하겠소이다. 새와 짐승에게는 둥지와 굴이 있어야 하고 사람에게는 집이 있어야 살아갈수 있는것이 자연의 리치오이다. 지금 형이 크나큰 포부를 펼치실 터를 얻으셨으니 이 아니 행운이겠소이까!

이 오녀성은 적은 힘을 들여 천연요새지인 자연지세와 인공적인 방어시설을 배합하여 건설하는 성으로써 난공불락의 요새로 될수 있소이다. 특히 다른데서 볼수 없는 옹성, 성문에 설치한 적대, 일반성문들에 설치한 치, 각루, 성벽우의 녀장, 수구문 등 석공들이 생각해낸 시설물들과 성안의 장대, 못, 봉수, 창고, 병영 등이 모두 독특한것들이오이다. 병법으로 보건대도 적들은 산성안을 볼수 없고 아군은 적의 허실을 낱낱이 볼수 있는데다가 또 골짜기들에는 인원과 물자를 넉넉히 저축할수 있어 그야말로 완전무결하오이다.》

무골의 말은 주몽뿐만아니라 모든 수하 장수, 부하들에게 기쁨으로 되였다.

주몽이 이 산성을 축성할데 대한 문제를 들고나온것은 단지 말갈과의 싸움을 위해서만이 아니였다. 장차 서쪽에서 몰려들 오랑캐들과의 싸움을 대비해서라도 이런 산성을 쌓는것이 유리하다고 본 장구지책이였다.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주몽과 그의 부하들이 산성을 굽어보고있는데 재사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였다.

《재사가 왔다고? 어서 여기에 오라고 하라.》 하고 주몽이 말했다.

미구하여 재사가 왔다.

재사를 맞이한 주몽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재사, 이번에 여러 부들에 대한 련합유세를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재사는 주몽의 치하에는 별로 개의치 않고 벙글벙글 웃으며 《주몽형, 누이 소서노가 이번 길에 저와 함께 오셨소이다.》 하고 서둘러 말하였다.

《뭐?》

《누이 소서노가 축성에 쓰일 물건과 량식을 가지고 오셨소이다.》

《그래? 혹시 재사가 추동한것이 아니요?》

《아니오이다. 오히려 제가 추동당했는걸요.》

《하, 하. 기쁜 손님들이 오셨군. 그래 어디 있소?》

《지금 산성아래에 와있소이다.》

주몽의 낯빛이 상기되여갔다.

그는 잠시 거닐다가 말하였다.

《성이 이렇게 솟아나기까지 소서노의 도움이 컸는데 여기 올라오라고 해서 부감하게 하는것이 좋을듯 하네. 어떤가?》

모두의 얼굴에도 화락한 빛이 피여났다.

재사는 다시 성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주몽의 마음은 가벼이 출렁거렸다.

전번 계루부의 자루골에서도 그랬지만 지금 소서노가 왔다는 소리를 듣자 어머니의 생각이 또다시 떠올랐다.

주몽은 품에 넣고 다니는 조그마한 쌈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리별할 때 어머니가 싸준 오곡의 종자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몽은 아직 다는 모른다. 어느때는 농사를 중시해야 한다는 무언의 암시같았고 어떤 때는 사람들 특히는 뜻을 같이할 벗들을 중시해야 한다는 암시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루루이 떠오르는 그때그때의 생각들의 밑바닥에 묵직하게 몰려있는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였다. 지금도 주몽은 어머니를 그리며 먼 북쪽하늘가를 바라보았다.

한편 소서노는 재사의 뒤를 따라 산성으로 들어오고있었다.

오녀산성을 쌓는것을 주몽이 발기하였고 계루부가 거기에 막대한 재력을 기울이겠다고 하였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 소서노는 선뜻 자기의 재산을 거기에 바치기로 하였다. 그것이 어쩐지 기꺼웠다. 주몽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았다. 사람들은 그런 소서노에 대해서 의리있는 부자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소서노는 그럴 때마다 얼굴을 붉히군 한다. 마음속깊이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른 신비의 감정, 들여다보기가 어쩐지 저어하게 되는 그 감정을 소서노는 도무지 감출수 없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소서노의 걸음은 주몽이 기다린다는 곳에 가까이 갈수록 머뭇거려졌다.

