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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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서 오오.》 심철범은 그의 도착보고를 받는둥마는둥 하고 무뚝뚝하게 명령했다. 《건재연구소의 강도시험결과를 다시한번 보고하오.》
기술부장은 둬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심철범, 전호진 그리고 리완수에게 동시에 보고할수 있는 자리에 멈춰섰다.
《중장동지의 명령에 의하여》 하고 기술부장은 보고를 시작하였다. 《제가 간것은…》
《간단히 하오.》
심철범은 그를 막았다.
《무엇때문에 어데로 갔는가 하는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소.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거나 보고하오.》
《알았습니다.》 하고 기술부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석비레모래로 만든 블로크를 연구소의 강도시험기에 넣었습니다. 200마르카이상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열번 하였는데 그 수치는 같았습니다. 이것은 강모래와 같은 수치입니다. 그들은 좀 더 확고한 결론을 가지기 위해 전국의 10여개 대상공사장들에 있는 강도시험기들에서 같은 시험을 반복했습니다. 결과는 어데서나 같았습니다. 이상입니다.》
《알고있소.》 하고 심철범은 또다시 불만스레 그의 말을 막았다.
《기술부장동무.》
리완수가 물었다.
《그 강도가 몇년 아니 몇백년동안 유지될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다른 말들이 없었습니까?》
《두고보자고 말했습니다.》
《두고보겠다고!》
심철범은 비웃는 어조로 되뇌였다.
《백년, 이백년동안을?》
《중장동지.》 하고 시무룩하게 기술부장이 말했다. 《그들은 법적책임이 돌아올가봐 두려워하고있습니다. …전 기술부장으로서 석비레혼합물의 장기강도를 증명해보일수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기술부장은 여기서 말을 중둥무이하고 말았다.
《녀자들처럼 무슨 우는 소리를 하오?》 하고 심철범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무는 기술일군이기전에 군인이란 말이요.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요.
《건설법규를 만든 사람들은 어디 다른 나라사람들인가! 제길!》
이때까지 잠자코있던 전호진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나라가 이 공사에 운명을 걸고있다는것을 그들이 알기나 하는가.》
그 소리에 심철범은 비로소 그를 불러온 목적을 상기한듯 기술부장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참모장동무.》 하고 그는 말했다. 《동무는 석비레모래문제에서 나와 철저히 립장을 같이하고있다고 생각하는데 믿어도 좋겠소?》
《말씀하십시오, 중장동지.》
전호진이 동의를 표시한다는 뜻으로 자세를 바로잡고나서 심철범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나는 참모장동무에게 명령을 떨구겠소. 공사장의 전구간에서 석비레모래를 도입하시오! 그리고 일제히 충진을 시작하시오.》
《알았습니다!》
전호진이 본능적으로 일어서며 대답했다.
《나는 이 명령을 서면으로 작성했소.》 하고 심철범은 주머니에서 종이장 하나를 꺼내 전호진에게 주면서 말했다.
《앉으시오.》
《이건 무엇에 필요한가요?》
전호진은 종이장을 들여다보고나서 물었다.
그 종이장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0026호명령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콩크리트혼합물에 석비레모래를 사용할것. 중단된 충진을 일제히 다시 시작할것. 조선인민군 중장 심철범.》
서면명령은 심철범의 자필로 되여있었다.
《그건》 하고 심철범은 전호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 명령을 내가 떨구었다는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요. 앞으로 만일에 내가 이 공사를 지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도 동무는 그 명령서를 가지고 공사를 내밀어야 하오. 이상이요!》
이때 전호진의 손에서 명령서를 가져다 들여다보고있던 리완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심철범이 자기의 차를 불러달라던 사실과 이 뜻밖의 서면명령이 어떤 련관이 있다고 짐작했다. 장령이 혹시 법앞에 나설 결심이 아닌가!
그는 묻는듯 한 시선을 심철범에게 던졌다.
