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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1 부

 

탈 출

 

10

 

움츠러들었던 만물이 비로소 꾸물거리는게 봄이라고 해야 할지… 산과 들에 꽃이 피여나 생명을 가진 무리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훈훈한 바람과 따스해진 해빛이 땅우를 쓰다듬고 품어주어 대지를 요람삼아 살아가는 온갖 만물이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느라고 무척 바쁘다. 새들은 삭정이를 물고 분주히 날아다니며 둥지를 틀고 짐승들은 땅굴에서 기여나와 부드러워진 대지로 돌아다니였다.

사람들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주접을 털고 농사차비를 할래, 살림살이도 새로 꾸릴래 야단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활기를 띠고 준비되는것은 미구하여 진행될 사냥경기였다.

뽐내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사냥경기는 참으로 으뜸가는 기회였다. 그것은 안일을 털어버리고 뭇사람들앞에서 궁술과 기마술, 힘을 뽐내여 명성을 떨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때문이였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사냥경기에 참가하는 젊은이들과 장정들이 모여온 후리벌은 그야말로 볼만 하였다.

겨우내 좀해서는 볼수 없던 주몽, 오이, 마리, 협부와 대소의 형제들과 해리 등 제노라고 하는 부여의 젊은이들이 다 모였다.

그속에서 제일 패기에 넘치는것은 역시 대소의 왕자들이였다.

눈에 보건대도 뚜렷한 옷차림과 장신구들로 하여 표가 나는데다가 또한 자신만만한 활기로 하여 웬만한이들에게 대뜸 주눅들게 놀았다.

주몽은 말갈기를 툭툭 치며 누구에게도 주의를 주지 않았다.

사냥경기에 출전할 젊은이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우는대로 이사람저사람에 대해서 수군거렸다.

《어- 굉장하군! 이번 사냥에서는 누가 우승할것 같소?》

사람들속에서 팔소매를 끼고 구경하던 사람이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그야 응당 저 왕자들이겠지. 보구려. 얼마나 씩씩한가.》 하고 말하는 사람은 입을 헤 벌리고 왕자들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기 주몽도 만만치 않을거우다. 활쏘고 말타는데야 주몽을 당할 사람이 있소?》 누군가 웅글은 소리로 말하였다.

《거, 뭐 듣자니 그 사람은 지난 겨울에 곰처럼 집에 들여박혀서 녀편네 궁둥이만 쫓았다는데…》

《그럼 주몽이 장가들었단 말이요?》

《그렇수다. 헤, 사내가 장가들면 다지 뭐, 색시품에 홀딱 안기면 천하장수 어디 있소?》

《그래도 봐야 하우.》

군중들은 누가 우승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제잡담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우겨댔다.

경기에 출전할 젊은이들은 웬일인지 경기시작이 늦어지는감을 느끼며 갑갑증을 끄느라고 말을 달래며 서성거렸다.

그들은 모두 초조감에 사로잡혀 긴장되여있었다.

검정수건으로 머리를 완전히 싸서 뒤로 동여매고 대구고(바지의 일종)를 입은 대소는 동생들의 한가운데 끼여서 롱담을 하며 힐끔 저쪽에 있는 주몽을 엿보군 하였다.

주몽도 역시 검정빛머리수건을 썼는데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있었다. 부루나가 주둥이에 물린 자갈을 절꺽절꺽 깨물며 목덜미를 흔들었다.

대소가 주몽쪽을 이따금 살피고있는데 해리가 다가왔다.

《왕자, 불비한것이 없소이까?》

《아니, 난 만족하오.》

《주몽을 보셨소이까?》

《음…》

《오늘 적수는 주몽이오이다. 그는 필경 오늘 왕자와 겨루자고 할것이오이다!》

대소는 해리의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대소의 태도를 조심히 살피던 해리가 귀띔했다.

