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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 회)

 

하 편

 

12. 거란의 2차침공을 물리치다

 

10

 

서경형세는 조석으로 이리저리 모양새가 뒤바뀌고있었다.

원래 지채문이 동북계에 가있은것은 거란왕이 일부 군사로 두만강을 건너 허위진공을 한때문이였다. 극히 적은 수로 기만행동을 한것인데 그것이 보태여져 대군의 공격으로 와전된탓에 고려조정에서 군사의 일부를 돌렸던것이였다.

지채문은 화주에서 진을 치고 거란군을 기다리고있다가 몇번 화살질을 해본 끝에 적군의 수가 많지 않은것을 알고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려왔었다. 하지만 같이 파견되였던 동북계 도순검사 탁사정이 좀더 기다려보자 우긴탓에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서경으로 돌아오라는 임금의 령을 받은 즉시 지채문은 군사를 돌려세웠다. 그런데도 탁사정은 우물쭈물하며 자리를 뜨지 않다가 며칠 더 지나서야 마지못해 돌아섰다.

한발 먼저 평양성어구에 도달한 지채문은 강덕진(강동)에 진을 치고 군사를 파하여 서경형세를 파악해오게 하였다.

알아본바 서경형세는 예상외로 막급했다.

성안의 일반군사들과 주민들은 죽기로 맞설 각오로 끓고있는데 비해 관료들은 둘로 갈라져서 옥신각신하고있었다. 대도수를 위시한 무장들은 싸울 생각에만 옴해있는데 부류수 원종석과 막료들인 최위, 함질, 양택, 문안 등은 적에게 항복하기로 작정하고 투항문을 작성하고있었다.

강조와 함께 포로되였던 이전 감찰어사 로의가 거란군장수와 함께 성밖에 와서 투항을 권고하는 격서를 들여보낸것이 발단이 되였다. 투항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강조처럼 처형을 면치 못하리라는 으름장에 덴겁을 한것이였다. 강조가 끝내 사살된 사실을 알고난 뒤에 복수심이 아니라 굴복할 생각을 한것이였다.

자고로 역신은 백성들속에서가 아니라 충의지신이라 일컫는 관료대신들속에서 난다 하는 말이 현실로 증명되는 시각이였다.

지채문은 지체없이 야음을 타서 평양성의 남문으로 군사를 이끌었다.

투항문을 작성하고있던 부류수 원종석은 지채문의 증원군을 들여놓지 말라고 하였으나 대도수의 으름장에 찔끔 놀라 비켜서지 않을수 없었다.

지채문은 자기 수하의 군사를 임금이 서경에 오면 거처하는 내성의 남쪽행랑에 들어가 진을 치게 하고 변절자 로의를 사로잡자고 제의하였다.

하지만 원종석은 반대했다. 그가 거란왕의 격서를 날라온 사절이므로 함부로 죽일수는 없다는것이였다.

지채문은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겨우 짓누르고 짐짓 돌아섰으나 원종석으로부터 로의가 투항문을 받으러 다시 온다는것을 알고있은지라 은밀히 성밖으로 군사를 기동시켜 매복하였다가 투항문을 받아가는 일행을 사로잡았다.

지채문은 자기 짝패인 시어사 최창과 함께 변절자 로의는 물론 그를 앞세우고 따라왔던 거란장수 류경과 호위군사들을 모조리 목을 베고 투항문은 불살라버렸다.

뒤미처 이 사실을 안 원종석은 군사를 풀어 지채문 이하 그의 군사들이 다시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성안의 군사들은 원종석이 거짓으로 지채문이 성을 고수할 생각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이들을 배척해나선것이였다.

사태가 달라지자 지채문은 할수없이 성 남쪽밖에 진을 치고 기회를 보다가 뒤미처 도착한 탁사정을 만나고서야 두 부대를 합쳐가지고 성안으로 다시 들어갈수 있었다.

지채문은 탁사정의 이름으로 원종석 이하 일당의 투항기도사실을 편지에 써서 들여보내여 성안의 군사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두 부대를 들여놓도록 한것이였다.

지채문과 탁사정은 성안의 투항파인물들을 단호히 처리해버리였다.

