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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8

 

《거기에도 안 갔더란 말이냐?》

《그렇소이다. 대가어른! 오히려 시집쪽에서는 불원간 한번 다녀가라고 사람을 보내자던 참이였다 하오이다.》

연타발은 이마살을 찌프리였다. 참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소서노가 없어진지 며칠째냐?》

《대가어른께서 비추장군과 연노부에 다녀오신지 사흘이 되였으니 벌써…》

연타발은 눈을 감으며 장탄식하였다.

집안에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화불단행이라던가? 아들 재사가 수상쩍게 집을 비우더니 이제는 소서노까지 행방불명이다. 집안일이 어째 이리 꼬이는건가? 어째서, 후- 대체 언제부터?…

재사, 재사가 집을 비울 때부터 벌써 이 집안에 땅거미가 스며들기 시작했지. 나는 벌써 알고있었다. 아무리 소서노가 재사의 일을 좋은 말로 했어도 바로 그때부터 어스름이 시작됐지. 재사가 나가기 바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서노까지 행불되지 않았는가. 그사이 찾아볼만 한데는 다 찾아보았으나 종적을 알수 없다. 이상한 일이였다. 늘쌍 소서노와 붙어있던 부분노 안해의 말을 들어보건대 어떤 낯모를 사람이 와서 재사가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소서노가 다녀온다고 나가서 이후 종무소식이라는것이다. 그 낯모를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시집에까지 알아보았으니 갈만한 곳은 다 찾아본셈이다. 이제는 속수무책이다. 하늘이 도와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소서노는 죽은 몸이다. 이런 생각이 갈마들자 연타발은 갑자기 서글퍼졌다. 출가외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연타발은 언제까지나 딸들을 놓았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둘째 딸 소서노는 더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차별이 없다고들 하나 연타발에게는 류달리 소서노에게 정이 가군 했다. 그런 소서노이기에 시집갔다가 일점혈육도 남기지 못한채 돌아왔건만 연타발은 한편으로는 딸의 불행을 가슴아파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차라리 잘됐다고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었다.

바로 그것이 큰 화근이였다. 아무리 제 딸의 불행일망정 그리고 그 딸이 시집살이도중에 귀가한 불행이 연타발자신이 빚어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불행은 불행이였다. 그 불행을 애비는 다행으로 생각지 않았던가? 오, 남의 불행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불행이라는걸 몰랐단 말인가? 제 딸이라고 해서 외면한 오히려 자기의 좁은 속심을 흡족케 할 불행이라고 여긴데로부터 천벌이 내려진거다. 하늘은 못 속인다더니…

재사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림종에 들기 전에 안해는 분명 재사의 일을 두고 남편을 속여온 자기를 속죄했다. 그전에도 가끔 안해의 수상쩍은 행동을 두고 재사가 자기의 친혈붙이인가 아닌가 하고 긴가민가 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리머리저었다. 그럴수 없다. 재사는 나의 친아들이다. 연타발은 다름아닌 자기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걸 도저히 인정할수가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와 재사사이에도 지나칠수 없는 심연이 못박혀있다. 연타발 자기는 어쩐지 몰라도 재사에게는 엄청난 일이라는걸 왜 숙고하지 못했던가!

벌이다! 하늘이 내리는 벌!

평소에는 하찮게 보였던 일들이 정작 마음 썩이는 마당에 이르자 불뚝불뚝 퉁겨져나오는게 여간 숭하지 않다.

아,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될것이냐?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운명이여! 연타발은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면서 더욱 괴로왔다.

《시집에도 안 갔다면 어디로 갔단 말이냐?》

《글쎄오이다.》

《시라소니같은것들!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알아야 할게 아니냐, 이게 무슨 꼴이냐? 연타발대가의 딸이 다른 곳도 아닌 제 집에서 행방불명이 된지 사흘씩이나 지나도록 찾지 못하다나니… 세상에 무슨 낯을 들고 다닌단 말이냐?》

연타발이 여느때없이 상말까지 써가며 욱박지르는 바람에 집사는 더욱 몸을 옹송그릴뿐이였다.

연타발은 그에게 잘못이 없다는것을 뻔히 알았다. 사실 그로서는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 벌써 몇끼나 굶어지내는 집사다.

《음, 다시한번 찾아봐라. 계루부지경안을 바늘찾듯이 뒤져봐라. 찾지 못하면 그때는…》

집사는 울상을 하여 돌아섰다. 그뒤에 대고 연타발이 소리쳤다.

