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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 1 부

 

탈 출

 

12

 

무연하게 펼쳐진 보리밭이 누렇게 익어가고있었다. 인적이 없는 밭우에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만물의 잠을 재촉하고있는데 이따금 이름모를 새가 푸드득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지군 하였다. 눈뿌리 아득하게 푸른 구름과 보리밭이 잇닿아있는 곳에 무언가 검은 반점이 나타났다.

점점 커지는 모양이 말을 탄 사람이였다.

말탄 사람은 말잔등에 몸을 바싹 붙이고 어찌나 세괃게 말을 몰아대는지 말이 지나치는 곳에서 땅이 진동하였다. 그 바람에 보리밭속에서 기여다니던 메추리새끼가 기겁을 해서 달아나군 하였다.

말은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보리밭뚝을 지나 하얗게 핀 찔광이덩굴이 무성한 등성이우로 사라졌다.

등성이너머 얼마쯤 내려가면 《신선의 샘물》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은 자그마한 시내가 흐르고있었다.

사방 백리안팎에 하나밖에 없는 시내여서 오고가는 사람들은 이 시내물을 꼭 마시게 되여있었다.

보리밭을 지나 등성이를 넘어선 말탄 사람은 이 시내가에 닿자마자 말에서 훌쩍 뛰여내려 온몸을 내가에 담그다싶이 하며 물을 꿀꺽꿀꺽 마시였다. 그것도 성차지 않은지 두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에 끼얹었다.

그리고나서야 드디여 얼굴을 쳐들었다. 그의 얼굴에서 땀인지 물방울인지 줄줄 흘러내리였다. 그는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그는 오이였다.

오이는 방금 말을 타고 달려오느라고 상기된 얼굴에 미소를 짓고서 조심히 물을 마시는 말을 바라보고있었다.

떠날 때 울적하던 마음이 말을 달리고나서인지 한결 풀렸다.

봄의 사냥경기이후에도 오이는 답답하게 집에 박혀있었다. 례나루스승은 물론 주몽도 오이를 아는체도 안했다. 물론 협부가 몰래 찾아와서 아직은 그래야 한다고 하였지만 오이에게는 진정 괴로운 일이였다.

그러던 때 할머니가 급히 앓는다고 전갈이 와서 오이는 차라리 잘됐다고 떠난 길이였다.

물을 마시는 말이 투레질소리를 요란스럽게 냈다.

어째서인지 그 소리가 오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였다.

오이는 내가의 물푸레나무밑둥에 몸을 기댔다. 시중군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던 어머니의 권고를 만류한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옆에서 누가 성가시게 굴지 않는 지금이 좋다.

지친 오이는 어렴풋이 잠이 들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았다. 내물이 참 맑구나, 언제인가 들으니 이걸 신선의 샘물이라고 한다지? 참 재미있는 이름인걸… 어렴풋이 잠이 들던 오이의 귀에 시끄러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긴 기분이 좋은데… 참 별난 소릴 다 듣는군.

죽여버려야 해!

누굴 죽인다는거야? 거, 참.

아차! 이건 뭔가 이상한데?

오이는 눈을 떴다. 그사이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낯모를 사람들이 나타났다.

두사람이다.

한사람은 낫을 쥐고 다른 사람은 작살을 쥐고있었다.

오이가 눈을 뜨는 기미를 챘는지 작살이 서슬푸르게 날아들었다.

《이건 또 뭐야?》

오이는 코밑의 작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들었다.

머리가 풀어지고 낯이 질그릇처럼 거무스레한데 입술은 터갈라졌다. 몰골이 한심하였다.

《그쪽에서는 도적들이요? 아니면…》

낫을 든 사람은 힐끔힐끔 오이를 바라보면서도 내가에 시선을 두고있었다. 몹시 목마른 모양이였다. 오이가 잠든 사이에 무엇엔가 쫓기는 이들이 나타났던 모양이다. 오이를 발견하고는 내물도 미처 마시지 못하고 어쩔가 망설이던것 같았다. 수상한자들이다. 보건대…

오이는 짐짓 하품을 했다.

《아니면 도망친 노예들이요?》

갑자기 상대방의 눈길이 사나와졌다.

《죽일 놈!》

작살이 쿡 찌른다.

오이는 날쌔게 손등으로 작살을 퉁기고는 몸을 뒤채며 작살쥔자의 허리를 찼다.

