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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 회)

 

하 편

 

14. 거란군을 최후격멸하다

 

4

 

《류랑중, 마침 잘 왔소. 그러지 않아도 찾으려던 참이였소.》

감찬은 군막안에 들어서는 병부랑중 류참을 반갑게 맞았다.

《그간에 풍신이 더 좋아지셨소.》

《그만 놀리시오이다, 상원수나으리!》

류참은 두손을 내저었다.

《차라리 저를 내놓고 질책하시오이다. 사람을 뒤전에 밀어던져놓고 돌아보지도 않으니 이런 독한 벌을 주는 법이 어디 있소이까?》

류참은 적의 기본공격방향이 구주(구성)서쪽 여섯개 성쪽이라고 주장했던 자기를 감찬이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였다. 명색이 판관이라는것이 시작부터 적의 기도를 잘못 판단한데다가 감찬을 못미더워했던것이 생각할수록 부끄럽기 그지없는 류참이였다.

《벌을 주기야 뭘, 류랑중, 그대 몫이 없을가봐 걱정인가? 이제 곧 구주동쪽에서 다시한번 포위전이 있을텐데.》

《하오면 그 싸움을 저에게 맞겨주사이다. 이거야 좀이 쑤셔서 어디…》

《좋네. 류랑중은 이제 곧 안북부성의 군사 2만을 거느리고 구주서쪽으로 진군하게.》

《구주동쪽이 아니고 서쪽이오니까?》

《그렇네. 구주서쪽 여섯개 성을 포위하고있는 적을 먼저 먹어치워야 이곳 구주동쪽에서 있게 될 포위전이 무난히 치르어질게 아닌가?!》

《알만 하오이다.》

류참은 머리를 끄덕였다.

(드디여 나에게 기회를 주는구나! 그동안 밑진 봉창을 꼭 하고야말리라.)

류참은 입을 다시며 지도에 바투 다가섰다.

《타산을 잘해야 하네. 그쪽의 적을 어떻게 먹을 작정인가?》

감찬이 넌지시 묻자 류참은 잠시 주춤했다.

《여섯개 성주변에 널려있는 적을 동시에 때리자면 시간이 좀 걸릴듯 하온데… 며칠사이에 해치워야 하오이까?》

《닷새안엔 결속이 돼야 할거네. 자넨 될수록 빨리 구주성쪽으로 돌아서야 하니까.》

《닷새라… 곽주나 선주쪽은 올라가는데 하루품이라 일없사오나 룡주나 의주쪽은 올라가는데만도 이틀품이라 조금 빠듯하온데… 하오면 곽주쪽은 보군으로 치고 룡주쪽은 기마군으로 치도록 해서 시간을 맞춰보겠소이다.》

《그 방법도 좋긴 한데… 내 생각엔 여섯개 성을 동시에 치느라 하지 말고 곽주성에서부터 하나씩 먹어올라가는게 어떤가?!》

《하오면 룡주나 의주쪽의 적은 케를 보다가 도망쳐버릴수 있소이다.》

《난 더러 도망치게 하자는거네.》

《하오면 구주동쪽포위전에 영향이 미칠텐데요. 적은 십중팔구 구주쪽으로 갈것인데요.》

《압록강쪽으로 내빼지는 않고?》

감찬의 반문에 류참은 머리를 저었다.

《아무리 사세부득한 적이라 해도 자기 우두머리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을텐데요. 퇴각해올라오는 소배압의 주력과 합세하려 하지 않을가요? 모름지기 적들도 미리 짜놓은 각본이 있을텐데요. 여섯개 성을 포위하고있는 이 적들이 실은 소배압의 퇴로를 보장하려고 떨구어놓은 예비대일수 있지 않소이까?!》

《옳게 보았네. 자네 생각이 내 생각과 일치하네.》

감찬이 머리를 끄덕이자 류참은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니 상원수나리께선 소배압이 이 구주서쪽 여섯개 성쪽으로 퇴각경로를 잡지 못하게 하자는것이구만요.》

《그렇네.》

《하오면 이 여섯개 성의 적을 모조리 죽여버려야지 왜 더러는 달아나게 하자 하오이까? 그것도 구주동쪽으로?… 그놈들이 소배압의 주력과 합쳐지면 우리에게 좋을게 없을텐데요.》

《소배압이 구주서쪽은 단념하는 대신 구주동쪽으론 무조건 통과하도록 끌어붙이자는거네. 룡주나 의주쪽에서 도망쳐온 적들이 소배압에겐 큰 위안이 될테니까. 증원력량으로 보일테니 말이네.》