서경방어사 대도수는 자기도 모르게 투항문을 작성하였던 서경부류수 원종석을 제 손으로 죽여버렸다.

한편 거란왕은 성안에서 인츰 투항문이 나온다는 보고에 입이 째지게 좋아하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있다가 옹근 하루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한기라는 거란장수에게 2백의 기병을 데리고 가서 영문을 알아오게 하였다.

평양성 북문(칠성문)밖에 도달한 거란장수 한기는 《전날에 우리 황제의 격서를 받고 투항문을 보내온다 하고서도 소식이 없으니 웬일인가? 서경류수는 나와서 그 리유를 밝히라.》고 고함쳤다.

지채문과 탁사정은 의논끝에 랑장 정인을 서경류수로 변장시켜 내보내고서 잇달아 날랜 기병들을 데리고 불의에 기습하여 거란장수 한기 이하 1백명은 죽여버리고 나머지 1백명은 생포하여 노비로 삼아버렸다.

또 하루가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안 거란왕은 미칠듯이 날뛰다가 겨우 진정하고 한가지 계책을 꾸미였다.

그무렵에 거란왕은 고려임금의 이름으로 된 정화요청문을 받고나서 어떤 대답을 줄것인가를 궁냥하고있었다. 생각끝에 그는 이 정화요청문을 항복문서로 인정한다 선포하고 거란관리 마보우란자를 자칭 개경류수로 임명하고는 그를 부임지로 떠나보내는 행렬을 요란스레 조직하였다.

평양성밖 공지에 고려군의 화살이 미치지 않는 거리어간에 《료국 개경류수 마보우》란 글자가 씌여진 지휘기를 펄럭이며 거란군이 개경으로 입성하러 가는 때인데 서경을 지키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야유하는 적의 편지까지 받아본 탁사정과 지채문은 수치감에 몸을 떨다가 더 참아내지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성밖으로 뛰쳐나왔다.

9천가량 되는 고려군 기병부대는 마보우의 행렬을 호위하는 거란군을 공격하여 3천을 죽여버렸다.

다음날에 탁사정은 성안으로 들어가고 지채문은 그냥 남아서 성밖에 진을 치고있다가 거란군이 또 한차례 공격해오자 맞받아 쳐나갔다.

그런데 적들은 별로 싸워보지도 않고 되돌아 들고뛰였다.

지채문은 적군이 수적으로 많음에도 서둘러 퇴각하는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였으나 사기가 오른 자기 군사들이 기세를 올리며 쫓아가는것을 제지시키기 싫어 그냥 따라가다 본즉은 그것이 적의 유인매복인것을 알아차렸다.

허나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적들은 정면과 좌우에서 조여들며 숨겨놓았던 대병력으로 지채문의 군사들을 닥치는대로 쓸어눕혔다.

지채문은 어쩔수없이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도 성안으로가 아니라 성밖 멀리로 퇴각해야 하였다. 거란군이 병력을 대량 동원하여 성둘레를 막아버렸기때문이였다.

지채문은 거란이 개경을 저들의 땅인듯 류수까지 임명해 보내고있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싸움은 해보나마나한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페하께서 항복을 하신것이다. 거란의 통치를 받으며 속국으로 살아가자 하신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던 지채문은 세차게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수가 없다. 페하를 찾아가자. 가서 사실여부를 알아보고 싸워도 늦지 않다.

생각이 이에 이른 지채문은 급히 말머리를 돌리였다. 살아남은 군사 2백을 뒤에 달고 그는 개경으로 내달렸다.

한편 성안으로 들어와 성루에 올라섰던 탁사정은 거란군의 두겹 포위진을 내다보고 얼굴이 해쓱하니 질리였다. 그도 지채문이처럼 거란이 개경류수를 임명하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싸움은 더 해볼 여지가 없기때문이였다.

고려가 거란과 싸우는것은 첫째로는 땅뙈기를 떼우지 않자는것이고 다음은 거란의 속국이 되지 말자는것이였다. 그런데 땅뙈기는 아직 떼웠다고 말할 지경이 아니였지만 개경에 거란의 관리가 류수로 임명되였다는것은 이미 고려가 속국으로 되였다는것을 말해주기때문이였다.

