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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 회)

 

하 편

 

12. 거란의 2차침공을 물리치다

 

15

 

《나는 그대를 내 살점처럼 귀히 여기고 아껴주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무정할수 있는가!》

거란왕은 안타까이 부르짖었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그런 대우를 받아들일수가 없소이다. 죄송하오이다.》

하공진은 머리를 수그려보였다.

《그러하면 처음부터 그렇다고 할것이지 어찌하여 이날까지 본심을 숨기고있었는가?》

《그래서 죄송하다 하는것이 아니오이까.》

《야속하도다. 결국 그대는 처음부터 나를 롱락하려 했었구나.》

거란왕은 하공진을 처음 만나던 때를 다시금 상기했다.

첫 싸움에서 일격에 압록강계선의 고려군을 허물고 청천강계선까지 단숨에 타고앉은 뒤 서경을 포위해놓고나서 고려임금을 불러다 꿇어앉히자 작정하고 40만의 대군을 풀어 싸움을 시작하였으나 일이 생각처럼 쉽게 되는것이 아니여서 변변하게 타고앉은 성은 한개도 없고 숱한 군사를 잃으면서 고려군이 방어하는 성들을 포위만 해놓은 상태에서 에라, 그만하면 고려군주력의 발목은 묶어놓은셈이니 마지막수로 고려임금을 포로하리라 결심하고 겉으론 허장성세했으나 속으론 저으기 겁이 나는것을 감추고서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개경으로 내려가고있었는데 그때 하공진이 불쑥 앞을 막아나섰다.

《고려사신 하공진 적국왕에게 문안드리오.》

시작부터 무엄하게 적국왕 어쩌고 하는 소리에 심기가 거슬려 눈살을 치세웠던 거란왕의 입이 저도모르게 헹 벌어졌다.

마치도 관음보살모양 인자한 빛을 얼굴 가득 담고서 영채도는 눈으로 자기를 정겹게 내려다보는 고려사신앞에 혼이 빠져버린것이였다.

얼핏 보면 귀공자풍의 선비요, 다시 보면 쩍 벌어진 어깨에 기골이 장대한것이 칼부림깨나 할것 같은 무사풍의 선비였다.

동서남북 사방천지를 지르밟으며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고 거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부하는 거란왕이건만 이 고려사신처럼 첫눈에 반해버리게 되는 그런 인물은 아직 본적이 없었다.

《거란의 고려원정명분이 역적 강조를 벌하려는것이라 들었사온데 그는 이미 귀측에서 사로잡아 처분한 뒤이니 일이 끝났음에도 계속 지경깊이 내려오는 진뜻은 대체 뭣이요?》

하공진이 시종 웃음을 담은채 요점을 꼬집어 공격해들어오는양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거란왕은 자기도 선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왔던김에 고려임금의 버릇을 가르쳐주자 함이니 그대는 나를 개경으로 안내하라.》

《내 알기로는 귀국의 장수 소배압이 우리 고려의 청천수이북 여섯개 성을 내여달라 하였다는데 우리 고려는 소배압의 그 오만무례한 버릇부터 고쳐주자 함이니 귀측에선 그 일을 먼저 알아서 해야 할것이요.》

《그 여섯개 성을 달라 한것은 바로 나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한다 함은 고려임금의 뜻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결사항전해나오는것이겠소.》

