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하 편

 

15. 오, 조상의 땅이여!

 

4

 

감찬과 마주하고있는 최충의 얼굴은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있는 감찬의 얼굴도 긴장되여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감찬은 입을 열었다.

《최시랑이 원군출병을 주장한것을 왜 나무람하는지 이제는 알만한가?》

《알만하오이다. 소인의 생각이 짧았소이다.》

최충은 한해전부터 례부의 시랑직을 겸하고있었다. 최충은 지금 거란에 닥친 내란에 대처한 고려조정의 조치에 의문을 표시하였다가 감찬으로부터 꾸중을 들은것이였다.

때는 기사년(1029년) 9월 초엽이였다.

거란 동경의 장수 대연림이 드디여 거란조정에 반기를 들고 군사를 일으켰다. 그는 오랜 기간의 준비끝에 불의에 동경성을 장악하고 새로이 나라를 세웠다.

나라이름은 흥료국, 새로이 부흥하는 료나라라는 뜻이였다.

발해태조 대조영의 11대손인 그는 그사이에 거란에 충실히 복무하면서 때를 기다려왔었다. 거란왕은 그를 포섭하여 발해유민후손들로 동경발해군이란 특설부대를 만들어 거란군에 부속시켰었다.

대연림은 이 군대의 총사가 된 기회를 리용하여 오래동안 재기를 준비해왔다. 그가 나라이름을 흥료국이라고 단것은 터밭이 거란령역인데다 현지의 거란인들까지 궐기시켜야 했던 사정에서였다.

그는 자신을 흥료국 황제로 칭하고 천경이란 년호까지 선포하였다.

하지만 일단 거사를 단행하고보니 거란인들의 반응은 기대와는 다르게 나왔다. 거란왕의 폭정에 시달릴대로 시달린지라 반감이 고조되고있던 거란인들이지만 정작 발해유민후손이 황제라 칭하고나서자 대번에 거부감을 가지고 등을 돌려댄것이였다.

하지만 대연림은 물러서지 않았다. 녀진인들이 지지해나섰기때문이였다.

녀진인들을 끌어당기는 일은 대연림의 형인 대연정이 맡아나섰다. 그는 흥료국 건국과 함께 태사의 관직을 임명받고 대연림의 한쪽팔이 되여 거사를 주관하였다. 사태가 바라는대로 진척되지 않자 그는 직접 동녀진으로 가서 그곳 녀진인들을 설복하여 이끌고와서 거란군과 싸움을 벌리였다.

치렬한 싸움속에 한달가량 시일이 지난 뒤에 대연정은 생각던 끝에 고려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요청문을 가지고온 사람은 발해유민후손인 고길덕이였다.

요청문에는 흥료국이 실은 발해후국임을 밝히고 동족의 나라로서 협조해줄것을 제기하고있었다.

고려조정에서는 론난이 분분했다.

지원을 해야 한다는 파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파로 갈라져 서로 갑론을박하였다.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류의 주장은 흥료국이란 이름그대로 료국 즉 거란국의 재판일뿐 후에 흥료국이 존재하게 된다 해도 고려에 별로 리득이 올것은 없다는것이였다.

지원해야 한다는 부류의 주장은 동족의 나라가 다시 세워지느냐 마느냐 하는 일인데 외면이라니 될번이나 한 일인가,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을수도 있는 두번다시 맞다들기 힘든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임금은 지원을 포기하는데로 기울었다.

감찬이 이를 따른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는것이였다.

감찬은 한달전인 8월초에 대연림이 반기를 든 그때보다 퍽 앞질러 서너달전부터 이 거사의 비밀을 알고있었다. 자기 수하에 직접 장악되여있는 오두의 정보망을 통해서였다.

감찬은 오두의 간자들을 통해서 필요한 자료들을 들여오게 하고 밤을 새워가며 거사의 성공여부를 면밀하게 따져보았다.

감찬의 판단에 따르면 열에 아홉은 실패로 끝나는 거사였다.

우선 력량상 대비에서 차이가 너무 심하였다.

백년이라는 그 기간에 료서와 료동일대에 정착하여 번성한 거란인의 수가 너무도 엄청나게 많은것이였다. 그에 비하면 발해유민의 후손은 수자가 너무 적었다.

