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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 회)

 

하 편

 

14. 거란군을 최후격멸하다

 

6

 

(1)

 

《술맛이 참 좋군!》

감찬은 강민첨이 부어올리는 술잔을 단숨에 비우며 감탄했다.

《대추술이 이렇게 단줄은 몰랐소그려. 이 술을 종현이 그 사람이 평주에서부터 간수하고 왔단 말이요?! 고맙군, 고마워!》

《칭찬은 종현이보다 평주현령에게 해야 할것이오이다. 평주현령이 상원수어른께 부어올리라 종현에게 부탁하였다 하더이다.》

《평주현령이?! 사람두…》

감찬은 그만에 지나간 일이 불쑥 생각키워 웃음을 머금었다.

경술년(1010년) 란을 치를 때 개경에 들어왔던 거란군을 뒤쫓아가는 고려군이 당장에 제일 안타까운것은 식량을 댈수 없는것이였다. 평주이남으로 청야전술을 쓴탓에 마을들을 텅텅 비워놓은데다 먹을것은 싹 쓸어 감추어버렸으니 당장엔 적들처럼 굶는 수밖에 없었다. 산속에 피신해들어간 주민들을 언제 불러내다가 파묻어놓은 식량을 꺼내게 할 사이도 없었다. 적은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는데…

바로 그때 송악지경을 지나 우봉(금천)고을이 바라보이는 고개밑 마을어구에서 마른 대추를 한짐 지고나온 늙은 로인과 마주쳤다. 자기는 걸을 힘이 없어 그냥 주저앉아 숨어있었다며 보아하니 군량이 딸릴것이라 짐작되여 건사해두었던 대추라도 들고나왔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추 몇알이 밥 한그릇엔 대비도 안되는 힘을 내게 하는것이 아닌가. 그 즉시 고려군은 거란군의 꼬리를 다시 물고 족쳐댈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으로 나라에서는 군포미와 함께 대추도 바치게 하였었다.

그런데 지난해 감찬이 서북면행영도통사가 되여 평양성으로 가던 도중에 평주고을에 들려 잠간 쉬는 도중에 군량조달정형을 료해하다가 대추가 없는것을 보고 지적을 하였었다. 그때 평주현령은 자기 고장은 대추가 나지 않는 곳이라 그리되였다고 변명을 하다가 된벼락을 맞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북면 전방으로 오가는 기본통로인데 없으면 다른 곳에서 사다가라도 채워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그는 기겁을 해서 연주(연백), 백주(배천)쪽에 가서 대추를 낟알과 바꾸어오는 한편 흑부(상원), 만달(승호), 강세진(강동)에 가서 대추 사촌인 살맹이(산대추)까지 거두어들이였었다.

감찬은 그때 자기가 너무 과하게 다루었다고 내심 후회하였었는데 현령은 탓할 대신 이렇게 대추로 빚은 술까지 보내온것이였다. 그가 이번 절령계선싸움을 치르는 그 복새통에서도 자기를 생각하였다니 갸륵한 일이였다.

《고마운 일이요. 다들 나를 고무해주니 어깨가 더 무거워지오. 부원수, 우리 마지막싸움을 잘 치르어냅시다. 이번 구주대포위전에서는 적의 허리 자르기가 제일 중요한 대목이란걸 잊지 마시오.》

《걱정마소이다. 종현이 그 사람은 그 임무가 자기에게 더 합당하다고 우겼지만 이제 보시오. 내 그보다 낫게 해내지 않나.》

《소배압의 뒤를 올려미는것도 중요하긴 마찬가지요. 그 사람이 올려미는 속도가 빨라야 싸움이 인츰 끝나오.》

감찬의 말은 녕주(녕변)에 대기시켜놓았던 군사로 소배압의 뒤를 타격해올려밀어야 하는 종현의 임무 역시 중요함을 강조하고있었다.

