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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제 1 부

 

탈 출

 

9

 

궁성의 북쪽은 늘쌍 음침하였다. 인적이 끊긴 여기서는 살찐 도적고양이가 뼈다귀를 물고 어슬렁거리거나 낮부엉이가 큰 눈을 껌벅거리면서 또다시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모양을 이따금 보게 될뿐이다. 바닥에 깔린 넙적넙적한 돌우에는 메마른 이끼가 덮이고 성벽을 따라가면서 허리치게 자란 잡초들이 듬성듬성 돋아있었다. 낮부엉이가 앉아있군 하는 성벽에 흰 새똥이 묻었는데 그우에 웬 사람이 금방 밑으로 뛰여내리려다가 납작 몸을 붙이였다. 성벽밑으로 웬 녀인이 나타났다. 성벽우의 사람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우고 눈만 내놓았는데 행동이 매우 민첩해서 마치 고양이 같았다.

그는 한동안 내놓은 눈으로 녀인의 모습을 쏘아보았다. 성벽밑으로 다가온 녀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성벽우에서 휙- 소리를 내며 앞에 떨어지자 《에구머니-》 하며 자지러진 비명을 질렀다.

그 녀인은 후궁 우씨의 시비였다.

《누구세요?》

시비는 한손을 가슴에 얹고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저올시다.》

복면하였던 사나이가 수건을 벗었다. 그제야 시비의 낯이 밝아진다.

《이게 무슨짓이요?》

《왜?》

《사람의 간을 놀리면서…》

《조심해야 해!》

《무슨 도적질이라도 하게?》

《흥! 이 부여에서 절도죄는 물건의 12배를 배상하여야 한다는데…》

《알기는 잘 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왜 상관없어? 내가 모를줄 알고? 우리 주인과 후궁 우씨사이에 거래를 틀면서 네가 도중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는줄?…》

시비의 입이 뽀로통해졌다.

《그쯤한것도 없이야 무슨 재미로 이런 일을 해? 네 주인이라는 그 작자는 언제 한번 얼굴도 보이지 않으면서 후궁마마와 엄청난 장사질을 하는데? 내가 아니면 오랑캐장사군이 어딜 후궁마마에게 줄을 이어? 흥, 그러고도 뭘 어째?》

《쉿, 함부로 까는게 아니야.》

《그러고도 사내라고?》

《이년, 사내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게 무슨 사내람…》사내의 눈길이 시비를 쏘아보았다. 그 눈길을 맞은 시비가 코나발을 불며 얼굴을 돌렸다.

시비를 쏘아보던 사내는 갈범처럼 달려들어 시비를 덮치였다. 성벽밑에서는 나지막한 교성이 울렸다.

 

후궁 우씨는 시비가 가져온 비단을 보고 놀랐다.

《그 오랑캐장사군이 환장을 한게 아니냐? 약정했던것보다 훨씬 많구나?》

《후궁마마, 그건 사례라고 하오이다.》

《사례라니?》

《쥬신국에서 온 세객을 죽여버린것 말이오이다.》

《뭐라구? 그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안다더냐?》

《저… 그건 모르오이다. 다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는 장사군일망정 제 나라를 리롭게 하는 의로운 장사군이라고 하면서…》

시비는 말끝을 흐리였다.

후궁 우씨는 눈앞이 캄캄해지는것 같았다.

시비의 말을 듣건대 자기와 거래하는 장사군이 순수 장사치같지는 않다.

누구도 모르게 꾸민 일을 오랑캐장사군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대소왕자의 약점을 리용해서 왕과 대소왕자와의 사이를 리간시키고 나아가서는 그 왕자와 주몽과의 사이까지 싸우게 하여 하나의 돌로 두마리의 새를 잡으려던 우씨였다. 그래서 대이왕자를 시켜 쥐도 새도 모르게 대소왕자가 잡아가둔 그 서쪽에서 온 사람을 놓아주게 하고 그를 찾지 못해 안달아 날뛰는 대소에게 주몽이 감추었다고 알려주게 한 우씨였다.

그것은 물론 자기의 친아들인 대이를 장차 태자로 만들기 위한 밀계였다.

그런데 그 일을 저 오랑캐장사군이 어떻게 알고 사례요, 뭐요 한단 말인가. 우둔한 칭찬은 모욕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맞는것이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후궁인 우씨 자기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오랑캐의 일을 도와주는것이 아닌가.

《후궁마마!》

우씨는 시비가 찾는 바람에 생각에서 깨여났다.

《후궁마마, 비단은 가장 값진것이라고 하오이다. 당장 후궁마마의 옷을 만들게 시키올지…》

우씨는 번거로운 생각에 빠져들고싶지 않았다. 까짓거, 정사(政事)야 남정들이나 하라지…

《그래라, 되도록이면 빨리 만들게 해라. 어디 한번 입어보고싶은걸…》

《이 비단으로 옷을 지어입으면 아마 대왕께서 눈이 부셔하실것이오이다.》

《그래?…》

우씨가 그 아름다운 얼굴에 담뿍 웃음을 담는데 대이왕자가 들어왔다. 웬일인지 아들의 낯빛이 흐려있었다.

우씨는 무슨 일이 생긴줄 알고 얼른 시비에게 눈짓했다.

