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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회)

 

제 1 부

 

탈 출

  

11

 

주몽은 등잔을 밝히고 책을 읽고있었다. 병법과 지리에 대한 책이 많다고 하나 이제는 볼만큼 다 보았다.

책을 읽던 주몽은 큰숨을 들이켰다가 내뿜었다. 그의 눈앞에는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몽이 례나루선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쭈그리고앉아 바위틈에서 샘이 솟는것을 구경하고있었다.

주몽이 인사를 하자 례나루는 퍽 지친 기색으로 주몽을 바라보았다.

《주몽인가? 어서 오게.》

《그간 편안하시오이까?》

《음, 별고없네. 주몽, 여기 와서 샘솟는것을 보게. 바위를 뚫고 용케 솟구치는구만.》 하고 말하는 례나루는 어설프게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게 아니오이까? 안색이 좋지 않소이다.》

《뭐, 그래 보이겠지…》

《아니오이다. 사실 스승께서는 년로하신 옥체를 너무 고단하게 하시오이다.》

《아니, 난 내 할바를 다했을뿐이네. 이제는 내가 자네에게 넘겨줄것을 다 주었네. 그러니 믿을건 오로지 주몽, 자네와 같은 새싹들이네. 그렇게 애당초 생각 못한건 아니였지만 자네들에게 너무 힘겨운 짐을 지우는것 같아 속이 좋지 못하구만.》

《선생님, 너무 속을 태우지 마시오이다. 세상이 어찌 뜻대로만 되겠소이까?》

《하긴 그래. 나는 한평생 정의를 지켜보려고 하였건만 어째선지 바람잡는 때가 많네.》

《결코 그렇지 않소이다. 선생님께서 한평생 지켜오신것이 바로 저희들 같은 새싹들이 아니오이까.》

《그래, 그래… 참 주몽, 일이 여의치 않을수도 있네만 결코 락심하지 말게. 넘어지고 또 넘어져 천백번 된다고 해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 만백번 일어날 때에만 뜻을 이룰수 있는거야. 나에겐 아마 그게 부족하였던것 같네. 이것이 내 한생에 찾은 교훈이라고 보네. 아무리 남다른 학문과 뛰여난 용력을 가졌다고 해도 뜻을 바라고 만백번 일어나는 용기를 가지지 못하면 결코 뜻을 이룰수 없네. 쓸모있는 나무는 바람과 눈과 비를 맞아 쓰러지고 얼고 젖었다가도 다시 하늘을 우러러 어엿하게 자리잡아 비로소 자라는게 아니겠나? 허어… 내가 너무 긴 사설을 늘어놓는구만. 늙으면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구만.》 하고 례나루는 주몽의 소매를 잡았다.

《내가 그대에게 넘겨줄게 있네.》

례나루는 주몽을 자기의 서재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검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 검은 례나루의 귀물이다. 언제인가(아마 그게 을나와 결혼할 때일것이다.) 례나루는 단 한번 검을 꺼내보이였다.

벽에서 검을 떼여낸 례나루는 그것을 이윽토록 내려다보다가 말하였다.

《뜻은 장검이 낳는것만이 아니나 뜻이 이루어지자면 반드시 장검에 잇닿아있어야 하네. 이 장검은 저 남쪽의 구려라는 나라에서 벼려진것인데 이 세상에서 찾아볼수 없는 명검일걸세. 나는 이걸 자네에게 넘겨주기로 마음을 먹었네.》

주몽은 무릎을 꿇고 장검을 받았다. …

주몽이 등잔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는데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리던 부엌에서 어머니가 주몽을 불렀다.

《좀 쉬염쉬염 하려무나.》

주몽은 어머니를 건너다보다가 빙긋 웃었다.

을나가 집에 들어온 날부터 류화의 얼굴은 한층 밝아졌다.

장마철 들물처럼 흐르는 세파속에서 자신과 어린 아들의 운명을 지키느라고 가냘픈 인생의 겨울을 지내던 어머니에게 비로소 화락한 봄빛이 물들기 시작한것이다.

주몽은 책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어머니에게로 향하였다.