《제가 몇가지 소소하게 조처해놨소이다.》

《흥, 자네도 참. 사냥경기야 정정당당해야지 그까짓 수단을 써 이겨서는 뭘하겠나.》

대소에게는 해리의 선견지명과 권모술수가 내심 사랑스러웠으나 어떤 때는 그가 너무 들깨, 참깨 섞는것이 싫었다. 대소의 그러한 생각은 마리가 온 다음부터 더하였다. 세상에는 달라는게 없이 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것없이 고운 사람이 있다. 대소는 마리가 언제 봐도 해리처럼 자기의 비위를 살살 맞추며 가려운데를 시원하게 긁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쩐지 마리에게는 끌렸다. 마리가 주몽과 어울려다닐 때도 은근히 호감이 갔을라니 지금 주몽과 결별하고 자기에게 왔는데 말해서 무엇하랴.

해리도 그것을 눈치채였다. 해리에게는 그것이 가슴아팠다. 이것으로 해서 지난 겨울은 질투와 근심의 속병을 앓는 무척 괴로운 나날이였다. 해리가 대소왕자에게 불리워간것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대소왕자가 마리를 위해주면 줄수록 해리의 질투는 쌓이고쌓였다. 해리에게는 마리가 증오스러웠다. 대소왕자에게 별치않은 일로 퉁을 맞을 때마다 해리는 혀를 깨물군 하였다. 해리의 귀에는 낡은 방울소리가 이따금 떨렁거렸다. 그 방울소리는 해리에게 속삭이였다. 여보게, 해리! 옛날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를 사랑해주면 임금이요 미워하면 원쑤라고 했네. 그리고 약은 새는 가지를 가려앉는다는데 자네는… 그 방울소리가 울릴 때마다 해리는 귀담아듣다가도 나중에는 고개를 털군 하였던것이다.

해리와 마리를 옆에 끼고 서로 다투어 자기에게 충성다하도록 하는것은 대소가 바라는 일이기도 하였다. 해리는 대소의 그런 속내를 들여다보고있었다.

갑자기 군중이 술렁거리는 바람에 해리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왕이 비로소 자리에 나온 모양이였다.

이어 북소리가 둥둥- 울리였다.

울긋불긋 비단과 가죽옷을 차려입은 제가, 대신들속에서 금와왕의 자태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사냥군들이 출발선을 차지하고 화살을 받기 시작하였다.

주몽도 자기 차례가 되여 화살을 받으러 나갔다.

주몽을 알아본 절풍쓴 사람이 주춤거리더니 옆에 따로 놓았던 화살묶음을 내주었다.

아무 생각없이 화살묶음을 받던 주몽은 앞서 화살을 받은 사람이 전통에 화살을 끼우는것을 보고 머리를 쳐들었다. 주몽의것은 다른 사람의 절반도 못되는 화살이였다.

《이건 뭐요?》

《뭐 어쨌다는거야?》

주몽이 그러기를 기다렸다는듯 화살을 나누어주던 사람이 눈이 꼿꼿해서 되물었다.

《왜 내것은 다른 사람보다 적소?》 주몽이 물었다.

상대방은 침을 탁 뱉고 쏘아보았다.

《그건 네 알바가 아니야. 종노릇하는 주제에… 맞서볼테냐?》

주몽은 그 작자의 랭기풍기는 족제비상을 한동안 살펴보고나서 피씩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갔다.

대여섯사람뒤에서 그 모양을 본 오이가 얼굴이 시뻘겋게 되여 울컥 앞으로 나오려고 하였다.

그런것을 뒤에 섰던 협부가 어느새 오이의 말고삐를 꽉 틀어잡았다. 협부는 말없이 오이에게 자제하라는 눈짓을 했다. 이러는것을 대소의 뒤에 섰던 해리가 유심히 살피고있었다. 해리의 가느다란 눈이 쪼프려졌다.

대소의 옆에서 주위를 살피던 마리의 눈길이 해리의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화살을 나누어주는 일이 끝나자 왕이 자리잡은 어막쪽에서 뿔나팔소리가 울렸다.

드디여 사냥경기가 시작되였다.

기다리던 사냥군들이 저마끔 말을 쳐몰기 시작하였다.

군중의 환호소리, 경기에 내닫는 말발굽소리가 엉켜 하늘땅을 진동시켰다.

주몽은 맨 먼저 부루나를 뽑으려 하였다. 그러나 나팔소리가 울리기 바쁘게 왕자들이 앞을 다투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중간에 서서 말을 달렸다.

