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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6

 

메여지게 비를 머금은 구름이 손에 잡힐듯 낮게 산중을 스쳐지나고있었다. 비구름이 뿌리는것인지 아니면 가는 바람이 몰아오는것인지 비꼬치가 간간이 후드득-떨어졌다. 골짜기에 휘감게 서린 구름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무성하게 자란 도토리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고 그앞에는 범의 코등같은 바위가 비죽이 솟아있다. 바위우에 한사람이 서있었다. 그는 허리에 찬 칼집에 손을 댄채 산릉선의 한곳을 지켜보고있었다. 참나무숲속의 공지였다. 넓은 나무잎사귀사이로 공지가 훤하게 틔였다. 생땅을 파헤쳐놓았던 흔적이 있는 그 가장자리에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등을 돌려대고 꿇어앉은 사람은 굳어진듯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바위우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비물이 줄줄 흘러내려 턱에 맺혔다가 뚝뚝 떨어진다. 그의 눈섭에도 비물이 이슬처럼 맺혀있건만 시선은 줄곧 참나무숲속의 공지로 쏠리고있었다.

한동안 그쪽을 살피던 바위우의 사람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때 바위밑에서 또 한사람의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얼굴은 조골조골한데 턱에는 노랑수염이 돋은 사람이다. 그는 비방울이 눈에 들어가서 그러는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소리쳤다.

《여보게, 건건이! 여기 아래로 내려오라니까! 고집쓰지 말고…》

바위우의 건건이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칼집의 손을 들어 턱에 맺힌 비물을 씻었다.

《듣나 먹나? 내려오라니까, 왜 수닭처럼 비를 쫄딱 맞으면서 그래? 그러다 고뿔들겠네…》 하고 바위아래 노랑수염이 다시 소리쳤다.

건건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러자 노랑수염이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바위밑에서 나와 두꺼비처럼 엉금엉금 바위우로 기여올랐다. 그의 손에 작은 가죽주머니가 들려있었다. 술망태기다.

《할수없지. 나귀새끼가 고집을 부리니 내가 올라와야지 별수 있나…》

노랑수염은 비물이 흐르는 건건이의 꼴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자네, 두령의 호위대장이 되더니 영 바보가 됐어.》 하며 노랑수염은 가죽주머니의 끈을 풀고 꿀꺽꿀꺽 정신나가게 들이키더니 카-하고 내렸다.

《이렇게 비가 구질구질 오는 날에는 뜨끈한 구들에서 곰국이나 먹고 잔등 지지는건데… 이런 산속에서 깡술이나 먹고있으니, 내 참… 쯧, 하지만 어찌겠나, 술이 있는것만도 다행이지…》 하고 중얼중얼거리던 노랑수염이 건건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보게 건건이, 한모금 하라구. 양가죽냄새가 나긴 하지만 이런 날에는 이게 제일이라니까…》

노랑수염은 가죽주머니를 건건이에게 내밀었다.

건건이는 손을 내저었다.

《왜 그래? 이 사람 건건이!》

《두령이 저기서 혼자 상을 치르고있지 않나?》

노랑수염은 목을 길게 뽑아 참나무공지에 꿇어앉은 사람을 바라보고나서 코나발을 불었다.

《쳇! 두령이 장례를 하는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낫살깨나 건사했다는게…》

《어따! 자네, 소리까지 치는군. 허… 괜찮아. 호위대장이 되더니 제법 애비 섬기듯 하는군그래.》

《호위대장이 됐다고 그러는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짜식.》

건건이는 성을 내는 노랑수염을 찌끗 보더니 얼굴을 이그러뜨렸다. 그러자 노랑수염은 설익은 개고기상이 되여 눈을 부라렸다.

《짜, 녀석 꼴 보게. 네가 아예 사람을 우습게 아는거냐? 이래뵈두 소시적부터 내노라는 노예주놈들의 밑구멍을 씻어주던 사람이야, 알만큼 다 안단 말야! 거들거리는 노예주놈들도 우습게 알던 내가 신수가 막부득이 해서 여기까지 굴러왔기에 죽었소 하고있는게지 언청이혹부리두령이 다 뭐야, 하물며 너같은거야…》

그 소리에 건건이가 눈을 흡뜨며 돌아섰다.