과녁잃은 작살이 땅에 꽂혔다.

낫이 달려들었다.

오이는 한고패 휙- 돌며 발꿈치로 낫을 휘두르는자를 후려찼다.

낫이 떨어지고 쿵 하니 땅에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맨 처음 달려들던자가 작살을 쥐였다. 작살이 쌍고리모양을 휙휙- 긋는다.

이건 제법인걸, 대단한 창다루기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잘 훈련받았군. 괜찮아, 혹시 자객들인가?

작살이 오이의 목고대를 향해 쑥- 날아들었다.

머리를 휙 돌리니 코밑으로 작살이 서늘하게 꿰지른다.

작살이 다시 들어가 어지럽게 허공을 찢더니 이번에는 아-앗 소리와 함께 통가슴을 찌른다.

오이는 뒤로 버드러지며 두발목 엇걸이짬에 작살을 잡아넣고 모로 돌았다. 오이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작살이 그의 발밑에 깔려있었다.

얼빠진 상대는 멍하니 서있었다.

차츰 그의 메밀눈이 증오로 빨갛게 되여갔다.

《퉤!》

메밀눈은 할일을 다했다는듯 넘어진 제 동료에게 다가갔다.

괴짜다.

오이는 작살을 땅에 꽂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물을 먹이오.》 하고 오이가 소리쳤다.

메밀눈은 응당하다는듯 내가에서 물을 손바닥에 움켜 떠다가 먹이였다. 그러자 몸이 움직이더니 상대방의 동료가 일어났다. 그들은 사로잡힌 사슴들마냥 오이를 바라보다가 모든것을 체념한듯 내가로 갔다. 두사람은 내가에 엎디여 꿀꺽-꿀꺽 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이가

《당신들은 누구요?》 하고 물었다.

물가에서 몸을 일으키고 퍼더버리고앉았던 메밀눈이 흥하니 코방귀를 뀐다.

《알면서 뭘 그러우?》

《도망친 노예들이라 그 말이요?》

그러자 메밀눈이 다시 새파래졌다.

《싫다면 그만둡시다. 보아하니 몹시 배고픈것 같은데…》

오이는 말에 매달았던 주머니에서 먹을것을 꺼내주었다.

《이걸 먹소.》

두사람은 잠시 서로 마주보았다. 수염에서 아직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죽는것도 먹고난 뒤에 볼일이다.

두사람은 정신없이 입을 놀렸다.

배를 채우고나니 몸이 풀리는 모양이다.

《그쪽은 대체 누구요?》

낫을 쥐였던 사람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길손이요.》 하고 오이가 대답하니 낫을 쥐였던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길손은 좋은 사람같이 보이는군… 우린 사실 여럿이였소. 그런데 이래저래 다 죽고 우리 둘만 남았소. 우린 노예요…》

《아니 지금은 노예가 아니야.》

메밀눈이 매섭게 소리쳤다.

오이에게는 그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노예들이다. 도망친 노예! 나라법이 노예에 대해서 어떻게 한다는걸 오이는 잘 안다. 도망친 노예는 벌써 죽음의 문턱에 한발 들여놓은 사람이다. 노예란 죽음과 통하는 존재다. 나라법이 그렇다. 도망친 노예와 상대하는자도 결코 무사치 못하다.

그런데 뭐 어쨌어.

오이는 피식 웃었다.

《나는 가야겠소. 쉴만큼 쉬였으니까…》

오이가 말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어디까지 가는 길손인지 모르겠소만 우리에게 먹을것을 다 주었으니 어찌겠소?》

처음으로 메밀눈이 다정하게 물었다.

《괜찮소. 나는 거의다 왔으니까.》

오이는 박차를 가했다.

《고맙소.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납시다. 나는 모수이고 이 사람은 고마요.》

《난 오이요.》 하고 오이는 소리쳤다. 두사람은 오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두커니 서있었다

오이가 찾아간 큰아버지의 집은 말을 타고도 사흘길이였다.

수도에서 떨어진 지방에서 벼슬을 사는 오이의 큰아버지는 오이가 찾아온것을 못내 기뻐하였다.

그러나 오이가 찾아간것은 큰아버지나 사촌누이들을 보러 간것이 아니였다.

할머니 고씨가 이제는 나이가 많아 바깥출입을 못하게 되여 몹시 앓는다며 오이를 보내달라고 하루가 멀다 하게 재촉해왔기때문이였다.

