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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 회)

 

하 편

 

13. 거란의 3차침입에 대비하다

 

5

 

이해 1018년 10월, 임금은 강감찬에게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임명하는 어지를 내렸다. 서경을 포함하여 그 이북으로 압록강계선까지 일대의 행정업무와 군사관계를 통털어 보는 막중한 임무를 맡긴것이였다.

행영도통사는 평시는 물론 전시에도 현지의 모든 일을 단독결심으로 처리할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여있었다. 임금의 전권을 행사하는 벼슬이였다.

미구에 닥칠 전란을 앞두고 임금은 감찬에게 이 일대의 총지휘권을 미리감치 준것이였다.

감찬은 이해 5월에 서경류수로 부임되여온 이후 지금까지 다섯달동안 서경이북일대를 종횡무진하면서 모든 힘을 총발동하여 성곽보수정비와 군사조련, 물자보장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준비를 기하느라 잠을 설치며 일하였었다.

이 기간에 감찬은 관하의 부대들에 기병의 수자를 늘이는데 특별히 힘을 넣었었다. 이 일은 강쇠의 조언에 따른것이기도 하였다.

감찬은 병부에서 보장하여주는 거란군에 대한 정보자료가 미약하다 생각되여 이에 대해 채근한 뒤에 자체로 정보선을 보강하리라 결심하고 강쇠에게 도움을 청하였었다.

《간자전이라면 제가 도울수 있소이다.》

강쇠는 자신있게 응해나왔다.

《내가 이미 <생간계> (간자를 직접 파견하여 적정을 알아오는것, 꼭 살아돌아와야 하는 간자)를 써서 걷어쥔 자료가 있사온데…》

《자넨 군영안에서 조련을 주는 사람이라면서 언제 그런 일을 다하였는가?》

《저는 조련생들의 마지막실기시험에 꼭 거란군진영을 살펴보고 적정자료를 알아오는 항목을 넣어 실행해오고있소이다.》

《거란군진영을 살펴본다고? 그럼 조련생들을 압록강까지 파한단 말인가?! 자네 지금 제정신을 가진 사람인가? 그런 어벌뚝지 큰짓을 제마음대로 하다니?》

감찬의 어이없어하는양을 슬쩍 올려본 강쇠는 목을 움츠리며 그러나 장한듯싶은 표정은 숨기지 않고서 사실을 말했다.

《조련생들중엔 거란군사를 보지도 못한 생둥이들이 많소이다. 그들에게 전장을 미리 밟아보게도 할겸 담도 키워주는겸 닷새어간에 불이 번쩍나게 압록강까지 갔다오게 하군 하였는데 아직은 한명도 잘못된적이 없었고 절대비밀에 붙여온바 이 일을 성주는 물론 누구도 아직은 모르고있소이다. 조련생들이 이 시험항목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오이다.》

《군사란 승인없인 군영밖을 단 한발자국도 나갈수도 없다는것을 자네가 모른단 말인가. 월권행위도 이만저만한 월권행위가 아니야. 자넨 그것 하나만으로도 목을 내놓아야 할 판이네. 자네 나이에 그런 엉뚱한짓을 다 생각해내다니, 정말 어이가 없군.》 하면서도 감찬은 궁금증을 참을수 없어 독촉했다.

《그래 압록강가에서 적의 진중이 얼마만 한 거리이기에 적의 얼굴을 보고온단 말인가?》

《한번 미역을 감아야지요. 어떤 애들은 압록강 중가운데에 널려있는 섬에까지만 붙었다 오는 애들이 있고 어떤 애들은 건너가서 적의 말편자나 활촉까지 훔쳐오는 애들도 있소이다. 갔다와서 적의 배치도를 그려바치는것을 보면 얼마나 신통하고 대견한지 모르오이다.》

《내 말은 어떤 신통한 적정자료를 물어왔나 하는거네.》

《제일 눈에 띄우는것은 적의 군마수가 병졸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오이다. 여러곳을 찍어서 접근해보게 하였는데 다같은 모양이였소이다. 적은 온통 기병들뿐이온데 이게 뭔가 시사해주는게 있다 그 말이오이다.》

《병부에서도 그런 정보를 통보해왔었네.》

《내 생각엔 적이 기병을 위주로 싸움을 하려는것 같소이다.》

《바로 맞힌것 같네. 지난 싸움의 경험으로 봐서 십분 그럴수 있네. 적군도 머저리는 아니니까. 성을 함락하느라 맥만 뽑고 시간만 랑비하는 종전의 방식으로는 고려를 먹을수 없다고 판단한것이야.》

