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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11

 

초불은 고요히 타고있었다. 구려의 왕 소부는 초불을 마주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석상과도 같았다. 늘 취기몽롱하던 소부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딴판이였다. 비수와 같이 날카로운 눈, 곧고 미끈한 코마루, 두드러진 턱, 이 모든것은 소부의 새로운 맛을 보태주고있었다. 소부의 흰 수염속에서 미묘한 웃음이 피여났다. 소부가 주색에 파묻혀있을 때조차도 신하들이 무서워하는 웃음이였다. 그 웃음은 그 무엇인가를 비웃는듯 한것이였다. 젊었을적만 하여도 소부에게는 이런 웃음이 없었다. 시위를 메운 활등과도 같이 언제나 긴장되여있는 그의 태도와 강한 의지로 하여 부하들의 존경을 받던 그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에게 비웃는 그 웃음이 생겨났던가? 아마도 구려의 왕이 된 그 이후부터였을것이다. 젊었던 그때, 석공이 굳은 바위를 다스리듯 세상과 자기 운명을 대하던 그때에는 몰랐던것들이 왕이 되고 주지육림속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이 싫증나기 시작한 소부였다.

지금에 와서는 소부에게 구려국이니 왕이니 하는것들이 젊었을적처럼 피를 끓이게 하지 않았다.

오, 인생의 무상함이여!

초불을 지켜보던 소부의 눈이 감기였다. 그의 눈앞에는 자기의 인생이 되살아났다.

어린시절 소부가 본 아버지의 모습은 매우 무서웠다. 아버지는 웃는 법을 몰랐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쥐고있는 어린 소부의 팔목을 잡아당겨 집뒤에 있는 무술터로 데려갔다. 싸움터에 나갔다가 심한 상처를 입고 돌아와 겨우 운신하게 된 아버지가 어린 소부에게 한 일이란 그것이였다. 그때부터 소부의 시련은 시작되였다. 소부의 무술련마는 먼길을 뛰는것부터 시작되였다. 매일과 같이 회초리를 든 아버지가 할딱거리는 어린 소부의 뒤를 따랐다. 숨이 턱에 닿아 더는 뛰지 못할 때에도 아버지의 회초리는 소부의 잔등에 사정없이 떨어졌다.

《일어나! 어서! 어서 일어나 뛰여!》

소부는 비명을 지르며 땅우에 딩굴다가도 마침내 엉금엉금 기다싶이 하며 움직이군 하였다. 그 나날에 소부는 달아나는 사슴도 따라잡을수 있게 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뜀뛰기였다. 하루에도 수천번씩 선자리에서 뛰기, 장대우에서 뛰기… 그때마다 아버지의 회초리는 소부의 아래도리를 노렸다. 그것도 끝나자 수박(手搏)! 아버지의 억센 주먹과 발이 어린 소부의 얼굴과 몸에 무자비하게 안겨졌다. 질항아리만 한 아버지의 주먹에 맞아 피범벅이 되던 일은 그 얼마이며 발길에 채워 통나무처럼 나딩굴던적은 또 얼마였던가! 하지만 소부는 그것도 이겨냈다. 이겨냈다기보다 치르어냈다. 수박에 익숙해지자 나무칼이 소부를 위협하였다. 위협이 아니라 정말 찌르려고 소부의 목을 겨누고 날아들었다. 소부의 몸은 나무칼에 찔리우고 베여져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마침내 나무칼을 피하며 그 칼을 찍어버리게 되자 검술이 끝났다. 그후 말타기, 창던지기를 배웠다. 소부에게 가장 어려워보이고 맹랑하게 보이는것은 활쏘기였다. 아버지는 화살도 없이 빈 시위를 당겨 나무잎을 떨구라고 호령하였다. 소부는 억하심정이 되여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가 환장하신게 아닌가? 화살로라도 모르겠는데 빈시위를 당겨 떨구라니?…

하지만 아버지는 소부의 속심을 읽었는지 태연하게 말하였다.