오이는 집안의 장손이였다.

아들이 없이 딸들만 주런이 둔 큰아버지는 자기의 조카 오이를 집안의 장손으로, 자기 아들맞잡이로 여기고있었다. 그것은 할머니의 간곡한 조언과 오이에 대한 그자신의 사랑에서 오는것이기도 했다.

오이가 온것은 큰아버지의 집에 있어서 하나의 큰 경사였다.

자리에 누워 앓고있던 할머니였건만 어디서 그런 기력이 났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이의 름름해진 어깨를 붙들고 어쩔줄 몰라하였다. 큰아버지도 웬만한 일은 다 아래사람들에게 맡겨버리고 오이와 마주앉아 줄곧 문안과 시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의 지청구에 지리해났던 한구들 되는 누이들이 오이를 제법 내우하며 저희들끼리 속살거리며 킬킬댔다.

떠들썩한 하루가 지나고 할머니와 마주앉아 늙은이의 심심풀이를 해주는 오이에게는 세상만사가 다 잊혀지는듯 하였다. 어째서인지 오이는 큰아버지의 집에 오자 마음이 정화됨을 느꼈다.

할머니로부터 큰아버지, 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순박하고 극진하게 대해주는것이 오이에게는 기꺼웠다.

늙은 할머니는 오이를 놓치기라도 할가봐서인지 내내 손자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다 큰 너를 보니 신통히도 네가 아비의 모습을 빼물었구나. 네 아비가 네 나이쯤 됐을 때엔 대단했느니라… 어릴적에는 또 어떻구…》

할머니는 어릴적 오이 아버지일이 생각나는지 이빠지고 주름잡힌 얼굴에 호박꽃을 한껏 피워놓는다.

《할머니, 우리 아버지 어릴적 이야기나 들려주사이다. 듣자오니 어릴적에 아버지와 금와왕사이가 자별했다 하오이다?》 하고 오이는 늙은이의 피기없는 손을 쓸며 물었다.

오이의 청은 할머니에게 무척 즐거웠다. 집의 손녀들은 언제한번 이런 즐거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었다. 늙은이들에게 남은것이란 과거뿐이요, 그것은 후세들에게 자랑할수 있는 유일한 밑천이다. 그걸 계집애들이 알턱이 있노. 오이니까 묻는거지… 이렇게 오래간만에 만난 손자에 대해 늙은이는 사랑의 덤붙이기에 여념이 없는것이다.

늙은이는 오이가 베여 넘겨준 과일 한쪼각을 오래동안 호물거리다가 삼켜버리고 지나간 이야기를 시작했다. …

긴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있던 할머니가 오이를 보며 《오이야, 너 장가들지 않느냐?》 하고 물었다.

《?…》

《듣자니 맞춤한 처녀가 나서서 장가들이려 하는데 네가 기를 쓰고 반대한다면서?…》

오이의 얼굴이 지지벌개지였다. 장가소리만 나면 때없이 화로불을 마주하고 선듯이 얼굴이 뜨거워나고 어쩔바를 모르게 되는 오이였다. 참으로 이상하고도 안타까운 일이였다.

《그… 그런것이 아… 아니오이다.》 하고 오이는 변명했다.

《그런게 아니라니? 너의 어미가 몹시두 안타까와서 하는 모양이던데… 옛날부터 사내란 장가를 들어야 어른이 되는 법이야! 너 나이가 이제는 적지 않은데 그렇게 시누런 호박이 될수가 있느냐?》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나도 이제는 몇날 살것 같지 못한데 집안의 장손이 장가드는걸 봐야 눈을 감을것 같구나. 오이야, 내 말 알겠느냐? 내 이제 너의 큰아비한테 말해서 너를 당장 장가들일테다.》

오이는 점점 불속의 감자알처럼 타들어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늙은이는 더 세차게 불을 지핀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나 너 두고봐라. 너의 큰아비랑 네 어미랑 그렇게 하기로 내조가 돼있어…》

오이는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쳐들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입을 호무리고 웃어댔다.

《흐흐흐, 어쩌면 사내자식이 저렇게도 고지식하담…》

점심참이 되였다.

큰상이 차려졌다.

큰아버지는 못내 사양하는 오이를 불러 맞상을 하고 술까지 따랐다.

