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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 회)

 

하 편

 

14. 거란군을 최후격멸하다

 

6

 

(2)

 

감찬은 소배압이 꽁무니를 빼는 속에서도 아직 누구도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기동형방어진을 치는것을 보고 혀를 차지 않을수 없었다.

《잘하는군, 아주 잘해!》

감찬은 박수까지 쳐주며 소배압을 《칭찬》했다.

《내 소배압이를 그렇게까진 안 보았는데 그만하면 놀아줄 상대가 되는 놈이야, 그렇지 않소? 부원수!》

감찬의 이 말에 민첨은 이마를 찌프리며 손을 획 내저었다.

《못된 버러지 장판우를 모로 긴다고 저놈 그러다 우리 이마에…》

《똥 누자고 하겠소이다.》

민첨이 하려다만 뒤말을 대신하고 나서는 사람은 감찰어사였다. 그는 싸움이 시작되자 구주성에 가있었다.

《내 형세를 보다못해 달려왔소이다. 상원수나으리! 소배압이 고스란히 성앞까지 왔으니 이게 어인 일이오니까?》

《감찰어사께서 오셨소? 걱정마시오. 이제 곧 버릇을 가르칩시다. 내 실은 소배압이 뒤에 떨군것들까지 다 튀여나온 다음 족치자는것이였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소. 너무 늦잡으면 좋을게 없지. 부원수, 종현이 그녀석 후에 볼기찜깨나 해줘야 할것 같소. 그가 지금쯤은 튕겨주어야 할게 아닌가 말이요. 그쪽에 무슨 사달이 난것 같소. 전령을 또 보내야 할가 보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터이니 부원수는 곧 시작하시오.》

《적의 허리자르기를 계속 해야겠지요?》

《앞서 공격했던 력량의 세배를 투입합시다. 대형은 종전의 일선형이 아니고 삼선종대형으로 지어 타격력을 세배로 높여서 저 우물 정자 모양의 적 대형의 중허리를 우선 잘라버려야겠소.》

《적을 두토막낸 다음 량쪽으로 갈라서 포위소멸하자는것이오이까?!》

감찰어사의 반지빠른 내짚음에 민첨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게 아니라 적의 중허리를 자르면서 놈들의 삼분의 일을 아예 줄여놓자는것이오. 그리고는 맞은켠쪽으로 넘어가 그쪽에서 적을 포위해 들어오면서 적을 압축해서 고아먹자는거란 말이요.》

민첨의 설명에 감찰어사는 고개를 기웃했다.

《내 보기엔 이왕에 적을 동강낸바에는 량쪽으로 에돌면서 각기 포위해 먹는게 더 유리할것 같아 그러오.》

《감찰어사는 저 우물 정자모양의 적만 보고 그밖의 적은 보지 못하시는군. 소배압이 뒤에 떨구어놓은 적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여섯개 성쪽의 잔여부대들과 흥화진쪽에서 내려오는 적은 생각안하시오? 그것들을 다 그러모아 단번에 먹자는것을 아직 모르시다니.》

《아, 그렇지.》 감찰어사는 턱을 흔들었다. 《난 그저 코앞에 있는 적부터 먹고보는게 좋을것 같더라니… 되였소. 어서 계획한대로 하시오이다. 난 다른 의견이 없소이다.》

《감찰어사가 다른 의견이 없다 하니 자, 부원수, 어서 출발하시오!》

감찬이 재촉하자 민첨은 왼손을 들어 손가락 다섯을 펼쳐보였다.

다음 순간 대고수가 다섯번씩 련달아 치는 북소리가 진중에 울려퍼지고 민첨을 선두로 한 고려기마군의 두번째 공격이 개시되였다.

둥둥둥둥둥…

와!-

함성과 북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속에 고려군은 소배압의 주력대형을 옆구리로 들이쳐 허물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배압은 다시금 들이쳐나오는 고려군의 어마어마한 위용에 흠칫했다. 먼저번과는 대비도 안되는 대군이였기때문이였다.

고려군주력이 벌써 다 도착한 모양이구나.