《그리고 비추장군을 내게 보내라!》

집사가 물러간 뒤 연타발은 평상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잦아드는듯 했다. 전혀 기력이 없다. 늙은탓일가? 아니, 요 며칠새 과민하고 과로해서겠지.

연타발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몇해전 안해를 잃은 다음부터 그는 이전과는 썩 달라졌다. 거기다 재사와 소서노까지 없어지자 이건 마치 저승에 한발 들여놓은 기분이다. 집이 온통 쓸쓸해졌다.

언제 이 집이 떠들썩 흥성거리던것 같지 않다. 집이 이렇듯 모래우에 물새버리듯 사람이 빠져나가니 올데갈데 없는 저승같았다. 연타발은 흐린 눈으로 천정구석에서 줄을 늘이며 내려오다가 데룽데룽 매달린 거미를 바라보고있었다. 보이지 않는 줄에 꺼꾸로 매달린 거미는 더 내려올듯말듯 하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다됐군. 집의 노비들도 이제는 방 치울 생각마저 게을리하는 모양이다. 소서노가 있을 때는, 아니 재사가 있을 때도 그렇지 않았다. 재사야, 소서노야, 지금 어디 있느냐? 까닭없이 눈물이 솟아올랐다. 연타발은 문쪽에 비추장군이 나타나는 바람에 서둘러 비단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대가, 불렀소이까?》

《어 비추장군, 여기 가까이 오우.》

비추는 큰 몸집을 곰처럼 움직이며 연타발의 낯을 힐끔 엿보았다.

《대가, 너무 상심마시오이다. 불원간 소식이 있을것이오다.》

《음, 그럴테지, 그건 그렇고 장군! 요전번 말한 일은 어찌 됐소?》 하고 연타발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연노부에 군사를 보내는것 말이오이까?》

《그래.》

《그 일은 소장이 알아서 처리하겠소이다.》

《이것 보게 장군, 다만 오천군사라도 보내야 하지 않겠나?》

《오천이면 우리 계루부군사의 절반이 아니오이까?》

《장군, 그러지 마오. 오천이라야 절반의 절반이야.》

비추는 입을 다셨다. 그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연타발은 비추의 낯색을 살피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장군은 못마땅한것 같은데…》

《대가, 소장의 심정을 너그럽게 살펴주시오이다. 소장이 비록 어리석은 소견에라도 연노부에 군사를 파견하지 않으려 함은 단지 소장을 위해서나 혹은 다른 계략이 있어서가 아니오이다.》

《장군, 나는 장군을 믿소. 장군이 일만이 넘는 정예군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고있소. 하지만 백날 양병함은 하루를 써먹으려는게 아니겠소?》

《대가, 소장이 그걸 몰라서가 아니오이다. 단지 하루를 써도 쓸데 써야 하오이다.》

《고집이 이만저만 아니군…》

《고집이 아니오이다. 이것은 대가어른과 계루부를 위해서오이다. 소장이 이때껏 양병한것이 계루부 아닌 다른 부에나 파견하자고 한것은 결코 아니오이다.》

연타발은 수염을 내리쓸었다. 비추장군을 탓할수는 없다. 그는 우직한것만큼 또한 충직한 장수이다. 연타발에 의해 발탁이 되여 나중에는 장수로까지 자라난 비추는 오직 상전인 연타발만을 알고있는 사람이였다. 오늘에 이르러 구려 그 어느 부를 보아도 계루부만 한 정예군을 가진데는 없다. 원래 구려는 자기의 중앙군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또한 각 부의 군사들을 두어 일단 유사시에는 지방군인, 각 부의 군사들을 대가 또는 대가의 심복이 거느리고 중앙군에 편입되게 되여있었다. 중앙군이라는게 사실상 연노부의 군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평시에 연노부대가이며 국왕인 임금의 시위군이 되거나 의장병으로 있는것이였다. 계루부의 군사는 중앙군보다 지금에 와서는 더 강하였다. 비록 일만이 넘는 정예군이라 하나 십만 못지 않는 군대이다. 연타발은 비추장군이 무엇때문에 양병에 전력하는지 알고있다. 비추는 연타발을 자기의 부친이상으로 받드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건 연타발이 구려의 왕이 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런 때가 오면 무적강군을 가지고 연타발을 받드는것이 자기의 소임이라고 자랑하군 한다. 물론 그때마다 연타발은 비추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지만 자기의 주장을 쉽게 버리는 비추가 아니였다. 아무리 연타발이 보다 큰뜻을 가지고 군사를 키워야 한다고 일깨워주지만 비추는 그 말을 연타발의 겸손으로 잘못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충직한 비추장군을 처벌할수도 없는 처지이다.