사냥군들은 말을 달려 들판을 빠져나와 드디여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속에 붙어서부터 사냥군들은 뿔뿔이 자기의 목표를 찾아 헤여졌다.

왕자들의 뒤를 좇던 주몽은 산중턱으로 말고삐를 챘다.

산중턱을 끼고 채찍질하던 그는 앞에서 놀라 달아나는 토끼를 보고 화살을 겨누었다. 그러나 자기의 전통에 얼마되지 않는 화살을 생각하고는 그만 활을 내리였다.

적은 화살을 가지고 경기에서 우승하자면 어차피 큰 짐승을 사냥해야 한다.

숲속으로 사라지는 토끼를 보며 다시 말고삐를 당기던 주몽은 어째선지 짐승들이 보이지 않는데 이상한 감을 느꼈다. 몰이군들이 분명 이쪽으로 짐승들을 몰았겠는데…

주몽은 산우로 말을 몰았다. 그가 짐승떼를 찾을가 하여 주위를 살피는데 뒤에서 《주몽형, 조심하오이다!》 하는 웨침소리가 울렸다.

협부의 목소리였다.

번개같이 주위를 살피던 주몽은 잎이 파릇파릇 돋기 시작한 나무가지에 가리워진 한길가량되는 바위우에서 누런 짐승을 발견하였다. 주몽에게서 얼마되지 않는 거리였다.

방금 덮칠듯 한 자세로 범이 자기를 노리고있었다.

주몽은 긴장해졌다. 주몽은 고삐를 꽉 당겨 말을 멈추고 범을 쏘아보았다. 부루나가 불안하여 맴돌이쳤다.

주몽은 여느때와는 달리 범이 몹시 사나와진것을 제꺽 알아보았다.

아마도 먼산에 있던 범이 몰이군들에게 쫓겨 여기에 온 모양이다. 범은 그 성풀이를 바로 주몽에게 하려는셈이다.

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부루나는 앞발을 쳐들고 호응-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범을 겨누던 주몽의 화살이 방향을 잃었다.

쉬-익 하는 소리를 내며 범이 주몽의 머리우를 날아넘었다.

이것은 맹수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범은 대상을 만나면 먼저 자기의 위풍으로 그 얼을 뽑는것이다. 이런 연후에라야 앞발로 치고 뒤발로 차서 대상을 거꾸러뜨리게 되는것이다.

주몽이 한편으로는 부루나를 달래고 한편으로는 다시 범이 자기를 공격할 그 방향을 살피는데 다시 휘-익 하는 소리가 울리고 사납게 소리치는 범울음소리가 귀청을 깨쳤다.

주몽은 말이 너무 갈개는 바람에 평시의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두어번 상대를 날아넘던 범이 잠잠해졌다.

주몽이 두리번거리며 범의 위치를 찾았다. 앞쪽바위에서 뻘건 혀를 드러낸 범이 이쪽을 노리고있었다.

주몽은 잽싸게 범을 겨누었다. 범도 사람에게 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금방 뛰쳐일어나는 순간이였다. 화살을 먹인 주몽이 범을 겨누어 시위를 놓았다.

범은 날아오는 화살에 오른쪽눈을 꿰인채 뛰여올라 주몽의 뒤켠에서 한바퀴 굴며 쿵 넘어졌다.

주몽이 말고삐를 당겨 다시 화살을 겨누는 순간 첫 대결에서 맥을 뽑은 범은 사나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주몽은 범을 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죽을 기를 쓰고 달아나는 범의 행적을 얼마 못 가서 놓쳐버리고말았다. 주몽은 이쪽저쪽 살펴보며 범을 찾았다.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었다.

게다가 협부의 목소리가 나던걸 생각하다나니 그만 아예 범의 자취를 놓치고말았다.

이러는데 앞산쪽에서 협부가 내려왔다.

《잡았소이까?》

《놓쳤네.》

《어느쪽으로 갔소이까?》

《분명히 이쪽으로 왔는데…》

《웃쪽에서 내가 내려왔으니까 아마 저쪽 산우로 엇비스듬히 달아난것 같소이다.》

두사람은 말을 몰아 그쪽으로 내달았다.