소배압은 더럭 겁이 났다. 하면서도 소배압은 진격해나오는 고려군이 이번에도 옆으로 펼쳐진 횡대형이 아니라 앞뒤로 늘어선 종대형으로 공격해오는것이 여전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었다. 포위진서렬을 지어 공격하면 더 유리하겠는데 한사코 창대형서렬로 그저 토막내기를 하려 할뿐이였기때문이였다.

아무랬거나 나에게 불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내 허리를 토막내는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마. 까짓 꼬리를 조금 잘리우는것쯤 무슨 대수란 말이냐.

소배압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대형의 중허리까지는 잘리우지 말아야 하리라는 생각에 전진속도를 더욱 높이라고 목이 터져라 고아댔다.

그러나 대형의 전진속도는 처음보다 더 굼떴다. 소배압은 그 원인이 구주성을 붙들고있던 소적렬의 부대까지 자기 서렬에 끌어들인데 있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아차! 하고 신음소리를 내였다.

소적렬의 군사들은 우물 정자모양의 질서정연한 서렬을 유지해야 이동속도가 빠르다는것을 알리 없는데다 마지막까지 구주성을 붙들고있으라고 했다가 주력종대와 함께 퇴각하라 하니 이젠 살았구나, 얼씨구 좋아라, 불난 방천에 황소 날뛰듯 천방지축 좌충우돌하며 서렬의 앞을 막무가내로 가로질러 막아버리는 꼴이 돼버렸던것이다.

소배압은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 허리부터 잘리울수 있다는 생각에 기를 쓰고 앞서렬쪽으로 말을 몰아나갔다. 급해맞은 소배압은 자기앞에서 어물거리는 제편 군사들까지 무자비하게 쓸어눕히며 안깐힘을 다해 겨우 서렬앞에 나갔다. 때마침 약간 두드러진 등성이가 나타난지라 거기로 올라서는 찰나 뒤를 얼핏 돌아보니 고려군은 이미 소배압 자기가 끌고오던 대형의 중허리를 끝끝내 잘라버리고말았다.

소배압은 자기편 군사들을 마치 갈대 베듯 쓸어눕혀버리며 가로질러지나가는 고려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핏 보기에는 대형의 중허리나 잘리운것 같지만 실은 자기편 군사들이 거의 절반가깝게 줄어든것을 알아차렸기때문이였다. 고려군은 정확히 자기 대형의 중허리를 잘라놓았을뿐아니라 중허리 뒤쪽의 군사들은 거의다 쓸어눕혀버렸던것이다.

소배압은 지금쯤이면 출발해나와야 할 소합탁의 3진이 아직도 코빼기를 내밀지조차 않고있는데 화가 치밀어올랐다. 얼핏 둘러보니 자기 대형을 가로지른 고려군은 그 속도로 그냥 지나쳐 건너편 산기슭까지 가서는 서서히 남북방향으로 긴 서렬을 짓고있었다. 소배압 자기의 오른켠을 둘러막고있는것이였다. 그바람에 구주성안에서 터져나온 고려군이 자기의 왼켠을 또 같은 방법으로 둘러막기 시작했다.

(포위망을 치고있구나!)

소배압은 눈앞이 아뜩했다.

소합탁이 인차 꼬리를 물고서 고려군의 포위진을 어느 한쪽이라도 훼방을 놀아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것뿐인가, 구주성옆을 돌파한 지금 바로 이 시각에(소배압은 감찬이 자기를 구주성 동쪽계선까지 끌어내온줄은 모르고 제가 고려군을 제압하면서 무사히 돌파해나온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서북 여섯개 성쪽에서 자기를 도우러 오고있는 군사들 역시 얼굴을 내보이지조차 않고있는것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였다. 그들이 구주성 동북쪽을 견제해주어야 자기의 돌파가 성공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 시각에 소배압이 안타깝게 기다리는 여섯개 성쪽의 거란군은 류참과 박종겸의 부대들에 쫓기워내려오다가 구주성 못미처 구릉지대에서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몇개의 무리로 갈라진채 방어로 넘어가 허둥대고있었다.

구주 남동쪽들판은 완전한 평지였지만 구주 동북쪽벌판은 등성이와 야산들이 군데군데 솟아있는 반구릉지대였다. 거란군은 바빠맞은 나머지 등성이나 산봉우리를 차지하고 분산된 상태에서 버티기를 하고있는것이였다.

