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하 편

 

14. 거란군을 최후격멸하다

 

3

 

강민첨은 5천의 기병으로 소배압의 뒤꼬리를 바싹 물고 따라가게 하는 한편 나머지 1만 5천은 제가 직접 거느리고 거란군과 대칭되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옆으로 우회하여 따라갔다.

감찬이 민첨에게 거란군이 서경을 치고 개경으로 가려 하는 경우를 예견해서 서경에 들어서기 전에 들이치라고 하였던것이다.

적이 서경까지 5백리길을 달리고나면 맥이 어지간히 빠질것이므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격을 가해서 못해도 절반정도는 줄여놓으라 당부했다. 그렇게만 되면 소배압은 신심을 잃고 개경공격을 포기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해도 기운을 쓰지 못할것이므로 개경방어군이 쉽게 소멸격파해버릴수 있다는 타산에서였다.

감찬은 강민첨이 서경부근에서 소배압의 등허리를 여지없이 꺾어놓아야 하리라는 판단아래 서경에 전령을 띄워 일부 방어군을 기동시켜 또 한차례의 타격전을 준비하게 했다.

소배압은 젖먹은 힘까지 다 짜내여 급속으로 내리달려 이틀만에 자주(평성)부근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이 계선은 소배압이 두번째 된매를 맞아야 할 곳이였다.

강민첨의 기병추격부대는 적들보다 한발 앞질러 자주고을앞 래구산 허리에 진을 치고있다가 소배압의 거란군을 불의에 공격하였다.

잠도 못 잔채 혀를 가로물고 달려온 거란군은 고려군의 앞뒤협공에 걸려 또 한벌 시체를 널어놓았다.

소배압은 서경공격은 생각지 않고있었으나 혹여 평양성방어군이 미리 나와서 진을 치고있지 않을가 겁이 나서 래구산에서 일단 숨을 돌리며 성의 동태를 살필겸 정찰을 파할 생각이였다. 그런데 서경에서 오륙십리 썩 나와 위치한 자주성에서 고려군이 답새겨대니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얻어맞는 꼴이였다. 더우기 자기들의 앞을 막아나선 고려군이 평양성이나 이곳 자주고을 군사들이 아니고 녕주에서부터 저들의 뒤를 따라온 고려군기마부대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선두서렬이 한절반 죽어나간 상태에서 겨우 고려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소배압은 약이 오를대로 올랐다. 하지만 독을 먹고나선 꼴이라 아직은 기가 살아서 뒤서렬을 수습해가지고 자주고을을 에돌아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배압은 이번에도 실패를 면치 못하였다.

평양성을 동쪽으로 삼사십리 에돌아 조금 내려가다보느라니 이번엔 고려군이 대동강을 가로질러 진을 치고있다가 덮쳐들었다.

이들은 평양성방어군사들이였다.

평양성방어군의 지휘를 돕고있던 병부시랑 조원이 감찬의 련락을 받고 성안의 일부 군사를 갈라내여 대동강 웃쪽마탄에 대기하고있다가 타격해온것이였다.

마탄(승호군 봉도리)에서 소배압은 평양성방어군에 의해 1만의 병력을 잃고말았다. 흥화진에서 평양성까지 오는 사이에 자기 수하의 삼분의 일인 2만을 잃은것이였다.

소배압은 대동강반에 한벌 쭈욱 깔린 시체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쥐여뜯었다.

경술년 침입때에는 자기네 왕이 출전하여 평양성과 개경성에서 화공전술에 걸려들어 턱수염을 반반히 태우는 수치를 당하더니 이번 걸음에 소배압 자기는 이상하게도 꼭 얼음판우에서 된매를 맞군 하는게 귀신이 곡할노릇이였다.

물오리들이 새까맣게 날아와 깃을 쳐가며 거란군의 시체사이로 쑤시고 돌아가는데 까마귀들은 하늘을 빙빙 돌다가는 죽은 거란군사들의 눈알을 파먹느라 내리꽂히군 하였다.

(까무라치겠구나!)

소배압은 부지중 장탄식을 하고 퍼더버렸다. 일단 주저앉자 더는 일어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소배압은 이발을 사려물고 일어섰다.

쩍- 소리와 함께 엉덩짝에 덧댔던 가죽쪼박이 강얼음판에 붙었다가 떨어져 볼품없이 너덜거렸다.

강 웃쪽에서 맵짠 바람이 터져내려오며 소배압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대로 있다간 얼어죽고만다는 생각에 소배압은 정신을 수습했다.

칼을 뽑아 군마의 멱을 푹 찔러 쓰러뜨리고는 쏟아져나오는 검붉은 피를 손바닥으로 받아 들이켰다.

턱수염에 게발린 말피방울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불그레한 고드름이 되여 설거덕거리였다.

더럭 겁이 난 소배압은 또다시 고함을 지르며 남은 군사를 거두어가지고 남쪽으로 내리달렸다.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을 넘어 오십리가량 정신없이 달려내려온 소배압은 겨우 숲속에 들어가 불을 피우고 주저앉았다.

인가 하나 없는 무인지경에 어설프게 막을 치고 들어가누운 소배압은 사흘을 꼼짝 못하고 몸살을 앓았다.

얼굴이 반쪽이 되여 비틀거리며 일어서고보니 사흘사이에 해가 저물고 새해가 잡혀있었다.

남은 군사를 끌고 다시금 남행길에 오른 소배압은 1019년 정월 초사흘날에 개경을 백오십리정도 앞에 둔 신은현(신계)에 당도하여 여기서 례년에 드문 강추위와 함께 기아에 직면하게 되였다.

