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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 1 부

 

탈 출

 

8

 

땅우에 침침하게 드리웠던 비구름이 어제 밤부터 걷히기 시작하더니 새벽부터는 언제 그랬더냐싶게 청청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맑은 아침이였다.

대소왕자는 뒤짐을 지고 화원의 꽃을 구경하고있었다. 그러나 왕자의 눈에 비치는것은 갖가지 꽃들의 아름다운 색갈이며 기묘한 모양이 아니였다. 애당초 왕자는 그런데 관심이 없다. 대소의 마음은 오늘따라 침울하다. 어쩐지 날벌레를 씹은듯 한 기분이다.

왜 그럴가, 왜? 오늘은 부왕이 말목장을 순행한다고 했다. 바로 그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먼산에서 먹구름이 피여나기 시작하였다. 대소는 미간을 찌프렸다. 꽃향기가 물큰 풍겨오는것조차 어쩐지 역스러웠다. 대소의 눈길이 만첩으로 피여난 꽃송이에 닿았다. 누런 벌 한마리가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꿀을 빨고있었다. 한참 꿀을 빨던 벌이 붕- 하니 날아나고 어디선가 다른 꿀벌이 또 날아왔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소에게는 문득 해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리의 말을 듣건대 자기의 옛 스승이였던 례나루와 주몽이 이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있을것이 분명했다. 주몽이 그 서쪽에서 온 사람을 숨겼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상한것은 그들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것이다. 례나루는 자기의 아들을 죽인 대소를 결코 가만두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아무리 초야의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초인력에 가까운 무술을 지닌 로인이기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일이든 치를수 있을게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가만있는가, 이것이 대소에게는 께름직하다.

그리고 주몽은? 모름지기 주몽은 어디선가 대소가 례나루의 아들을 죽이는것을 보았을것이다. 대소는 예감으로 그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주몽이 다문 얼마만이라도 적의를 내보일듯 하건만 해리의 날카로운 눈길에 비쳐보아도 전혀 그런 내색을 알아차릴수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노리고있는것일가? 대소는 기어코 그걸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대소가 또한 불안한것은 궁중의 적지 않은 대신들은 물론 항간에서 떠도는 소문이였다. 해부루선왕이 그러했듯이 금와왕때에 와서도 세간나는 왕가가 있을수 있다는 소문이다. 그리고 주몽에 대한 신망이 날을 따라 높아가고있다. 부왕마마에게 상주하여 주몽을 목동으로 돌려 그를 천한 상놈으로 만들어버린것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있다. 아무리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요, 민심이 천심이요 하고 떠들어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양무리들과 같이 트는대로 몰려가기마련이기때문에 그들이 주몽을 추앙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다. 요점은 부왕마마를 비롯한 몇몇 중신들도 주몽에게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한다는데 있다.

아직 어릴적에는 대소 자기가 부왕의 왕위를 이으리라는것이 의심할바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게 타고난 자리로 될수 없다는 위구와 불안을 느끼며 더럭 속이 끓기 시작하였다.

주몽이 북부여 해모수의 아들이라는걸 알게 된 때부터 대소의 위구심은 더욱 커졌다. 왕위가 꼭 자기에게 세습되리라는 확신은 어릴 때 철부지생각에 불과하다. 서쪽나라에서 왔다고는 하지만 실상 북부여를 거쳐왔다는 그 수상한 세객에 대해서 그토록 신경을 쓴것도 바로 주몽과 북부여와 어떤 내밀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심에서였다. 그래서 끝끝내 그 세객을 죽여버리긴 하였지만 근심은 덜어지지 않았다. 그 세객이 부왕마마를 굳이 만나자고 해서 하려고 한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주몽을 만나 어떤 계책을 꾸몄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부왕마마의 태도도 원망스러운데가 없지 않다. 부왕마마는 어째서 주몽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대하는걸가, 대소는 부왕의 심정이 도무지 가늠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때껏 주몽을 목동으로 내쳤다고 해서 마음을 풀어놓고있었던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사이 주몽은 대소가 알지 못하게 커가고있었다. 대소가 알건대 주몽은 을나와 가까운 사이인것 같다. 을나는 례나루의 손녀이다. 그렇다면 례나루와 주몽은 어떤 관계일가? 주몽이 례나루에게서 무예와 학문을 전습받았다고 보면 이것은 대소에게 죽음의 선고와 같은것이다. 주몽이 례나루와 련결되였다면 례나루문하에서 배우던 오이, 마리, 협부와도 이어졌을것이다. 언제건 태자의 의식이 있으면 부르려고 하던 오이, 마리, 협부가 주몽에게 쏠릴수 있다. 대소는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주몽을 제압하라! 아니 없애버려야 한다.

범을 등뒤에 놓고 태자자리를 멍청하니 바랄수는 없다. 태자가 된다고 해도 주몽을 놔두고서는 결코 편안할수 없다.