《누이, 다 왔소이다. 저기 주몽형이 계시오이다.》 하고 재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을 때 소서노는 와뜰 놀라기까지 했다.

주몽과 그의 부하들이 이쪽을 보고있었다.

소서노의 눈에는 다만 미소를 짓고있는 주몽의 씩씩한 얼굴만이 안겨왔다.

《재사의 누이와 같은 훌륭한 후원자를 두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하오이다.》 하고 주몽이 인사들을 나눈 뒤 이렇게 치하하자 소서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인사불성이 되는것 같아 그저 소리없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외람된게 아니온지 모르겠소이다. 일이 바쁘실터인데…》

《괜찮소이다. 함께 보람을 같이하자고 해서 험한 길을 올라오라 하였으니 량해하시오이다.》

주몽이 사과겸 말하였다.

《고맙소이다.》 소서노는 약간 고개를 숙이며 귀바퀴너머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소서노는 주몽의 시선을 따라 산성이 일어서는것을 두루 보았다.

일동이 모두 말없이 축성모습을 바라보고있는데 오이가 주의를 깨쳤다.

《주몽형, 오늘 재사의 누이께서 이렇듯 모처럼 찾아주셨사오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그 보답이 있었으면 하온데 어떠하오리까?》

주몽이 기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이 생각은 어떠했으면 하오?》 하고 주몽이 물으니 오이는 기다린듯이 대답하였다.

《아직은 집도 변변한것이 없사오나 어쨌든 재사 누이는 우리의 귀빈인것만큼 사냥을 해서 빈객을 대접하는것이 어떠하오이까? 물론 보잘것 없사오나 소신의 생각에는 재사의 누이도 마다하지 않을줄 아오이다.》

하고 오이는 성급한 어조로 말하였다.

《하, 하. 오이가 참으로 좋은 말 했소.》

주몽이 오이의 말을 긍정하는데 재사가 나섰다.

《그렇지 않소이다. 누이는 형께서 고단하게 축성하신다 하여 주연을 차릴 음식을 준비해가지고 오셨소이다.》

주몽은 손을 들어 재사의 말을 막았다.

《재사 누이의 마음도 고맙지만 이번에는 오이 말대로 하겠소. 그렇지 않아도 요즘 성쌓는 일때문에 여러 장수들의 팔다리가 풀어졌는데 사냥을 해서 심신을 돋구고 또 손님을 접대하는것이 좋을듯 하오.》

주몽의 말에 여럿이 모두 좋아하였다.

이리하여 그즈음에 처음으로 주몽은 부하들과 함께 사냥을 하게 되였다.

그들은 비류수가로 향하였다.

류달리 맑은 하늘에 후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주몽의 부하들은 모두 오래간만에 나들이가는 기분으로 둥 떠있었다.

주몽은 소서노와 무골을 뒤에 두고 그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사냥에 올랐다.

얼마쯤 길을 가던 주몽은 다시금 산성을 바라보았다.

오녀산성은 그저 산으로 볼 때와는 또 달랐다. 이제는 저기가 자기들의 거점이라고 생각하여서인지 아니면 점점 구색을 갖추어가서인지 주몽의 심중에는 산성에 대한 긍지가 뿌듯이 차올랐다.

제아무리 힘센 황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벼보는 법이다.

이제는 언덕이 있다! 그래 여기서부터 장차 새 나라 건설에 들어가자! 하고 주몽은 생각하였다.

그가 점점 멀어지는 산성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는데 재사가 다가왔다.

《형께서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있나이까?》 하고 재사가 물었다.

《산성을 두고 생각하였소.》

《이제 산성이 완공되여 형께서 터를 잡으시며는 장차 천하를 다스리게 될것이오이다.》

《재사, 아직은 품고있는 알에 불과하네. 망아지갈기가 어디로 틀지 모르지 않을가? 그런즉 과찬의 말은 거두게.》

주몽이 서늘한 빛을 띠우자 재사는 정숙하여 말하였다.