연타발의 낯빛이 어두워지는것을 감촉한 비추는 자기의 고집이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침울해지는듯 하였다.

《대가, 가까운 적을 먼저 치고 멀리 있는 적을 치는것은 병법에서 가르치는것이오이다. 지금 계루부의 형세를 보면 연노부와 말갈사이에 의각지세에 처해있다고 볼수 있소이다. 안에서는 연노부가, 밖에서는 말갈이 실상 우리 계루부를 노리고있소이다!》

《그게 무슨 소리요, 비추장군 말갈사람들이 우리를 노릴수는 있지만 연노부는?》

《대가, 통촉하시오이다. 연노부의 도리대감은 경계해야 될 사람인줄 아뢰오이다. 소장은 그것을 확신하고있소이다.》

《근거가 있소?》

《근거는 없소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일것이오이다.》

《장군, 지나친 억측이 아닐가? 도리야 연노부의 실권자나 마찬가지인데…》

비추는 안타까운듯 한숨을 지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 형세를 보면 구려의 연노부쪽은 말갈대인 구도의 침범으로 소란스러운 반면, 우리 계루부쪽은 조용하오이다. 그래서 연노부 도리대감은 구려군의 명색으로 우리 계루부군사를 출병시킬걸 요구하고있소이다. 그러나 소장이 감지하건대 실상 위험한것은 우리 계루부오이다. 지금 조용한것은 오히려 좋은것이 못되오이다. 군사에서는 동성서격이 있소이다. 병법에서 경계하는것이 의병을 삼는것인데 바로 말갈은 연노부쪽에 구려의 시선을 끌어놓고 우리 계루부를 치자는것이오이다. 생각해보시오이다. 재사가 없는데 소서노까지 행방불명된것이 우연한것이겠소이까? 또 계루부지경과 접한 말갈대인 구도의 심복인 일구는 지금 가만히 엎드려서 우리를 노리고있소이다. 이것이 계책이라면 과연 계루부의 정예군을 헤쳐놓자는것이 아니겠소이까?》

《장군, 하지만 아무리 형세가 그렇다 하더라도 방어는 곧 공격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계루부 하나만 지탱하려고 해서는 안돼. 이런 때일수록 우리 구려가 힘을 합쳐 적을 물리쳐야 하지 않겠소?》

《대가, 정 그러하시오면 재사나 소서노가 돌아온 다음에나 군사를 움직여야 하오이다.》

연타발은 깊은 한숨을 지었다.

《장군, 계루부와 나에 대한 충정은 실로 감사하오. 하지만 나는 계루부의 대가로서 연노부에 출병할 군사를 점고할것을 위임하오. 장군, 설사 우리 계루부가 그것때문에 위험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꼭 그렇게 해야 하오. 지금은 연노부니, 계루부니 하면서 옹성이나 쌓고있을 때가 아니요. 연노부는 곧 구려의 황부인것만큼 계루부가 연노부의 위험을 강건너 불보듯 할수만 없소. 우리는 연노부를 한개 부로만 생각할것이 아니라 구려국이라고 생각해야 하오. 이걸 명심하오. 이것은 나와 연노부대가와의 친분관계로 하는 소리가 아니요. 나도 물론 장군이 쌓은 공력을 허물고싶은 생각이 없지만 우리는 대의명분, 즉 나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오.》

《알겠소이다. 대가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비추장군은 뜻밖에도 선선히 승복하였다.

밤.

손톱달은 초저녁에 사라지고 별빛만이 흐르는 밤.

우중충한 숲속에서 갑자기 놀란 새가 퍼드득-소리를 내며 날아났다.

어디선가 여우가 우는 소리에 이어 객-객-객거리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검은 어둠을 떠싣고 말을 탄 한무리가 움직였다.

앞선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몽형! 이제는 거의 왔소이다.》

《그래? 밤도와 오길 잘했지 우리가 아직 불함산자락의 초막에 머물렀더라면 재사의 마음이 어떠했겠나?》

《하, 거야 뭐…》

이때였다.