가만, 오늘 부왕이 말목장을 순행한다고 했지? 그것부터가 꺼림직하다. 대소에게는 말목장에 대한 임금의 순행이 결코 의례적인것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말목장에는 주몽이 있기때문이다.

일부러 부왕마마가 주몽을 만나려고 하는것이 아닐가? 부왕과 주몽이 상견하는것은 결국 주몽에게 힘이 되는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대소는 한숨을 내쉬고 부왕을 찾아갔다.

마침 금와왕은 시중군들에게 둘러싸여 옷을 입고있었다. 눈같이 흰 모시로 된 속옷을 입고 거기에 가슴과 목 그리고 어깨에 발톱 다섯개를 가진 룡을 금실로 둥글게 수놓은 누런빛의 곤룡포를 걸치고있었다.

《부왕마마, 오늘 말목장을 순행한다는것이 사실이오이까?》하고 대소는 물었다.

금와왕은 아들쪽을 보지 않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그래.》

《부왕마마, 어찌 존귀하신 옥체 루추한 곳에 순행한다 하오이까?》

왕은 아무말없이 맏아들을 내려다보다가 말하였다.

《우리 부여국이 좋은 말, 붉은 옥, 족제비와 삵의 가죽, 아름다운 구슬로 여러 나라에 이름났다.

나라의 이름을 날리는 부여의 말이온대 어찌 임금의 순행이 루추한 곳에 당한다 하느뇨?》

왕의 말을 들으며 대소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오나 부왕마마, 소자가 대신 순행하여 정상을 아뢰겠나이다.》 하고 대소는 다시금 머리를 수그리였다.

왕은 말없이 대소를 바라보았다. 다른 때라면 금와가 효성스러운 아들의 청을 달게 받았을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 금와왕의 심신은 그닥 편안치 못하였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가장 가까운 충신이였던 소소리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소소리는 무슨 병에 걸린지도 모르게 죽었다. 금와왕에게는 운명하기 직전의 소소리모습이 눈섭에 매달린듯이 도무지 잊을수 없다. 뼈에 가죽을 씌운듯이 말라버린 얼굴에 검누런 더덕이 한벌 덮이고 눈굽과 입귀에 비지가 끓어 굳어진것이 소름끼치게 안겨온다.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처참한것이라면 애당초 살기조차 싫은것이 아닌가? 굳어져가는 동공으로 왕을 찾으며 소소리는 말하였다.

《전하, 무서운 귀신이 소신을 못살게 굴고있소이다. 전하, 오로지 전하를 위해서 소신이 부덕쥐처럼 뛰였소이다. 그러하온데… 뭇귀신들이 소신을 괴롭히오이다. 전하, 소신을 살려주소이다, 전하!》

금와왕은 등때기로 뱀이 스르륵-스르륵 지나는것 같았다. 소소리가 말하던 무서운 귀신들이란 어떤것들일가? 어째서 그에게 무서운 귀신들이 달라붙었단 말인가. 그 귀신들이 소소리를 죽음의 나락으로 끌고간것이 아닐가. 하긴 소소리는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다.

부덕쥐! 그래 부덕쥐처럼 소소리는 사람들의 눈에 띄우지 않는 오물터나 시궁창에서조차 곧잘 일을 꾸미군 하였다. 그가 일을 꾸미며는 사람들이 경악하는 일이 꼭 벌어지군 하였다. 해모수도 그가 보낸 자객에게 죽었다. 그는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였을가? 나를, 이 왕을 위해서였다고? 아니다. 모든 잘못은 그에게 있다. 나는 그저… 그저 그의 일을 모르는체 하였을뿐이다. 그가 꾸민 일을 두고 내가 놀란적이 얼마나 되던가! 나는 그렇게까지 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가 한 일이 내가 바라던것이 아니였는데도 나에게는 늘 기쁜것이라는데 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소소리는 죽었다. 그는 모든 죄를 안고 죽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떨어진셈이다. 소소리와 나하고는 아무런 연고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을가! 아 제발 잊혀주었으면…

금와왕을 괴롭히는것은 소소리의 죽음뿐이 아니다. 소소리의 죽음이 금와왕의 밤을 괴롭힌다면 정사에 대한 일은 그의 낮을 괴롭히였다.

아래서 올라오는 장계들을 보며는 부여 린접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래서 순행을 떠나기로 하였지만 그것도 시원치 않다.

물론 금와왕은 린방들의 움직임이 무서운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화해하고 련합하는 길로 나가는것은 금와왕 자기의 뜻에도 부합된다. 하지만 부여궁성안의 일부 세력들은 완고하게 반대하였다. 죽은 소소리가 그 우두머리였는데 그가 죽었다고해서 그 세력조차 죽은것은 아니다. 그들은 해부루선왕의 정통파들로 자처하며 부여의 정략을 론하는 국중대회인 《영고》때 이론을 제기하여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는것이다. 물론 부여의 실제적인 권한은 금와왕에게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영고》도 무시하지 못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몸은 늙었다는 생각이 심심치 않게 갈마들 때가 많은 금와왕이였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감긴 모양과 흡사했다.

