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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10

 

인가에서 이십여리나마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 자리잡은 자루골은 십만 양병하기에도 넉넉한 곳이였다. 주몽은 이 자루골을 찾아내고 쾌재를 불렀다. 자루골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막힌 분지였는데 지세는 평탄하고 여러곳에서 샘이 나오는데다가 작지 않은 내가 흐르고있어서 련병장으로서는 더할나위없는 곳이였다. 평지에서는 기병과 보군의 진법을 능히 익힐수 있고 산자락들에서는 산악전에 대비시킬수 있었다.

소서노를 구원해온 후 연타발대가는 일단 계루부의 내부가 수습된 조건에서 연노부에 군사를 파견하는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하였다. 주몽도 이 결심에 찬동하였다. 사실 말갈족들의 침입이 날로 우심해지고있는 때에 구려사람들이 련합하여 적을 물리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구려가 편안할수 없었다. 하지만 비추장군은 연노부에 군사를 파견하는데는 일단 동의하면서도 정예군사를 보내는데는 여전히 반대였다. 애써 키운 군사를 남의 손에 넘길수 없다는것이였다. 예전 같으면 엄한 군령에 따라 처벌받을 일이지만 연노부가 날로 쇠퇴해가는 지금에 와서는 별로 비추장군의 고집에 침을 놓는 사람이 없었다. 비추장군은 또 그대로 말갈이 소서노를 순순히 내놓은것을 의심하면서 아직 연노부에 군사를 함부로 출병시키는것은 시기상조라는것이였다.

이러한 때 주몽은 연타발대가에게 계루부군사중 가장 약한 병마와 군사들을 넘겨줄것을 청하였다. 일단 구려군에 편입될 계루부의 군사를 보내야 하는것만큼 주몽에게 군사를 내주는 문제는 연타발도 비추장군도 선선히 응했다.

그리하여 주몽은 연노부 파견군 오천을 맡게 되였다. 주몽은 그 오천 군사를 받고 인차 이 자루골을 찾아내여 들어왔던것이다. 이 오천 군사라는게 말이 그렇지 군사다운 체모를 좀처럼 어려운 오합지졸이였다. 나이많고 허약한 사람들인데다가 또 병법에 익숙하지도 못한 무리들로서 그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정예군의 뒤치닥거리나 하던 사람들이였다. 주몽은 이러한 무리를 정예군사로 만들기 위해 일정한 기간 련병시키기로 하였다.

자루골에 들어온 주몽은 오천 군사를 점검하고나서 전체를 3개의 대로 나누었다.

제1대는 이천명으로서 기병이였다. 나이먹고 약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망라되였다. 말을 탈수 있고 활을 쏠수 있으면 되였다. 나머지는 훈련에 달려있었다.

제2대는 천오백으로 도검수, 궁수들이였다. 여기에는 용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로 꾸려졌다.

제3대는 역시 천오백으로서 부월수(도끼로 무장한 군사)와 창극수(창과 극으로 무장한 군사)들이였다. 여기에도 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포진되였다.

제1대는 주몽이 맡고 제2대는 마리, 제3대는 오이가 맡았다. 훈련에 필요한 식량과 말은 연타발대가와 재사가 보장하기로 되였다. 연타발의 립장으로서는 계루부군자체의 무력이면서도 또한 구려군의 무력으로 되는것만큼 이 일에 아까울것이 없었다. 비추장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련병이 어떻게 되든 또 과연 그렇게 해서 강군을 만들어낼수 있겠는지 하는것은 제쳐놓고라도 우선 자기의 정예군을 보존할수 있는것으로도 주몽의 일에 반대가 없었다. 강군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연노부에 파견하게 된만큼 별로 손해가 없을것이요, 반대로 한개 부의 군사를 맡은 장군으로서 구려군 파병이라는 명목을 세울수 있는것이였다.

훈련을 시작한지 벌써 두삭이 되였다.

주몽은 제1대이자 중군인 기마련병을 돌아보고나서 전령에게 제2, 3대의 마리와 오이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전령이 달려간 다음 주몽은 넓은 골안에서 맹렬히 훈련하고있는 군사들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웅지를 이룰 거보는 이미 뗐다. 나무는 이미 배로 만들어지기 시작한것이다.