녀진인들을 놓고보아도 동녀진은 서녀진과 옥신각신 다투는 상태이므로 쉽게 응해나올 징조를 보이지 않는데다 강제로 이주시킨 한족들은 (거란이 송나라와 국부전을 벌릴 때마다 포로로 끌어온 이주민들이다.)거란 그자체는 증오하였지만 한족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세우는데까지 따라나설 의식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족들중에는 포로되여 끌려와 사는 사람들외에 투항하여 와서 거란의 관직을 받아가지고 호의호식하는자들이 적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서로의 리해관계가 다른것으로 해서 한곬으로 뭉쳐 흐르기가 쉽지 않은 제갈래판의 무리였다.

다음으로 승산이 안 보이는것은 군사운영면에서의 질적차이때문이였다.

거란인은 꼬투리를 달았다 하면 나서부터 군사에 적을 두고 무예를 익히며 성장하는 직업적인 군인이다. 여름철에 양떼, 말떼를 몰고다니면서도 칼질, 창질을 멈추지 않고 겨울철에는 아예 집을 떠나 들판에서 생존하면서 조련을 하는것이였다. 거란인의 남자는 모두가 상비군인인것이다.

그에 비하면 발해유민들이나 한족유민들은 선발된 적은 인원만이 군사로 되고있었다.

녀진인들이 사냥을 전업으로 하는터에 반군사라고는 할수 있을지라도 그들은 병법같은것은 알지도 못하고 진을 치고 허무는따위 대형짓기에는 아예 문외한이였다. 녀진인들을 지휘하자면 부득불 발해유민들이나 한족들가운데서 장수들을 떼여내야 하는데 이들이 지휘를 한다고 해도 언어소통이 잘 안되는데다 날다람쥐처럼 이리저리 제 내키는대로 빠져돌아가는 녀진인들을 휘여잡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감찬의 이러한 판단은 정작 싸움이 터진 후에 더욱더 여실히 증명되였다.

대연림은 반란을 일으키기 며칠전에 그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경 부류수 왕도평에게 자기의 거사계획을 이야기해주고 그와 협조하기로 약속하였었다. 그런데 왕도평은 대연림앞에서는 굳게 약속하고서도 돌아가서 곰곰히 생각해보던중에 겁을 먹고 성밖으로 도망쳤다. 그는 대연림의 령을 받고 료양성가까이로 군사를 이끌고와서 대기하고있는 같은 한족출신인 황룡부 장수 황평에게 대연림의 거사계획을 알려주면서 그를 꼬드겨 연경에 있는 거란왕에게 이 사실을 고발하는 변절행위를 하였다.

대연림은 한족출신 장수들인 왕도평과 황평들로 서쪽방향을 맡게 하여 거란왕이 연경(베이징)쪽에서 급파할수 있는 증원력량을 막으려던 본래의 계획을 실현할수 없게 되였다.

다음날 아침 왕도평과 황평이 변절한것을 알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거란왕은 급보를 받은 즉시 군사를 풀어 료동으로 진격해나왔다. 먼저 기병부대가 급파되여 료하의 도하지점들과 주요도로들을 차단해버림으로써 폭동군(대연림의 반란군)이 연경으로 공격해오지 못하게 방비해놓았다.

오두는 자기의 망원들을 총발동하여 동경주변에서 벌어지고있는 실태를 낱낱이 알아내여 알려왔다.

임금은 상황보고를 들으며 대번에 머리를 가로저었다.

《안되겠군, 아쉽지만… 안되겠어.》

임금은 감찬이 들고온 오두의 정보자료외에도 병부에서 자기의 선으로 알아온 현지실태자료를 받아놓고있었다.

《대연림이 료동지역만이라도 차지할 전망이 보인다면 다시 생각해볼 여지는 있으련만. …》

감찬은 안타까운 자기 심정을 저도모르게 내뱉았다.

《그러니 평장사어른도 내심으론 지원을 바라고있었소그려.》

임금은 입을 다시며 감찬을 바라보았다.

《아닌 말로 이런 기회가 두번다시 있겠소이까?》

감찬은 주먹으로 무릎을 쳤다.

《거란의 화친요청을 받아들인지가 언젠데, 그걸 파기하고 싸우자고 나선단 말이요?》

임금은 짐짓 얼굴을 찡그렸다.

《십년이 되였소이다. 십년쯤 화친했으면 다시 붙어볼 일 아니오이까? 조금 멋적긴 하지만 우리라고 침공을 못한다는 법이야 없지 않소이까.》

《침공은 무슨 침공이요? 옛땅을 되찾자는것인데, 명분이야 당당하지.》

임금의 이 말에 감찬은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하오면 료동을 바라고 출병을 하오리까?》

그 말에 임금은 감찬을 지그시 여겨보다가 허구픈 웃음을 날렸다.

