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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성전의 나팔소리

리 동 구

 

(제 1 회)

 

1

 

엄남용은 아버지의 집문앞에 서있었다. 두번씩이나 부름종을 눌렀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병문안을 왔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아들의 일로 노발대발한 아버지가 아예 빗장을 지른 모양이였다.

엄남용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주밋거리다가 겨우 용기를 내여 세번째로 부름종을 눌렀다. 그러자 안에서 요란한 기침소리가 나더니 굳게 닫겼던 문이 열렸다. 비로소 백발의 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버지의 주름깊은 이마아래 하얀 눈섭이 우로 잔뜩 곤두섰다.

《왜 왔냐, 엉?!》

《아버지, 전 어머니병문안을…》

《필요없다. 네 에미두 너때문에 더 병이 심해진거야. 너를 어떻게 키웠길래 그런 망녕을 부린단 말이냐.》

《저, 실은…》

아버지의 두볼이 푸들거렸다. 이것은 그가 무섭게 격노했다는것을 의미했다.

《그래 말해봐라. 당은 너를 대좌로, 교수, 박사로 키워주었는데 당의 뜻과 어긋나는 글을 써냈다니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느냐, 엉?! 필요없다, 썩 물러가거라!》

쾅! 문이 닫겼다. 다시는 그 문이 열리지 않을것이라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한번 결심하면 굽힐줄 모르는 옛 군단장 엄무선이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소년중대원으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련대장으로 두차례의 전쟁에 참가한 로투사로서 그와 같이 싸운 사람들은 불의를 용서치 않는 그의 칼날같은 성미에 대하여 지금도 두고두고 말한다.

엄남용은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안고 점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건만 허사였다. 그 문은 두번다시 열리지 않았다.

 

2

 

엄남용은 끝내 문전거절을 당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정신없이 문제로 된 자기의 글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드디여 원고에서 시선을 들며 돋보기를 벗었다.

무엇이 잘못되였는가? 알수 없었다. 지난 수십년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군사과학을 연구하면서 교재와 론문을 수많이 써왔지만 이번처럼 실패작을 쓰기는 처음이였다.

그가 이번에 쓴 론문은 달포전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나오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직접 주신 과업이였다.

엄남용을 부르신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었다.

《대좌동무도 잘 아다싶이 적들은 지금 기어이 전쟁의 불집을 터뜨리려고 전쟁준비에 미쳐날뛰고있습니다. 며칠전에는 미제가 핵전략폭격기와 대형핵항공모함까지 남조선에 끌어들였습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대원수님들의 유훈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평화애호적인 립장을 변함없이 견지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적들이 덤벼든다면 전쟁으로 대응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놈들의 침략에 대처하여 불가피하게 우리 혁명무력이 벌려야 할 전쟁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빠른 시일내에 무게있는 글을 한편 써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벌리는 전쟁의 본질을 명백히 알려주는것은 세상사람들이 우리 당의 평화애호적인 립장을 옳게 리해하는데도 도움이 될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그 과업을 줄것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대좌동무를 짚었습니다. 동무는 지난 기간 좋은 글들을 많이 써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자신이 겪은 체험으로 보아 누구보다 우리 혁명무력이 벌리는 전쟁의 본질을 잘 알고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그이를 만나뵈온 일이 있는 엄남용이였다. 자기의 경력에 대해서도 말씀드린 일이 있었고 군사리론문제를 가지고 담론도 나눈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이의 뜨거운 은정에 감격하였고 천재적인 군사적예지에 탄복했던 그였기에 벌떡 일어나 힘주어 대답을 올렸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믿음과 기대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거동도 목소리도 활기롭고 우렁찼다. 머리에 반백을 얹은 로교수가 아니라 김정숙해군대학에서 처음 교편을 잡던 그 시절의 젊음이 되살아나는듯싶었다.

엄남용은 그 시절에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온 일이 있었다. 교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수령님께서는 제일 젊어보이는 엄남용을 띄여보시고 언제부터 대학교단에 서게 되였는가고 친절히 물으시였다. 엄남용은 튕겨나듯 일어서며 큰소리로 대답을 올리였다.

《두달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배치되였습니다.》

대학의 책임일군이 수령님께 조용히 말씀드리였다.

《저 동무는 대학 전기간 최우등생이였는데 졸업론문을 특별히 잘 써서 우리 대학 군사리론강좌 교원으로 배치되였습니다.》

《재간있는 동무로구만. 앞으로 우리 당의 군사전략사상을 깊이있게 해설하는 좋은 글을 많이 쓰시오.》

수령님의 기대어린 시선이 자기 몸에 와닿는 순간 엄남용은 불뭉치같은것이 목으로 치미는것을 의식하며 말씀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믿음과 기대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때로부터 3년후에 엄남용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연구사로 소환되였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 시절에 어버이수령님께 다진 맹세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올린 자신의 맹세가 꼭같았다는것을 상기하였다.