《그러니 너무 많이 살려보내면 안되겠소이다. 그러다 정말로 소배압을 돕는 꼴이 될수 있으니까요.》

《그렇네. 절반은 많고 한 삼할만 살려보내도록 하세. 3만중에 삼할이면 1만 조금 못 미치네. 곽주나 선주, 철주, 룡주의 적은 되도록 다 때려치워야 하네. 룡주나 의주쪽의 적만 가게 하면 충분하이.》

《저… 흥화진의 적이 내려오지는 않을가요? 그놈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발목을 단단히 비끄러매놓아야 할텐데요.》

《그것도 좋네만… 난 흥화진의 적도 끌어내자는거네. 거기에 적이 1만정도 되니까 5천쯤 구주어구까지 끌어내서 흥화진의 적도 미리감치 줄여놓아야 하네. 자칫하면 흥화진의 적을 고스란히 놓쳐버릴수 있거던. 난 이미 박종겸판관에게 군사 1만을 주어 떠나보냈네. 일단 접전을 해놓고는 슬금슬금 뒤걸음쳐서 놈들을 달고 내려오라고.》

《말씀을 듣고보니 한가지 우려되는것이 있소이다.》

《뭔가?》

《박종겸이 포위에 들수도 있소이다. 흥화진에서 내려오는 적이 룡주쪽에서 내려오는 적과 합쳐지면…》

《자네가 있지 않나. 자네 수하의 군사중에 1만을 돌려서 박종겸의 군사와 량쪽에서 압축해먹어치워야 하네.》

《그 시기를 맞추자면 내가 서둘러야겠군요. 내 수하의 기마군을 룡주쪽에 집중시키겠소이다.》

《그러게. 그렇게 되면 자네와 박종겸이 구주 웃쪽에서 먼저 작은 포위전을 하는셈이네. 자네가 몰고오게 될 룡주쪽의 적은 소배압이네와 합쳐져도 좋고 미리 소멸해버려도 좋네. 구주까지 끌어다 붙이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알만 하오이다. 상원수나으리! 그럼 전…》

《가만, 류판관!》

감찬은 자리를 이는 류참을 멈춰세웠다. 지금까지는 랑중이라고만 부르던 감찬이 비로소 판관이란 직함을 부르고있었다.

《다시한번 따져보게. 자네는 판관이네. 이 상원수를 잘 보필할 의무가 있지. 그러니 다시한번 빈틈이 없는가를 따져보고 조언을 주게.》

류참은 감찬이 자기를 진심으로 믿어주는데 사기가 났다. 그보다는 자기의 궁냥을 틔워주느라 왼심을 쓰는것이 더 고마왔다.

류참은 생각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소배압이 닷새안에 구주계선에 당도할수 있겠소이까? 놈이 지금 어디까지 올라왔소이까?》

《절령에서 얻어맞은 뒤로 종적을 감추었다가 수안을 지나 성천어구에서 다시 꼬리를 드러냈다고 하네.》

《성천이란 말이오니까?》

《그렇네. 강민첨부원수가 보내온 적정일세. 민첨은 지금 소배압이와 한 오십리정도 옆으로 간격을 두고 은밀히 따라오고있네.》

《소배압놈이 평양성을 멀찌감치 에돌고있군요.》

《앞서 개경으로 내려갈적에 되게 혼쭐이 난 곳이니까. 여우도 한번 쫓기운 골안엔 다신 안 간다지 않나.》

《소배압놈이 성천까지 올라왔으면 필경 개주(개천)까지는 내처 올라올것이고…》 류참은 자신있게 지도를 짚어가며 말을 이었다. 《그다음 운흥(태천)으로 해서 구주로 올라온다는것이구만요. 혹시 이놈이 개주에서 녕주(녕변)나 청새진(희천)쪽으로 방향을 잡지는 않을가요?》

《아닐걸세. 지금 소배압은 한시라도 더 빨리 압록수까지 닿는거네. 청새진쪽으로 올라가면 시일이 더 걸리잖나. 게다가 놈은 지칠대로 지쳐있네. 평양성을 에도느라 산길을 택한탓에 가뜩이나 맥을 뽑고있는 놈인데 이제 더 험한 산악지대를 택하겠나? 그놈이 대담하게 안북부성 웃쪽으로 가로질러 선주쪽으로 내빼자고 할수도 있네만 그쪽은 야산지대라 자기를 송두리채 드러내는 꼴이고 이곳 안북부에 있는 우리 고려군주력이 독수리 병아리 덮치듯 할수 있으니 스스로 덫을 쓰는짓은 할리 만무네. 게다가 선주쪽은 자네가 이제 곧 휘저어놓을 곳이라 우리 군사들이 장악한 지대가 될것인즉 꿈도 꾸지 못할거네.》