《네가 어느덧 헌헌장부가 되였구나. 그러니 이제는 이 큰애비와 술마실 때도 됐다. 딸밖에 없는 나는 그저 너를 친아들로 생각한다. 실로 친아들이고, 게다가 할머니의 사랑도 극성이니 우리 집에서 쉬이 떠날 생각말고 띠를 쭉- 풀어라.》

큰아버지는 놋잔에 술을 손수 쳐주며 희색이 만면했다.

오이는 또다시 당황해났다.

《제가 어찌 큰아버지앞에서 술을 들겠소이까. 제가 따를터오니 어서 드사이다.》

《허, 무슨 소리, 이건 네가 장부된걸 빌어 내가 따르는것이니 사양말게.》

《오이야, 술 마셔봐라. 그래야 수염발이 굵어진다더라.》

할머니의 추김이다.

오이는 권에 못이겨 술잔을 비웠다.

몇순 돌고나니 내외가 화락해졌다.

큰아버지는 저가락질을 하다가 오이를 넌지시 보며 물었다.

《그래, 네 나이쯤 됐으면 문무를 익혀 벼슬길에 올라도 되지 않겠나? 어쩔셈인가?》

《아직 생각없소이다.》

《흐흠, 우리 사내끼리 하는 말일세만 나는 금와왕의 은총으로 벼슬을 지내면서도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다네. 하긴 나같은 촌놈이 무얼 알겠나. 하지만 자네야 다르지 않나? 대처에서 그만큼 나서자랐겠다, 집안도 뜨르르하겠다, 응?》

《그래 큰아버지는 벼슬살이가 마음에 드시오이까?》

《마음에 들고말고있나? 세상민심이 그리로 쏠리니 하는것이지… 그래 벼슬이 싫다면 장차 어쩔셈인가? 무위도식할수는 없는것이고 또 시골귀신될수도 없는 일이고…》

오이에게는 별안간 주몽과 벗들이 그리웠다. 푸른 하늘, 푸른 들, 질풍마냥 내닫는 푸른 꿈, 얼마나 좋은것인가. 그속에는 자유의 넋이 있었다. 질시하는 눈초리와 뱀의 혀바닥, 그 누깔과 같은 벼슬의 다툼이 없었다. 그속에서 래일은 오늘보다 더더욱 아름답고 아침의 기지개는 꿀처럼 달았다.

오이는 주몽을 그렸다. 그가 하던 말들이 쟁쟁히 들려왔다.

내 나라, 내 겨레 위해 거룩한 단군선인의 뜻을 부활시키자.

그렇다! 이것이 주몽과 자기들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청운의 포부이며 청춘의 큰뜻이 아니였던가!

얼마나 가슴뿌듯해지는 우리의 뜻, 우리의 포부인가!

우리 그 큰뜻 기어이 이루리라! 설사 실현될수 없다 해도 사나이 한번 나서 천하를 떨칠 큰뜻 품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사나이랴.

뉘는 그걸 알면서도 용략이 부족해서 못하는가 하면 또 뉘는 때를 잘못 만나 못하며 미련해서 못하는이들도 많다.

그래, 주몽과 우리의 벗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오이는 큰아버지에게 자기의 생각을 터놓고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이르다.

오이는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점심상을 물린지도 이윽해서였다.

뜨락에서 집 하인들과 누이들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듯이 키득거리며 떠들어대고있었다.

《웬일이냐?》 하고 오이가 물으니 그중 막내누이가 돌아서며 《웬 벙어리아이가 왔소이다.》 하고 키드득거린다.

벙어리?

오이는 급히 뜨락으로 나왔다.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니 과연 벙어리소년이 뒤돌아서서 무슨 손짓을 해대는데 그걸 보고 누이들이 한편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한편 재미있어 방글거린다.

오이는 벙어리의 뒤모습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혹시?…

벙어리소년이 휙- 돌아섰다.

순간 오이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네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느냐?》

오이가 다급히 물었다.

이 소년은 해리와 추연의 동생이다.

그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을가? 이것은 뭘 말해주는것일가?

《오라버님, 아는 사이오이까?》 하고 오이와 벙어리소년을 살피던 누이가 호기심을 내며 물었다.

《응? 그래, 그래.》

벙어리소년은 오이에게 무슨 시늉을 했다. 오이는 그 시늉으로 추연이 여기에 함께 왔다는것을 감촉했다.

《어디 있느냐?》 하고 오이는 물었다.

