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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7

 

행인국 군사들을 떼버리고 사품치며 흐르는 내물이 숲속을 꿰지르는 곳에 이르러 일행은 걸음을 멈추었다. 말에서 내린 사람들은 내물에 뛰여들어 얼굴을 씻었다.

맨 먼저 대충 얼굴을 닦고 기슭으로 나와있던 부분노가 이어 따라서는 주몽에게 물었다.

《아까 부여사람들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요?》

《왜 그러오?》

《나도 부여사람이댔소.》

《아니, 부여사람이란 말이요?》

《그렇소.》

《반갑소.》

주몽은 내물가운데로 고개를 돌렸다.

《오이, 마리, 어서 나오게.》

《왜 그러시오이까?》

《우리를 구원해준 은인이 부여사람이라는구만.》

그러자 오이와 마리는 한창 머리를 감던채로 물가로 나왔다. 그들은 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푸푸 불며 물었다.

《그게 사실이요?》

《그렇소.》

《하, 이거 객지에서는 고향의 까마귀도 정답다는데 정말 반갑소. 나, 오이요.》 하고 오이가 싱글벙글거렸다.

《부분노요.》

《나는 마리라고 하오.》

그들은 서로 가슴팍에 손을 얹고 인사를 나누었다. 통성을 나눈 부분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가만!》 하며 자기의 말 있는데로 갔다. 그는 술부대를 가져왔다. 네사람은 풀판에 자리를 잡았다.

《반가운 손님들을 만났으니 우리 술이나 하기요.》 하고 부분노가 술부대를 툭툭 치며 웃었다. 그는 소뿔잔을 훅- 불어 술을 채우더니 제가 먼저 꿀꺽 마시고 다시 술을 따라 주몽에게 건늬였다. 그들은 사양없이 술을 마셨다. 서너순배 돌아가자 마리가 부분노에게 물었다.

《그런데 로형은 어떻게 되여 여기 개마국에 오게 되였소?》

《당신들은 어떻게 왔소?》

《그거야…》

《하, 하. 나도 마찬가지요. 그걸 다 말하자면 밤이 열둘이라도 모자랄거요.》

부분노는 입술에 맺힌 술방울을 손가락으로 훔쳐내고나서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전쟁판으로 끌려다니다가 포로가 되여 다시 노예로 끌려다니고… 부평초마냥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소.》

《고향이 그립겠소?》 하고 마리가 물었다.

《여부가 있소? 내 고향에는 늙은 어머니와 안해가 기다리고 있소.》

《집 떠난지 얼마나 됐소?》

《까마득하오.》

《그사이 한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했소?》

《갔댔지.》

《언제말이요?》

《한달쯤 됐소. 하지만 집은 텅 비였더군. 이미 어머니와 안해는 어디론가 떠났더구만. 나는 결김에 어머니와 안해를 못살게 굴던 부자녀석을 죽여버리고 다시 여기로 돌아왔소.》

부분노는 빈 소뿔잔을 들여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그는 주몽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

《참, 아까보니 당신의 활쏘는 솜씨랑 말타는 술법이 보통이 아니더구만. 당신들은 언제쯤 부여서 떠났소?》

《이젠 두달 실히 됐소.》

《두달?》

《그렇소.》

《그럼 주몽을 알겠구려?》

《주몽?》

이때껏 부분노를 바라보기만 하던 오이가 놀란듯 고개를 번쩍 들며 주몽과 부분노를 번갈아 보았다.

《그건 왜 묻소?》

《부여 금와임금의 목동노릇하던 주몽이라는 젊은이가 말목장에 불을 놓고 달아났다고 하더군… 그게 아마 두달전쯤 될거야…》

《그걸 어떻게 아오?》

《난 사실 철갑기병군을 무어볼 꿈을 가지고 부여에 갔소. 그건 내가 싸움판에서 생각해온것이요.