《이것은 이 애비가 시범할수 없는 마지막요구다. 하지만 궁술의 최고비법으로 그렇게 된다는것은 알고있다. 너는 애비가 하지 못한 이 궁술을 꼭 익혀야 한다.》

소부는 그날부터 빈 시위를 당겼다놓느라고 세월을 보냈다. 겨울도 여름도 멈춤이 없었다. 눈을 감고 졸면서 공연히 빈 시위를 당겼다놓군 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때마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회초리가 떨어졌다. 지루한 나날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소부는 마침내 사람이 정기를 모아 빈 시위를 당겨도 과녁을 뚫을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때부터 소부는 활짱에 힘을 주어 수천, 수만번 시위를 당겼다. 소부는 아버지의 요구를 이루어냈다. 새는 떨구지 못해도 나무잎사귀는 떨굴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철갑을 입고 나섰다. 그날도 활터에서 연습하고있던 소부는 놀란 눈길을 아버지에게 돌렸다. 그가 놀란것은 철갑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아버지의 웃음이였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소부더러 오라고 손짓하고있었다. 다름아닌 아버지가 웃을수 있다는것, 그것도 자기에게 웃어보인다는데 소부는 놀랐다. 지금껏 소부는 아버지라는 그 뜻을 남들과 다르게 알았다.

아버지!

그것은 곧 회초리였고 몽둥이였고 칼날이였고 주먹이였다.

그런데, 웃음?

소부는 비로소 자기가 어떻게 그 모진 채찍과 구타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났는지 그리고 그속에서 어떻게 무술을 익혔는지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알것 같았다. 소부의 눈에서는 물기가 배여나왔다.

《아- 버지!》

소부가 서툴게 불렀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네가 이제는 제법 대장부꼴이 잡혔다, 허허. 얘, 내가 이번 싸움이나 치르고나서는 너하고 시합을 해보련다. 아마 내가 지겠지? … 그만큼 열심히 하길 바란다.

그건 그렇고 너는 앞으로 단군선인의 뜻을 잇는 무사가 되여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소이다.》

《음, 그래! 이 애비는 단군선인을 하늘같이 받드는 사람이다. 단군선인의 뜻을 거스르는자, 단군선인의 성지를 어지럽히는자는 용서없다. 이번 싸움도 그래서 하는것이다. 너도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여야 한다.》

아버지는 소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떠났다. 소부는 아버지가 한 말씀의 깊은 뜻을 다는 모른다. 누구와 무엇때문에 싸우러 가는지도, 왜 상처도 채 아물지 않은 몸으로 전장판을 찾아가는지 미처 모른다. 그에게 그때 제일 인박힌것은 아버지의 웃음뿐이였다. 그러나 처음 본 아버지의 웃음! 그것은 마지막 웃음이였다.

소부의 아버지는 싸움터에서 머리만 왔다. 눈을 부릅뜬 아버지의 얼굴! 어린 소부는 고개를 틀며 구역질했다. 누가, 왜 아버지를 이렇게 했느냐? 소부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나서 그 사연을 알게 되였다. 아버지는 가장 믿던 심복부하의 배반을 당했다. 적들에게 겁을 먹고 적들의 회유에 넘어가 값진 보물에 홀리운 부하의 칼이 뒤에서 아버지를 찍었던것이다.

소부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웃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구리빛으로 물든 자기의 가슴팍을 베였다. 칼날에 그의 젊은 피가 솟구쳐나왔다. 소부는 그 칼을 두손에 받쳐들고 아버지의 무덤앞에서 복수를 맹세하였다.

그길로 그는 아버지를 죽인 원쑤를 찾았다. 마침내 칼끝에 아버지를 죽인 원쑤의 머리를 꽂고 돌아와 아버지의 무덤앞에 던지고난 소부는 그제야 통곡하였다. 온 하루 통곡하여 눈물마저 말라버린 뒤 소부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복수는 했을망정 마음속은 개운하지 못했다.

오! 단군선인이시여! 나를 이끌어주소이다.

그때부터 소부는 칼을 빼들고 말우에 올라 발굽이 닳도록 세상천지를 누비였다. 그래서 소부는 구려국을 세우고 왕이 되였다. 소부의 이런 과거를 아는 사람은 계루부의 연타발뿐이였다.

초불은 그루터기에서 타고있었다.

