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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1 부

 

탈 출

 

13

 

어느덧 새벽기운이 돌았다.

밤도와 쉬임없이 달려온 두사람은 지칠대로 지쳤다.

주몽과 협부의 눈섭과 뺨에 잘다란 이슬이 맺히였다.

《어디쯤 왔을가?》 하고 주몽이 협부에게 물었다.

말우에서 졸던 협부가 주몽의 물음에 깨여나 우렷이 밝아오는 산세와 지세를 휘둘러보고나서 《아직 딱히 모르겠소이다.》하고 대답하였다.

《좀 쉬여갈가?》

주몽이 다시 물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직 어디가 어딘지 알수 없으니 날이 밝은 다음에 보기로 하오이다.》

《그러자구.》

두사람은 다시 속보로 말을 몰았다. 말들도 지쳤는지 한동안 속보로 가다가는 다시 평보로 걸었다. 주인들은 채찍질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채 말없이 길을 갔다.

어딘가 앞쪽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개짖는 소리까지 컹컹 들리였다.

앞쪽에 마을이 있는듯 싶었다.

이제는 날이 밝으려는지 멀고 가까운 곳이 어렴풋해지기 시작하였다.

졸다가 깨여난 협부는 정신을 도사리고 앞뒤와 좌우지세를 연신 살피였다.

남쪽 멀리 뾰족이 솟은 산마루가 유난히 눈에 띄우자 협부는 그것을 방향으로 다시 앞뒤를 살피고나서 주몽에게 말하였다.

《음 그럴듯 한데… 주몽형, 언제인가 례스승과 함께 여기 부근에 왔던 생각이 나오이다.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저앞에 제법 큰 고을이 있소이다. 그리고 더 나가면 남소태봉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있을것이오이다.》

《그래?! 그렇다면 이 마을 지나서 좀 쉬도록 하자. 아직 사람들이 깨여나기 전에 마을을 빠져나가서 쉬여야지, 혹시 사람들 눈에 띄우면 좋지 않겠다.》

주몽의 말에 협부도 다른 의견이 없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마을은 바야흐로 새벽잠에서 깨여날 차비를 하고있었다.

주몽과 협부는 귀밝은 개들의 의심을 사며 조심히 마을을 빠져나갔다.

부지런한 어떤 농부가 집뜨락에 나와 하품을 하고있었다. 그는 새벽길 걷는 나그네들을 멍히 바라보다가 다시 기지개를 늘어지게 하더니 주섬주섬 농쟁기들을 손질하는것이였다.

주몽과 협부는 이럭저럭 별일없이 마을을 지났다. 동구밖을 지나 얼마쯤 더 달려간 두사람은 이제는 어지간히 마음놓아 쉴곳을 찾느라고 지친 말들에 채찍을 안겼다.

말들도 주인의 의도를 아는지, 아니면 새벽기운에 정신을 차렸는지 기세좋게 네굽을 놓는다.

앞쪽에서는 방금 해돋이하려는듯 산발들이 불그스레해지고 산골짜기들은 안개에 휩싸인다.

주몽과 협부가 얼마쯤 더 나아갔을 때였다.

문득 앞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두사람이였다. 가까이 가보니 웬 로파와 젊은 녀자였다.

그들은 길섶으로 물러설 생각을 못하고 우뚝 서서 돌아보고있었다.

주몽은 의아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몽의 말이 다가오는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로파가 그만 땅우에 넙죽 엎드리며 넉두리를 해댔다.

《아이고 나리님, 제발 살려주사이다. 불쌍한 우리 모녀를 살려주사이다.》

뒤에 붙어섰던 녀인도 로파를 뒤잡고 매에 쫓긴 까투리모양을 하고있었다.

주몽은 어안이 벙벙하여 그들을 찬찬히 살피며 옆으로 에돌아지나쳤다.

《하하, 늙은이가 무엇인가 잘못 보지 않았소?》 하고 협부가 주몽을 따라 옆으로 지나치며 시까슬렀다.

그제야 로파는 머리를 버쩍 들어 주몽과 협부를 살피더니 후- 하고 숨을 내쉰다. 로파는 땅에 펄쩍 주저앉아 까마귀눈을 땅우에 던지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하고 주몽이 생각에 잠겨 말하였다. 그러자 협부가 대수롭지 않게 《죄짓고 달아나는 모양같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뒤돌아보니 그네들은 길바닥에 풀썩 주저앉은채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고있었다.