《너는 가봐라.》

시비는 대이왕자에게 교태를 지어보이고 뱀처럼 방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로 그렇게 찌푸둥했다는거냐?》

시비가 사라진쪽을 살피며 우씨가 나직이 물었다.

《대소형님이 몹시 언짢아하시오이다.》

《왜?》

《오늘 부왕마마께서 말목장을 순행했는데 부왕마마께서는 목동인 주몽에게 말을 하사하셨다고 하오이다.》

후궁 우씨의 눈살이 갑자기 꼿꼿해졌다.

부왕의 말목장순행은 의례히 있는것이다. 말을 좋아하는 부왕의 성미로서는 있을법 한것이다. 그리고 부왕이 말목장 순행하고 그중 피페한것을 목동에게 하사하는것도 이따금 보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일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것일가? 다름아닌 주몽에게 하사하시였기때문이다.

후궁 우씨에게는 그 일이 심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대소의 친어머니인 정실왕후가 골골할 때 금와왕에게는 류화가 후궁으로 들어왔다. 그때 한창 궁녀로 있다가 금와왕에게 접근하여 그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있던 우씨는 류화를 얼마나 저주했는지 모른다. 우씨도 후궁으로 책봉되기는 하였지만 류화가 있는 한 마음이 편안치 못하였다.

우씨의 새암이 드디여 끓기 시작하였다. 이 부여국에서 질투하는 녀인을 《영고》때에 심판하여 산상봉에 내친 일도 있지만 우씨는 결코 그런데 주접이 들지 않았다. 우씨는 금와왕이 해부루선왕의 적자가 아닌것까지 곁들어 해부루선왕의 정통파들에게 추파를 던져 마침내 류화를 후궁에서 내치게 하였다.

그런 류화에게서 난 아들인 주몽이 금와왕에게서 말을 하사받다니…

그동안 잊은가 했더니 왕이 류화를 아주 잊어버린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그 아들 주몽에게 말을 하사한것이 아닐가?

우씨는 금와왕을 두고 류화와 그의 아들 주몽 그리고 자기와 아들 대이간에 정적관계가 이루어져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자칫하면 지금의 후궁에 만족하여있다가 금와왕의 안중에서 밀려날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장차 아들이 금와왕의 뒤를 잇게되는 일도 물거품으로 되고만다.

우씨는 소름이 끼치여 몸을 떨었다.

우씨는 아들 대이를 가까이 불러 그의 귀에 대고 오래동안 속삭이였다.

검과 창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밤낮으로 지키고있는 내성의 문에 늙은 녀인이 나타났다. 지켜선 군사들에게 뭐라고 말하고난 녀인은 내성을 나와 성주위에 깊이 판 해자우에 놓인 나무다리를 조심스레 건넜다. 녀인은 창검을 세우고 서있는 군사들의 사이를 지나 중성을 통과했다. 내성과 중성을 지나치자 녀인은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걷기 시작하였다.

저쯤 외성의 높다란 성벽이 바라보이자 녀인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하고 광대뼈가 두드러진 녀인이였다. 반쯤 탈린 락엽이 어디선가 날아와 녀인의 옆을 스쳐 탈탈 굴러간다. 녀인은 골목길에서 한 아이를 만나 무어라고 물어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녀인의 발길이 주몽의 집쪽으로 잡아들었다. 주몽의 집이 나타나자 녀인은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보다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흐린 눈을 슴벅이였다. 그리고는 다시 주위를 살피고 마침내 뜨락으로 들어섰다. 문은 꼭 닫겨있고 뜨락은 조용한데 분명 방안에는 인적이 있다.

《후궁마마 계시와요?》 하고 녀인은 떨리는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방안에서 들리던 인기척이 그쳤다.

늙은 녀인은 다시금 《저, 후궁마마 계시와요?》 하고 조금 큰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부엌문이 열리며 달같이 환하게 생긴 처녀가 내다본다. 순간 손님은 쭈빗거렸다.

《누구를 찾으시오이까?》 하고 처녀가 상냥하게 묻는다.

《저, 이 댁이 이전에 후궁마마로 계시던 류화…》

《그렇소이다!》

《아, 그렇사와요? 그럼 후궁마마님 계신갑쇼?》

《네, 계시오이다!》

처녀가 방안에 대고 찾으니 방문이 열리며 류화가 나섰다. 늙은이는 류화를 흐리멍텅한 눈으로 바라보며 뭐라고 입술을 우물우물하였다.

《누구시오이까?》 하고 류화는 늙은이를 찬찬히 살피였다. 차츰 류화의 얼굴에 놀란 빛이 나타났다.

《아니, 이게 누구세요, 유모가 아니예요?》

류화는 문을 열어젖히고 버선발로 나와 늙은이를 맞이한다. 부엌에 있던 처녀는 상그레 웃으며 두사람을 바라보고있었다.

《그간 편안하시와요?》 하며 늙은이가 절을 한다.

류화도 맞절을 한다.

《저야 편안하지요 뭐, 유모는 어때요? 그새 퍽 늙었군요.》

류화는 늙은이의 손을 잡고 쓰다듬는다.