비록 오천군사이지만 이 두삭사이에 놀랄만큼 정예해졌다. 이 상태로 나가면 구려의 동맹(구려의 제천행사)까지 능히 일을 해볼만 하게 될것이다. 련병이 끝나는무렵에 가서 새롭게 무장하게 될 검, 쇠활촉, 창, 극, 부월, 방패 등도 이미 무골이 착실히 마련하고있다.

언제 연노부에 출병하게 될지 그건 두고봐야겠지만 어쨌든 힘은 마련되였다. 주몽은 서남쪽의 환나부, 관나부와 서북쪽의 제나부를 거쳐 연노부까지 다녀올 재사와 협부들을 무척 기다렸다.

주몽은 재사와 협부에게 구려 5부의 대가와 장군들이 련맹에 속히 응하게 할 유세를 하라는 과업을 주었다. 유세의 요점은 어디까지나 자기 힘을 믿고 자기의 우점을 살리면서 늘어빠진 구려의 국력을 강화하도록 각 부의 대가들과 장군들을 설득시키는데 있다. 절대로 자기의 약점을 무시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약점에 눌려 장점을 보지 못하면 국력강화는 둘째치고 제 할거지도 제대로 보존할수 없다. 따라서 먼저 자기의 우점을 보고 약점을 버릴수 있는 방향에서 유세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세방법은 재사와 협부가 탐구하여야 한다. 구체적인 사료, 정세, 각 대인의 심리적장단점 등과 같은것은 재사와 협부가 스스로 찾아라. 재사와 협부는 기꺼이 소임을 맡았다. 이때껏 재사와 협부가 전해온 소식은 괜찮은것이다. 이미 환나부와 관나부의 대가와 장군들은 재사와 협부의 유세에 응해나섰던것이다.

주몽은 오이와 마리가 도착하여 생각에서 깨여났다.

《주장, 불렀소이까?》 하고 오이가 군례를 차렸다.

《아, 왔구만.》

주몽은 오이와 마리의 활기에 넘친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나서 물었다.

《그래, 제2군, 제3군의 형편은 어떤가?》

《우리 제2군의 군황은 좋소이다.》 마리가 짧게 대답하였다.

《제3군의 군황도 좋소이다. 주장께서 이 오이를 깨우쳐준 다음부터 고쳤소이다.》

《그래, 좋아. 거듭 말하지만 용장수하 무약병(勇將手下 無弱兵)이라는 말 명심하게. 훌륭한 장수밑에 약한 병사가 없네. 싸움의 승패는 장수가 어떻게 수하장졸들을 훈련시키고 어떻게 림전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는거야. 장수되는자의 오덕십과(五德十過) 잊지 않았겠지?》

《그렇소이다. 장수의 오덕(五德) 즉 충성(忠), 용맹(勇), 지혜(智), 어진것(仁), 믿음(信)! 장수의 십과(十過) 즉 장수될자가 버릴것은 첫째, 욱하는것. 둘째, 급한것. 셋째, 재물을 탐내는것. 넷째, 사람을 믿지 않는것. 다섯째, 겁이 많은것. 여섯째, 참을성이 없는것. 일곱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것. 여덟째, 게으른것. 아홉째, 방자스러운것. 열째, 남에게 의존하는것.》

오이가 폭포쏟듯 내리엮었다.

《하, 하.》

주몽은 크게 웃었다.

《제3군장, 물론 그 오덕십과중에 모든게 다 해당되는건 아니야. 자네에게 말이야, 이를테면 3군장에게는 다섯가지 장수의 덕은 충분해. 그리고 열가지 버릴것중에서도 첫째, 둘째, 넷째, 여섯째 같은것이나 해당되겠지…》

《주몽형, 이 오이는 맏형이 깨우쳐주신바를 잊지 않겠소이다. 이제는 한개 장수가 아니라 수하군사를 거느린 장수로서 대업에 복무하겠소이다. 그동안 소제(小弟)가 용력만 믿고 울뚝하기 잘하고 참을성이 적은것으로 해서 하마트면 맏형의 대업을 망칠번 하였소이다.》

오이가 정색하며 자기의 심정을 아뢰였다. 그가 어찌나 진중해하는지 분위기가 금시 엄엄해졌다. 저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빠져들던 마리가 고개를 들며 웃음을 지었다.