《어머니, 제가 도울만 한 일이 있소이까?》 하고 주몽이 류화에게 물었다.

《사내가 가사일에 손대면 못쓰느니라.》 류화가 말렸다.

《그럴 법 있겠소이까?》

《원 참! 너두, 사나이들의 마음이야 누리를 훨훨 날아야지 자질구레한것에 옴해 있어서야 한바탕 암닭의 생각밖에 더하겠느냐?》

《하하, 어머니도 참 재미있게 말씀하시오이다.》

《그건 그렇고, 오이는 어떻게 할 차비라드냐?》 하고 류화가 화제를 돌려 주몽에게 물었다.

《오이가 뭐 어쨌소이까?》

《추연이와의 관계말이다. 내 보기에는 추연이도 괜치않은 처녀 같은데 오이가 마다한다면서?…》

《그런것 같소이다.》

《왜 그런다던?》

《그게 바로 오이인줄 아오이다. 추연의 오라비인 해리가 오이의 맘에 들지 않는다는겁니다. 오이는 너무 고지식해놔서 자기 마음을 감출줄 모르오이다.》

《참말, 오이는 첫 매듭부터 마지막매듭까지 곧이 한매무시야. 글쎄 그게 좋은 점이야 좀 많으냐만 너무하면 결점이 되고 손해가 되기도 하지 않겠느냐?》

《하긴 그렇소이다. 한번은 협부가 오이에게 롱담을 한적이 있었소이다. <오이, 내 듣자니 추연이가 목숨을 끊겠다고 아랑늪으로 간다고 하오.> 하고 협부가 말하니 오이의 눈길이 대번 꼿꼿해졌소이다. <그건 왜?> 하고 오이가 묻는 말에 협부가 <자네때문일세. 자네가 추연을 싫다 하니 추연이 죽을 결심을 한거지. 이제 그렇게만 돼보지? 아마 <영고>에서 자네를 사형시킬줄도 모르겠는걸.>

이쯤되니 오이의 얼굴이 온통 수수떡이 되는게 아니겠소이까? 그러더니 누가 말릴새도 없이 냅다 달려가는것이였소이다.》

《원, 저런. 협부가 지나쳤구나.》 류화가 혀를 찼다.

《그래 어떻게 됐느냐?》

《협부가 바빠서 <여보게 오이, 롱담일세.> 하고 쫓아가는데 오이가 어디 들어주오이까. 자기때문에 한 처녀가 잘못된다면 세상에 머리들고 살수 없다는것이오이다. 당황해진건 협부만이 아니고 저도 가슴이 선뜩해졌소이다.

졸지에 애매한 사람 잡을것 같았소이다. 그래서 나하고 협부가 오이를 달라붙어 말리는데 어디 힘을 당할수가 있소이까. 아무리 롱담이라고 해도 풀어지지 않았소이다. 하하.》

주몽은 그때 일이 떠올라 한바탕 웃어댔다. 주몽을 따라 류화와 을나도 웃었다.

《그러게 고지식한 사람에게는 롱도 가려서 해야 하느니라.》

류화가 마무리하며 바늘귀를 꿰였다.

이때였다.

누구인가가 뜨락에서 《불이야! 말목장에 불이야!》 하는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주몽은 화닥닥 놀라 문을 열었다. 소리친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목장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이 어찌나 센지 누리가 다 붉은빛으로 환해졌다.

주몽은 옷을 대충 꿰며 다우쳐나갔다.

류화와 을나도 너무나 갑자기 들이닥친 일이라 어쩔줄 몰라했다.

주몽에게는 어째서 불이 났는가 하는것을 따져볼 경황이 없었다. 오직 불붙는쪽을 향하여 허위단심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험지인지 알수가 없었다.

한참 달리는데 《주몽형!》 하며 누구인가가 주몽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주몽은 그를 밀어내며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였다.