싸움판에서 군사의 심리는 싸움의 명분에 대한 자각지심에 따라 좌우된다. 싸우는 목적이 명백하고 그 목적을 이룰수 있다는 신심에 넘쳐있는 군대는 이기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정신력의 기초가, 지탱점이 없으므로 패하기마련이다.

거란의 속국이 되지 말자고 싸우는 고려군에 있어서 거란관리의 개경류수부임은 그 정신적지탱점을 무너뜨리는 치명적타격이 아닐수 없었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하게 정세를 관망해보면서 정신을 바싹 차리고 탕개를 조여야 할것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뿌리쪽보다 우듬지가 더 요동을 치는것처럼 백성들의 머리우에 군림하는 관료들일수록 더 빠른 심리적동요를 일으키는것이 문제였다.

탁사정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지채문이마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처를 알수 없게 되자 탁사정은 자기가 성안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단정하는데 이르렀다.

그는 대도수를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 거란군이 성을 두겹으로 포위하고있어 겉으로는 우세해보이나 허울만 그러할뿐 실상은 어설프기 그지없고 엉망으로 흐트러져있으니 이밤을 타서 그대는 동문으로, 나는 서문으로 나가서 좌우협공하면 능히 적군을 쫓아낼수 있을것이요.》

대도수는 그러지 않아도 기분이 썰렁하여 진정을 못하고있던차라 속시원히 몸이나 풀어서 기분전환이라도 하자는 속심에서 깊은 생각없이 응해나섰다.

대도수는 강조가 적에게 포로되여 죽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있었다. 늘쌍 도통사인 강조의 지휘를 받는데만 습관되여있던 그는 강조가 없는 지금에 와서 자기가 서북방 전반을 떠맡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일순 당황하기까지 하였었다. 그는 적군이 어방없이 우세한 력량으로 성을 포위하고 조여들자 우선 성을 지키는데 전념하기로 작정했다. 조정에서 자기에게 강조의 권한을 대행하라는 어지가 내리지 않은것도 고려해서였다. 지채문과 탁사정의 부대가 지원을 왔지만 그들도 대도수 자기에게 복속되여 싸우라는 령은 까밝혀 받지 않았으므로 대도수와 동등한 자격으로 의논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있었다.

이것이 고려조정이 놓친 빈구석이였다. 어떤 경우에나 무리에는 수장이 명백히 찍혀있어야 지휘가 바로되는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장수이고 평양성 방어사인 대도수가 응당 주도적으로 총지휘를 떠맡고나서야 할 일이였으나 그런 면에서 대도수는 대가 약하였다.

사람이 너무 겸손해도 해가 될 때가 있는것이 바로 지금의 대도수경우였다. 게다가 그는 거란군장수가 개경류수로 부임되여갔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는데로 기울어져 의기를 잃고있었다. 그런 정신상태였으므로 그는 품계와 관직의 급이 같은 탁사정이 자신있게 안을 내놓고 부추기는데 쉽게 넘어가고말았던것이다.

《서문밖 웃켠 강녘에 룡화사인지 하는 절간에 거란왕이 틀고있다 하옵는데 그놈을 요정내는겸 내가 서문으로 나가는게 어떻소?》

대도수는 같은 값이면 대가리쪽을 맡으려 하였다. 그것은 서문밖 전방을 자기가 직접 맡아보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탁사정이 자기 부대는 이미 서문(보통문) 입구에 집결했다 하므로 대도수는 동문(대동문)으로 부대를 이끌고나와 은탄과 오탄(은탄과 오탄은 여울이름들이다.)으로 해서 대동강을 건는 뒤 동평양벌에 전개하고있는 적군진영으로 맹공격을 단행하였다. 동평양벌에 있는 적군이 주력이고 그것들은 인츰 개경으로 내려갈 조짐이므로 아무래도 그쪽은 실력이 높은 대도수가 맡는게 합당하다 하므로 더 우기지 않고 응해나선것이였다.

하지만 놀라웁게도 불이 훨훨 타오르는 적진영에는 적병의 그림자조차 볼수 없었다.

빈 불무지들만이 곳곳에서 타오르고있을뿐이였다.

부근의 인가를 하나 찾아내여 물어본즉 날이 어둡는무렵에 거란군은 모두 동남쪽방향으로 떠나갔다는것이였다. 개경으로 간것이였다.

