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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 1 부

 

탈 출

 

3

 

집집의 굴뚝에서 내굴이 뭉게뭉게 피여오르고 열려진 부엌문들로 솔가지 타는 냄새, 밥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였다. 조무래기들의 떠들썩한 소리와 거기에 맞장구치는 개들의 컹컹 짖는 소리가 향수를 무럭무럭 자아내는 저녁무렵이였다. 쟁반같은 보름달이 해지기 전부터 동녘에 떠올라 기다리고있더니 어느덧 누리를 은빛으로 뒤덮고말았다.

동네 유측에 있는 집뜨락에서 류화는 아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버릇이 되여버렸다. 아무리 할일이 바쁘고 몸이 고단하다 할지라도 아들을 문밖에서 맞이하지 않으면 금시 모든것이 꺼져버릴것 같았다. 늘쌍 봐야 풋풋한 초원의 냄새, 후덥지근한 땀냄새, 말냄새를 풍기며 돌아오군 하지만 나날이 커지는 키와 체격과 눈빛, 숨소리… 이 모든걸 느낄 때마다 어떤 막연한 기쁨과 자랑과 행복이 부풀었다. 겨우내 얼어터져 거칠어진 대지가 봄맞이한다고 할지, 아직은 칼바람이 맥빠진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지랑이 일어나는 봄날의 대지처럼 아들을 맞이하는 류화의 마음은 야릇하기만 하다. 딱히 무엇을 바라는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자체를 꺼려하는 류화는 어느 한번도 왜 그런지 캐보려고 하지 않았다.

두려웠다. 어쩐지 자기의 행운은 이미 처녀시절로써 끝나버리고 이후부터는 줄곧 슬픔만이 되풀이되였다고 체념하게 된탓인지도 모른다. 하늘의 뜻일게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점점 멀어지는 무지개처럼 류화가 바라는것은 멀어져가기만 하였다. 앞길에는 언제나 슬픔과 괴로움만이 기다리고있었다. 지쳐버린 류화는 그 어둠을 보고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류화는 아무리 유혹이 꼬리를 쳐도 더욱 옹송그릴뿐이였다. 벌써 반생을 넘게 그렇게 살아온 류화였다.

류화는 부지중 한숨을 흘렸다.

그 어떤 행복이요, 기쁨이 있다면 애오라지 그것은 아들, 주몽을 기다리는것이였다. 그 아들의 커가는 모든것이 가냘프다 하리만치 어머니 류화에게 행복이요, 기쁨이였다. 그밖의 어떤 더 다른것은 바라지 않았었다.

언제 오려나 하고 아들을 기다릴 때면 틀림없이 주몽이 어릴적에 있었던 일들이, 그리고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들이 마치 등불처럼, 수레채에 단 금방울소리처럼 안겨왔다. 아득한 하늘에서 울려오는듯 한 그 소리, 그 모습이…

베틀에 앉아 부지런히 바디질을 해가던 류화는 문득 이상한 느낌으로 일손을 멈추었다.

어느새 기여왔는지 아들이 옆에 와있었다. 아들의 눈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어째 자지 않고?》

《엄마 하는거 보았지 뭐.》

《무얼?》

《이거 들락날락 하는거…》

아들은 씨실 날실 엮는 북을 가리켰다.

《흠, 그게 무얼 볼게 있냐?》

《그래도…》

《참 애두…》

《재미있어. 엄마, 어서 일해.》

아들을 잠시 지켜보던 류화는 다시 바디질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어린 아들의 눈이 북을 따라 오락가락 하였다.

류화는 베를 짜면서도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별일이였다. 아들은 류화가 지쳐 베틀을 물릴 때까지 꼼짝 안하고 북이 나드는걸 보고있었다. 엄마가 베틀에 앉으면 영낙없이 옆에 붙어 북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엄마는 심상하게 여기게 되였다.

류화는 아들의 이런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것을 후에야 알게 되였다.

어느날 류화는 잠든 아들의 얼굴에 부채질을 해주고있었다.

아들이 눈을 떴다.