그는 그날부터 커다란 흥분을 안고 론문집필에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자기의 체험을 돌이켜보았다. 그의 고향은 남반부였다. 허나 고향에 대한 표상이나 고향의 친척들에 대한 추억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인민군대 군관의 품에 안겨서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온것은 말도 제대로 못하던 두살때였다.

인민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엄남용은 장령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의 품에서 노래에도 있듯이 세상에 부럼없이 살아왔었다. 군복을 입고 집을 떠나기 전날 저녁에야 고향이 남반부인 거창이라는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전에없이 심중한 낯빛으로 아들을 불러앉히고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네가 인제는 철도 들고 군복을 입은 병사가 되였으니 여태껏 숨겨오던 진실을 말해주려고 한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다. 어머니도 물론 친어머니가 아니구.…》

엄남용은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가슴이 활랑거리고 숨이 막혔다.

아버지는 평소에 그닥 즐기지 않는 담배를 피웠다. 아버지는 침묵속에 담배 한대를 다 피우고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너의 친부모가 누구들인지 모른다. 다만 너의 부모가 거창땅에서 미제침략군과 괴뢰군들에게 무참히 학살된 수많은 사람들속에 속한다는것만을 알고있다. 너도 조선력사를 배웠겠으니 거창이라는 곳이 어떤 참화를 입은 고장이라는것을 알고있겠지?》

《알고있습니다.》

엄남용은 어눌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천이 공화국북반부에서 원쑤들이 저지른 대량학살만행을 고발하는 대표적인 고장이라면 거창은 남반부에서 피젖은 고장의 대표적인 땅이다. 《거창량민대학살사건》으로 력사에 기록된 적들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야수적이고 무차별적이였다.

엄남용은 력사에 기록된 그 참혹상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자기의 친부모들이 바로 그렇게 놈들에게 무참히 학살되였다니 억이 막히였다.

아버지는 천천히 뒤를 이었다.

《원쑤들이 거창에서 저지른 대학살만행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그 피바다속에서 너를 구원했다. 락동강을 건너가 결전을 벌리던 우리 련대는 적들의 포위를 뚫고나오다보니 때늦게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올랐다. 나는 당시 련대장이였지만 련대 경비분대와 련락병, 무전수들을 포함한 한개 소대가량의 인원을 데리고 거창땅에 들어섰다. 대대와 중대들은 소부대로 각각 후퇴를 했었지. 내가 소부대를 이끌고 거창에 이르렀을 때는 놈들의 학살만행이 벌어진 후였다. 전선은 이미 북쪽으로 멀리 밀려갔지만 당시 거창은 그곳 인민유격대의 근거지였다. 그러니 적들의 〈토벌〉이 있기 전까지만 하여도 공화국의 인민정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적들은 그때까지 공화국정권의 치하에서 살았다는 단 한가지 리유로 늙은이나 어린이 할것없이 무고한 인민들을 모조리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다. 그 참혹상은 말이나 글로써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피비린내와 연기냄새가 풍기는 마을에 들어선 우리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정적이 깃든 어두운 밤이였다. 어데선가 엄마, 아빠를 피타게 부르는 어린애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들리였다. 나는 급히 그쪽으로 달려가서 전지불을 비쳐보았다. 겨우 자욱을 떼는 어린애가 두주먹을 부르쥐고 뚱기적거리며 시체더미속을 헤매고있었다. 나는 무작정 어린애를 끄당겨 품에 안았다. 어린애는 계속 엄마와 아빠를 찾았다.

나는 어린애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얼결에 속삭였다.

〈내가 너의 아빠다.〉

그러자 어린애는 울음을 그치고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다. 나는 어린애를 군용모포로 감싸주었다. 그 어린애가 바로 너였다. 너는 그때 〈엄마〉, 〈아빠〉, 〈맘마〉라는 말밖에 번지지 못했고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나는 두루 궁리를 하던끝에 네 이름을 남용이라고 지었다. 락동강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이전 련락병의 이름이였다. 네가 한평생 군복을 입고있는 내 슬하에서 자랐으니 군사복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게다. 재삼 당부하느니 조국보위의 전초선에서 참된 병사가 되거라.》

군복을 입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그 저녁에 자기가 인제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나섰다는 각오가 굳어졌다. 해군에서 병사생활을 할 때에나 해군대학을 졸업하고 군사리론분야에서 사업할 때나 언제나 친부모의 원쑤를 갚으리라는 피맺힌 각오를 안고 복무의 나날을 이어갔다. 바로 그러했기때문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로부터 혁명전쟁의 본질에 대한 글을 쓰라는 과업을 받았을 때 특별히 흥분했던것이다.

