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하 편

 

14. 거란군을 최후격멸하다

 

5

 

《급보요!》

다급한 웨침소리와 함께 군막이 열려지더니 전령이 쓰러질듯 들어섰다.

《무슨 소식이냐?》

감찬의 물음에 전령은 가쁜숨을 톺으며 대답했다.

《거란군이 운흥에서 갑자기 방향을 돌려 곽주성으로 공격해내려가고있다 하옵니다.》

《곽주성으로?! …》

감찬은 머리를 기웃했다.

《곽주가 틀림없는가?》

이렇게 되묻는 사람은 개경에서 금방 도착한 감찰어사였다. 감찬으로부터 거란군의 퇴각로가 구주동쪽일것이라고 듣고있던 감찰어사는 두눈을 흡떴다.

《놈들의 머리수가 대략 얼마라더냐?》

감찬은 담담한 어조로 되물었다.

《5천가량 되는 기마군이라고 하더이다.》

《그런가?!…》

감찬은 두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였다.

《상원수나으리! 거란군이 우리 내속을 넘겨짚고 퇴각로를 바꾼것이 틀림없소이다.》

감찰어사의 말에 감찬은 빙긋 웃으며 눈을 떴다.

《그렇게 생각되시오?》

《그제 우리 군사들이 곽주성을 치지 않았소이까. 어제는 선주성을 쳤고… 그러니 덴겁한 소배압놈이 그쪽을 응원하는겸 내처 룡주쪽으로 퇴각하려는게 분명하오이다.》

《그놈이 그럴 생각이라면 왜 5천명만 기동시켰겠소. 소배압의 수하군사가 그게 전부일수 없는데…》

《놈들이 그동안에 오죽 많이 두들겨맞았소이까. 그 정도밖에 안될수도 있는것 아니오니까?》

《아니, 아직 소배압은 4만은 유지하고있을거요. 내 생각에는 오늘 기동한 놈들이 인츰 방향을 돌릴것이요. 선주어귀에서 구주성을 서쪽으로 공격해들어갈수 있소. 소배압놈은 우리의 시선을 먼저 곽주이북 여섯개 성쪽으로 돌려놓고 구주성을 까는것과 동시에 구주동쪽 벌판으로 돌파해올라가려 하는것이요.》

《나는 잘 납득이 안 가오이다.》

감찰어사는 이마살을 찡그렸다.

바로 그때 《급보요!》 하는 전령의 목소리에 뒤이어 이번엔 거란군의 다른 부대가 구주성을 정면으로 공격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구주성을 정면으로 공격한다고?…》

감찰어사는 또 한번 머리를 흔들었다. 《소배압 이놈이 제법 우리를 혼돈시키려드는 꼴인가?!》

《옳게 보았소. 소배압놈은 지금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하고있소. 구주성을 정면으로 공격한다는 놈들도 기껏해서 5천은 넘지 않을것이요.》

《적의 머리수가 4만은 된다면서 왜 그 정도만 들이미는것이오니까?》

《우리 고려군의 력량을 타진해보려는것일거요. 한수 더 내짚어보면 우리의 움직임을 보아가며 다음수를 또 쓰자는 속심일거요. 우리의 맥을 짚어가다가 요진통을 짚었다 생각될 때 진짜 공격을 하려는걸거요.》

《내 생각엔… 소배압놈이 구주동쪽과 서쪽 두갈래로 갈라져서 공격해올라가려는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건 아니요.》 감찬은 감찰어사의 이 말을 즉시에 부정했다. 《지금 처지에서 적들은 될수록이면 한데 뭉쳐서 움직여야 력량을 보존할수 있소. 두갈래로 나뉘여지면 덩어리가 작아져서 우리에게 각개격파되기 더 쉽단 말이요. 이건 너무나 명백한 리치가 아니요?》

《그렇긴 하옵니다만… 하오나 소배압놈이 구주성을 공격하고있다니 싸움은 시작을 뗀 꼴인데 5천명만 들이밀것이라 생각하시는 근거는 무엇이오이까? 5천은 선두서렬이고 그뒤로 련속해서 들이밀는지 알겠소이까?》

《그건 소배압이 성을 꼭 점령해야 할 필요가 없기때문이요. 놈은 지금 구주계선을 어떻게 하면 한시라도 빨리 뚫고나가겠는가 하는 생각뿐일거요. 적은 지금 쫓기고있단 말이요.》

《그러니까 그것도 역시 우릴 혼돈시키자는… 그렇지, 우리의 맥을 짚어보는것이라 그 말씀이신가요?》

《맥을 짚어볼뿐아니라 구주성의 우리 군사들을 물고늘어지자는 속심이지요. 구주성의 우리 수비군사가 7천가량 되니까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서 성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서 저들 주력의 돌파를 돕게 하려는거요.》

《소배압의 그런 속내를 알으셨으면 왜 그걸 헝클어놓을 생각은 못하시는지요? 병법에는 상대측의 기도를 애초에 허물어놓아서 형세를 자기측에 유리하게 해놓고 소멸해치우는 전법도 있지 않소이까.》