《엄마, 뭘 하나?》

《응, 파리를 쫓는다. 우리 아가 단잠자는데 파리가 날아와 성가시게 굴지?》

《나쁜 파리야! 내가 다 잡을래!》

《날개달린 파리를 어떻게 잡지?》

《활로 쏘아잡지 뭐…》

《활이 뭔지 아니?》

《알아!》

《어떻게?》

《엄마가 노래불러주었지.》

《노래?》

그 노래-

 

사내아이 태여나면

뽕나무로 활 만들고

쑥대 꺾어 살 메워서

사방천지 쏘아보세

아가아가 얼른 커서

온 누리를 뛰놀거라

 

풍습따라 불러온 엄마의 노래였다.

《엄마, 활 만들어주지?》

《이담 큰 다음에…》

《싫어, 싫어… 지금 만들어줘. 내가 화살로 파리를 잡을테야!》

《원, 애두. 그러지 말고… 맛있는걸 줄가?》

《싫어, 싫어. 나 활 만들어줘.》

《그래, 그래. 만들어주지…》

뒤뚱뒤뚱 걷는 아이는 열심히 쑥대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어림없는 일, 화살은 시위를 떠나기 바쁘게 미끄러지거나 벽에 부딪칠뿐이였다.

《그만둬라. 날아가는 파리를 무슨 수로 잡겠다고 그러느냐? 얼마나 빠르게 날기에?》

《그렇지 않아요. 엄마, 내가 파리를 보면 파리는 멈추어서요!》

《뭐? 날아가는 파리가?》

《그래요. 엄마가 베 짤 때도 북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류화는 놀랐다. 옛사람들 이야기에 움직이는 미물을 오래 지켜보면 서있는것으로 보인다고 하던데 아들의 말을 들으면 사실인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가 활로 파리를 잡는다는건 믿지 못할 소리다. 하면서도 류화는 아들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였다.

한달, 두달…

엄마가 보기에 맹랑한 놀음을 아이는 벌써 일년가까이 하고 있었다. 아들은 화살로 파리를 잡으려고 애쓰며 커갔다.

《엄마! 잡았어!》 하는 아들의 웨침소리가 랑랑하게 울릴 때 엄마는 기쁨보다도 어린아이치고는 지나치게 엉뚱하고 집요한 성격에 놀랐다. 이애가 장차 어찌 되려나 하는 근심이 땅거미처럼 슬며시 스며드는것은 또 웬일이였던가? 담벽에 붙은 파리를 꼭꼭 잡아내던 아들은 그것도 성차지 않아 날아가는 파리를 쏘아맞히군 하였다. 어느덧 이것이 버릇으로 굳어졌다. 아들은 부여의 풍습대로 《주몽》이라 불리웠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그렇게 불렀던것이다. 사람들의 경탄과 부러움이 커가고 숱한 또래의 아이들이 주몽을 따라다녀도 마땅히 기뻐해야 할 엄마의 얼굴에는 웬일인지 그늘을 지었다. 엄마를 놀래우는 아들의 맹랑하고도 지꿎은 놀음은 그뿐이 아니였다.

어느날 주몽은 피투성이로 들어섰다.

《웬일이냐?》 깜짝 놀란 엄마의 물음에 일곱살난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망아지란 놈과 힘내기했어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망아지가 말떼에서 달아나군 하니까 말 부리는 서불아저씨가 안타까와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망아지꼬리를 잡고 늘어졌던거예요.》

《뭐라구? 네가 제정신이냐?》

《오늘은 내가 질질 끌려갔지만 래일은 꼼짝 못하게 하겠어요.》

《그런 생각 집어치워라.》

그러나 아들은 엄마말을 듣지 않았다.

망아지에 끌려다니고 때로는 엄지말에 채우거나 물린적도 있었으나 몇해 지나서는 몸에서 말땀내가 나도 성한 몸으로 집에 들어서군 하였다. 그후 주몽이 말꼬리를 쥐고 공중에서 도리깨 두르듯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류화는 다시한번 놀랐다.

여느 부모라면 떠들썩 자랑할 아들의 그 엉뚱하면서도 놀라운 성장이 어째서 류화에게는 불안스러울가? 지나친 세전토끼 심정일가? 아니다. 스스로 알지 못할 예감에 사로잡힌 류화는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말을 일체 하지 않기로 마음다졌다. 아들이 물어보아도 엄하게 돌려버리군 하였다.