《그만하시오, 어른이 지금 이 사람을 중떠보는줄 내 모를줄 아시오?》

《죄송하오이다. 태조때부터 한을 남기고있는 땅이라 소신이 그만…》

《그때하고는 사정이 다르지 않소. 태조때에는 근 40년동안 내전에 시달린탓에 힘이 딸려서 더 올려밀지 못한것이오만… 지금은 료동땅이 다져질대로 다져져서 쉽사리 허물기 힘든것 아니요? 거란이 백년이나 깔고앉아있었으니 이젠 제 땅이라고 우겨도 더 할 말이 없게 됐단 말이요.》

《하오나 어느때 가서든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 땅이옵니다.》

《거야 더 이를 말이요? 좌우간 우리 좀더 지켜봅시다. 혹시 알겠소? 우리가 정말로 료동만이라도 차지하게 될는지…》

《우리 고려가 료동을 차지한다는것이오니까?》

《나는 대연림을 두고 하는 말이요. 그가 료동만이라도 장악할수 있는 전망이 보이면 힘에 부치더라도 우린 일어서야 하리라고 생각하오.》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소이까?》

하지만 이후의 사태는 임금이나 감찬이 바라는대로 흘러가지 못하였다.

사흘후에 감찬은 또 다른 불쾌한 소식을 받아들고 임금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쉬지 않고 왜 또 나오셨소이까? 서경쪽엔 서리가 내렸다던데 아직도 여름옷차림이시군요.》

임금은 감찬에게 용건보다 먼저 건강부터 관심하였다.

감찬의 나이를 고려해서 한주일에 두번 정도만 나와 일을 보라고 분부를 내린 임금이였다.

《압록강너머 사태가 갈수록 난감이로소이다.》

감찬이 풀이 죽은 얼굴로 말을 떼자 임금은 머리를 끄덕였다.

《하행미라는 작자가 돌변한 사실을 알리러 오신게군요.》

《알고계셨소이까?》

《오늘 새벽에 병부에서 소식을 알려왔소. 발해인장수 하행미가 료양으로 올라오라는 대연림의 령을 거역하고 거란군에 가붙었다고 하더이다.》

《그놈이 글쎄 고을의 거란관리들을 처단하라는 대연림의 령을 받아물지 않고 자기에게 반발하는 수하의 발해인군사 8백명을 몽땅 죽여버렸다지 않소이까.》

《거란 동경 통군사 야률표고에게 대연림을 제 손으로 잡아바치겠다 했다더이다.》

《자객을 들여보내서라도 하행미 그놈의 목을 따치우는게 어떻소이까?》

《그놈이 벌써 료양쪽으로 올라가있다는데 그곳까지야 어떻게 사람을 들여보내겠소?》

《보고에 의하면 거란왕은 그놈에게 다시 압록강쪽으로 내려가 고려군이 지원해오는 경우에 막을 준비를 하라 하였다더이다. 그놈이 반드시 내려올것이니 그때에 해치우면 될것이오이다.》

《부질없는짓이요. 그까짓놈 하나 목을 딴다고 분풀이가 되겠소?》

《생각같아선 속시원히 출병하여 힘자라는껏 돕고싶은 생각뿐이오이다.》

《실은 나도 그 생각이요.》 임금은 감찬에게 간절한 눈길로 말했다. 《대연림이 전망은 안 보이지만 도울수 있는만큼은 도와야 할것 같소. 당장에 출병은 안하더라도 도울수 있는 방도가 있음직한데…》

임금의 이 말에 감찬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한무릎 다가앉았다.

《대연정이한테 병쟁기와 군마라도 주어보내는게 어떻소이까? 그가 녀진인들을 규합하느라 고심이 여간 아닌데 병쟁기와 군마를 보충해주면 날개를 달아주는셈이 될것이오이다.》

《그게 좋겠소. 화살도 있는껏 지워보냅시다.》

《소신 생각엔 짐을 나르는 인부들속에 발해출신장수들을 끼워 들여보냈다가 그들을 떨구어놓아 녀진인들을 지휘하게 하는것이 좋을듯 하오이다.》

《좋은 생각이요. 얼마나 들여보낼수 있겠소?》

《청천강이북에 있는 발해출신장수들이 얼추 잡아 스물은 될것이니 그들에게 역시 발해출신군사들을 한 백명쯤 선발하여 붙여주면 녀진인들을 지휘하는데 보탬이 될것이오이다.》