그러나 가서 보니 궁중에서는 방금 난리를 겪고나서 그런지 선뜻 만나주지 않더군. 하긴 궁중에서 뭘 알아서 그런데 귀를 기울이겠소? 그래서 며칠 기다리다가 에라, 집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보고나서 차차 보자 하고 고향으로 갔던거요. 가보니 아까 말한 그 꼴이였소. 부자놈을 단매에 쳐죽이고나니 살인자가 되였소. 부여법에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기로 되여있는데 내가 거기서 어물거릴수 있겠소? 더구나 궁중에 간다는거야, 호박쓰고 돼지우리에 들어가는격이 아니겠소? 그래서 꽁무니를 뺐지…》

《로형이 부여궁성에 가보았다면 도망한 주몽의 근신에 대해서 알겠구려…》

《모르오. 다만 그 가족들에 대한 소리는 들었소.》

《가족들?》

《궁성에 가서 들으니 주몽의 안해되는 녀자가, 거 뭐라고 했던가? 이름이 참 곱던데… 례, 뭐라고 했는데…》

《례을나가 아니요?》

《아, 례을나!》

《그 녀자가 어떻게 됐소?》

《태자의 군사들에게 잘못됐다고 하더군.》

《여보, 그게 무슨 말이요. 좀 자세히 말하오.》 하며 오이가 부분노앞으로 칠듯이 다가앉았다.

술기운에 얼굴빛이 불그스름해진 부분노는 심상하게 말하였다.

《궁성에 들어서니 수군수군하더구만. 주몽을 빼돌린것이 그 례을나라는 녀인의 할아버지라든지, 아버지라든지 하여튼 그래서 그 화풀이로 죽였다고 하더군.》

《거짓말 아니요?》

오이가 다긋자 부분노는 반쯤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거짓말이라니? 내가 뭣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하겠소? 태자군사들에게 그 녀자가 잘못되는걸 본 사람들이 있다고 했소. 내가 들었던 객주집주인도 제 눈으로 봤다는거요. 주몽때문에 할아버지도 손녀도 다 죽었다고 했소.》

주몽은 벌떡 일어섰다. 꽉 다문 입술이 떨렸다.

《그 어머니는?》

《듣자니 궁중에 끌려갔다더구만. 금와왕이 비호해서 살아는 있는 모양이요.》

주몽은 부분노의 앞을 지나 내가로 무겁게 걸어갔다. 놀란 부분노가 주몽의 뒤를 바라보다가 오이에게 물었다.

《웬일이요, 갑자기?》

《로형! 저분이 바로 우리 형님인 주몽이요.》

《뭐요?》

오이가 하는 말에 부분노의 숱진 눈섭이 꿈틀 놀랐다.

《아니, 그럼 부여에서 잡지 못해 떠들썩한 그 호걸이란 말이요?》

《그렇소!》

《글쎄, 내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이런 내가 우연히 귀인을 만났구만. 헌데 분별없이 수다를 떨었구려…》

부분노는 주몽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뒤더수기를 잡아뜯었다. 오이와 마리도 잠자코 주몽을 바라보았다. 부분노와 아우들을 남겨두고 저도 모르게 내가로 다가간 주몽은 사품치는 내물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믿어지지 않았다.

을나가 죽다니, 을나가… 그게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인가? 눈을 감은 주몽에게는 명랑한 을나의 모습과 눈물짓는 모습이 엇갈려 떠올랐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활발한 성격이면서도 주몽앞에서는 곧잘 주눅들군 하였다. 시집온 다음에는 더욱 그랬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편모의 슬하에서 자라기는 주몽이나 마찬가지였던 을나! 그런 그가 너무나 일찌기 이슬로 사라질줄 어찌 알았으랴! 부여의 태자들의 박해가 있을것이라는것은 각오하였지만 설마 죽이기까지 할줄은 몰랐다. 주몽은 아무리 태자 대소가 시기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부왕인 금와왕이 있고 또 주몽이 없어지면 그것으로 물러설줄 알았다. 그렇게 믿고있었다. 그런데 가엾은 아녀자를 죽여버렸다고? 그의 할아버지인 례나루스승까지 죽었는데? 아, 죽은 대이왕자에 대한 복수였던가?

가엾은 을나!

이 주몽이 그대를 요절케 했구려!