그러나 불안은 차츰 더해가고…

그날은 왔다.

류화는 주몽의 나이 열넷에 이르러서야 결코 자기의 위구가 헛된것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어느 어슬녘.

주몽은 밖이 어두워지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오겠지 하고 심상하게 기다리던 류화는 차츰 속이 끓기 시작하였다. 아들은 초저녁 별이 돋아도 돌아오지 않았다.

류화는 문득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마당에서부터 한발 두발 뜨락을 나서고 두루 동네를 찾아보았으나 주몽은 없었다.

불안은 점점 더해갔다.

마침내 어떤 나무군이 주몽이 왕자들과 함께 사냥하러 가는것을 보았다면서 그 향방을 가리켜주었다. 그 향방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던 류화는 그만에야 움쭉 굳어졌다. 눈앞에서 나무 한그루가 마치 마술에 걸린듯이 흔들리고있었다. 처음에는 바람결에 그러는가 했지만 아니였다.

《누구요?》 하고 류화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세차게 흔들리던 나무가 딱 멈추어섰다.

《누구요?》 하고 재차 물으니 저쪽에서 《어머니오이까?》 되묻는 주몽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몽아. 너 거기서 뭘하고있느냐, 응? 날이 이렇게 어두웠는데…》

가까이 다가간 류화는 깜짝 놀랐다. 주몽은 굵은 나무에 꽁꽁 비끄러매여있었다.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옷가지는 다 찢어지고 어깨에서는 피가 흐르고있었다.

《주몽, 이게 웬일이냐? 응? 누가 너를 이렇게 했니?》

류화는 억이 막혀 부르짖었다.

뜻밖에 나타난 어머니앞에 주몽은 그만 맥을 놓으며 어둠속에서 어머니를 한동안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다가 하얀 이를 보이며 말했다.

《어머니, 내 힘이 얼마나 센지 내기를 해보았소이다.》

아들의 말에 류화의 가슴은 더욱 찢어지는듯 했다. 차라리 엉엉 울며 설분이라도 토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어린것이 제켠에서 어머니를 위안하는것이다. 누가 그렇게 했는지 묻지 않고도 뻔하였다.

《왕자들과 사냥을 했다지?》

《그렇소이다.》

《그래 네가 또 많이 잡았겠구나?》

《그렇나이다.》

《그런데 그게 다 어디로 갔니?》

《제가 힘내기해보는 사이에 그것들이 다 달아났는가 보오이다.》

《그래, 그래. 살맞은 짐승들이 놀라서 달아났구나. 원 녀석두, 됐다! 이젠 집으로 가자.》

류화가 서둘러 바줄을 풀어주니 주몽은 땅우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류화의 눈굽이 축축해지였다. 그는 아들을 향해 등을 돌려댔다.

《내게 업히지.》

《아니, 됐나이다. 조금 쉬여서 가시오이다.》 하고 주몽은 맥풀린 손으로 류화의 잔등을 밀었다.

아들은 너무나 숙성하다. 아이 같지 않다. 그것이 류화의 속을 더 아프게 한다. 아들의 정상을 바라보는 류화의 가슴속으로는 피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버지얼굴도 모르고 자라는 아들이 이런 기막힌 일을 당해도 항변 한마디 할수 없는 자기들의 처지가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큰 나무일수록 먼저 찍히기마련이다.

류화는 아들 몰래 눈굽을 훔치였다.

주몽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그때로부터 류화는 삽짝문에서 항상 불안스러운 마음으로 주몽을 기다렸다.

나무에 묶이웠던 그때부터 아들은 섬찍하리만치 변하였다. 이전에 류화가 명색이나마 금와왕의 후궁으로 있을 때에는 왕자들과 더불어 어성버성하게나마 어울렸다. 그러나 대소왕자와 대신들이 금와왕에게 집요하게 상소하여 이미 북국의 왕 해모수의 아들을 낳은 류화를 더는 후궁으로 둘수 없다고 하여 마침내 내침을 받게 되고 주몽도 말목장의 목동으로 된 이후부터 언제 그랬냐싶게 왕자들과 주몽사이에는 깊은 곬이 생겨났다. 아들은 말이 적어지고 대신 눈빛이 더욱 세차지였다. 류화는 아들이 변하는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안다. 이왕에 주몽이 왕자들과 어울려 뛰놀던 궁전안에서의 생활에서는 볼수 없던 전혀 새로운것이였다.