좌우에서 검은구름처럼 군사들이 불쑥불쑥 솟았다. 별빛에 칼이며 창이 번쩍거리고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가 쩔렁거렸다.

《복병이다!》

마리가 짧게 소리치며 검을 빼들었다.

어둠속에 나타난 군사들 뒤로 또 다른 군사들이 일어섰다.

주몽의 주위에 오이, 마리가 붙어섰다.

《재사, 어찌된 일이요?》

협부가 소리쳤다.

재사는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하, 하.》

큰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웃음이 터진 곳에 홰불이 솟고 철갑을 떨쳐입은 장수가 나섰다.

《우리 계루부에 사람이 없는줄 알았더냐? 야반기습이라…》

비추였다.

오이가 성급하게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나가려 하였다.

재사가 오이앞을 막아섰다. 《오이형! 좀 참소!》

《뭐라구?》

오이의 눈이 별빛에 번뜩이였다. 오이의 얼굴을 잠간 살피고난 재사가 돌아섰다.

《비추장군.》

재사가 소리쳤다.

비추가 흠칫 놀랐다.

《누구냐?》

《나, 재사요.》

《뭐, 재사?》

《그렇소.》

《아, 정녕 재사로구만. 물러들 서라!》

비추는 홰불을 밝히며 재사쪽으로 다가섰다.

비추는 말에서 뛰여내렸다.

《재사!》

재사도 말에서 내렸다.

두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재사,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난 자네가 영영 떠난줄 알았지? 아버지가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알아?》

《면목이 없소이다.》

《됐소! 재사가 나타났으니 우리 계루부가 살았구나!》

비추는 마치 잃었던 아우를 다시 찾은듯이 기뻐하였다. 재사도 비추장군이 이렇듯 기뻐하는것을 보자 목이 메였다.

이윽고 재사가 물었다.

《비추장군, 그런데 어찌된 일이오이까?》

《말 말게. 자네가 집을 떠난 다음부터 우리 계루부는 안팎 곱사등이가 됐네. 소서노까지 행방불명되지 않나…》

《뭐라구요? 그게 무슨 소리요?》

《그렇게 됐네. 자네에게 면목이 없네. 그 이야긴 차차 하기로 하세. 요즈음 말갈사람들이 심상치 않게 놀아서 정말 맘을 못 놓고있었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눈을 밝히고있던중이야. 그래 같이 온 사람들은 누군가?》

《내 생명을 구원해준분들이요. 집을 떠난 후 불함산기슭에서 이리떼를 만나게 되지 않았겠소. 거의 죽게 된걸 이분들이 구원해주었소.》

《그래? 아, 고마운분들이로군. 재사를 구원해주었다니 내가 인사를 차려야겠군.》 하며 비추는 주몽에게 다가갔다. 주몽도 말에서 내렸다.

《초면에 실례했소.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나는 비추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소이다. 주몽이라고 하오.》

오이와 마리, 협부와도 일일이 통성한 비추는 주몽의 일행을 안내하였다.

말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가면서 재사가 다시 물었다.

《소서노누이가 어떻게 행방불명되였소이까?》

《사흘전에, 내가 연타발대가를 모시고 연노부 제가모임에 간 사이에 그런 변이 일어났네. 그동안 아무리 찾아봐도 알수 없네. 분명 도리의 작간 같은데…》

《도리대감이? 무슨 기미가 있소이까?》

《아니, 육감이네.》

비추는 무슨 말인가 더하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긴 담장을 지나자 대문이 나섰다.

대문을 넘어서니 어느새 소식을 받은 연타발이 나와있었다.

《아버님!》

재사가 연타발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꺾으며 머리를 숙였다.

《그사이 얼마나 심려하시였소이까? 불초한 자식 걱정을 끼쳐 죄송하오이다.》

연타발은 말없이 재사를 내려다보고있었다. 홰불에 비친 연타발의 긴 턱수염이 가늘게 떨리였다.

잠시 주위는 얼어붙은듯 하였다.

연타발은 지그시 눈을 감고있었다.

《돌아왔구나!》

긴 침묵끝에 연타발이 하는 말이였다.

《아버님!》

《돌아왔어, 응? 재사야, 나는 네가 꼭 잘못된줄 알았다.》

《이리떼에게 몰려 다 죽게 된것을 여기 주몽형이 구원해주었소이다.》

재사가 뒤에 선 주몽을 소개하였다.

《그래?》

연타발이 재사의 어깨를 놓고 주몽에게 다가섰다.

