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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9

 

펑퍼짐한 바위가 나지자 주몽은 말을 멈춰세웠다. 바위우는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으리만큼 넓었다.

《여기서 요기나 하고 갈가? 피로도 풀겸…》

《그게 좋겠소이다.》

협부가 찬성하였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바위우에 자리들을 잡았다. 협부가 말린 육포, 소금, 보리줴기밥, 술을 넣은 가죽자루를 꺼내놓았다.

주몽은 육포 한쪼각을 집어들며 혼자소리인듯 말하였다.

《이제는 말갈에 대해서 대체로 알게 되였지…》

그러자 마리와 협부가 응수하였다.

《그런것 같소이다. 벌써 여러날이 되였소이다.》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된것 같소이다. 그런데 아직 소서노의 행방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으니 난감이오이다.》

협부가 근심스럽게 주를 달자 마리가 협부쪽으로 돌아섰다.

《그동안 주로 말갈사람들의 형편을 살피였으니 그럴수밖에 없었지…》

《그래.》 하고 두사람의 말을 듣던 주몽이 조용히 되뇌이며 숲속너머 먼곳에 시선을 던졌다.

주몽은 여러날째 말갈의 지역을 더듬었다. 그 과정에 말갈사람들이 차지한 지역의 산세와 지세, 그들의 일상 사는 방식과 특징들에 대해 알게 되였다. 말갈사람들은 꽤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있었다. 주로 산과 늪이 많은 초원에서 살면서 사냥과 가축기르는것을 기본업으로 살아간다. 집들은 대개 토굴식움집이였고 입는것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체격이 크고 성격이 거칠었지만 또한 정직하고 순진하였다. 하기에 사냥군으로 가장한 주몽의 일행이 먹을것과 마실것을 요구하면 기꺼이 응하였다.

말갈사람들의 대인은 구도이고 그밑에 분구와 일구가 심복으로서 각각 자기의 지역을 차지하고있었다. 대인이란 관직명이 아니라 우두머리라는것이다. 말갈인들의 주무기는 활과 창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호랑이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였다.

주몽이들이 한창 요기를 하고있는데 그들이 지나온쪽에서 한사람이 나타났다. 그를 먼저 발견한 협부가 입으로 가져가던 육포를 내리우며

《주몽형, 저 사람이 아까 지나친 사람이 아니오이까?》 하고 물었다.

주몽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협부의 말이 옳다. 아까 주몽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과 어기였다. 그중 검은 가죽옷을 걸치고 머리에 양가죽을 통채로 뒤집어쓴듯 한 쓰개를 썼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 나타난 사람은 바로 괴상한 쓰개를 머리에 얹고 가던 사람의 앞에서 가던자였다.

가까이 온것을 보니 얼굴이 거무스레한 중년의 남자였다. 웬 일인지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뜸

《당신들, 나와 함께 좀 가야겠소.》 하고 내뱉았다.

주몽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오?》

《아, 별일 아니고 우리 주인께서 당신들을 만나시겠다오.》

《당신 주인이 누구요?》

《가보면 알게 될거요.》

그러자 협부가 내리웠던 육포를 입에 넣으며 끼였다.

《별일 다 있군. 우리가 뭣때문에 당신 주인한테 간단 말이요?》

중년은 협부를 바라보며 황소웃음을 지었다.

《나쁜 일은 아니요. 우리 주인은 당신들을 그저 만나보시겠다는거요.》

《만나겠으면 오라고 하오.》

마리가 퉁을 놓았다.

그러자 중년은 난색을 지었다. 보매 마음이 몹시 어진 사람같았다. 그가 쩔쩔매는것을 보다못해 주몽이 다시 물었다.

《당신 주인이 어디 있소?》

그제야 중년은 반색을 띠였다.

《저기…》 그가 가리키는쪽을 따르던 주몽은 말을 타고 오는 한떼의 인마를 보았다.

앞장에 선 사람은 머리에 괴상한 쓰개를 썼던 바로 그 사람이였다.