두사람은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였다.

《자, 형님. 이젠 좀 쉬여서 갑시다. 맞춤한 곳을 골라서 요기를 좀 하고 말들도 쉬여야지요.》

《응.》

주몽은 주위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때 뒤쪽에서 다급한 말발굽소리가 울리였다. 이어 《서라!》 하는 고함소리가 뒤따랐다.

《젠장! 형님! 꼬리가 붙은것 같소이다.》

탕개를 풀려던 협부가 소리치며 고삐를 나꿔챘다.

박차를 가해 무심결에 달려가던 주몽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가긴 어딜 가?》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였다. 이어 아까 지나쳤던 그 로파의 목소리가 다시 황급히 울렸다.

《아이구, 이젠 죽었구나. 나리님…》 로파의 목소리와 함께 젊은 녀자의 울음소리가 합쳐진다.

《그래 새벽도주하면 내가 모를줄 알구?! 이 배은망덕한것들!》 하는 매운 위협소리가 안개속에서 들려온다.

《냉큼 돌아서지 못해. 뭘 울고불고하는거야. 내가 너희들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더냐? 잘 입히고 잘 먹여주겠다는데 웬 도망이냐, 도망이!…》

꽥꽥거리는 사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몽은 저도 모르게 말고삐를 당겼다.

《형님, 뭘 그러고 섰소이까? 빨리 가사이다.》 하고 협부가 머뭇거리는 주몽에게 재촉하였다.

《가만!》 주몽은 한동안 울고불고하는 소리를 귀담아듣다가 그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주몽형, 어쩌자는것이오이까? 우린 지금 누구를 동정할 형편이 못되오이다. 언제 군사들이 따라올지 모르는데 무슨 잔정이 그리 많소이까?》

협부가 안달아 야단이다.

그러거나말거나 주몽은 성큼 그쪽으로 뛰여갔다.

소리를 지르던 작자가 한창 로파의 잔등을 말채찍으로 쿡- 쿡- 찌르고있었다.

《가만!》 하고 주몽이 달려들며 소리쳤다. 그자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 늙은이를 못살게 구는거요?》 하고 주몽이 다가가 따졌다.

그 사나이는 불현듯 나타난 주몽을 뗑그래진 눈으로 건너다보더니 별 싱거운자 다 본다는듯 킁- 하고 코소리를 냈다.

바람을 삼킨듯 퉁퉁한 그 사나이의 볼따귀가 실룩거렸다. 어찌나 몸이 뚱뚱한지 타고있는 말이 금방 주저앉을듯 싶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길래 산제밥에 청메뚜기 뛰여들듯 하는거요?》 하고 뚱보가 쏘아붙였다.

《한길가에서 늙은분에게 야료부리길래 사유를 묻는건데 뭐가 잘못됐소?》 하고 주몽이 말갈기를 툭-툭 치며 묻자 뚱보는 다시금 킁-킁 코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보아하니 길손 같은데 갈길이나 가시오. 이 늙은이는 내 장모이고 저 색시는 바로 내 처란 말이요. 별 싱거운자 다 보지.》

그러자 늙은이가 울며 말한다.

《나리님, 제가 무슨 장모이겠소이까? 그러지 말고 우리를 놔주사이다. 나리님이 우리 불쌍한 모녀를 살려주사이다. 거룩한 단군선인께서 굽어보실거웨다.》

반백의 늙은이가 땅에 넙적넙적 엎드리며 애걸복걸한다.

《내가 장모라면 장모지, 웬 앙탈이냐? 이게 소란스럽게.》 하고 뚱보는 채찍을 쳐들었다.

주몽은 부루나를 뚱보와 로파사이로 들이밀었다.

채찍을 쳐들었던 뚱보는 주몽이 뛰여드는 바람에 약이 올랐다.

《이게 어떤 시럽의 자식인데 내앞을 막아서는거야?》 뚱보의 두툼한 입술이 푸들쩍거리며 그사이로 게거품이 내물렸다.

《썩 물러서지 않으면 찍어버릴테요.》 하고 주몽이 칼을 꺼내 그자의 코앞에 가져갔다.