류참과 박종겸은 각개분산되여 원형방어로 넘어간 거란군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가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감찬은 이 정황을 알고있었지만 소배압은 모르고있은탓에 그는 창황중에도 그쪽의 자기편 군사들이 나타나주었으면 하고 헛된 기대를 가져보는것이였다.

소배압이 기다리고있는 또 한쪽의 자기편 즉 소합탁의 부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김종현이 이끄는 고려군이 남쪽벌판을 뒤덮으며 구름처럼 진격해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여 고려군은 남쪽면의 포위망도 형성해놓고만것이였다.

소배압은 또 한번 몸서리를 쳤다.

소합탁이네가 전멸했구나!

소배압은 애초에 소합탁의 3진을 데리고갈 생각은 아니였지만 그들이 자기의 뒤를 견제해주지 못하고 지리멸렬된것을 직감하는 순간 자기 역시 포위망을 빠져나가기가 헐치 않으리라는 생각에 온몸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하면서도 자기가 가야 할 방향인 북쪽계선에 아직 고려군의 포위진이 쳐지지 않고있는데 한가닥 위안을 가지고 어떻게든 뚫고나가야 하리라 생각했다.

소배압이 얼핏 얼굴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서 기울어 서켠으로 드리워지고있었다.

소배압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 구주계선의 포위망에서 벗어나야 하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앞뒤 가릴새없이 말고삐를 채며 고함쳤다.

《소적렬, 소굴렬, 야률제량은 각기 일선형 종대서렬을 짓고 북서방향으로 죽기로 내달으라! 앞으로!》

하지만 그것은 때늦은 단말마의 비명소리에 불과했다.

감찬이 나머지 예비대를 진출시켜 구주성 북쪽면을 일거에 막아버린것이였다.

감찬은 류참과 박종겸에게 현재 포위해놓고있는 적들을 단단히 붙들고있으라 이르고 소배압의 기본주력을 먼저 깨끗이 소멸해버리기로 작정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포위망안에 든 적의 기본집단부터 먹어치우는게 상책이였던것이다.

감찬은 구주성 동켠성벽의 봉화대에 다섯줄기의 연기를 피워올리게 하였다. 들판 건너편에 가있는 민첨에게 포위소멸전의 개시를 알리는것이였다.

뒤이어 감찬은 기수에게 지휘기를 흔들게 하고 고수에게 북을 울리게 하였다.

둥… 둥… 둥… 둥…

부으응-

뛰아 따따-

취타소리가 요란히 울리는 속에 고려군은 함성을 울리며 거란군의 무리를 압축해들어가기 시작했다.

구주성 동쪽 삼십리 들판이 쇠붙이소리, 고함소리, 비명소리가 귀가 메이게 들어차고 검누런 황토먼지구름속에 잠겨버렸다.

해가 신시중엽(오후 4시)에 이른 때에 가서 흙먼지구름은 들판가운데로 모아지며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면팔방에서 조여들고있는 고려군부대들의 륜곽도 서서히 드러났다. 감찬이쪽에서 흔드는 지휘기에 맞추어 적진을 조여들어가는 고려군 장수들의 지휘기들이 화답을 보내고있었기때문이였다.

감찬은 포위망 남쪽면에 나붓기는 김종현의 지휘기와 나란히 날리는 또 하나의 지휘기를 보다가 저도모르게 부르짖었다.

《아니, 유방이가?!》

후에 안 일이지만 유방은 평양성에서 남은 군사를 이끌고 올라오다가 김종현이 소합탁이와 싸우는것을 보고 즉시 합세하여 소합탁의 거란군을 전멸시키고 남쪽포위망을 치는데 동참한것이였다.

감찬이 놀라는것은 유방이 병석에 누워있던 몸이였기때문이였다. 유방은 거란군과의 첫 싸움인 안융진성싸움때에 입은 부상자리와 어혈증이 도져 이번 거란군과의 싸움에는 참군하지 못하였었다. 하지만 그는 감찬이 출전한 뒤 나라가 오랑캐들의 침입을 당한 지금 누워있을수가 없다며 자기를 평양성까지만이라도 데려다달라 졸라서 평양성에 와있다가 몸을 조금 운신할수 있게 되자 떼를 쓰다싶이 하여 구주까지 올라온것이였다.