주몽은 사품치며 흐르는 물소리도, 자기를 안심시키려는 마리의 근심어린 부름소리도 듣지 못한채 고목등걸처럼 우뚝 서있었다.

이윽하여 부분노가 다가왔다. 그는 주몽의 곁에 한참 서있다가 주몽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주몽은 생각에서 깨여나 부분노를 보았다. 부분노도 주몽과 눈길을 마주치였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거 안됐소. 난 그대가 주몽이라는걸 몰랐소. 얼마나 가슴아프겠소? 나도 집에 찾아갔을 때 안해가 부자놈의 성화를 받다못해 어머니와 함께 달아났다는 소릴 듣고 피가 꺼꾸로 서서 못견디겠습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면서도 그랬을라니 잘못된 사람을 놓고 오죽하겠소?》

부분노의 위로에 주몽은 큰숨을 들이그었다. 그리고는 부분노의 손을 잡았다.

《이거 안됐소, 로형. 초면에 추한 모습을 보여서.》

《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오히려…》

부분노의 살짝곰보얼굴이 처음으로 호인의 모습을 띠였다.

《그래 주몽, 앞으로 어찌려우?》

《로형에게 뭘 숨기겠소? 우린 구려에 가려고 하오.》

《구려에? 거기 누구 아는 사람이 있소?》

《없소.》

《주몽이 구려에 가겠다면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오.》

《그게 무슨 소리요?》

《나도 불원간 구려에 가게 될거요. 이 개마국에는 내가 오래 발붙이고있을데가 못되오. 난 전쟁판에서만 굴러먹어놔서 그저 싸우는것밖에 모르오. 난 말도 사람과 같이 갑옷을 입혀 철갑기병군을 무어 한번 본때있게 싸워보고싶은 생각을 가지고있는데 이 개마국에서는 크게 벌릴것 같지 못하오. 하고싶어도 쇠가 없으니 할수 없는거요. 내 욕심을 이루자면 쇠가 많이 나는 곳에 가야 하는거요. 그래서 옛날 안면있는 친구를 통해서 구려국의 어떤 대감을 만났댔소. 그 사람이 나를 써주겠다고 하더군. 써주겠다면 기꺼이 가는거요. 난 하면 하고 안하면 안하는 성미요. 구려는 쇠가 많이 나는 나라니까 철갑기병을 만들려는 내 뜻을 이룰수 있을거요. 그래서 구려의 대감과 이미 약속했소.》

전말사연을 자세히 듣고난 주몽은 부분노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곰보의 사나이가 뜻을 품고있는 장수라는것이 무척 반가왔다.

《로형이 구려에 간다니 그럼 우리는 피차 동행자인셈이요.》

《그렇소. 하지만 약속은 약속인것만큼 구려에서 소식이 올 때까지 난 여기서 기다려보겠소. 당장 주몽과 함께 가고싶긴 하지만…》

《말만 들어도 고맙소.》

《혹시 일이 여의치 않으면 구려의 도리라는 대감을 찾아가보오. 내 소리를 하면 모른다고는 안할거요.》

《고맙긴 하지만 난 남의 신세 지고싶은 생각이 없소.》

《좋은 일이요. 자, 그럼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기오. 군사들을 한발 먼저 보냈으니 난 여기서 작별하여야겠소.》

《우린 다시 만나게 될거요. 부분노!》

《나도 그렇게 믿소.》

부분노와 헤여진 후 주몽의 일행은 곧 협부가 기다리는 자기들의 처소로 돌아오고있었다.

주몽은 을나가 잘못되고 어머니가 궁중에 끌려갔다는 소리에 마음이 심약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불쌍한 을나, 가엾은 어머니.

약해지려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주몽은 오이와 마리에게 그간의 정형에 대해서 들었다. 오이와 마리는 행인국의 형편에 대해서 알아보고 인차 돌아섰다고 했다. 이 나라는 땅도 척박하고 나라지경도 별로 크지 않았지만 부분노의 말대로 어찌나 사나와져있는지 마치 성난 삵과 같았다.