《그 사람이 소배압의 뒤를 빨리 물어야 할터인데… 녕주쪽은 지세가 너무 오불꼬불해서 길을 헛들기 쉽거던.》

《종현인 그곳 지형을 손금보듯 꿰고있소이다. 이 서북면에서 근 십년을 근무하고있는 사람인걸요. 말도 잘 타지만 걸음보도 여간 아니옵니다. 지난 섣달에 당악고개(중화)를 넘고나서 절령(평주)고개를 넘기 전에 소배압을 앞질러가서 막으라 하였더니 하루밤새 깨끗이 해치우더이다. 난 놀랐소이다.》

《종현이 그 사람 수하에 천리인이 많다면서요?!》

《종현이 자체가 천리인인걸요. 그가 평시에 군사들의 조련을 잘 시킨것이 알립디다. 그 사람에게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소이다. 들어보시겠소이까?》

《들어봅시다.》

《종현이 그 사람은 평시에 군사들에게 아침에 한번, 점심에 한번, 저녁을 먹고나서 한번 이렇게 조, 중, 석으로 하루에 세번 산발타기를 꼭 시키고야 잠을 재우는 법도를 세워놓고있었다 하옵니다.

하루에 한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곤죽이 되게 만드니 이건 좀 너무하구나, 어떻게 하면 저 종현이란 사람을 기가 좀 죽어들게 만들것인가 하고 젊은 군교들이 모여앉아 궁냥을 하던중에 한 녀석이 자기 고을 병방의 딸이 천하절색이니 그 처녀에게 장가를 들여 치마폭에 기운을 뽑게 하면 좀 훈련강도가 떨어지리라 하여 이런저런 수를 꾸며서 마침내 장가를 들여 군영밖마을에 집까지 마련하고 데려다놓았다질 않소이까.》

《재미있군, 그래서?!》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종현이 그 사람은 어슬녘이 되기 바쁘게 쏜살같이 집으로 내려갔다가는 어뜩새벽이면 어김없이 군영으로 돌아와서는 이전보다 더 세괃게 군사들을 내몰더라오이다. 정갱이에 모래주머니는 이전보다 두개를 더 겹쳐차고서 앞장에서 훨훨 날며 달음질을 쳐대니 군교들이 입을 딱 벌리고 그만 한마디 여쭈어보기를 <나리! 어찌된 일이오니까? 장가드신 이후로 기운이 더 세지셨으니 말이외다.> 하니 종현이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너희들 참았던 오줌을 싸면 기분이 어떻더냐? 시원하고 홀가분하지 않더냐?! 그래, 이젠 내가 기운이 더 세진 리유를 알만하냐?> 하였다질 않소이까, 하하하!…》

《허허허!…》

감찬은 웃지 않을수 없었다. 민첨의 익살이 재미스러운데다 군영의 활기넘친 정서가 방불하게 어려와서였다.

깊은 여운을 주는 일화였다. 평시에 강도높은 조련이 싸움마당에서 승리를 안아온다는 교훈을 주는 일화인것이였다.

《종현이네같이 잘 조련된 군사를 가지고있는 한 우린 이기네. 우리 군사들의 사기도 높고 주도권도 우리에게 쥐여있으니 우리가 이기고말고.》

감찬은 신심에 넘쳐 말하며 민첨의 손을 꼬옥 쥐여주었다.

《옳소이다. 우리가 이기고말고요. …》

이렇게 말하며 감찬의 손을 마주잡아쥐던 민첨의 안색이 갑자기 흐려졌다.

《이거… 상원수나으리의 손이 몹시 차겁소이다.》

《겨울이 아닌가.》

《아니, 아무리 겨울이라도 내 손하고는 천지차이오이다.》

《70고개를 속일수야 없지. 일없네, 아직은 견뎌낼수 있어.》

《그 나이에 힘에 부치실것이오이다. 어서 이 화로가까이로 자리를 옮기시고 조금 눈을 붙이시오이다.》

《글쎄 일없다니… 이 얼친 망아지같은 소배압이네 오랑캐족속들을 깨끗이 쓸어내치고나서 우리 푹 쉬여보세. 하지만 지금은 자면 안되지. 아마 소배압 이놈이 래일엔… 아니, 이젠 오늘이 되겠구만. 오늘은 틀림없이 결판을 보자 할것이야.》

《그렇소이다. 더이상 우물거릴 처지가 못되는 놈이니까요.》

《그럼 우리 잠도 안 오는데 지휘처에 미리감치 올라가있읍세.》

감찬은 민첨과 함께 군막밖으로 나왔다.