《뭐가 어째? 보자보자하니까, 이건 뜨물 뒤지는 돼지주둥이 한가지구나.》

노랑수염이 창애에 치운듯 발딱 일어섰다. 건건이가 노랑수염에게 한발 다가갔다. 노랑수염은 턱을 바르르 떨며 한걸음 물러서더니 품속에서 비수를 잽싸게 꺼내들었다.

《뭐, 주둥이가 어쨌어? 이 녀석이! 계집때문에 신세망친 놈이 설치네.》

노랑수염은 비수를 건건이의 가슴팍에 댔다.

《걷어치우지 못해!》

건건이가 칼끝을 내려다보며 소리질렀다. 노랑수염과 건건이는 숨을 씩씩- 내쉬며 서로 잡아먹을듯이 노려보았다. 잠시후 노랑수염이 먼저 비수를 건건이의 젖은 옷섶에 닦으며 피씩- 웃었다.

《어른이 져야지…》 하며 노랑수염은 다시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건건이는 노랑수염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참나무숲속 공지에 눈길을 주었다. 자기가 세칭 《검은 칼잡이》들이라는 노예부대의 두령을 호위하는 인물이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애매하게 죽을번 한 묵거라는 젊은이를 은밀히 빼돌리고 난 뒤 건건이는 늘쌍 움츠린 자라목이 되여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두령이 그를 불렀다. 건건이는 속이 콩알만 해졌다. 여불없이 죽었구나! 여기에서 법도를 어긴다는것은 곧 죽음이다. 까짓거, 이판사판이다. 건건이는 얼음우를 걷는 소처럼 두령앞에 섰다.

《나는 건건이를 잘 모른다. 하지만… 도운스승께서 자네를 추천했으니…》

혹부리언청이두령이 흘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건건이는 우뜰 놀랐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잘 모른다는건?

두령은 건건이를 매섭게 쏘아보는것이였다. 필경 묵거를 놔준것이 들통난 모양이다.

건건이는 혹부리를 주시하였다. 젊은이라고는 하지만 세파에 부대껴 고목처럼 보이는 얼굴, 그 장난기어린 순진해보이는 눈만 아니라면 틀림없이 고목등걸처럼 보게 된다. 건건이는 숨을 크게 들이켜 허파를 불쿠었다. 그러는 모양을 지켜보던 두령은 다시 새는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건건이를 내 호위대장으로 임명하겠어.》

순간 건건이는 놀란 눈으로 두령을 바라보았다. 롱담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두령은 건건이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내 일을 잘 도와줘.》

그뿐이였다. 그때부터 건건이는 두령의 곁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애당초 두령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품은건 아니지만 이렇듯 죽음으로써 속죄하여야 할 자기를 신임으로 대해주니 오직 감격할뿐이였다. 두령은 분명히 묵거를 자기가 놔주었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두령은?… 건건이는 아직도 어떻게 되여 혹부리언청이두령이 자기를 호위대장으로 임명했는지 모른다. 두령이 도운스승을 거들었지만 그 스승자체를 모른다.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의 머리처럼, 몸뚱이처럼 두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였다. 건건이가 생각에 잠겼는데 노랑수염이 곁으로 다가왔다.

《여보게 호위대장, 성났나?》

《아니…》 하고 건건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테지, 자네야 사내니까. 또 우리 무리들이 고까짓 칼부림질에 계집들처럼 옹칠수 없지… 자, 한모금 하라니까.》

《안되네!》

《안돼? 하긴 호위대장이 술을 마셔서야 안되지… 그런데, 호위대장! 도대체 두령이 장사지내는 사람은 누군가?》

《나도 모르네.》

《그게 무슨 소린가? 호위대장이 그걸 모른다는게 말이 되나?》

《모른다질 않나, 어떤 늙은이라는것밖에는…》

《두령의 아버지인가?》

《그런것 같지도 않아.》

《거, 이상하지? 두령이 어째서 우리가 낯도 코도 모르는 늙은이 죽은데 대해서 저렇게 극성인가?》

《워낙 우리 두령이 나이는 젊어도 의협심이 있지 않나.》

《그거 참,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두령님이… 난 아직 죽은 사람에 대한 장례를 저렇게 극진히 하는걸 보지 못했네…》

《벌써 사흘이 되네.》

《그러게 말이야. 그러다 우리 두령이 저승길 따르는게 아닌가?》

《방정맞은 소릴 작작하게.》

《그러세.》 하고 노랑수염은 다시 술 한모금 꿀꺽 마시였다. 한동안 취기오른 눈으로 골짜기를 내려다보던 노랑수염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벌렸다.