어전앞에 서있는 대소도 벌써 제멋대로 놀고있다. 금와왕은 후궁 우씨에게서 대소왕자가 부왕마마가 없는 사이에 제멋대로 서쪽에서 온 사람을 죽여버린것에 대해서 듣고 몹시 언짢게 생각하였다.

만일 자기가 왕위를 넘겨줄 태자로 대소를 찍고있지 않다면 당장 버릇을 가르쳐줄것이다.

《음!》 하고 금와왕은 애매하게 탄식을 했다.

《부왕의 마음이 이미 정해졌으니 너는 물러가라!》 하고 금와왕은 고개를 숙인채 대소에게 거들거들 손짓을 했다.

대소가 물러난 후에도 금와왕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마음이 우울했다. 맑은 날 쾌차하게 순행하여보려던 금와왕의 마음은 마치 앓는 눈에 곱끼듯 돼버리고말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와왕은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 대가들과 대사, 태사자, 사자 등의 관백들을 거느리고 드디여 순행길에 올랐다. 느린 물살에 내리는 잡목들의 떼같은 왕의 순행길이였다.

대소도 따라갔다. 그에게는 부왕의 처사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소는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태자라는것에 습관되였었다. 유모들은 물론이거니와 문무백관들이 모두 어린 대소를 추어주었고 아첨부리였다. 어느덧 턱밑에 숯칠을 해가고있건만 대소는 그 모든것이 응당하다는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나는 태자다, 나는 장차 대왕이 될것이며 이 세상은 모두 나의것이다라는 생각이 그의 모든 언행에 지배하고있었다. 실상 그의 주변에는 그런 생각을 뒤받침해주는 무리들이 쉴새없이 맴돌아 그 치장을 해주군 한다.

그에게 세상리치란 자기에게 무조건 복종하는것이였다. 나에게는 복종하는자는 복이 있을것이요, 나에게 거역하는자 화를 입을것이다. 이것이 어려서부터 자라난 대소의 밸통이였다. 대소의 이런 밸통은 도를 넘어 영고의 제가평의회를 심중히 대하는 금와왕까지도 우습게 볼 지경에 이른것이다. 어째서 부왕은 장님이 징검다리 건느듯 한단 말인가? 내가 왕이 되면 그렇게는 안한다 하고 대소는 벼르고있었다.

대소는 오리무리속에 끼운 게사니가 되여 왕의 순행을 따랐다.

마침 금와왕의 행차에 끼인 대신들속에 대소의 눈치를 아까부터 살피는 사람이 있었다. 마리의 아버지 고노였다.

고노는 태사자의 벼슬을 지니고있음에도 불과하고 왕을 보좌하는 일보다 오히려 대소에게 붙어있는 때가 많았다.

고노의 견해에 의하면 자기는 당대뿐아니라 멀리까지 내다볼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의 아들 마리가 장차 왕이 될 대소의 총애하는 인물이 될것을 바라고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영 따르지 않는다. 거참, 쓸개빠진 녀석이야. 부나비는 불에 타죽기마련이다. 하지만 어찌겠는가. 부모가 자식의 겉을 낳지 속을 낳을수는 없지 않은가.

마리의 아버지는 슬금슬금 대소에게 접근하였다.

《왕자, 맑은 날 왕자마마의 존안이 어찌 어둡소이까?》 하고 마리의 아버지는 공손한 웃음을 지으며 대소에게 말을 건넸다.

《며칠간의 음울한 기후가 여운을 남긴것 같소이다.》 하고 대소가 짐짓 딴전을 부렸다.

그러거나말거나 고노는 추근추근 대소에게 붙었다.

《소신이 물기를 말끔히 없애버려 청동쇠거울에 물행주친듯 왕자의 기분을 즐겁게 하오리까?》 하고 고노는 갓난 송아지를 핥아주는 어미소처럼 순한 눈빛으로 대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대소에게는 그것이 역겨웠다.

마치 비루먹은 강아지가 진날 주인에게 달라붙는것 같았다.

《그만하오. 늙은이는 자기 아들 마리나 잘 타이르오.》

생파리 잡아떼듯 대꾸하고난 대소는 말배때기를 걷어차며 앞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도로 멈추어서서 까마귀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고노에게 투덜댔다.

《나는 도무지 리해되지 않소! 난 언제든지 마리가 가장 충실한 나의 벗이라고 생각하고있는데 그대의 아들은 어째서 주몽과 섭쓸려 도는거요?》

대소는 자기의 우울한 기분이 전부 거기에 있는듯 고노에게 비틀어댄다.