《그 버릇을 가르쳐주자는것이노라. 그대는 그저 고려임금에게 길안내만 하라!》

《나는 귀측의 침입명분이 그릇된것임을 알리려고 온 사신일뿐 길안내하라는 어명은 받지 못하였으므로 그냥 돌아가려 하오.》

《그렇게는 안될것이다.》

《개경에 갔댔자 우리 페하를 만나지 못할것이여서 더우기 하는 말이요.》

《고려임금이 개경에 없다는것인가?》

《강남으로 가시였는데 지금 어디 계신지는 딱히 알수 없소.》

《강남이 어디인가? 여기서 얼마나 먼가?》

《강남은 대단히 먼곳이라 몇만리가 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더이다.》

《몇만리라고? 고려땅이 그렇게 넓은가?!》

《거란보다 작지는 않을것이오이다.》

《하기는 그대 나라는 옛 신라와 백제땅을 다 차지한 나라렷다. 그리고서도 옛 고구려땅의 귀때기를 조금 달라는것을 거부하는가? 욕심이 지나치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요.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국으로서 옛 고구려땅을 우선 되찾아야 하는것이고 신라나 백제는 우리 고려가 병합한것이므로 거란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 그 말이요. 귀측은 고구려의 계승국인 발해를 타고앉은것으로 해서 우리 고려의 국익을 심히 해친 나라이며 지금이라도 옛 발해땅을 내놓는것이 마땅한 도리이나 되려 압록수이남땅을 내달라 하니 이는 심히 잘못된 처사라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것이요. 속히 퇴군할것을 권고하오.》

《나는 고려땅을 떼먹으려고 온 사람이므로 그 말을 들어줄수가 없노라.》

《그게 수월히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는걸 아셔야 하오이다.》

《두고보면 알게 될것이다. 그대의 인물됨됨이가 하도 황홀하여 내 목은 베지 않을것이니 한번 나의 이번 걸음을 함께 지켜봄이 어떤가?》

《나를 인질로 쓰려는것이요?》

《고려임금을 끌어낼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생각도 없지 않노라.》

《자칭 대국의 왕으로서는 여간 좀스러운짓이 아닌가 하오.》

《아무렇게나 생각하라. 진심을 말하면 난 그대를 나의 신하로 삼고싶다.》

《그건 정말이지 가당치 않은 생각이요.》

《일이 끝나고나면 그대의 생각이 달라질수도 있을것이다. 그대는 여기서 잠간 묵으라. 나는 이 길로 개경으로 쳐내려갈것이니 후에 그대 임금에게 윤허를 받고 그대를 신하로 삼을것이노라. 차마 자기 임금의 분부야 거절 못할테지?》

이렇게 끝난 하공진과의 첫 상면이였다.

허나 이후에 거란왕은 쫓기는 신세가 되였다. 개경에서 압록강까지 죽기로 줄행랑을 놓는 속에서도 거란왕은 하공진을 놓치지 않고 끌고왔다. 패자의 고배를 마시며 몸살을 앓고나서 제일먼저 찾은것이 하공진이였음에랴.

하공진과 함께 억류해온 감찰어사 고영기는 동경(료양)에 떨구어놓고 하공진만은 연경(베이징)까지 데리고와서 궁성안에 거처하게 하고 량가집 규수까지 주선하여 배필을 정해주며 극진히 대우했다.

거란왕의 정성에 하늘이 도왔는지 여름에 들어서면서 하공진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풍을 함께 하자 청하면 쾌히 응해나와 함께 사냥도 즐겼고 이러니저러니 거란조정의 일도 자문을 구하면 제법 입맛이 당기는 조언을 곧잘 주었다.

녀진인들을 다루기가 여간 말째지 않아 그러니 생각한것이 있으면 말해달라 했더니 고구려나 발해때처럼 그들을 어루만지라 하였다. 그들의 생존권을 지켜주어야지 배척하면 반기를 들뿐 리로울게 없다는것이였다.

고려도 녀진을 돌봐주는 태도를 취하여 적으로 만들지 않는 지혜를 보여주고있다, 거란이 지금처럼 녀진인들을 구속하면 그들이 서서히 집결해서 거란국자체를 위협해나설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녀진이 고려에 가붙으면 거란에 불리하다, 고려와 동맹하여 거란에 맞서자 할수도 있는것이다.

하공진이 이런 말까지 하자 거란왕은 하공진을 신임하는데 이르렀다.

(네가 겉으론 나의 신하되기를 거절한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구나. 발들여놓으면 그게 제 집인줄 알아차린게지.)

거란왕은 하공진이 동료인 고영기를 만나보고싶다 하자 미련없이 동경까지 다녀오도록 허락했고 부인들까지 아무때건 서로 오가며 소식을 전하도록 해주었다. 고영기도 하공진이처럼 량가집 처녀를 배필로 하사받았었다.