차거운 밤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경칩을 앞둔 때여서 한낮에는 겉층이 녹아 질적거리는 땅이지만 지금은 맵짠 밤추위에 땅땅하게 얼어붙어있었다.

감찬과 민첨은 나란히 말을 몰아 전방지휘처가 전개되여있는 둔덕우로 올라갔다. 여기서는 구주성과 그 동쪽들판이 한눈에 바라보이였다.

구주성 남쪽면의 봉화대에선 불길이 조을듯 너울거리고있었다. 봉화대는 성벽의 동서남북 네귀에 다 있지만 유독 남쪽성벽우에 있는 봉화대에서만 불이 지펴져있는것은 적이 그 방향에만 위치하고있다는것을 알리는 표시였다. 봉화가 타오르는 성 남쪽면 앞벌에는 적들이 피워놓고있는 불무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이 적들은 벌써 이틀째 하루에 두번씩 성을 공격하군 하였다.

강민첨의 군사들은 성을 공격하는 적들을 측면으로 들이쳐서 당장에 요정낼수 있었지만 적과 십리정도 떨어진 계선에서 멈춰선채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있었다. 그것은 구주성안에 있는 고려군만으로도 능히 적을 막을수 있는데다가 적에게 고려군의 증원력량이 대기하고있다는것을 로출시키지 말아야 하는 사정때문이였다. 강민첨의 부대는 이제 소배압의 기본주력이 공격할 때 그 중허리를 토막내야 하였다.

어디선가 멀리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무렵에 구주성앞에 둔치고있던 적들이 다시금 설레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이 밝기도 전부터 움직이는것이 벌써 시작부터 낌새가 달랐다.

아직은 미명이여서 주위의 물체가 륜곽만 가늠해볼수 있는 시각이였다. 하지만 적들은 벌써 은밀히 성벽밑에까지 바싹 다가붙더니 드디여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사다리를 뻗치고 기여오르는 놈으로, 봉대를 잡고 뛰여오르는 놈으로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그에 화답하듯 구주성 성루우에서는 두리둥둥 북소리에 쿵챙쿵챙 바라소리며 부웅- 부웅- 주라소리 나는것이 척 들어보면 어깨마저 들썩거려지는 장단가락이 울려나오는데 성가퀴마다에서 고려군사들이 화살을 날리고 기름불단지를 내리던졌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고함소리에, 비명소리에 아비규환으로 귀가 멜 지경이지만 멀리 떨어져있는 고려군 지휘처에서는 오뉴월에 농군들이 벌려놓는 두레놀이장단가락을 듣는 기분이였다.

하지만 성공격을 맡은 적장 소적렬놈에게는 고려군의 취타소리가 황천길을 독촉하는 장송곡처럼 들렸다. 그도 그럴것이 소적렬놈이 자기 수장인 소배압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거란군주력이 구주성옆 벌판을 다 돌파해나갈 때까지 어떻게든 구주성의 고려군사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으라는것이였기때문이였다. 그다음에 뒤꼬리를 물고 따라오라하였는데 그건 사실 죽으라는 소리나 같은것이였던것이다.

소적렬놈은 수하군사들을 성공격에로 내모는 속에서도 자기 오른켠쪽들판을 힐끔힐끔 곁눈질해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쯤 소배압이 지휘하는 주력의 첫진이 구주성 동쪽들판에 들어서야 했기때문이였다.

아닐세라 새벽공기를 째는 휘파람소리와 함께 거란군주력의 기마군 1진이 들판을 가르며 돌진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적렬놈은 어깨를 살리며 고함쳤다.

《우리 거란군주력이 출발했다. 모두 정신을 바싹 차리고 성을 완전히 봉쇄하라! 한명의 고려군사도 성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시각 감찬은 민첨에게 부대의 돌격을 지시하고있었다.