《정치위원동무.》 하고 심철범은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면서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직접 건설심의국에 가겠습니다. 그들이 정 문제를 세우겠다고 하면 나는 법앞에 나설 결심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걱정하지 마시오.》
한동안이 지나서 심철범이 역시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대련합부대 참모장으로서 공병작업을 지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는 이 며칠간 내가 관계한 군사시설물들을 두고 생각해봤습니다. 처음부터 쎈 놈은 시간이 가도 셌고 처음부터 부실한 놈은 시간이 가도 부실했습니다. 과학은 아니지만 이건 경험입니다.》
《그럼 좋습니다. 이 명령서에 나도 수표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리완수는 무언가 밑에 받칠것을 찾다가 종이장을 무릎우에 그냥 놓고 원주필끝으로 몇번인가 구멍을 뚫어가면서 거기에 수표하였다. 그리고는 전호진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도 수표하라는 뜻으로 종이장과 연필을 함께 넘겨주었다.
리완수는 평양으로 올라가는 심철범과 같은 차를 타고가다가 관리국에서 내렸다.
그는 총정치국대표 차인중의 방 문지방을 넘어서기가 바쁘게 인사하는것도 잊고 흥분된 어조로 물었다.
《방금 심철범중장동지가 석비레모래문제때문에 평양으로 올라갔습니다. 건설위원회에서는 석비레모래를 쓰는 경우 법적으로 문제를 세우겠다고 합니다. 총정치국에서는 그에 대한 사전통보를 받았습니까?》
인상이 칼칼해보이는 총정치국대표인 50대의 장령은 리완수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잠을 못 자서 새빨갛게 충혈된 그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보온병에서 더운물 한고뿌를 따라 권했다.
《들라구.》
《마시고싶지 않습니다.》 리완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앉으라는데.》 여전히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장령은 자리를 권했다.
두사람은 책상에 마주앉았다. 물고뿌는 그들 두사람사이 중간에 놓여있었다.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물고뿌에 흥미라도 있는듯 장령은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비로소 대답했다.
《받았소. 동무에게 알려주려고 전화를 거니 받지 않더군.》
《예, 중장동지를 만나고있었습니다.》
리완수는 심철범이가 법앞에 나서게 된 책임이 마치 이 장령에게 있기라도 한듯이 항변하는듯 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석비레모래문제를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건설위원회의 처사에 의견을 토로하는 리완수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난 장령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치일군은 법적문제에 개입하지 않는게 좋아.》
《법적문제에 개입한다구요?》
리완수는 항변하였다.
《나는 법적문제에 개입하는것이 아니라 공사에 개입하고있습니다. 0026호명령은 법보다 더 중요한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중장의 명령서에 같이 수표를 했습니다.》
(뭐라구?!)
장령은 내심으로 놀랐으나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정치대학 동창생이고 한때 전투구분대에서 조직부지도원으로 함께 일해온 리완수를
《그러다 법적책임이 돌아오면 어떻게 하겠소?》
《법앞에 함께 나서겠습니다.》
리완수는 공식적으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흥분하지 말라구.》
장령은 책상 한가운데 놓여있는 물고뿌를 들어주었다. 리완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단숨에 들이켰다.
《좋소!》 하고 장령이 확인하듯 그에게 물었다. 《그를 끝까지 보증한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리완수가 힘을 주어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저는 중장동지에 대하여 총정치국에 정확히 보고해주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장령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반문했다.
《예.》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하여 장령이 침묵을 깨뜨렸다.
《사회주의건설에서 인민군대는 타산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건 국가법규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까. 우리가 알아본데 의하면 그 법규는 과학기술에 기초하고있었습니다. 과학기술적문제를
이렇게 말하는 장령의 얼굴에도 괴로움이 비꼈다.
리완수는 말문이 막힌듯 입을 다물었다.