벙어리는 머리를 끄덕끄덕 하더니 어디론가 냅다 달려갔다.

벙어리!

불쌍한 저 애가 오이의 운명에서, 추연이와의 사랑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될줄은 오이자신도 그 누구도 몰랐다.

집안에서는 없는 자식, 거치장스러운 자식으로 치부되여오는 저 벙어리소년을 오이가 비로소 알게 된것은 어느때부터였던가?

주몽이 을나와 결혼하고, 마리가 대소수하에 들어가고, 자기는 례나루스승의 권고로 집안에 들어가게 된 그날, 류달리 쓸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오이는 자기앞을 막아선 한 소년과 마주쳤다.

그가 바로 추연의 동생, 흔히 사람들이 벙어리라고 부르는 그 애라는것을 오이는 대뜸 알았다.

오이는 흥미를 가지고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오이는 서서히 그리고 놀랍게도 그 벙어리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자기를 느꼈다.

항간에서는 벙어리를 두고 흔히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병신이라고 치부하며 사람값에서 버금에 둔다.

그러나 오이는 자기로서는 처음으로 그것이 오해라는것을 느낀것이다.

성한 사람과 꼭같이,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뛰여난 점이 있는 한 인간을 오이는 발견하였다.

《네가 나를 아느냐?》 하고 오이는 물었다.

오이의 입을 지켜보던 소년의 눈에서는 밝은 빛이 반짝이였다.

오이는 그 눈빛을 통해 벙어리가 자기의 말을 알아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네 누이가 보내더냐?》 하고 오이는 다시 물었다.

소년의 눈은 다시 반짝이였다. 그리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네가 나를 만나려고 우정 왔느냐?》

소년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어째서?》

소년의 눈빛이 당황해졌다. 맑은 빛으로부터 침울한 빛으로 순간적인 변화를 일으키더니 다시 메마르고 날카로운 빛을 띠였다가 젖어드는 눈빛으로 되였다.

그래, 이 소년이 무엇을 말하고있는것인가? 혹시 이 소년이 추연이와 나사이의 관계를 알고 그 어떤 문제를 풀어보려고 나타난것이 아닐가? 오늘 내앞에 불쑥 나타난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애가 적어도 한두번은 내 얼굴을 보았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겠는가… 가만, 혹시 이애는 자기 누이와 나사이에 말이 났을 때부터 나를 살펴보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애에게 유일한 동무는 오로지 자기의 누이 추연이뿐 아닌가? 추연이 생각하는것을 이애가 모를리 없을것이다.

오이는 이애와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다행히도 오이의 천성적인 순박하고 진실한 마음이 그것을 알게 한것이다.

형은 잘못하고있어. 우리 누이 좋아.

어째서 우리 누이 괴롭히나? 우리 형때문에? 우리 형 해리 나빠. 우리 누나 속상해서 그래. 바로 형때문이야. 오이형 만나러 왔어. 내 매부가 돼줘. 난 오래전부터 오이형 지켜보았어. 형을 알아. 형은 좋아. 형은 큰일할 사내야. 나 그거 알아. 누이도 알아. 우리 누이 정말 좋아.

우리 누이를 사랑해줘. 응? 그럼 나도 형께 감사할게.

이것은 물론 오이의 속마음으로 생각해본것이다. 그러나 오이는 그것이 소년의 눈에서 읽은것이라는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이는 맘이 뭉클해지는것을 느꼈다.

《내가 너의 매부됐으면 좋겠느냐?》 하고 오이는 젖어드는 소리로 물었다.

벙어리소년은 오이의 입술을 오래동안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였다. 소년의 류달리 맑고 반짝이는 눈에서 이슬이 흘러내렸다.

오이는 벙어리소년과 친해졌다.

소년은 오이와 추연이 사이를 사랑의 뉴대로 이어주기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했다. 그 애의 견인불발의 노력을 두고 청춘남녀는 놀랍게 생각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오이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디론가 달려갔던 벙어리소년이 나타났다.

《어디 갔댔느냐?》 하고 오이가 물었다.

소년은 상글상글 웃으며 오이를 바라보더니 자기가 들어온 대문쪽을 가리켰다.

오이와 사촌누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순간 오이는 놀랐다.

열려진 대문으로 추연의 모습이 보였다. 추연은 머뭇거리고있었다.

추연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을가? 이것이야말로 오이에게는 청천벽력같이 여겨졌다.