《주몽형, 이것은 결코 과찬이 아니오이다. 천하는 단군선인께서 다스리던것이오이다. 이제 형께서 단군선인의 뜻을 받드시옵고 그 뜻을 행하시는바이오니 천하가 그것을 갈망하는터에 어찌 저의 말을 과찬으로 들으시오이까? 인심이 천심에 닿아 대세가 이루어지는것이오매 형은 바로 그 민심을 타신것이 아니시오이까?》

주몽은 묵묵히 먼 하늘에 시선을 주고있었다. 어느덧 비류수가에 닿았다.

강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의 조약돌까지 말끄러미 비쳐보였다.

주몽은 말을 멈추고 강물웃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주몽의 시선은 방금 떠내려오는 파아란 남새잎사귀에서 떠날줄 몰랐다.

평화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싱싱한 남새잎사귀를 점도록 지켜보던 주몽이 돌아보며 물었다.

《이 강이 비류수라고 했지?》

《그렇소이다.》

묵거가 나서며 대답하였다.

《어디서 흘러내리느냐?》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나이다.》

《그런가?… 이 상류에 사람이 살고있는듯 한데 여기서 그리도 가까운가?》

주몽의 물음에 묵거는 감탄하였다.

《어떻게 아시였소이까?》

《저기 남새잎이 떠내려오는데 싱싱한것을 보니 그렇게 생각되는구만…》

묵거는 주몽이 말채찍으로 가리키는 그 남새잎사귀를 보고나서 이야기하였다.

《이 강 상류에 비류국이 있사온데 송양이라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있사옵니다.》

주몽은 고개를 끄덕이며 묵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눈길은 다시 강우로 향하였다.

어찌보면 목가적인 향취를 그윽히 자아내는 비류수! 이 강을 젖줄기로 장차 태여날 주몽의 나라와 비류국이 린접하게 될것이다.

장차로는 어떻게 되며 또 지금은?

농부들과 아낙네들, 아이들의 평화로움이 깃든 이 비류수에 부디 오해와 불신, 리기와 탐욕으로 하여 피가 흐르지 말았으면…

주몽은 말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자, 이러다가는 아예 빈손으로 돌아가겠는걸…》 하며 주몽이 주위를 살피였다.

이렇게 한창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무엇인가 앞쪽에서 언뜻거렸다.

《그래, 손님이 나타났군…》

주몽이 말을 달렸다. 부하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며 따랐다.

숲속에 나타났던것은 새끼들을 거느린 큰 메돼지였다. 대여섯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엄지메돼지는 주몽의 일행을 발견하자 쏜살같이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숲속에는 삽시에 사냥군들의 떠들썩한 고함소리로 찼다. 주몽은 화살 날릴 생각은 하지 않고 메돼지를 쫓기만 하였다. 어쩐지 사냥보다 그러는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며칠간의 축성공사로 하여 말을 타본지도 오랜듯 하였댔는데 젊은 육체가 흥에 떴다. 다른 부하들의 마음도 역시 같은듯 하였다. 누구도 화살 날릴 생각은 하지 않고 고함치고 휘파람불며 달아나는 메돼지를 쫓았다.

여러 사람들의 포위에 들어 쫓기는 메돼지는 방향없이 달아나고있었다. 바빠난 에미메돼지는 벌써 새끼들을 뿔뿔이 다 떼버리고 혼자 죽을둥살둥 달아났다.

혼이 쑥 빠져 달아나는 메돼지를 보는 사냥군들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형, 저놈이 거의 맥이 빠진것 같소이다.》

주몽의 뒤에서 따르던 오이가 떠들썩 소리쳤다.

《그래? 어디 한번 맥을 쭉 뽑아보자.》

하고 주몽이 말에 박차를 가하였다.

《잡아라!-》

젊은 사냥군들이 제마끔 소리를 지르며 메돼지에게 육박하였다.

메돼지의 씩씩-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때였다. 기세좋게 내달리던 부루나가 웬일인지 주춤하였다.