《힘들지 않냐?》

류화가 지친듯 한 아들을 걱정하여 물을 때면 아들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어머님, 제가 왕자들의 모함으로 목동이 되였으나 차라리 잘되였다고 보아요. 궁을 떠날 때에는 못살것 같았지만 정작 말먹이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많은 하호, 민들과 만나보게 되니 이제는 그들을 떠나서 살수 없을것 같소이다.

저는 백성들의 마음을 비로소 아는것 같소이다.》

《백성들의 마음?》

《그렇소이다. 아직은 무언지 잘 모르겠으나 분명히 백성들의 마음은 궁안에서는 알수 없을것이오이다.》

《장차 어찌할셈이냐?》

《주제넘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명망높은 례나루선생님에게서 배우려 하오이다.》

《목동일은 어쩌고?》

《힘들어도 기어코 배우겠소이다. 저에게는 밤이 있소이다.》

류화는 아들의 얼굴에서 그 무엇으로써도 꺾을수 없는 굳은 결심을 보았다.

그후 례나루선생에게서 주몽은 삼년세월을 배웠다. 새벽에야 들어와 꼬꾸라져 잠들었다가 다시 날밝으면 말을 몰고 나가야 하였던 그 삼년세월 주몽은 점점 뚜렷하게 한곬을 타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몸가짐은 더욱 의젓해지고 이따금 깊은 생각에 잠기군 하였다.

그럴수록 류화는 아들에게 더욱 정을 쏟았다.

류화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주몽이 뜨락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류화는 버릇처럼 아들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이제는 다 자란 장부다. 어쩌면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았을가? 저 눈빛이며 쩍 벌어진 어깨며…

류화는 저도모르게 빙긋 웃었다.

《어서 옷을 벗으렴.》 하고 류화가 말하니 주몽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류화를 보며 말했다.

《어머니, 오늘은 그만하시오이다. 그렇게 매일 옷을 빨지 않아도 되지 않소이까?》

《네 옷이 다 젖었구나.》

《오늘은 별로 힘들게 일하지 않았나이다.》

《그래도 땀배인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몸에두 나쁘고 다른 사람이 봐도 그렇고…》

《어머니도 참, 제 옷을 매일 빠시는게 무슨 락이라도 되시는가 보오이다?》 하고 주몽이 정겨운 시선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락?!》 하고 아들의 말을 되뇌이는 류화의 입가에는 절로 웃음이 피여오르고 눈귀에 잡힌 주름살은 인두로 다린듯이 펴지는것이였다.

《그래, 그래! 난 네 옷을 빨 때마다 락을 찾군 한다. 너의 기운이 강물에 흘러서 세상 그 어디나 다 가는것 같아서 나는 기쁘더라!》

류화는 아들에게 밥상을 챙겨주고나서 옷을 함지에 담아 이고 개울가로 나갔다. 중천에 떠오른 보름달이 류화의 주위를 환하게 비쳐주고 시내물우에 비낀 또 하나의 달은 얼레얼레 해지며 류화를 올려다보고있었다.

그 달속에서 주몽의 스승인 례나루로인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의 음성이 쟁쟁히 들려왔다.

《사람이 뜻을 이루자면 천시, 지리, 인화를 타야 하오. 내가 보건대 주몽은 자기의 아버지인 해모수왕의 뜻을 이은것 같소! 주몽의 뜻은 단군선인과 선인의 옛성지에 두고 겨레의 통일을 이루어 강성대국을 건설한 웅지라 할수 있소. 이로써 주몽은 천시를 탔다고 볼수 있소. 왜냐면, 지금 각각으로 갈라진 우리 겨레가 단군선인의 치하에서처럼 하나가 되여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기때문이요. 민심은 천심이니 어찌 천시를 탔다고 보지 않을수 있겠소. 또 주몽은 인화도 이루었다고 보오. 나는 주몽의 주위에 늘쌍 하호, 민들이 따르고 오이, 마리, 협부와 같은 쟁쟁한 재사들이 모여드는것을 눈여겨보군 하오. 왕벌이 날면 그 주위에 숱한 벌이 모여드는것과 같은 리치요. 그런데 지리는…