한편 김종현은 소합탁놈이 소배압의 명령을 어기고 반대로 뒤로 돌아 종현의 부대를 공격하면서 녕주(녕변)쪽으로 에돌아 청새진으로 해서 도망치려 하는것을 막아내느라 지체하였었다.

소합탁놈은 한번 종현의 부대를 매복기습한 경험을 되살려 뒤로 내뺄 작정을 하고 나섰던것이다. 소합탁놈은 자기뒤를 따르는 종현의 부대가 앞을 지키고있는 고려군주력보다는 규모가 작을것이라는것을 포착하고 엉뚱하게도 방향을 돌려 빠져나갈 생각을 했던것이다.

유방은 로련한 장수의 예감으로 거란군이 뒤돌아 내뺄 기도를 할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부대를 구주계선으로 직팡 이끌지 않고 녕주, 운흥(태천)으로 에돌아 이끌었던것이였다.

《유방! 고맙네, 고마워!》

감찬은 저도모르게 웨쳤다. 경술년(1010년) 개경방어전을 함께 치르고났을 때에도 유방은 운신조차 하기 힘든 몸이였지만 그냥 내처 구주성까지 올라가 거란군을 압록강까지 몰아내는 결전을 매듭짓고서야 돌아왔었다. 유방은 국난이 닥쳤을 때 절대로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감찬은 유난히 펄럭이는 유방의 지휘기를 감동어린 눈길로 여겨보다가 다른 장수들의 지휘기들도 점차 좁혀들며 가깝게 모여드는것을 보고 다시한번 북을 치고 대라각(놋으로 만든 금속나발, 감찬은 포위전을 결속하라는 신호로 대라각을 불도록 사전에 약속했었다.)을 불게 했다.

고려군사들의 말발굽소리가 더 한층 드세게 울리기 시작했다.

먼지구름이 하늘을 가리운 속에 고려군사들의 칼날이 윙윙 울고 창날이 번뜩일 때마다 거란군사들의 목이 뚝뚝 떨어져나가고 비명소리가 랑자했다.

해가 서쪽으로 한절반 기운무렵에 마침내 고려군부대들의 지휘기는 한데 어우러졌다.

만세소리가 들판을 메우며 울려퍼졌다.

소배압이 직접 거느렸던 거란군주력은 깨끗이 소멸되였다.

감찬은 징을 울려 부대들에 잠시 숨을 돌리라 이른 뒤 전령을 파하여 민첨과 종현을 비롯한 수하장수들을 모이게 했다. 류참과 종겸이쪽의 거란군을 마저 소탕할것을 명령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금 있더니 민첨과 종현의 지휘기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뒤로 그들의 부대들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또다시 내달았다.

(저 사람들이 한숨 돌리지도 않고… 원, 사람들두…)

감찬은 민첨과 종현이 류참과 종겸이쪽으로 내처 나아가기로 결심한것을 즉시에 알아차렸다. 그쪽의 거란군을 날이 어둡기 전에 소멸해버리자면 서둘러야 했던것이다.

감찬은 민첨과 종현의 주동적인 결심에 찬성의 뜻을 알리는 표시로 북과 징을 동시에 울리게 하는 한편 유방은 이들을 따라가지 말고 급히 지휘처로 올것을 명령했다.

《그러지 않아도 난 더 따라갈 힘도 없소이다. 내가 뭐 그 수하인가 하오이까? 오라, 가라…》

유방은 유쾌히 롱담을 걸며 감찬을 반가이 얼싸안았다.