주몽은 낯선 사람들이라면 무작정 잡아들여 함부로 노예로 만들어버리거나 죽여버린다는 행인국의 형편을 두고 자기들이 발붙이기 어렵다는것을 느꼈다. 오이와 마리도 그들의 잔인한 타인증오에 걸려들어 죽을 고비를 넘기였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애초의 결심대로 구려로 가자.

이제 불함산을 두고 뜻을 굳혀 의형제를 맺고는 곧 구려로 떠나야 한다.

의형제를 무을 생각은 이미전부터 해왔으나 구태여 그런 의식을 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여 이때까지 미루어왔다. 하지만 이제 웅지를 살릴 거보를 내디디는 마당에서 심신을 굳게 하고 뜻을 새롭게 벼리기 위해서는 의형제를 무어야 하였다.

문득 주몽은 말고삐를 당겼다.

어딘가 좋지 못한 낌새를 느끼였다. 사방은 송라가 매달린 아름드리 이깔나무로 빽빽하고 이끼를 뒤집어쓴채 땅우에 그대로 넘어진 진대나무들과 연약한 풀들만이 보였다.

그러나 주몽은 분명 무슨 소리를 들었다.

《형, 왜 그러시오이까?》 하고 오이가 다가서며 물었다.

《오이,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나?》

《무슨 소리오이까?》

오이는 마리에게 자네는 들었나 하는듯 한 표정을 지어 바라보고나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 소리도 못 들었소이다.》

마리도 사방을 둘러본다.

《아니야, 분명…》 하고 말하던 주몽이 갑자기 굳어졌다.

《들었나?》

《무얼말이오이까?》

《이리떼의 소리야! 날 따르게! 혹시 협부가 기다리다못해 나오다가 봉변당했을수도 있네.》

주몽은 부루나를 재촉하였다. 오이와 마리는 허리의 칼을 뽑아들며 주몽을 따랐다.

앞으로 나가자 차츰 이리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주몽이 낮은 풀들이 깔린 공지에 나섰을 때였다. 저쪽앞에서 한무리의 이리떼들이 날뛰는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앞에는 세사람이 이리떼의 공격을 물리치느라고 결사전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이미 힘이 진했는지 서로 등을 의지한채 가까이 달려드는 이리만을 쳤다. 죽어넘어진 이리 몇마리가 이미 풀밭에 피를 흘리며 나딩굴고있었다. 이리떼에게 몰리는 사람이 협부가 아니라는데 우선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이였다.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저런 봉변을 당하고있는것일가. 차림새들을 보면 비천한 사람들이다.

주몽이 그들 가까이로 다가가는 사이에 마침내 엇바꾸어 달려드는 이리떼들에게 두사람이 넘어졌다. 그러자 이리떼들은 쓰러진 두사람 우를 넘어뛰며 남은 사람의 등뒤로 달려들었다.

《위험하다!》

주몽은 소리치며 내달았다.

이리떼들이 다시 동요하였다. 첫눈에도 백여마리는 실히 될듯 한데 이리저리 날뛰니 마치 수백마리나 되는듯 하였다.

이리떼는 두패로 갈라지며 주몽쪽으로 달려들었다.

주몽은 말을 달리며 좌우로 칼을 휘둘러 여러 마리를 베여 버렸다. 오이와 마리도 주몽을 바싹 따르며 이리들을 쳤다.

그러나 이리떼들은 집요하였다. 이리떼들은 다 잡은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지 아니면 새로 나타난 주몽의 일행에 새로운 전의(戰意)를 느꼈는지 영악스럽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이발과 쉰소리내는 울부짖음소리가 섬뜩하게 안겨왔다.

주몽은 여러놈을 쳐죽여버렸으나 이러다가는 곧 자기들도 앞서 쓰러진 사람들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는걸 깨달았다. 주몽은 칼을 집어넣고 활을 빼들었다. 그는 이리떼를 훑어보았다. 이런 때는 이리떼의 엄지를 잡아야 한다. 그것은 서불아저씨에게서 배운것이다. 마침내 주몽은 서너마리의 암팡진 이리가운데서 희끄무레한 반점이 이마박에 박힌 한마리의 재빛 이리를 발견하였다. 바로 그놈을 에워싸고 여러 마리가 짖어대고있었던것이다.