엄남용은 서둘러 붓을 들었다. 자신이 글을 쓰는것이 아니라 펜끝에서 번져지는 글자마다가 총포탄이 되여 적진으로 날아가는듯싶었다.

엄남용은 《미제침략자들과 남조선괴뢰들이 전쟁을 도발한다면 그것은 곧 최후의 파멸로 될것이다. 백두산총대의 타격은 무자비하다.》 이런 구절로 론문의 마감을 지었다.

론문집필을 끝내고보니 가슴이 후련했다.

엄남용은 그 론문을 합평을 거쳐서 얼마간 수정을 한 후에 정히 타자를 쳐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리였다. 그의 마음은 시험지를 제출하고 점수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초조하고 긴장했다.

며칠후에 총정치국의 한 일군이 내려왔다. 그런데 그가 전하는 말이 뜻밖이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론문을 보시고 우리 혁명전쟁의 본질에 대한 당의 사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셨다는것이였다.

눈앞이 아뜩하였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이틀후 상급기관의 한 일군이 나타나 제대담화를 하였다. 전례를 미루어보면 제대될 나이가 지났다고도 할수 있었다. 구실을 못하면서 자리지킴이나 하는것은 그릇된 처사이다.

《전 아무 의견도 없습니다. 제대명령을 성근히 접수하겠습니다.》

그는 비록 이렇게 말하였지만 서운한 심정만은 금할수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저물어서 성쌓고 남은 돌신세가 되였단 말인가!

나이가 한스러웠다. 특히 그의 가슴을 어이는것은 마지막론문에 당의 뜻을 옳게 반영하지 못하고 연구사의 직무에서 물러나게 된것이였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비치자 일군은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아니, 이번에 대좌동무가 쓴 론문과 제대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예, 그렇습니까?》

그는 더 할말이 없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마지막론문을 훌륭히 쓰고 물러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만 인생은 마무리를 잘하는것이 특별히 중요한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나온 생애가 아무런 보람도 없이 흘러온듯 한 허무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엄남용은 꺼지게 한숨을 쉬고나서 뻣뻣해오는 목을 돌리였다. 벽에 걸린 군모와 대좌령장이 달린 군복이 시야에 안겨왔다. 며칠후에는 어차피 저 군모와 군복을 벗게 될것이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한평생 군복을 입고 총대를 벗삼아 살아온 아버지는 말년에 군단사령관을 지내다가 칠순이 넘어 제대되였다. 나이탓으로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도 제대명령을 받고 여간만 서운해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대후 장령복을 벽에 걸어놓고 무시로 바라보군 하였다. 마음의 군복은 벗지 않으려는 심정이였다.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어머니와 함께 해마다 원호물자를 마련하여 자신이 복무하던 부대에 보내주군 하였다. 나도 아버지처럼 마음의 군복만은 마지막까지 벗지 않을것이다. 한생을 두고 쌓아온 지식과 재능을 깡그리 바쳐 대학의 젊은 교원, 연구사들의 연구사업과 집필활동을 도와줄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이어오고보니 가슴 한귀가 열리는듯싶었다. 일요일이여서 밖에서는 동네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소란스러웠으나 집안은 조용했다.

워낙 늙은 내외가 사는 집이라 평소에도 이를데없이 고요한데 오늘따라 안해는 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러 가고 없었다. 전쟁시기 부상을 입은 어머니의 다리가 이즈막에 더 쑤신다는 소식이 왔던것이다. 그래서 안해를 먼저 보내고 자기도 뒤따라 달려갔는데 그만 엄하기로 소문난 아버지한테서 문전거절을 당했던것이다.

별안간 고요가 흐르는 방안에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엄남용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못내 기다리던 아버지의 전화가 아닐가 하는 생각에 《예, 전화받습니다.》 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런데 수화기에서는 대학총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남용동무, 기쁜 소식이요. 오늘 우리 대학에 나오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남용동무를 만나보시겠다고 하셨소.》

《예?!…》

《예, 알았습니다!》

엄남용은 전신의 피흐름이 몽땅 뇌에 쏠리는듯 한 감을 느꼈다.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도 빨라졌다. 경애하는 그이를 만나뵈올 면목이 없다는 생각은 잠시후의 일이고 첫 순간은 너무도 아름찬 기쁨과 감격에 가슴이 쾅쾅 뛰였다.