오이가 어쩔줄 몰라 우두커니 서있는데 할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누이 하나가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뭐라뭐라 귀속말로 속살거리자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리였다.

《오이야, 네 색시감될 처녀가 왔다면서?》

《예?! 저 할머니… 색시감이야 뭘…》

《어디 보자꾸나.》

오이의 얼굴은 도적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먹빛으로 되여갔다.

추연은 오이의 사촌누이가 열어놓은 문밖에서 주춤거렸다. 처녀는 낯선 사람들속에 선뜻 나서기가 멋적은지 망설이고있었다.

그래도 본래 교양이 있어서인지 추연은 할머니앞으로 다가가 깍듯이 례를 올렸다.

늙은이는 손녀들의 부추김을 받아 반쯤 일어나 장래 손주며느리감의 얼굴이며 자세를 깐깐히 훑어보더니 마침내 머리를 끄덕이며 주름잡힌 얼굴에 웃음발을 띠였다.

로인은 추연을 집안으로 들인 다음 추연의 집안래력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며 담소하였다.

오이는 토방에서 서성거리며 불안스러운 마음을 가까스레 누르고있었다. 그에게는 규방처녀의 몸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추연의 행실이 못내 괴이쩍게 보였다. 혹시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로 보낸것이 아닐가? 할머니도 그 비슷한 말씀 하지 않았는가.

자기가 여기 왔다는것을 추연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또 어떻게 알았다고 하더라도 오이의 부모에게 숨길수는 없는 일이니 이것은 오이의 부모가 우정 추연을 추동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벙어리소년의 출현은? 추연이 하필 그 애를 데리고 여기에 나타난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궁성에서 여기까지가 어디라고?

오이는 뭐가 뭔지 몰라 뒤숭숭해졌다.

이러그러 있는데 할머니가 문을 다시 열며 오이를 불렀다.

《오이야, 어서 들어오렴. 여기 랑자가 만사불구하고 왔으려니…》

오이는 그답지 않게 쭈빗쭈빗거렸다.

할머니와 숱한 누이들앞에서 추연이와 함께 있는것이 게면쩍은 노릇이지만 그건 그렇다치고라도 우선 추연이 나타난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애매하여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이제 사촌누이들은 물론 할머니와 큰아버지 내외가 규방처녀가 외간남자네 집에 찾아온것을 어떤 눈으로 보겠는가?

종내 오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는 제편에서 끊어진 말을 이었다.

《그래, 랑자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혹 무슨 사연이 있을듯 한데 어인 일이요?》 하고 할머니가 물었다.

늙은이의 물음에 추연의 얼굴은 감복숭아빛이 되여 머리를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해서야 추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저의 오라버니가 대소왕자님을 모시고있사온데 전일 우연히 오라버니 하는 말 듣자오니…》 하며 더 잇지 못하고 바재이다가 오이쪽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불원간 거기에 루가 미칠것 같아 례의렴치 불구하고 왔소이다. 할머니는 너그럽게 용서하시오이다.》

덤덤히 추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오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오이와 추연의 시선이 불현듯 마주쳤다.

《내가 이왕에 잘못 저지른게 없는데 무슨 루가 끼친단 말이요?》

오이의 무뚝뚝한 물음에 추연은 왈칵 눈물을 흘린다. 샘처럼 맑은 눈물이 부채살처럼 퍼진 추연의 속눈섭밑으로 슴새여나와 뺨을 적신다.

그 바람에 놀란것은 비단 오이뿐이 아니였다. 자태고운 처녀가 통성명없는 낯선 집에, 그것도 사내를 찾아온데 대해서 일견 비웃음과 호기심을 머금고있던 사촌누이들과 할머니는 모두 새삼스러운 눈길로 추연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추연에 대한 동정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추연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을념도 못하고 자초지종을 밝혔다.

《오라버니가 심복과 더불어 밀담하는것을 듣자오니 불원간 주몽과 그의 친구들을 없애버리려고 하오이다. 소녀 그 말을 듣자와 사세부득하여 달려왔나이다.》

《그 음모라는게 어떤것이요?》 하고 오이가 물었다.

《그건 소녀도 모르오이다.》 추연은 그제야 눈굽을 씻으며 대답하였다.

