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하 편
12. 거란의 2차침공을 물리치다
14
조정에서는 거란군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순국렬사들에게 벼슬과 상을 내렸다.
양규에게는 공부상서의 벼슬이 추증되고 그의 아들 양대춘에게는 교서랑의 관직이 내려졌다. 양규의 처 홍씨에게는 년봉으로 해마다 곡식을 주도록 령이 내려졌다.
김숙홍에게는 장수(장군)의 칭호를 내리고 그의 어머니에게도 종신토록 매년 50석의 곡식을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양규와 김숙홍에게 삼한후벽상 공신칭호가 내려지고 공신각에 초상이 나붙어 후대들에게 전해지게 하였다.
벼슬과 상은 살아있는 공신들에게도 내려졌다.
유방은 개경방어전과 평양성이북으로 거란군을 구축하는 싸움을 잘 지휘한것으로 하여 병부상서 겸 상장군으로 임명되였다.
강은천에게는 한림원의 학사승지벼슬이 내려졌다.
정3품의 학사승지는 한림원(임금의 어지로 내려지는 일체 문건과 법령, 명령서, 지시서, 외교문건을 만들어내는 관청)의 두번째 자리였다. 우두머리는 시중이나 상서령이 겸하게 되여있어 실제상으로는 두번째자리인 학사승지가 한림원을 주관하였다. 임금의 머리역할을 하는 부서의 책임자가 된것이였다.
임금은 학사승지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은천의 이름을 감찬이라고 지어주었다.
땅을 의미하는 감자에 돕는다는 뜻의 찬자였다. 땅을 지키는 일을 잘 도왔다는 의미와 함께 나라일을 살피는 임금의 일을 잘 도우라는 의미깊은 당부가 깃든 이름이였다.
이번 싸움(거란의 2차침입을 물리친 싸움)의 전과정을 살펴보매 많은 대신관료들과 장수들이 부닥친 국난을 타개하는 싸움에 무수한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강감찬처럼 사심없이 대바르게 임금 자기를 보필한 사람이 과연 있었던가.
다른것은 말고라도 임금이 나서서 거란왕에게 머리를 숙이여 위기를 면하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갈 때 유독 강감찬만이 반대해나섰다.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고 주장하고 실지 행동으로 보여준 감찬이였다. 나라의 위상과 함께 임금의 체면을 지켜준것이였다.
하지만 감찬은 임금의 이 치하앞에 면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백성들과 군사들이 하나같이 떨쳐나 나라를 지켜싸웠기에 오늘의 승리가 있었다고 확신하는 감찬이였다.
감찬은 하공진을 구원하지 못한것이 자기 불찰이라고 고민하고있었다.
하공진은 돌아오지 못하였다. 거란왕이 끝내 억류해간것이였다.
감찬은 하공진을 두고 자책을 금치 못하였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옴해있을수가 없었다.
전란의 후과를 수습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국사처리로 매일같이 내려지는 임금의 어지가 감찬의 손을 거쳐야 했기때문이였다.
감찬은 다망한 속에서도 전란과정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찾아내여 포상하는 일과 그릇되게 행동한자들을 처벌하는 일에 적지 않게 관심을 돌렸다.
형부에서 올려온 제의에 따라 랑중 백행린의 관직을 박탈하도록 한것이 그 례였다.
백행린은 개경방어때 자기 패거리와 노비들로 따로 부대를 꾸려가지고 천마산 한쪽귀퉁이에 들어가있으면서 고려군의 력량이 딸려 전전긍긍하던 그 시기에 마지막까지 출전하지 않았었다. 유방도 이 일을 두고 격분하여 백행린을 처벌하려고 벼르다가 서경으로 출전하는 바람에 흘려버렸다.
감찬은 승리한 후에라도 이런 기피자들은 용서할수 없다 생각되여 형부의 제의를 따랐다.
이에 대해 임금은 목은 베지 말고 파직시켜 평민으로 떨구라고 지시했다.
감찬은 탁사정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는 지채문의 권고도 심중하게 대하였다.
지채문은 임금의 어명으로 동계 화주(화성)에서 부대를 기동시켜 서경으로 이동해올 때 탁사정이 어물거리면서 인차 자기 꼬리를 따라물지 않았던것을 매우 못마땅해하고있었다. 그후에 서경방어전에서 적을 구축하는 싸움을 함께 벌릴 때에도 지채문 자기를 선봉에 나가게 하여 적의 포위에 들게 하고는 탁사정
그런 사람이 임금의 총애를 받아 어사중승이 되고 우간의대부가 되여있는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것이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였다.