《주몽형, 오이형이 울상이 되니 이 마리는 통곡을 해야 할가 보오이다.》 하며 마리가 너스레 떠는척 하였다.

《에끼, 자네 2군장같은 지장(智將)이라면 내가 얼마나 좋겠나?》

《어따, 오이형이 어째서요. 난 3군장같은 용장(勇將)이 못되는걸 항상 부러워하는데도?》

《하, 하, 하.》

세사람의 웃음소리가 골안을 흔들었다.

잠시후 주몽이 오이와 마리를 둘러보며 말하였다.

《난 오이와 마리를 크게 믿네. 군사 오천이 결코 많은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천군 만군 맞잡이야. 군사들이 나이많고 싸움을 겪어보지 못한것이 문제가 아니네. 기본은 모든 군사들을 장군의 전략과 전술에 철저히 복종시키는데 있어. 이를테면 장졸이 일심동체가 되는거야. 알겠나?》

《알겠소이다.》

《그리고 빨리 들이치고 빨리 이기는 질전법(疾戰法)과 구름같이 모였다가 까마귀떼같이 흩어지는 오운산병법(烏雲散兵法)에 익숙하도록 해야겠네. 병귀신속(兵貴神速)! 이것이야말로 우리 오천군의 제일 특기, 제일 특전으로 되야 하네.》

《이미 주장의 뜻대로 군사들을 훈련시켰소이다.》

《좋네. 이런 측면에서는 제3군이 2군보다 낫네.》

《그야 제3군장의 승벽에 이 마리가 따를수 있소이까?》

《그래? 하, 하.》

이때 전령이 다가왔다.

《주장께 아뢰오. 진문밖에 비추장군께서 오셨소이다.》

《비추장군이? 들이랍시지.》

《그런데 비추장군께서 소서노와 함께 오셨소이다.》

《그래? 그렇다면 진중에 모시기 어렵겠는걸? 병법에서는 녀자를 진중에 출입시키는걸 꺼리니까, 응? 하, 하. 그건 그렇고 어쨌든 손님들이니… 좋아, 우리가 진문밖으로 나가지.》

주몽이 오이, 마리와 함께 진중을 지나 진문밖으로 나가자 비추가 반겨맞았다.

《아, 주장! 군사조련에 수고가 많소. 사방에 기를 꽂아 어찌나 밝히는지 이 비추장군도 진문안으로 들어가볼수 없더구만.》

《하, 비추장군께서도 병법에서 크게 꺼리는 오기(五忌)를 알지 않소?》

《그렇지. 녀자를 진중에 출입시키지 않는다 그거군. 허허, 하지만 소서노야 여느 녀자와 다르지 않을가? 더구나 주장 여러분이 수고가 많다고 진무차로 식량과 옷들을 가지고 왔는걸!》

《그렇소?》

주몽은 소서노쪽으로 돌아섰다.

소서노는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담고 주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구었다. 그의 낯빛이 알릴듯말듯 홍조로 물들었다.

주몽도 인차 비추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연타발대가를 비롯해서 비추장군이랑 이렇게 돌봐주어 참 고맙소이다.》

실은 소서노에게 하는 감사였으나 주몽은 어쩐지 소서노의 이름을 꼭 짚을수가 없었다. 주몽이 말갈사람들에게서 소서노를 처음 보았을 때 하마트면 소리를 낼번 하였다. 소서노가 어찌 그리도 신통히 어머니인 류화를 닮았을가? 주몽은 졸지에 어머니를 보는듯 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자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을나에 대한 생각이 덮쳐들었다. 어머니는 궁중에 끌려가시였다니 그후 소식은 알수 없고 을나는…

주몽은 언제인가 부분노에게서 들은 그 소리가 다시 떠올라 입을 꾹 다물었다. 을나, 변변히 삶의 락도 누려보지 못하고 이슬로 사라진 을나.