주몽이네는 그쪽을 쏘아보았다. 상전에게로 마주간 중년이 고개를 숙이더니

《주인님, 이 사람들이…》 하고 얼버무린다.

《됐어요. 내 그럴줄 알았어요.》

뜻밖에도 녀자의 목소리였다. 부하인지 시중군인지 모를 중년을 안심시킨 주인녀자가 머리쓰개를 벗었다. 닭알같이 갸름하고 뽀얀 얼굴이 드러났다.

《당신들은 누구예요?》 하고 그 녀자는 산딸기같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물었다.

《사냥군들이요.》

《사냥군?》

녀인의 눈이 잽싸게 주몽일행의 말잔등을 훔쳐보았다. 말잔등에는 표범과 삵의 가죽들이 여러장 겹쳐있었다.

《어디 사람들이예요?》

《그건 알아 뭘하겠소?》

《우리 말갈사람들이 아니지요?》

《그렇소. 우리는 부여사람들이요.》

《부여?》

녀인의 말이 서성거렸다. 하지만 녀인의 눈길은 주몽을 집요하게 바라보고있었다. 쏘는듯 한 그 눈길은 마치 번개불같았다. 주몽의 얼굴을 뚫어져라고 바라보던 녀인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깔깔 웃었다.

처음보는 괴녀다. 도대체 이 녀인은 누구인가? 어째서 여기에 나타났으며 무엇을 바라는걸가?

한참 웃고난 녀인은 그 어여쁜 딸기입술을 여전히 오물거리며 주몽에게 말했다.

《사냥군? 참 잘 생겼군요. 내 랑군이 돼주지 않겠어요?》

주몽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난 말갈족 옛 추장의 손녀 치미예요. 어때요?》

《하, 하.》

녀인은 호탕하게 웃는 주몽을 재미있다는듯 생글생글 웃으며 지켜보고있었다.

《말갈사람들중에 호걸이 없군. 이런 들꽃을 그대로 두다니…》

녀인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주몽을 지켜보더니 한숨을 들이쉬였다.

《마음에 들어요, 어때요, 사냥군. 당장 내 집으로 가지 않겠어요?》

《청한다면 가겠소. 우리 사람들과 같이…》

녀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차차 사라졌다. 잠시후 녀인이 말채찍으로 자기의 종아리를 톡톡 치였다.

《롱담이예요. 그런데 당신들은 구려사람들이 아니예요?》

《구려사람?》

《미인을 찾으러 왔지요?》

주몽은 긴장해졌다. 그러나 짐짓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우린 사냥군들이요. 삵을 찾아다니는…》

《사냥군? 내 눈은 못 속여요. 남자를 보는 녀자들의 눈은 다른 때보다 더 밝아요.》

주몽은 이 괴이한 말갈녀인을 흥미있게 바라보고있었다.

 

구마로부터 계루부의 소식을 받은 도리는 몹시 놀랐다.

《뭐, 집을 나갔던 재사가 돌아왔다고?》

《그렇소이다. 그것도 호랑이같은 놈들을 한두름이나 꿰가지고…》

도리는 혀를 깨물었다. 랑패다.

처음 말갈의 침입으로 촌락이 서너개 략탈당하였을 때 도리는 왕의 명으로 각 부들에 군사들을 연노부에 출병케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 기회에 초모된 군사들을 쥐려고 타산하였다. 일단 구려군의 명색으로 군사들을 모으면 연노부의 대신인 도리가 통솔하게 되는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그러나 도리의 타산과는 달리 제가들과 계루부의 비추와 같은 장수들은 말갈의 침입이 단지 연노부의 일이라고 핑게를 대면서 선뜻 군사를 파견하려 하지 않았다. 구려의 실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허술해졌단 말인가? 하긴 도리의 잘못도 있으니 처벌할수도 없다. 그리하여 도리는 묘책을 쓰려고 결심하였다. 도리는 말갈대인 구도를 찾아가 은근히 구려전체에 대한 공략을 부추기였는데 능구렝이같은 구도는 피실격허(避實擊虛)라고 군사가 강한 계루부쪽은 피하면서 만만해보이는 연노부만 침범하여 못살게 군다.

