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하 편

 

13. 거란의 3차침입에 대비하다

 

2

 

새해 1015년에 들어서면서 거란과의 충돌은 마치 전면전쟁을 련상케 했다.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너와 성을 쌓는데 이르렀던것이다.

거란은 지난해 9월 리송무라는 한족출신 장수를 들여보내여 청천강이북의 여섯개 성을 또다시 내놓으라 요구하였다가 이를 거절당하자 10월에 소적렬이란 장수로 하여금 통주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소적렬은 이전 거란왕의 외삼촌이 되는자로서 변강진무관이란 직함을 가지고 압록강이북에 상주해있으면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였었다. 이자는 흥화진을 은밀히 에돌아 기동하여 곧장 통주성으로 기습해내려 가려다가 흥화진 성주인 장수 정신용에 의해 격퇴당하였다.

정신용은 소적렬이 부대를 끌고 흥화진을 에돌아내려간 뒤에야 이 사실을 알고 기병에 의한 추격전으로 이자의 등허리를 족쳐댔다. 그리고 흥화진보군으로 퇴로를 차단하게 하였다가 퇴각하는 적군을 압록강에 모조리 수장시켜버렸었다.

그런데도 거란은 덜 정신이 들어가지고 새해에 들어서자마자 또다시 압록강을 건너왔던것이다.

처음에는 강건너편에서 성을 쌓고있으므로 눈여겨보고있었는데 하루밤새 강을 건너와 무인지경 산중허리에 저희들의 성을 쌓고있은것이였다. 이른바 교두보를 확보하려는것이였다.

흥화진의 고려군이 이를 구축하려 기동해나오자 거란군은 다른쪽으로 군사를 파하여 흥화진을 점령하려고 꾀하였다.

고려군에서는 통주성에 있던 장수 고적여가 군사를 이끌고오다가 흥화진을 까려는 거란군을 격퇴해버렸다.

며칠후에 거란군은 고적여가 흥화진에 머무르고있는 기회를 틈타서 또다시 통주성을 공격해내려왔다.

룡주와 철주, 곽주의 고려군이 사면팔방으로 맞받아쳐서야 거란군은 퇴각하였다.

《싸움은 이미 터졌소. 이런 때 과인이 궁성에만 있는것이 잘못된것이 아니요?》

임금은 감찬을 위시한 조정대신관료들앞에서 이렇게 물었다.

《아닌 말로 페하께서 한번 거동을 하심이 나쁘지 않을것 같소이다.》

감찬은 생각끝에 동의하였다.

《이전에 성종임금께서도 손수 종군하시여 아군의 사기를 올려세운적이 있었거니와 거란으로 하여금 우리 고려의 단호한 립장을 깨닫도록 해줄 필요가 있는것이오이다.》

《하오면 진군하기요 》

임금은 가타부타없이 결론을 지어버렸다.

《과인은 이번 서경순행길에 다른 일을 하나 겸해서 하려 하오.》

서북방으로 종군하련다 선포한지 이틀이 지나서 임금은 감찬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자기의 의향을 내비쳤다.

《전방군사의 사령탑을 정리하는것이요.》

《장수들을 바꾸시려는것이오이까?》

감찬이 의아해서 묻자 임금은 머리를 끄덕였다.

《상장군 김훈과 최질을 처리하려 하오.》

임금의 이 말에 감찬은 긴장해졌다.

김훈과 최질은 지금까지 여러차례의 싸움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운 장수들이였다.

거란군과의 전면전을 앞둔 때에 유능한 장수들을 처리한다니 이 무슨 말인가?

《그대는 지난해 동지달에 김훈과 최질이 군사를 발동해가지고 궁성을 둘러쌌던 일을 기억하오?》

《그 일을 잊을리가 있겠소이까, 페하!》

감찬은 부지중 지난해 동지달 초하루날에 벌어졌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날 김훈과 최질은 개경부근에 둔치고있던 고려군 중앙 6위의 모든 군사를 다 동원해가지고 궁성을 둘러싸고는 11명의 수하장수들과 함께 대궐안으로 쳐들어와 중추원사들인 황보유의와 장연우를 결박하고 반주검이 되게 패주었다. 그리고는 어전으로 들어와서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황보유의와 장연우가 우리 무관들의 영업전을 강탈한것은 공동의 리익을 빗대고 개인의 사욕을 챙기려는것으로 그 심보가 고약스러울뿐아니라 무관들을 깔보고 군사를 홀시하는 페단으로 지금 군사들이 격분하였은즉 나라를 해롭게 하는 이자들을 제거하여 우리의 분을 풀어주소서.》

영업전이라 함은 고을향리 호족들이나 조정안의 문관들 그리고 상층군인관료들이 국가에 복무하는 대가로 받는 수조지(자영경작지)로서 자손들에게까지 물려주는 토지를 말하였다.