손님이 번거로우면 바쁜것은 문돌쩌귀다. 고노는 쓰다듬던 강아지에게 물린 격이 되여 입을 멍하니 벌린채 대소의 푸들쩍거리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고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드디여 금와왕의 행차는 말목장에 이르렀다.

금와왕은 말떼를 둘러보았다. 한결같이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는 말들이였다.

그제서야 일식이 일던 금와왕의 심중에 다시 밝은 빛이 돌았다.

《그래 제가들이 보기에는 어떻소?》 하고 금와왕은 좌우측근들에게 물었다.

《우리 부여에 말이 이름났지만 이렇듯 훌륭한 말은 아마 대왕의 목장밖에는 없을것이오이다.》 하고 대가 하나가 여쭈었다. 사실 여러 대가들의 얼굴에도 흡족한 웃음이 어리였다.

금와왕의 마음도 무등 기뻤다.

《하하- 순행길이 이처럼 즐거워보긴 근래에 처음인걸…》

그의 눈길은 다시금 말 하나하나를 훑어보고있었다.

그러던 금와왕은 문득 대소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왕자가 보건대는 어떠한가? 아마도 왕자는 좋은 말이라고 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지는 성미인데… 응?》

대소는 뿌루퉁해서 있다가 부왕의 뜻밖의 물음에 그만 당황해졌다.

《부왕의 덕이 있사와 말들도 좋아진듯 하나이다. 그러나 저기 저 한마리만은 어쩐지 부왕의 덕에 흙칠하는듯 파리하기 짝이 없으니 틀림없이 목부의 게으른탓이라 하겠소이다. 엄히 따지여서 목부를 처리해야 할줄 아나이다.》

금와왕은 껄껄 웃기만 했다.

《목부를 데려오라.》

하고 금와왕은 명령했다.

검은 천 머리수건을 동인 주몽이 불려와서 금와왕앞에 섰다.

《그대 주몽인고? 그대를 본지도 분명 오랬군. 저런, 그사이 어느덧 장부가 되였군, 장부가 되였어. 어머니는 무고하신가?》하고 금와왕이 물었다.

《황송하오이다. 대왕의 덕분에 무고하오이다.》

《그래?!》 금와왕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대가 어명을 받들어 게을리함이 없이 말을 잘 먹인데 대해서 몹시 만족하게 생각하노라.

옥에도 티가 있다고 저 한마리 말은 병이 들어 피페하지만 기골을 보니 과히 몹쓸것은 아니니 내 상으로 그대에게 주노라.》

금와왕은 주몽을 치하하였다.

《황송하오이다.》 주몽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대소는 주몽의 모습을 찬찬히 쏘아보았다. 미운 놈 고운데 없다고 주몽의 그 거동은 대소의 비위를 몹시 거슬렸다.

부왕은 어째서 이런 아량을 베푸는것이람, 나라면 오히려…

대소는 시선을 돌려 코를 킁킁거렸다. 왕자는 자기의 주변에서 바로 자기를 겨누고 움씰움씰 자라는 한 적수를 보았다.

이때까지는 그저 막연히 자기로서는 한갖 질투라고만 생각한것이 이제는 틀림없이 무서운 적수였다.

주몽 하나만이 불안스러운 대상으로 되던 때는 아직 어릴적 일이다. 주몽의 주위에는 오이, 마리, 협부 게다가 례을나까지 모여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의 앞날에 그늘을 던지고있다. 아니, 그보다 대소라는 자기의 특정하고 월등한 됨됨을 무시하는 존재가 불룩해지고있다. 이것이 대소에게는 참을수 없으리만치 증오스러웠다.

오늘 주몽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똑똑히 보았을 때 대소의 마음속에서는 굴뚝같은 증오심이 치솟았다. 없애버려야 한다!

그날 저녁 대소는 고요히 타고있는 초불을 마주하고있었다. 쓸쓸한 저녁이였다. 대소는 홀로 앉아 술을 마시였다. 술은 피줄을 타고 흘러 졸아드는듯 한 대소의 몸을 데워주었다. 그러자 조금 용기가 났다. 왕자는 올롱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계집에게 소리쳤다.

《얘, 너 가서 왕자들을 모두 오라고 해라.》

《왕자들이오이까?》

《그래!》

《저…》 계집은 머뭇거렸다.

《왜 그러느냐?》

《왕자님들은 모두…》

《모두 어쨌다는거냐?》

《모두 달구경 나갔소이다.》

《달구경? 왕자들모두가?》

《그렇소이다. 궁녀 여럿이 따라갔소이다.》

《잘한다, 초저녁부터 계집들을 끼고 달구경을 해? 꼭뒤에 피도 마르지 않은것들이…》

대소는 혀를 찼다. 할소리가 못된다. 여느날이면 자기부터가 달구경 나갔을것이였다. 그러나 오늘 저녁은 다르다.

《당장 오라고 해라!》 하고 대소는 소리질렀다.

궁녀는 겁에 질려 뛰여나갔다.