소부가 자리에서 움직이려는데 환관이 도리대감의 현신을 아뢰였다.

《대감, 어인 일이요?》

《전하, 날이 밝아오이다.》

《날이 밝는다고?》

《그렇소이다, 전하!》

《허, 밤을 새웠군…》

소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눈치빠른 궁비들이 어느새 나와 거동을 도왔다. 소부는 덧옷을 걸치고 띠를 맸다. 그리고는 침전을 나섰다.

싱그러운 아침기운이 얼굴에 닿았다.

문득 소부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리대감, 새벽참 긴한 일이 있소?》

뒤를 따르던 도리는 흠칫 멈춰섰다.

《전하, 오늘 각 부의 군사들이 당도할줄 아뢰오이다.》

《늦은감이 있지만… 그래, 군사의 수는?》

《삼만이 되오이다.》

소부왕은 묵묵히 밑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이윽고 왕은 고개를 들었다.

《도리대감, 대감이 맡기로 되였던 구려군의 지내외병마사를 저 계루부의 주장에게 맡기는것이 어떻겠소?》

도리는 다시금 흠칫하였다.

《계루부 주장말이오이까?》

《그렇소, 중임이요. 어전회의에서 부쳐보겠지만 그렇게 누르도록 하오. 그리고 부장은 그대가 맡는게 어떻겠소?》

《글쎄… 그런 일이야 응당 제가평의회에서 결정하여야 할줄 아오이다.》

《나는 이미 뜻을 굳혔소.》

소부왕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떠올랐다. 한동안 뜰안에 자라는 나무들을 바라보던 소부가 다시금 도리에게 돌아섰다.

《대감과 계루부주장이 잘 협력만 하면 말갈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할수 있을거요. 어떻소?》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음, 그 계루부군 주장이 아마 주몽이라고 했지? 참 이번에 큰 공을 세웠소. 우리 구려에 큰 공이요.》

《하지만 전하, 그 사람은 저, 우리 구려사람이 아닌것만큼…》

《영웅을 가려보는건 현명한 임금의 덕이요. 더구나 패배한 말갈사람들이 다시 벼르고있는 이 란세에 어찌 그런것에 꺼리겠소? 영웅은 지경이 없어.》

소부왕은 시위를 불러 주몽을 알현케 하도록 하였다.

도리는 환골탈태한듯 한 소부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찬 웃음을 흘리면서도 자기의 말이라면 그래, 그래 하고 체념하던 소부왕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지엄한 상감마마로 되였는가? 도리는 머리를 기웃하였다.

도리의 놀라움이 크거나말거나 소부왕의 마음은 흥그러웠다.

주몽과의 상견과 그의 군공에 대한 소식은 소부왕의 답답하던 가슴에 흘러든 새벽바람과 같았다. 소부왕은 먼지더께가 앉은 낡은 옷을 벗어버린듯 한감을 느꼈다. 소부는 놀랍게 자신의 변신을 대했다.

계루부군이라면 응당 연타발이나 재사 또는 비추장군이 거느릴법 하지만 주몽이라는 낯선 사나이가 주장이 되여왔다는 소리에 소부왕은 취기어린 눈시울을 연신 슴벅거리였었다. 그러나 연타발대가가 보낸 서신을 받아보고나서는 그럴수도 있겠다 하고 손가락을 두드렸다. 연타발은 소부왕이 자기를 믿듯이 주몽을 믿어달라고 했다. 과연 주몽은 계루부군만으로 여우산에 웅거한 분구의 말갈군을 격멸했던것이였다.

소부왕은 주몽을 다시 보게 되였다. 다시 볼수록 소부왕에게는 주몽에게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흘러간 과거, 그 젊은 날의 자기 모습이였다.

소부왕이 고개를 슬슬 저으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주몽이 왔다.

《아, 계루부군의 주장이군. 어서 오오. 그래 불편한것은 없소?》

《군사에게 어찌 불편이 있겠소이까? 더구나 마마께서 돌보시여 만사가 원만하오이다.》

소부왕은 웃음을 짓고 주몽을 바라보았다. 마마라? 그런즉 내가 그대의 왕은 아니다 그 말이군. 여간한 호걸이 아닌걸.