도리는 이번엔 술수를 바꾸어 말갈과 계루부를 싸우게 하려고 타산하였다. 그래 구마를 시켜 계루부와 접하고있는 일구를 부추기였다. 일구는 대인 구도의 신임을 두고 한창 분구와 암투를 벌리고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낸 도리는 소서노와 같은 미인을 잡아 섬겨바침으로써 대인의 총애를 받을수 있다고 일구를 부추기였다. 미련한 일구는 두꺼비 파리잡듯 덥석 받아물었다. 도리는 구마를 시켜 일구가 소서노를 랍치할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해주었다. 소서노에 대한 랍치는 감쪽같이 이루어졌다. 소서노가 랍치된 후부터 도리의 촉각은 계루부의 동태를 살피는데 집중되였다. 이제 계루부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차후방향이 결정된다. 계루부가 격동된다면 적당한 기회에 계루부의 연타발에게 말갈이 소서노를 랍치했다는것을 귀띔해줄 심산이였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계루부도 말갈과의 싸움에 연노부와 합세하게 될것이다. 계루부만 움직이면 나머지 부들은 애먹이지 않을것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 도리는 재사가 집을 나간것을 알게 되였다. 이 정보는 도리에게 새로운 흥분을 주었다. 일의 선후차가 바뀌여진게 아닌가. 재사가 집을 나갔다면 연타발대가도 연노부대가와 마찬가지로 후사가 없다는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연노부도 계루부도 주인이 없는 지경이 될수 있다. 이거 구려의 왕이 될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오는게 아닐가? 어찌보면 이 모든게 하늘의 뜻일수도 있다. 하필 계루부가 도리에게 거치장스럽게 되였을 때 재사가 없어진게 과연 하늘의 뜻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이런것을 보고 바로 하늘이 주는 기회라 하지 않는가! 음, 하늘이 이 도리를 보고 구려의 왕이 되라고 웃음을 보내는게다. 도리의 가슴은 은근히 부풀었다.

재사가 분명 탈가했다면 이 기회에 소서노까지 없애버림으로써 아예 연타발을 꺼꾸러뜨리자. 그렇게 되면 계루부는 오뉴월 엿판대기가 될게 아니야!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게 아니다.

도리는 기회를 리용할 결심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엉큼한 도리는 어떻게 되여 연타발의 아들인 재사가 집을 나가게 되였는가를 알아보게 하였다. 그걸 모르고서는 서뿔리 계책을 굳힐수 없었다. 이제나저제나 희소식을 기다리는 도리의 마음은 마가을 콩깍지처럼 죄여갔다.

그런데 재사가 돌아왔다? 이건 뭐야, 요렇게도 희롱당할수가 있나?

도리는 죽은 아이 배꼽만진다는 항간의 속담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계략이 흔들리였다는데도 있지만 재사의 귀가가 어쩐지 도리에게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도리는 저도 모르게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래, 재사는 지금 어쩌고있느냐?》

《말갈대인을 만나러 간다고 하오이다.》

《말갈대인을? 그건 왜?》

《제 누이 소서노를 찾으러 간다고 하오이다.》

《뭐라고? 그럼 재사가 혹시 말갈놈들이 소서노를 랍치했다는걸 아는게 아니야?》

《글쎄올시다. 가서 담판한다는걸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한데…》

《죽일 놈, 그놈이 그걸 어떻게 눈치챘을가?》

《제 생각에는 그와 같이 온 놈들이…》

《같이 온자들이라니?》

《제가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소이까? 재사가 호랑이같은 놈들을 달고 왔다고…》

《그게 어떤자들이야?》

《저도 잘 모르오이다. 다만 그것들이 모두 룡양호시할만 한 자들이라는것밖에는…》

《빨리 알아봐. 어디서 온 놈들인지… 아, 하늘도 야속하군. 그렇게 호걸들을 애써 찾는 이 도리에게는 안 오고 저 밉다는 계루부의 재사에게…》

도리는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긴 목을 파리쫓는 말처럼 끄덕끄덕거렸다. 그는 방안을 이리저리 오가다가 구마를 불러세웠다.