심사가 뒤틀린 대소가 혼자서 술을 들이키고있노라니 아우들이 몰려든다. 그나마 두엇은 오지도 않았다. 들어온 아우들이 대소앞에 빙 둘러선채 그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다.

대소는 그들을 둘러보고나서 다시 한잔 들이켰다.

그러자 왕자 대이가 《형님은 왜 또 그러시오?》 하고 물었다.

대소는 대이의 퉁투무레한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러거나말거나 대이는 형의 얼굴을 마주보며 할소리를 계속하였다.

《형님의 얼굴이 장마철 하늘처럼 개였다 흐렸다 하니 이거야 어디 비위를 맞추겠소?》

대소는 속이 왈칵 뒤집혔다. 이걸 그저… 하고 토끼를 차려는 매 눈으로 대이를 노려보는데 돌짬을 기여나오는 뱀처럼 해리가 들어왔다. 아버지 소소리가 죽은 뒤 해리는 대소왕자에게 그림자처럼 접근하였다. 해리는 왕자들의 표정을 조심히 살피고나서 대소에게 다가갔다.

《왕자! 안색이 좋지 않아보이니 어찌된 일이오이까?》

《글쎄, 속에서 불기둥이 솟구치니 웬일일가?》

대소가 아닌보살하며 말했다.

해리의 가늘고 날카로운 눈이 당돌하게 대소를 마주보았다.

《그것은 왕자께서 오늘 못 볼것을 보셨기때문이오이다. 왕자께서는 불원간 없애지 아니하면 안될 징조를 보셨소이다.》

대소는 속으로 해리의 말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흔들면서 웃음을 짓고 말했다.

《아니-》

해리의 눈이 여전히 대소를 살피고있었다.

《저를 의심하시나이까? 왕자께서 오늘 본 사람은 바로 주몽이오이다.》

대소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무슨 말이요?》 대소가 놀라움을 가까스레 감추며 넌지시 물었다.

《저더러 장차 일을 생각해보라고 하시지 않으셨소이까? 바야흐로 천명을 받들어 왕위에 오르셔야 할 왕자의 심신을 헤아리는것이 이 해리의 본분인줄 아뢰나이다.》

해리는 빠른 하관에 찬빛을 띠고 잘라 말했다.

대소는 한참동안이나 해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지나치게 해리는 선견지명이 있다. 이것도 천성인가? 해리는 자기의 아버지만 못지 않구나. 그리고 그의 판단력은 또 얼마나 날카롭고 정확한것인가? 이런 사람이 만약 나를 반대한다면? 아니 그때는 가차없이 없애버려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 해리가 나를 무시하지 못할것이다.

앞으로도 그렇다. 해리! 네가 나를 배반하기 전에 나는 너를 죽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는 나의 가장 믿음직한 오른팔이 될것이다.

《그래 그대의 의향은 어떠하오?》 대소가 해리에게 물었다.

그 말에 해리가 미처 대답할 사이없이 왕자 대이가 불쑥 나서며 말했다.

《뭐 어떨것이 있소이까? 형님! 그까짓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립시다.》

《흥, 그렇게 간단하다면 내가 왜 속을 썩이겠느냐. 오늘 부왕께서는 주몽을 두고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그리고 친히 말까지 하사했단 말이야. 게다가 주몽의 주위에는 항상 만만치 않은자들이 있거든.》

대소는 입술을 삐죽해보였다.

《뭐가 만만치 않아요. 그까짓것들 몇이나 되게…》 대이는 수그러들지 않고 대꾸질했다.

너같은 망나니들이 문제다, 하고 대소는 빈정거리는 눈으로 아우를 바라보았다.

한편 주몽은 금와왕에게서 하사받은 자기의 말을 끌고 개울로 나왔다. 그는 강기슭의 물황철나무밑둥에 고삐를 맨 다음 말주둥이를 그러안아 입을 벌리게 하고 말의 혀바닥밑에서 바늘을 뽑았다.

한동안 몸부림치던 말은 바늘을 뽑자 그만 맥이 쑥 빠졌는지 앞발을 벗디디고 맑은 눈을 디룩거리더니 갑자기 앞발을 높이 쳐들고 솟구쳐 일어나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주몽은 반짝거리는 바늘을 자기의 옷섶에 꽂은 다음 말고삐를 풀어 개울로 들어갔다. 주몽은 말잔등에 물을 끼얹고 목욕시켜주었다.

말은 투레질을 세차게 해대며 주몽이 물을 끼얹고 닦아주는것을 공손히 받았다.

잔등에서 땀발이 돋게 닥달질을 해댄 주몽은 강녘에 나와 한동안 쉬였다.

그는 옷섶에서 바늘을 뽑아쥐고는 그것을 점도록 들여다보고있었다.

이 자그마한 바늘이 결국 주몽에게 날개를 달아준것이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하셨을가? 주몽은 오늘따라 어머니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돋보이였다.