《저길 보오.》

소부왕은 짐짓 웃음을 띤채 숲속을 가리켰다. 어전의 뜰이 끝나는 곳에 펼쳐진 숲속에서는 아름드리나무가 키돋움하며 미출하게 자라고있었다.

주몽은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았구려. 난 저걸 볼 때마다 나무들이 서로 살아남으려고 승벽내기를 하는것 같더군…》

주몽은 소부왕의 말을 덤덤하게 받고있었다. 하지만 속은 긴장해있었다. 어째서 소부왕이 새벽참 불러 나무들이 키돋움하는걸 가리키는것일가. 소부왕은 무엇을 말하려는것일가. 주몽이 영문을 몰라하는데 소부왕은 숲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화제를 돌렸다. 나무들을 가리킨것은 바로 중한 문제를 끌어내기 위한 실머리인듯 하였다.

《그래, 그대는 대저 어떤 뜻을 품고있소?》

소부의 물음에 주몽은 고개를 들었다.

《마마, 황송하오나 무슨 말씀이시온지?》

《허, 보매 그대의 기상이 과연 장하기에 뜻이 또한 어떠한지 묻는거요.》

주몽의 시선이 소부왕의 앞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소부왕이 무엇때문에 그걸 묻는것일가? 여긴 공석도 사석도 아닌데… 더구나 더 도리대감까지 있는데서…

《뭘 숨길것 없소. 내 한담삼아 묻는거니까.》

주몽은 소부의 낯을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저는 단군선인의 웅지를 받들려고 할뿐이오이다.》

소부의 눈이 놀랐다. 차츰 그의 눈빛은 빛났다.

구려의 제가평의회는 대체로 10월에 열리는 《국중대회》를 계기로 열린다. 하늘신을 제사하는것이 기본의식인것으로 하여 《제천대회》라고도 하는 《국중대회》와 더불어 진행하는 제가평의회에는 구려 5부의 대가들과 대가밑의 소가들도 참가하여 국사를 토의결정한다. 일년에 한번씩 있는 제가평의회라지만 나라에 대사라든가 사변이 있으면 의례히 때를 맞추어 열리군한다. 이번에 열리게 되는 제가평의회도 말갈과의 전쟁에 대한 문제인것으로 하여 특별히 소집된것이다.

주몽도 이 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는 물론 구려의 《가》는 아니였지만 평의회의 기본이 전쟁문제인것으로 하여 참가하도록 허락된것이였다. 연타발의 주장과 왕 소부의 왼심도 한몫보았다.

제가평의회는 주몽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특히 각 부의 대가들은 주몽을 선망어린 눈길로 보았다. 이들은 대개 연노부의 대가이며 국왕인 소부와 어슷비슷한 경력을 가지고있었다. 젊었을적에는 한다하는이들이였지만 지금에 와서 모두 늙은 로객들이 되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비록 나날이 쇠락해가는 속에서나마 출중남아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해있던중이였다. 그간 말갈과 연노부사이에 있었던 싸움에 대한 통보가 끝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의논이 시작될 때 소부왕이 물었다.

《주몽, 그대의 생각에는 우리 구려가 앞으로 말갈과의 전쟁에서 어떤 방책을 쓰면 좋으리라 보오?》

《여기 산전수전의 로장들이 참가하셨는데 어찌 감히 소장이 나서겠소이까?》

《허, 겸허한 말. 저 말갈분구의 무리들을 군사 오천으로 호되게 답새긴 전공이 있는 그대이니만큼 반드시 묘책이 있으리라고 보는데?…》

소부왕은 여러 대가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대가들도 찬동하는듯 펴진 낯빛으로 주몽을 바라보았다.

주몽은 천천히 일어섰다.

《소장이 생각건대 말갈과의 싸움은 이제 시작되였을뿐이오이다. 알아본데 의하면 말갈대인 구도는 분구의 참패를 복수하기 위해 지금 군사들을 모으고있다고 하오이다. 이런 형편에서 소장의 생각에는 구려가 앞으로 말갈과의 싸움에서 이기자고 해도 그렇고 여러모로 보아 시급히 보루를 쌓아야 할줄 아오이다.》

《보루?》

소부왕이하 대가들이 서로 마주보며 되뇌였다.