《엉?!》

불에 덴 소처럼 놀란 뚱보가 공포에 질려 칼날을 내려다보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눈에 온통 흰죽사발이다. 보기와는 다르게 뚱보는 냉큼 물러선다.

《이 늙은이는 내가 모시고 가던 길이요.》 하고 주몽이 그루를 박았다.

《옳다, 그러니 너희 년놈들이 작당을 해가지고 도주하는구나. …》

뚱보는 주몽과 늙은이를 번갈아 살피다가 삿대질해가며 욕질해댔다.

이때 협부가 뒤미처 달려오며 《형님, 웬일이오이까?》 하고 소리쳤다.

《사위》는 주몽과 협부를 멀찍이 물러서서 바라보더니 저로서도 어쩔수 없는지 퉤- 하고 침을 뱉고 오던 길을 냅다 달아났다.

주몽은 달아나는 뚱보를 지켜보고 섰었다.

《나리님,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하는 로파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주몽은 돌아서서 로파와 함께 울고있는 젊은 녀인을 내려다보았다.

주몽에게는 문득 어머니와 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나 되였을가? 대소의 무리들이 그들을 편하게 놔두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박해를 받고있을것인가? 저 로파와 젊은 색시처럼 박해를 받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수 있을것인가.

《늙은이는 이 신새벽에 어인 일로 길떠나며 방금 당하신 창피는 또 어인 일이옵니까?》 하고 가던 길을 함께 가며 주몽이 물었다.

로파도 어느덧 진정이 되였는지 눈굽을 씻었다. 그러면서도 맘이 안 놓이는지 뚱보가 사라진쪽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내게 아들 하나 있어서 금이야 옥이야 길렀지오다. 남편을 일찌기 여의고 그 애 하나 의지해서 살아가고있었수다. 새가 크면 둥지를 날고 사람이 크며는 시집장가간다고 어느덧 그럭저럭 아들이 장가갈 나이가 되지 않았겠수. 그러나 나같이 가난한 과부의 아들에게 누가 귀한 딸을 맡기겠다고 하겠소.

그러던 어느날 마침 우리 집에 한 나그네가 묵어가게 되였수다. 나이가 퍼그나 든 늙은이였는데 로상에서 병만나 우리 집에 들게 된것이우다. 그 늙은이에게 열두어살 잡힌 딸이 있었수다. 에이구- 그런데 그 늙은이는 로독으로 얼마 못 가서 그만 운명하고말았수다. 그러니 어찌겠소. 그 늙은이의 딸애는 졸지에 의지가지없는 고아가 돼서 세상에 내버려지고말았지요. 그 늙은이의 장례를 치르고나서 할수없이 그 애를 내가 맡고말았수다.

딸삼아 민며느리삼아 말이우다. 약차한 세월이 흘러 그 애가 자라나서 우리 아들과 성례를 치르자고 했는데 요런 일이라구야, 아들이 이번엔 털썩 군사로 뽑히지 않았겠소.

그때는 정말 하늘이 덜컥 무너지는듯 하더군요. 앞이 캄캄해지는게…》

여기까지 말하던 늙은이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코를 풀며 눈굽을 훔치였다.

주몽은 갈길을 잊고 로파와 함께 걸어가며 그 하소연을 듣고있었다.

《세상에 나처럼 불우한 늙은이가 어디 있겠소. 생때같은 아들을 뽑아가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그런단 말이요. 살아돌아올 기약없는 그놈의 전쟁마당에서 내 아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수다. 아직두 내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지요. 내가 낳아서 내가 키운 그 아들놈이 무엇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주인없는 넋이 된지도 모르는 판이구려… 에 그 아들인들… 이 늙은 에밀 남겨두고 눈인들 제대로 감았겠소. 어허이구…》

늙은이는 다시금 설음이 북받쳐 펑펑 눈물을 쏟았다. 젊은 색시도 덩달아 눈굽을 훔치며 어깨를 떤다.

이윽고 주몽이 다시금 물었다.

《그래, 그다음은 어떻게 살아가셨소이까?》

《령감과 아들을 앞세운 년이 명은 길어서 여태껏 그럭저럭 살았지요… 이 사람을》 하며 늙은이는 곁에 선 젊은 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하늘이 무심하지 않은지 글쎄 이 사람이 곁에 있어서 살아났수다. 그런데 글쎄 저 애가 나이들면서 점점 곱게 피여나질 않소. 그것도 무슨 죄인지. 마을에서 재물깨나 있다는 아까 그 사람이 고양이 쥐노리듯 우리 애를 탐내는구려… 싫다는 재물 억지로 주고는 빚으로 만들었수다.