《주몽형, 저올시다. 협부오이다.》 막아섰던 협부는 주몽이 밀어내는통에 비칠거리다가 다시 주몽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주몽의 눈길은 불붙는 목장쪽으로 향하여 있었다. 말들이, 말들이 불탄다. 봄, 여름, 비바람 다 맞으며 자기의 땀을 바쳐 길러온 말들이다. 그것이 비록 임금것이라고 해도 바로 주몽자신이 키운 말들이다. 누구의것인가 보다 먼저 내 땀, 내 피로 키운 말들이다.

주몽의 생각은 활활 타는 불길마냥 솟구쳐올랐다.

《주몽형.》 협부가 다시금 팔소매를 흔들며 안타깝게 소리질렀다.

《저를 알아보시오이다. 주몽형.》

그제서야 주몽의 주의가 협부에게 약간 돌아섰다.

《협부, 자넨가? 빨리! 저 말들이…!》

《진정하시오이다. 주몽형, 거기 가서는 안되오이다.》

《무슨 소리 하는건가, 응?》

《이건 모략이오이다. 주몽형, 주몽형이 거기 나타나서는 안되오이다. 빨리 이곳을 피해야 하오이다.》

《뭐라구?》 주몽의 눈이 불빛을 받아 번뜩이였다.

《례스승께서 저를 여기로 보냈소이다. 내가 한발 늦었소이다. 불원간 왕자들의 모해가 있으리라는걸 짐작은 했어도 맹수가 어디를 물려고 하는지 제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소이다. 다행히 마리가 날린 화살이 있어 깨도가 되였소이다.

주몽형, 목장에 일어난 불길은 피를 보아야 꺼질것이오이다. 저 불길을 배경으로 자객들이 주몽형을 겨누고있을수 있소이다.》

주몽은 협부의 말을 듣고 한탄하였다.

협부가 말을 끌고 왔다.

《주몽형, 시세가 급하오이다. 자, 어서 오르시오이다. 지금 례나루선생님께서 기다리고계시오이다.》

《어디서?》

《제가 안내하겠소이다.》

《그럼 집에 들렸다가 가야겠네. 부루나를 끌어내야겠어.》

《서두르시오이다.》

주몽은 몸을 솟구쳐 말우에 올랐다.

그리고는 집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협부가 그뒤를 따랐다.

주몽이 거의 자기 집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둠속에서 너댓명의 사람들이 앞을 막아섰다.

《서라, 이럴줄 알았다니까.》

막아섰던자들이 시까슬렀다.

《당신들은 누구요?》 주몽이 물었다.

《임금의 목장이 불타고있는데 불 끌 생각은 안하고 제 집으로 도망가는 주제에 우릴 보고 누구냐? 너같은 놈을 징벌하는 사자시다. 저놈을 묶어라!》

아마 두목인듯 한자가 매독에 걸린 소리로 주절댔다.

한 녀석이 바줄끈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주몽은 벌써 좋은 말로 달래고 피하기 글렀다는것을 직감했다.

주몽은 허리에 찬 칼을 슬그머니 빼가지고 협부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협부, 이놈들을 내가 막을테니 자네는 빨리 집으로 가주게. 가서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길떠날 차비를 해주게.》

말을 마친 주몽은 선두에서 바줄을 휘두르며 달려드는자를 맞받아나갔다.

주몽은 달려나가던 참으로 날아오는 바줄을 한팔에 감아쥐고 힘껏 당겼다.

쿵 하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던자가 말에서 떨어지며 에이쿠 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뒤에 섰던자들이 고함소리를 지르며 왁작 달려든다.

주몽은 좌우 충돌하며 막아서는 무리를 베버렸다. 삽시에 어지럽게 달려들던 무리들이 모두 말우에서 떨어졌다. 주몽은 인기척이 없는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달렸다.

주몽이 집으로 막 들어서는데 협부에게서 이미 사연을 들은 류화가 방금 토방에 내려서는 참이였다.

《어머니!》

주몽은 말에서 뛰여내려 류화의 발치에 한무릎 꿇고 머리를 숙였다.