《나는 적측의 기도를 우리측에 유리한 형세가 조성될 때까지는 실현되도록 내버려두자는것이요. 지금 소배압이 찔끔찔끔 장난질을 하면서 결정적인 공격을 미루고있는것이 나에겐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소. 구주 서북쪽에서 쫓겨내려와야 할 적이 아직 도착미정이 아니요? 그놈들이 이 구주동쪽 우리 포위망안에 들어서는 때와 맞추어서 소배압의 주력이 공격을 해준다면 그이상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소. 재미있는것은 그쪽의 적이 오기를 고대하는것은 나나 소배압이나 꼭 같다는거요. 소배압은 자기 력량을 보강하자는 목적에서, 나는 포위망안에 더 많은 적을 그러뫃자는 목적에서. 조금 다른것은 소배압은 그놈들이 구주어귀까지만 와도 되지만 나는 그놈들이 구주성까지 바싹 들어올수록 더 좋다는거요. 소배압놈은 구주 서북쪽의 자기 군사들이 빨리 와서 우리 고려군의 북쪽포위서렬을 뚫어놓아 제가 내빼기 좋은 정황을 만들어주기 바라는것이고 나는 그쪽의 적을 한놈이라도 더 소배압이쪽으로 끌어당겨서 한그물에 잡아메치자는거니까. 이젠 알만하오? 감찰어사!》

《예, 이제사 조금 깨도가 되옵니다.》

《조금 깨도가 된다?! 그러니 아직 완전한 납득은 안된다는 뜻이군, 허허.》

감찬은 그럴수있다는듯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감찰어사의 팔소매를 끄당겼다.

《마음 푹 놓고 여기 와앉소. 듣자니 감찰어사가 바둑을 잘 두신다는데… 나하고 한번 두어보지 않으시려오?》

그 말에 감찰어사는 한길 뛰였다.

《강조의 교훈을 잊었소이까? 적을 얕보면 기필코 패한다는걸.》

《내가 그걸 잊을리 있소? 지금도 난 적을 얕보지 않기에 보다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려는것이요. 자, 어서 와 앉으시오.》

감찬은 감찰어사의 손을 끄당겨앉혔다.

감찬이 감찰어사와 함께 한참 바둑을 두고있는데 또다시 전령이 군막을 들치며 들어섰다.

《병부랑중 박종겸판관이 퇴각해내려오고있다는 급보오이다!》

《그런가?! 그것 참 듣던중 반가운 소식이군.》

감찬이 만족해서 머리를 끄덕이자 감찰어사는 다시금 눈이 휘둥그래졌다.

《퇴각이라 하옵는데 반가운 소식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이오니까?》

《그건 퇴각이 아니라 뒤걸음치는것이요. 흥화진쪽의 적을 달고내려온다 그 말이요.》

《?…》

《좀더 있노라면 류참판관이 여섯개 성쪽에서 더 큰 적을 몰고올거요.》

《류참은 적을 죽이지 않고 왜 몰고다니며 괜한 수고를 하는것이오?》

《죽이다 나머지를 몰고오는것이요. 내 말하지 않았소, 그쪽의 적을 여기 구주에 끌어다놓고 족치겠다고.》

《그러니 흥화진쪽의 적도 이곳 구주까지 끌어내려다 족치려는것이옵니까?》

《그렇소. 품을 좀 들이더라도 널려있는 적을 한곳에 다 끌어다 모아놓고서 앉은 자리에서 한번 손질로 결말을 보자는것이요.》

《알만 하옵니다, 역시 상원수나으리는…》

감찰어사는 그제사 깨도가 되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감찬이 감찰어사와 바둑을 두는 그 시각에 소배압은 구주성에서 탈출해나온 저희네 간자를 마주하고있었다. 고려군복색을 한 이 두명의 간자들은 《이리》와 《늑대》란 별명을 가진 오두의 부하들이였다.

《오두?! 듣던 이름인데… 그래, 오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소배압은 이미전에 숱한 간자들을 고려에 들이밀었다고는 하지만 오두라는자의 망외에 실속있게 자료를 물어오는자들이 없다고 하던 심복부하의 말이 생각키웠다. 그러나 간자를 쥐고움직이던 이 부하는 절령싸움때에 숨이 끊기는 통에 소배압은 간자들의 덕을 입을 생각은 아예 단념해버렸었다.

그런데 제일 요긴한 시각에 그것도 당장 쑤셔대야 할 구주성에서 제편 간자가 튀여나왔으니 소배압으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오두두령님은 구주성안에 있사온데 이 며칠어간에 너무 무리하시와 몸을 운신할수 없사옵니다. 한초가 새로우니 빨리 가서 알리라 하기에 우린 마침 성안의 고려군사들이 야간기습을 나오는 틈에 끼여 묻어나올수 있었소이다.》

《그래 성안의 형편은 어떠한가?》

《우리 군사들이 그제, 어제 연줄 들이치니 그걸 막기에 급급하는 꼴이옵고…》

《성안의 고려군사가 얼마나 되느냐?》

소배압은 등이 달아 다그었다.

