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6 회)

 

제 1 부

 

탈 출

 

6

 

마침내 그 사람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주몽을 한동안 살피다가 주몽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그대가 나를 구원해주었다지, 고맙소.》

《어른이 궁성에 들어가 왕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서불아저씨에게서 들었소이다.》

《그래?》

《참, 례나루란분이 누구시오이까?》

《그건 왜 묻느냐?》

《그쪽에서 정신을 잃으셨을 때 얼핏 흘리시였소이다.》

《그래? 더 다른 말은 하지 않았소?》

《그저…》

그 사람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그대는 혹시 그분을 모르오?》

주몽은 상대방의 낯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고있소이다. 제가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있소이다.》

《뭐라구?》

길손의 눈빛이 번뜩이였다.

《그게 사실이요?》

《그렇소이다.》

《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사실 그분은 나의 아버님이시오.》

《아버님이란 말씀이오이까?》

《그렇소!》

《그럼, 어른은 어떻게 부르시오이까?》

《나는 가마라고 부르오.》

《그렇소이까? 그런데 어째서 부여에 오시여서 아버님을 찾아뵙지 않고 이런 악행을 당하시였소이까?》

주몽의 물음에 그 사람은 괴로운듯 낯을 찡그렸다.

《그걸, 말하자면 일곱밤도 짧소.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죽은 사람으로 알려졌소. 아마 나의 아버님도 그렇게 아시고계실거요. 그러나 나는 살아있었소. 스무해전에 아버님앞에 겨레를 위한 성전에 한몸 바치기로 맹세하고 떠난 후 나는 북국왕 해모수의 부하가 되였소.》

순간 다물었던 주몽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다시 꾹 다물어졌다. 하지만 주몽은 눈길을 내리깔고 상대방의 말을 들었다.

주몽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가마는 여전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북국왕은 여러해동안 키워온 대군을 이끌고 오랑캐를 치러 싸움에 나섰소. 하지만 천시가 불운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 중도에서 큰 손실을 입고말았소. 게다가 악착스러운 오랑캐들에게 몰려 북국왕도 끝내 싸움끝에 붕어하시였소. 나도 그 싸움에서 심한 상처를 입어 쓰러졌다가 후에 살아나긴 했지만 포로가 되여 서쪽으로 끌려가게 되였소. 그렇게 되여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여기저기 떠돌다가 나중에는 쥬신과 연나라의 전쟁에도 참가하게 되였던거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거기서마저 패하고 끝내는 여기에 온거요. 내가 왕자한테 당한 전말 사연을 들었다니 더 긴말하지 않지만. 아! 우리 겨레가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오, 안돼. 오늘은 저 연나라오랑캐들에게 쥬신의 2천리땅을 빼앗겼지만 지금처럼 모두 제 울타리를 높이 쌓고 제살구멍만 찾는다면 나중에 단군선인의 이 땅도 오랑캐들의 발굽에 짓밟히고말게요. 나는 이것이 분통해서 못살겠소. 그래서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먼저 궁성에 들어갔던게요. 부여궁성의 잠을 깨우면 다행이겠지만 그리 못되면 죽어야 마땅한것이 바로 나의 운명이였소. 듣자니 나에게 딸이 있다고 하더군…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아버님과 처자를 만나고싶기도 하오. 하지만 그럴수 없었소. 오랑캐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난 내가 아니라면 누가 겨레의 잠을 깨우겠소?》

숨차게 말을 잇는 길손의 눈에서는 마침내 피빛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몽도 저도 모르게 눈굽이 젖어들었다.

《이제라도 아버님과 처자분을 만나보셔야 하지 않소이까?》

주몽이 젖어든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길손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랬으면 작히나 좋겠소? 하지만 부여궁성의 왕자가 쌍심지를 켜고 나를 찾고있으니 만일 여의치 못해서 일이 잘못되면 아버님이나 처자에게 두번 죄를 짓게 될가보아 근심이요.》

《제가 어떻게 하든 례나루선생을 찾아 모시겠소이다!》

주몽은 가마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길을 떠났다.

주몽이 례나루를 만난것은 한낮이 가까와올무렵이였다. 뜻밖에 나타난 주몽을 보며 례나루는 눈섭을 치켜세웠다.