주몽의 가슴은 칼로 후벼내는듯 하였다.

지금 소서노를 맞이하고나니 을나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다시금 묵은 상처를 사정없이 헤집듯 아파났다.

《음…》

주몽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후 주몽은 낯빛을 풀었다.

《그래, 비추장군! 그사이 다른 일은 없었소?》

《연노부에서 출병때문에 독촉이 왔소. 그래 대가께서 주몽을 부르오. 그리고 참 어제 개마국 장수 부분노라는 사람이 연노부로 가던 길에 우리 계루부에 들렸소.》

《개마국 장수 부분노?》

《그렇소. 철갑기병 백을 거느렸더군.》

《그 사람이 끝내 개마국을 탈출했군.》

《그를 아오?》

《이전에 통성한적이 있소.》

《그렇소? 그 참 인연이라는게 묘하군. 그런데 말이요, 그 부분노가 우리 계루부에 우연히 들렸는데 연타발대가의 친척이 되는줄이야 또 어찌 알았겠소?》

《그게 무슨 말이요? 친척이라니?》

《아, 거 왜 주장이 말갈로 떠나기 전날 주장을 은인이라고 부른 늙은이 있지 않소?》

《그래서?》

《바로 그 늙은이의 죽었다던 아들이 바로 부분노란 말이요.》

《저런… 그게 사실이요?》

주몽이 놀라 비추에게서 소서노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이오이다.》

소서노는 물기어린 눈으로 주몽에게 가벼이 고개를 숙이였다.

《참, 여보게 오이, 마리, 그때 행인국군사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해준 그 부분노가 왔다는구만.》

《주장, 우리들도 만나보고싶소이다.》

《그렇지, 부장들에게 단단히 신칙하고 오늘은 부분노를 만나야겠군.》

주몽은 뒤일을 처리하고나서 비추와 함께 계루부로 향하였다.

그들의 뒤를 사이두고 따르는 소서노는 비단수건으로 자꾸 얼굴을 닦았다. 땀이 나와서만이 아니였다. 이번 산중 훈련터에 올 때 소서노는 주몽과 그의 부하들에게 옷을 해입힐 생각을 하였다. 그것이 말갈인들에게서 자기를 구원해준 주몽에 대한 감사이고 또 계루부군을 조련시키는것에 대한 계루부의 감사일거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그들의 옷은 낡고 덞어져있었다. 그것만 봐도 그들이 어떤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가를 알수 있었다. 소서노가 옷의 마지막실밥을 끊을 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직접 훈련터에 올 생각을 못하였다. 그러나 부분노가 뜻밖에 찾아오고, 그가 어머니와 안해로부터 주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것을 보자 불쑥 자기가 지은 옷을 가지고 갈 결심을 내렸던것이다. 소서노는 자기가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였는지 진문앞에 오기까지 깊이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진문앞에 이르자 소서노의 심중에는 어딘가 숨어있던, 형체를 알수 없는 《그 무엇》이 불쑥 솟구쳤는데 그것은 소서노에게 참으로 뜻밖이였다. 몽롱한 《그 무엇》은 소서노를 비웃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하필 소서노! 네가 주몽의 옷을 짓는단 말이야? 너는 지금 나를 속이려고 하지만 나는 속지 않아. 너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오이, 마리의 옷까지 지었다지만 마음은 주몽의 옷만을 지었지?

소서노는 얼굴을 붉히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러자 《그 무엇》은 피식- 웃는다. 거짓말, 너는 주몽의 옷만을 지었어. 만일 비추장군이 너를 구원해주었다면 그래도 너는 그에게 옷을 지어주었겠니?

아니!

소서노는 얼결에 부정하였다.

그것 보렴, 그러니 너는 주몽의 옷만을 지었지. 다만 그의 옷만을 말이야.

소서노의 얼굴은 수집은 처녀의 얼굴처럼 붉어졌다.

이상하지. 누구나 다 이럴가? 내 일생에 처음, 정말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거야.

소서노는 마음이 까닭모르게 슬퍼졌다.