《그러면 대연정이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아 과인의 마음이 조금은 놓이게 될것이요. 지급으로 군령을 내려 시행하게 합시다. 그리고 청천강이북의 모든 군사들을 대기태세에 들어가게 해야겠소. 거란왕이 고려의 지원출병을 예견하고있다니 혹여 우리를 선제한답시고 압록강을 또 넘어올수도 있는것 아니요? 그때에는 정식으로 출병을 하고볼 판이요.》

《그래야 하고말고요. 아닌게아니라 거란것들이 정말로 우리 지경을 범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 드오이다.》

《거란이 흥료국의 건국과 관련한 내란사실을 통고해오지 않는것도 이상야릇하기 그지없는 일이요. 우리 고려보고 적어도 자중하고있으라는 말쯤은 해올듯싶은데 말이요.》

《그들이 가만있을리 없소이다. 인츰 사절이 올것이오이다.》

《내 생각도 그렇소. 사절이 오면 잘 조처해야 할것이오.》

《례부시랑 최충이 그 일을 맡도록 하는게 좋을듯 하오이다.》

《최충 그 사람이 지원출병을 안한다고 몹시 못마땅해하는 눈치던데…》

《소신이 깨우쳐주겠소이다. 아닌 말로 지금의 상황에서 출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은 진짜가 아니겠소이까?》

《옳은 말이요. 그럼 그 일을 평장사어른이 맡아주시오.》

《알아들었소이다.》

이렇게 되여 감찬은 지금 최충을 불러들여 설복을 하고난 뒤였다.

이틀이 지나서 마침내 거란에서는 사절을 보내여왔다.

거란왕이 보낸 서신에는 고려와 화친관계에 있는 거란이 현재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고려에 지원을 바란다는것과 흥료국이 고려지경으로 남하하려는 기도이니 이를 저지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으면 한다는 내용이 씌여있었다.

고려에 지원을 바란다는것은 흥료국을 도와서 저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일을 하지 말아달라는것이요, 흥료국이 고려로 쳐내려온다 함은 고려가 흥료국을 적으로 대해달라는 뜻이였다. 절대로 흥료국과 동맹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부탁이였다.

최충은 례부를 대표해서 거란사절을 만나 그들과 동행하였다.

거란사절단은 흥료국의 건국자인 대연림에 대해 제나름으로 설명하였다.

대연림이 발해유민출신으로서 발해후국을 표방해나선 사실은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정권야욕에 들떠 반기를 든 인물로만 묘사하였다. 그가 연경으로 공격하려던 초기계획을 포기한것은 거란군에 비해 힘이 딸린다는것을 판단한 때문이라는것이였다. 그리고 일단 궐기한 이상 료동지역과 고려의 북부지방까지 차지하고 자기의 존재를 유지할 기도이므로 고려는 거란과 동맹하여 흥료국을 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집요하게 설득시키려 하였다.

고려는 거란의 이러한 견해에 긍정하는 립장을 표명하였다.

거란의 통고를 그대로 믿는듯싶은 태도를 취하면서 거란의 권고를 참작하여 압록강대안수비에 총력을 기울이는듯이 행동하였다.

이 일을 최충이 맡아하고있는것이였다.

고려조정에서는 서북면 병마사 류소를 최충과 함께 동행시켜 현지에서 거란사절을 함께 대동하게 하였다.

류소는 방어전연전방의 실태를 직접 확인해야겠다면서 귀국하는 거란사절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가 료동의 현황을 제 눈으로 확인하였다. 거란군의 병력수를 알아내려는것이였다.

류소가 알아온바에 의하면 동경을 포위한 거란군의 수자는 예상을 뒤엎을 정도로 많았다. 한족출신장수들인 왕도평과 황평이 지휘하는 부대들이 대연림과의 협동을 포기하고 거란에 가붙은 때문이였다.

최충은 일이 이렇게 번져질수도 있다는것을 예견하지 못한것을 후회하였다. 거란군에 비해 력량상 대비도 안되는 대연림의 군사를 믿고 출병해야 한다고 우기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최충은 동족의 편에 서야 한다는 정의감은 높았지만 군사적면에서 력량상 대비가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적요인의 하나로 된다는 리치는 미처 터득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대연림이 거란군의 동경포위망을 뚫고 북상하여 심주(심양)성을 타고앉으려 한다는 정보만을 얻어쥔채 압록강을 다시 건너온 류소와 함께 개경으로 돌아오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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