《이봐, 일이 심상치 않다.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고봐야겠다. 재사란 놈이 여간내기가 아닌데 이제 말갈놈들에게 가서 꾀를 쓰며는 우리 일이 드러날수 있다. 그러니 무슨 계책을 세워야겠다.》

도리는 눈시울을 찌프리며 한곳에 멈추어섰다. 그의 이마에서 진땀이 빠질빠질 솟았다.

 

《하, 하, 하.》

오이의 웃음소리가 쇠북을 두드리듯 울렸다. 묵거를 쇠부리터에 자리잡게 하고 돌아와 마리에게서 그간 말갈을 다녀온 소식을 듣다가 터뜨린 웃음소리였다.

《그러니 그 녀자가 말갈대인 구도를 짝사랑하고있었던게지?》

《그럼, 그걸 모르는 일구가 자기 대인에게 잘 보이려고 소서노를 잡아다 바치려 했으니 질투가 생겼겠지…》

《하, 하. 녀인의 질투란게 무서운거구만. 질투때문에 결국 말갈의 비밀이 다 드러났군. 녀자가 앵돌면 오뉴월에도 서리내린다더니…》

《글쎄 질투때문인지… 난 주몽형의 인화(人和)의 덕이라고 생각하네. 하여튼 그 녀인을 통해서 난감하던 소서노의 거처를 정확히 알았네. 덧붙여 말갈우두머리들의 관계도… 하, 하.》

오이와 마리가 재미나게 이야기하고있는데 연타발에게 들어갔던 주몽이 재사와 함께 나왔다.

《무슨 재미있는 얘기들인가?》

《주몽형, 그 말갈추장의 손녀이야기를 들었소이다.》

주몽은 짧게 웃고나서 오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흠, 그래? 오이, 자네 힘들지 않나. 푹 쉬였나?》

《쉬였소이다. 오히려 주몽형이랑 마리, 협부가 힘들었겠소이다.》

오이가 주몽과 마리를 순한 눈길로 바라보며 하는 말이였다.

《그럼 좋아. 차비들을 하게. 우린 말갈대인 구도를 만나러 가게 됐어.》

《구도를요?》

《그래, 이제는 요긴한걸 알아냈으니 한번 붙어보는거야. 재사를 따라가게 되였네. 이번에 소서노사건을 잘 마무리해야겠어.》

《그럼 계루부기발을 들고 가오이까?》

《그렇네. 연타발대가에게 승낙을 받았네.》

말갈녀인 치미에게서 소서노가 일구의 읍락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몽은 당장 빼내고싶었으나 보다 더 큰 리득을 얻기 위해 참고 돌아섰다. 그렇게 해봤자 잘해서 소서노를 빼내올수 있겠지만 어차피 소동을 일으켜야 하였다. 그렇게 되면 일은 그것으로 끝나고만다. 오히려 단순한 말갈사람들의 분기나 터쳐놓을수도 있었다.

주몽은 이미 승패가 내다보이는 소서노사건을 통해서 말갈사람들스스로가 내놓지 않을수 없게 만들며 이 기회에 그들자신이 형세를 판단하게 함으로써 될수록이면 더 큰 리득을 보자는것이다. 칼을 휘두르고 란을 일으키는것보다 이렇게 점잖게 일을 처리하는것이 리득이면 리득이였다.