《우리 두령이 의협심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건대는 전혀 그런것만 같지도 않아…》

《또 무슨 언터구를 잡지 못해 그래? 술이나 곱게 마실것이지…》 하고 건건이가 허리에 찬 칼을 추슬렀다.

《글쎄, 생각해보게. 두령은 말갈사람들의 거사를 도와주겠다고 맹약하지 않았나?》

《그건 또 무슨 아닌밤중에 홍두깨소리인가?》

《하… 자네 모르고있나? 우리 두령이… 말갈사람들이 란을 일으키면 부대를 끌고가서 도와주겠다고 했다네. 우리 두령하고 말갈대인 구도하고 사이가 이전부터 영 나쁘지 않았거든…》

《그렇기로서니 무슨 란에 두령이 맹약까지 했다는건가?》

《맹약했다니까! 아마 구려 연노부가 벼락맞은 소고기되는 모양이야. 연노부에서 내노라는 어떤 사람과 말갈의 구도사이에 짬짜미가 되여있는 모양인데, 그걸 두령이 도와주기로 돼있던것 같애… 그런데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까마귀 늙다리가 죽으니 두령이 발목 잡힌거지 뭐겠나? 그러고보면 두령도 참, 속통이 닭의 똥집만 하거든. 늙다리 하나 죽은게 뭐야, 맹약이야 맹약이지… 사나이 한마디 중천금일세!》

노랑수염은 분한듯이 한숨을 풀풀 쉰다. 묵묵히 듣고있던 건건이가 물었다.

《헌데… 자네는 나도 모르는걸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나?》

그 소리에 노랑수염이 토끼처럼 놀랐다. 그는 다급히 주위를 살피였다. 노랑수염은 건건이를 처음 보듯이 바라보았다.

《자네가 호위대장이라는걸 잊었군… 그래 나를 의심하는건가?》

《의심하는게 아니라 호기심이 나서 묻는거네. 내가 알건대 두령은 일체 내막에 대해서 비밀에 붙이는걸로 알고있는데… 방금 한 소리를 듣고보니 자네가 다 알고있으니 말이지…》

노랑수염은 눈을 깜빡이며 무슨 생각을 굴리더니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건… 사실 비밀이지. 그런데 말이야, 음… 거 머스가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소리가 있지? 옳거니, 바로 그거야. 이 노랑수염이 보긴 이래뵈두 쥐쯤은 되는셈이야… 하, 이보라구, 호위대장! 내가 밤말 듣는 쥐값에는 간단 말이야… 흐흐》

노랑수염은 제풀에 개 팬 로친네처럼 흡족해하였다.

건건이는 그 모양을 재미있게 구경하고있었다. 건건이의 눈길을 받던 노랑수염은 딴전을 폈다.

《그건 그렇고, 호위대장, 두령에게 좀 말씀올리게. 이렇게 진날 맨땅에 부복하고있어서야 쇠쪽으로 만든들 사람이 견디겠나?》

건건이는 그럴듯이 여겨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바위를 내려 참나무숲속 공지로 갔다.

나무잎사귀들에 맺혔던 비방울이 지나는 바람에 후두둑 떨어졌다. 락엽깔린 땅은 푹 젖어있어 밟힐 때마다 물이 배여나왔다.