이와 동시에 앞에서 장바 한기장쯤 거리에서 내달리던 메돼지가 별안간 비탈에 굴러내리는 통나무처럼 앞으로 굴러갔다.

순간 주몽은 눈앞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륙감으로 감촉하며 몸을 뒤틀었다.

핑- 하는 소리를 지르며 화살은 주몽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소시적부터 숱한 화살을 날리고 또 받아온 주몽은 그 화살이 자기를 겨누어 쏜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형, 조심하시오이다.》

마리가 번개같이 주몽의 앞으로 튀여나와 막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주몽은 머리를 쳐들었다.

앞에는 방금 빠져나온 숲이 끝나고 공지가 펼쳐지였는데 거기에서 화살이 날아온것이였다.

메돼지는 화살에 맞아 꺼꾸러졌었다.

숲이 병풍처럼 둘러선 가운데 나있는 공지에서는 울긋불긋 차려입은 한패의 사람들이 지켜보고있었다.

뒤늦게야 사태를 간파한 오이가 철퇴를 비껴들며 마리곁으로 튀여나왔다.

오이는 마리에게서 방금 있은 일을 듣고 성이 독같이 났다.

《에익, 비렬한 놈들. 내가 저놈들을 요정내겠소.》

그러자 마리와 묵거, 협부도 오이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가만.》

주몽이 소리질렀다.

오이가 멈추어서서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주몽은 다시 공지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한것은 저쪽에서도 다가오거나 더이상 건드릴념을 안하고 우뚝 선채로 이쪽을 지켜보고있는것이였다.

복색들을 보아 여느 사냥군들이나 유목민들 같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어떤자들인가?

《혹시 구려사람들이 아닌가? 연노부의 어느…》

마리가 서성거리는 말을 달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묵거가 나서며 《그럴수 없소.》 하고 반대했다.

《여기는 지경으로 보아 비류국어방일거요. 한데 이상한것은 저쪽 사람들이 보통 사냥군들이나 풍류객들이 아닌것이요.》

묵거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주몽은 묵거의 말을 들으며 상대쪽을 살펴보았다.

청라산을 받쳐든 그밑에 키꼴이 장대한 늙은이가 눈에 띄였다. 그 늙은이의 가슴팍까지 드리운 흰 장발수염이 더욱 유표하였다.

숲속에는 잠시 정적이 깃들었다.

저쪽에서도 이쪽을 경계하는듯 싶었다.

주몽이 탄 부루나가 푸르륵- 코투레질을 했다.

《하여튼 만나보자.》 하고 주몽은 부루나의 갈기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이때 오이가 이마살을 찡그리며 주몽의 앞을 막아선다.

《형은 여기 계시오이다. 제가 가서 한번 알아보겠소이다.》

《오이의 말이 옳소이다. 저도 함께 가서 저쪽을 알아본 다음 향하는것이 좋겠소이다.》 하고 협부도 나섰다.

주몽은 오이와 협부의 얼굴을 잠시 살피고나서 말하였다.

《그럴것 없다. 보아하니 저쪽도 점잖은 사람들 같은데 꺼릴게 없어. 더구나 사내대장부들이 꺼리여서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겠나?》

주몽은 상대를 바라고 앞서 갔다.

오이와 마리, 협부와 묵거가 주몽을 좌우로 옹위하여 따라섰다.

주몽일행이 가까이 다가가자 저쪽에서 약간의 동요가 있었다.

청라산개밑 늙은이의 옆에 서있던 사람이 칼집에 손을 가져가는것이 알렸다. 늙은이가 뭐라고 말하자 그는 손을 떼긴 하면서도 여전히 긴장해있었다.

《그대들은 누구인데 여기에 나타났는고?》 하고 주몽의 일행이 다가가자 늙은이가 물었다.

나이에 비해 목소리가 쩡- 울렸다.

《우리는 구려에서 온 사냥군들이요.》 하고 주몽이 대답하였다.

《혹시, 부여에서 구려에 왔다는 장사들이요?》 하고 늙은이가 다시 물었다.