《물론 심철범장령의 문제를 총정치국에 보고하겠습니다. 정치위원동무의 의견대로 말입니다. 그리고
리완수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쏘파에 몸을 던지였다. 몹시 흥분했던탓인지 까딱할 맥도 없었다. 오래동안 비워둔 방은 남의 방처럼 느껴졌다. 책상우에 뽀얗게 먼지가 올라있었다. 책상우에 펼쳐놓아둔 소설책에도 먼지가 덮여있었다.
리완수는 책읽기를 무척 즐기였다. 그는 본래 책을 읽지 않고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였다.
전후 무산산골에서 인민학교시절을 보내면서부터 생긴 습관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군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지식가였다.
이런 그가 손에 책을 들어본적이 오래되였으니 얼마나 바삐 돌아쳤으랴.
그는 지금 쏘파에 앉아 잠자듯 눈을 감고있었다. 뒤죽박죽된 자기 일과와 혼란된 머리를 정돈하려는것처럼.
과학기술적인 문제를
군인들은 사회주의건설에 명령하나를 가지고 참가했다. 그들의 기준은 오직 명령이였다. 그것이 과학기술적인 문제든, 경제실무적인 문제든 그들은 타산을 앞세우지 않았다. 바로 명령 하나밖에 모르는 군인들이기때문이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리완수가 만난 총정치국대표도 그러한 장령들중의 한 사람이였다.
하지만 리완수의 심정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그는 괴로움속에 모대기면서 마음속으로 부르짖고있었다.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정치적운명에 관한 문제이다! 국가의 중요대상건설을 맡은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처음엔 1번전화가 다음은 2번, 3번전화가 분주히 경쟁이라도 하듯이 울리고있었다. 리완수는 멍해서 듣고만 있다가 다급히 수화기를 잡았다.
콩콩 튀는 교환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치위원동지, 중장동지가 어디 계십니까?》
《무슨 일이요?》
《평양으로, 석비레문제때문에…》 하다가 리완수는 그 전화를 자기가 받아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정치위원동무요?》
《예, 그렇습니다. 정치위원 대좌 리완수가 전화를 받습니다. 건강하십니까?》
《나는 건강하오. 동무들은?》
《예, 모두 건강합니다.》
《사고를 내지 말아야 하오. 특히 인명피해를 말이요. 나는 동무들이 제기한 직선돌파를 지지했지만 인명피해를 낼가봐 걱정스럽소.》
《알고있습니다.
《고맙소! 심철범동무는 어데 있소?》
리완수는 주저하였다. 심철범이 평양으로 올라간 사실을 말씀드린다면 불가피하게 석비레모래가 상정될것이며 그것은 곧
《평양으로…》
그는 떠듬거렸다.
《평양으로 올라갔습니다.》
《평양으로?》
반문하신
《무슨 일로? 정치위원동무, 무슨 일로 바쁜 현장을 떠났는가 말입니다.》
리완수는 입이 얼어붙어버렸다. 망설이는 사이에 그의 말을 더 기다리지 않고
그것은 노기띤 목소리였다.
《알겠소. 정치위원동무, 알았단 말이요!》
석비레모래문제가 검찰일군들속에서까지 론의되고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계시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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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무탁 왼쪽 벽밑의 의자에 리웅걸이가 송구한 표정을 짓고 앉아있었다.
금방 전선시찰에서 돌아오신
지금 그 모자를 벗지 않으신것은 리웅걸과 이야기를 끝내고 또다시 전선으로 떠나시기 위해서였다. 리웅걸은 집무실로 오면서 복도창문으로 주차장에 군장령들의 승용차가 여러대 발동을 끄지 않은채 서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이처럼 군령도에 분초가 바쁘신
《리웅걸동무.》 하고
《금강산발전소건설장에서 제기된 석비레모래문제에 법일군들까지 개입했다고 합니다.》
《저도 금방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제를 실무적으로 처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웅걸은 공연히 사업수첩을 펼쳤다덮었다 하며 말씀올렸다.