두령은 생땅이 파헤쳐졌던 자리뿐이지 봉분도 없는 무덤앞에 두무릎 꿇고있었다. 여기가 죽은 사람 묻힌 곳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두령과 건건이와 노랑수염뿐이다. 사람이 개나 돼지가 아닐진대 어찌 이렇게 평토로 매몰할수 있겠는가? 이런것은 노예들이 죽었을 때 하는 매장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도 역시 노예였는가? 건건이는 두령의 어깨너머로 비물이 고인 무덤터를 보며 침울한 생각에 잠겼다. 습기배인 씁쓸한 냄새가 풍겼다. 락엽썩는 냄새와 늦꽃냄새 그리고 무슨 약초냄새가 어울린것이였다. 건건이는 나무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이 두령의 풀어헤친 머리우로 떨어지는것을 안스럽게 지켜보다가 두령의 곁으로 다가갔다. 두령은 까딱 미동조차 없었다. 땅우에 닿은 머리카락으로 납빛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두령님.》 하고 건건이는 조심히 불렀다.

대답이 없다.

《두령님, 저… 벌써 사흘이 되였소이다.》

그제서야 두령이 고개를 들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웠다. 두령이 한번 고개를 흔들자 마침내 얼굴이 드러났다. 눈두덩이는 퉁퉁 붓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돋았는데 피발진 눈이 건건이를 보고있었다. 건건이는 주춤거렸다.

《두령님, 이제 날이 어두워질것이오이다.》 하고 건건이는 모아쥔 손을 비비며 어렵게 말하였다.

두령은 한동안 풀어진 눈길로 건건이를 바라보다가 분명치 않은 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물러가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래도 건건이는 그냥 서있었다.

《알았다니까, 이제 인차 끝내겠어…》

흥얼흥얼 새는 소리지만 그래도 말뜻은 대강 짐작이 간다. 건건이는 그제야 뒤걸음으로 물러나 도토리나무밑에 섰다.

두령은 다시금 고개를 수그렸다. 한숨이 새여나왔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에게는 드문드문 흙물이 고인 그밑에 죽은 사람이 묻혀있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아무리 제 손으로 파고 제손으로 묻었건만 믿을수 없다. 죽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던가? 도운스승! 바로 도운스승이 이 산중 락엽밑에 묻혀있다는것이 꿈만 같다. 사람에게 죽음이라는것이 이렇듯 처절한것이란 말인가? 두령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또다시 한숨이 새여나왔다. 쿠욱 하는 소리를 내며 두령은 머리를 땅우에 댔다.

도운스승!

《검은 칼잡이》라고 불리우는 노예부대에서 도운스승에 대하여 알고있는 사람은 오직 두령 언청이뿐이였다. 그러나 그도 도운스승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가 하는것은 모른다. 시중드는 사람도 없이 필요할 때마다 언청이앞에 그림자처럼 나타나군 하였다. 도운스승과의 만남은 항상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러던 며칠전 도운스승이 여느때와 같이 언청이앞에 나타났다. 그의 안색은 피곤해보였다. 스승은 언청이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이제는 마지막인것 같다.》 하고 말하고는 자리에 누웠다. 언청이는 깜짝 놀랐다. 스승의 나약하다고 보일 이런 행동도 놀랍거니와 앞일을 위해서도 아뜩해지는것이다. 언청이가 자기의 무리를 꾸리고 지금껏 활약하고있는 그 모든것은 바로 도운스승이 가르쳐준대로 따른것이였다. 례컨대 《검은 칼잡이》들이 언제 한번 싸움에서 패하지 않은 그 《3진1투》라는 방법도 바로 도운스승이 배워준것이다. 《3진1투》라는것이 항상 움직일 때 전군, 중군, 후군으로 나뉘여지는데 아무리 작은 무리라도 꼭 그렇게 나뉘인다. 단 3명이 움직여도 그렇다. 이 3진이 일단 싸움에 붙으면 꼭 그 하나가 전면에 나서고 2진은 뒤를 끊지 않으면 앞을 끊게 되여있다. 필요하여 합쳐져야 할 때는 전군, 후군이 교체되며 한바탕 어울려지는 때였다. 워낙 이리떼정신으로 단련되여있는데다가 항상 앞뒤를 경계하며 싸운것으로 하여 《검은 칼잡이》들은 실패를 모른다. 도운스승에게 선발된 이후 언청이는 여러번 스승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싸워 이기군 하였다. 물론 두령의 자존심을 살려 멋대로 해보려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승패가 내다보이지 않아 자연히 스승이 가르쳐준대로 따랐던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스승이 자기를 내세우려고 한적은 없었다. 《검은 칼잡이》들 부대에서 두령은 오직 언청이뿐이였다. 도운스승은 바로 그것때문에 언청이앞에 그림자처럼 나타나는것이다. 두령이 그 누구의 끈에 움직인다는것이 알려지면 벌써 두령이 아니라고 도운스승은 자주 말하였다. 지금도 언청이의 눈앞에는 도운스승의 림종의 모습이 생동하게 안겨왔다. 《언청아!》 하고 부르는 소리마저 귀에 그대로 남아있다. 언청이두령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눈앞에 도운스승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언청아! 내가 왜 너를 선택했는지 아느냐?》