류화는 말없이 아들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어서 일어나거라. 언제든지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 못한건 아니다. 어서 일어나 네가 뜻하는대로 떠나거라.》

주몽은 어머니의 침착한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 불초한 이 몸 어머님을 모시지 못하고…》

《그만해라. 길떠날 사람이 맘이 나약해서야 되겠느냐? 나를 생각지 말고 어서 떠나거라. 시각이 급하니라.》

류화는 안고있던 보자기를 주몽에게 안겨주며 말하였다.

주몽은 그 보자기를 품에 안으며 얼마동안 어머니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왕에 어머니는 주몽을 불러 사나이 잔정 많으면 아니된다 하였어도 주몽은 어머니를 어느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었다. 어느때건 길할 때가 오겠거니, 그때에는 기어이 이 세상에 이 몸 거두어주고 내세워준 어머니를 편안히 해주리라. 그렇게 못한다면 큰뜻이란 무엇이고 세상이란 무엇이드냐고 생각하며 효성을 하려고 하건만 세상은 너무나 야속하구나. 이제 헤여지면 장차 어머님 신상은 어찌될터인가.

그러나 믿어주시오이다. 오늘은 이렇게 떠나가도 어머님이 보살펴주시고 키워주신 뜻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겠나이다. 이 아들이 기어이 겨레 위한 큰뜻을 이루고 어머님을 뵈옵겠나이다. 그전에는 어머님앞에 나타나지 않겠소이다.

류화를 바라보며 무언의 맹세를 다진 주몽은 옆구리에 차고다니던 단검을 꺼냈다. 주몽이 언제 한번 놓치 않던 단검이였다. 그것을 두손에 들고 한참 내려보던 주몽은 자기를 지켜보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 아들이 기어코 지닌 뜻을 이루고야말겠소이다.》

류화는 주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주몽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쨍- 하는 소리를 내며 단검은 두쪽으로 갈라졌다.

아들의 결심을 읽는 류화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이때 협부가 부루나를 끌고나와 주몽에게 넘겨주며 재촉하였다.

《주몽형, 서둘러야 하오이다. 낌새를 보면 분명히 곳곳에 그물을 쳐놓았을텐데 지체하다가는 죽지가 부러지기 쉽소이다.》

주몽은 큰숨을 들이고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하직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눈물이 그렁해서 자기를 지켜보는 을나에게 다가갔다.

《을나, 어머님을 부탁하오.》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을나의 뺨으로 흘러내렸다.

방금까지 웃음이 넘치던 집안에 이런 찬바람이 닥칠줄 누가 상상했으랴. 주몽을 사모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자기의 사랑이 결코 봄날의 꽃밭속을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는것을, 오히려 마가을 찬바람부는 역경의 길이라는것을 할아버지에게서 들었고 마음속으로 다진 결의도 있는 을나였으나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빨리 닥치리라고 차마 생각 못하였다.

을나는 자기의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고있었다. 당장 쓰러질듯 하였다. 을나는 입술을 옥물며 머리를 돌리고 주몽에게 활과 전통을 내밀었다.

주몽은 을나가 내미는 활과 전통을 받고 이윽토록 안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부러진 칼의 한끝을 내밀었다.

《을나, 이것을 건사해두오. 후날 언제이건 만날 때가 있겠으니 나는 이것을 상봉의 증표로 삼으려 하오.》

을나는 부러진 칼끝을 받아 꼭 쥐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몽은 부루나에 올랐다. 뜨락을 벗어나 집주위를 서너바퀴 돌았다.

큰뜻을 위해 이 몸 사는것이니 그 큰뜻을 펴보지 못하고 헛되이 몸버리는것은 용서할수 없다.

주몽은 박차를 가했다.

협부가 그뒤를 따랐다.

두사람은 남쪽으로 뻗은 산골길을 따라 달렸다.

어둠이 두사람을 숨겨주었다. 그밤따라 손톱달인데다 검푸스럼한 하늘에는 운무가 끼여 별들마저 푸릿하게 떨고있었다. 우중충한 산발들이 서서히 밀려왔다가는 뒤로 사라졌다. 다급히 채찍질하며 내닫는 두사람에게는 다행히 아무 소리도, 아무 장애도 나서지 않았다.

부여의 도읍지를 벗어나 얼마쯤 달려 이제 한숨 내쉴가 하는 때였다.