《몸은 일없소? 누가 도와달라고도 안했는데 괜한 걸음을 하시는구려.》

감찬 역시 롱담으로 화답하며 유방을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그래도 내가 동무해주러 온게 반가울테지요?! 종이장도 맞들면 더 가볍다고 종현이 그 사람 혼자서도 할수 있는 일이지만 내 좀 도왔소이다.》

《정말 고맙소. 종현이네가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좀 시끄러울번 했소.》

《강민첨이 그 사람이 뭐랬는지 아시오? 종현이 너 왜 늦었니? 너 상원수나리한테서 볼기짝깨나 맞을 준비를 하라! 이러더란 말이요. 그러니까 종현이란 놈이 하는 소리가 쥐도 급한 목엔 되려 고양이를 문다더니 소합탁 그놈이 뒤돌아 쳐나올줄 난들 어찌 알았겠소이까. 하여간에 볼기는 후에 맞을셈치고 당장은 류참이쪽을 마저 도와주고 봅시다그려 하고는 민첨을 꼬드겨가지고 그냥 나가더란 말이요.》

《종현이 그놈 볼기를 쳐도 되우 쳐야 할 놈이군. 싸움이 끝난 다음 내 정말로 볼기를 칠테요, 물볼기를. … 아니지. 떡볼기를 쳐주겠소, 하하하…》

《거 참 볼만하겠다. 내 아직 떡볼기를 치는건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걸! 하하하…》

유방은 배를 그러쥐고 웃다가 말을 이었다.

《참, 상원수나리! 이제는 지휘처를 옮겨야 하지 않겠소이까?! 여기서는 성너머쪽이 잘 안 보이는구려.》

《옳소, 구주성 성루로 지휘처를 옮깁시다. 거기서는 성 북쪽들판이 한눈에 보일것이요.》

감찬은 즉시 지휘처를 옮길것을 지시하고 유방과 함께 구주성으로 말을 몰았다.

구주성으로 가는 길은 밥함지며 국동이며를 이고진 아낙들과 늙은이, 아이들로 차고넘쳤다. 구주성부근 마을들에서 자진해서 군사들의 식사를 해날라가는중이였다.

《고마운 일이군, 백성들이 다 떨쳐나섰구려.》

감찬이 저으기 감동되여 혼자말처럼 뇌이자 유방도 감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렇게 너나없이 다 군사가 되여 나서주니 우리 고려가 이기는건 당연지사가 아니겠소이까.》

《정말 옳은 말씀이요. 자, 우리 어서 가서 어둡기 전에 싸움을 결속지읍시다.》

감찬은 유방과 함께 길을 메운 인파를 서둘러 헤쳐나갔다.

구주포위전의 두번째 싸움은 날이 어두워질무렵에 드디여 결속되였다.

류참과 박종겸이 거란군을 붙들어놓고있으라는 감찬의 령을 기어이 해낸 덕에 민첨과 종현의 부대들이 합세하자 적은 이내 각개격파되고만것이였다.

적들은 무려 일곱개소에 널려진채 제각기 산봉우리에 의지하여 발악하였지만 기세충천한 고려군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면목이 없소이다. 이놈들을 고스란히 상원수나리앞에까지 몰고갔어야 하는것을…》

류참이 아쉬워하며 죄스러운 표정을 짓자 감찬은 머리를 저었다.

《무슨 소릴… 정말이지 자네들이 구주 서쪽과 웃쪽의 적을 때려치웠기에 구주포위전이 성공한것이 아닌가! 오늘 싸움이 성공한것은 전적으로 자네들 덕일세, 자네들 덕이야! 장하이, 장해!》

감찬은 류참과 박종겸을 그러안고 등을 두드렸다.

《소배압 이놈이 죽었을가, 살았을가?》

강민첨이 입을 쩝쩝 다시며 하는 말에 감찬은 손을 저었다.

《그까짓놈, 설사 빠져나갔다 해도 며칠 못 갈것이요.》

《에잇, 날만 저물지 않았어도 놈을 찾아내는건데… 상원수나리! 난 그냥 흥화진까지 올라가겠소이다.》

김종현이 이렇게 아뢰자 감찬은 제꺽 응수했다.