한편 대소왕자는 첫 마수걸이로 벌써 토끼 2마리를 쏘아잡았다.

《오늘은 괜찮은걸…》

대소는 전통에서 다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겨누며 말했다.

다시 과녁을 찾아보았으나 눈에 띄우는 짐승이 없었다. 활깍지를 매만지며 대소는 짜증냈다.

《아니, 몰이군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왜 짐승들이 나타나지 않느냐?》

《왕자, 산등성이쪽으로 돌리소이다. 그쪽에 몰이소리가 나는듯 하오이다.》

해리가 소리쳤다.

대소는 형제들과 함께 그쪽으로 치달았다.

대소가 방금 산중턱에 올라 숲속을 살필 때였다.

《저… 저…기, 범이다!》 하는 겁질린 소리가 튀여나왔다.

모두의 눈길이 소리친쪽으로 집중되였다. 대소의 앞쪽에서 범 한마리가 쏜살같이 달려오고있었다.

《왕자! 위험하오이다!》

해리가 겁에 질려 소리질렀다.

대소는 짐짓 웃음을 띠우고 화살을 먹였다.

왕자는 다급히 달려오는 범에 대고 어지러이 화살을 날렸다.

비오듯 화살이 날았지만 어째선지 범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달려든다.

대소는 정확히 범을 겨누고 시위를 놓았으나 헛살이였다.

그사이에 범은 벌써 가까이 다가왔다.

왕자들은 와- 소리를 지르며 헤쳐갔다.

그런데 범은 이상하게도 대소 있는쪽을 겨누고 달려드는듯 했다.

《왕자! 위험하오이다! 저건 미친 범이오이다.》

해리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대소는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화살을 겨누어 당겼으나 역시 빗나가버렸다.

성난 범은 점점 대소에게 육박하였다.

다시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던 대소는 갑자기 겁이 났다. 날카로운 범의 이발과 시뻘건 혀가 악마의 모습처럼 보였다. 대소는 크게 전률하며 황황히 말을 돌렸다.

말도 주인따라 겁을 먹었는지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대소의 뒤를 따라 왕자들은 어지럽게 달아났다. 왕자들은 뿔뿔이 헤쳐갔다.

대소는 창황중에 뒤따르는 범을 향해 계속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황급히 날리는 화살이 맞을리 없었다.

이제는 형제들마저 뿔뿔이 헤쳐가서 대소는 혼자 남게 되였다. 무섬증이 온몸을 휩쌌다. 사나운 범과 뒤엉켜돌아가며 아우성치는 자기의 모습이 방불했다.

이렇게 아뜩해진 정신을 안고 달리던 대소는 웬일인지 자기를 쫓는 기색이 없어 뒤를 돌아보았다.

자기를 쫓아오던 범이 저쪽 숲속에서 산우에로 치달아오르고있었다.

《후, 천행이로구나.》 하고 대소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감을 느끼며 이마에 내돋은 땀을 훔치였다.

그러는데 어디론가 달아났던 왕자들이 하나둘 나타나서 형이 살아있는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대소는 은근히 약이 올랐다.

《내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느 하나도 막아서는 놈이 없더니 지금에 와서 문안이냐? 괘씸한것들.》

그 말에 왕자 대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저 하나도 사는가 죽는가 하는 판에 형을 돌보게 되였소이까?》

《그만 닥치지 못할가?》

왕자들이 이렇듯 다툼질하는데 저쪽 산등성이로 올라가던 범이 다시 방향을 바꾸어 이쪽으로 내려왔다.

어찌된 일인가? 이것은 주몽과 협부에게 다시 쫓기는 범이였다.

놓쳐버린 범을 찾던 주몽과 협부가 마침 절반쯤 지쳐서 산등성이로 오르는 범을 발견하였던것이다.

《저기 있다!》

주몽이 소리를 지르며 범을 맞받아 내려갔다.

범은 입을 쩍 벌리고 허세를 부리였다. 주몽은 시위를 놓아 쩍 벌린 범의 아가리에 다시 화살 한개를 쏘았다.