주몽은 곧바로 그 엄지에게 말을 몰았다. 엄지를 에워싸고있던 여러 마리의 이리가 주몽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주몽은 곧장 엄지에게 접근하였다. 엄지이리는 위험을 느꼈는지 달아나려고 하였다. 주몽은 활을 겨누어 깍지를 뗐다. 주몽의 화살이 그 엄지를 적중했는가 하는데 어디서 날아든 다른 이리에게 맞았다. 귀바퀴에 화살이 박힌 이리는 그자리에서 나딩굴었다. 다른 여러 마리의 이리가 엄지의 뒤를 에워쌌다. 주몽은 다시 활을 쏘아 또 다른 이리를 맞혔다. 이렇게 되자 일시에 이리떼들은 엄지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어지럽게 날뛰던 이리들이 점차 숲속으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이미 엄지이리는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주몽은 더 쫓지 않고 말을 멈추었다.

이리떼의 울부짖음소리로 찼던 공지가 조용해지자 바람결에 피비린 냄새가 풍겼다.

오이와 마리가 씨근거리며 주몽에게 다가왔다.

《주몽형, 큰일날번 했소이다. 이리떼는 말만 들었지 당해보기는 처음이오이다.》 하고 오이가 아직도 굳어진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참, 이리떼가 행인국군사들보다 더 무서운걸.》

마리도 칼쥔 손등으로 이마를 씻었다.

《후-》 하고 숨을 내쉰 주몽은 말을 돌렸다.

《오이, 마리, 빨리 저 사람들을 살려야겠다.》 하고 주몽은 풀우에 쓰러진 사람들을 가리켰다.

세사람의 옷은 갈가리 찢어졌고 아래도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들은 쓰러진채 운신하지 못했다.

주몽과 오이, 마리는 한사람씩 그들을 말잔등에 싣고 채찍질로 말을 몰았다.

숲속을 빠져나오는데 어지간히 땀을 뽑아야 했다. 주몽이네들이 거처에 가까이 오자 집오래에서 기다리던 협부가 마중나왔다.

《어찌된 일이오이까?》

협부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주몽과 오이, 마리를 훑어보았다.

《빨리 이 사람들을 돌봐줘야겠네.》

《알겠소이다.》

협부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주몽은 말잔등에서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을 안아 집안으로 들였다. 다른 두사람도 방안으로 들였다.

협부는 그들의 옷깃을 풀어놓고 물을 떠다가 얼굴을 닦아준 다음 언제 건사했던지 모를 약초를 짓찧어 이리에게 물린 상처에 붙이고 싸매주었다.

정신을 잃었던 사람들은 한식경이 지나서야 기력을 차렸다.

삼베옷을 입은 사람이 먼저 눈을 떴다. 그는 천정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주몽의 얼굴에 눈길을 멈추었다.

《고맙소이다.》

《다행이요.》

《우리는 구려의 계루부사람들인데 불함산을 찾아오다가 이리떼를 만났소이다. 나는 재사이고 이 사람들은 묵거, 무골이라고 우린 서로 친구들이오이다.》

《그렇소? 나는 주몽이요. 그리고 내 아우들이요.》

그러는 사이에 나머지 두사람도 눈을 떴다. 주몽은 그들의 처참한 모습을 점도록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주몽의 처소에서 열흘동안 안정을 하고야 비로소 기력을 되찾았다.

그사이에 주몽은 새로 만난 사람들의 병구완에 힘쓰면서 이때껏 탐문한 불함산주변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정세를 놓고 숙고하며 벗들과 의견을 나누어보았다.

대체로 의견들은 한방향으로 흘렀다.

주몽은 오이나 마리, 협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덧 그들도 한단계 성장했음을 기쁘게 여겼다.

더우기 구려에 진출할데 대한 협부의 주장은 주몽의 마음에 들었다.

협부는 구려를 틀어쥐게 되면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비류, 행인, 북옥저를 병합할수 있으며 남쪽으로는 개마, 구다국을, 서북쪽으로는 선비, 량맥을 병합하거나 제압하여 장차 단군선인의 성지를 되살리는데서 유리할것이라고 그루를 박았다. 또한 이렇게 되면 주요한 쇠부리터와 해안지대를 장악하게 되여 무기나 소금, 수산물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 나라를 발전시킬수 있다는것이였다.