그건 헤아리기가 아직 이른것 같소만 어찌 단군선인이 무심하겠소. 주몽은 이제는 내가 전수할수 있는 비정의 절정고수무예를 이미 다 체득했으니 어디서 일어나겠는지가 문제요.》

례나루선생은 백발수염을 손바닥으로 내리쓸었다. …

빨래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오며 류화는 생각하였다. 례나루선생의 말씀이 아니라도 주몽이 이제는 집이라는 보금자리를 털고 하늘을 날 때가 되였다. 궁성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대소, 대이왕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대신들, 제가들속에서 주몽이 무사할리 없는것이다. 큰 나무일수록 바람을 더 많이 맞는 법이다. 주몽이 장차 어찌되겠는지, 마음을 놓을수 없다. 무슨 마련이 있어야 한다.

류화가 집에 돌아오니 그사이 주몽은 밥상을 물리고 방에 누워있었다. 천정을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주몽은 류화가 들어와도 모를 지경이였다.

류화는 한동안 아들을 바라보았다.

례나루로인이 하던 말이 다시금 쟁쟁히 들려왔다.

《주몽은 보통인간이 아니오이다!》

류화는 생각에 잠긴 아들에게 물었다.

《주몽, 뭘 그렇게 생각하느냐?》

류화의 물음에 주몽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몽은 이때껏 자기가 구원해준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같이 말을 방목하는 서불아저씨에게 그 사람을 부탁하고 돌아온 주몽이였다. 서불아저씨는 주몽이 어릴 때부터 말타기를 배워준 사람이다. 나이가 진득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주몽을 몹시 아껴주고 주몽 또한 그를 믿었다. 목동들중에서 좌수격인 서불은 주몽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맡아 돌보아주겠노라고 하면서 주몽의 등을 밀었다. 어머니가 걱정하기 전에 들어가보라고 하여 돌아오긴 하였지만 그 낯선 사람에 대한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그는 누구이며 어찌하여 처참하게 달근질 당했을가, 누구에게서? 어떻게? 궁중에서?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주몽은 잠자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주몽, 그래 네가 하는 일은 잘되느냐?…》

《잘되오이다. 서불아저씨랑 도와주어서 힘든줄 모르오이다.》

주몽은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류화는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주몽아, 부여라는 이 나라가 말이 유명하건만 이 에미는 여느 집 부모들처럼 성장한 너에게 말을 사줄만 한 잡은것이 없구나.》

자기 생각에 잠겨 혼자말처럼 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주몽은 당황했다.

《아, 어머님. 그런 말씀 마시오이다. 저야 목동이 아니오이까? 저에게도 피접한것이나마 제것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들 때도 있지만 결코 어머님을…》

류화는 물기맺힌 눈으로 아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아니다. 이왕 말을 낸김에 이 길로 가자!》

《어디로 말이오이까?》

《마구간으로 가자. 혹시 알겠느냐? 잘되면 화가 복으로 될수 있을거다. 내가 왕년에 들은 말이 있어 준마를 고를줄 아니 한번 시험해보련다.》

주몽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뜻을 모르겠는지라 그저 말없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류화는 주몽이 먹이는 말들의 마사에 갔다.

뜻밖에 나타난 류화와 주몽을 보고 말들은 달빛에 눈을 번뜩이며 불안해하였다.

《채찍을 가져오너라.》 하고 류화는 살이 쪄서 번들거리는 말들의 잔등을 바라보며 주몽에게 말했다.

《어머니, 조심하시오이다. 말들이 갈갤수 있소이다.》 채찍을 넘겨주며 주몽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수 없어 어머니곁에 붙어섰다.

여직껏 자라오면서 어질고 순박하기만 하던 어머니를 보아온 주몽이다. 그런데 오늘밤만은 웬일인가?