《주몽 그대가 어인 일인가?》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을 뵙자고 하오이다.》

《나를?…》

《그렇소이다.》

《누군데?…》

《가보시면 아시게 될것이오이다.》

례나루는 주몽을 바라보았다. 례나루의 시선을 피하는 주몽의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이 물결쳤다.

례나루는 호기심이 동했다. 순진무구해보이는 주몽의 모습이 자기를 만나려는 사람보다 더 마음을 끌었다. 례나루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 사람이 어디 있지?》

《선생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모시겠소이다.》

《허, 허, 말보다 안장이 좋아 길떠난다더니만…》

마침내 례나루는 일어섰다. 그는 앞장서서 길을 내는 주몽의 모습을 놓칠세라 지켜보며 걸었다.

박달나무로 깎은듯 한 주몽의 뒤모습은 참으로 장부다와 혼자 보기에 아까왔다. 잘난 자식을 둔 어버이마냥 례나루는 세상에 대고 주몽을 자랑하고싶었다. 탄탄하면서도 미끈하고 굳세면서도 부드러운 체격, 부여사람들도 그렇지만 골격이 빼여났다는 읍루사람들도 주몽의 체격에는 울고갈게다.

이제는 주몽이 클대로 컸다. 례나루는 오직 자기만이 알고있는 비전의 무술까지 깡그리 전수하였다. 얼마 있지 않으면 그 수련까지도 끝날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몽은 천하무적의 무술을 지니게 될것이다. 어언 3년동안이나 례나루가 주몽을 가르쳐온것이 결코 헛된것이 아니다. 주몽은 이미 례나루가 가르친적이 있는 대소왕자보다도 더 뛰여난 무술을 지니였고 거기에다 왕자가 지니지 못한 웅지와 덕행을 한몸에 지니였다.

대소가 검술에서는 주몽과 비슷할지 모르나 나머지 창법이나 수박희에서는 대비가 되지 않는다. 수박만 보더라도 신법(身法), 수법(手法), 각법(脚法)을 기초로 하는 25가지 수법에 비전의 10가지까지 체득하였다. 이어 궁술과 기마술은 배워주지 않아도 놀랍게 체득한 주몽이였다.

례나루가 보건대 영웅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주몽은 이미 체득하였다. 이제 례나루자신이 더 가르쳐줄것이란 없다. 남은것이란 오직 하나 때를 기다리는것이다. 바로 그때를 기다려, 그때를 가려볼줄 아는것도 천부의 재능이다.

주몽은 업을 이룰거다. 당장 나래를 펼친다고 하더라도 그는 대성할거야.

례나루의 머리속에서는 주몽을 처음 알게 되던 그날이 떠올랐다.

3년전 어느날.

돌부리들이 삐죽삐죽 솟은 산정에서 새로운 무예의 기법을 풀어내느라고 땀을 빼던 례나루는 문득 한곳에 시선이 닿았다.

웬 소년이 무릎을 꿇고있었다.

례나루는 호기심이 동했다.

《너는 누구냐?》

《주몽이라고 하옵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여기에 와서 꿇어앉았느냐?》

《선생님에게서 배우려고 하옵니다.》

《나에게서?》

《그렇소이다.》

대소왕자를 가르치다가 중도에서 그만둔 이후 지금 배우고있는 오이나 마리, 협부 이 세 젊은이들에게 무예나 가르치고는 후세에 전할만 한 무예기법이나 연구할 결심이였다.

《나는 제자를 받지 않네. 그러니 돌아가게.》

례나루는 몸을 돌렸다.

례나루는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얼마쯤 시간이 흘러 고개를 들었을 때 례나루는 그 소년이 아직도 그 자리에 꿇어앉아있는것을 보았다.

례나루는 외인의 앞에서 무예의 기법을 풀수 없어 자리를 옮기기로 하였다.

어슬녘.

일단 무예기법의 리치를 풀어낸 례나루는 아침때의 그곳에서 수련해보리라 결심하고 다시 왔다.

그때도 그 소년은 거기에 있었다.

례나루는 얼핏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 거두고 뒤로 돌아섰다.

소년은 3일째 바로 그 자리에 와서 꿇어앉아있었다.

마침내 닷새째 되는 날에야 례나루는 그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임금님의 목동으로 있는 주몽이오이다.》

《너의 부모는?》

《어머니는 류화라 하옵고 아버지는…》

소년은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는?》

《해모수라고 하오이다. 일찌기 보지 못하고 모시지 못했소이다.》

《뭐?》

례나루는 깜짝 놀랐다.