《차비들 하게.》

《알겠소이다.》

주몽의 일행은 계루부지경과 접한 일구의 읍락으로 향하였다. 말갈대인 구도에게는 일구의 읍락에서 만나자고 이미 통고를 해놓았다. 일행은 단출하였다. 재사가 앞장에 서고 그뒤로 주몽과 오이, 마리, 협부가 뒤따랐다. 그들이 말갈의 읍락에 가까이 가자 말갈사람들이 길가에 쓸어나왔다. 그들의 모습을 살피던 주몽은 뭔가 이상한것을 느꼈다. 말갈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일상 풍습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주몽은 길섶으로 다가서는 사람들이 모두가 씩씩한 장정들이고 그들의 손에 긴 창들이 불끈 쥐여있는걸 보고 심상치 않은걸 느꼈다. 말갈사람들의 손님맞이의식이 아니라 어딘가 위엄을 빼는것 같았고 위협을 하는것 같았다. 눈초리들이 모두 긴장해있었다.

앞서가던 재사가 주몽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말했다.

《주몽형, 뭔가 낌새가 좋지 않소이다.》

《나도 보고있네. 저 사람들이 구경이나 하러 나온 사람들 같지 않네. 이들의 풍습이 그런지는 몰라도…》

《풍습이 그런건 아니오이다.》

이때 마리와 오이가 주몽의 곁으로 슬그머니 붙어섰다.

《주몽형, 이거 함정에 빠지는것이 아니오이까?》 하고 오이가 말갈사람들을 훑어보면서 근심스러운 태도를 지었다.

마리도 긴장한 눈길로 말갈사람들 하나하나를 살피며 그늘을 지었다.

《주몽형, 무슨 방비가 있어야 하겠소이다. 저기 창잡이들 뒤에 선자들은 시위에 화살들을 메우고있소이다.》

《너무 흥분하지 말게.》

주몽은 여전한 자세그대로 허리를 쭉 편채 말을 몰았다.

읍락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러 주몽은 말을 멈추었다. 말갈읍락은 희읍스름한 운무에 쌓여있었다. 읍락주변으로 말뚝울타리를 둘러치였다. 그우로 까마귀떼가 어지럽게 날아예는것을 바라보던 협부가 주몽에게 다가왔다.

《주몽형, 필경 말갈사람들이 무슨 계책을 꾸미고있소이다. 그것이 뭔지 모르는것만큼 일단 이번 담판은 뒤로 미루는것이 어떻겠소이까?》

《늦었네.》

《제때에 진법을 바꾸는것도…》

《협부, 바로 지금은 그 <제때>가 아니야. 이번에 물러서면 뒤일은 담보할수 없어.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것도 아니고… 어쨌든 우리는 말갈사람들에게 첫수를 제압당했어.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네. 전의겁약(戰意怯弱)이 병서 14변(變)중의 하나라는걸 명심하게.》 하고 아우들의 낯빛을 살피던 주몽은 빙그레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참 오이, 그 쇠부리터주인이 명도전을 받아들고 뭐라고 했다구?》

오이는 고리눈을 끔벅거리며 주몽을 건너보다가 마리와 협부를 둘러본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였다.

《거 왜, 독에 넣었던 돈이 어쩌고 하던거 있지 않나?》

그제서야 오이는 영문을 알아차린듯 둥근 얼굴에 웃음을 띠였다.

《아, 그 사람이 누구도 몰래 파묻어놨던 명도전 넣은 독을 우리가 파내지 않았는가고 하면서 뒤간옆으로 달려가는게 아니겠소이까?》

《그러니 돈넣은 독을 뒤간에 파묻었다는건가?》

《그렇소이다. 거기 파묻어놓으면 누구도 모른다는거지요.》

《하, 하, 하-》

주몽을 따라 마리, 협부는 물론 오이와 재사도 크게 웃었다.

말갈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말갈읍락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더니 기발을 날리며 한떼의 인마가 나왔다. 일구와 그의 부하들이였다.

《오시느라 수고했소.》 하고 일구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재사를 따라 주몽과 마리, 오이, 협부는 말갈읍락으로 들어갔다.