《스승께서는 아직도 그에 대해서 말씀해주지 않으셨소이다.》

《하긴 그렇지…》

도운스승은 누운 자세로 언청이를 바라보았다.

《혹부리언청이! 이것은 세상이 너에게 준 락인과 같으니라. 마치 노예의 락인과 같이 말이다. 너는 그것때문에 일생을 세상에 항거하게 될것이다. 너에게 힘이 남아있는 한 그것은 변할수 없다. 승냥이가 고기를 먹어야 살듯이 너는 또한 한평생 자기의 락인을 생각하게 될게다. 나에게는 이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란 조그마한 만족에 본래의 결심을 버리기 쉽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될수 없을게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너를 선택하여 내가 닦은 도를 전수하기 시작한것이다. 물에 빠져 죽게 되였던 너와 너의 어머니를 구원해준 그때부터 내 눈에 들었다.》

《아, 그럼 스승께서…》 언청이가 놀라 벌떡 일어섰다.

도운스승은 눈을 한번 가볍게 감았다 떠 언청이를 자제시켰다. 스승은 길게 한숨을 지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줄이야… 아, 참으로 하늘의 뜻은 알수 없구나.》

도운스승은 힘이 드는지 이야기를 그쳤다. 스승을 지켜보던 언청이는 물었다.

《스승께서는 본래 어떤분이시였소이까?》

《그건 알 필요가 없다.》

《말씀해주시오이다.》

언청이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기다렸다. 어쩐지 꼭 그것을 알고싶다는 고집이 일었다.

《나는…》 하고 스승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노예였다.》

《노예말이오이까?》

《그래! 나의 어린시절은 비참하고 참혹했다. 채찍과 욕설은 내가 입고있는 유일한 옷이였고 굶주림과 졸음은 나의 유일한 그림자였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믿는것이 있다면 그것을 우선 맛나게 씹어먹었을게다. 그래, 그렇게 반생을 살았다. 그리고는 살기 위해 칼을 잡았다. 한쪼각의 음식을 위해 나는 칼을 휘둘렀다. 살인은 결코 희열이 아니였다. 그러나 한숟가락의 밥을 위해 사람을 죽여야 했다. 한토막의 고기를 위해 제살을 깎아야 했다. 너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테지? 나는 일이 어찌되였든 누가 누구를 위해 야욕을 채우든 그런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내 멋대로 살았다. 그러나 그렇게 해가지고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도를 닦기 시작한거다. 20년동안 나는 세상의 도를 닦았다. 노예를 구원하고저 일생을 쌓은 도! 노예의 도! 그런데 그것을 너에게 다 전하지도 못하게 되였으니 야속하구나. 하늘이 노예를 외로 보는 모양이야.》

도운스승은 열에 들떠 탄식하였다. 스승의 모습을 지켜보던 언청이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제가 맹세컨대 스승의 뜻을 이어 노예들을 구원하겠소이다.》

스승은 고개를 돌려 언청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힘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다, 그건 적어도 5계를 이루어야 하는거야. 그런데 너는 이제 겨우 그 첫 계를 깨쳤다.》

도운스승은 천정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언청아, 그래 노예의 도가 무어지?》