《머리를 들어라.》

소년이 머리를 들었다.

례나루는 점도록 소년을 훑어보았다.

분명하구나, 분명해! 언제인가 불함산(백두산)에서 만났던 그 해모수왕의 모습이 신통히도 살아있군, 그러니 닷새째나 지독하게 꿇어앉아 스승삼기를 청한것이 우연하지 않군, 저 소년이 속에 큰것이 들어앉지 않고는 할수 없는 일이다.

례나루는 소년을 붙잡아 일으켰다.

소년의 무릎이 마비된것을 례나루는 손수 풀어주었다.

례나루가 아직 정정할 때였다.

례나루는 갓 성인식을 마친 아들과 함께 남쪽의 불함산으로 떠났다. 거기 가서 단군선인의 뜻을 아들에게 심어주고 장차 아들이 겨레를 위한 큰일에 몸바치게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깊은 산속을 헤치며 여러번 고생하던 례나루는 뜻밖에도 숲속에서 한패의 젊은 사람들과 만났다. 차림새를 보아 비천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그중 한 젊은이는 류달리 뛰여나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그 젊은이는 자기를 부여 북쪽에 있는 나라의 왕자 해모수라고 하였다. 해모수는 남쪽 여러 나라들을 돌면서 단군후손들이 하나로 합쳐 부국강병을 이룰 뜻을 펴던중 부왕이 림종을 앞두고 급히 부른다는 바람에 귀국하던 길이라고 하였다. 어차피 부왕의 왕위를 이어야 할 해모수였기에 불함산에서 장차 겨레의 통일을 이룰 뜻을 다시한번 벼리려고 오던 길에 례나루 부자를 만난것이였다. 례나루와 해모수는 서로의 지닌 뜻으로 하여 단번에 마음이 통하였다. 례나루의 아들은 해모수의 뜻에 공감하고 그와 함께 일생을 같이할 결심으로 해모수를 따라나섰다. 례나루는 아들의 결심을 승인하였다.

그후 해모수왕과 례나루의 아들은 자기들의 초지를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자기들의 뜻을 실현하지 못하고 세월의 갈피속에 사라져버리고말았다. 례나루는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례나루에게 전해진것은 오랑캐들과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는 아들의 피묻은 투구뿐이였다. 그 투구를 쓰고 아들은 해모수왕을 지켜 끝까지 싸우다가 해모수왕보다 먼저 목숨을 잃었다는것이였다.

례나루는 하늘의 뜻을 한탄할수밖에 없었다.

그후 례나루는 초야에 묻혀 학문과 무예를 수련하는것으로 일생의 락을 찾았다.

그런데 이처럼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주몽이 례나루의 앞에 나타날줄 어찌 알았으랴!

어찌해서 례나루 자기가 해모수왕에게 아들이 있다는 생각을 일찌기 하지 못했던가?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운명의 희롱이 아닐가? 하여튼 이렇게나마 끌끌하게 자란 주몽을 만나게 된것이 례나루에게는 천행이다.

《좋아! 그대를 받겠네!》

《고맙소이다!》

주몽은 한쪽무릎을 꺾으며 세번 절하고 례나루를 선생님으로 받들었다.

그로부터 3년세월.

주몽은 례나루에게서 단군선인의 웅지를 배웠고 검술, 창법을 배웠으며 진법을 비롯한 병법을 배웠다. 달빛은 수학의 벗이였고 해빛은 수련의 벗이였다.

례나루의 묘한 검술에 베여진적은 그 얼마며 창에 찔린적은 또 얼마였던가.

그리고 말떼를 상대로 병법을 익히느라고 지쳐 쓰러진적은…

한자루의 명검이 태여나기까지 돌이켜보면 너무나 많은 피와 땀이 들었다.

아, 하지만 주몽은 그 모든것을 이겨냈고 익혀냈다.