주몽은 아래입술을 깨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류화는 채찍을 거머쥐고 말무리속으로 들어갔다.

류화는 채찍으로 말잔등을 후려치기 시작하였다. 놀란 말들이 채찍을 피해 이리저리 돌아쳤다.

주몽은 손에 땀을 쥐고 어머니가 하는 일을 바라보았다.

《조심하시오이다.》

주몽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류화는 더욱 세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조용하던 말무리속에서 채찍소리가 아츠럽게 울리고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어머니, 어째서 그러시오이까? 말씀해주시오이다. 혹시 저한테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시오이까?》

그러거나말거나 류화는 말무리우에 채찍을 연거퍼 안겼다.

모진 채찍아래 우우- 몰켜다니던 말무리속에서 한마리의 말이 두길넘게 건너놓은 장대를 넘어 껑충 울타리를 뛰여넘어 달아났다.

그제서야 류화는 채찍을 내리웠다.

《방금 울타리를 뛰여넘은 그 말을 끌어오너라, 》 류화가 울타리밖으로 나오면서 주몽에게 일렀다.

주몽은 울타리문을 닫아매고나서 어둠속으로 사라진 말을 쫓아갔다. 말은 얼마 가지 않고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주몽이 말을 달래여 끌어오자 류화는 한참이나 신고하며 달빛에 말주둥이를 벌리고 그 이발을 살펴보았다.

《이 말이 참 좋구나!》 하고 류화는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벌어진 일에 대해서 주몽은 아직도 벙벙했다.

그가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는데 류화는 자기 옷섶에서 바늘 한개를 꺼내 주몽에게 주었다.

《옛다, 이걸 이 말의 혀바닥에 꽂아넣어라!》

《?》

《어서.》

《어머니, 아무리 미물이라도 말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소이까?》

《너는 아직도 내 뜻을 모르겠느냐? 해마다 왕의 궁중마구간 순행이 있었지 않느냐. 그때 좋은 말들이 선발되겠지. 나머지 말들중에서 가장 피페한것이 아마 너에게 돌아갈수도 있다.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제야 주몽은 어머니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주몽은 그 말을 끌어 마구간에 매놓은 다음 요동치는 말의 혀바닥에 바늘을 꽂아놓았다.

주몽은 자기를 말끄러미 쳐다보며 맑은 눈물을 쭈르르 흘리는 말을 바라보며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류화는 이마에 흥건히 내밴 땀을 훔치며 아들의 모양을 세세히 주시했다.

류화의 마음도 말 못하는 짐승을 너무나 혹독하게 하는것이 가슴아팠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어쩔수 없었다.

세상의 일이 순수 자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것을 류화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자비로 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류화자신이 선인이 되고도 남았어야 했다.

어린 주몽을 나무에 꽁꽁 얽어매놓고 희희락락하며 달아난 왕자들의 행실이나 지아비없는 자기들 모자를 이다지도 모질게 박대하는 세상에 대해서 결코 자비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이미 그는 느꼈었다. 그래도 류화는 항변 한번 못했다. 그럴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된다고 류화는 생각하였다.

이러한 세상살이가 류화 자기에게만 닥친것이라면 그는 아마 앞으로도 조용히 그렇게 살아갔을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일을 생각하면 그럴수 없었다.

류화에게는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아들의 일이 잘 된다면 아무 원이 없을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어머니, 웬일이오이까?》

류화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쳐댔다.

《주몽아, 나도 말이 불쌍하다. 죄를 받아야 한다면 내가 다 받겠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는 장차 큰뜻을 품고 나서야 한다. 큰일을 하려고 맘먹은 사람은 사소한것에 맘을 써서는 안된다. 사사일에 취해서 큰일을 그릇되게 한다면 그것은 사내가 아니다. 알겠느냐?》

주몽은 아무 말없이 어머니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아직도 자기의 심중에 서서히 자라는것이 무엇인지 주몽 그자신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살며 그것을 위해 죽으리라는 그의 결심은 굳어지고있었다.

어머니도 그러하고 례선생도 그랬다.

주몽은 이밤에 언제인가는 세상에 터쳐놓을 자기의 맹세를 마음속으로 다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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