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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 회)

 

하 편

 

15. 오, 조상의 땅이여!

 

3

 

《그간에 몸이 불편하다 들었는데 문안을 못해 미안하오.》

임금은 감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위로의 말을 건네였다.

감찬은 봄철에 접어들면서 해소병이 나서 며칠간 어전출입을 못하였었다.

《황공한 말씀이시오이다. 소인은 병이 다 나았소이다.》

어느덧 일흔일곱에 이른 감찬이였다.

《내사사인 최충이 상장군 유방과 더불어 나에게 상주하기를 병부랑중 피위종을 귀양보낸것이 잘된 일 같지 않다 하여왔는데 평장사어른 생각은 어떠하시오?》

며칠전 감찬이 앓고있는 사이에 임금은 병부랑중 피위종이하 5명의 변방군사들을 귀양지로 보내는 벌을 내리였었다.

리유인즉은 이들이 압록강너머에서 사냥을 하며 돌아치던 거란장수 야률살할의 목을 베여가지고와서 상을 달라 주청한때문이였다.

임금은 말로 다스려서 쫓아보내도 될 일을 부디 목을 베여 거란과 시끄러운 마찰을 일으킬 여지를 주었음에도 경솔한 행동을 자책할 대신 상까지 달라 한다 성을 내며 벌을 준것이다.

감찬은 병부상서로 있는 유방이 찾아와 이 사실을 알려주었으므로 그에 대해 자기나름의 견해가 서있었다.

《소신의 생각에는 위종이 조정에 물어보지도 않고 성급히 적장수의 목을 베치운것은 조금 경솔한데가 있지만 고려의 립지를 밝히는데서는 나무랄데가 없는 행동이였다고 보나이다.

압록강너머 땅이 우리 고려의 지경밖이라고 볼 때에는 거란에 실례되는 일이지오만 그곳도 고려땅이라고 볼 때에는 거란의 불법침입이므로 단속하여 돌려보내는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닌것이옵니다.》

감찬의 대답에 임금은 머리를 기웃했다.

《압록강너머가 지경밖이 아니라는것이요?》

《페하께옵선 압록강너머 땅을 거란지경으로 보시나이까?》

《?!…》

《소신은 우리 고려조정안에 저도모르는 사이에 압록강너머 땅은 우리 고려지경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것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보고있소이다.》

《…》

임금은 침묵했다.

감찬은 넌지시 임금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서른을 넘긴지 두해밖에 안되는 혈기왕성한 젊은 임금의 얼굴이 불그레 물들고있었다. 임금은 자기도 어느결에 일부 대신관료들처럼 압록강너머 땅을 지경밖으로 생각하고있은것이였다.

녀진인들 보고는 고려땅이니 물러가라 호령하고 단속하기에 게을지 않았던 자기였건만 어찌하여 거란인들이 활개치는것은 문제시하지 않고있는것인가.

단속하는 일이 조금 지나쳐서 목을 베버린것을 그다지 화를 내며 귀양지로 보내는 벌까지 주다니.

따져놓고보면 이 일은 임금자신이 거란을 대하는 립장이 소심하기 그지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코를 꺾어놓아 기가 푹 죽은 거물인데도 아직까지 눈치를 보며 옹송그리고있는것이였다. 찍어말하면 거란에 대해 아직 겁을 먹고있는것이였다.

일이 대단히 잘못되였구나!

임금은 저도모르게 얼굴을 수그렸다.

《평장사어른, 과인의 심지가 이 지경으로 약해졌단 말이요?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요.》

《오두의 말에 의하면 야률살할은 기미년(1019년)싸움때 저희들이 패한것을 두고두고 통탄해마지않으면서 고려를 다시 침공해야 한다고 목을 쳐들고 고아대는 버릇없는 놈이라고 하더이다. 그런 놈의 목을 베였으니 일은 제대로 된것이오이다.》

거란의 간자였던 오두는 기미년싸움때 거란에 역정보를 제공하여 고려군을 크게 도운 공로로 하여 감찬의 보증으로 고려에 정착하고 병부에서 거란에 대한 정보수집을 맡아보고있었다.

《그러니 평장사어른은 과인의 처사가 잘못된것을 알면서도 간언을 안하셨구려.》

임금은 섭섭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일단 내려진 어명이라 실행해야 하는것이고 이후에 기회를 보아 페하께 상주하여 바로되도록 하리라 생각하고있었소이다.》

《최충이 상주한것도 결국은 평장사어른이 부추긴것이지요?》

《그렇지 않사옵니다. 최충은 그런 일쯤은 나와 상론없이도 제기할수 있는 사람이오이다.》

《그러고보면 최충 그 사람이 여문 사람이요. 평장사어른이 사람을 바로 보았소.》

임금은 이전에 감찬이 자기에게 최충을 눈여겨보라 하던 말을 다시 상기했다.

《소신의 생각엔 최충을 한림학사로 등용함이 좋을듯 하오이다. 지금의 내사사인에 겸직으로 주어 페하곁에서 견문을 넓히도록 하는것이 어떠한지요?》

감찬은 평소에 품고있던 자기 소견을 아뢰였다.