그는 손수건으로 다시 땀도 나지 않는 얼굴을 닦았다. 어쩐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달아오른 소서노의 얼굴은 주몽일행이 연타발의 집 대문으로 들어설 때까지 식지 않았다.

뜨락에서 주몽은 부분노와 만났다.

《부분노.》

《주몽.》

두사람은 억세게 부둥켜안았다.

《부분노, 이렇게 또 만났구려.》

《정말 뜻밖이요, 주몽!》

부분노의 뒤에 섰던 부분노의 어머니가 나섰다.

《얘야, 이분이 바로 내가 말하던 그 은인이다.》

부분노는 주몽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몽, 나의 절을 받아주오.》

주몽은 부분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부분노, 일어서오. 피차 같은 심정이요. 당신은 그때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았소?》

부분노는 주몽을 바라보며 눈을 슴벅거렸다. 그에게는 혈기왕성해보이면서도 무게있게 내비치는 그 언행과 몸가짐이 마음에 들었다. 더우기 어딘가 수집어하는듯 한 주몽의 모습은 부분노에게 묘하게 파고들었다. 장수다운 외모와는 달리 어딘가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그 수집어하는듯 한 태도는 부분노가 일찌기 보지 못한것이였다.

《주몽, 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놈이요. 사내로서 맹세하오만 이제부터 주몽과 생사를 같이하겠소. 받아주오.》

《고맙소.》

두사람의 재회를 바라보던 연타발은 은빛수염을 쓸어내리며 껄껄 웃었다.

《허, 허 주몽, 그대가 이 계루부에 들더니 좋은 일이 겹치는구려. 재사가 왔지, 랍치되였던 소서노를 찾아왔지, 게다가 오늘은 부분노까지… 이 연타발이 늘그막에 귀인을 만났소. 자, 어서 안으로 들지, 응?》

모두 즐거운 낯으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주몽은 부분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연노부에 가던 길이라지?》

《그렇소! 도리대감이 사람을 보내왔더군.》

《그렇소? 우린 또 함께 가게 되겠군.》

《연타발대가도 말씀하시더군. 주몽이 그간 조련시킨 군사들을 거느리고 연노부로 가게 될거라고…》

《어쨌든 반갑소.》

 

도리는 이마살을 찌프리고 어깨를 솟구쳐 그속에 긴 목을 숨기고있었다. 기분이 영 찜찜하다. 마치 못 먹을것을 먹은듯 한 기분이다.

《후-》

도리가 꺼지게 한숨을 쉬는데 구마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저 형님, 아니 대감!…》

《뭐냐?》

《저, 심중이 몹시…》

《쓸데없는 소리말고 나가!》

도리는 피대를 돋구며 역증을 냈다.

구마가 비실비실 나가자 방안은 다시 고자누룩해졌다.

《후-》

도리는 다시금 가슴이 답답하여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왜 이러는가? 왜? 푸주간에 쉬파리처럼 달려들던 말갈놈들을 본때있게 쫓아낸 내가? 왕이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도리의 본때를 두고, 그 혁혁한 전승을 두고 깜짝 놀라 입이 닳도록 떠들지 않았던가? 나자신도 어떻게 되여 그렇게 말갈군사를 쳐물리쳤는지 잘 모르겠다. 불맞은 범처럼 오죽 날뛰였으면 싸움이 끝난 후 구마가 감히 내 눈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범앞에 선 개처럼 부들부들 떨었겠는가? 아, 정말이지 말갈놈들이 이리떼처럼 달려들 때는 나도 신들린 사람처럼 미쳐날뛰였지. 그런데, 왜? 이렇게 언짢은것인가? 싸움은 우리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그 싸움끝에 어깨에 입은 부상때문일가? 부상은 별로 큰것이 아니지 않는가?

도리는 찌프린 눈으로 어둑해지는 방구석을 지켜보고있었다.