주변에 널려있는 민가들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볼수 없이 텅텅 비여있었다.

쭉정이낟알 한톨 볼수 없었고 산이건 들이건 마초로 쓸만 한 풀 한대 볼수 없었다. 길옆에서 몇십리어간에 불을 놓아 새초와 잡관목을 모조리 태워버렸던것이였다.

소배압은 전률했다. 경술년 그때처럼 고려군은 이번에도 청야전술을 쓰고있었다. 식량으로 끌고오던 양떼는 평양성부근싸움때에 다 놓쳐버리고난 뒤라 잡아먹을 짐승조차 없었다.

소배압은 할수없이 군사 열명당 한명씩 제비뽑기를 해서 군마를 잡아서 주린 창자를 달래게 하였다.

거란군의 사기는 완전히 저락되여있었다. 구석구석에서 저희들끼리 치고 까고 물어뜯으며 개싸움질만 하고있었다. 먹지 못해 허기진데다 하나같이 동상을 입어 운신하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른 군사들을 가지고 개경으로 공격한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었다. 돌아서자고 해도 움직일 재간이 없었다.

소배압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버렸다. 이런 때에 고려군이 기습해오면 영낙없이 전멸될판이였다.

생각던 끝에 소배압은 고려군에 퇴군을 통고하고 시간을 얻을 계책을 꾸미였다. 자기 부장인 야률효덕을 내세워 고려임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가져가게 하였다.

《소배압이 이제야 정신이 좀 든것 같구나.

그래, 경들 생각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이놈을 곱게 돌려보내자오?》

임금은 대신들에게 의향을 물었다.

《항복서만 낸다 하면 용서해주고 돌려보내는것도 좋을듯 하오이다.》

대신 하나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대신이 두손을 휘휘 내저었다.

《용서라니,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요? 아예 목을 따치워야 할것이요.》

《그러면 거란왕이 언질을 잡아 또 침공해올수 있을것이요. 두번다시 고려를 범하지 않으리란 담보를 받고나서 돌려보내는 수오이다.》

또 다른 대신이 이런 의견을 아뢰자 임금은 그 의견을 좇았다.

《그러면 소배압에게 항복서를 써가지고 내앞에 와 무릎을 꿇으라 이르라!》

고려조정에서는 임금의 분부대로 소배압이 궁성밖에 와서 무릎을 꿇고 빌도록 하라는 편지를 주어 보냈다.

그런데 거란측에서는 옹근 하루가 지났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하고있나 해서 전방료해를 보내려는 찰나에 금교역에서 파발이 들이닥쳤다.

《거란군이 금교역말까지 내려왔음을 아뢰오!》

《소배압이 금교역말까지 내려와? 퇴군하겠다 하던 놈이 개경지경까지 다가오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고?》

임금은 성이 나서 두눈을 부릅떴다.

《혹시 항복하러 오는것을 잘못 본게 아니오이까?》

대신 하나가 이렇게 묻는데 파발이 계속해서 상황을 아뢰였다.

《소배압은 오지 않고 3백명정도의 기병부대가 들이닥쳤음을 아뢰오. 놈들은 야밤에 은밀히 내려왔사온데 고을의 빈집들을 뒤지고 돌아가며 행패질이 랑자함을 아뢰오.》

《정신이 덜 든 놈이로구나. 이밤으로 군사를 파해서 놈들을 단 한놈도 남겨두지 말고 모조리 도륙을 내도록 하라!》

임금은 단호히 령을 내렸다.

《알아들었소이다.》

고려조정에서는 개경외곽 방어군가운데서 날랜 기병 1백여명을 뽑아가지고 즉시에 출동케 하였다.

개경가까이까지 기여들었던 3백의 거란군은 모조리 목없는 귀신이 되고말았다.

소배압은 행여나 형세를 역전시켜볼 틈을 찾느라 파하였던 3백명의 수하기병들이 모조리 죽음을 당하였다는 보고에 혼비백산했다.

야률효덕이 가지고온 고려임금의 편지에는 당장 대령하여 항복하지 않으면 살아돌아가지 못할것이라는 최후통첩이 들어있었다.

고려임금에게서 항복을 받기는 고사하고 항복을 해야만 살아남을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앞에 소배압은 더이상 공격할념을 못하였다.

소배압은 늦게나마 공격을 단념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고려임금에게 찾아가서 항복한다는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거란왕이 이를 용서치 않을것이기때문이였다. 고려임금에게 항복한다는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소배압은 생각을 굴리던 끝에 죽어도 제 둥지에 가서 죽으리라 결심하고 퇴군을 명령했다. 개경을 방어하는 고려군이 당장에 쫓아올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배압은 퇴각속도를 무한정 높이게 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이라고 해서 무사할리 만무였다.

감찬은 혹여 소배압이 성공하여 개경을 점령할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어 병마판관 김종현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개경을 지원하게 하였다.

평양성에서 급히 출동한 김종현의 부대는 하루반만에 평주까지 내려와 거란군의 퇴로를 막는 한편 일부 력량으로 우회해내려가 개경지경에 또 한겹의 방어진을 폈다.

여기에 강민첨의 부대까지 합세하여 소배압을 익측으로 포위해들어갔다.

절령(황해북도 평산)계선에서 소배압은 또 한차례의 된매를 맞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수하군사중에 삼할을 또 잃고서야 간신히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살아돌아가기나 하겠는지…

소배압은 기가 꺾일대로 꺾여가지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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