《노예의 도는 칼이옵니다.》

《그래 칼이다. 칼! 세상을 베는 칼! 그것은 삶과 죽음, 이 두 길을 부른다. 그러되 거기에는 법도가 있으니 그것은 죽음을 깔고있는 삶이라는게다. 언청아, 너는 그 법도에서 처음길인 죽음을 깔고앉는데 이르렀다. 네가 붙인 <검은 칼잡이>라는것을 내가 승낙한것도 그때문이다. 이제 너는 두번째 길, 삶의 도를 배워야 하는데 그걸 배우지 못하였다. 삶의 도는 사랑이다. 사랑은 다섯가지 부모사랑, 형제사랑, 벗들사랑, 나라사랑, 세상사랑이다. 이걸 아는것만으로는 안된다. 반드시 실천으로 깨쳐야 하는게다. 내가 너에게 그 두번째 길을 전수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까닭모를 병에 걸려 죽게 되는구나. 언청아, 너는 나의 도, 노예의 도의 근본을 겨우 깨쳤을뿐이다. 이제 너의 앞날이 걱정이다. 네가 말갈사람들에게 가려고 한다지?》

《그건, 저…》

《그것은 삶의 길로 가는게 아니다. 알겠느냐?》

《알겠소이다.》

《그리고 내가 죽은 다음에 노예들 매장하듯이 해라.》

도운스승은 눈을 뜬채로 운명하였다.

거친 인생길에 잠간 만났다가 헤여진 스승, 부모 다 잃고 애오라지 붙들었던 스승! 그 스승마저 나를 버리고 영영 떠나버렸다. 아, 아, 이것이 언청이에게 차례지는 운명이란 말인가! 언청이는 이 사흘낮, 사흘밤을 스승의 운명, 자기의 운명을 놓고 깊이깊이 생각해보았다. 칼들고 목을 쳐 스승의 뒤를 따르고싶은 마음이 몇번이나 들었는지도 모른다.

볼을 타고 눈물인지 비물인지 좔좔 흘러내리는것을 슬프게 느낀다.

어흑- 하는 소리를 내며 두령은 다시 땅에 얼굴을 묻었다.

묵은 락엽을 파내고 땅에 묻은 도운스승! 이제 또다시 그우에 락엽이 깔리면 세상에 도운스승 같은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누구도 모를것이다. 언청이에게 도운스승은 지상에 유일한 인간, 인간의 하늘 그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하늘은 무너져 땅에 묻혔다. 어허, 세상은 이런것인가! 언청이는 무릎에 힘을 주었다.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 두손에 받쳐들었다. 그리고는 《스승님, 그만 하직하겠소이다.》 하고 웅얼거렸다. 그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모아 뒤로 넘기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다.

《노예의 도는 칼이다!》 하고 언청이혹부리는 되뇌였다. 그는 수척해진 얼굴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흐린 날씨라 해가 어디쯤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비칠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 처리해야 한다. 두령의 뒤로 건건이와 노랑수염이 따랐다.

며칠이 지난 뒤 혹부리언청이는 말갈사람들에게 가고있었다.

그의 심중은 몹시 어두웠다. 스승은 생전에 말갈사람들에게 가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았고 자기도 그 뜻을 따르겠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자기는 말갈사람들에게 가고있는것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여가고있다는것이 뻔하였지만 마치 물우에 뜬 나무개비처럼 흐름에 떠내려가고있는것이 심중을 어둡게 하였다. 하긴 부대를 이끌고 가지 않는것만도 다행이다. 아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노랑수염이 짐짓 꼬드기는 바람에 떠난것도 아니고 또 구도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는것도 아니다.

갈래잃은 흐름이 멋대로 흐르는것이다. 스승이 죽은 다음에 바로 이런 고삐풀린 행동을 하는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전에는 나름대로의 타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절망의 타락일가?

눈을 지그시 감고 말이 가는대로 몸을 맡기고있던 언청이는 눈을 떴다.

《두령님, 말갈사람들에게 다 왔소이다.》 하고 건건이가 알렸다.

언청이는 찌프린 눈으로 말갈사람들의 거처지를 두루 살폈다. 희비도 아니고 애증도 아닌, 초연이라고나 할지… 그런 묘한 중간감정을 느꼈다.