협부의 주장은 주몽이 생각했던것과 일치하였다. 주몽은 이 기회에 협부의 모사적기질을 다시한번 새기게 되였다.

주몽은 구려로 진출할 취지를 굳히였다. 이제 남은것은 언제 떠나느냐 하는것이였다. 떠날 시각을 정하자고보니 다른 문제도 나섰다. 뜻밖에 구원한 재사네 일행을 어떻게 할것인가, 그들과 헤여져야 하는가, 아니면 함께 가느냐?

열흘사이에 주몽은 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그들이 바라는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게 되였다. 기이한 운명과 불행으로 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곳을 떠나 불함산에 들어왔다. 그들은 여기에서 장차 자기들의 길을 찾으며 그 길을 떳떳이 걸어갈 도를 깨치려고 한것이다. 일단 결심품고 떠난 그들에게 마음을 돌려 함께 가자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헤여지자니 그사이 맺은 정으로 하여 섭섭하였다.

어쨌든 이제는 결심을 내려야 하였다.

주몽은 일단 그들을 만나 결단을 내리고 불함산에 가서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가지리라 마음다졌다.

음식들을 저장해두군 하던 내가에서 돌아오던 주몽은 재사와 마주쳤다. 재사의 뒤에는 묵거와 무골이 서있었다.

《웬일인가?》 하고 주몽이 재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재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한듯 고개를 들었다.

《저, 협부에게 듣자오니 불원간 떠나려고 한다던데…》

《그렇소.》

《구려로 가시겠소이까?》

주몽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재사는 주몽이 결심이 굳은것을 알자 눈을 내리깔았다.

《그사이 협부나 오이, 마리를 통해 주몽형이 품은 웅지에 대해서 들었소이다. 나나 묵거, 무골은 사실 졸지에 구려를 떠나 앞길을 열어보려고 하였을뿐이지 딱히 취지를 둔것은 없었소이다.

이제 우리 생명을 구원해주신 은인이 구려로 가시겠다고 하니 마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길을 잡을가 하오이다.》

주몽은 재사의 다문 입을 이윽토록 주시하다가 물었다.

《깊이 생각해보고 하는 소리요?》

《그렇소이다.》

주몽의 낯빛이 밝게 빛났다.

《그렇다면 나도 기쁘오! 재사, 헤여지게 되면 해주자고 했던 소리인데… 단군선인의 후손으로 태여난 이 땅의 사람이라면, 더구나 대장부라면 자기의 처지나 슬퍼하고 괴로와할 때가 아니요.

누구나 갈라진 단군선인의 옛성지를 두고 가슴아파할줄 알고 그 옛성지의 회복을 위해, 겨레의 통일에 적으나마 이바지해야 한다고 보오.

그런 의미에서 재사가 우리와 함께 구려에 되돌아가겠다니 대단히 기쁘오.

재사는 구려의 계루부 연타발대가의 아들이 아니요? 이것은 더없이 유리한 기회요. 나는 숨기지 않소. 재사가 우리를 리해하고 우리와 함께 가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줄수 있소. 또 묵거나 무골도 계루부사정을 잘 아는것만큼 우리들보다 더 큰일을 할수 있소. 어떻소?》

《주몽형! 이렇게 부르도록 허락해주시오이다. 사람이라는게 정이 있어놔서 백년을 해로해도 의기투합(意氣投合) 아니되기도 하고 하루 한시를 살아도 의기상합(意氣相合)된다고 하오이다. 그래서 아마 옛사람들이 일견여구(一見如舊)라고 처음 만났을뿐이지만 마음이 맞고 정이 들어 옛날부터 사귄 벗같이 친밀하다는 말을 한것 같소이다. 저희들이 주몽형을 만나 생명을 건졌고 이렇듯 높은 뜻을 또 훈시받게 되니 어찌 잠간 만났다고 오래 사귄 정과 다르겠소이까? 주몽형! 우리들은 주몽형을 따르겠나이다. 받아주시오이다.》

《<일견여구>라… 좋구만, 오이, 마리, 협부들도 기뻐할거요.》

주몽은 재사와 묵거, 무골의 손을 잡았다.