《반대없소. 평장사어른이 한림학사직을 맡고있을 때가 제일 무난했는데 최충이 그만큼 하여줄것이요.》

임금은 쾌히 응하였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마주앉은 기회에 지경밖의 정세나 좀더 관망해봅시다.》 임금은 론의에 붙였던 압록강너머에로 화제를 돌렸다.

《평장사어른께서 보기엔 거란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했으면 좋겠소?》

《강경자세를 견지하는것이옵니다.》

감찬은 결론부터 앞세웠다. 《야률살할같이 겁없이 날뛰는 놈이 몇놈 있을것이오만 대부분 거란관료장수들은 겁에 질려 우리 고려의 눈치만 보고있을뿐이오이다. 기미년싸움이후에 거란은 페하의 생신절을 단 한번도 어기지 않고 축하례방해왔소이다. 이런 례의는 이전에는 볼수 없던 일이 아니오이까?》

《딴은 그렇소. 그네들은 중원(송나라)쪽으로는 곧잘 쑤셔내려가면서도 우리 고려에는 사절행차만 곱게 해오고있지 않소.》

《그러니 무서울것이 무엇이오이까. 그들에게 뒤목을 뽑을 필요가 없는것이오이다.》

《압록강너머 땅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지금은 거란도 우리 고려도 서로 명백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은채 방치해두고있으니 말이요.》

《압록강너머 일대는 현재 적아간에 미묘한 상황에 처해있는 곳으로 여간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라고 신은 생각하나이다. 거란은 이전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지금도 그 일대를 녀진인들의 정착지로 되게 하지 않으려는데로부터 발길을 떼지 않고있는것이옵니다.

페하도 알다싶이 거란이 패한 이후에 녀진이 우리 고려에 얼마나 극성이오이까. 조공행렬이 사시절 끊기지 않을뿐아니라 날이 갈수록 더 활발해지고있소이다.

동녀진이나 서녀진이나 추장들이 경쟁을 해가며 방문해오는바 이들의 진목적은 저들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는것이 아니오이까. 불함산원시림속에서만은 살지 못하겠으니 비옥한 평야지대로 나와 살게 해달라는것이옵니다.

이들의 급작스런 변화는 거란인들에게 큰 위협으로 되는것이옵니다.

사정은 우리 고려도 마찬가지인것이고.

녀진인들이 나라모양을 갖추고나면 서쪽 아니면 남쪽으로 지경을 넓혀보자 아니할것 같소이까? 그런 면에서는 우리 고려쪽보다 거란쪽이 더 확실한 방향이라 생각되옵니다만은…》

《녀진의 급작스런 변화가 우리 고려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인데서 적지 않게 작용한것 같소.》

《옳소이다. 이전에는 발해의 문물을 본땄고 지금은 고려의 문물을 본따서 장성일로를 걷고있는것이외다.

지금상태에서 우리 고려가 압록강너머로 수복하러 올리밀면 거란은 말할것도 없고 녀진이 가만있지 않을것이옵니다. 자칫 거란과 녀진이 일단 다투기를 그만두고 동맹하여 쳐나올수도 있는것이옵니다.

일이 그렇게 벌어지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할것이온즉 당장에는 자제하는 수밖에 없는줄로 아옵니다.》

《그건 말그대로 속수무책이 아니요?》

《그렇게만 결론 지을 일이 아니라 생각하나이다. 지금처럼 녀진의 조공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을 살찌워서 그들스스로가 힘을 모아 거란에로 예봉을 돌리게 유도하는것이옵니다.》

《이를테면 적으로 적을 친다는것이겠소.》

《그러하오이다. 녀진은 우리 고려처럼 거란을 숙적으로 보는만큼 그들의 예봉은 십중팔구 거란에로 돌려질것이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요.》

《그리고 페하께서도 알다싶이 지금 우리 고려는 전란의 후과를 가신데 불과하고 실속있는 국력을 다지자면 아직 멀었소이다. 줄어든 인구도 불구어야 하고 경작지를 늘여 농사에 힘을 넣고 물산을 장려하여 민생을 도모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때오이다. 지금 당장에 군사를 일으키기에는 이만저만 힘에 부치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녀진이 거란과 싸우기를 기다려야 한다는것이군. 정작 둘이 싸울 때에도 구경만 하고있어야 하고.》

《강건너 불구경이라고 그것도 다 책략에 해당되는것이옵니다.

녀진은 말할것도 없고 거란도 더는 우리 고려를 넘보지 못할것이므로 결국은 거란과 녀진 둘사이에 다툼질이 벌어질것이오이다.

소신 생각엔 둘사이의 다툼질이 상당히 지속될것이라 짐작되나이다.

그 틈에 우리 고려는 군사를 소홀히 하지 않고 변방방비에 계속 힘을 넣으면서 모든 힘을 내정을 다지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소신은 생각하나이다.》

《좋은 말씀 들려주셨소이다. 평장사어른, 부디 몸조리를 잘해서 건강한 몸으로 과인을 잘 보필해주기 바라오.》

임금은 자리를 필할것을 알렸다.

감찬은 깊이 머리숙여 절을 하고 돌아서 나왔다.

다음날로 임금은 귀양보냈던 병부랑중 피위종이하 다섯명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뒤로 최충을 한림학사로 임명하였다.

최충은 어전 뜨락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임금을 직접 보필하는 중임을 맡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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