소서노랍치사건을 기회로 계루부와 말갈사이에 쐐기를 박으려던 계략이 실패했을 때부터 이 기분나쁜 일이 김새듯 새여나오기 시작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말갈족은 마치 알고 앙갚음을 하려는듯이 보다 집요하게 연노부를 공격해왔다. 먹이를 잡으려고 던진 몽둥이가 도로 저한테 돌아온셈이 되였다. 처음엔 슬슬 늦추어주며 피하려고 하였지만 그럴수록 말갈족들은 냠냠하게 보았던지 더 지꿎게 달려든다.

참다못해 도리는 부분노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부분노가 미처 오기 전에 말갈분구가 거들먹거리며 달려드는 바람에 도리는 연노부의 무력을 통털어 분구를 때렸다. 분구는 숱한 주검을 남기고 물러갔다. 그러나 연노부의 피해도 컸다. 세작의 말에 의하면 분구는 여우산어방에 몰려들어 산진을 치고 다시 겁략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 여우산이라는게 산세가 묘하고 또 워낙 말갈이 사납게 나와 도리는 분한대로 귀대시킬수밖에 없었다. 귀대할 때까지만 해도 도리는 피해는 있을망정 처음으로 말갈을 때려부셨다는 생각으로 흥분되여있었다.

도리의 찜찜한 기분은 귀대하여 드디여 발작하였다.

기다리던 부분노와 계루부군사들이 왔다는 소리에 도리는 뛸듯이 기뻐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계루부군의 주장이라는 저 호걸은? 언제인가 부분노를 만나러 가던 길에 계루부지경에서 만났던 사나이가 아닌가? 그때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는데 도리의 극진한 초청은 어디다 팽개치고 계루부군의 주장으로 나타났단 말인가? 게다가 믿었던 부분노는 또 어떤가? 저 주몽이라는 주장(主將)의 부하라고?

도리는 전승의 기쁨이고 뭐고 다 흩어지는감이 들었다. 기슭으로 밀려난 나무개비! 바로 그런 신세가 아닌가! 어째서 이렇게 되였는가? 저 주몽이란 장수는 대체 어떤자이길래 이 도리의 심중에 아픈 못을 박는것인가? 소서노를 빼냈다는 이방의 호걸도 바로 저 주몽이란 말인가? 어째서 군신지인으로 맺어졌어야 할 나와 주몽이 이렇게 오랜 원쑤와 같이 되였는가!

도리는 궁인모사(窮人謀事)격이 된 자기의 신세가 원통스러웠다.

도리는 서로 만났을 때 오랜 지기가 다시 만나듯이 환한 웃음을 짓던 주몽과 부분노의 모습이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감, 대감.》

구마가 도리를 불렀다.

《뭐냐?》

도리가 깨여나 눈을 부릅떴다. 방안은 벌써 어두워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기에 불러도 듣지 못하시오이까? 혹시 상처가…》

《아니야. 그래, 무슨 일이야?》

《임금께서 부르시오이다.》

《무슨 일로?》

《계루부군을 이끌고 온 그 장수와 함께 말갈을 공략할 일때문인것 같소이다.》

구마는 무엇이 좋은지 뱅글뱅글 웃었다.

미친 놈, 뭐가 좋아서 그런가?

임금? 흥, 그 주제에… 할수 없지…

도리는 어두운 얼굴로 문에 드리운 휘장을 들었다.

여우산의 산세를 살피고난 구려군의 장수들은 서로 말없이 자기 생각에 잠겼다.

도리는 주몽과 부분노의 모습을 번갈아 살피고나서 말채찍을 들어 여우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우산은 저래뵈두 산세가 여간 험하지 않소. 말갈족들이 산속에 웅거해서 사는 경우가 많다보니 산세는 잘 타오. 게다가 그들은 창과 활을 잘 쏘는것만큼 서뿔리 공격하다가는 오히려 대패할수 있소.》