 

3

(1)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는 엄남용이 나타나자 무척 반가와하며 마주나오시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대좌 엄남용은…》

그는 미처 규정의 보고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 그의 손을 잡아내리며 유심히 낯색을 살피시는것이였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몹시 수척해진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한게 아닙니까.》

그는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죄스러웠다. 그이앞에 얼굴을 들수 없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내가 동무에게 과업을 주면서 론문의 집필방향을 깨우쳤더라면 아마 이런 일은 없었을것입니다. 오랜 군사리론분야의 연구사인 동무가 의례히 우리의 혁명전쟁본질을 잘 알고있으리라고 믿었는데… 동무는 론문에서 적들에 대한 무자비한 증오와 징벌만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김정은동지께서는 그의 어깨가 떨리는것을 보시고 말씀을 중단하시였다. 론문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진정한 후에 하여야겠다고 생각하시고 그의 손을 다정히 잡고 쏘파에 나란히 앉으시였다. 그제서야 엄남용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여 참으로 죄스럽습니다.》

《아, 너무 그러지 마시오. 론문이야 우리가 함께 의논을 해서 다시 쓰면 될게 아닙니까.》

이어 김정은동지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였다.

《참, 아들들은 군사복무를 잘하겠지요?》

《예, 맏이는 연평도가 바라보이는 서남전선에서 복무하는데 한달전에 해안포대대장으로 승급했습니다. 둘째는 동해함대에서 어뢰정정장을 합니다.》

엄남용은 저으기 활기를 띠였다. 모든 아버지들이 다 그러하듯 그도 군사복무를 성실히 하는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저도모르게 긍지감에 사로잡힌것이다.

《훌륭한 아들들을 두어서 대견하겠습니다. 그런데 부인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이전엔 기관지염때문에 고생했던것 같은데…》

《많이 나아졌습니다. 대신 어머님이 편치 않아서… 그리로 갔습니다.》

《어머님이 편치 않다면 남용동무도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 물으심에 엄남용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잠시후에 응대를 하는 목소리도 어눌했다.

《아버님이 저를 집에 들여놓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론문을 잘못 쓴것때문이였습니다.》

엄남용은 한순간 바재이던 끝에야 입을 열었다.

《그래, 엄무선동지가 동무의 론문을 읽어보았습니까?》

《론문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보이고 의견을 받아볼걸 그랬습니다.》

《아버님은 유명한 싸움군이긴 하지만 군사리론에는 좀…》

그러자 김정은동지께서는 고개를 기웃하시였다.

《엄무선동지는 강대성을 떠들던 일제와 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두차례의 전쟁에 참가한 로투사입니다. 설사 리론적으로는 잘 전개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 혁명전쟁의 본질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을것입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두살난 동무를 구원한 사실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지 않습니까.》

엄남용은 의아한 시선으로 말없이 김정은동지를 우러러보았다. 아직은 말씀의 뜻이 잘 리해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김정은동지께서는 탁자우에 놓아두었던 가방만 한 지함을 집어서 엄남용에게 주시였다.

《휴대용콤퓨터입니다. 여기에는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의 본질에 대한 대원수님들의 로작들이 입력되여있습니다. 동무는 필요한 로작들을 충분히 연구하지 못한채 론문을 쓴것 같은데… 우리가 앞으로 치르어야 할 혁명전쟁도 우리의 혁명무력이 이미 겪은 두차례의 전쟁과 그 본질이 같습니다. 우리의 혁명무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외래침략자들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구원하고 평화를 수호하는데 그 력사적사명이 있기때문입니다.》

엄남용은 론문의 부족점에서 그 집필과정까지 정확히 꿰뚫어보시는 그이의 안목에 놀랐다. 동시에 캄캄하던 눈앞에 한줄기 밝은 빛발이 비쳐오는듯 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올리였다.

《예, 제가 그만 깊은 연구가 없이 서둘러 펜을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필요한 로작들을 깊이 연구하고 집필에 착수하시오. 자, 콤퓨터를 받으시오.》

엄남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콤퓨터를 받았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고맙습니다.》

목소리도 떨리였다.

《조성된 정세로 보아 론문을 빠른 시일내에 발표하는것이 좋습니다. 내외에 혁명전쟁의 본질을 잘 알려주는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론문에 담아야 할 기본사상을 동무와 의논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동무의 아버지도 참가해서 함께 의논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이제 나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갑시다. 병환에 계신다는 어머니가 동무를 얼마나 기다리겠습니까. 아버지도 면전에 두번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선언했다지만 그 일을 두고 매우 가슴아파할것입니다.》

엄남용은 어리둥절했다. 그이께서 아버지네 집까지 찾으시겠다니 참으로 뜻밖이였다. 론문도 론문이려니와 자신의 불찰로 이모저모로 그이께서 마음을 쓰시게 하였다는 자책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저때문에…》

음성이 목밑에 잠겨버렸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엄무선동지를 한번 만나보려고 했습니다. 그를 만나본지 여러해 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인제는 로투사들이 몇명 생존해있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이 생존해있는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어서 떠납시다.》

밖으로 나오신 김정은동지께서는 엄남용과 함께 차에 오르시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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