아까부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오이와 추연의 대화를 듣고있던 할머니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냐? 오이야, 난 듣고도 모르겠구나. 네가 혹시 반역이라도 한것이 아니냐?》

오이는 놀란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니오이다. 할머니, 너무 걱정마시오이다.》

이때 큰아버지가 오이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오이는 큰아버지가 부르는 곳으로 갔다.

오이가 들어오는것을 본 큰아버지가 대뜸 《네가 주몽을 아느냐?》 하고 물었다.

《아오이다.》 오이는 엉겁결에 대답하였다.

《그래?》 큰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궁성에서 큰 화재가 났다고 하더라. 워낙 임금의 목장이 불탄 큰일이 돼서 그 주범인 주몽을 잡으라는 어명이 내렸구나. 네가 그 일을 모르고 여기에 왔으니 죄될거야 없겠지만 혹시 그 불찌가 너에게 미치지 않겠느냐?》

큰아버지의 예측이 옳을수 있다. 추연의 말과 벌어진 일을 대비해보면 이번 일은 분명히 주몽을 모해하기 위한 왕자들의 음모이다.

《그래, 그 <주범>을 잡았다고 하오이까?》

《아니, 조회가 들어온것을 보면 이쪽으로는 오지 않은것 같다. 하여튼 이번 일이 너와 상관이 없으니 별일 없겠지만 당분간은 꼼짝 말도록 하여라.》

큰아버지의 방을 나선 오이의 심중은 자못 복잡하였다.

우선 주몽형이 잡히지 않았다니 맘이 놓이나 장차 이 일이 어떻게 번지겠는지, 또 자기는 어떻게 해야겠는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오이는 발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걸어갔다.

사람의 일이란 정말 촌보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하루만 늦게 떠났어도 오이는 주몽과 함께 떠났을것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맹랑하게 벌어질줄 어이 알았겠는가? 그건 그렇고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 이제라도 주몽형을 따라가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 평소에 주몽형과 다진 그 맹세를 어떻게 잊을수 있는가.

그런데 떠난다면 할머니는? 그리고 그처럼 친절한 큰아버지와 가족들은?

자기가 이제 훌쩍 떠나기는 쉬워도 그후의 일은 어떻게 번질것인가? 틀림없이 대소의 무리들은 자기와 주몽형을 잡자고 할것이며 그로부터 가족들에게 피해가 올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들 이 오이를 얼마나 원망할것인가?

오이는 자기를 바라보는 친척들과 부모의 선량한 얼굴에서 제발 떠나지 말라고 하는 간절한 빛을 력력히 느끼였다. 그리고 추연이는 또 어쩌면 좋을가?

오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한팔이 뚝 떨어져나간다고 해도 이보다 아프지는 않을것이다. 몸의 아픔은 실상 부모형제와 친척친우들이 자기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통으로 오는 내심의 그 아픔보다 덜한것이다.

졸졸 흐르는 자그마한 시내가에서 걸음을 멈춘 오이는 오래도록 그 개울물이 흐르는 모양을 들여다보았다.

가자!

여느때는 그렇듯 평범하게 울리던 이 한마디 말이 지금 오이에게는 천근만근의 무게를 드는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발바닥이 엿판에 들어붙은듯 하다.

가자!

뜻과 벗을 따라가자! 하고 오이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인정무른 오이의 마음속에는 괴로움이 서리서리 웅켜돌았다. 그것은 부모와 친척, 친지들에 대한 생각이였다.

오이는 후- 하고 숨을 내쉬고나서 개울을 훌쩍 뛰여넘었다.

문득 눈앞에 추연이 나타났다.

흰 베로 만든 면의를 입고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추연의 앞에서 오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떠나시겠소이까?》 하고 추연이 조심히 물었다.

오이는 추연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떠나겠소.》

《어디로 가시나이까?》

오이는 생각했다.

어디로 가는가고? 주몽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럼 주몽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주몽은 아마도 남쪽으로 갔을것이다. 언제인가 주몽은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남쪽에 별이 모인다고…

《남쪽으로 가겠소.》

《저도 따라가겠나이다.》

《뭐라구?》

《저도 따라가겠나이다.》

추연은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오돌차게 대답하였다.

순간 오이는 당황하였다. 추연과 자기와의 사이에 그러루한 소문이 들릴 때부터 두사람은 실상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이 합수되였었다. 오이는 그것을 짐짓 추연의 오빠인 해리를 빗대고 외면하려는 방향이였지만 추연은 그렇지 않았다. 오이에게 살같이 내달리는 추연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오히려 오이에 대한 추연의 사랑을 부채질해주는것으로 되군 하였다.