주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분노생각은 어떤가?》

《화공이 적당할것 같소. 그런데 아직 수목이 날것이 돼서…》

부분노의 말을 들은 도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수목이 날것이라는것도 그렇지만 말갈이 저렇게 산기슭에 장사진(長蛇陳)의 진세를 펼쳤으니 산에 붙을수 없을거요. 적은 방어하고 우리는 공격하는것만큼 력량관계도 고려해야 될거요. 그런데 우리 구려군이라는게 말갈군사와 대비하면 공격할만 한 처지에 있지 못하오. 우리 연노부군사들은 이미 지쳐있고 계루부군도 수가 많지 못하오. 그리고 한가지 미타한것은 말갈놈들이 저 여우산에 웅거한것이 혹시 어떤 계략이 아니겠는가 하는거요. 우리 구려군을 꾀여내여 반격할 계책을 세우고있다면 이건 큰일이요.》 주몽은 여전히 여우산을 바라보며 생각을 더듬고있었다. 도리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주장의 계책은 뭐요?》 하고 부분노가 물었다.

부분노의 그 주장이라는 부름에 도리는 입귀를 찡긋하며 주몽을 쳐다보았다.

마침내 주몽이 입을 뗐다.

《도리대감의 위구도 고려해야 할것 같소. 경적필패(輕敵必敗)라고 했소. 그러니만큼 단 한번의 공격으로 적을 쳐부셔야 하오. 그러자면 부분노가 말한 화공과 오운진법을 써야 할것 같소. 도리대감, 총독해주시오.》

《내가?》

《그렇소이다.》

《아니, 난 다른 묘책이 있소. 만일을 생각해서 우리 연노부군사들은 부와 궁성을 지키는것이 상책이라고 보오.》

도리의 말을 들은 부분노의 살짝곰보얼굴이 푸들거렸다.

《그건 너무하지 않소? 대체 이 싸움의 주인은 누구요? 그래 연노부군사들이 뒤로 물러서겠다면 결국 계루부군사들이나 싸워보라 이것이요?》

《부분노, 상장은 승산없는 싸움은 미리 피한다고 했소. 그대가 뭐길래 큰소리치는거요?》

부분노가 거칠게 나서려는것을 주몽이 제지시켰다.

《좋소이다. 도리대감, 그럼 연노부군사들은 부와 궁성을 방비하면서 만일 적들이 헤쳐지면 계루부군을 응원해주시오.》

《그야 어련하겠소.》

도리는 상한 팔이 아픈지 성한 손을 가져다대며 몸을 옹송그렸다.

주몽은 계루부군을 점검하고 전군을 네대로 나누었다. 제1대는 주몽, 제2대는 오이, 제3대는 마리, 제4대는 부분노였다. 화공준비도 하였다.

마침내 쇠북소리가 크게 울리자 계루부군이 질풍처럼 여우산을 향해 내달렸다. 여우산아래 이르러 계루부군은 두패로 갈라졌다. 제1대, 주몽의 기병이 왼쪽으로 에둘러 달리고 제4대, 부분노의 철갑기병이 오른쪽으로 에돌았다. 뒤를 이은 제3대, 마리의 부대가 주몽의 뒤를 따르다가 말갈진에 대치하고 제2대, 오이의 부대가 부분노의 뒤를 따르다가 말갈진에 대치했다. 놀란 말갈진에서 비오듯이 화살이 날았다. 뒤로 돌아가는 제1대, 제4대에 대고 화살을 날리던 말갈의 분구는 뒤미처 대치한 제2, 제3대와 붙었다. 쌍방간에 화살이 어지럽게 날았다. 오이와 마리가 적의 눈앞에서 화살을 날리고있을 때 에돌아간 제1대 주몽과 제4대 부분노는 마른 풀단들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검은 연기를 짙게 내며 분구의 뒤통수를 덮쳐갔다. 연기가 온통 여우산을 휘감자 오이와 마리는 북을 치고 진을 헤쳐 제1대, 제4대의 뒤를 따랐다. 대치했던 오이와 마리의 진이 헤쳐지고 뒤에서 연기구름이 몰려들자 분구의 무리들은 놀란 토끼들마냥 여우산에서 흩어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분구의 무리가 여우산에서 나와 구도의 영채를 바라고 달아나기 시작하자 여우산을 에돌아갔던 계루부군이 다시 합쳐져 말갈의 뒤를 덮치기 시작하였다. 마치 잘 드는 낫으로 보리가을하듯이 주몽의 군사들은 말갈군사들을 쓸어눕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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