《후궁마마, 세월이 많이 흘렀사와요. 쇤네가 줄창 궁안에 잡혀있다보니 어느새 머리칼이 파뿌리가 되였사와요.》

《그렇군요. 하긴 주몽이 벌써 어른이 되였으니 왜 안 그러시겠어요…》

주몽의 소리가 나오자 늙은이의 눈이 빛을 뿌렸다. 늙은이는 손등으로 눈을 닦으며 물었다.

《참, 아드님도 편안하시와요?》

《그럼요, 어찌나 컸는지 집천정이 낮아졌답니다.》

늙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집을 찾았어요? 아마 우리가 만난지도 퍼그나 됐지요?》

류화의 말에 늙은이는 다시금 눈굽을 훔쳤다.

《그러게 말이오이다. 이제는 이십년이 가까와오는가보아요. 다 큰 도련님을 무척 보고싶었사와요.》

《그런데 어쩌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몽이 집을 떠났을적에 오셨으니…》

《어디 먼데 갔사와요?》

《말떼를 방목하러 갔어요.》

《그렇군요.》

늙은이가 한숨을 풀었다. 류화가 민망한 눈길을 주며 위로하였다.

《모처럼 오신 길 참 안되였군요. 하지만 주몽은 못 보시더라도 푹 쉬고 가세요.》

《그만두소이다. 후궁마마, 저는 몰래 궁을 빠져나왔사와요.》

《몰래 빠져나오다니요? 원, 무슨 말씀이예요?》

《아니 정말이와요. 어디 저같은게 나들이다닐 형편이 되오이까? 안에서 저를 찾게 되면 불티가 올가 두렵소이다.》

늙은이는 불안스러운 눈길로 사위를 살폈다. 류화는 광대뼈가 더욱 두드러진 녀인을 바라보았다. 자식 한점없이 온갖 잡일에 시달리며 바짝 말라가는 늙은이다. 이 녀인이 어떻게 되여 불쑥 집을 찾아오게 되였을가?

《쇤네는 그저 잠간 앉았다가 갈가 하와요.》

《어서 들어와 편히 앉으세요, 어서.》

《고맙사와요.》

늙은이는 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는 방안을 두루 살피다가 주몽의 옷가지에 눈길을 멈추고 뗄줄 모른다. 이윽고 늙은이는 류화를 바라보며 조심히 말꼭지를 뗐다.

《마님, 아까 부엌의 처녀는 누구오이까?》

《저, 먼 친척의… 아들이 없을 때 가끔 같이 있어요.》

《예… 그런걸 난 또…》 하며 늙은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잠시 궁싯거리던 녀인이 다시 물었다.

《후궁마마, 저… 도련님이 장가드신다는게 사실이오이까?》

《장가를요?》 류화는 뜻밖의 말에 놀랐다. 그의 눈길이 부엌쪽으로 향한다.

《아니, 나는 처음 듣는데요? 혹시 주몽이 좋아하는 처녀를 두고 하는 말씀이세요?》

《좋아하는 처녀라며는 그… 공주오이까?》

《공주는 또 뭐예요?》

《임금님의 따님말씀이와요.》

《참, 전혀 모를 말씀만 하시는군요. 주몽이 좋아한다는 처녀도 뭐, 정식으로 말난것은 아니고 그저 눈치가 다를뿐인데요.》 하며 류화는 다시금 부엌쪽을 살피였다.

류화가 캄캄한 밤중이니 늙은이는 오히려 뜻밖이라는듯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이까? 쇤네는 우연히 대소왕자님과 대이왕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주몽도련님을 공주와 혼인시키려 한다고 하오이다.》

《대소와 대이왕자가요?》

《그렇소이다. 저도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부다 했사와요. 아이때 떨구었다놔서 좀 얼떨하긴 해도 공주니까 시집 못 가랴, 헌신도 짝이 있다는데 했사와요. 그런데 신랑될 사람이 주몽도련님이라는게 아니오이까?》

《저런, 그게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일가요?》

《글쎄 가을뻐꾸기인지 봄뻐꾸기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사실인것 같아요. 대소왕자님이 부왕에게 말씀드려 공주를 주몽에게 시집보내자고 하니 대이왕자가 어떻게 말먹이군에게 보내는가 하지 않소이까? 그러니 대소왕자님도 주몽도련님이 비록 부왕의 피를 잇지는 않았어도 당당히 북국왕의 왕자이고 또 이미 궁성에서 같이 자란 처지라 부마가 되여도 세상의 웃음거리는 사지 않을것이라 하지 않소이까?》

《대소왕자가요? 정말 알다가도 모를 말씀이예요. …》

류화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공주가 시집을 가니 마니 하는 소리도 그렇지만 하필 왕자가 나서서 비뚤이 공주를 주몽에게 시집보내자고 했다는 소리가 영 귀에 선 소리다. 혹시 이 유모가 늙어 망녕된 소리를 하는게 아닐가? 아니, 이 유모는 아직 그럴 늙은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류화는 기가 질려 횡설수설하는 늙은이를 건너다보고있었다.

늙은이는 류화의 심정을 전혀 모른채 입술에 침을 바르며 흥이 나서 이야기하였다.