언제인가 해리가 오이를 못마땅해하며 관계를 끊으라고 했을 때 추연은 하마트면 오래비에게 달려들어 행패질할번 하였다.

추연의 마음이 너무나 열렬한것이여서 곁에서도 이상스럽게 여길 지경이였다.

무엇이 이 처녀의 가슴을 그토록 사품치는 사랑의 대하로 사무치게 하였던가? 추연의 천성적인 열렬한 성격때문인가? 물론 그것이 기초로 되였다. 하지만 그것만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오이의 사내다운 씩씩한 모습과 거쿨진 체격, 순박한 성격, 그 때문인가?

추연은 자기자신을 설명할수가 없었다. 자기를 걷잡지 못하는 오이에 대한 사랑은 그 모든것이 하나로 뭉쳐 어딘가 한곳에로 지향하고있었다.

만약 자기들사이에 아무러한 물의도 없이 결혼이 성립될수 있었다면 추연의 마음이 이렇듯 세차게 불타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반발력이 그 누구보다도 강한 추연에게 부닥친 해리의 불만스러운 태도는 오빠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추연에게 오이의 숨겨진 성격적미를 깨닫게 하였으며 그것이 세찬 발동력으로 되였었다.

오이는 추연의 불타는 얼굴을 지켜보다가 말하였다.

《정신나간게 아니요? 우리 사이에 어떤 약속도 있은게 없는데 어딜 따라간다고 그러오? 더구나 남쪽 어디로 가는가 하는것도 아직 확실치 못한데…》

《그럼 저는 어떻게 하오리까?》

추연이 다그쳐 물었다.

그것도 문제다. 추연이 인제 어떻게 하겠는가? 집으로 돌아갈수밖에 없지 않는가?

추연이 오이의 표정에서 속마음을 읽은듯 말하였다.

《제가 집을 떠나올 때 한갖 규방처녀로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떠나왔다고 생각지 마시오이다. 오로지 님의 신상이 걱정되여 떠나온 길 어찌 후회하오리까. 제 마음 이미 님에게 허락한지 오랬으니 이제는 저를 데리고 가시든지 아니면 죽여버리고 가시든지 량단간의 한길을 택하시오이다. 님가는 곳에 같이 가지 못한다면 제가 죽어 혼이라도 같이 가겠소이다.》

추연은 고개를 숙이고 점점 울음터지는 소리로 말하였다.

오이의 넓은 가슴에 자기에게 순정을 바치는 한 처녀의 순결무구한 사랑이 고패쳐올랐다.

《추연이!》 오이는 추연의 어깨를 그 커다란 손으로 덥석 쥐고 자기의 가슴에 안았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오이는 추연에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멀리해서 이때까지 그렇게 대한건 아니오.》

《저도 아오이다. 그걸 몰랐다면 어찌 오늘이 있겠소이까?》

《하지만 추연. 이것 보오. 나는 지금 모든것을 다 버리고 주몽형을 찾아가려고 하오. 나를 사랑하는 그대의 마음처럼 내 마음 또한 주몽형에게 달리는것을 어찌할수 없구려. 주몽형과 나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오. 내 말을 믿어주오. 그러나 이것은 사내들이 하여야 할일이요. 추연도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추연, 내가 주몽형을 찾고 자리를 잡으면 그대를 찾아올테요. 그때까지는 주몽형의 어머니와 을나를 찾아가 의지하고있소. 그들에게 가면 피차간에 마음이 통할거요.》

추연은 오이의 말을 묵묵히 듣고있었다. 류화와 을나에 대한 오이의 말은 한순간 추연의 마음을 어루만져놓았다.

《언제 다시 오시며 언제 다시 보겠나이까? 이 몸이 로파가 된 다음에 찾아오시지는 않겠지요?》 하고 추연은 그답지 않게 응석섞인 투로 물었다.

《기다려주오. 내 이 세상 끝까지 갔다가도 그대를 찾아올테요.》

오이는 벌떡 일어나 내물에서 물을 한웅큼 떠가지고 와서 자기가 절반 마시고 추연에게 내밀었다. 추연이 또한 오이의 손에 고인물을 단물인양 마시였다.

두 청춘남녀가 오래오래 서로 마주보고있을 때였다.

오이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례나루선생이 자기쪽을 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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