《우리 방어성들을 에돌아 직판 개경으로 들어올 작정을 하고있는게 아닐가요?! 어떤 싸움이든 왕을 사로잡고 항복을 받아내야 끝이 나는게 아니오이까.》

《금적금왕이라, 적을 단숨에 이기려면 왕을 먼저 사로잡으라 그 말이렷다.》

《옳소이다. 우리의 조밀한 북방방어성들에 발목을 잡히우지 않으면서 일을 보자는 속심같소이다.》

《정확하네. 그러면 동생생각엔 그에 대처해서 우리 고려는 어떤 수를 써야 하겠나?》

《적들로 하여금 저들이 작정한대로 움직이게 하면서 치는 수를 써야 한다고 보오이다. 지금까지는 앞계선에서부터 적을 막았다면 이번엔 뒤계선까지 들어오도록 일단 출로를 열어주었다가 가두어놓고 짓뭉개버리는 수옵니다.》

《그건 조호리산이라고 범을 유인하여 산을 내리게 하는 수를 쓴다는것이군.》

감찬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혼자소리로 말하였다.

《그러하자면 우리 력량이 압록강대안에 총집결된것처럼 보이게 해야겠군. 그다음에 우회하여 내려오는 적군을 역시 우리가 우회하여 족치는것이요.》

《그걸 가리켜 암도진창이라 하는것이오이다. 우리의 기도를 로출시켜서 적들이 우리가 변방에 주력을 투입한것으로 착각케 하여 적을 진창으로 끌어내여 치는것이옵니다.》

《자네 생각이 나와 일치하네.》

《꼭 그렇게 되여야 할것이오이다.》

《그렇게 될걸세. 적이 전격전으로 개경을 노리고 남하하려는 이상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되네.》

《그래서 하는 말이온데 우리도 정예한 기병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것이옵니다. 하기는 도통사나리께서 동녀진인들이 바쳐온 갑옷과 쟁기 특히 말들을 모두 서북계로 돌리도록 한것이 바로 이를 위한 대비책인것을 저는 짐작하였소이다.》

《옳게 보았네. 난 이미 령을 내려두었네, 압록강이남의 모든 성들에서 여차하면 기동할수 있는 기마병들을 사전에 준비해두라고.》

《앞서 말하였던 간자전도 계속 힘을 넣어야 할 일인줄 아오이다. 적들도 지금 아주 묘한 방법으로 간자전을 하는것 같소이다. 최근에 압록강너머에서 많이 탈출해오고있는 거란인들중에 거란조정의 박해를 피하여 오는자들외에 의도적으로 임무를 받고 오는자들이 적지 않은가보오이다.》

《옳은 말이네. 병부에서도 그런자들을 역리용하는 방법을 쓰고있네만… 그게 얼마나 은을 내겠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리께서도 그 방법에 기대를 가지시는것 같던데요. 일전에 구주성에 가셨을 때 거기에 머물고있는 거란인들을 더러 포섭하여 파견하신걸 난 알고있소이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강쇠가 말하는 구주성의 거란인들이란 한족출신 거란인들을 말하였다. 이들은 거란조정에 반감을 품고 집단탈출해온 30명의 친인척집단이였다. 감찬은 이들을 임금에게 주청하여 특별히 우대하게 하고 그들가운데서 동향이 좋은 여섯명을 골라 속성교육을 준 다음 다시 거란에 들여보냈었다. 감찬이 직접 장악하고 운영하는 사설정보망이였다.

《자네 눈치가 여간 아니군. 아무래도 간자전은 자네가 맡아야겠네.》

《글쎄 그 일은 나에게 맡기라는데요.》

강쇠는 장담했었다.

적정파악은 강쇠가 있어 마음이 조금 놓이는편이였다.

하지만 행영도통사의 전권직무가 더 맡겨지고 닥쳐오는 전면전을 반드시 아군의 승리로 결속지어야만 하는 막중한 국가대사를 통채로 걸머진 오늘 감찬에게 있어서 걱정되는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적도 알아야 하지만 아군을, 민심을 아는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감찬은 자기가 민심파악에도 눈을 돌려야 하리라는 생각에 자리를 일었다.

강쇠와 함께 성밖으로 나온 감찬은 말을 달려 평양성밖 래구산(평성부근)쪽으로 향하였다.

자주(평성)고을에 들어선 감찬은 고을관청앞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것을 보고 그곳으로 말머리를 돌리였다.

《관청뜨락안에 웬 사람사태인가?》

《뭔가 송사건을 처리하는것 같소이다.》

강쇠는 재빠르게 관청뜨락안을 살펴보고 말했다.