어쨌든 이제는 말이 생기고보니 날것 같다.

주몽은 두팔을 쫙 벌리고 허공에서 큰숨을 들이쉬며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는 손깍지를 하고 풀판우에 털썩 누웠다.

가만, 말 이름을 달아주어야지,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이 말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달아줄가? 주몽은 두눈을 껌벅이며 두루 생각을 더듬었다.

마침내 《부루나!》 하고 속으로 웨쳤다. 말의 이름을 부루나로 달자. 그래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참 멋지다, 단군선인의 옛 도읍지 평양을 부루나라고 부르기도 한다지? 벌판에 흐르는 내, 부루나, 평양!

《부루나! 그대와 함께 어디 큰뜻을 이루어보자. 내 너에게 나의 사랑 다할테니… 응? 부루나, 너 듣니?》

하고 중얼거리던 주몽은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는듯 한감이 들어 피끗 몸을 제껴 주위를 살폈다.

물가 단풍나무밑에 례을나가 서서 이쪽을 바라보다가 주몽과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였다.

《을나! 그대가 어떻게…?!》

주몽은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례을나를 마주보았다.

《저… 어머님한테 들렸사온데 가보라고 해서 왔소이다.》

을나는 단풍잎마냥 붉게 물든 얼굴을 반쯤 돌리며 얼버무렸다.

주몽은 을나의 발그레해진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만 섬뜩해지는감을 느꼈다.

주몽의 눈앞에는 선혈을 뿜으며 쓰러지던 을나의 아버지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올랐다. 초막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바로 죽은줄 알고있던 자기의 아버지라는걸 을나는 모른다.

언제인가 그때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가고 을나가 물을 때도 주몽은 적당히 얼버무렸다.

《주몽, 이 일을 을나나 그의 어머니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일찌기 죽은것으로 알고있는게 더 낫다. 묵은 상처를 헤집는것은 인성이 할것이 못된다.》

례나루선생은 주몽에게 당부하였다.

례나루선생의 엄엄한 모습을 되살리던 주몽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어머니가 가보라고 했단 말이요?》 주몽은 심드렁해진 낯으로 물었다.

이런 때면 을나에게는 도무지 주몽이 리해되지 않았다. 어쩌면 처녀의 맘을 그다지도 모른담. 남자들이란 다 그런가? 금와왕에게서 자기가 말을 하사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달려온 을나였다. 주몽의 어머니인 류화에게 가니 류화는 제꺽 을나의 맘을 헤아리며 떠밀었는데… 슬픔을 나누는것보다 기쁨을 나누는것이 더 가깝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저이는 참… 주몽은 뭐라고 했던가? 뭐, 《어머님이 가보라고 했단 말이요?》 아, 참, 얼마나 맹랑한 물음인가? 저 어정쩡해있는 모습만 보지…

그런데 이상한것은 을나, 자신이였다. 그런 맹랑한 말을 듣고도 여전히 이 가슴 뛰는것은, 아니 여느때없이 더더욱 가슴벅차지는것은 무슨 까닭이람, 만나는것은 고사하고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심장이 뛰는것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참, 사랑이란 얼마나 신비한것인가!

그것은 서로 상대의 움직임 하나 지어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감촉하게 하면서도 한편 그들을 얼마나 순진한 바보로 만드는것인가? 아직은 그것이 사랑이라는것을 감각하지도 못하는 이 순진한 청춘들을 오로지 달콤한 꿈속으로만 무작정 잡아끄는것이니, 그 신묘한 그물에 휩싸이며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기가 일쑤다.

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어째서 지금 이러는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야속한 맘과 어울리는, 어쩐지 이상야릇한 기쁨에 휩싸이게 되는것을 감촉한다.

《저… 오늘 임금님으로부터 말을 하사받으셨다지요?》

례을나는 나직이 물었다.

주몽은 을나의 물음을 듣고서야 얼굴에 환한 빛을 담았다.

《음, 그렇소. 바로 저 말이요. 그래 우리 어머님도 아십디까?》

례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몽을 바라보았다. 례을나를 지켜보던 주몽은 저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이였다. 그는 다시금 옷섶에 끼워두었던 바늘을 뽑아쥐고 바라보았다.

그러는 주몽을 잠시 바라보던 을나는 개울에 들어서서 말잔등에 물을 뿌리며 닦아줄 차비하였다.

부루나는 을나가 곁에 다가가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제법 아는체 한다. 말은 령물이여서 남녀를 가리며 그들사이도 곧잘 알아본다던 말이 롱말이 아닌듯 했다. 을나는 삽삽하게 대해주는 부루나가 더욱 기꺼웠다. 무심중 웃음이 피여났다. 쉴새없이 그냥, 구름처럼 웃음이 피여났다.

《을나, 방금 목욕을 시켰소!》 주몽은 혹시 말이 갈갤가보아 주의를 주었다.