경술년(1010년) 거란침입이후에 거란의 재침입에 대비하느라 군사비지출이 증대되자 관료들의 봉급지출이 부족되여 애를 먹였었다.

황보유의와 장연우는 중앙군에 준 영업전이 일반관리들의것보다 많으므로 그것을 조절회수해서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일반관리봉급지출의 부족을 메꾸기로 작정하고 임금의 윤허를 받아 실행하였다.

이것이 무관들의 불만을 샀던것이다.

싸움은 누가 하는데 먹기는 똑같이 먹겠다니 이게 될말이냐.

김훈과 최질은 무관들의 이런 반발심을 키질하여 군사를 풀어가지고 무엄하게도 임금에게 분풀이를 하려는것이였다.

황보유의와 장연우를 매질한것은 결국 임금을 매질한것이나 다름없는 처사인것이다.

임금은 뜻밖에 벌어진 일이라 우선 분을 누르고 이들의 제의를 받아주는쪽을 택하였다. 황보유의와 장연우를 직무에서 해임하고 류배를 보내였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지 김훈과 최질은 며칠후에 상참이상의(3품이상의) 모든 무관들에게 문관직을 겸임해주도록 제기해왔다.

임금은 이번에도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때 감찬은 무관들에게 문관직을 겸직으로 주는것은 그들의 지체를 높여주고 사기를 올려주는 일로 여기고 무언으로 지지하였었다. 때가 때인만큼 싸움을 앞두고 무관들을 우대해서 나쁠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영업전을 놓고 말하면 그것 역시 군사들의 사기를 올려주려는 목적에서 임금께서 우대명목으로 많이 주었던것이라 별다른 의견이 없었고 나라의 재정을 메꾸려는 타산에서 조절하자 한것인즉 그건 그것대로 군사들이 리해할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 일이 반발을 샀으니 안한것만 못한 일이라 생각하는데 그치였었다.

논밭 몇뙈기가 무어라고 죽고살고하는 문제도 아닌것을 가지고 대궐안에 들어와 구타까지 하는가 하고 무례한짓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였으나 그 이상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임금은 그 문제를 매우 엄중하게 파고드는것이 아닌가.

《군심의 흐름이 잘못 번져가고있다 생각되지 않소?》

《?!…》

《국난이 닥쳐왔으면 군사건 백성이건 모두가 사심없이 그를 타개해나가는데로 마음들이 모아져야 마땅한것인데 군사라는게 저들 개개인의 리익만 따져가며 무례하게 어전에까지 머리를 들이미는 꼴이니 이게 옳은것인가?》

임금의 말에 감찬은 저도모르게 머리를 숙였다.

아닌 말로 때가 어느때인데 그런 일로 군사까지 발동한단 말인가.

군사를 우대해주니 그에 버릇되여 아래우를 가려보는 눈마저 흐려진게 아닌가.

감찬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감히 군사를 풀어 궁성을 둘러싸다니, 그것은 명백히 반란이였다. 군대를 가지고 임금을 강박한것이였다.

군사가 저들 개인의것인가?

군사는 나라의 군사이고 임금의 군사이다. 이런 군사를 저들이 뭐라고 함부로 람용한단 말인가. 저들의 불만을 푸는 분풀이로 써먹는단 말인가.

감찬의 얼굴은 해쓱해졌다.

그들이 오늘은 그 정도로 그쳤지만 래일에는 또 어떤 작당을 할는지 모를 일이였다. 임금을, 조정전체를 뒤집어엎자고 나설지 어이 알랴.