《자, 그럼 우리도 시작을 떼보세!》

감찬이 나직이 이르자 민첨은 《알겠소이다.》 하고는 왼팔을 들어 손가락 셋을 펴보이였다.

그러자 고수들이 둥둥둥 하고 북을 세번씩 련속해서 치는 속에 민첨의 군사들은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들판을 헤가르며 돌진해 나아갔다.

동켠이 훤히 밝아오는무렵에 구주성 동쪽벌판의 남쪽어구에서 구주포위전의 서막이 오르고있었다.

이날은 1019년 2월 초하루(음력)날이였다. 력사에 구주대첩으로 불리우는 장쾌한 섬멸전이 시작되고있었다.

소배압은 내천자모양의 세줄기 3선종대형을 짓고서 질풍노도로 내닫는 자기 수하의 기마군 1진을 긴장해서 지켜보고있었다. 기마군 1진을 지휘하는 거란장수 소굴렬은 1016년 1월에 도적고양이처럼 은밀히 고려지경을 넘어 곽주성까지 들어갔다가 고려군의 반격을 받고 겨우 살아돌아온자였다. 그때 소배압은 1천에 가까운 수하군사를 거의 다 잃고 돌아온 소굴렬을 그 자리에서 목을 베려다가 그가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비는통에 용서해주었었다. 소굴렬이 지금 그때의 죄를 씻는다며 맨 선참으로 골받이에 나선것이였다.

소배압이 지켜보고있노라니 고려기마군은 소굴렬의 왼쪽 첫번째 종대를 옆으로 쑤셔들어가기는 하였으나 서로 엉켜붙어 돌아갈뿐 천발자국정도의 거리를 두고 돌진하는 두번째 종대까지는 더 가로질러가지 못하고 좌충우돌했다. 그러는 틈에 두번째, 세번째 대형은 제법 순조롭게 나가고있었다.

그러면 그럴테지, 이 소배압의 진법짜기재간을 너희네 고려장수들이 당해낼수 있을것 같은가!

소배압은 희색이 만면해서 쾌재를 울렸다.

소굴렬은 왼쪽의 첫 종대형서렬은 아예 고려군을 막는데로 방향을 돌리게 하고 나머지 두개 서렬만 내처 돌격해나가게 하고있었다.

지금형세로 나아가면 소굴렬의 1진만으로도 구주성과 옆으로 직선되는 계선까지는 시간을 얼마 허비하지 않고도 별일없이 도달할수 있을것 같았다.

소굴렬이 수하의 3할은 고려군에게 먹히우더라도 남은 7할로 그 계선까지 나가기만 하면 2진을 따라세워 돌파의 성공률을 더욱 높일수 있게 할수 있었다.

소배압은 고려군이 여러 갈래로 소굴렬의 옆구리를 쑤시면 소굴렬의 가운데 종대나 오른쪽 종대는 먹지 못해도 왼쪽 첫 종대는 쉽게 먹을수 있겠는데도 부디 외줄배기서렬로만 쑤셔대는것이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고려군 기본주력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것이 아닐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소규모적으로 공격할수가 있나?! 아니, 그들도 자고있지는 않을것이다. 이제는 내가 오늘쯤 공격하리라는걸 알아차렸을것이고 다는 몰라도 주력의 절반은 도착하였을것이다. 물론 고려군 수장도 와있을것이고. 그는 지금 분명 전장을 살펴보고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고려군 수장이란 사람이 전략은 잘 세우는 모양이나 전술안을 짜고 진법을 운영하는데서는 머리가 그리 도는 편이 못되는 모양이 아닌가?!

소배압은 이렇게 제나름으로 감찬을 저울질해보며 어깨를 으쓱 돋구었다.

바로 그 시각에 감찬은 소배압이 짠 내천자모양의 3선종대형공격진법을 보며 어지간히 놀라와하고있었다.

감찬은 소배압이 방진대형으로 단번에 아니면 두토막쯤이나 나누어서 꼬리를 바싹 물고 일시에 공격해나올것으로 예상했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놈은 사나흘 지꿎게 구주성을 공격하여 고려군의 이목을 따돌리느라 애쓰더니 정작 진짜 공격을 하면서도 옆구리를 쑤셔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전진해나갈수 있는 세갈래종렬대형을 생각해내고있었다. 그것도 수하 력량의 일부만으로.