대도수는 문득 이쪽 동평양방향이 지금까지는 탁사정 수하부대가 맡고있던 방어계선이였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가 이쪽방향의 적정을 직접 장악하였겠는데 적의 기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는게 이상했다. 아니면 적의 이동기도를 알고도 모른체 한것은 아닌지… 하다면?!

대도수는 자기가 탁사정에게 얼리워 넘어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갈마들었다. 동문으로 부대를 끌고나오면서 보았지만 자기 방어구간인데도 불구하고 탁사정은 얼마간 력량을 떨구어놓아야 하련만 그의 군사들은 그림자도 볼수 없었다. 이것은 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성밖의 적을 치자는게 아니고 성밖의 적을 친다는 외피를 쓰고 실은 자기 부대를 빼내려는 잡도리라 아니할수 없는것이였다.

탁사정이 나를 속였구나! 나를 이쪽으로 빼돌리고 도주한것이 분명하다!

탁사정, 네가 그럴수 있느냐?!

분한 생각을 누르며 다시 강을 건너가려고 방향을 돌리던 대도수의 두눈이 갑자기 화등잔만 해졌다.

평양성 내성 남쪽 장대재봉우리쪽에서 불길이 치솟고있었다.

아차,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대도수는 무릎을 꺾으며 주저앉고말았다.

장대재라면 단군과 주몽의 사당이 위치한 곳이기때문이였다.

(탁사정이 거란군과 내통한게 아닌가?! 그게 아니면 어떻게 적군이 내가 성밖으로 나온 때를 노려 들어올수 있단 말인가?)

대도수는 거란군이 성을 까고들어와 불을 지른것으로 착각하고있었다.

실은 성안 누군가의 부주의로 불이 인것이였다. 일이 안될라니 때마침 돌개바람이 일면서 불길이 장대재쪽으로 번져갔던것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은 더 크게 번져가다가 내성 서쪽성벽을 넘어 서문밖 웃쪽 개활지대로 퍼져갔다.

북서풍이 주로 부는 겨울철인데도 이날은 돌개바람이 동남쪽에서 역풍으로 올리붙어 불길은 자꾸자꾸 북쪽으로만 번져갔다.

하늘과 땅은 온통 불천지로 화하였다. 하늘은 우뢰울듯 드르렁거리고 땅은 지동치듯 와르릉거렸다.

거대한 면적에서 초목이 타면서 말아올리는 연기가 바람소리와 겹쳐지면서 우뢰소리를 내고있었다.

화가 복이 된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았다.

평양성 내성 한쪽귀때기에서 시작된 불은 성밖으로 날아넘어 불바다를 이루면서 거란군이 틀고있는 서북천 군영으로 사정없이 쓸어갔다.

거란군은 야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불세례에 혼비백산하여 걸음아 날 살려라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한 불길을 피하는 수가 없었다.

태반이 화상을 면할수 없었고 다섯놈중 한명 꼴로 죽음을 내였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다고 보는것이 옳을것이였다. 침략자들에게 내려진 천벌인셈이였다.

거란왕은 눈깜짝할 사이에 눈섭은 말할것도 없고 코수염과 턱수염이 말짱 타버려 몰상스런 송곳턱을 빤드름히 드러낸 꼴을 하고서 하늘을 우러러 개탄을 련발했다.

군마들과 수레, 식량이 타버린것이 또한 문제였다.

거란왕은 근 보름을 두문불출하고 군막안에서 나오지조차 못하였다.

한편 평양성안의 고려군사들과 백성들은 환호를 올리며 사기를 내였다.

성안의 남은 장수들은 하늘도 고려편을 들고있으니 이것은 길할 징조이고 이길 징조라고 하면서 서로 모여 의논끝에 통군 특사 조원을 병마사로 추대하고 랑장들인 강민첨, 홍현 등을 부사로 천거하여 지휘탑을 만든 뒤 성안 군민을 불러일으켜 다시금 성을 고수하는데로 나아갔다. 이들은 대도수가 탁사정과 짜고 부대를 데리고 도망친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희롱이랄가 대도수는 불길이 이는 그 순간에 도성이 적군에게 함락당한것으로 착각한 시점에서 빗나가기 시작한 걸음을 돌려세우지 못하였다.