《한번 구경하고 가세.》

감찬은 말에서 내려 스적스적 뜰안으로 들어갔다.

고을두령은 구경군들사이로 비집고들어서는 백발의 체소한 로인을 얼핏 내려다보고는 그가 바로 내사시랑 평장사에 서경류수에 서북면 행영도통사인줄은 꿈에도 모르는지라 제 하던 일에만 열중했다.

그는 동헌뜨락에 꿇어앉은 두 젊은 사내를 향해 추상같이 꾸짖었다.

《나라에 위기가 닥친 때에 젊은것들이 진중에서 도망쳐와서 집구석에 들어박혀 계집질만 하고있다니 세상에 이런 불측무도한 작자들이 어디 있단 말이냐. 저것들한테 각기 쉰대씩 매를 쳐서 정신이 들게 하라!》

예잇! 소리와 함께 절간의 금강력사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겨먹은 형리 둘이 몽둥이묶음을 그러안고 튀여나왔다.

우야!… 하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몽둥이채를 두손에 모두어잡고 학춤을 추는 자세로 두어바퀴 제자리돌이를 한 형리가 온몸에 기합을 주며 그것을 높이 들어올렸다가 금시 내려치려는 순간이였다.

《가만!》

감찬은 한손을 급히 들어 형리를 멈추어세웠다.

《웬놈이냐? 함부로 형집행을 막는 놈이?》

고을두령은 어이없는 눈길로 감찬을 노려보았다.

《서북면 행영도통사어른이시오!》

강쇠가 큰소리로 알려주자 두령의 얼굴이 꼿꼿해졌다.

허름한 옷을 걸친 체소한 저 로인이 다름아닌 서북변방 총수라니?!…

《내 좀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고 형을 집행함이 어떠하오?》

《어서… 어서 그러하시오이다.》

고을두령은 황송한듯 자리를 내여올렸다.

동헌마루에 올라선 감찬은 두 젊은이를 이윽토록 내려다보다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너희들이 군사를 기피하고 밤도와 계집질만 하였다는게 사실이냐?》

《냉큼 이실직고하지 못할가?》

고을두령이 곁달아 소리치자 두 젊은것들은 주얼주얼 죄상을 토설하기 시작했다.

《소인은 한눈이 멀어 군사에는 뽑히지 못했사와 군역에나마 성실해야 할것이나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회피하기를 여러번 거듭하였음을 인정하옵니다. 벌을 달게 받겠사옵니다.》

《저는 사년전 통주성싸움에서 뒤등에 화살을 맞은것을 고치고난 뒤이나 이후에 이동하는 부대서렬을 따르지 아니하고 몰래 집으로 스며들었다가 들장나서 끌려온것이니 죽인대도 할 말이 없는 놈이로소이다.》

두 젊은 놈들의 토설을 듣고난 감찬은 얼굴을 흐리였다.

《이놈들아! 내가 서경에 와서 처음 만나본 어떤 처녀애는 열일곱살 어린 몸으로 전장에서 죽은 제 아비의 원쑤를 갚겠다며 밤낮으로 조련에 병법읽기에 열심이고 자기를 군사로 받아달라고까지 간절하게 청을 올리더구나. 일개 계집애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사내로 난것들이 비겁하게 전장에서 도망치고 군역을 회피하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한심한지고.》

감찬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한쪽눈이 먼 사내를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눈은 언제 상했느냐?》

《아홉살때 활쏘기놀이를 하다가 장난이 지나쳐 상했소이다.》

《활쏘기놀이가 어찌 장난이겠느냐. 너도 사내로 나서 포부가 있었겠거늘 한눈이 멀었다고 그렇게 이지러지게 살면 되겠느냐? 아직 젊은 나이인데 락심말고 바르게 살거라.》

감찬이 이렇게 타이르자 젊은이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저를 군사로 받아만 주신다면 남들 못지 않게 싸워서 죄를 꼭 씻겠나이다. 이래뵈도 제가 활질은 남들만큼 하는 축이옵니다.》

《좋다. 그럼 오늘 너에게 차례진 매 쉰대를 잘게 썰어서 화살을 만들어 등에 지고 래구산성 수비군사로 들어가거라. 고을수장께선 그리하도록 소개신을 써주시겠지요?》

《그리하겠소이다, 도통사나으리!》

고을두령은 감찬의 분부에 더없이 감복하는 눈치였다.

