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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회)

 

하 편

 

12. 거란의 2차침공을 물리치다

 

6

 

《오냐라, 잘 나왔다. 이 되여먹지 않은것들!》

거란왕이 통주성쪽으로 공격해내려온다는 전갈을 받은 강조는 희색이 만면하여 춤까지 추었다.

《고맙다, 거란왕아! 네가 그래도 이 강조의 사정을 알아주는구나. 명색이 무장이라는게 머리털이 희여지는 이날이때까지 적장의 목 한번 베여보지 못해 몸살을 앓고있는줄을 네가 알아주어. 기특하기란, 으하하!…》

강조는 수하군사를 네갈래로 나누어 한갈래는 공격해내려오는 거란군의 정면을 치고 또 한갈래는 거란군 중간을 쳐서 토막내게 하였다.

다른 한갈래는 통주성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한갈래는 자기가 직접 거느리고 거란군의 후위를 향해 은밀히 기습해들어갔다.

강조의 목적은 이번통에 적군 거란의 왕을 사로잡든 목을 베든 결판을 볼 결심이였다.

흥화진에서 첫 싸움을 치르는 동안 등이 달아 안절부절하고있던 고려군은 강조가 출전령을 내리자 먹이를 노리고 내리꽂히는 솔개들마냥 거란군을 덮쳐들어갔다.

선주(선천)고을에서 통주(동림)고을까지 어간의 오십리구간에서 고려군은 거란군의 중허리를 꺾어내여 순식간에 3만의 적을 일망타진해버렸다.

통주성의 고려군이 흥화진의 고려군처럼 곱게 성안에 들어박혀서 방어만 할줄 알고 기고만장해서 내려오던 거란군은 전진로상에서 불의에 타격을 받아 선봉주력을 잃고나자 당황하여 좌왕우왕했다.

거란왕은 허둥지둥 후위서렬을 멈춰세우고 급기야 방어로 넘어갔다.

첫탕에 적의 선두서렬과 중허리를 강타하여 3만의 적을 몰살시킨 강조는 사기가 나서 군사들에게 하루동안 휴식을 주어 로획한 적의 물자로 잔치를 차려 때려먹게 하였다.

그리고나서 자기가 거느린 부대로 하여금 거란왕이 위치하고있는 촌락을 포위하라고 분부했다.

《도통사나으리! 너무 깊이 들어가는게 아닐가요? 그만 멈추고 적정을 좀 살펴본 다음에…》

《멈춰서다니? 이제 발 한번 구르면 적의 수괴를 잡을판인데, 무슨 혼빠진 소릴 하고있나?》

측근모사의 말에 강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창 기세가 오른 때인데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를 하는가 하는 태도였다.

《병법에 이르기를 장수는 될수록 뒤전에 서서 전반형세를 장악하는게 기본이라 하였소이다. 적진중에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만약에…》

《만약은 무슨 만약! 거란왕만 잡으면 싸움은 끝나는 판이야. 거란왕이 위치한 후위를 포위했다는 소식만 오면 단숨에 덮쳐버리자구.》

강조는 지도에 손가락을 짚어보이며 모사를 다몰아댔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인즉은 거란왕이 지체하고있는 마을의 뒤산이였다. 강조 휘하의 일부 군사가 그 산을 타고앉아 거란왕의 호위군을 뒤로부터 차단만 하면 거란왕을 사로잡는것은 다 먹은 떡이라는것이였다.

강조의 생각은 영 승산이 없는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것은 지체없이 돌진해들어갈 때라야 성사될수 있는것이였다. 혼란에 빠진 적군이 저희들 왕곁으로 력량을 집중하기 전에 해치워야 하였다.

그런데 강조는 거란왕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뒤를 막고보려는 심산으로 정면공격을 서두르지 않고있었다. 이것이 강조의 실책이였다. 게다가 강조는 자기도 거란왕처럼 수하 호위력량이 많지 않은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였다. 자기자신도 역습을 당할수 있다는것을 생각해야 할것이나 이 점을 잊고있었다. 승리에 도취되여 적을 얕본데서 온 실수였다.

거란왕의 후위를 차단하러 들어갔던 강조 수하의 군사들은 거란왕을 지원하러 몰려오는 적군의 후위부대들에 의해 좌절격파되였다.

그런것도 모르고 강조는 거란왕의 후위를 차단했다는 보고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군막안에서 바둑을 두며 시간을 지체하였다.

얼핏 보기엔 적군이 수세에 몰려 쩔쩔매는것 같아보였지만 그들도 자기 왕을 호위해야 한다는것쯤은 알고있는 족속들이였다. 그리고 적군 역시 상대측의 지휘부를, 수장을 노리고있다는것을 알았어야 했다.

결정적인 수를 쓰지 않고 순간의 탕개를 풀어놓고 시간을 지체한탓에 강조는 만회할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말았다. 적군의 기습을 면치 못하였던것이다.

강조 수하의 5천군사는(나머지 5천은 거란왕의 후위를 차단하러 들여보냈었다.) 별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자기의 수장을 적에게 빼앗기고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강조 수하의 군사들 역시 다른 갈래의 군사들처럼 승리에 도취되여 먹고 마시고 취해 늘어진 상태였던것이다. 기분이 둥 떠서 호위에 집중하지 못하고있다가 자기 수장을 눈 펀히 뜨고 떼우고만것이였다.

지휘부를 철벽으로 지켜야 함은 군사행동의 초보에 초보의 상식이다.

렬세에 몰렸을 때는 말할것도 없고 승세를 타고 기세충천해서 나갈 때에도 어느 순간에 자기 지휘관이 해를 입을지 모른다는것을 알고 방비책을 틈없이 세웠어야 할것이나 지휘관의 해이가 그대로 군사전반의 심리에 옮겨가 그만 탕개가 풀리는 허점을 초래하였던것이다.

적은 바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것이였다.

사흘전 3만의 적군을 죽이고 적의 공격을 좌절시켰던 강조 수하의 고려군은 그로부터 사흘어간에 반대로 3만의 희생을 내였을뿐아니라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통주성의 1만군사만이 남았다.

강조와 함께 있던 행영도통부사 리현운과 행영도통판관 로전, 감찰어사 로의 등 고려군 지휘장수 여럿이 함께 포로되였다.

거란군은 기세충천하여 통주성으로 다시 공격해내려오다가 강조 수하의 다른 갈래들인 좌우기습군 장수들인 김훈, 김계부, 리원, 신녕한 등이 흩어졌던 군사들을 수습해가지고 완항령에서 육박전으로 막아나서서야 일시 좌절되였다.

거란왕은 그냥 완항령을 돌파하려고 하다가 까버리지 못하고 내려온 흥화진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아 다시 돌아서서 강조의 필체를 위조한 투항명령서를 성안에 들여보냈다.

하지만 양규는 거란왕의 잔꾀를 대번에 간파하고 일축해버리였다.

《우리는 고려임금의 령을 받는 사람들이다. 하물며 패장의 령을 들을손가.》

거란왕은 양규의 답신을 받아들고 이발을 부드득 갈았다. 그는 고려 장수 양규의 됨됨이를 너무도 모르고있었다. 양규는 그따위 잡소리에 귀를 기울일 위인이 아니였다.

양규는 강조가 적에게 포로되였다는 소리를 애초에 믿지부터 않았다. 그렇게 쉽사리 적에게 잡힐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사 잡혔다 해도 투항을 권고할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강조는 죽으면 죽었지 투항따위를 외워댈 약자가 아니였던것이다.

안달이 난 거란왕은 다시 강조의 이름으로 된 투항지시문을 써가지고 이번엔 통주성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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