주몽이 탄 말이 통나무를 깎아세운 담을 지났을 때였다. 말을 탄 녀인이 길섶에 늘어선 사람들틈에서 튀여나왔다. 검은 가죽으로 지은 옷을 팽팽하게 입은 녀인이였다. 안면이 있는 치미였다. 그 녀인은 주몽을 보며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사냥군, 또 나타났군요. 알고보니 구려사람이군요. 무얼 사냥하러 왔지요?》

《아, 이거 추장의 손녀를 다시 보게 됐군. 녀호걸도 계루부사절을 맞이하러 나왔소?》

치미는 이마에 가는 주름살을 지었다.

《제법 천연하시군요? 하지만, 당신은 보기와는 달리 서툴게 일을 꾸며요.》

《그럴수도 있지. 모사재인이요 성사재천이라고 하지 않소? 사람이 하는 일이 어찌 서툴지 않겠소.》

《시침은 그만 떼지요.》

《무슨 소리요?》

《당신의 사람 하나를 내가 살려놨으니 기회를 봐서 찾아가요.》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사람이라니?》

치미는 흥 하는 코웃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주몽은 치미가 하는 말을 알수 없었다. 서툴게 꾸민다? 우리 사람을 살렸다? 도대체 치미가 한 말은 뭘가?

주몽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 없었다. 어느덧 구도의 영채로 들어섰다.

재사일행을 맞이한 구도의 태도에는 살기가 뚝뚝 흘렀다. 그의 눈에는 피발이 서있었다. 공식례절도 마지 못해 차리고나서 구도는 큰소리로 물었다.

《그래, 당신들이 온 목적은 뭐요? 죽은자의 머리를 찾으러 왔소, 아니면 산자의 머리를 바치러 왔소?》

《우린 산 사람을 찾으러 왔소.》

재사가 구도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대꾸하였다.

《산 사람? 흥!》

구도는 비웃음을 흘렸다.

《보아하니 그대들은 모두 룡양호박할 사내들 같은데… 어째서 암수(暗手)를 쓰는거요?》

《대인, 그게 무슨 말씀이요?》

《몰라서 묻소?》

《대인, 피차 수수께끼같은 말은 피하는것이 어떻소?》

《좋소! 그렇다고 빠져나갈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게 좋을거요. 난 어쨌든 당신들을 곱게 놔주지 않을테니까. 우리 말갈사람들은 당신들처럼 뒤다리 무는 암수를 쓸줄 모르오. 하지만 그런 암수를 쓰는자들을 용서할줄도 모르오.》

《대인, 우리가 암수를 썼다는거요?》

《그렇소. 바로 어제 밤! 당신네 계루부사람들이 내 부하인 일구의 영채를 기습했단 말이요. 자객의 무리들이… 알겠소? 그러고도 날밝기가 바쁘게 또 버젓이 달려들어? 그 뻔뻔스러운데는 참말 두손 들었소.》

《여보시오 대인, 지금이 낮이요, 밤이요? 꿈을 꾸는게 아니요?》

《뭐라구? 날 놀리는거야?》

구도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일구와 분구도 튕겨 일어나며 칼집에 손들을 가져다댔다.

재사는 코웃음치며 주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몽은 약간 치떠보는듯 한 시선으로 상대방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고있었다.

구도가 거칠게 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빼앗긴것이 있으면 싸워서 찾아라. 이게 사내다운 행동이야.》

주몽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과시 말갈사람다운 말이요.》

구도의 측근들과 재사도 주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인, 병불염사라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군사를 쓰는데서는 적을 속이는 수법을 마다하지 않지요.》

구도의 시선이 주몽의 아래우를 부지런히 훑었다. 그러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 자객들을 보내서 우리 말갈을 기습한게 잘했다는거요?》

《필요하다면 그런 수도 군사에서는 쓴다는거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수를 쓰지 않았소. 우리는 당신들이 랍치해온 계루부의 귀인을 찾으러 왔소.》

《우린 그런 사람을 모르오.》

《대인, 우리는 대인이 만용지장(蠻勇之將)이 아닌줄 알고있소. 싸움은 피차에 불리하오. 현명한 대인이 그걸 모르겠소?》

주몽의 말에 대인 구도의 낯빛이 점차 풀어졌다. 그는 앉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 그대는 상대할만 하구만.》

《대인, 어서 소서노를 내놓소.》

《소서노?》

《그렇소. 우리는 당신의 부하인 일구가 소서노를 랍치해왔다는걸 알고 왔소. 물론 이것은 대인의 뜻이 아닐거요. 하지만 녹쓴 칼은 장수의 수치요. 당신 부하들의 잘못이 곧 당신의 명성을 떨어뜨리고있소.》

구도는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기의 오른쪽볼을 긁었다.