《그러지 않아도 자네에게 령을 내리려던 참일세. 쫓기는 놈한테 되려 뺨을 맞는 자네같은 시라소닌 떡볼기도 아까워. 어서 이 길로 달음박질해가서 흥화진군사들까지 걷어쥐고 압록수대안을 즉시 차단하라구.》

《알겠소이다. 하지만 밥이야 먹고 가야지 않소이까. 난 조반도 먹는둥만둥 한데다 점심은 건너뛰였구…》

《누군 점심을 먹었냐? 네가 조반을 먹지 못한건 보나마나 그 소합탁놈한테 따귀를 맞느라 그랬을테지? 난 싸움이 끝나면 네놈에게 물볼기를 치자 하였는데 그래도 상원수나리께선 과남하게도 떡볼기를 쳐주자 하시더라.》

민첨이 이렇게 우스개를 곁들이자 종현은 입을 삐죽 내여밀며 대꾸했다.

《아무랬거나 떡은 떡이구만요. 저녁은 먹고가라는게 아니오이까.》

《저녁은 먹고가야 하고말고. 부원수는 종현이를 너무 몰아주지 마시오. 그 사람이 소합탁이한테서 따귀를 맞은것이 내려가지 않아 그러는데 자꾸 그러면 되오?》

감찬이 이렇게 종현이 편을 들며 민첨을 나무라는 흉내를 내자 둘러섰던 장수들은 너나없이 흐하하하 웃어제꼈다. 종현이 이번 구주포위전은 말할것도 없고 개경근처끼지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적을 작히나 때려치웠던가. 누구나 종현의 수고를 알고있는것이였다.

《자, 종현이에게 어서 밥을 드리게. 떡은 흥화진까지 갔다온 다음에 내 특별히 쳐올리겠네.》

《약속했소이다. 난 사실 떡보이오이다.》

종현은 이렇게 익살을 부리며 떡을 먹기라도 한듯 제 배를 슬슬 문질렀다.

《자, 우리도 굶기는 마찬가지이니 어서 한술씩 드세. 종현이, 자넨 군사들을 식사를 시키고나서 인츰 출발하게. 자네 임무는 흥화진의 적이 압록수를 건너 달아나지 못하게 차단하는것이네. 다른 장수들은 군사들을 식사시킨 뒤에 푹 재우고 래일 아침 날이 밝는 즉시 숨어배긴 잔당들을 샅샅이 뒤지면서 압록수까지 쭈욱 밀고올라가세. 거기서 종현이네와 앞뒤로 조여서 남은 거란군을 말끔히 소탕해야 하겠네. 고려땅에 들어섰던 거란놈은 단 한놈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멸살해버려야 할것이네.》

《알았소이다!》

장수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다음날 고려군은 다시금 출동하여 압록강계선까지 수색전을 겸한 추격전을 벌렸다. 어찌다 살아남아 숲에 배겨있던 거란군 잔당들까지 이 잡듯 찾아내여 목을 베면서 압록강까지 도달한 고려군은 흥화진의 적을 절반은 강변에서, 절반은 강물에서 말끔히 소멸해버렸다.

구주에서 흥화진까지 백여리어간에 거란군의 시체가 한벌 쭈욱 깔리였다. 구주성 동쪽 50리 들판에는 거란군의 시체가 몇겹으로 겹쳐 깔리고 포위진을 좁혀들었던 자리에는 거란군의 시체가 하나의 큰 산을 이루고있었다. 구주계선에서만 근 4만의 거란군이 소멸된것이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압록강을 다시 건너간 거란군은 2천을 넘지 못하였다. 10만의 정예기병대군으로 고려지경을 침범하였던 거란군은 완전히 소멸구축되고 전쟁은 고려의 승리로 종결되였다.

강감찬은 승리의 쾌보를 안고 귀로에 올랐다.

이해 2월 6일, 임금은 직접 서경이북 영파역(어파부근)까지 나와 개선하는 강감찬을 맞이하였다.

금으로 만든 여덟개의 꽃을 감찬의 머리우에 꽂아주고 감찬의 손까지 들어주며 환호하는 백성들에게 감찬의 공로를 극구 찬양하는 임금의 얼굴엔 노상 웃음이 넘치고있었다.

감찬은 형언할수 없는 감격에 목이 꽉 메였다.

침략자 오랑캐무리들을 기어이 타승한것이였다.

이 땅에 나서자란 장부로서 떳떳이 자부할수 있는 위훈을 세운것이였다.

조상의 땅을 지켜낸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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