범은 땅을 들었다놓는 소리를 지르며 밑으로 내리뛰기 시작하였다.

주몽과 협부는 그뒤를 따랐다.

이렇게 되여 안도의 숨을 내쉬던 대소는 주몽에게 쫓기는 범이 자기한테로 달려오는것을 보고 또다시 혼쭐이 나서 뛰기 시작하였다. 한번 겁을 먹은 사람은 두번, 세번 또 겁에 질리기마련이다.

이리하여 범을 가운데 놓고 그앞에는 범에 쫓기는 대소의 형제들이 죽기내기로 달아나고 범의 뒤에서는 주몽과 협부가 화살에 맞은 범을 놓칠가보아 만신의 힘을 다 내여 쫓는 일대 륜환의 대결투가 시작되였다.

대소는 달아나는 그속에서도 주몽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마치 숙명적인 운명인것 같았다.

《주몽, 네가 오늘 필경 나를 죽일 차비냐?…》

대소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주몽은 비로소 범의 앞에서 혼비백산 달아나는 대소를 보았다.

《협부, 대소가 위험하다.》

주몽이 웨쳤다.

《주몽형, 놔두소이다. 쫓기는 범에게 또 쫓기는 못난이를 어찌하겠소이까?》

협부가 깨고소해하는듯 말하였다.

《협부, 너는 뒤를 쫓아라. 나는 앞질러나가겠다.》

주몽은 협부의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산등성우로부터 범을 앞질러내달렸다.

《왕자, 옆으로 비켜서시오이다.》

주몽이 소리쳤으나 대소는 듣지 못하였다.

주몽은 안깐힘을 다해 대소의 뒤로 다가가며 다시 소리쳤다.

《대소왕자, 옆으로 비켜서시오이다. 위험하오이다.》

그제서야 대소는 주몽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자는거냐?》

《내가 맡겠소이다. 이 범은 살맞아서 반쯤 미쳤소이다.》

아닌게아니라 범도 이제는 맥이 진한듯 하다. 그만큼 사람도 말도 지쳤다.

범이 주몽의 화살에 먼저 맞지만 않았어도 일이 어떻게 번질지 모르는 판이였다.

주몽은 대소와 거의 평행으로 달리면서 점차 각도를 좁혀 대소의 뒤를 차단하며 화살을 재워 범의 다른쪽 눈을 겨누어 쏘았다. 그러나 너무나 갑작스레 달려오느라고 맥을 뽑아서인지 아니면 말이 요동쳐서인지 빗맞았다.

다시한번 시위를 당겨 천천히 겨누어 살을 놓았다.

피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작정 내닫던 범은 한바탕 곤두박질하며 딩굴었다.

주몽은 말을 멈춰세웠다. 위험은 지나갔다. 주몽은 비오듯 흐르는 이마의 땀을 팔소매로 훔쳤다. 잔등이 화락하니 젖어 축축하였다.

《왕자, 다치지 않았소이까?》

주몽은 헐떡거리며 반쯤 넋이 나가 멍청해있는 대소에게 물었다.

대소는 고개를 맥없이 저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하니 고이였다.

《주몽, 고맙소.》

《별말씀 다 하오이다. 다행이오이다.》

뒤를 따르던 협부가 한자리에서 맴도는 범을 향해 올가미를 던져 묶은 다음 끌고왔다.

그때쯤 돼서야 해리가 왕자들과 함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지고 달려왔다.

해리는 주몽과 대소가 나란히 있는것을 힐끔 살펴보고는 헐떡거리며 물었다.

《왕자, 별고 없으셨소이까?》

대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마트면 큰일날번 했소이다.》 하고 말끝을 맺던 해리가 이번에는 주몽에게 돌아섰다.

《주몽, 자넨 어쩌자는거야. 무슨 속심으로 왕자를 향해 범을, 응? 미친 범을 몰아가는거야? 그래서 얻자는게 뭐냐, 응?》

《그게 무슨 말씀이오이까?》 주몽을 대신하여 협부가 나섰다.