《호호, 쇤네는 그 소릴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와요. 도련님이 임금의 부마가 되시다니, 호호. 우리 주몽도련님이 하도 잘나고 의젓하시니 그런 복이 차례지는것 아니겠소이까? 하긴 도련님이 한때 운수가 사나와서 말먹이군이 되였을뿐이지 어릴 때부터 왕자들과 함께 자라지 않았소이까?

그런 도련님이 부마가 못될것도 없지 않소이까? 이제 도련님이 장차 나라의 임금이 되실지도 모르지 않소이까? 듣자오니 금와임금님도 해부루선왕의 사위로서 업보를 이었다고 하오이다. 쇤네는 도련님을 거두어준 유모로서 늘그막에 춤이라도 추고싶었사와요. 그래서 도망치듯 몰래 빠져나왔는데 마님은 모르고계셨사와요?》

류화는 로파의 말을 귀등으로 들으며 때때로 웃어도 보이고 머리를 끄덕여보이기도 하였다.

늙은 녀인은 한바탕 수선을 떨고나서 허겁지겁 돌아간다고 나선다. 류화는 들은 소리가 하도 엄청나서 례의를 차려 작별도 못하였다.

늙은이가 돌아간 다음 류화는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늙은이가 한 말이 사실일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날가. 그렇다면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것일가? 도무지 아리숭하다.

부엌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을나가 들어섰다. 을나의 고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고이였다.

류화는 심장이 뚝 멎는것 같았다.

《을나야, 너 다 들었니?》

《어머니》 하며 을나는 류화의 품에 와락 안겼다.

《참 일도 별나게는 되는구나…》

류화는 을나의 등을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응, 을나야.》

《어머님, 너무 상심마시와요. 저는… 저는… 그이 일만 잘 된다면…》

《을나야, 너 무슨 소릴 하는거냐?》

《어머님!》

을나는 섧게 울었다.

그날 밤을 류화는 뜬눈으로 새웠다.

류화에게 무엇보다 리해되지 않는것은 돌변한 대소의 태도다.

공주와 주몽간의 배필이 되냐, 안되냐 하는것은 벌써 차후문제다. 류화는 언제 한번 그런 생각을 해본적도 없었고 또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공주라도 자기 아들에게 짝지면 졌지 결코 못하지는 않는다고 류화는 자부하고있는터이다.

아직 아들에게 뜸을 들여 말하지는 않았어도 주몽은 당당한 해모수왕의 아들이다. 그러니 공주도 짝지면 지는거다.

그러나 대소의 행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류화는 그의 각근한 태도가 불안스러웠다.

무엇이라고 찍어 말할수는 없으나 꿍꿍이의 검은구름이 감돌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신상에 떠도는 검은구름을 류화는 명백히 보고있는것이다.

그 구름이 장차 자기 아들을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겠는지는 모른다.

이것이 류화를 한층 불안스럽게 하는것이다.

점도록 앉아 생각에 잠겼던 류화는 자기가 지금 속수무책으로 있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어떻게 되는가를 알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가만있지 못하겠다.

마침내 류화는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른다.

처음에는 집을 나서고 동네를 벗어나 정처없이 례나루의 집으로 향하였다.

허둥지둥 달려간 걸음이였으나 례나루는 류화가 생각한것처럼 그렇게 놀라는 빛이 아니였다.

류화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나서 례로인의 말을 기다렸다.

《놀랄것은 하나도 없소이다.》 하고 례나루는 평소나 다름없이 침착하게 말하였다.

류화는 멍하니 로인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리도 태연하게, 건너기슭에 불구경하듯 말할수 있을가, 한동안 류화는 로인이 아직 사태의 진상을 리해 못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이미 그렇게 되길 바라고있었소이다.》

《아니, 그건?》

《생각해보오이다. 무엇때문에 주몽이 이때까지 웅지를 키우고 학문과 무예를 닦아왔소이까?

다 단군선인의 옛성지를 회복하여 겨레의 복락을 이루자는것이 아니였소이까? 주몽이 장차 어떻게 터를 닦을것인가고 생각을 많이 해보면서 이 늙은이는 금와왕의 부마로 되는것도 념두에 두었소이다.

주몽이 부마가 된다면 장차 대소나 대이와 당당하게 겨룰수도 있소이다. 금와왕이 주몽을 옳게 가려만 본다면 해부루선왕의 전철을 따르자고 할수도 있소이다.

그렇소이다. 주몽이 부여의 왕이 될수도 있소이다!》

《설마…》

《허허, 만사는 불측지변이오이다.》

례나루는 미소를 띠웠다.

그러나 류화는 아직도 미심쩍은 내색을 감추지 못한다.

례나루선생이 꼭 무언가 잘못 생각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류화는 례나루선생의 의도를 따를수밖에 없었다.

주몽은 오랜 방목끝에 돌아오고있었다. 이번 방목은 이모저모로 성과가 컸다.

주몽은 례나루선생에게서 배운 진법을 마침내 익혀냈던것이다. 말떼를 상대로 진법을 익히도록 도와준 서불아저씨를 비롯한 목부들이 고마왔다. 늘쌍 그들의 도움을 받는 주몽이였다.

이번에 진법을 익힌것으로써 례나루선생의 진법을 마무리하게 되였다. 례나루선생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흐뭇하였다.

