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하 편

 

13. 거란의 3차침입에 대비하다

 

4

 

《강쇠! 자네 머리도 이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군.》

감찬은 반가와 어쩔줄 몰라하는 강쇠(강용세)를 정겨이 바라보다가 얼굴을 흐리였다.

《가는 세월을 막을수가 있소이까. 나리의 머리는 완전 백발이 되였는걸요.》

《그러하이. 이 몸이 진토되기 전에 저 거란오랑캐들과 끝장을 보아야 할터인데…》

《나리께서 오셨으니 이젠 되였소이다.》

《자꾸 나리, 나리 하지 말게. 나이도 어지간한데 우리 그저 형, 동생으로 부르세나.》

《원, 그렇게야 어떻게…》

《그간 어떻게 지냈나? 자네가 맡은 소임은 잘 감당한다 들었네만…》

강쇠는 평양성 수비군사들의 조련을 맡고있었다.

《일에 파묻히다나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소이다.》

《음, 듣자니 자네도 안사람을 먼저 앞세웠다지?》

《그 사람을 잃은지 삼년이 지났소이다.》

《그러면 재취를 했어야 할걸 그랬네. 자네 나이가 이젠 환갑이 래일모레일텐데.》

《나리께서도 혼자 계시는데 저같은거야 일 있겠소이까.》

경술년 국난때 강쇠는 안해를 잃었다. 서경방어전때 남녀로소 가림없이 떨쳐나 거란군과 싸우는 과정에 적의 눈먼 화살에 맞아 쓰러진것이였다.

《혼자 있기 적적해서 딸삼아, 손녀삼아 저 애를 데려다놓고있소이다.》

강쇠는 웃방에 꿇어앉아 책을 들여다보고있는 처녀애를 가리켰다.

《누구네 애인가? 자네는 자식이 없은거구…》

《먼저번 국난때 순국한 구주성 봉화지기의 딸이오이다. 저 애의 할아버지가 전사한 아비의 단 하나 혈붙이라며 애지중지하는것을 빼앗다싶이 해서 데려다 살고있사옵니다.》

《저런, 저 애 할아버지가 좋아하겠소?》

《그 로인은 아들이 전사한 후 집에 들어오지 않소이다. 노상 야장터에 나가서 침식을 하는걸요. 병쟁기 벼리는 솜씨가 여간 아니오이다. 아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밤낮으로 벼림질에 묻혀있소이다. 저 애도 아버지의 원쑤를 갚는다며 눈만 뜨면 무술익히기에 정신을 쏟고 저녁이면 저렇게 병법책을 펼치고 밤을 밝히옵니다. 얘 죽화야, 이리 내려와 인사올려라.》

강쇠가 이르자 처녀애는 소리없이 내려와 나부시 감찬에게 절을 했다.

《죽화라, 이름이 좋구나. 성은 뭐냐?》

《…》

《성은 아직 가지고있지 않은 집이오이다. 이름은 제 아비가 지어주었다는데 이름 그대로 참대처럼 곧고 예쁜 애오이다.》

《기특하구나. 네가 아버지의 원쑤를 갚겠단 말이지. 그 생각이 지극히 장하구나!》

감찬은 죽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참, 네가 병법도 읽는단 말이냐? 글을 아느냐?》

《천자문을 어렵지 않게 깨친 애오이다.》

《저런! 그래 지금 어느 대목을 읽고있느냐? 한대목 풀어보지 않으련?》

감찬은 호기심이 동해 죽화를 부추겼다.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외로 꼬는 죽화의 자태를 눈주어보던 감찬이 눈길을 돌려 죽화가 펼쳐놓은 책장을 내려다보았다.

《<리대도강>이라, 작전계의 다섯째 병법이로구나. 이게 무슨 뜻인지 말해볼수 있느냐?》

감찬이 묻자 죽화는 살며시 감찬을 올려다보고나서 눈을 내리깔며 나직이 대답했다.

《글자의 뜻은 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넘어진다는것이온데 뜻을 풀이하면 불리한 정황에서 부분적손실로 전반적승리를 안아온다는 뜻이옵니다.》

《잘 해득했다. 이 글자의 뜻은 무엇이냐?》

감찬은 한장을 번지고 물었다.

《<순수견양>이라고 연약한 손에도 양은 끌려오나니 적의 사소한 약점도 제때에 찾아내여 효과있게 리용하면 작은 품을 들이고도 큰 전과를 올릴수 있다는 뜻이오이다.》

죽화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저런!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그래, 몇살이냐?》

《두달이 지나면 열일곱이 되나이다.》

《바야흐로 몽오리를 터칠 나이로구나.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하다! 이 애를 성방어군진중에 모사로 써도 되겠소!》

감찬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죽화를 치하했다.

《이 애의 마상재가 여간 아니오이다. 창쓰는 솜씨도 웬만한 총각군졸들 못지 않고요.》

《너같은 처녀애도 이렇듯 차비를 하였으려니 우리 고려백성들의 힘을 저 오랑캐들이 어찌 당할수 있을것이냐!》

감찬은 저도모르게 부르짖었다.

《류수나리께 한가지 청이 있사온데 들어주시겠나이까?》

《들어주지 않고, 죽화의 청이라면야. 그래, 무엇을 원하는거냐?》

감찬은 죽화가 청을 올리겠다는 소리에 반갑게 응수했다.

《소녀를 군사로 받아주시오이다.》

《군사로?!…》

감찬은 말문을 닫아버렸다. 강쇠는 옆에서 히죽이 웃고만 있다. 이런 청을 이미 받아본듯싶었다.

《저의 청을 들어주시겠다 하지 않았소이까.》

감찬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얘야. 그런 청이라면 난 받아줄수 없구나. 사람들이 웃겠다. 우리 고려에 사람이 없어서 녀자를 군사로 받는단 말이냐?!》

《장수나리도 일구이언하시오이까?》

죽화는 금시 얼굴이 흐려졌다.

《싸움이 일면 이 평양성안에서도 할 일이 좀 많겠냐? 꼭 군사가 되여야만 적과 싸우는것은 아니다.》

감찬이 얼리려들자 죽화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소녀는 꼭 전장에 나가서 싸우겠나이다, 아버지가 순국한 바로 그곳에 가서.》

죽화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입을 옥문채 나부시 절을 하고는 웃방으로 올라가버린다.

죽화의 당돌한 자태를 바라보던 감찬의 눈시울이 저도모르게 붉어졌다.

애어린 처녀애들까지도 싸우려고 하는구나.

이런 마음가짐이면 당하지 못할 적이 없으리라.

감찬은 이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