앞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서라!》 하는 고함소리가 울렸다.

그 말투의 건방지고 호령기있는 소리와 쩔거덕거리는 병쟁기소리를 통해 주몽은 앞에 있는 사람들이 길가는 범손들이 아니라 군사들이라는것을 짐작하였다.

(아뿔싸! 이렇게 빨리 그물이 펴졌는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두사람은 주춤거렸다. 협부가 주몽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소이까?》 그의 말소리는 불안스럽게 떨렸다.

《가만, 하늘이 무너져도 살구멍이 있다는데 두고보자구.》

하고 협부에게 손짓하고난 주몽이 허리를 펴며 물었다.

《왜 그러시오이까?》

어둠속에서 말을 탄 군사 한무리가 다가왔다.

《너희들은 웬 놈들이냐?》 하고 무리속에서 절풍쓴 한놈이 물었다.

《길가던 사람들이오이다.》 주몽이 대답하였다.

《이밤에 무슨 길을 가느냐? 혹시 너희놈들이 도적떼가 아니냐?》

《아니오이다. 우리는 약을 구하러 가는 길이오이다.》 주몽은 앞에 막아선 무리들을 구별하여보느라 애쓰며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이쯤한 놈들은 단숨에 베버릴수 있다. 그러나 뒤에 어떤 바위를 지고있는줄 어찌 알랴.

길을 막아선자가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잠시후 그쪽에서 저희들끼리 수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생, (장생은 제사용동물을 관할하는 관직-) 어떻게 할가요?》

《저놈들보고 물어보지, 왜?》

그러더니 주몽이쪽으로 물었다.

《오면서 너희들이 돼지가 달아나는걸 보지 못했느냐?》

그 말에 주몽은 반쯤 한숨을 쉬였다.

그러니 결국 이자들은 그물코가 아니였다. 《못 보았소이다.》 주몽이 대답하였다.

《못 보았다구?! 분명 이쪽 어디론가 달아났는데…》 하고 묻던자가 어정쩡하게 중얼거렸다.

《나리들, 우린 바쁜 사람들이오이다. 빨리 길을 비켜주시오이다.》 하고 협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잔말 말어. 너희들이 아무리 바쁘기로서니 제사에 쓸 희생을 찾는 우리보다 바쁘고 황당할소냐, 고약하기 짝이 없는 놈들.》 하고 한 작자가 제법 어성을 높인다.

그러는데 《뭘 쑹얼거리느냐. 빨리 찾아보려 하지 않고, 이 천하에 게으름뱅이같은 식충이들아, 왕자님의 칼날이 네놈들의 목줄기에 닿아야 꿈틀거릴테냐?》 하는 청높은 소리가 터졌다.

순간 주몽은 머리칼이 쭈볏하는것을 느꼈다. 원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왕자를 여기서 만날줄이야. 뒤를 돌아보는 순간 주몽은 불안해하는 협부의 기색을 력력히 느꼈다.

《이놈들을 어떻게 할갑쇼?》 막아섰던자들이 저희 상관에게 물었다.

《어떻거긴, 미물같은것들아! 모조리 동원해서라도 희생을 찾아야 돼.》

《알겠소이다. 야, 너희들 들었어? 우리 일을 도와야겠다.》

주몽이 일이 난처해지는것을 느끼며 다시 공손하게 개올렸다.

《나리들, 우리를 놔주시오이다. 병자가 급해서 그러오이다.》

《잔말 말어. 너 이놈들, 이 나라의 백성이라면 왕자님의 행사를 도운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짜식들, 요즈음은 상놈들이 제멋대로 놀길 좋아한단 말이야.》

주몽은 울며 겨자먹는 판이 된지라 협부에게 눈짓하고 그 군사의 뒤를 따랐다. 랑패다. 이제 여기서 머뭇거리다가 대소왕자가 자기를 알아보는 날에는?

가만,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대소왕자가 나타났을가. 혹시 모르쇠부리느라고 여기 와있으면서 음모를 꾸미는것이 아닐가? 그럴수도 있는가?

주몽이 어리무던한체 하며 물었다.