례나루선생을 생각하는 주몽의 눈앞에는 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느때없이 수집어하는 모습이다. 이제 례나루선생을 찾아가면 을나를 만나게 되겠지…

그가 어떻게 대해줄것인가. 주몽의 눈앞에는 어리광부리는듯한 을나의 모습이 잡힐듯 안겨왔다. 정다운 모습이였다.

주몽은 벌씬벌씬 웃으며 속으로 을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있었다.

그러다가 말이 멈추어서는 바람에 생각에서 깨여났다.

뜻밖에도 을나가 앞을 막고있었다.

《을나!》 하며 주몽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을나는 꼼짝않고 서있었다.

주몽은 자기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눈을 몇번 껌벅이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랬어도 여전히 을나는 서있었다.

그제서야 주몽은 을나를 자세히 보았다. 을나의 눈에서는 샘물같은 눈물이 쏟아지고있었다.

《을나! 웬일이요?》

아래입술을 깨물며 서있는 을나가 며칠전보다 퍽 수척해보였다.

《을나! 무슨 일이 있었소?》

여전히 을나는 말없이 서있었다.

《답답하군. 웬일이요? 여느때없이 울상을 하고있으니… 난 을나의 활달한 모습이 항상 좋았는데…》

그래도 처녀의 얼굴은 풀릴줄 모른다.

《큰일났군, 에라. 알다가도 모를게 처녀들 마음이라는데… 까짓, 모르는게 낫지…》 하고 말한 주몽이 힐끔 을나를 보니 그는 나직이 한숨을 호- 하니 내쉰다. 한번 옥맺히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게 녀자의 마음이라더니 과연 그렇군. 할수 없지…

《을나, 어디로 가던 길이요? 내가 태워다줄가? 언제인가 을나도 그런 말을 했지?》

을나는 눈물맺힌 눈으로 주몽을 올려다보다가 맥풀린 소리로 말하였다.

《소녀가 어찌 함께 말을 타겠소이까. 남들이 웃겠소이다. 저는 걸어가겠소이다.》

《그런데 어딜 가오?》

《마중 가던 길이였소이다.》

《나를?》

《그렇소이다.》

《무슨 일이 있었소?》

《저의 할아버님이 부르시오이다.》

《그래? 하긴 선생님을 만나뵙고싶었소. 그리고 저녁때쯤 해서는 어머니도 찾아뵈려고 했소.》

《어머님도 거기 계시오이다.》

《어머님도? 그거 마침 잘되였군. 그럼 을나, 어서 내뒤에 타오!》

을나는 망설였다. 그러다가 주몽이 손을 내미니 잡고 오른다.

《진작 그럴것이지… 아마 부루나도 좋아할거요! 이것 보오! 껑충거리면서 뛰지 않소?》

정말 부루나는 별스럽게 껑충껑충 뛴다. 그 바람에 을나는 주몽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 부루나, 귀한분을 태웠으니 한번 냅다 달려보자!》

주몽이 말을 몰았다. 한동안 달리고나서 주몽은 다시 속보로 몰면서 을나에게 물었다.

《을나,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소?》

《그만하시오이다. 제가 어쨌소이까?》

《왜, 우울해서 그러오?》

《속이 상해 그러오이다.》

《뭐가 속이 상하오?》

《그걸 몰라서 묻소이까?》

《그건 또 무슨 말이요?》

《정말 모르오이까?》

《뭘 말이요 을나?》

《아니, 공주에게 장가드신다는걸 숨기실 차비오이까?》

《공주에게 장가든다고? 누가? 내가?》

《그렇소이다.》

《하, 거참 웃기는군… 공주에게 장가든다고? 하하!》

주몽이 껄껄거리자 을나는 놀란다.

《정녕 모르고계시오이까?》

《난 듣다 처음이요. 대체 어디서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하오? 하하!》

《어마…》

을나는 며칠전에 그 늙은 녀인과 류화가 주고받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게 정말이요?》

비로소 주몽이 심각해지며 물었다. 그러니 자기와 을나사이를 알고 쐐기를 치는것인가, 아니면 순전한 선의에서 그러는것인가? 아니 대소의 속에서 그런 호의란 볼수 없는데…

《선생님도 이 사실을 알고계시오?》 하고 주몽이 물었다.

《아마 그럴것이오이다. 어머님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셨댔다니까… 그분들은 이후 저에게 아무런 내색도 없으셨소이다.》

《그렇소? 바로 그때문이구만.》

두사람은 서로 생각에 잠겨 말을 타고갔다. 주몽은 어두운 낯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례나루는 주몽을 반겨맞았다.

주몽은 긴장해지는것을 느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답답한 낯빛이였다.

주몽을 잠시 지켜보던 례나루가 입을 열었다.

《주몽, 내 이미 생각해오던것인데 마침 때가 온것 같네.