을나는 주몽을 곁눈질해보며 방긋이 웃었다. 그의 뺨이 무르녹은 복숭아처럼 발기우리해졌다.

《사람이고 말이고 깨끗하면 할수록 좋지 않소이까?》

《그건 을나가 생각해낸거요?》

주몽은 놀라운 빛을 띠우며 물었다.

《어쨌소이까? 무엇이 잘못되였소이까?》

《잘못이야 뭘, 그저 우리 어머님이 노상 그런 말씀하시기에…》

주몽은 말을 얼버무렸다.

《저도 어머님한테서 배웠소이다. 저같은 말괄랭이가 뭐 그런걸 생각하오이까?》

《그렇소?! 하, 하》 주몽은 뿌듯한 기쁨이 샘솟듯함을 느끼며 껄껄 웃었다.

을나는 도톰한 입술에 웃음을 지으며 솔로 말잔등을 쓸어주고나서 물었다.

《한가지 부탁이 있소이다. 들어주시겠소이까?》《부탁?》

《그렇소이다. 이제 이 말이 원기를 회복한 다음에 나도 탈수 있게 해주시겠소이까?》

《을나가 탈수 있는 공손한 말이 될가?》

《못 탄다는 법이야 없지 않소이까? 다른것이라면 몰라도 소녀는 이 말을 한번 타보고싶소이다.》

을나는 새초롬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가 머리를 추스르자 검고 긴 함초롬한 머리카락이 어깨너머로 흩어져 넘어갔다.

이런 처녀도 또 처음 보지, 역시 을나다운 고집이다.

《그러다 떨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별치않소이다.》

《거참, …정 소원이라면 태워주지.》

《약속하셨소이다?!》

을나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주몽은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하하 웃었다. 을나의 활달하고 고집스러운 모습, 진실하고 소박한 모습이 주몽의 넓은 가슴에 봄빛을 뿌리고있었다.

강웃쪽 수림속에서 말을 탄 세사람이 강기슭을 따라 내려왔다.

주몽은 손바닥채양을 하고 그들을 살펴보았다. 오이, 마리, 협부였다.

주몽을 발견한 그들은 냅다 달려왔다.

주몽앞에 이른 세사람은 동시에 말에서 뛰여내렸다.

《주몽형, 기쁘겠소이다.》 하고 오이가 웃음을 머금고 말하였다.

《주몽형이 하사받은 말이 바로 저것이오이까?》 협부가 부루나를 손짓하며 물었다.

《자네들은 어떻게 그걸 알았나? 참, 빠르기도 하군!…》 주몽이 롱삼아 말했다.

《주몽형에 대한 일인데 우리가 모를수 있소이까?》 하고 마리가 말하며 제 말이 맞지 않느냐듯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오이와 마리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여튼 고맙네!》 주몽은 벗들의 세심한 배려에 뜨거운 정이 솟구침을 느꼈다.

《난 말이야, 저 말이 장차 주몽형의것이 되리라는것을 미리 알고있었거던…》 하고 마리가 장한듯 뽐내며 말하였다.

《자네가?! 거, 모를 일인데… 가마에 끓는것이 죽인지 떡인지 어떻게 아나? 흥, 떡이 되니 떡인줄 알았겠지?》

오이가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자네, 협부도 그렇게 생각하나? 응?》 하고 오이의 미심쩍어하는 모습을 띠여보던 마리가 협부에게 손짓하며 물었다.

협부는 씨물씨물 웃기만 했다.

《그렇단 말이지? 흥,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고 하니 전번에 말떼를 보았는데 글쎄 저 말이 별로 파리해지지 않았겠나? 골격이나 색갈이 기가 막힌 절따말인데… 자, 이걸 놓고 이 마리가 생각했지, (주몽형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저 말이 주몽형의것으로 되고싶어서 저렇게 여위였다는걸 제꺽 알거야. ) 하고 말이야. 오이, 자넨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마리가 큰소리로 오이에게 호통쳤다.

그러자 오이는 별치않다는듯 《자넨 확실히 어려…》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뭐라구?》

《그렇지 않구. 세살 난 아이들도 다 아는걸 무슨 저만 아는체 하면서…》

《그게 어쨌단 말인가, 나만 아는걸 안다고 했는데…》

두 친구의 재담을 듣고있던 주몽과 협부는 껄껄 웃었다.

오이와 마리도 자기들의 익살에 겨워 하하 웃어댔다.

호탕한 네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물새들을 놀래우며 강반으로 퍼져날았다.

부루나쪽으로 무심히 얼굴을 돌리던 협부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저기, 을나가 아니요?》 그 소리에 오이와 마리도 놀란 눈길을 던졌다.

갑자기 세 사나이의 눈길을 받은 을나는 한껏 얼굴이 붉어졌다.

오이가 자기의 머리를 툭- 쳤다.