그리고는 이제 와서 제 집으로 끌어들이자는것이지요.

생각다못해 저 남쪽 어딘가 산다는 먼 친척을 찾아떠났수다.

후- 생각만 해도 염통이 졸아드는 지난 사연 푸념해서 무얼하겠소? 젊은네들이야 들으면 마음이나 괴로울뿐입지요.》 여기까지 이른 늙은이는 자기 머리를 툭 치며

《참, 내 수작만 하다나니 이것 참 안됐수다. 도대체 어디 가는 어떤분네들인지도 모르고 내가 그만…》

늙은이는 그제야 주몽의 쪽을 물었다. 한참 설분을 토하고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 모양이였다.

로파가 비로소 진정하고 이쪽 사정을 묻는 바람에 주몽은 미처 무어라고 대답하지 못하였다.

뒤에서 안절부절하다못해 울적해서 로파의 말을 들으며 따라오던 협부가 시들하게 끼여들었다.

《사실 이 형님과 나는 관가에서 기어코 죽이려고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래 밤도와 줄행랑을 놓던중에 늙은이를 만났소.》

협부의 반쯤 푸념조에 로인의 얼굴은 삽시에 어두워졌다.

《아니, 그러면 내가 젊은네들에게 두벌죄를 지는셈이구려. 원, 세상에 이럴데가 있나, 우리 같은거야 백번 욕보면 뭘합네까만 젊은네들이야 구만리 앞길둔 귀체들인데 어찌 그럴수 있겠소?》

로인이 황송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주몽이 보기가 민망하여 로인을 안심시키느라고 입을 열었다.

《괜찮소이다. 늙은분은 속태우지 마소이다.》

바로 그쯤해서 뒤에서 한무리의 말탄 사람들이 다우쳐왔다.

《주몽형, 아까 그놈이 작당을 해가지고 뒤따르는것 같소이다.》 협부가 말잔등에서 허리를 펴며 뒤쪽을 보았다.

《에구… 이를 어찌우? 젊은분네들, 어서 몸을 피하시우, 어서요…》

로파가 지팽이 쥔 손을 후들후들 떨며 주몽을 재촉했다. 주몽은 그러는 늙은이와 그옆에 붙어 역시 애절한 눈매로 자기를 바라보며 떠날것을 바라는 젊은 녀인을 지켜보았다. 정작 떠나자고 해도 이제는 그럴수도 없을것 같다. 훌쩍 자기들이 떠나면 이 로파와 젊은 녀인은 금시 굶주린 짐승의 밥이 되고말것이다.

오히려 자기가 끼여들지 않은것만 못하게 되였다.

《괜찮소이다! 저놈들이 정 말째게 놀며는 쳐버리고맙지요.》 하고 주몽은 속으로 결심이 서 흔연히 대답하였다.

말탄 무리들이 점점 가까이 온다. 협부가 주몽의 곁에 다가오며 물었다.

《주몽형, 이제라도 피하는게 좋지 않겠소이까?》

《가만! 협부, 늦었네. 말들도 기운이 지쳤구 또 우리가 훌쩍 떠나면 저놈들이 로파와 그 며느리를 더 사납게 대할게 아닌가?》

《젠장!》 협부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투덜거렸다.

주몽과 협부는 만일에 대처하여 준비를 갖추며 늙은이와 그의 며느리를 길섶에 피하게 하고 그옆에 옹위해섰다. 누기찬 길가의 먼지를 말아올리며 뛰여오던 말탄 무리들이 웬일인지 멈춰설념을 않고 그대로 뽀얗게 지나쳤다.

우들우들 떨던 로파가 《후-》 하고 숨을 내쉬는 참, 저쯤 달려가던 무리들이 멈추어섰다.

그중 앞서 달리던 절풍쓴 사람이 돌아서서 같이 가던 무리중 하나에게 주몽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뒤이어 지시를 받은자가 주몽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너희들은 웬 놈들이냐?》

첫마디부터가 세도밑에서 닥달한 거만스러운 소리다.

《길가던 나그네들이요.》 협부가 나서며 대답하였다.