《그렇소.》

《허- 마침 만났군.》

주몽의 대답을 들은 늙은이가 좌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때 한쪽에서 늙은이와 그 측근을 못마땅하게 훑어보던 오이가 불쑥 나서며 단도직입으로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마침 만났다고? 당신들은 어째서 우리에게 화살을 날렸소?》

그러자 늙은이는 별반 놀라는 기색도 없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난 그대들이 메돼지를 놓쳐버릴가보아 도와주었던것이요.》

《도와주었다? 흥!》 오이가 코웃음쳤다.

《우린 메돼지의 기운을 뽑아 사로잡으려고 한것인데 뭐 도와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람에게 함부로 화살을 날리는거요?》

오이의 성난 물음에 늙은이는 무슨 소리냐는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분명히 메돼지를 겨누어 쏘았을뿐인데 인명을 겨누어 쏘았다는건 무슨 소리요? 얘들아, 저기 메돼지에게 꽂힌 화살을 가져오너라.》 하며 늙은이는 손에 쥐고있던 활을 시종에게 넘겨주며 분부하였다.

주몽은 말없이 늙은이를 바라보았다. 흰 눈섭밑에서 침착하게 자기를 지켜보는 상대의 눈에서는 그 어떤 모략의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히 여기에는 무슨 곡절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주몽은 나직이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주몽이오이다. 처음 뵙소이다.》

《송양이라 하오. 비류국의 임금이요. 내가 궁벽한 곳에서 고루하게 지내다가 그대를 만나게 되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소.》

늙은 왕과 젊은 주몽은 서로 공손히 인사를 나누었다.

송양의 눈길은 주몽과 그의 부하들에게서 떠날줄 몰랐다.

송양은 주몽의 젊고 씩씩한 모습을 홀린듯이 바라보았다. 그의 부하들은 또 얼마나 장한 기개들인가.

송양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였다.

《이렇게 만난것도 좋은 인연인듯 한데 내가 그대들을 나의 어막에 초청하오. 젊은이는 부디 사양말아주시오.》

《이렇게 초면에 너그럽게 대해주시니 감사하오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냥나왔던 길이라 임금에게 페를 끼칠듯 하니 물러갈가 하오이다.》

주몽이 오른손을 왼쪽가슴팍에 대고 고개를 숙이며 사양하였다.

송양은 수염을 내리쓸며 빙긋이 웃었다.

《그런 걱정 마시오. 오늘은 나의 손님으로 되여주시오. 부디 이 늙은이의 청을 받아주길 바라오.》

송양은 매우 극진하게 청하였다.

주몽은 딱하였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소서노에게 말미를 얻었을것을… 지금 그는 얼마나 기다릴것인가. 손님을 맞이해놓고 또다시 손님으로 간다는것은 무례한짓이다. 그렇다고 지금 송양왕의 초청을 칼로 베듯이 할수도 없다.

주몽의 표정을 살피던 재사가 나섰다.

《주몽형, 비류국왕 송양께서 모처럼 청하시는걸 받으셔야 할가보오이다.》

주몽은 재사를 바라보았다. 재사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두사람을 지켜보던 송양은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아무렴, 선의를 물리치는것은 사나이들의 례절이 아니요.》

부는 동남풍에 따를수밖에 없었다.

주몽은 송양에게 사례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이 늙은이가 이런 선의를 베푸는지 알수 없었다.

송양이 여기에 나타난것은 우연이 아니였다.

구려에 새로 나타난 젊은 장수가 말갈을 물리치였다는 소식은 송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였다.

그리하여 한번 만나고싶은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변방순행의 명색으로 여기에 이르렀던것이다.

과연 만나보니 소문이 날만 하였다.

저 혈기왕성한 얼굴, 도도한 자세, 침착한 몸가짐은 송양이 일찌기 만나보지 못한 인걸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송양은 주몽의 옆에서 보좌하는 부하들의 끼끗한 모습에서 바로 주몽의 됨됨을 엿보게 하는 그 무엇을 발견하는것이다.

《그래, 젊은이는 어느분의 후손이시오?》 하고 자기의 어막으로 주몽을 안내하던 송양이 문득 물었다.