그런데 이것이 이들의 탈출음모를 꾸미는 공간으로 리용될줄을 어이 알았으랴.

그사이 하공진은 연경에서 동경까지, 고영기는 동경에서 압록강까지 도망칠 로정을 정해놓고 그 준비를 하고있었던것이다.

도중도중의 역참이나 주막거리에 좋은 말들을 사서 맡겨두고있었다. 이곳 말들이 종자가 좋다며 하나, 둘 사서는 후에 가져가겠다며 림시로 맡겨둔것이 거란의 감시에 포착되였던것이다.

어이없는것은 거란왕이 손수 주선하여 배필로 정해준 녀인들이 이 일에 두팔걷고 공모해나선것이였다. 녀자란 한이불에 들면 한속통이 되는줄 그제야 알게 된 거란왕이였다.

하공진은 모르쇠를 쳤으나 고영기는 이내 불고말았다.

더는 버티여봤댔자 소용이 없다는것을 안 하공진은 숨김없이 터놓았다.

자기는 압록강을 건너온 그날부터 어느 하루도 고국 고려를 잊은적이 없다고, 어느때건 다시 압록강을 건너갈 결심이였다는것을.

거란왕은 이발을 부드득 갈았다.

지금껏 속은것이 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진정을 받아주지 않는 하공진이 얄미워서였다.

사람은 자기를 해치려는자만이 미운것이 아닌가보았다. 자기의 정을 받지 아니하는자 역시 밉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떤 면에서는 칼을 물고 죽이려드는 적보다 더 증오스럽게 느껴지는것이였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대는 나의 신하가 되지 않으려는가?》

《마지막으로 대답하건대 나는 고국에 대해 딴 마음을 품을수가 없다. 살아서 거란의 신하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서 고려의 혼이 될것이다.》

거란왕은 풀써덕 주저앉았다.

온 한해가 다 가도록 얼려보고 빌어보고 할수 있는껏 다해보았으나 그것이 허사로 되고말았으니 탕개가 풀릴수밖에.

거란왕은 가까스로 일어나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아무말없이 비척비척 발을 내디뎠다. 어떻게 하라는 소리도 없이…

그 순간 하공진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더이상 나에게 미련을 두게 해서는 안된다, 이 하공진이 죽어도 거란에 복무하지 않을 사람이라는것을, 거란을 증오하는 나의 마음은 절대로 꺾지 못한다는것을 깨닫고 단념하게 하여야 한다. 하다면 저 거란왕의 약을 바싹 올려서 나를 어서 죽이게 해야 한다.

하공진의 입에서 무서운 욕지거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천하에 무례한 놈아! 제 살던 땅은 어디다 줴팽개치고 남의 조상의 땅을 타고앉아서 사람을 못살게 구느냐, 이 천벌을 받을 야만의 종자야!…》

그 순간 거란왕은 반사적으로 돌아섰다.

야만의 종자라구?!

그것은 거란왕에게 있어서 제일 아픈 말이였다.

송나라의 첫 조상국인 상나라나 고려국의 첫 조상국인 조선은 거란국에 대비도 안되는 오랜 나라이다. 나라를 세운지도 4천여년이 됐음에랴.

그러나 거란은 나라라는것을 세운지 100년도 채 못되였다.

4천여년에 100년이라니 그게 어디 발뒤꿈치에나 갖다대볼 나이인가.

그 주제에 자기도 황제국이라니 송은 말할것도 없고 아무리 덩지가 거란보다 작다 한들 고려가 쉽게 인정해줄리 만무일터였다. 실지로 지금까지 더듬어보건대 고려는 겉으로는 거란을 인정해주는듯 하나 송나라와 같은 격의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고있다. 거란은 송나라앞에 저들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도 고려를 굴복시켜야 하는데 그 일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거란왕은 자기 나라를 보는 고려의 속마음을 잘 알고있음으로 해서 더 약이 올라있었다.

거란족은 송나라 한족이나 고려의 조선족에 비해 종족의 나이로 봐도 어린애였다.