왕자들사이에 그대를 부마로 삼는 문제가 오고가는 모양인데, 그 사실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나는 그대가 부마가 되였으면 하는데 어떤가?》

주몽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때껏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해본적이 없사오나 그것만은 거두어주소이다.》

《주몽, 내가 하는 말을 심중히 듣게. 부마가 되는것을 굴욕이라고만 생각할게 아니네. 비록 공주는 미거하더라도 금와왕이 그대를 총애한다면 금와왕의 업을 이을수도 있네.》

《결단코 그럴수는 없소이다.》

《그럴수 없다? 주몽, 그대는 이때껏 키워온 웅지를 펴기 위해서라도 잠시의 굴욕쯤은 참을줄 알아야 하네…》

《선생님, 저는 일신의 굴욕때문에 그러는것이 아니오이다.》

《그렇다면?》

《저는 을나를 사랑하고있소이다. 용서하시오이다. 학문과 무예를 배우면서 딴 생각을 하였다고 책망하실줄 아옵니다.

그러하오나 저는 을나를 사랑하고 을나도 저를 사랑하고있소이다.

저는 이것을 버릴수 없소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가르치심은 저를 생각하여 하시는 말씀이오나 저는 감히 다른 생각을 하고있소이다.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단군선인의 웅지를 부흥시키는데 부여는 적합치 않다고 생각하오이다.》

《그건 무슨 말인고?》

《부여는 금와왕의 나라이옵니다. 감히 그럴수 없는 일이기는 하오나 금와왕께서 저를 간택하시여 부마로 삼아 장차 당신의 업을 넘겨주신다고 하더라도 저는 대소나 대이왕자들과의 집요한 충돌을 면할수 없소이다. 저는 그걸 바라지 않소이다.

그리고 겨레의 통일을 이루자고 해도 부여는 지리적으로 적합치 않소이다. 부여의 동남, 동북, 서남쪽아래로 수많은 겨레의 소국들이 갈라져있소이다. 제자는 그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는것이 먼저 할일이라고 보오이다!》

례나루는 입을 꾹 다물고 주몽의 말을 듣고있었다.

주몽의 대답은 례나루의 심중을 놀래웠다. 례나루는 자기가 지나치게 주몽이 대업을 이루는 일을 서두르고있다는것을 직감했다. 늙은이의 초조감때문이였을가? 어째서 이번 일을 쉽게 생각했던가.

두사람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이윽하여 례나루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주몽, 이제는 그대가 이 스승을 릉가하는군. 오- 허, 참 감개무량하구만.》

《선생님, 고맙소이다!》

《다만 왕자들의 모함을 피해야 할 생각도 해야 하네. 왕자들이 공주혼인을 운운하는걸 보면 필경 무슨 일을 꾸미고있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날리 없지…

그러니 내 생각 같아서는 이왕 말이 난김에 그대가 을나와 가정을 뭇고 오이, 마리, 협부도 일단 칩거하는게 좋겠네.》

 

대소의 얼굴에도 환관들의 얼굴에도 능글능글 웃음이 피여났다.

환관들은 엷은 옷을 입은 궁녀 하나를 붙잡고 대소왕자의 분부를 기다리고있었다.

《어찌하리까 왕자님?》

《하, 하, 어쩌다니? 잡아넣어라, 잡아넣어. 룡궁에 가보고싶다니 어디 룡궁구경을 하고 오라 해라.》

연약한 궁녀는 몸을 바르르 떨며 애걸하였다.

《왕자님, 그건 너무 하시오이다. 제가 그만 실언을 한것이오이다. 가을날 물이 찬데 소녀를 못에 잡아넣으면 어찌하오리까?》

《나도 놀음을 하는거다. 하하, 어서 물에 집어넣어라.》

첨벙!

궁녀는 비명을 지르며 못에 떨어졌다.

《하, 하, 하!》

못에 떨어진 궁녀는 허우적거리며 못가로 나왔다.

궁녀는 온몸이 물에 함빡 젖어 바들바들 떨었다.

《그래, 어떠냐? 룡궁구경을 했느냐?》

대소가 물이 줄줄 흐르는 궁녀를 재미있게 바라보며 물었다. 궁녀는 뭐라 대답하려다가 재채기를 하였다. 그리고는 제법 《왕자님, 구경을 했소이다.》 하고 대답했다.

《뭐라구? 하하하, 그래 뭐라더냐 룡왕이?》

《왕자님께 인사를 전해달라 했소이다.》

《으하하, 너의 대답이 그럴듯 하고나. 상을 주라!》

대소왕자는 한바탕 놀고나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놀음의 흥심이 가라앉자 차츰 심중에 차있던 무거운 생각이 떠올랐다.

참, 대이가 그럴듯 한 생각을 했어. 공주의 결혼으로 주몽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가 어쩜 그런 놀라운 생각을 했을가? 우둔하고 미련한 대이가 그런 꾀를 생각했을수는 없고, 분명 후궁 우씨의 계략일테지.

공주를 주몽에게 시집보낸다?

그렇게 되면 참 일이 재미있게 되겠군. 주몽이 례을나와 이미 이만저만한 사이가 아닌것만큼 이 소식이 전해지면 무슨 일이 꼭 생길거다.

주몽은 어떻게 나올가?

그는 틀림없이 모욕으로 생각할거다. 그만한 사내치고 비뚤이 공주를 안해로 삼으라고 하면… 후훗- 참 재미있겠군. 여느 청혼과도 달라서 함부로 내칠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자니 분통스러울게고…

때로는 이렇게 눈감고 미운 놈의 뺨을 치는 재미도 있는걸. 모르는체 하고 상대의 아픈 곳을 긁어주는 재미는 왕자가 아니면 누릴수 없는거다.