《보루라면 어떤걸 말이요?》

소부왕이 물었다.

《말갈의 침입으로 지금 연노부의 성책은 많이 무너졌소이다. 이걸 다시 복구하자면 많은 품이 드오이다. 설사 복구한다고 하더라도 소장이 보건대는 지세나 산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오이다. 연노부성책은 벌판의 낮은 지대에 자리잡고있는데다가 강을 끼고있소이다. 만일 말갈이 강웃쪽을 차지하고 보를 막았다가 수공한다면 대패를 면할수 없소이다. 또 성책이 작고 주위가 산들로 멀리 막혀있기때문에 일단 물러나야 할 때가 와도 뒤를 도모하기가 어렵게 되였소이다. 바로 이런것이 병서에서 꺼리는것중의 하나인 지리불편이라고 보오이다. 적이 공격하기는 쉽고 아군이 공격하기는 불리하며 뒤를 보호할수 없는것이 바로 그것이오이다. 이때까지 연노부가 말갈의 침입을 당하기만 한것이 우연하다고 볼수 없소이다.

소장의 생각엔 연노부성책의 위성을 쌓아야 한다고 보오이다. 연노부와 말갈사이에 강력한 성을 구축하는것이 필요하오이다.》

《예정한 곳이 있소?》

《소장이 보건대 오녀산이 적지라고 보오이다.》

제가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제가들중에서 환노부대가가 나섰다.

《오녀산에 축성을 하자면 많은 인부와 재력이 있어야겠는데 연노부가 당해낼수 있겠소?》

《이것은 연노부만의 일이 아니라 구려의 장구지책이라고 보오이다. 병법상 산성이 긴요한것이라면 구려의 재력을 기울여야 할줄 아오이다.》

연타발이 주몽의 말에 찬동하였다.

《말갈과의 전쟁을 치르자면 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나도 동감이요. 우리 계루부가 축성에 요구되는 경비의 반을 부담하겠소.》

《축성에 필요한 경비는 그렇다 치고 말갈이 때를 기다려주겠는지…》

환노부대가가 다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소장이 료량컨대 말갈은 당장 군사를 일으킬수 없소이다.》

주몽은 말갈의 형편과 그를 제압하기 위한 당면한 계책을 펴 말갈과의 전쟁을 위해 오녀산성을 쌓는 문제를 매듭짓게 하였다. 다만 필요한 경비부담문제에서 약간의 론쟁이 있었으나 연타발대가의 적극적인 추동으로 그것도 타결되였다.

제가회의에서는 구려군의 지내외병마사를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하는 문제도 토의되였다. 그 문제를 두고는 소가들과 대가들사이에 의견이 많았다. 대가들은 대체로 주몽을 적임자로 보았으나 소가들은 반대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제가평의회라고 하더라도 국왕의 결심이 중요하였다. 소부왕은 분분한 의견을 일축하고나서 좌중에 물었다.

《여러 제가들이 서로 지내외병마사문제를 놓고 의견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말갈과의 싸움을 승전에로 이끌 사람이 누구요? 한번 나서보오.》

구수회의는 잠잠해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소부왕은 미소를 지었다.

《과인은 주몽이 적당하다고 보오. 어떻소, 주몽?》

《그것은 불가하오이다.》

주몽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사양했다.

《어째서?》

《소장이 말갈의 분구를 물리친것은 일전일승이였소이다. 승패는 병가상사라고 하였소이다. 소장이 어찌 한번 전승한것으로 하여 병마사의 중임을 맡을수 있겠소이까? 소장은 이런 중임을 연노부의 도리대감이 맡는것이 좋을듯 하오이다.》

제가평의회중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있던 도리는 주몽의 말에 눈이 커졌다.

그는 긴 목을 빼들고 주몽을 바라보며 뭐라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릴뿐이였다.

도리를 보던 소부왕은 고개를 저었다.