드넓은 황하류역에서 근 반만년을 살아오는 한족도 그렇거니와 대동강류역을 중심으로 하고 북으로는 흑수(아무르강)까지, 동으로는 해뜨는 대륙 끝너머 동해까지, 서로는 지금의 거란이 차지하고있는 료하너머까지의 드넓은 대륙과 남으로 뻗어나간 반도까지의 넓은 령역에 태고적부터 터를 잡고 반만년을 살아오는 조선족에 비하면 거란족은 어떠한가.

오륙백년전쯤까지만 해도 반벌거숭이에 언어도 똑똑한것이 없어 종족의 체모조차 갖추지 못한 야인무리에 불과하였던 거란족이였다.

겨우 종족의 모양을 갖추었다 생각될즈음에 이번엔 따따르족들이 또 갈래갈래 찢겨져서 서로 각축전을 벌리는통에 맘편히 살 형편이 못되여 전전긍긍하며 동쪽으로 발볌발볌 무리의 이동을 시작한것이 당나라가 고구려를 친 이후에 잠시 공간으로 남겨두었던 료하상류에 이르러 그만에 나라라는것을 세우게 되였다. 그것이 916년 여름이였다.

처음에는 몽골족의 문물을 훔쳐내고 다음에는 한족과 발해인의 문물을 받아들여 이제는 몸뚱이를 가리우는것은 물론이요 쟁기를 벼리여 수풀처럼 기치창검을 치켜들고 동방정복야욕에 달라붙은것이였다.

하지만 송도 고려도 저희들을 보는 눈은 여전히 야인의 모습일것이라는것을 거란왕은 알고있었다. 뒤늦게 세상밖에 얼굴을 내여민 무리들이라 본시부터 자기의 고유한 문화라 내놓을만 한것이 없어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훔쳐오고 빼앗아서 어설프게 걸쳐놓은 꼴이니 그것을 누군들 탐탁히 보랴. 송이나 고려가 여전히 저희들을 오랑캐라 숙보는줄을 너무도 잘 아는 거란왕이였다.

먼저의 고려장수 강조나 지금의 고려사신 하공진이나 죽으면 죽었지 거란의 신하는 아니된다 뻗쳐대는것을 보며 거란왕은 이 점을 재삼 절감했다.

그렇다면 좋다, 너희들에게 야인의 진짜맛을 보여줄테다.

거란왕은 본성을 드러내였다. 그는 미친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이 고려인의 각을 뜨고 염통과 간을 내여 먹으라!》

하공진은 무참히 도륙을 당하였다.

하지만 그는 태연히 죽음을 맞받아나갔다.

거란왕이 자기를 포섭하려는 본심은 인재요, 뭐요 하는데도 있지만 당장은 다음번 고려침공때 자기를 써먹으려는데도 있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하공진이였다. 이것을 용납할수 없는 하공진이기에 그는 거란왕의 요구를 거절하는것으로 거란의 고려재침공기도를 규탄배격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하공진은 절개를 지켰다.

짐승도 죽을 때는 제가 난 굴을 향해 눕는다 하였거늘 하물며 사람임에랴.

나서자란 고향땅, 고국 고려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백골이 진토되여도 변함이 없으리라. 다행히도 내 죽어 묻히는 땅이 지금은 오랑캐의 발굽에 잠시 짓밟혀있으나 이 땅도 본래는 우리 조상의 땅이고 언제든 꼭 다시 찾을 땅이니 여기에 묻혀도 여한이 없을지고…

하공진은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거란에 동지절 인사차로 갔던 김승의는 하공진의 부고를 안고 돌아왔다.

하공진의 죽음은 여간 큰 상실이 아니였다. 유능한 조정의 관료 하나를 잃은것이였다.

고려조정에서는 그의 화상을 공신각에 내붙이고 자자손손 그의 애국충의지심을 전해가게 하였다.

그리고 거란의 립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였다. 그들의 고려에 대한 적대감정뿐아니라 여전히 침공할 야욕을 버리지 않고있다는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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