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하 편
12. 거란의 2차침공을 물리치다
3
《말해보라, 강조대감! 그대가 그런 무도한짓을 했다는게 사실인가, 사실인가 말이요!》
임금의 목소리는 비분에 떨고있었다.
강조, 저 사람이 전 임금을 제 손으로 죽여놓고서도 뻔뻔스럽게 내앞에서는 그가 스스로 자결했다고 거짓보고를 해?!
임금은 거란사절로부터 이전 임금이 살해된 사유를 물어왔다 하는 소리에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여 두눈만 슴벅이였었다.
전 임금이 살해되다니? 그것도 다름아닌 강조가 죽였다는 소리에 임금은 아연실색하였다. 하지만 최항을 통해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을 때 그는 경악했다.
그토록 믿어마지않던 강조라는 사람이 충신과 역신의 두 얼굴을 가지고있은 랑신(어지러운 신하)이라니…
《페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시면 제가 그리하게 된 사유를 제 입으로 말 안해도 페하께선 알아차리실것이옵니다. 진정하시고 깊이깊이 헤아려주시옵소서.》
강조는 땀이 뚝뚝 흐르는 얼굴을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깊이 생각해보아도 과인은 그 사유를 알수가 없노라. 꼭 그리해야만 될 일이 아니라서 내 하는 말이노라. 그런 엄청난짓을 해놓고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다니. 세상에 이런 법도 있는가, 말해보라, 말을 해보아!》
임금은 해쓱하니 질린 얼굴에 노기가 뻗쳐 펄펄 불이 이는 눈으로 강조를 쏘아보며 소리소리 내질렀다.
《소신은 일구월심 페하를 위하는 마음에서 그리하였으니 마음대로 처분하시오이다. 이 몸은 페하의것이니 죽이든 살리든 신은 탓하지 않겠소이다.》
강조는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배를 내밀었다.
권력의 생리를 그리도 모르신단 말인가.
곁가지가 너무 실해서 기둥흉내를 내려 해도 문제거니와 고목을 베여내지 않아 새순이 곧추 자라지 못하는것도 문제라는것쯤 알으셔야지.
그것뿐이면 작히나 좋으랴, 거란이 그 모양새를 보고서 제 내키는대로 훈수를 틀려고 접어들터인데 그런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하겠기에 단호히 한 일을 그렇게까지 성내시다니. …
강조는 거란이 그동안 저희들에게 고분고분해온 전 임금에게 여전히 미련을 두고서 새 임금에게 무슨 훼방을 놀자 할는지 모르는 때이라 단호히 그 근원을 없애자고 한 일인데 그걸 리해하지 못하고 자기를 너무 탓하기만 하는것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였다.
《그대가 이런저런 후탈이 있을가보아 그러한줄을 내 모르는바 아니노라. 하지만 흠을 잡자고드는 놈한테 이길것 같은가? 우리가 자기 지경안에 들어온 녀진인들을 좀 엄하게 단속한걸 가지고 저희들을 얕본다 트집을 잡아오는것들이 아닌가.
전 임금이 살해된 사유를 알아본다 어쩐다 하는것도 결국은 트집을 잡아서 우릴 굽혀보자 하는게 아닌가 말이요.》
《트집을 잡겠으면 잡으라지요. 그런 놈들에게는 덮어놓고 주먹찜질을 해주어야 하는것이옵니다. 페하! 우리도 그 거란사절놈들을 귀양보내버리고맙시다, 태조께서 하신것처럼!》
강조는 태조 왕건이 거란의 첫 사절단을 가타부타없이 귀양보내고만것을 상기시키고 나왔다.
942년 여름, 거란왕은 고려에 화친을 청하는 사절단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태조 왕건은 동족 발해국을 멸망시킨 숙적과는 상대를 안한다며 사절단성원모두를 무인도로 쫓아버렸고 례물로 가져온 주단과 비단 등속은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락타 50마리는 만부교밑에 매놓아 굶겨죽이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었다.
아아, 그때의 그 장한 기개는 다 어디 갔는가!
강조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와 지금 사정이 같은가? 그때는 거란이 료하 량안이북 귀쪽지만 한 땅뙈기밖에 차지하지 못하였을 때라 여차하면 우리 고려가 쭈욱 올려밀 배심이 있던 때란 말이요. 하지만 지금은 커질대로 커져서 송나라와 우위를 다투는 지경에 이른 놈들이라 우리 고려쯤 우습게 여기는줄 그대는 모른단 말인가? 벌써 한차례 드잡이를 해본 경험이 있으면서 그것들의 도발에 걸려들짓을 한단 말이뇨?》
임금의 나무라는 말이 계속되자 강조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거듭 아뢰옵거니와 거란이 드잡이로 나오면 우리도 드잡이로 나가는 수옵니다. 이미 붙어본 경험도 있거니와 덩지나 컸지 무에 별로 볼것도 없는 족속들을 놓고 그리 상심하시오니까. 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이다. 일은 소신이 저질러놓은것이라 신이 재간껏 뒤수습을 하겠소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 일을 수습할 사람은 그대밖에 없소. 거란이 노는 꼴로 봐서는 십중팔구 드잡이요. 준비하시오.》
《알아들었소이다.》
강조는 군말없이 응하고 돌아섰다.
격에 맞지도 않고 몸에 붙지도 않는 리부상서 문관노릇을 활 팽개쳐 버리고 그달음으로 서경으로 들어간 강조는 벗어두었던 자기 투구를 찾아 쓰고 성루에 올랐다.
며칠후(1010년) 10월초.
강조는 임금으로부터 행영도통사로 임명한다는 통지서를 받고 군사 30만을 거느리고 통주성(평북 선천, 동림일대)으로 떠나갔다.
임금이 강조를 행영도통사(고려때 변방에 큰 사변이 생겼을 때 임명하는 전방군사총지휘관, 병마사들을 총괄하는 지휘관)로 전격갱질한것은 거란의 침공에 대처하는 조치일뿐아니라 거란으로 하여금 고려가 힘내기에도 준비되여있다는것을 알려주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지금 임금은 전 임금처럼 되도록이면 거란에 빌붙는 식의 나약한짓은 하지 않을 잡도리였다.
은천은 그 사이에 두차례의 거란방문사절단을 보내는 과정을 통하여 이 점을 확인할수 있었다.
석달전 7월초에 이전 임금의 살해리유를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들어왔던 거란사절을 돌려보낸 뒤 한달이 지난 8월초에 내사시랑을 거란에 보낼 때에도 그렇고 9월에 우호관계를 청하는 사절을 파견할 때에도 그러했거니와 고려의 이전 임금이 살해되였든 자결하였든 그것이 거란과는 무관한 일이니 참견하지 말라는 점을 명확히 하게 한데서 알수 있었다.
9월초에 보낸 우호사절도 외교적인것으로서 고려는 거란을 선의로 대하는 립장임을 알리자는것일뿐 다른편으로는 싸울테면 싸워보자는 립장도 내포하고있었던것이다.
은천은 부지런히 붓을 휘둘러 고려의 이러한 의지가 일목료연하게 밝혀지게 문서를 만들어 보장하군 하였다.
한편으로 거란의 동향파악에서 적임자인 하공진을 한시바삐 복직시켜줄것을 임금에게 주청하였다.
하지만 임금은 반년도 채우지 않고 복직시키는것은 벌의 엄정성을 떨어뜨리는것이라는 리유로 은천의 청을 기각하였다.
은천은 초조한 마음을 달랠수밖에 없었다.