며칠후.

목욕재계한 일곱명의 젊은이들이 불함산을 마주하고 무릎을 꿇었다.

하늘은 군청색으로 물들고 숲속은 오늘따라 조용하다. 맑은 새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불함산은 흰 기운을 무럭무럭 뿜어올리고있었다.

주몽은 례나루스승이 넘겨준 장검을 두손으로 받들어 가슴팍에 대고 불함산을 향해 세번 무릎꿇고 절하였다. 오이이하 나머지사람들도 경건하게 절을 세번 하였다. 마침내 절을 끝내자 주몽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거룩한 단군선인의 뜻이 어리고 겨레의 태가 시작된 성산은 굽어살피소서! 하나의 땅, 하나의 겨레로 수천여년 년년이 흘러오던 단군선인의 성지가 오늘에 이르러 여러 나라들로 갈라져 서로 시기질투하며 먹고 먹히우다나니 저 서쪽오랑캐들이 호시탐탐 엿보는 란세에 이르렀소이다.

여기 모인 우리 일곱형제가 불함산을 우러러 맹세하오이다.

태여난 날 다르고 부모형제 다르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이제부터 동고동락(同苦同樂), 이생동사(異生同死)하며 동지일심(同志一心)되겠나이다. 여럿이 하나가 되여 우리 형제처럼 단군선인의 옛성지를 통일하고 겨레의 복락될 땅으로 만들겠나이다.

부디 불함산은 굽어살피소서!

이 맹세 어기는자 하늘과 땅이 용서하지 않을것이나이다.》

주문을 마친 주몽은 다시 불함산을 향해 세번 절하였다.

절이 끝나자 협부가 이미 마련했던 놋술바리를 가져왔다. 금빛도는 술바리안에는 맑은 술이 담겨져있었다.

주몽이 장검에 장지를 베여 술바리에 떨구었다. 주몽에 이어 오이, 마리, 협부, 재사, 묵거, 무골의 순서로 자기들의 피를 술바리에 떨구었다. 술바리는 금시 빨갛게 된 혈주로 찼다.

《동지일심(同志一心)!》

주몽이 술바리를 받쳐들고 웨친 다음 술을 들이켰다.

술바리는 세번 돌아 마침내 무골이 마지막혈주를 마셨다.

그다음 나이에 따라 형제의 순위를 정하였다. 맏이 주몽, 둘째 오이, 셋째 묵거, 넷째 재사, 다섯째 마리, 여섯째 협부, 일곱째 무골이였다. 형제의 순위가 결정되자 오이이하 6형제가 주몽에게 맏이에 대한 례를 차려 절을 하고 이어 형아우의 례절을 차려 동고동락, 이생동사하기를 결의하였다.

의형제를 맺은 다음 주몽은 장차 행동방향을 내놓았다. 그리고 각자가 하여야 할 일감을 맡았다.

맏이인 주몽이 아우들의 모든 일을 주관한다. 오이가 맏이를 시위하며 맏이가 없을 경우 대리한다. 군사에 대해서는 주몽이 주장이 되고 오이가 좌, 마리가 우를 맡는다. 모사는 재사와 협부다. 계루부에 한해서는 재사가 제일 모사이며 타방의 일에 한해서는 협부가 제일 모사이다. 무골이 의형제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물을 총책한다. 먹는것, 입는것, 쓰는것으로부터 대사의 경비까지 맡는다. 당면하여서는 주몽, 오이, 마리, 협부가 주동이 되며 재사는 계루부를 장악한다. 그러기 위해 계루부의 연타발대가, 비추장군, 소서노와의 관계를 윤활하게 한다. 묵거는 언청이부대와 재사를 결합시키도록 한다. 무골은 계루부의 쇠부리터들을 장악하고 장검, 쇠활촉, 갑옷 등을 마련하여 비장한다.

일을 분담한 다음 의형제는 주연을 베풀었다. 저녁노을이 비끼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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