《길가던 사람? 그걸 누가 몰라 물어? 너희 젊은 두놈은 웬 놈들이냐 말야?》

《그건 왜 묻소?》 하고 주몽이 되물었다.

《이놈 모양 보게! 관가에서 필요해서 물으면 공손히 대답할게지 무슨 수작질이야?》 주몽과 군사와의 싱갱이질을 지켜보던 로파가 엉거주춤 나서며

《저, 나으리, 이 사람은 저의 아들이올시다. 우린 한가족인데 더위 피하느라고 새벽참 떠난 길이오이다. 우린 저기 보이는 마을에서 방금 떠났소이다. 저 마을 장부자네 집에 얹혀살던 로친인데 아들이 찾아와서 같이 가는 길이오이다. 저 절풍쓴 나으리상관도 나를 알고있을거우다.》

표표한 살기를 띠고있던 군사는 주몽의 시선을 피해 늙은이와 젊은 녀인, 협부를 살펴보았다.

《아들? 그게 사실이요? 로친네!》

《아, 뉘앞이라고…》

더 할말이 없는지 군사는 다시한번 주몽과 협부를 띄여보고나서 《좌우간 너희들이 소태봉읍에 들어오면 자상하게 까보자!》 하고 벼르더니 자기 무리들한테 되돌아갔다. 그가 절풍쓴 자에게 뭐라고 하자 두목인듯 싶은 그는 이쪽을 힐끔 바라보고나서 다시 가던 길을 다그쳐갔다.

멀리 사라져가는 무리를 바라보며 주몽은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있었다. 저자들이 왜 하필 나와 협부를 찍어 물어보는가.

이러는데 로파가 주몽에게 말하였다.

《아무래도 저 사람들의 차비가 수상하구려. 저 앞서 말을 몰아가는 사람은 여기 고을에 자주 파발가지고 내려오군 하던 관리인데 오늘따라 별로 딱딱하게 그러는구려. 혹시 젊은네들을 찾느라고 그러는게 아니요?》

《아마 그런것 같소이다. 벌써 여기까지 따라왔군. 어떻게 냄새를 맡았을가?》

《주몽형, 이제는 아무래도 길 바라고 못 가겠소이다. 우린 딴 길을 잡아야 할것 같소이다.》 하고 협부가 말하였다.

《어서 그러라구요. 저쪽 산등성이 향해 길따라 가느라면 산전막이 있을거우다. 거기에 늙은이 한분이 손자를 데리고 살면서 사냥두 하고 약초를 캐면서 살고있을거우다. 맘좋은분이 돼서 젊은네들을 돌보아줄거우다.》 하고 로파가 일러주었다.

《사실은 늙은분을 모시고 함께 동행하려 했는데 일이 공교롭게 되였소이다.》 하고 주몽이 말하자 로파는 눈을 슴벅이며 말했다.

《졸지에 은혜를 입었어도 갚지 못하는게 오히려 황송할뿐이오이다. 죽지 않고 만나면 머리칼 베여 신삼아드리련만…》

주몽과 협부는 아쉬운감을 느끼며 로파네와 작별하였다. 시간을 끌어야 좋지 못하다는것을 피차가 알고있었던것이다.

늙은이네와 헤여진 주몽과 협부는 줄곧 산골길을 달렸다.

그러다가 어느 로송나무밑에 이르러 쉴 곳을 정했다. 말을 비끄러맨 두사람은 대충 요기를 하고나서 점심때가 훨씬 지나도록 잠에 골아 떨어졌다.

실컷 자고나서 얼마간 요기를 하고난 주몽과 협부는 다시 길을 떠났다.

그들이 한창 남쪽을 바라고 산길을 가는데 앞쪽에서 한 소년이 이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주몽과 협부를 지나치며 소년은 웬일인지 두사람을 찬찬히 살폈다.

두사람은 소년에게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고 지나쳤다. 협부는 산세를 보며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소년의 존재를 스쳤다. 그런가 하면 주몽은 주몽대로 아침에 헤여진 늙은이와 젊은 녀인을 생각하느라고 소년을 지나쳤다.

《아저씨들!》 하고 소년이 주몽과 지나쳐 한동안 거리가 생기자 소리쳐 불렀다.