《저 듣건대 금와왕께서는 왕자들이 자그만치 일곱이라는 소릴 들었사온데 어느 왕자이오이까?》

《자식 귀가 보배로구나. 그런 소릴 어디서 동냥들었어. 어느 왕자이긴, 마음씨 착한 막내왕자님이시다. 이놈, 그 말 못 들었어?》

이제는 알겠다. 그러니 이놈들은 아직 주몽의 일을 모르는자들이다. 이것들은 금와왕의 막내아들의 끄나불들이다.

주몽도 언제인가 막내왕자가 자기의 측근들을 거느리고 이쪽으로 사냥나와 질탕한 나날을 보내고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왕자님이시라면 그 수하에 부하들이 많겠는데 어째서 유독 나리님들만이 희생을 잡으러 나서시였소이까?》 하고 협부가 저쪽 형편을 정탐하느라고 엇비스듬 찔렀다.

《허, 그놈 꽤 여진 놈인걸. 이게 바로 재수없는 놈은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는거야. 자네 말이 십상 옳지. 왕자님 수하에 시위군사들이하 심부름군들이 좀 많은가. 그런데 오늘은 요놈만 삐지게 당번섰거든- 제길.》 하고 졸자놈이 제딴에서 투덜거렸다.

그러고보면 주몽과 협부가 우연히 자는 범의 가까이로 온것이다.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도 묘한것인가?

만일 왕자가 주몽의 일을 알아서 추격하는 날에는 좋지 못한 일이 생길것이다. 그러니 요행 막내왕자가 알아보기 전에 여기를 빠져야겠다고 주몽은 생각하였다.

주몽은 얼마간 사이가 뜸해진 틈을 타서 조용히 말고삐를 옆으로 당겼다.

어둠속인지라 군사들은 주몽과 협부가 빠져나간것을 모르고있었다.

얼마쯤 길을 더듬어가는데 《어이- 어디 있어.》 하고 아까 그 졸자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젠장, 빌어먹을 자식들, 달아났군.》 하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따랐다.

어디선가 물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비로소 협부는 한숨을 후- 내쉬며 《에- 혼뺐군.》 하고 말하였다.

《주몽형, 모름지기 이 물이 나이수이겠는데 남쪽으로 흐르오이다. 물흐름새를 보고 따르면 될것 같소이다.》

《그래?!》

주몽은 속보로부터 구보로 말을 몰았다. 한동안 말을 몰아가던 주몽이 생각나서 물었다.

《협부, 아까는 창황중에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오이, 마리가 어떻게 된지 모르나? 참, 마리의 화살이라는건 무언가?》

《오늘 낮에 스승에게 가고있는데 내앞의 나무에 화살이 핑- 날아와 꽂히는것이 아니겠소이까? 어디서 날아온것인지는 알수 없었소이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화살을 뽑아보니 거기에 <목장에 불. 마리> 하고 써있지 않겠소이까?》

《그러니까 마리가 그 화살을 날렸다는건가? 마리는 어떻게 됐을가? 그리고 오이는?》

《마리는 그후 어떻게 됐는지 나도 모르오이다. 그런데 오이는 어제 청니쪽에 있는 친척집에 간다면서 떠났다고 하오이다.》 하고 협부가 말하였다.

주몽은 한숨을 쉬였다.

《청니쪽이면 북쪽인데 거기서 무슨 압로벼슬을 하고있는 친척을 찾아간 모양이구나. 그런데 나는 남쪽으로 가고있으니 오이생각에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구나…》

《주몽형, 너무 걱정마시오이다. 례나루선생님께서는 저를 형에게 보내시면서 뒤일은 걱정말고 어떻게 하든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하시였소이다.》

《선생님께서?》

《그렇소이다. 선생님께서는 엄리수기슭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시였소이다.》

《그래?》

이즈음 돼서부터 흐릿하던 하늘이 점점 검푸르게 변해가며 무수한 별들이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협부는 별위치를 보아가며 주몽을 인도하였다.

주몽과 협부는 밤도와 남쪽으로 쉬임없이 가고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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