《그러니 소배압놈은 싫든좋든 이 운흥(태천)으로 해서 구주로 내뺄것이구만요.》

《그렇네.》

《잘 알겠소이다. 이제는 모든것이 일목료연하옵니다.》

《자네가 확신하는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 그럼 어서 가서 구주서쪽 여섯개 성을 쑤셔대게. 자네가 시작을 떼고나서 사나흘 지나면 소배압은 구주계선에 당도해서 더는 물러설 길이 없다는것을 알아채고 죽기로 골받이를 하고나올걸세. 그러면 자네와 박종겸은 북쪽에서, 강민첨이와 리종현이는 남쪽에서 놈들을 조여들어가는거네. 최종결판을 짓는거지.》

《알겠소이다. 그럼 전 떠나겠소이다.》

류참이 떠나간 뒤 감찬은 안북부성에 새로 들어오는 평양성군사들을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구체적인 임무를 인식시켰다. 안북부에 예비대로 두었던 군사는 류참과 박종겸에게 다 나누어주었으므로 부득불 평양성의 군사로 보강하여야 했던것이다.

한편 소배압은 수안, 연산을 지나고 성천을 지난 뒤 감찬이 예견한대로 개주(개천)계선에 들어섰다. 이 경로상에는 고려군이 없었으므로 소배압은 당장 급한 목은 넘긴 꼴이였다.

소배압은 자기가 절령계선에서 평양성을 멀리 에돌아가기로 작정한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려올 때처럼 그냥 평양성쪽으로 올라갔더라면 지금쯤 까마귀밥이 되고말았을것이였다.

거란군은 산간벽촌의 얼마 안되는 민가들을 략탈해서 주린 창자를 달래가며 겨우 빠져나와 허겁지겁 개주어구에는 들어섰으나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잠시 멈춰섰다.

창황중에도 소배압은 열흘가까이 기일이 지나는 동안 고려군이 뒤꼭지 하나 보이지 않는것이 어쩐지 미타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퇴각서렬군의 후미에서는 고려군이 꼬리를 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거듭 보고해왔었다. 서렬의 량익측에도 수시로 경계를 파하군 하였으나 역시 고려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뿐이였다.

하다면 고려군은 아직 우리 거란군의 행처를 모르고있는것이 아닌가?

아니다, 고려군 총사가 어떤 사람이라고 우리의 행처를 모르고 마음편히 있을것인가.

강감찬, 료해한바에 의하면 그는 이미 경술년싸움때에도 우리 거란군을 청야전술로 개경까지 깊숙이 끌어들여 맥을 다 뽑아놓고나서 말고기 굽듯 화공을 들이대고 건초 베듯 쓸어눕혀 쫓아버린 맹장이다. 그는 분명 우리 거란군의 일거일동을 손금보듯 지켜보고있을것이다. 그가 우리를 아직 건드리지 않고있는것은 적당한 길목까지 무난히 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틀림없이 그는 우리앞의 어디엔가 진을 치고있을것이다. 그곳이 어디일것인가?

지도를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던 소배압은 개주성에 고려군이 없는것으로 보아(소배압은 전방경계를 파하여 개주성과 그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었다.) 그다음 위치하고있는 운흥 아니면 구주가 적당한 곳이라는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운흥보다는 구주가 더 확실하였다.

구주에서 압록강까지는 100여리밖에 안되였다. 고려군이 더 이상 미룰수 없는 곳이라는것이 첫눈에도 알리였다.

지도를 들여다보는 소배압의 얼굴에 부르르 경련이 일고있었다.

구주, 바로 이곳이 거란군을 마지막으로 조겨댈 결전장이 될것이다. 그러니 죽든살든 구주성 동쪽앞의 50리벌판을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불의에 속전속결로 돌파해야 한다. 시간을 끄는것만큼 죽음만 더 낼뿐이다. 아니, 이 소배압이 고려땅에서 황천객이 되고마는것이다.

할수 없다, 이 구주성 앞벌에서 운명의 마지막장난질을 하는 수다.

아무리 우세한 적이라도 약한 구석은 반드시 있는 법이라 했겠다. 이제 이 소배압이 고려군의 그 약한 틈사리를 기어코 찾아내서 일격을 가할것이다.

소배압은 두손으로 제 머리칼을 쥐여뜯으며 고려군과 싸울 계략을 짜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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