례나루는 자기가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주몽의 뒤만 따랐다. 두사람은 늪이 듬성듬성 자리잡은 벌판을 단숨에 지나 다시 초목이 무성한 산등성이에 붙었다. 한아름씩 되는 나무사이를 빠져 산등성이에 오르니 그우에는 잡관목이 무성하고 군데군데 이끼덮인 바위들이 무덤져있었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좌우로 산밑이 펼쳐지고 앞쪽으로는 드넓은 초원이 푸르게 펼쳐져있었다. 바위에 앉아 숨을 돌리던 주몽이 례나루에게 산아래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산을 내리면 산자락어귀에 동굴이 하나 있소이다. 바로 거기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고있소이다.》

《그래? 허, 대체 어떤 사람이건대 주몽이 늙은이를 궁금하게 할고?》

주몽은 례나루의 말에 벙긋 웃었다.

《기쁜 일은 천천히 아시는게 좋을듯 하오이다.》

《허, 그리운 님 천천히 오누나, 바로 그 격이로군.》

팔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찍어내는 례나루를 바라보는 주몽의 맑은 눈은 은근히 타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몽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기쁨을 주게 되리라고 미처 생각 못했다. 더구나 례나루스승에게 꿈같은 기쁨을 마련하게 될줄 몰랐다.

이제 이 늙은 스승이 죽은줄 알았던 아들을, 그것도 오랜 세월이 흘러 어언간 귀밑머리가 희여지는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아! 사람의 운명이 이렇듯 야속할가?

무엇으로 사람이 살고 무엇으로 사람이 죽어야 하느냐?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상봉! 오, 단군선인이시여! 내가 너무 늙은분에게 놀라움을 주는것이 아닐가? 하고 생각하던 주몽은 례나루에게 돌아섰다.

《선생님, 저에게 허락해주시겠소이까?》

《무엇?》

《선생님께서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났대도 놀라시면 아니됩니다.》

《허, 주몽. 그대가 이 늙은이를 어찌보는셈인고?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몸이 주몽을 실망케 할고?

그대가 나에게서 이미 단군선인의 웅지와 덕행과 학문, 그리고 무예를 절정고수까지 전수받았다고 하나 한가지 더 배울게 있어.》

례나루의 말을 들은 주몽의 얼굴에는 함뿍 웃음이 피여났다.

《그것이 무엇이오이까?》

례나루의 얼굴에도 주름살이 펴졌다.

《그건 참을줄 아는거다.》

《참을줄 아는것 말이오이까?》

《그래.》

주몽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두사람은 천천히 산을 내렸다. 가둑나무잎을 헤치고 나오니 마른 바위옷과 범발자국바위옷들이 돋아있는 벼랑이 나섰다. 얼기설기 얽힌 나무가지사이로 밑이 내려다보였다.

《다 왔소이다. 바로 이 밑에 동굴이…》 하고 말하던 주몽이 문득 굳어졌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말울음소리와 병쟁기 부딪치는 소리, 왁짝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몽과 례나루는 우뚝 멈춰섰다. 주몽을 더욱 놀래운것은 바로 아래서 왕자 대소의 목소리가 울려왔기때문이였다. 바위아래 동굴입구에는 궁중시위군사들이 창이며 칼을 비껴들고 서슬이 딩딩해서 대소왕자를 호위하고있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저들이 어떻게 알고 여기에 나타났을가? 우연히 사냥왔다가 몰려든것일가? 아니면…

주몽의 얼굴은 찬서리가 내렸다.

문득 동굴입구에서 귀익은 소리가 났다.

《왕자, 제가 이 동굴을 찾아내느라고 넓은 가섭벌을 밤새워 뒤졌소이다.》

주몽이 알고있는 해리의 말소리였다.

《그래, 자네야말로 충신이고 의리있는 사람이다.》

왕자 대소의 흐뭇해하는 소리도 들린다.

찰갑을 입은 군사 두사람이 축 늘어진 한사람을 량옆에 끼고 동굴에서 나왔다.

《엇?》 하는 소리를 지르며 주몽이 급히 내려가려는것을 례나루가 꽉 잡으며

《가만, 주몽.》 하고 주몽의 입술에 손등 가져다댔다.

아래서 대소의 목소리가 났다.

《네가 뛰면 어딜 뛰겠다고? 이 부여천지에서, 내 손바닥에서 벗어날줄 알았더냐? 어디 낯짝을 들고 나를 봐. 이 왕자를 보란 말이야.》

끌려나온 사람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를 보던 례나루는 붙잡았던 주몽을 놓았다. 저게 누군가? 저… 저… 그럴수 없다. 례나루의 낯빛이 배속처럼 하얗게 되였다.