감찬은 소배압의 기마군 1진의 머리수가 대략 잡아 1만정도밖에 안되는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니 소배압이 남은 력량으로 또 어떤 대형을 만들어가지고 공격해나올는지 모를 일이였다. 까짓 놈이 아무리 잔재간을 부려야 이미 포위환이 형성되여있는 이상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릴뿐 소멸되고야말것은 틀림없는 일이나 저런 식으로 대형짓기를 엉뚱하게 꾸며가며 력량을 유지하는것을 막지 못하면 아닌 말로 적이 아군 포위망의 약한 곳을 뚫고나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사방 오십리를 둘러막아야 하는 포위진이여서 허술한 구석이 적지 않은것이였다. 특히 류참과 박종겸이가 맡은 북쪽포위진이 더우기 그러했다.

감찬은 류참과 박종겸, 김종현에게 급히 전령을 띄워 포위망을 빨리 압축해들어오라 독촉하게 하는 한편 민첨에게 공격을 잠시 중지하고 물러서라 지시했다.

《적의 첫번째 렬은 허물어놓은셈인데 왜 공격을 중지하라 하시오이까? 같은 방법으로 계속 들이밀면 두번째 렬과 세번째 렬의 적도 허물게 될것인데요.》

《소배압놈이 두번째 진을 어떤 모양을 만들어가지고 나오나 보고서 공격을 해도 하세나. 저놈이 단방치기를 하지 않고 이런저런 조화를 부려가며 애를 먹일 잡도리야. 이런 때는 놈의 잔재간을 좀 구경해주다가 답새기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 그러네.》

《하긴 그것도 나쁘진 않소이다. 소배압놈이 아직 우리 력량파악을 못해 저러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꽁지에 불달린 놈이 질질 끌지는 못할거구, 인츰 꼬리를 물것입니다.》

민첨은 감찬의 의도를 알만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와서 차나 좀 들라구.》

감찬이 김이 문문 나는 차종지를 민첨에게 들려주며 전방을 살펴보느라니 소배압의 1진 기마군은 더 전진하지 않고 구주성을 공격하던 저희네 군사들과 합쳐져가지고 제법 기세를 올리고있었다.

그 시각 소배압은 소굴렬의 1진이 구주성어귀까지 무난히 돌파해나가서 성을 공격하던 소적렬의 부대와 합류하는것까지 보고 무릎을 쳤다.

고려군주력이 아직 다 오지 못한것으로 판단한것이였다.

그만 맥을 보았으면 되였다, 고려군주력이 오기 전에 빨리 구주성계선을 돌파하자!

소배압은 즉시 장수 야률제량이 맡고있는 2진을 출발시켰다.

《3진도 그냥 꼬리를 무는게 어떻소이까?》

이렇게 초치고 나서는자는 3진을 책임지운 장수 소합탁이였다.

《너는 조금 지체하였다가 따라오는게 좋을것 같다. 너의 수하군사들을 다 데리고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들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지금쯤 다 죽고말았을것인데요.》

소배압이 말하는 소합탁의 수하군사란 저들의 뒤를 포위해올라오고있던 고려군 병마판관 김종현의 부대를 맞받아 쳐나가게 하였던 부대를 말한다. 소배압은 밤사이에 소합탁을 시켜 그의 수하군사 절반으로 김종현의 고려군을 매복기습하게 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종현은 느닷없이 뒤돌아 쳐나오는 소합탁의 군사들에게 얼떨결에 한방망이 얻어맞고 혹시 소배압이 퇴각방향을 바꾼것이 아닌가고까지 생각하였었다.

종현이 변을 당한 계선은 아직 산악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곳이여서 미리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지키고있다가 불의에 답새기는 소합탁에게 처음엔 어쩌는 수가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형세를 돌리고났을 때에는 소합탁놈이 이미 달아난 뒤였다.

소합탁은 종현의 군사에 비해 자기 군사는 대비도 안되게 적은것을 아는지라 데리고갔던 수하군사들은 고스란히 고려군에 내맡긴채 저만 날쌔게 뺑소니쳐오고말았다.