《고맙소.》

《처음 뵙소이다. 주몽이라 하오이다.》

《이렇게들 와주어서 대단히 반갑소.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대가님에게 페를 끼치게 되지나 않겠소이까?》

《무슨 소리! 우리 재사를 구원해준 은인인데… 이 늙은게 재사를 다시 만나게 해준데 대하여 오히려 사의를 표시해야겠는걸.》

주몽의 일행은 연타발의 방안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은 다음 연타발이 다시 물었다.

《그대가 주몽이라 했지?》

《그렇소이다.》

《음, 구려 어느 부 사람인가?》

《저는 부여사람이오이다.》

《부여사람?》

《그렇소이다.》

《먼곳에서 왔구려…》

《신상에 두루 일이 생겨서 여기까지 오게 되였소이다.》

《그래? 하긴 부여나 구려나 다 옛날 단군선인의 땅이였으니 못 올데도 아니지. 사나이들에게야 두 나라 지경이 문턱이나 같으니까… 나도 젊었을적에는 천하가 좁다하고 돌아다녔지, 말타고 칼빼들고, 허허…

하여튼 재사와 함께 와주어서 고맙소. 이렇게 끌끌한 장부들이 왔으니 오늘은 참 기쁜 날이요.》

연타발은 집사람들에게 술을 내라고 분부하였다. 시중군들이 매 사람앞에 술잔들을 놓고 술을 따랐다.

연타발이 먼저 잔을 들었다.

《자! 술을 드시오. 그간 재사가 없어서 집안이 텅 빈것 같았는데 이렇게 재사가 돌아오고, 그의 벗들이 왔으니 온통 끓는구만. 난 이런것이 좋아. 서로 어울려서 흉금을 터놓고 살아가는게 얼마나 좋은가.》

연타발은 늙은이답지 않게 큰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마셨다. 술이 여러 순배 돌아 연타발의 기분은 한껏 떴다.

그런 연타발을 보며 비추는 사뭇 기쁜지 자기도 술을 따라 마셨다. 술이 돌아 거나하게 되자 비추가 연타발에게 물었다.

《대가! 제가 아까는 대가의 분부를 선뜻 받았는데 그때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시오이까?》

《글쎄?》

《치중병들이나 보내려고 하였소이다.》

《뭐라구? 치중병? 하, 하. 치중병들을 보내려고 했다구? 참 비추장군다운 생각이야, 엉? 하, 하》 하며 연타발은 비추에게 손가락을 흔들었다.

한참 껄껄 웃고난 연타발은 주기가 돌아 불그스름해진 얼굴을 주몽에게 돌렸다.

《주몽이라고 했지? 내가 그대를 보니 과연 룡양호시의 자태요. 룡양호시(龍品虎視)! 알겠소? 룡처럼 날뛰고 범같은 눈초리로 일세(一世)를 응시하는 태도라 그 말이요. 응?》

《과찬의 말씀이오이다.》

그러자 연타발은 팔을 휘휘 저었다.

《아니, 아니. 난 멋부리는 법 모르지, 몰라. 그래 호걸! 우리 계루부에, 어? 구려에 띠를 풀지 않으려오?》

주몽은 빙긋이 웃었다.

《고맙소이다.》

《하, 우리 계루부가, 아니, 구려가 영웅이 날만 한 곳이요. 그렇지 않소?》

연타발의 물음에 비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몽일행을 바라보았다.

주연은 밤깊도록 계속되였다.

다음날.

주몽은 묵거와 오이, 무골을 쇠부리터로 떠나보냈다. 그들은 재사가 마련한 명도전을 수레에 잔뜩 싣고 갔다. 계루부에서 제일 이름난 쇠부리터를 넘겨받고 무골이 주인노릇하게 하자는것이였다.

그들을 바래우고난 주몽은 다시 재사, 비추, 마리와 모여앉아 계루부일을 의논하였다.

비추를 통해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은 주몽은 소서노를 구원하여야 한다고 했다. 소서노가 단지 재사의 누이요 연타발대가의 딸이래서가 아니라 그 사건이 계루부, 나아가서는 구려와 말갈사이에 엉킨 매듭이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서노의 행방불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서노는 스스로 없어진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외부세력이 끼여들었다. 왜냐하면 소서노는 계루부대가의 딸인것으로 하여 이 지경안에서 그를 함부로 건드릴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외부세력이라면 누구인가? 말갈?

연노부?