주몽과 협부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주몽을 다시 곧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군사들이 지키는 길목에 들어서게 되오이다!》

소년의 말에 주몽과 협부는 서로 마주보았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이냐?》

《헹, 어쨌단 말이냐구요? 아저씨들은 군사들을 피해야 되지 않아요?》

《거, 당돌한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왜 몰라요? 지금 거리와 길목마다 말타고 남쪽으로 가는 두 사람을 잡아들이라고 막 야단이오이다.》

소년은 여전히 주몽을 쳐다보며 똑똑하게 말하였다.

주몽과 협부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윽고 주몽이 소년에게 물었다.

《그래, 넌 이 고장 애냐?》

《그래요!》

《너희 집이 어디냐?》

소년은 주몽과 협부가 가던 길과는 다른 오솔길쪽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쪽 산너머에 있어요.》

그러니 주몽과 협부가 하마트면 길을 잃을번 하였다.

《여기 산전막에 늙은이 한분이 손자를 데리고 살고있다는데 네가 혹시 모르느냐?》

주몽의 물음에 소년은 미심쩍은 눈길로 협부를 살피고나서 대답하였다.

《바로 우리 집이오이다.》

《그래?!》

주몽은 부지중 떠오르는 웃음을 애써 감추었다.

《참, 다행이로구나! 우리는 너희 집을 찾는중이란다. 그래 너의 할아버지가 계시느냐?》

《우리 할아버지를 만나시려 하오이까? 어인 일이오이까?》 하고 소년은 당돌하게 굴었다.

《글쎄 그런 일이 있어서…》

주몽은 소년을 주시하였다.

소년은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그럼 저를 따라오시오이다.》 하고 돌아섰다.

주몽과 협부는 소년의 뒤를 따랐다. 아름드리 로송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숲속을 헤치고나가니 제법 앞이 트인 공지가 나타나고 자그마한 등성이밑에 산전막 비슷한것이 보였다. 그앞으로는 단풍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랐는데 그밑으로 개울이 흐르고있었다. 그 개울물소리와 사방 산새소리가 어울려져 별로 적막한감을 자아냈다. 피난하기에는 그저 그만일것 같았다. 주몽과 협부는 소년의 뒤를 따라 산전막가까이 다가갔다.

집앞에서는 머리수건을 쓴 사람이 메돼지가죽을 벗기고있었다.

《할아버지!》 하고 소년이 불렀다.

《오냐. 그래 갔다왔느냐?》 하고 로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하던 일을 하며 물었다.

《그래 같이 온 사람들은 웬 사람들이냐? 사냥군들이냐?》

로인의 물음에 주몽과 협부는 놀란 눈길로 서로 마주보았다. 참으로 예민한 감각을 가진 늙은이였다.

소년이 로인에게 다가가 뭐라고 귀속말로 속살거렸다. 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로인은 허리를 펴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주몽을 찬찬히 살폈다. 주몽도 마주보았다. 오른쪽눈밑의 팥알만 한 김이 뚜렷한 늙은이다.

로인의 눈이 차츰 웃기 시작하였다.

(이 로인을 어디에선가 본것 같은데… 어디서일가?)

《임자! 나를 모르겠나?》 하고 로인이 반색하였다.

주몽은 종시 생각나지 않아 눈을 끔벅이며 로인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저런!…》 로인은 혀를 찼다.

《한 이태전에 산속에서 굶어죽게 된 한 늙은이와 손자를 구원해주던것이 생각나지 않나?》

아, 그러고보니 생각났다.

아들을 찾아 떠다닌다던 그 늙은이! 사람의 인연이란…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이야.

《아! 로인님이시군요?!》

주몽은 말에서 뛰여내려 로인에게 다가갔다.

《반가우이! 반가워! 참, 사람이 죽지 않으면 인연이 있어 이렇게 만나는구려! 자, 어서, 어서…》 로인은 칼을 집어내치고 주몽을 집앞으로 안내했다.

《협부, 로인님에게 인사올리게. 언제인가 내가 방목할 때 만났던 로인일세. 내 친구 협부오이다.》

협부도 말에서 내려 로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협부의 인사를 받고난 로인은 팔소매로 허연 수염이 난 입술을 쑥- 닦고나서 말하였다.