《아차, 그런걸 이 우둔한 곰은 제노라고 우쭐거렸는걸? 그래도 주몽형의 일에 제가 제일먼저 알았다고 기뻐했단 말이요.》

《그건 나도 같아.》 하고 마리가 울상짓는체 한다.

《자네들은 공연히 질투하는군, 응당한걸 가지구…》 협부가 끼여들며 말하자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을나도 지지 않고 사내들의 롱담에 야릇한 쾌감을 느끼듯 말대꾸했다.

《오빠들은 말타고 오면서 어째서 이제야 오셨소이까?》

을나의 말에 세 친구는 서로 입을 삐죽거리며 마주보았다.

《저-것 보지?!》

《대단-하구만!》

《음, 막 으쓱해지는걸…》

세 친구는 중구난방으로 시까슬러대더니 눈을 끔벅끔벅거리였다. 이런 때 보면 꼭 아이들 같았다.

을나는 그만 말뒤로 사라져버렸다.

부루나는 마치 세 친구를 책망하듯 앞발을 들었다가 철썩- 물을 찼다.

《저것 보지. 가재는 게편이요, 초록은 동색이라, 하하하-》

그들은 또다시 통쾌하게 웃어댔다.

《자, 그만하게, 우리 어머님이 어느새 아시고 가보라고 해서 왔다더군.》

주몽이 변명하듯 말하였다.

《그렇소이까?!》 세 친구는 웃음을 거두었다.

《하여튼 을나가 우리보다 낫소이다!》 하고 협부가 정색해서 말했다.

주몽과 그의 친구들은 붉은 노을이 비낀 강기슭의 풀판에 앉았다.

《주몽형, 듣자오니 오늘 대소왕자도 목장순행길에 따라나섰다고 하오이다?》 하고 마리가 주몽에게 물었다.

《그렇더군.》

《뭐, 별다른 기미를 느끼지 못했소이까?》

《아니…》 주몽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대소왕자가 나를 곱지 않게 본다는거야 비밀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었나?》

《점심에 저의 아버지가 얼핏 하시는 말씀 들으니 대소왕자의 옥감이 이번 순행길로 해서 한결 토라진것 같소이다. 이건 그저 제 추측이긴 하옵니다…》

마리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까 오면서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마리, 공연한 걱정이 아닐가? 주몽형이 대소왕자에게 욕될 일을 한것도 아니고 또 대왕이 직접 말을 하사한것인데…》 오이가 자기 생각을 비쳤다.

《그렇게만 볼것도 아니요. 오이, 자넨 아름드리 참나무도 구새에 넘어지고 바위도 바람과 이끼에 갈라진다는 소릴 못 들었나?》 협부가 이마를 찌프리고 오이를 나무랐다.

오이는 덤덤히 그 말을 듣고있다가 우드득 이를 갈았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제까짓것들 무슨 일 칠려구? 제가 공연히 주몽형한테 트집을 걸다가 대가리 바스러지지 않나보지, 까짓거…》

오이의 거친 말투에 마리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오이, 대소는 태자가 될 왕자라는걸 알아야 하네.》

세 친구의 오가는 말을 듣던 주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들 하게. 왕자들이 설사 그렇다고 한들 트집에 걸리지 않는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 난 그들의 모해를 한두번만 받지 않았네. 그것 참, 그들이 어째서 나하고 죽기내기로 해보자고 하는지 난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걸…》

주몽은 쓰겁게 웃었다. 주몽은 마리와 협부의 진중한 우려와 오이의 극진한 호의를 감사하게 받았다. 그럴수록 세 친구와 더불어 포부를 펴고싶은 마음 더욱 굳어졌다.

한편 오이, 마리, 협부는 대소왕자들과 주몽형사이에 눈에 띄우지 않는 군렬이 장차 위험천만한 일을 배태하게 되리라는것을 페부로 느끼며 긴장해지였다.

그것은 어느 한사람의 신상에 닥치는 위험만이 아니라 자기들전체에 미치는 위기였다.

《어쨌든 주몽형은 특별히 조심하소이다. 우린 형이 너무 대범한것이 오히려 불안스럽소이다.》 마리가 진정으로 권했다.

주몽은 세 친구를 말없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도 요즈음 생각이 많네. 수천년 단군선인의 뜻이 꽃피던 이 땅에 지금에 와서 사방에서 제나름의 영웅들이 거품처럼 솟아올라 리기의 울타리를 치고 제나름의 나라들을 만들어 후세들을 욕보이고있네. 이제 이 모양이 계속된다면 하나의 우리 겨레, 우리 강토는 신성한 선인의 자취를 망각하고 전멸하게 될걸세.

이걸 보고 뜻이 있고 담이 있는 사나이라면 어찌 수수방관할수 있겠나?

내 생각에는 단군선인의 후손들은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통하리라고 믿네.

이 통하는 마음을 묶어세우면 능히 이 성스러운 땅이 다시금 번영할걸세!》

세 친구는 주몽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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