이제 주몽이 반발할것은 틀림없고, 그렇게 되면 이 기회에 주몽을 호의로 대하는 부왕에게 다시한번 주몽을 깎을수 있다.

전번 쥬신국밀사사건이후 말목장순행을 통해 부왕이 이 대소왕자를 탐탁치 않게 보는 대신에 주몽에 대해서는 받자 하는게 눈에 거슬리더니 꼴좋다.

병신도 제 자식인데 주몽이가 공주와의 결혼을 반대하는걸 들으시면 아무리 주몽에 대해서 좋게 생각을 하였더라도 결코 속이 편치않으시리라.

그렇게 되면 부왕과 주몽과의 관계는 다시 떼놓을수 있다.

일단 부왕이 주몽을 멀리하면 또 무슨 수를 꾸미기도 편하다.

그뿐인가? 공주와 주몽이 결혼한다면 이 소식이 주몽을 제자로 두고있는 례나루와 주몽을 련모하고있다는 을나에게 결코 스쳐지나는 바람으로 되지 않을게다.

무심히 던진듯 한 돌에 개구리가 죽을수도 있으니까.

이거야말로 신바람나는 몰이사냥이다. 꽹과리로 소리를 내서 놀라 튀게 하고는 제풀에 함정에 빠지게 한다?

처음에 대소는 대이가 《형님, 자칫하면 형님이나 나나 주몽이한테 밀려날수 있소이다.》 할 때 무엇을 말하자는지 몰랐다.

그러나 말목장순행때 부왕이 주몽에게 말을 하사한것이 자기뿐만아니라 대이에게도 스쳐보낼수 없는 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역시 대이, 너도 바보는 아니다. 네가 자기의 생모인 후궁 우씨를 끼고 이 대소의 태자자리를 노리고있는걸 모르지는 않지만.

지금 부왕마마가 주몽을 선호하고있는 마당에서 너나 나나 편안할수 없지.

좋아, 우리는 부왕마마의 피를 받은 형제이니 먼저 서로 도와 주몽을 밀어내자. 그다음에는 내가 너를… 이게 몰이가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것이다. 부왕마마가 주몽을 경원하게 되면 내 목적은 이루는거다.

이리하여 대소는 대이와 짜고 이전 주몽의 유모였던 늙은이를 찾아내여 그가 듣는데서 주몽과 공주사이의 혼인문제를 흘리는체 하였던것이다.

일은 대소나 대이가 생각했던대로 되였다.

유모는 왕자들이 흘린 소리를 곧이곧대로 듣고 주몽의 집에 옮겼던것이다.

물론 대소는 주몽이 부마가 되는걸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바라는것은 아니다.

주몽이 부마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대이도 바로 그걸 꺼리지… 하긴 나는 주몽이 부마가 되는게 대이만큼은 나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대이와 주몽을 다투게 하여 그사이에 내가 리득을 보는거지. 어디 맏왕자인 나를 내놓고 저희들끼리 실컷 싸워보라지. 어쨌든 부왕마마의 왕위는 내가 잇게 될테니까. 대이는 후궁의 자식이요, 주몽은 부왕마마의 혈붙이도 아니니까.

대소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해리가 돌아왔다.

《그래 어떻게 돼가느냐?》

《예, 저 알아보았사온데 주몽이 례을나와 성례를 치른다고 하오이다.》

《그래? 그럴테지… 분명 공주매파에 대한 반발이겠다?》

《아니오이다. 그들사이에는 이미 약조가 되여있던것으로 아오이다.》

《그러면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격은 아닐테지?》

《그건 그러하오나…》

《어디, 전말 사정 낱낱이 아뢰여라.》

대소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주몽이 공주와의 결혼청을 받으면 반드시 거절하리라는건 이미 알고있다. 그러나 례을나와 결혼한다는 대답이 곧장 튀여나올줄은 몰랐다.

대소는 이렇게 선뜻 주몽이 나올줄은 몰랐다. 아니,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일은 어딘가 맹랑하게 돼가는감이다.

제 생각에 골몰하던 대소왕자는 문득 해리의 말을 중둥무이시켰다.

《지금 뭐라고 했지? 마리가 어쨌다구?》

《예? 예… 저… 마리는 주몽이 장가를 든다는 말을 듣고는 주몽과 다투고 집으로 갔다고 하옵니다. 듣자니 주몽과 결별하고 왕자님을 모시겠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또 오이는 화김에 주몽과 다투고 머리 싸매고 드러누웠다고 하오이다.》

《그-으래? 왜? 주몽이 장가들었다는것이 그리도 불쾌하였는가?》

《그네들은 서로 꼭같이 장가든다고 맹약했던 모양이오이다. 전번에 오이와 추연이사이에 말이 났을 때도 오이가 그 맹약때문에 꾸물꾸물해서 아직까지 끌어왔다고 하오이다. 그런데 불쑥 주몽이 장가들었다 하니 오이나 마리가 결국 속히웠다는 말이오이다. 들으니 주몽과 을나와의 약혼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것 같소이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떠하오? 일석이조는 못돼도 일석일조야 되지 않는고?》

《왕자, 그건 그네들의 불손한 계책 같소이다. 그들은 한두번 허물에 갈라질 그런 무리가 아니오이다. 통찰하소서.》

해리는 가늘게 눈을 쪼프리며 대소에게 간하였다.