《저 범은 이미 주몽형의 화살에 맞고 달아나던 놈이였소이다.》

《불손한 소리 말아. 그럼 왕자가 놀라서 달아나는 범에게 쫓기였단 말인데 그래, 그게 말이 되나?》

《뭐라구?》 협부가 범묶은 바줄을 팽개치며 앞으로 나섰다.

순간 해리의 얼굴이 다시한번 해쓱해지며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아- 그만하자.》 대소가 피기사라진 얼굴로 해리를 달래며 말하였다.

《그만 가자. 사람의 운명에 불운한 때가 있는 법이야.》

대소가 앞장서고 그뒤로 왕자들이 따랐다.

멀어져가는 왕자의 무리를 쏘아보던 협부가 말했다.

《주몽형, 공연히 기운을 뽑으셨소이다. 방금 해리가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소이까? 저 무리들은 다 안팎이 다른것들이오이다.》

주몽은 묵묵해있었다.

사냥을 끝내는 뿔나팔소리가 숲속 저 너머에서 은은히 들리였다.

주몽과 협부는 사냥한 범을 끌고 돌아섰다.

 

사냥경기후에 궁성으로 돌아가는 왕자들의 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대소왕자는 말이 흔들리는대로 몸을 맡기고 묵묵히 가고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대이왕자는 처음으로 자기의 형에 대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주몽이 범에게 쫓기는 형 대소를 필사적으로 구원할 때까지만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대이는 주몽에 대해서 증오를 느끼였다. 대소가 범에게 넋을 잃어버리거나 죽어버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름아닌 주몽이 구원해준것이다. 미워하는자를 좋아하는 놈은 같이 밉기마련이다. 대이에게는 주몽이 원쑤같이 보였다. 대이는 형 대소가 쫓기는것을 보며 잘한다 잘한다 속으로 부채질하고있었으나 지금에는 달랐다. 어쩐지 얼이 나간 사람처럼 말을 타고가는 형이 몹시 초췌해보였다. 대이는 말허리를 차 형 대소의 곁으로 다가갔다.

《형님, 좀 진정이 되오이까?》

대소는 멍청한 눈으로 대이를 보다가 한쪽 입귀를 실룩거렸다.

《형님, 부왕마마가 어떻게 그럴수 있소이까?》

대이가 앞을 보며 투덜거리는데도 대소는 묵묵부답이다. 그 모양을 힐끔 바라본 대이는 말을 이었다.

《아무리 주몽이 범을 잡아 우승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주몽을 추어줄수 있소이까? 우리 부여에서 주몽만큼 용맹하고 무술이 능한 젊은이가 없다고? 부왕마마께옵서는 도무지 우리들을 생각지 않으신것 같소이다. 이거야 제가, 대신들의 면전에서 형님이나 나를 납작하게 만든게 아니오이까?》

대소의 볼편이 다시금 실룩거렸다.

대이는 대소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님, 말씀 좀 하시오이다.》

《날 괴롭히지 말라.》

《참, 형님도 그렇게 위축될것까지야 있소이까? 그게 다 주몽때문인데…》

《내앞에서 주몽소리는 하지도 말아.》

《형님, 좀 생각해보시오이다. 전번 목장순행때만도 그렇지 않소이까? 하필 목동중에서 주몽에게 그 말을 하사하실건 뭐란 말이오이까? 분명히 부왕마마께옵서는 주몽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계시오이다. 형님께서는 주몽이 장가들었다고 마음을 놓으셨지만 호랑이새끼가 하품한다고 해서 그게 호랑이가 아니란 말이오이까?》

《넌 도대체 뭘 얻자는거야?》

듣다못해 대소가 짜증을 냈다. 하지만 대이는 그러기를 바라기라도 한듯이 능글능글거렸다.

《어쨌든 형님이나 나나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하오이다. 주몽을 그대로 놔두고서는 우리 왕자들이 결코 숨도 제대로 쉴것 같지 않소이다.》

아우의 말을 들으며 대소는 입을 앙다물었다.

대소는 채찍으로 말엉뎅이를 후려쳤다.

껑충 뛰는 대소의 말을 따라 대이도 말을 몰았다. 그날 저녁 대소와 대이 그리고 해리는 밤늦도록 마주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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