《고을수장께서 승낙하였으니 너는 싸움에서 공을 세워 꼭 죄를 씻거라. 때가 어느때인데 남의 집 담이나 넘겨본단 말이냐. 소갈머리없어도 분수가 있지.》

감찬이 젊은이에게 용기를 부추겨주느라 롱담을 곁들이자 뜨락의 부녀자들속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새여나오는 속에 로파 하나가 목을 쳐들었다.

《저것이 옆집담을 넘다가 장독을 깨뜨린것은 변상하고 가게 해주시오이다.》

로파의 그 소리에 더는 참지 못하고 깔깔깔 허리를 꺾으며 웃어대는 아낙네들의 머리우로 감찬의 점잖은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 보니 이곳 자주고을 아낙들의 인심이 여간 야박하지 않으시오. 그 좋은 홍두깨를 나무라셨으면 되였지 좋은 걸음 하다가 장독 하나 깬것을 무에 그리 아수해하시오.》

삽시에 동헌뜨락은 웃음바다가 되였다. 엄엄하던 분위기가 졸지에 일변했다.

《아낙들이 지켜보네, 젊은이! 이후에 저 아낙들이 진짜 판결을 할것이야.》

《명심하겠나이다, 도통사나으리!》

젊은이는 머리를 한껏 수그렸다.

《다음, 이쪽놈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이냐?》

감찬이 다른 젊은이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뜨락안은 또다시 조용해졌다.

《너는 부상을 핑게로 도망쳐와서 숨어있던바로 그 죄가 여간 크지 않으니 엄벌을 받음이 마땅하다. 수장어른! 고작해서 매 쉰대가 무어요?》

고을두령은 감찬의 말에 저도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전장에서 도망친자는 즉석에서 목을 벰이 고금의 법도인즉 단칼에 목을 쳐서 몸뚱이는 부모에게 주고 머리는 군영에 가져다 매달아서 군기가 엄함을 알게 하도록 하라!》

《…》

감찬의 이 말에 뜨락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너는 다른 의견이 없느냐?》

감찬의 물음에 도망병젊은이는 순순히 대답했다.

《없소이다. 소인은 죽을 죄를 진것이 명백하오며 저의 죽음으로 군기를 바로잡는데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게 없는줄 아옵니다. 어서 저의 목을 베여주소이다, 》

젊은이는 두눈을 감고 머리를 곧게 쳐들었다.

《그러면 벼짚으로 저놈의 몸뚱이모양을 만들어 방금 령을 내린대로 목을 쳐라! 그다음 부모에게 줄것은 주고 군영에 가져갈것은 가져가되 너는 일단 죽었으니 호적에서 제명하고 몸은 그대로 부대로 가서 죽기로 싸워 새로운 사람이 되거라!》

《?!…》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느냐?》

《알아들었소이다, 나으리!…》

젊은 놈은 머리를 땅에 박으며 엎어졌다.

《내가 주제넘게 고을수장의 정사일을 간참하였는데 다른 의견이 없소?》

감찬이 조용히 묻자 고을두령은 두손을 들며 찬성함을 표시했다.

《사람도 살리고 개준의 기회도 주고 민심은 민심대로 격양시키였으니 이보다 더 옳은 처리가 어디 있겠소이까. 명망은 익히 들어 알고있었사온데 오늘 두눈으로 재삼 확인하와 이후에 거울로 삼겠나이다.》

《그럼 되였소.》

감찬은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이였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지키겠는가?

모두가 죽기로 싸워서 나라를 지키자고 떨쳐일어난 때에 이런 부끄러운 일이 있다는것은 정말로 섭섭한 일이 아닐수 없노라. 고을에 다시는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노라.》

《알겠소이다.》

뜨락의 남녀로소모두가 하나같이 머리를 숙여 대답했다.

《도통사나으리! 이놈을 지켜보소이다. 꼭 새 사람이 되겠소이다.》

《우리를 믿으시오이다, 나으리!》

두 젊은이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리고있었다.

뼈저린 후회와 그리고 새로운 결의가 담긴 진심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내려다보는 감찬의 심중은 이루 형언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래, 흠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잘못은 깨닫고 제때에 고치면 그만이다.

사람은 죽어도 장하게 죽어야 하는거다. 수치를 가시지 못하고 죽는것이상 무서운것이 또 어디 있으랴.

《내 관할하의 모든 고을들에 공문을 내려야겠네. 많지는 않을것이나 저런 기피자들이 더러 있을것이니 이후에 저런자들은 벌은 내리되 전장에 나가 죄를 씻게 기회를 주도록 일처리를 하게 해야겠어.》

《옳은 처분이라고 생각하오이다.》

강쇠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며칠후 감찬은 안북부(안주)와 녕주(녕변), 구주(구성)를 거쳐 흥화진(의주)까지 근 천여리구간을 답사하였다. 서북방고을들의 민심을 고조시키는 한편으로 미구에 격전이 벌어질 전장들을 직접 밟아보면서 적을 칠 계책을 무르익히려는 목적에서였다.