서경안의 신사(단군, 주몽사당)까지 태웠으니 그 죄를 어찌 모면할수 있으며 서경방어사로 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적군에게 눈뜨고 함락당한 그 죄를 자기자신 용납할수 없다는 자책과 좌절감에 포로된 나머지 아쉽게도 그는 평양성을 외면하고 떠나가는 착오를 범하였다.

단 하루밤동안 타번져진 불길을 보고서 단번에 속단해버린 억측으로 해서 그는 력사에 불미한 오점을 남기였다. 일부 력사기록에는 그가 거란군에 투항하였다고까지 적혀있는 정도이다.

그가 다음날이라도 연기가 그물거리는 도성안에 적군이 실지 들어와있는지를 알아보려 했다면 그런 착오는 가지지 않았을것이였다. 강을 건너가기만 하면 알수 있는 일이였으나 강건너편 멀리에서 어림짐작으로 보고 잘못 판단한 그 순간의 실수는 이처럼 만회할수 없는 오명을 면치 못하게 하였다.

거란왕이 자기 족속을 개경류수로 임명했다는 선전을 그대로 믿은탓에 백전로장이던 대도수는 그 굳세던 배짱에 금이 가고 떡심이 풀려버려 저절로 일어난 화재마저 거란군의 성함락으로 착각하는 혼란을 가져온것이다.

대도수는 자기가 조정앞에 돌이킬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빠져 좌왕우왕했다.

서경을 적에게 떼우고 내 무슨 면목으로 임금앞에 나설수 있단 말인가.

고민에 싸여 갈팡질팡하던 대도수는 남은 군사를 끌고 안융진으로 발길을 돌리였다.

그곳에 가서 형세를 살피다가 돌아가는 적이라도 죽이는껏 죽여 죄를 덜어보는 수다. 하기는 조정이 정말로 거란에 굴복하였다면 돌아가는 적일망정 그것들을 죽이는것도 조정의 뜻에 위반되고 죄되는짓은 매일반일것이나 이 대도수는 고려가 거란과 화친하는 꼴은 살아서는 보지 말아야 할 놈이니 그렇게라도 한을 풀어야 할것이다.

대도수는 이런 생각으로 입술을 깨물고 돌아섰다.

이후에 그의 행적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가 거란군에 투항하였다는 기록은 심히 외곡된것이 아닐수 없다.

17년전 성종때에 거란의 1차침공을 물리치는 안융진성 사수전에서 그가 세운 전대미문의 공적을 상기해보면 충분히 알수 있는 사실이다.

그가 평양성을 떠나 북상한것은 십중팔구 거란 동경의 발해군을 찾아간것일수 있다.

그가 평소에 거란이 발해출신들을 구슬리여 발해군이라는 상비군을 무어놓았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졌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때 그는 그 발해군을 밑천으로 기회를 보아 반기를 들수 있으리라 전망했었다.

이 이야기는 정사에는 기록된것이 없고 민간에 구전되여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이후시기의 력사기록에 이 동경의 발해군이 끝끝내 반란을 일으키고 흥료국이란 발해후국을 세우고 고려에 응원을 요청했던 엄연한 사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발해왕 대조영의 친족후손인 그가 형세가 불리해졌다 판단이 되자 평소에 품고있던 뜻을 좇아 선대의 고국땅으로 한가닥 희망을 걸고 갔으리라 추측하는 사가들이 적지 않다.

정사의 기록에 그의 《투항》이 전제가 전혀 없고 동기 역시 사귀가 맞지 않게 난해한 몇마디로 씌여진 반면에 민간에 전해오는 《발해군참군설》은 전제가 뚜렷하고 심리적동기가 명백하기때문이다.

그 이후의 어느 력사기록에도(특히 흥료국건립과 그 이후의 반거란항전기록에) 그의 행적이 없는것으로 보아 그는 발해군을 끝까지 찾아가지 못하고 중도에 잘못된것으로 인정된다. 그의 나이가 그 당시 예순이 넘는것으로 추측되기때문이다. 년로한 그가 로상에서 부닥치는 곤난을 이겨내기가 힘에 부쳤을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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