대소는 해리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해리의 말이 옳을수도 있다. 하지만 주몽이 을나와 결혼한다는 그 말이 과연 오이나 마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겠는가? 오이나 마리도 젊은이들이다. 바로 젊었기에 그들에게 주몽의 결혼은 틀림없이 그 어떤 영향을 주었을것이다. 어떤 영향이겠는가? 아무리 호걸이라 할지라도 주몽과 을나가 결혼한다는것이 그닥 반가운것이 아닌것이다.

그렇다. 오이나 마리도 다름아닌 사춘기에 무르녹는 사나이들이다.

해리는 칼날같이 명철하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있는 그런 춘정 같은것은 모른다. 바로 이것이 칼날로 벨수 없는 세속인간들의 생활인것이다.

하여튼 마리가 정녕 나의 측근으로 된다면 그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혹시 해리말마따나 계략이 아닐가? 흥 그렇게는 안될걸!

이 대소의 밑에 들어왔다가는 누구도 배반자가 되여 나갈수 없다. 오직 죽어서만이 나갈수 있다. 대소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에 파묻혔다.

밖에서는 마지막락엽이 굴러가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깊은 밤.

밖에서는 눈보라가 일었다. 시도 끝도 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소리가 천지를 메우고있었다. 례나루는 참숯화로를 마주하고 눈보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이런 날씨에 여기까지 오려면 퍽 고생하겠는걸. 하지만 그 사람은 올거야. 워낙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아직도 오려며는 멀었다. 례나루는 몸을 한번 움직이고나서 그사이 몇달동안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았다. 대체로 일은 제대로 된셈이다.

주몽과 그의 벗들은 례나루의 말대로 뿔뿔이 헤여졌다.

이것으로 주몽에게 돌려진 불의의 검은 칼은 일시 멎어선듯 하다.

장가든 주몽은 자갈물린 말마냥 공손해져서 안일만을 꾀하며 세월을 보낸다. 장가든 사나이의 즐거운 생활우에 어느덧 락엽이 꽃잎처럼 날리고 겨울의 눈까비가 움츠러든 생령을 덮으며 흩날렸다. 새서방은 꽃같은 새색시의 얼굴을 마주하고 영 집에서 나올념조차 안했다. 이리하여 포부 큰 사나이도 결국 티끌같은 초로인생의 리익을 좇아 항간의 필부가 되여버렸다. 이것이 일반적인 주몽에 대한 평이였었다.

주몽의 친구들인 오이나 마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산야를 무른 메주밟듯 돌아치던 오이는 그 거쿨진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화로로 덥혀진 자기 방에서 딩굴다가는 뜨락에 나와서 잎떨어진 나무를 상대로 몸쓰기 헛동작만 일삼았다.

마리는 찌프린 얼굴을 했을망정 대소왕자네의 복잡하고 분주한 생활에 끼여들어 눈코뜰새없이 돌아쳤다.

다만 협부만이 고스란히 례나루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앉아 책을 읽는가 하면 스승을 따라 어디론가 돌아다니는데 사냥을 다닌다고 한다.

생각에 잠겼던 례나루는 밖에 귀를 강구었다. 례나루는 조심스러운 발자욱소리를 감촉하였다.

기다리던 사람이 온 모양이다.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세번 났다. 례나루는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바람처럼 방안으로 들어왔다.

《앉게.》

하고 례나루가 말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바깥동정을 살피였다. 멀리로 눈가루를 몰아가는 소리가 들릴뿐이였다.

들어온 사람은 동창을 등지고앉았다.

《그래 요즘 주몽과 그의 친구들에 대한 왕자의 생각은 어떤가?》

《처음에는 미심쩍어했지만 지금은 방관하고있는것 같소이다. 더우기 대소왕자는 마리에게 푹 빠져있소이다.》

《다행이로군. 그대가 이때껏 궁중에서 홀로 힘들었는데 이제는 한결 덜게 되였소. 그렇다고 마리에게 그대의 정체를 알려서는 안되겠소. 다만 할수 있는껏 뒤받침해주면 되겠소.》

《스승께서도 각별히 조심하시오이다.》

《응?》 례나루는 생각에서 깨여나 협객을 바라본다.

《주몽과 을나가 결혼한 다음부터 왕자의 눈초리가 스승께 돌려지기 시작하였소이다. 워낙 아드님이 횡사하였을 때부터 눈길이 좋지 않았소이다.》

례나루는 묵묵히 있었다.

잠시후 례나루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내 걱정은 마오. 지나는 바람이겠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심상하오.》

《저의 생각에는 스승께서 다문 얼마동안만이라도 자리를 뜨셨으면 하오이다. 스승께 혹시라도 루가 미치면 스승께서 품고계시는 뜻도 이루기 어려울가 하오이다!》

《알겠네, 내 생각해보겠네.》

협객이 왔다간지 며칠후 례나루는 협부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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