《법규를 어긴것만큼 응당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말하자는것은 어떻게 하면 군인들을 보호해주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예, 알았습니다.》
리웅걸이 일어났다가 앉으며 말씀올렸다.
《알아보고 심철범동무를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 동문 이미 내가 데려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볼가 하다가 먼저 쉬우기로 했습니다. 동무도 한번 그 동무의 몰골을 보시오. 한다하는 장령이 병사용군화를 신고 옷은 온통 돌가루매닥질입니다. 그는 지금 휴계실에 있습니다.》
리웅걸은 아무 말씀도 드릴수 없었다. 한동안 그는 사업수첩만 만지고있었다.
《우리 군인들은 사생결단으로 그 공사를 하고있습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보고를 다 받고있는데 눈물이 나서 견딜수 없습니다. 갱내 전구알 하나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전사도 있습니다.》
그것은 실로 눈물이 나는 일이였다.
석수로 해서 갱내에서는 전구알이 자주 끊어지군 했다. 어떤 때에는 여러개의 전구알이 동시에 끊어져 작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부득불 전구알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가 와야 했다. 시간을 목숨과 같이 여기는 전사들은 필사적으로 뛰게 된다. 그들은 전구알을 깨지 않기 위해 안전모에 담아 품에 끼면서도 자기들의 머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칠흑같이 캄캄한 갱안을 마구 내달리였다. 그러다가 바위에 머리를 찧고 빈사상태에 빠지거나 희생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구알 하나때문에!
군인들은 전우가 희생되면 그의 묘소에 소담한 들꽃을 꺾어다놓군 했다.
그런데 전우의 묘소를 찾아가는 그 시간이 교대를 바꾸는 저녁시간이나 아침시간과 일치하는 때가 있었다. 그러면 들꽃잎사귀우에 아침이슬, 저녁이슬이 함초롬히 맺히군 했는데 그들에게는 그 이슬이 희생된 전우를 생각하며 흘리는 꽃의 눈물처럼 보였다. 그래서 군인들은 전우의 묘소에 놓는 그 꽃들을 《눈물꽃》이라고 했다.
공사도중에 희생된 어느 병사의 자작시는
손, 누구에게나 손이 있어라
어릴적의 그 고사리손이
나는 그 손으로 뜰앞의
봉선화를 매만졌고
울바자에 앉은 잠자리도 잡았더라
그 손으로 들꽃우에 팔랑이는
범나비도 잡았고
내 고향 작은 시내가에 종이배도 띄웠거니
그럴 때면 어느새 어머니 달려와
내 작은 손우에 볼을 대며
요 손이 언제면 솥뚜껑만 해지겠니
허나 오늘 내 그 손에 총대를 잡았구나
그 손으로 정대를 틀어쥐고
그 손으로 착암기를 안았구나
오, 내 그 손으로 무거운 광차를 밀며
무너앉은 천연암반 떠받치군 하여라
하여 거쿨지고 마디가 굵어진 손
터지고 피가 나도 아픔을 모르는
아, 정녕 모질고 모질어진 손
나의 억센 손이여!
내 이제 그 손으로 다 끌어내리라
백여리 대형물길굴의 천만버럭을
그 손으로 나는 높이 받들리
우리
우리
…
방안에는 한동안 격정의 소용돌이가 이는것 같았다.
《리웅걸동무.》 하고
그러나
《공사부대 정치위원이 말하기를 석비레모래를 쓸데 대한 명령서를 만들었다는것입니다. 그 명령서에는 심철범장령만이 아니라 정치위원과 참모장도 수표했다고 합니다.
법이 이것을 문제시할것이 아니라 담보해줄수는 없겠습니까?》
《담보말입니까?》
리웅걸이가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건재부문의 박사선생 한분을 불렀습니다. 이제 그 선생을 함께 만나봅시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