연노부는 감히 그런 생각을 못할것이다. 그렇다면 말갈사람들일것이다. 그러되 말갈사람들이 이 계루부 또는 구려에 있는 어떤 사람의 추동아래 벌렸을것이다.

주몽의 주장은 비추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자기가 도리를 의심한것이 까닭이 없지 않다는데 적지 않게 긍지를 느끼는 모양이였다.

《당신의 판단이 옳다고 보오. 나는 도리를 의심하고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말갈사람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소. 당장 말갈을 들이쳐야겠소. 우리 계루부와 접한 곳이 말갈의 일구읍락이니 한번 본때를 보일테요, 어떻소?》

《말갈을 치는 문제는 내탐을 해보아야 하오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하지 않소이까. 적을 알고 자기를 알아야 백번 싸워 이길수 있소이다. 계루부와 말갈이 오래동안 어울려 살았기때문에 말갈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하지만 일단 거사를 하려고 할 때에는 다시한번 허실을 따져야 하오이다. 이것이 바로 지피지기의 하나이오이다!》

《아, 옳은 말이요, 병법에도 그렇게 되여있소.》

《내탐하는것은 우리가 맡겠소.》

《당신이?》

《그렇소. 이런 일에는 상대가 모르는 사람을 써야 하는거요. 우리가 계루부에 온것은 몇사람밖에 모르는것만큼 말갈을 내탐하는데는 우리가 적격일게요. 그러니 비추장군은 우리의 정체에 대해서 계루부 여러 대신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해주시오.》

재사가 이야기를 듣다가 끼여들었다.

《주몽형, 위험하지 않겠소이까? 말갈사람들이란 워낙 무례해놔서…》

《재사, 일없어. 이 기회에 말갈사람들에 대해서 아는것도 나쁘지 않아.》

비추장군은 주몽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그럼, 연노부에 계루부군사를 파견하는 문제는 어쩌면 좋겠소?》

《내 생각에는 소서노사건이 매듭지어진 다음 결심하면 좋겠는데 비추장군의 의향은 어떤지?…》

《허, 나도 연타발대가에게 그렇게 말했소. 당신은 나와 여러모로 통하는데가 있소.》

비추장군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때 다과를 가지고 들어오던 녀인이 문쪽에서 주몽을 유심히 살피고있었다. 그러던 녀인은 갑자기 무엇에 놀란듯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웠다. 녀인의 이상한 태도를 제일먼저 감촉한 재사가 녀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오이까?》

《저, 저기 앉아있는분은?…》

녀인이 가리키는쪽을 바라보던 재사는 빙그레 웃었다.

《아주머니, 저 사람은 나를 구원해준 은인이오이다. 주몽이라고…》

녀인은 《그래요?》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였다.

《어디선가 보았사온데…》

《뭐라구요? 어디서 보았소이까? 저분은 부여에서 왔다던데…아, 참 아주머니도 부여에서 왔지요?》

재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는데 녀인은 《잠간!》 하고 어디론가 나갔다. 이윽하여 녀인은 늙은 녀인과 함께 들어왔다.

늙은이는 주몽의 앞으로 다가가며 유심히 그를 살폈다.

비추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주몽은 늙은이가 다가오자 고개를 들었다.

늙은이는 마침내 멈추어섰다.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나를 모르시겠소?》 하고 늙은이가 주몽에게 물었다.

주몽은 어리둥절해있었다.

《젊은 사람이 이 늙은이를 몰라본단 말이요? 언제인가 새벽에 우리 모녀를 구원해준것이 생각나지 않소이까? 그때 우리 모녀에게 행패를 부리던 부자한테서…》

주몽의 눈이 번쩍이였다.

《아니, 그럼 남쪽의 친척을 찾아가신다던 그 늙은이오이까?》

《이제야 알아보시오? 이제야…》

늙은이의 주름잡힌 볼로 맑은 이슬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니 그때 찾아오신다던 집이 바로 여기였소이까?》

《그렇소이다. 그때 우리를 구원해주어서 이렇게 늘그막에 락을 보게 되였소이다.》

늙은이는 뒤에 섰던 며느리를 내세웠다.

영문을 모르는 재사는 곁에 선 협부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음, 우리가 부여에서 탈출할 때 주몽형이 구원해준분일세! 그런데 여기 와서 만났군. 참, 그러고보니 저 늙은이가 재사형하고도 친척이겠구려?》

재사는 기묘한 인연에 씩-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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