소배압은 소합탁의 꼬락서니가 얄밉기는 하였지만 뒤를 포위해오는 고려군을 조금은 지체시킨것이 지금정황에선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닌지라 한바탕 욕을 퍼붓고말았었다. 소배압자신도 그것들이 살아돌아올리 만무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그래도 명색이 수장이라 그 다급한 속에서도 가을뻐꾸기같은 소리를 횡설수설하고있는것이였다.

《좋다. 소합탁, 네가 공로가 영 없는것도 아니구 해서 너의 요구를 들어준다. 하지만 바싹 물지는 말고 내가 저 구주성근방에까지 도달하면 그때 출발하도록 하라. 꼭 그렇게 하라, 알겠는가?》

소배압의 으름장에 소합탁은 머리를 수그렸다.

《알겠소이다.》

대답은 하면서도 소합탁은 속으로 엿먹어라 욕을 퍼부었다.

소배압이 가운데진에 섞여 저만 안전하게 달아나겠다 하는것도 괘씸했지만 출발계선에서 구주성어귀까지는 거의 십리나 되는데 그만한 거리를 떨어져서 따라오라는것은 그냥 앉아있다 죽으라는 소리보다 못한것이였기때문이였다.

《출발!》 소리와 함께 야률제량의 2진은 소배압이 짜준 석삼자모양의 횡대형을 짓고 공격해 나아갔다.

《저건 무슨 대형이 저렇소?》

감찬은 소배압의 두번째 공격대형을 보고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처음 거란군 1진이 지었던 내천자모양의 삼렬종대형과는 정 반대되게 석삼자모양의 삼렬횡대형을 짓고 공격해나오고있었기때문이였다.

《저놈들이 처음엔 우리가 구주성앞을 가로막고있는줄 알고 삼지창 모양의 창날형서렬로 쑤셔나왔고 우리가 옆구리로만 쑤셔대니 앞이 가로막히지 않았다 판단하고 지금은 가로 삼렬횡대형 즉 석삼자모양의 서렬을 지어 나오고있소이다.》

《저렇게 대형을 지으면 우리가 또 옆구리를 친다 해도 손실을 적게 낼수 있지 않소.》

《그것만이 아니고 몸통만 있고 꼬리는 없으니 짧은 시간안에 많은 력량이 통과할수 있는 기발한 대형짜기입니다.》

《역시 교활한 놈이요.》

《두번째 진은 머리수도 더 많소이다. 아예 통털어 나오는게 아닐가요?》

《그럴수도 있소만… 아니, 세번째 진이 또 있을거요. 소배압놈이 뒤를 무방비상태로 내버려두고 뛰는데만 급급할 놈이 아니요.》

《그렇긴 한데… 하오면 소배압 그놈은 어디에 위치하고있을가요. 비겁한 놈, 수장기도 내들지 못하고 숨어다니니… 가련한 놈이로군.》

《그까짓놈 죽을 때 가서 죽지 않으리. 어쨌든 저 두번째 진이 기본집단인것만은 틀림없으니 십중팔구 소배압놈은 저속에 있을거요. 가만, 저놈들의 모양을 좀 보소. 순식간에 앞에 놈들의 꼬리를 물었소.》

《앞에 놈들을 그냥 지나쳐나가오이다.》

《앞에 놈들도 다시 서렬을 짓고있소. 으음?! 저게 뭐요?》

《우물 정자모양을 만들었소이다.》

《그렇군!》

감찬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거란군의 내 천자형 1진대형과 석삼자형의 2진대형이 서서히 합쳐지더니 어느새 우물 정자모양의 밀집방진대형을 만든것이였다. 소배압은 수하 주력집단을 세로 종대형으로 한토막, 가로 횡대형으로 한토막 변화무쌍하게 대형뒤집기를 해가며 전진하더니 끝내 수하의 주력을 다시 한무리로 뭉쳐놓은것이였다. 그것도 고려군의 옆구리타격을 견제하면서 돌파구간의 절반을 먹어치운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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