내 아들은 아니다, 내 아들은 이미 죽었다. 저 사람은 분명 내 아들과 비슷한 딴 사람일게다, 딴 사람!

례나루는 숱진 눈섭을 연신 슴벅거렸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이였다.

《아니, 네가? 살아있었단 말이냐?》 하고 중얼거리며 례나루는 고개를 저었다.

아래서는 대소가 비웃음을 잔뜩 담고 끌려나온 사람에게 다가갔다.

《너를 누가 풀어놔주었느냐? 그리고 누가 너를 여기에 숨겼어?》

상대는 고개를 돌렸다.

《흥, 말을 안하겠다? 그래도 좋아. 그건 그렇고 아직도 너는 자기가 쥬신국의 세객이라는걸 토설치 않으려냐? 허울좋은 세객으로 꾸미고 이 부여를 멸망시키려는줄 내가 모를줄 알았던가? 말하지, 응?》

끌려나온 례가마는 량옆에 붙어선 군사들에게서 손을 뽑으려고 하다가 멈추었다.

《왕자, 나는 오직 금와임금님을 뵙자고 했을뿐이요.》

《부왕마마를 뵙겠다?》

《그렇소!》

《어째서?》

《그건 금와왕에게만 할 말이요. 애당초 왕자에게 내가 소신을 밝힌게 잘못이였소. 나는 그래도 왕자가 금와왕의 맏아들이라기에…》

대소는 낮게 소리쳤다.

《네가 부디 부왕마마를 만나서 할 소리를 다시는 입밖에 내보지도 못할게다.》 하며 대소는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례가마를 붙들고있는 군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장검의 끝에서 손잡이까지 흠이라도 찾듯이 훑어보고난 대소는 문득 한숨을 내쉬였다.

《세객, 그대를 아마 그렇게 부르는게 낫겠지? 그래, 세객! 곱게 놔줄테니 돌아가오. 쥬신으로 가든지, 북부여로 가든지 그건 맘대로 하오. 애당초 당신을 상대로 하려고 한 내가 잘못이였지. 그래, 살아서 돌아가오.》

대소의 말에 해리며 군사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은 눈이 휘둥그래서 대소와 례가마를 힐끗힐끗 살폈다.

례가마는 우뚝 선채로 있었다.

《왕자, 나는 살아도 죽어도 오직 한마음이요. 부여가 오랑캐를 몰아내는데 군사를 내지 않고 겨레의 나라들과 동맹하여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면 나는 끝까지 금와임금을 만나…》

말을 잇던 례가마는 훅- 하는 소리를 지르며 굳어졌다. 그의 어깨에서 가슴팍으로 옷이 갈라지고 이어 피가 내뿜었다.

대소는 여전히 장검의 날을 훑어보고있었다. 어느새 그의 칼날이 례가마에게 날았는지는 해리도 군사들도 누구도 몰랐다.

다만 주몽의 어깨를 끌어잡고있던 례나루와 주몽만이 그 대소의 검술을 알아보았을뿐이였다.

주몽이 뿌리치며 뛰여나가려는것을 눈을 감았던 례나루가 어느새 손을 날려 막았다. 주몽의 눈이 번개빛으로 타올랐다. 그러나 례나루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례나루는 칼에 맞은 아들이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뛰여나갈것 같은 몸을 가까스로 억제하는 례나루였다. 아마도 옆에 있는 사람이 주몽만 아니였더라면 례나루는 분별을 잃었을것이다. 하지만 주몽, 주몽이 옆에 있었다.

격분으로 하여 이그러지는 주몽,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례나루는 터지는 가슴을 억누를수밖에 없었다.

아들이라는 혈육의 정을 넘어 겨레의 소망을 이룰 주몽에게 자기의 불인(不忍)을 서뿔리 내보여 그의 앞길에 자그마한 흠이라도 된다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것이였다.

마치 이런 일을 예감이라도 한듯이 방금전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참을성을 키워야 한다》고. 오, 하늘이여, 운명이여, 어찌 이다지도 야속한것이더냐? 주몽이 대소왕자의 앞에 나타나면 때아니게 주몽에 대한 왕자의 피해가 올수 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례나루의 꾹 다문 입귀로 한줄기 피가 새여나왔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