감찬이 보름이란 시일을 바쳐가며 직접 현지답사를 한데는 사연이 있었다. 거란에 파견했던 간자의 보고에 따르면 거란군의 침공로가 이전과는 달리 산지가 기본인 동쪽으로 치우쳐 정해져있다 하였기때문이였다.

정보를 날라온 간자는 한족출신 거란인으로 오두라는 사람이였다.

오두는 지난해 9월에 7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귀순해왔었다.

거란 동경(료양)에 틀고앉아서 재침공준비에 광분하고있던 소배압은 고려변방의 실태를 내탐하라는 임무를 주어 오두를 들여보냈는데 그는 소배압의 령을 거역하고 아예 고려로 투항해온것이였다.

오두는 고국 송나라와 동맹관계에 있는 고려를 해하는짓은 곧 자기 고국과 동족을 해치는것이라며 이를 받아들일수 없어 넘어왔다고 진술했다.

고려조정에서는 오두의 동향이 긍정적인것에 주목했다. 하여 병부에서 오두의 일행을 일일이 료해하고 급기야 반간계를 쓴것이였다.

오두의 정보는 믿을만한것이였다. 그는 진심으로 고려에 복무하고있었다.

감찬은 자기의 권한으로 오두를 수하에 장악하였다.

오두에게 이후에 거란군이 고려침공을 단행해올 경우 반드시 지금 계획하고있는 그 경로로 들어오도록 하게 할데 대한 임무를 주어 들여보내였다. 고려군이 지금처럼 통주와 곽주, 선주, 철주, 룡주계선방비에 중심을 두고있는것으로 적들이 믿게 하도록 보고자료를 꾸며가게 하였다.

감찬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거란군이 바로 이 일대에 계속 기습해들어왔던 점을 놓치지 않고있었다. 이것은 적들이 고려의 주의를 그쪽으로 쏠리게 하려는 술책이였던것이다.

감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일었다.

적들이 노리는 새로운 침공로, 그곳의 지형을 더 세밀히 파악했다. 자기자신 평시 그대로 허름한 옷차림에 촌늙은이행색으로 지팡막대를 짚고나섰다. 밤에만 수레를 타고 기동했고 낮에는 평백성으로 보이게 하고 걸었다. 적들로 하여금 주의가 집중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감찬은 그곳 고을들에 자기의 행차를 알리지도 않았다.

이번 현지답사길에 감찬은 많은것을 알수 있었다.

만약에 거란군이 새로 결심한 경로로 침입하는 경우 그들의 기동이 매우 굼뜰것이라는것도 짐작하였다. 거란군은 평지에는 숙달되여있으나 산지에는 적응되지 않은것이였다.

감찬이 또 하나 간파한것은 이 경로상에 하천이 많은것이였다. 압록강과 청천강의 지류들이 무수히 갈래쳐흐르고있는것이였다.

감찬의 시야에 특별히 안겨오는것은 하천의 곳곳에 막아놓은 물동들이였다. 이 지방 사람들은 겨울이면 여울목들에 돌과 통나무로 뚝을 막아 물을 채우고 고기잡이를 하는것이 특이하였다. 뚝으로는 사람들이 건너지나갈수 있게 말뚝에 의지한 가설다리까지 놓은 곳도 있었다. 통나무사이로 돌을 채운 물동뚝사이로는 물이 졸졸 흘러내리며 물이 더 넘지 않도록 해놓고있었다.

감찬의 머리에 피뜩 생각키우는것이 있었다.

물동뚝을 높이고 물을 많이 채웠다가 적이 통과할 때 터뜨려 물세례를 안기는것이였다. 그러면 얼음우를 지나가던 적병들이 물에 밀리여 미끄러지며 골탕을 먹을수가 있었다.

감찬은 즉시 서너곳을 점찍어놓고 은밀히 뚝을 보강하는 대책을 취하게 했다.

꼭 그렇게 되리라는 담보는 없었지만 해놓고볼판이였다.

일은 비밀리에 급속으로 추진되였다.

해당고을 관아에서 갑옷과 전통갑(화살통을 감싸는 가죽주머니)을 만드는데 쓰기 위해 군포로 모았던 소가죽들이 모조리 뚝막이감으로 돌려졌다.

강물이 완전히 얼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던것이다.

감찬은 립동이 될무렵에야 평양성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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