《음-》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털어 나른해지려는 감정을 깨쳤다. 언청이는 구도가 구려 연노부의 어떤 귀족과 통한다는것자체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구도는 구도고, 언청이는 언청이다. 구도가 뭘 꾀하든 상관없다. 다만 언청이, 자기는 노예주들을 벨수만 있다면 그만이였다. 바로 그것때문에 만사불구하고 언청이자신이 여기 온것이 아닌가? 우울증을 털어내는 유일한 길은 칼에 노예주들의 피를 묻혀보는것이다.

언청이가 들어서자 구도는 마주 나왔다.

《두령이 왔소? 어찌된 일이요, 뿔빠진 황소처럼…》

《그럴 일이 있었소. 참 약속을 어겨서 미안하게 됐소. 그래 사과도 할겸 그새 쌓인 화증도 풀겸 해서 왔소.》

《하여튼 왔으니 반갑네. 자, 앉게.》

언청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인, 행차뒤 나발이긴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됐다구? 구려의 대감인지 뭔지 하는 놈이 어쩌구저쩌구 하는건 무슨 말인가?》

《허, 연노부대감 도리를 알지? 거 왜, 목이 길고 입이 째진자 말이요.》

《보지는 못했지만 아오, 제노라고 뻐기기 잘한다는 사람말이지?》

《그렇소.》

《그가 왜 왔댔소?》

《자식! 가려운데 긁어달라는거지… 난 그녀석 볼 때마다 비루먹은 나귀를 보는것 같은게 싫더구만.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또 악담질 했겠군…》

《글쎄, 그 사람이 자기는 용인용병술(用人用兵術)에 제법 도통한체 하면서 남을 얼려보려고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아. 들리는 말에는 인걸을 얻는걸 락으로 여겨 분주히 떠다닌다고 하지만 될턱 있나?

사람을 부린다는게 결국 속임수인데 속여서 제 리득을 보더라도 부리우는 사람에게도 리득이 가게 하거나 정 없으면 속히우고있다는걸 모르게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지만 녀석은 눈감고 아웅한단 말이야.》

《그래도 수가 높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소문은 그래도 나한테는 통하지 않아.》

구도는 입을 비죽거렸다.

언청이는 긴 눈섭을 슴벅거리며 구도의 비웃음 찬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찌됐나?》

《녀석, 애타게 해줬지. 슬슬 꼬리를 저으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않으니 안달아하더군. 난 녀석을 장계취계할 생각이야. 녀석이 제 밥상에는 오지 말고 다른 밥상으로 가라고 꼬드기지만 난 그녀석의 밥상에 달라붙어 재미를 봐야겠어. 수틀리면 뒤집어버리면 그만이지. 우리 애들을 연노부에만 보내서 못살게 굴겠어.》

《고약한데가 있군. 자네네 말갈족속들은 약해보이면 기를 쓰고 달라붙지.》

《걷어치워! 두령의 부대가 싸움을 아주 잘한다는건 알아. 하지만 우리도 자네네만 못지 않게 싸울줄 알지…》

《난 잡식하는걸 싫어해. 죽어도 날고기만 먹는 독수리처럼 노예주들의 허연 살코기만 좋아할뿐이야.》

《두령! 난 자네를 존경하지만 지나친 증오가 자네를 망칠가봐 걱정되는걸…》

《고양이 쥐생각.》

《좋도록 생각하게.》

《잡담은 걷어치우지. 그래, 자네들이 꾸몄다던 거사는 어찌 됐나?》

《응, 그거… 좀 미루려고 생각했네.》

《이왕 내가 온김에 해치우지 않겠나?》

《그런데 좀 자중하는게 좋을것 같아.》

《어째서…》

《응, 내 친구 일구가 계루부에서 값진 보물을 하나 얻어왔는데…》

《계루부에서?》

《그래.》

《호, 그 일구가 보기와는 다른걸, 계루부에서 보물을 다 훔쳐오고… 어찌된 일인가. 고양이가 둔갑을 해서 호랑이된것 아닌가? 계루부라면 녹녹치 않은데…》

《그래서 좀 눈치를 보자는거야…》

《그 보물이라는게 뭔가?》

《견물생심이라고 하데…》

《걷어치워, 내가 뭐 물건따위에 쏠리는 사람인가?》

《그러나 한번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대체 뭐길래 그래?》

《보기 드문 미녀일세…》

《미녀? 계루부의 미녀?》

구도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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