《당신들 아주 자세히 알고있구만. 그렇소. 소서노는 우리한테 있소. 그걸 누가 알려줬소?》

《옳지 못한 일에 비밀이 없소.》

《흠, 하지만 자객을 보낸걸 사죄하기 전에는 내놓을수 없소.》

《자객? 거듭 말하지만 우린 그런 자객을 모르오.》 하고 말하던 주몽의 머리속에 피뜩 치미의 이상한 말투가 생각났다. 이쯤되니 무슨 일인지 알겠다.

누군가가 말갈과 계루부사이에 쐐기를 박은게 분명하다.

《꼬리를 사린다고 될 일이 아닐텐데…》 하고 주몽의 태도를 찌를듯이 살피던 구도가 빈정댔다.

《자객을 우리가 보냈다는 증거가 있소?》

《죽은자들이 증거가 될수 없겠지. 하지만 그 자객을 본 사람들은 증인이 되지 않겠소?》

《대인, 룡은 룡답게, 범은 범답게 노는거요.》

《그렇소.》

《정 그렇다면 자객을 우리와 만나게 해주시오.》

《모조리 죽였소. 그게 우리 법도니까. 그래, 사죄를 하겠소?》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거요.》

《없소.》

이때였다. 창을 쥔 두 말갈군사가 지켜선 문으로 치미가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구도는 방금 들어서는 치미를 보며 놀라 소리쳤다.

《치미, 여기가 어디라고… 썩 나가.》

치미는 구도쪽을 보며 그 자리에 섰다.

《대인, 어제 밤 자객들중에 한사람이 살아있어요.》

《뭐?》

《제가 살려놨지요.》

《네가? 어째서?》

《그거야 살려두고싶으니까 그런거지요. 난 내 맘대로 하길 좋아해요.》 구도는 치미를 잠시 노려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자를 끌어와.》

구도의 호령에 치미는 눈을 내리깔며 생각에 잠겼다가 돌아섰다. 치미는 곧 한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머리에 헝겊을 맨 사람이였는데 그 헝겊에는 피자욱이 보였다.

끌려온 사람은 바닥에 꿇어앉았다.

《머리를 들어.》

구도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네가 천행으로 살아났으니 이실직고해. 그렇지 않을 땐 두번 다시 못산다. 누가 너를 보냈느냐? 여기 계루부지?》

끌려온 사람은 재사와 주몽의 얼굴을 살피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구도는 발을 굴렀다.

《바로 말해. 넌 어디 사람이야?》

《환나부사람이요.》

《가련한 놈…》

주몽은 구도와 환나부사람을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대인, 이쯤했으면 계루부가 자객을 보내지 않았다는게 명백한것 같은데… 어서 소서노를 내놓소.》

이윽하여 구도는 고개를 들었다. 주몽은 웃고있었다. 구도는 쓴입을 다시였다. 이제 더는 할말이 없다.

《일구, 소서노를 데려오라구.》

《대인, 그건…》

구도는 일구의 얼굴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일구는 뒤로 물러섰다. 저녁노을이 서켠을 물들일무렵에 소서노를 구원한 주몽의 일행은 말갈읍락을 떠났다.

말갈대인은 사라지는 주몽의 뒤를 묵묵히 쏘아보았다.

주몽의 뒤를 지켜보는 사람은 말갈사람뿐이 아니였다. 수척해진 소서노도 주몽의 뒤모습을 지켜보느라고 주위의 세계를 감감히 잊어버렸다. 재사의 기쁜 얼굴도 소서노에게는 안겨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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