《오늘 귀한 손님을 맞이할줄 알고 그놈의 메돼지가 진상을 왔었군. 허허, 좀 기다리게. 이제 불을 피우고 한바탕 구워보세. 그사이 지난 회포나 나누고…》 하고 일어서던 로인이 손자를 보고 말하였다.

《참, 네가 아직 인사를 못했지? 자, 어서 인사를 올려라.》

소년이 볼에 발그스름한 빛을 지으며 주몽앞에 무릎꿇고 절을 했다.

주몽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이애가 그때 그 소년인가요?》

《그렇다네.》

《이태사이에 이제는 대장부가 다됐군요, 하하! 그래 네가 날 알겠느냐?》

《알지 않고요. 난 처음부터 알아봤는데요.》

《그래? 어떻게? 난 미처 너를 몰랐댔는걸?…》 하고 주몽이 말하니 소년은 으쓱했다.

《난 형님을 제꺽 알아보았소이다. 마을에 내려가니 온통 형님을 잡으라는 소리인데 임금님 말 먹이던 사람이라 해서 형님인줄 알았소이다.》

소년은 새별같은 눈으로 주몽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주몽은 그러는 소년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를 한품에 껴안았다. 동생이 없는 주몽에게는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혈육의 정이 솟구쳤다.

인차 협부와 소년은 뒤산에 나무가지러 가고 주몽은 로인과 함께 고기감을 손질하였다.

《그래, 그사이에 어떻게 지내셨소이까?》

《내가 임자와 헤여진 후 그럭저럭 고향으로 간다고 오는것이 여기까지 흘러왔지. 그사이 찾던 아들은 영 못 돌아올 구천에 갔다는걸 함께 있던 사람한테 들었지… 후- 고향으로 가고싶은 생각이 영 없더구만, 그럴 맥도 없었구… 그럭저럭 여기에 정을 붙였지. 내가 나서자란 고향은 아니여도 단군선인의 땅이여서 그런지 어딜 가나 사람들의 정이 무르고 제 친혈육처럼 도와주길 좋아하더구만. 그래 여기에 머물고말았지. 하긴 그게 잘한것 같아. 고향이라고 가야 속이나 더 쓰릴걸…》

《그러시오이까? 그사이 고생이 많았겠소이다.》

《고생이야 뭘… 나야 하늘아래 땅을 다 밟아본 사람인걸… 그사이 산전수전 다 겪었지. 그저 불쌍한건 온다간다 소리 한마디 없이 사라진 죽은 사람들뿐이지… 그것도 하늘의 뜻인걸 어찌겠소?

자, 그런 소린 그만하고… 임자는 어찌된 일인가?》 하고 로인이 주몽에게 물었다.

주몽은 그동안 대소왕자들의 시기질투때문에 집떠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주몽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로인은 장탄식을 하였다.

《왕자들의 시기가 그렇듯 심하단 말인고? 그러니 단군선인의 정통을 이었다고 하는 부여왕실도 그것으로 망하고야말겠구나! 자고로 시기많은 곳에 충신이 없고 충신이 없는 곳에 나라 또한 없는 법일세! 백성들이 아는 세상리치를 어쩌면 귀족들이라 하는이들이 모른단 말인고… 허허, 참으로 괴이타! 말을 듣건대 예전에 단군선인의 치하에서는 사람을 가리여 문무뛰여나면 으뜸이요 못하면 버금이라 재주와 힘을 겨루어 그 쓸모를 료량하니 천하가 공평했다 하였거니, 세월이 흘러 단군선인의 뜻이 쇠락해져 옛 성인이 이루어놓은 성지는 사분오렬되니 점차 망해가는 판인지고!

글쎄… 귀족세가들이야 나라가 망하든말든, 성지야 있든없든 눈앞의 리속만 따지면 그만일터이지만 그 짬에 죽어가는건 나라의 근본인 백성과 성지뿐이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요?!》

로인은 주먹으로 자기의 동가슴을 탕탕 쳤다.

주몽은 고개를 수굿하고 로인의 절규를 가슴아프게 듣고있었다.

한참후 로인은 충혈된 눈으로 주몽에게 물었다.

《그대는 장차 어찌하려고 하오?》

주몽은 로인을 마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똑똑하게 대답하였다.

《장차 단군선인의 뜻을 부활시켜 그 성지를 부흥케 할 결심이오이다!》

로인의 놀란 눈이 새삼스럽게 주몽을 훑어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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