《본시 5천가량 되였사온데 어제 곽주성에서 2천이 증원해왔소이다. 구주성 성주의 말은 거란군은 곽주로 가는척 하다가 구주성을 옆구리로 치려는것이라고 하였소이다.》

《그렇게 말하더란 말이지?!》

《오두님이 말하기를 고려군은 지금 우리가 구주성을 공격하는것은 그쪽으로 저희들을 유인하려는것일뿐이고 실지로는 곽주, 선주로 해서 룡주, 의주, 흥화진쪽으로 퇴각하려는것으로 보고있다 하오이다. 또 고려군의 일부 장수들은 우리 거란군이 구주서쪽 여섯개 성방향과 구주동쪽방향 이렇게 두개 방향으로 빠져나가련다고 주장하면서 력량을 둘로 갈라야 한다고 서로 갑론을박 다툼질을 하고있다면서 적들이 좌왕우왕하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구주동쪽벌판으로 시급히 빠지라고 하였소이다.》

《그래?!…》 소배압은 턱을 문지르며 머리를 끄떡거리다가 《그래 고려군 수장은 지금 어디에 위치하고있다는가?》 하고 아직은 뭔가 미덥지 않은 구석이 있다는듯 따져물었다.

《그는 지금 안북부성에 있다 하였소이다.》

《안북부성에? 그가 아직까지 그곳에 눌러앉아있단 말인가?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것을 그가 모를리 없겠는데?》

《오두님의 말은 평양성에서 증원해올라오게 되여있는 고려군이 아직 기동중이여서 그런다 하였소이다. 고려군 수장 강감찬은 우리 거란군이 구주방향으로 올라갈것이라 판단하옵는데 부장 강민첨은 곽주, 선주쪽으로 올라갈것이라고 우긴다 하옵니다. 앞서 강민첨은 개경에 내려갔던 수장나리(소배압을 말함.)께서 평양성쪽으로 다시 올라올것이라 우겨 감찬의 화를 돋구었다고 하더이다. 지금 고려군 수장과 부장이 의가 맞지 않아 옥신각신하는것 같소이다. 평양성군사를 겨우 안북부까지 끌어다놓고는 또 구주 동쪽이냐 서쪽이냐 하며 지체하는 꼴이오이다.》

《흠… 고려군이 내 수에 그렇게 쉽게 넘어간단 말이지.》

소배압은 기분이 좋을 때 하는 버릇대로 또 한번 아래턱을 문질렀다.

《흥화진에 둔치고있던 우리 군사들도 쳐내려오고있다 하옵니다.》

간자(고려군사)가 보태는 말에 소배압은 눈이 커졌다.

《그 애들은 왜 내려온다는거냐? 내가 그런 령은 내린적이 없는데?》

《오두님의 말은 흥화진쪽으로 올라오던 고려군을 격파하고 그들을 구주쪽으로 내리몰아오고있다더이다. 절반은 그냥 흥화진에 있다 하였소이다.》

《그렇단 말이지?!》

소배압은 흥화진의 예비대가 다 떨쳐나오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의주와 룡주쪽의 우리 군사들도 수장님을 도우러 구주로 내려오고있다 하였소이다.》

《그건 나도 이미 알고있다.》

소배압은 서북 여섯개 성을 때리게 하였던 제놈의 군사들이 고려군의 공격에 밀리우면서도 압록강으로가 아니라 이곳 구주로 제놈을 도우러 내려온다는 사실에 여간 감동되여있지 않았다.

아무렴, 우리 거란군사들이 다 죽었을소냐?!

소배압은 사기가 뻗쳐올라 앞목을 쭉 빼들었다.

자기를 도우러 온다지만 실은 고려군의 대포위망안에 들어오는 죽은 목숨이라는것을 당장은 깨닫지 못하는게 헨둥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소배압은 고려군이 자기가 서북 여섯개 성쪽으로 올라갈지 아니면 구주동쪽으로 올라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력량을 이곳저곳에 분산시켜놓은채 갈팡질팡하고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둥 떠있었다.

(아직은 구주성을 지키고있는 고려군력량이 보잘것 없는만큼 기회를 놓치지 말고 즉시 돌파해나가야 한다. 안북부에 당도한 평양성 증원군이 올라와 합쳐지기 전에, 래일 새벽녘에 불의에!)

소배압은 턱을 주무르던 손을 홱 내뻗쳐 술병을 움켜쥐였다.

하지만 소배압은 알수 없었다. 오두가 보낸 이 간자들이 감찬의 지시에 따라 강쇠가 오두와 함께 치밀하게 각본을 짜고서 소배압 자기를 얼려넘긴것을…

소배압이 더우기 모르고있은것은 감찬이 이미 평양성의 군사들을 구주성 서쪽계선에 집결시켜놓았고 지금 바로 이 시각에 강민첨과 이마를 마주하고서 미구에 벌어질 구주대포위전의 마지막최종협의를 끝내고있는 사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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