《연노부의 도리대감은 싸움보다는 지략에 더 밝은 사람이요. 이번 싸움은 어디까지나 말갈과 연노부와의 싸움이 기본인만큼 도리대감은 각 부의 군사들로 무어진 구려군의 인마, 량식, 무기들을 보장해주는 중임을 맡는것이 좋을듯 하오. 일군들의 품을 빌리는 주인은 그 치중을 하여야 하는거요. 과인의 말이 적중한지는 모르겠는데…》

소부왕의 의견에 늙은 대가들과 일부 소가들은 빙글빙글 웃으며 찬동을 표시하였다.

주몽은 재삼 사양하였으나 다수찬동으로 결국 구려군의 지내외병마사로 임명되였다. 구려에 있어서는 전례없는 일이였으나 또한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아무리 구려의 《가》라고 하더라도 말갈과의 싸움은 힘에 부친것이라는것을 누구나 알고있었다. 탐나는 자리이긴 해도 또한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하는 일이였다.

그날 저녁이였다.

도리는 여느때없이 밝은 낯빛으로 구마를 불렀다.

제가평의회의 소식을 잘 알고있는 구마는 의아한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형님, 제가평의회에서 주몽을 구려의 지내외병마사로 되게 하였다는게 사실이오이까?》

《사실이야.》

《아니, 거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것이오이까?》

《왜, 일은 썩 잘되였는걸…》

《잘되다니, 그건 무슨 말이오이까? 주몽이라면 저 계루부, 아니 그것도 아닌 이방놈인데 그런 놈에게 구려의 병권을 준단 말이오이까? 이거야 도적을 보고 집 봐달라는 소리가 아니고 뭐란 말이오이까?》

《구마, 그렇게 말하면 쓰나? 제가평의회에서 결정한 문제인데…》

《형님은 알다가도 모르겠소이다.》

도리는 구마를 내려다보며 너그럽게 말했다.

《모를것도 없어. 주몽이 구려의 병권을 쥔건 잘된 일이야.》

구마는 새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리를 쳐다보았다.

《하, 하. 이것 보라구, 구마. 오랑캐는 오랑캐로 치는게 병법중의 병법이야. 말갈놈들을 주몽을 보고 치라고 하는건 바로 그 고수를 쓴거야. 상감이하 제가들이 슬슬 추어주면서 주몽을 병마사로 만든건 다 속셈이 있는거라니까. 이 도리에게는 바로 그렇게 보이지. 멀쩡하게 눈뜨고있으면서 옛소, 받소 하고 나라를 내줄 놈이 어디 있어? 싹수 부득해서 슬쩍 다른 놈을 리용하는거지… 알겠나?》

《그러니 형님은?…》

《그래, 구마. 토끼몰이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지? 말갈놈들을 꺼꾸러뜨리고나서 림시 빌려주었던 병권을 빼앗으면 그만이야. 하여튼 상감이나 대가들이 그럴듯하게 일을 꾸미거든. 하, 하.》

《형님은 참말 보통이 아니오이다. 형님의 그 수를 어느 놈이 따르겠소이까?》

《구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슬슬 굿이나 보다가 떡을 먹는거야. 그러되 제 할일은 해야 돼.》

《그게 무엇이오이까?》

《제때에 사냥개를 잡자면 올가미랑, 칼이랑 좀 준비해야 하지 않나? 무작정 잡으러 들다가는 오히려 물릴수 있지 않나?》

《말씀의 뜻을 알겠소이다. 제가 견마의 수고를 아끼지 않겠소이다.》

《구마, 우선 그 재사놈이 왜 집을 나간다 어쩐다 했는지 알아봐야겠네. 그리고… 이게 제일 중한 일인데 비밀리에 부여에 한번 다녀와야겠네.》

《부여에요?》

《음, 주몽이란 놈을 옭아매자면 그놈의 뒤를 잘 캐보아야 해. 사신을 보낼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야. 상감이나 제가들이 그걸 알면 좋지 않아. 일이 잘되자면 언제나 비밀이 담보되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공연히 남좋은 일이나 해주게 되거든. 바로 사람 다루는 일에서는 음모가 기본이라는게 그런 말이야.》

《형님말씀을 페부에 새기겠소이다.》

도리와 구마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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