《페하! 신이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감찬은 신음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과인은 반란주모자들을 말하고있는데 승지어른은 무슨 죄를 졌다고 그러는거요?》

임금은 의아한 눈길로 감찬을 바라보았다.

《눈이 바로 배긴 신하라면 무관들의 그때 그짓을 본 즉시에 벌써 그 위험성을 판단했어야 했을것이오이다. 그런데 신은 전혀…

페하! 저는 페하를 보필할 재목이 못되는 위인이올시다.》

감찬은 처량한 표정으로 죄를 빌고나섰다.

하지만 임금은 머리를 저었다.

《그대 잘못이 아니오. 과인이 그때 그 자리에서 단호히 선을 그었어야 했소. 나야 임금이 아니요. 내가 이제는 국사를 보는지가 어지간히 되였는데 아직도 마음보가 무르단 말이요. 그래서 늦었지만 바로잡으려는것이오.》

《신은 페하의 결심에 아무런 이의도 없소이다.》

《이번 걸음에 동행합시다. 어른은 가만 앉아서 구경만 하시오.》

《그러하겠소이다, 페하!》

이해 1015년 3월초 감찬은 임금과 함께 서경으로 올라갔다.

임금은 평양성안의 장락궁에서 연회를 차리고 대신관료들을 치하했다.

《그간에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느라 공로가 크기에 그대들을 위무하여 술을 내리노라. 특히 상장군 김훈과 최질 그리고 장수들인 박성, 리협, 리상, 리성, 석방현, 허거정, 공문, 림맹은 군사들의 선봉에 서서 지휘를 잘하였으므로 그 공을 특별히 기리여 가족들에게 지금까지 하여온 대우를 그대로 받으며 살도록 하노라.》

여기까지 말한 임금은 엄엄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그러나 방금 지적한자들은 공손하게 말로 해도 될 일을 직분에 어울리지 않게 군사를 풀어 강제로 행한 죄를 범하였으므로 엄벌을 내리려 하노라.

중앙군 6위의 발령은 임금의 윤허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나 김훈과 최질 등은 무엄하게도 자의로 임금의 권한을 람용하였다.

신하된 몸가짐새는 꼬물만큼도 찾아볼수 없고 임금에게 이래라저래라 강박한 그날의 작태는 금수도 얼굴을 붉힐 일이였다.

권한에도 없는 군사를 일으킨것은 반란에 해당되는 역적죄가 분명하거니와 만고에 없는 이러한 특대형역적행위는 죽음으로써만 죄를 씻을수 있노라.》

임금은 이같이 신랄히 지탄한 뒤 조용히 명령했다.

《목을 베라!》

김훈과 최질 등은 술잔을 받아들고 벌씬거리다가 번개같이 내리치는 칼날에 목이 뎅강뎅강 떨어졌다.

《이로써 군상층의 역신들은 없어졌다. 다시는 군부안에 임금에게 삿대질하는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부터 군부는 군기를 바싹 다잡고 군력을 총동원하여 외적을 물리치는데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라.》

임금은 들었던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일어섰다. 그달음으로 평양성의 사방 지휘처들을 돌아보고 군사들의 조련을 독려했으며 군부의 빈자리들에 새 장수들을 앉히였다.

임금은 평양성에서 사흘을 묵었다.

그 기간에 거란장수 야률행평이 또다시 찾아와 압록강이남의 여섯개 성을 요구하는 거란왕의 편지를 내보였다.

격분한 임금은 《이자를 억류해두고 돌려보내지 말라!》 하고는 안북부성으로 올라가 고려황제기를 띄우고 온 하루를 성루우에서 북방을 지켜보다가 다시 평양성으로 내려와 4월말까지 있으면서 정무를 보다가 개경으로 돌아왔다.

감찬은 임금의 허락을 받고 안북부성에서 좀더 머물러있다가 청천강을 건너가 그 이북의 여섯개 성을 차례로 돌아보고 내려왔다.

감찬은 이번 걸음에 이전에 서희와 함께 돌아보았던 이 일대의 지형을 다시금 익혀두었다.

서희가 죽는 순간까지 혼신을 다해 쌓아올린 성곽들을 보며 감찬은 비장한 각오를 다지였다.

죽기로 싸워서 거란오랑캐들을 막아내리라!

조상의 땅을 지키리라!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