주몽은 송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직이 그러나 정중하게 대답하였다.

《단군선인의 후손이오이다.》

《?!》

송양은 흰 눈섭을 꿈틀거렸다.

그는 한참이나 주몽을 바라보다가 엄지손가락으로 량쪽 입귀를 쓸었다.

《나도 단군선인의 후예요.》

두사람의 시선이 한동안 엇갈리였다.

미구하여 송양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손을 내저으며 가던 길을 걸었다. 한참 가느라니 송양의 어막이 보였다. 어막과 그 주위를 둘러보던 송양은 주몽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어찌다 만난 회포는 주연을 차리라 해서 나누기로 하고… 젊은이는 이 늙은이에게 무슨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소이까?》

송양의 떠보는듯 한 물음에 주몽이 《저는 자랑할만 한것이 별로 없소이다.》 하며 사양하였다.

송양은 껄껄 웃었다.

《그러지 말고 활쏘기나 해보시오이다.》 하고 송양이 시종에게 자기의 활을 청하니 시종이 얼른 활을 가져왔다. 송양은 시위줄을 당겨 핑- 소리를 내보이고 주몽에게 《어떠하시오.》 하고 물었다.

《좋소이다.》

주몽이 응했다.

송양은 백보앞에 있는 나무에 사슴과녁을 매달게 하였다. 적지 않게 먼거리였다.

《그래, 먼저 솜씨를 보이시려오?》

하고 송양이 물었다.

《임금님께서 먼저 보여주시오이다. 저야 어디까지나 손님이 아니오이까?》

송양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송양은 자세를 갖추고 활을 쳐들었다.

늙은이답지 않게 자세는 퍼그나 침착했다.

송양은 활짱 쥔 손에 힘을 주고 화살에 꽂은 깃이 귀에까지 오도록 시위를 당겼다가 슬쩍 살을 놓았다.

화살은 사슴과녁에 꽂혀 바르르 떨었다.

송양의 측근부하들이 모두 와- 소리를 질렀다.

《자! 이번에는 그쪽의 차례요.》 하고 송양이 자신의 솜씨에 은근히 만족을 금치 못하며 주몽을 추겼다.

주몽은 송양의 활솜씨를 보며 어지간히 감탄하였다. 한다하는 젊은 궁수들도 그만큼의 거리에 있는 과녁을, 그것도 보매강궁인듯 한 활을 써서 맞힌다는것이 쉽지 않았다.

《참! 임금께서 궁술이 보통이 아니오이다.》

하고 말하니 송양은 수염을 쓸며 빙그레 웃었다.

주몽은 송양이 내주는 활을 잡고 나섰다.

주몽은 빈 시위를 당겨 활의 힘을 가늠해보고나서 송양에게 돌아섰다.

《제가 이제 저 과녁을 쪼개 떨구겠소이다.》

주몽이 태연하게 말하자 송양은 허거프게 웃었다.

그게 어디 될 말인가? 제대로 맞히기나 해보지… 하는 심사가 송양의 주름잡힌 얼굴에 진하게 떠올랐다.

주몽은 그 빛을 읽고나서 돌아섰다.

그는 쇠활촉을 끼운 화살을 메우고 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별반 겨냥도 하지 않고 살을 놓았다.

눈깜박할 사이였다.

살은 핑-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았다.

살은 과녁을 매단 고리줄을 끊으며 과녁을 뚫었다. 살의 힘이 어찌나 센지 과녁이 터져나가며 땅에 뚝 떨어졌다.

송양은 깜짝 놀랐다. 송양의 부하들도 아연실색하여 멍하니 떨어진 과녁을 바라보고있었다.

《허 거참, 과녁 맞히는 소리가 마치 기와장 부시는듯 하는걸… 천하에 보기 드문 궁술이요.》

송양은 저도 모르게 찬탄하였다.

송양의 마음속에는 주몽에 대한 선망의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그는 자기의 속마음을 너무 엿보일가 저어 부하들에게 얼른 주안상을 차리라고 불호령을 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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