감찬이 알아본바에 의하면 탁사정은 서경방어때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였지만 거란군의 포위에 겁을 먹고 대도수를 꾀여 협공을 운운하면서 서문으로 빠져나간 뒤 남쪽으로 퇴군하여오다가 도중에 산속에 들어가 은거해있었다. 병을 만나 몸을 가눌수 없었다는게 그 리유였다.
감찬은 생각을 거듭한 뒤에 이 일은 그냥 덮어두기로 하였다. 서경방어를 지원할데 대한 임금의 령을 마지막까지 매듭짓지는 못하였지만 서경안의 투항파들을 단호히 처리한 사실과 적의 공격을 막는 싸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점을 들어 큰 선에서 보아 공을 세운쪽으로 평을 내린것이였다. 적에게 투항하지 않고 싸움이 끝난 뒤에라도 임금을 찾아온것은 사실이기때문이였다.
대신에 감찬은 적에게 투항한 변절자들에 대한 처벌은 엄하게 하도록 하였다. 강조와 함께 포로되였다가 변절하여 거란왕의 앞잡이로 악명을 떨친 이전 부통사 리현운과 행영도통판관 로전, 감찰어사 로의에 대해 그러하였다.
로전은 거란왕에게 굴복하여 통주성에 와서 항복을 권유하다가 억류된 뒤 처단되였고 로의는 평양성에까지 내려와 역시 거란왕의 항복통첩장을 내휘두르다가 처단되였다.
감찬은 임금에게 상주하여 역적은 3대멸족시키는 전례대로 이자들의 가족을 재산몰수와 함께 처리하는 결단을 내렸다.
반면에 탁사정의 부대에 합류하여 서경을 고수하는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중 법언에게는 수좌의 관직을 내리고 그의 용감성을 공신각에 게시하게 하였다.
감찬의 일처리에 대해 대다수 관료들은 지지를 표시했다.
조정에서 감찬의 지위는 확고하였다.
하지만 성공의 뒤에는 반드시 시기가 따르기마련이였다.
감찰어사 리인택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였다. 그는 개경방어전을 기피한 죄로 벌을 받은 이전 랑중 백행린과 한패당인것으로 해서 함께 벌을 받은 리인례란자의 4촌동생이였다.
개경방어전때 감찬과 함께 있은 그는 감찬에게 앙심을 먹고 그의 뒤를 캐기에 급급했다. 싸움이 끝난 뒤 장수들의 공과 허실을 론하는 자리에서 그는 강조의 죄목을 들추면서 자만하여 적에게 포로되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든 죄와 함께 이전 임금을 제 마음대로 죽인것을 꼬집다가 그 시기에 강조에게 맹종맹동한 관료들의 이름가운데에 감찬도 끼워넣으면서 관직박탈과 류배처벌을 주장했다.
임금이 그때 일은 어쩔수 없는것이라 지나간 일을 부디 거들지 말라 덮어버리자 리인택은 감찬이 개경방어전에서 궁성을 적에게 내주었던것을 흠으로 들고나왔다.
그때 감찬이 거란군을 성안에까지 끌어들인것은 굶주린 적으로 하여금 텅 빈 성안에 들어와 마지막기대감마저 허물어져 맥을 놓고 쓰러진 다음에 된매를 안기려는 전술적타산에서였다. 적의 정신력을 깡그리 허물어놓은 뒤에 소멸하려는 감찬의 의도는 정확한것이였다. 승리의 비결이 바로 그 점에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흠을 잡으려드는자에게 안 잡힐 허물이 어디 있으랴.
얼핏 들어봄에 적을 꼭 궁성안에 들여놓아야만 했는가 하는 반문에 옳다, 그르다 제꺽 답을 주기가 난해하였다.
하지만 임금은 그 발언도 중지시켰다. 승리한 장수에게 부디 만들어 죄목을 씌우려는것은 억지이고 중상이라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리인택은 포기하지 않고 벼르고있다가 이듬해 6월 동녀진의 출몰을 타개할 목적으로 감찬을 동북면 행영병마사로 임명하면서 함께 딸려보내자 며칠만에 먼저 돌아와 이런저런 비난을 일삼으며 또다시 꼬집기를 하려들었다.
화가 난 임금은 인택을 파면시켜버렸다.
감찬은 일을 끝내고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임금에게 간청하였다.
《페하! 리인택이 신의 흠을 잡는것은 오히려 신을 돕는 일로 되는것이니 그를 복직시켜주기 바라나이다.》
《과인도 이제는 눈이 익히 트였소. 일을 하는 사람이 흠도 있는 법이거늘 흠이 있다 하여 다 꼬집어내면 일할 사람이 대체 몇이요? 감찰어사의 직분이 과인의 어명실행을 돕는것이지 흠이나 캐라는 자리가 아니요. 경종을 울리는 취지에서 한 일이니 개의치 마시오.》
임금은 단호했다. 그는 권력의 생리를 꿰뚫어보고있었다.
감찬은 더 고집하지 못하였다. 그런 일 말고도 임금에겐 속을 써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쫓겨간지 한해하고 반년이 될 때까지는 죽은듯이 숨을 죽이고 고려의 눈치만 보고있던 거란것들이 최근에 들어와 다시금 코빼기를 내밀고 이전 버릇을 살리고나섰던것이다.
임금은 감찬과 상론하고 이미 지난해 10월에 병부상서 유방을 참지정사 서경류수 겸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임명하여 떠나보내였다.
평양성이북 서북변방의 성들을 수축보강하고 있을수 있는 거란의 재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대는 거란이 하공진을 돌려보내지 않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임금은 화제를 거란측 동향파악에로 돌리였다.
《호부시랑의 말은 하공진이 거란왕에게 복무하기로 하였다 하는데 그 말을 학사승지는 믿으시오?》
임금은 지난해 8월에 호부시랑 최원신을 거란에 보내여 하공진을 돌려보내라 요구하게 하였었다. 최원신은 거란 동경까지 가서 이 일을 추진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감찬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신이 보건대 하공진은 그럴 사람이 아니오이다. 무슨 곡절이 있을것이오이다.》
《과인도 그렇게 생각하오. 어쨌든 거란은 일시 움츠러들었을뿐 앙갚음을 할 생각을 버리지 않고있을것이요.》
《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이다. 변방방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줄 아옵니다.》
《녀진이 우리 고려문턱을 번잡하게 두드리는 리유는 무엇인것 같소?》
《그 점이 흥미있는것이로소이다. 조공행렬이 나날이 늘고있으니 좋은 조짐이 아니오이까?!》
감찬은 녀진추장들이 겨끔내기로 토산물을 이고지고 와서 고려에 머리를 수그리는 실태를 긍정적인것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요. 처음엔 겉발림수라고 단정했는데 지켜보니 진심이란게 알린단 말이요.》
《동녀진도 점차 서녀진의 본을 따고있는것이 더욱 그러하오이다. 페하께서 그들에게 고려의 벼슬을 내려주니 더 활기를 띠고있소이다.》
《그들이 이번 거란과의 싸움을 보고 우리 고려에 기우는것 같소.》
《녀진이 거란과 배가 맞을리 없을테니까요. 제 생각엔 이들이 우리 고려의 힘을 빌려 장차 나라의 체모를 갖춰보려는듯 하오이다.》
《십분 그럴수 있소. 그들이 나라를 세워 거란을 견제하면 우리에게 좋으면 좋았지 해될건 없을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녀진이 존재하는 한은 우리에게 리로울것이지요. 하오나…》
여기서 감찬은 잠시 말허리를 끊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수 있다 그 말이겠소?》
《아닌 말로 그들이 거란을 구축하고 거기에 자기의 나라를 세운다면…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중원으로 나가자 할것이기때문이옵니다.》
《송과 겨루자 할것이라는것이요?》
《그러하옵니다. 그런 경우 그들은 우리 고려보고 송과의 정상관계를 끊으라 할것이고 저희들과 합류하자고 강요할수 있사옵니다.》
《송과의 동맹이 파기될 우려가 있다는것이겠소.》
《그것말고라도 녀진이 옛 발해땅의 주인이 되는것이니 우리는 조상의 땅을 영영 잃고마는것이옵니다.》
《꼭 그렇게 될는지는 모를 일이나… 듣고보니 녀진의 존재가 마음놓을 일은 아니구려.》
임금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건 후날의 일이오이다. 지금은 거란의 재침공을 막아야 할 때라 페하께서 녀진을 포섭하는 일은 잘못된것이 아니라 생각되오이다. 지금은 녀진을 어루만져서 거란에게 창끝을 돌리게 하는 수입니다.》
《짐의 생각도 그렇소.》
《신의 생각엔 거란의 동향도 찔러보는셈치고 다시한번 사신을 파해봄이 좋을듯 하옵니다. 마침 동지를 앞둔 때이니 그들에게 이전관례대로 동지절을 축하하는 사신을 교환하면서 그 기회에 하공진을 돌려보내라 다시한번 요구해봄이 좋을듯 하옵니다.》
《좋은 생각이요. 그리하기요.》
임금은 다음날로 파발을 띄워 흥화진에 주재하고있는 도관랑중 김승의를 거란에 들여보냈다.
감찬은 밤새 서신을 만들어 파발을 통해 김승의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